posted by 몽똘 2018.11.08 20:48

지난 6, 제주도 지방선거의 성과를 두 마디로 정리하라면, 매력적인 대중정치인의 탄생과 팀선거 방식을 꼽겠다. 선거 때마다 녹색당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후보를 찾는 것인데, 제주녹색당의 후보선출은 시민참여경선인단을 모집하고 당원과 시민들이 함께 지방선거 후보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아마도 녹색당에서 처음 진행된 방식). 그 과정을 통해 고은영, 오수경, 김기홍, 세 명의 후보는 도지사후보, 도의원비례대표후보가 되었다.

관심 많은 녹색당 당원이라면 아마도 이 세 후보의 흥미로운 출마의 변을 읽었을 것이다. 고은영 후보는 이주민, 여성, 청년의 정치를, 오수경 후보는 평범한 엄마, 여성의 정치를, 김기홍 후보는 퀴어 정치를 내걸고 출사표를 던졌다.

본격적인 선거를 준비하러 제주공항에 내렸던 212, 고은영 후보가 올린 출마의 변 동영상을 봤다(https://www.youtube.com/watch?v=ayeLsIK_dEE). 공항에 앉아서 열 몇 번을 돌려본 것 같다. 보통 선거에는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뭘 해주겠다, 만들겠다, 세우겠다, 이런 공약들을 하는데, 고은영 후보는 이렇게 멘트를 시작했다. “도민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이런 후보를] 갖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호, ‘제주가 기다려온 녹색반전’. 그 순간 묘한 느낌이 왔다. 이번 선거 재미있겠는데.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의 선거는 이후 여러 언론매체들을 장식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남겼다.

 

대중정치인의 탄생!

 

대중정치인은 어떻게 탄생할까?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은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대중성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녹색당의 지지율은 2014년 지방선거 1.65%, 2016년 총선 비례득표율 1.04%, 유권자 약 50만명 중 녹색당을 아는 사람이 5천명 정도라는 말이다.

정당의 인지도도 낮으니 개인적인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후보로 나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그런 인물이 녹색당을 택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물론 고은영, 오수경, 김기홍, 세 후보는 제주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었지만 이런 활동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578명의 시민경선단을 조직하고 그중 307명이 투표한 것은 선거 이전에 당과 후보의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녹색당의 후보들은 여전히 선거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현안을 부각시키거나 인지도를 높일 방법이 필요했다. 당시 제주도 제 2공항 건설은 현안이었고, 제주녹색당은 제2공항을 반대하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 왔다. 그리고 제주녹색당은 제 2공항 뒤에 도사린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과 난개발을 주도하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라는 핵심세력을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제2공항, 제주의 난개발에 맞서는 여성, 청년 도지사후보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또한 제주녹색당은 원외정당과 정치신인의 TV토론회 참여를 배제하는 공직선거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고 TV토론회 참여를 중요한 방법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선관위와 방송사에 요구를 하고 있었다. KBS노조의 파업 때 적극적으로 연대한 것도 KBS제주의 토론회 참여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은영 후보는 선관위 토론회를 제외한 방송 4사의 TV토론회에 모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요망진 후보’(당차고 똑똑한 후보라는 제주 사투리)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시민경선에서 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고은영 후보는 스스로는 아니라고 우길지라도 방송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gI7LRNeYGo).

오수경 후보는 라디오와 신문 인터뷰에, 김기홍 후보도 선관위가 주관하는 비례대표제주도의원선거 토론회와 인터뷰에 참여해서 역량을 뽐냈다. 그리고 제주도의 특성상 제주언론들이 제주녹색당에 관심을 기울였고 도지사 후보를 냈기 때문에 일일동정을 계속 실었다. 이렇게 선거에 참여하면서 제주녹색당의 인지도는 점점 높아졌다.

육지의 당원들은 모르겠지만 고은영 후보는 TV광고도 만들어서 내보냈다(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r3tKThOQmV4&fbclid=IwAR3M86LizAESwaACD902UFjCGKrRrQ2RLQEks7FUZ97cWhHPwQoSFyw3xvE&app=desktop). 돈이 없어 좋은 시간대에 길게 내보내진 못했지만 녹색당이 왜 선거에 나왔는지를 시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고은영 후보 득표율 3.53%, 정당득표율 4.87%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높아질 수 있었다. 기존 지지율보다 3, 4배 높아진 셈이다. 그리고 대중 정치인의 탄생이 가지는 효과는 새로이 가입하는 당원들은 선거를 치른 대중정당으로 녹색당을 인식한다는 점이다. 녹색당은 정당이다.

물론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신문사의 질의서에 답하고 TV토론회에 참여하는 건 준비한 만큼만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슬로건을 정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세부적인 자료를 준비하고 멘트를 짜는 건 후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몫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팀선거가 정말 가능할까?

 

제주녹색당의 선거운동본부는 현수막을 걸고 후보의 유세 동선을 짜고 질의서에 답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후보와 운동원들 끼니를 챙기고 유세노래를 만들고 율동을 짜고 기록을 남기는 역할을 서로 나누어 맡았다. 다른 정당이었다면 유급 선거운동원을 뒀겠지만 제주녹색당은 전원이 무급 운동원이었다. 아니, 무급이 뭐야, 각자 집에 있던 물품과 먹거리까지 싸들고 나왔으니 무급도 아니다. 서른 명 이상의 당원들이 품을 내고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짜내어 선거운동을 했다.

제주도만의 특별한 힘이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제주도는 아직 창당도 못한 지역당이고 당원의 수도 삼백명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있는 리더도 등장하지 않았다(트럭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포효하는 듯한 사진으로 기억되는 고은영 후보도 일상에서는 평범했다. 그러다 마이크만 쥐면 달라진달까). 팀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조건은 없었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뭉치게 했을까? 절박함? “제주를 지켜라 고은영, 녹색바람 기호 6번 고은영이라는 유세노래처럼 제2공항과 오라관광단지, 신화련 금수산장, 사파리월드 등 대형개발사업이 줄지어 대기 중인 제주도의 절박함이었을까? 그러나 그런 절박함을 가진 사람들은 원희룡을 반대한다며 문대림 편에 서기도 했다. 개발을 막으려면 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 않은가. 그러니 절박함만으론 사람들이 뭉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일까? 어쩌면 녹색당의 강령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무슨 소리? 우리는 도토리이니까. 63일자 <한라일보>에는 각 캠프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는데, 원희룡, 문대림 후보 등의 캠프에는 중앙당 당대표, 국회의원, 지역방송 전 보도국장, 교수, 전 공무원 등이 자리를 잡았다고 소개되었다. 그런데 고은영 캠프는 개발과 차별을 반대하고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유쾌한 사람들로 꾸려졌다.”고 소개되었다. 당시 고은영 후보는 페이스북에 이 기사를 링크하며 당강령을 인용했다.

 

선거 5일째. 각 캠프를 다룬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딱 봐도 우리가 제일 재밌어!! (캠프 부심) 우리가 말하는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길을 만드는 과정은 최선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지닌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주문을 외워보자. 사랑하는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오수경, 김기홍. 권일, 재홍, 경미, 순애, 선자, 경표, 신심, 승주, 용운, 성미, 진호, , 현정, 길훈, 가향, 민준, 다운, 화빈, 서윤, 영경, 원빈, 유경, 명환, 상범, 정향, 정희, 영인, 혜영, 경수, 현지, 바카재홍, 병기, 승우, 희창. 그리고 오며가며 함께 하는 수많은 당원들. 남은 8일도 잘 부탁해요 :)

 

도토리들, 선본 사람들이 선거 때 가장 많이 쓴 단어이기도 했다. 우리는 도토리들이다. 혼자 썩어가는 외로운 도토리가 아니라 혁명을 준비하는 떡갈나무 도토리들. 우리는 다가올 엄청난 변혁이나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뭐라도 하고자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선 도토리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도토리들은 한 가지 무늬와 색깔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었기에 다양한 역할분담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런 도토리들이 갑자기 출연한 것은 아니다. 제주녹색당이 지방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174월 부터였고, 그해 9월에 도지사 출마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당원 임시총회, 20182월에는 선대본 구성을 위한 정기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뒤 지난 7월에는 선거평가를 위해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즉 중간에 열린 수많은 작은 회의를 빼더라도 모든 당원이 참가할 수 있는 세 번의 총회가 선거과정에 있었고, 끊임없이 당원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이 있었다.

이렇게 만난 도토리들은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며,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피켓을 들고 달려가며, 목이 쉬어라 기호와 후보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 유세를 마치고 평가회의를 하며, 서로 건강을 챙기라고 한마디씩 건네며, 맛난 밥을 나누며 뭔가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흥겨웠고 선거를 끝내며 눈물겨웠지만 결국 언젠가는 오고야 말 녹색반전의 시간을 도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라는 마지막 기자회견으로 선거운동은 끝을 맺었다(아쉬움에 가득 찬 당원들의 뒤풀이가 연일 이어졌지만).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끝은 아니다. 이 기운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 테니, 그리고 선거 때 드러낸 제주도의 수많은 모순들이 갑자기 해결되진 않을 테니.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게 순순히 사라지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