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날 똑같다. 한참을 욕하다가 선거 당일이 되면 울며 겨자먹기로 투표한다. 최악이 안 되면 다행이고, 최악이면 술을 들이킨다. 정치하는 인간들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민의 가슴이 뛰길 원치 않는다. 그냥 표만 찍어주길 원한다. 니들이 찍지 별 수 있겠냐, 그런 똥배짱이다. 이런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몇일 전, 동네에 걸려있던 선거벽보를 누가 찢었다. 딴 일엔 굼뜬 경찰이 재빨리 출동했고, CCTV에 잡힌 용의자를 체포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지원금 부족에 불만을 품고 찢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급자가 아닌 나도 선거벽보를 보면 가끔 찢고 싶을 때가 있다.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슴이 뛰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는 ‘소위’ 진보후보가 세 명이나 되는데, 가슴이 전혀 안 뛴다. 한 명일 때도 가끔 벌렁거렸던 가슴이 세 명인데도 죽은 듯 잠잠하다. 그냥 선거 공탁금만 떠오른다. 세 명 합치면 11억인데, 아깝다, 돈을 쓸 때는 팍팍 써야 하겠지만 이런 판에 왜 팍팍 써야 할까,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이 판이 이렇게 된 것에는 우리만의 ‘이율배반’도 한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대통령 후보들이 현장을 방문하고 우리를 지지하기를 ‘내심’ 기대한다. 표가 보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자들이 사람들이 모이면 올 만도 한데, 그들은 오지 않는다. 사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찍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곳에 표가 보이지 않기에 그들은 오지 않는다. 까놓고 말하면, 사실 아닌가. 우리는 ‘소위’ 진보후보를 찍을 사람들이 아닌가. 오지 않을 거라, 우리를 대변하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우리는 그들이 오지 않는다고 욕한다. 왜?

 

우리 편이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면, 선거에서는 편을 바꾸거나 같은 편을 먹는 것이 상식인데, 또 우리는 그러지도 못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자세이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니 맨 날 만나는 사람들 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우리 편이 늘 부족하다고 한탄한다. 이런 이율배반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선거는 맨 날 똑같을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우리 때문에.

 

 

사실 선거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선거 이후이다. 정책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책을 보자는 것은 그 사람이나 캠프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선거 이후에 뭘 하려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편, 저 편 논의에서 사라지는 건 정책이고 선거 이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말들의 잔치이고 이후를 얘기하지 않는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그 공약을 뜻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만 한 명 달랑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라 정책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니 통 크게 우리가 몰표를 줄 테니 노동부나 복지부 전체를 우리한테 넘겨라, 뭐 이런 수를 쓸 수는 없을까?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이니 그 정도 약속을 받으면 우리 몫을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선거‘까지’만 얘기하고 그 때 웃고 울기에 이후를 보지 않는다. 누가 당선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아무런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기에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기성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진심이든 뻥이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면, 우리는 늘 익숙한 공간을 헤맨다. 그러니 선거 이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맨 날 그 편이 그 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까면서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알기에 기득권층은 선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안다. 심지어 별 수 없이 자신들을 지지할 거라는 사실도.

 

그것은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복직을 하더라도 기업의 주인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마찬가지이다. 제 손으로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자들이 노동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국외로 튈 수도 있지만 외국이 자신들의 천국일 수 없다는 점을 그들은 잘 안다.

 

그러니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살겠다고 결의할 수는 없을까?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일 수는 없을까?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을 만들어 우리끼리 재밌게 살면, 그들도 좀 머리를 숙이지 않을까? 맨 날 제왕적 대통령제라 욕하면서 대통령 제도를 한 치도 바꿀 생각을 못 하는 그런 냉소주의를 버리고 헌법을 바꿀 수는 없을까? 검사나 판사가 또라이라고 욕하지 말고 그들이 준거로 삼을 헌법을 우리 뜻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경찰이 깡패라고 욕하지 말고 경찰서장을 우리 손으로 뽑을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열심히 세금 내봐야 4대강 사업이나 토건사업에 쓸 텐데, 그런 몫을 주지 않고 우리가 나눠서 잘 쓰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을까? 선거 이후를 보며 칼을 벼리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선거판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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