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종철 선생님께 보냈었는데 이번 1~2월호에 덜컥 실린 글.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을 세미나하며 여러 생각을 했다.
농업에서 벼농사가 핵심일 이유는 없다는 점, 구술문화가 중요하다는 점, 변경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 등등...
이 고민을 못 담아 아쉽지만 일단 정리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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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은 낯선 지식인이다. 유행처럼 수많은 외국 지식인들의 이름이 뜨고 지는 한국의 지식사회나 운동문화에서도 지금껏 스콧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는 스콧이 1977년에 쓴 《농민의 도덕경제》가 2004년도에 번역되었고, 2010년 연말에 1999년 저작인 《국가처럼 보기》가 번역되었다. 두 책의 제목만 봐서는 스콧의 생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을 보면 제목만 봐도 스콧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약자들의 무기Weapons of the Weak》(1987년작), 《지배와 저항의 기술들Domination and the Arts of Resistance》(1992년작),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The Art of not Being Governed》(2009년작)같은 제목들을 보면 그의 관심이 국가나 지배보다 약자와 저항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나 저항이 우리 사회에서 인기 없는 주제도 아닌데 왜 스콧의 이름이 낯설게 들릴까? 지배든, 저항이든 모든 논의가 국가에 집중된 우리 사회에서는 스콧이 관심을 두는 지역사회가 흥미를 끌지 못한다. 더구나 스콧은 보수의 텃밭이자 진보의 골칫거리로 ‘오해’를 받는 농민에게 관심을 두니 어찌 보면 낯선 게 당연할 수도 있다.


허나 낯설다고 무시하기엔 스콧의 글은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스콧은 풍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통해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그 상식이 실제로는 길들여진 관점이라는 점을 주장하려 한다. 스콧의 주요 저작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에 그의 사상을 온전히 논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호혜성과 생존권, 도덕경제



내가 《농민의 도덕경제》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대학원 석사과정이었다. 수업시간에 동남아시아 농민봉기들을 다루는 와중에 이 책이 언급되었고, 그 때는 농민에서 노동계급으로 넘어가기 바빴을 때라 이 책에 거의 주목하지 못했다. 또 책이 번역되지도 않아 원서를 봐야 했기에 책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보다 영어를 해석하기에 바빴다.


사실 그 때는 스콧보다 폽킨(Popkin)이 수업시간의 주인공이었다. 폽킨은 도덕경제를 내세운 스콧과 달리 농민을 ‘합리적인 농민(rational peasant)’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퐆킨은 농민을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로 봐야 농민봉기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에는 스콧이 폽킨을 위한 조연배우였기에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고 13년이 흐른 뒤에야 《농민의 도덕경제》라는 책을 다시 접했다(안타깝게도 번역이 좋지 않다). 풀뿌리운동과 농민공동체의 관계를 찾아보다 이 책을 우연히 떠올리게 되었고, 책을 다시 읽으면서 농민공동체의 특징과 그것을 움직이는 질서에 관해 많은 점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공장이나 사무실의 구체적인 조건에 의존하는 노동자계급과 달리, 농민이 보편적인 계급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꾸리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농민의 도덕경제》의 서문에서 스콧은 농민들에게 “착취와 반란의 문제는 칼로리와 수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와 권리, 의무, 호혜성에 관한 농민들의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반란과 혁명을 일으킨다고 믿는데, 스콧은 농민에게는 그 문제가 달랐다고 주장한다. 즉 농민들의 반란이 엄청난 착취와 억압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착취와 억압의 정도는 농민들이 느끼는 생활의 어려움만으로 평가될 수 없었다. 스콧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의 농민들은 자신들이 구성한 생존윤리에 따른 도덕경제가 붕괴될 때 정부와 자본에 맞섰다.


농민들은 호혜성과 생존권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호혜성과 강요된 관대함, 공유지, 품앗이 등의 방식들은 다른 경우라면 최저생계수준 아래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가족이 부족한 자원을 채우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즉 강요되었건 합의되었건 공동체의 도덕은 구성원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보장했다. 스콧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로 ‘생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으며 엘리트들조차도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남겨둔 것을 빼앗지 못했고 오히려 어려운 시기에는 가난한 이들의 생계에 관한 ‘도덕적인 의무’를 졌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다른 모든 가치를 집어삼킨 지금 우리사회와 달리 당시의 농민공동체에서는 경제가 자신의 고유한 기준을 가지지 않고 일상적인 도덕이나 사회적인 교환의 원리에 따랐다.


이런 농민공동체와 도덕경제는 동남아시아가 서구 유럽의 식민지가 되면서, 즉 식민지 국가체계가 만들어지고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식민지 국가와 시장은 농민들의 자급에 가장 중요한 자원인 토지와 노동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국가 자체가 농민들의 자원을 수탈”했고 국가는 농민들에게 많은 양의 세금을 강제로 걷을 수 있도록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장은 사적 소유권을 강화시키고 가격이 도덕을 대체하도록 만들기 위해 경찰과 군대의 힘을 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소유권은 “숨 쉬는 공기처럼 항상 자유로웠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지역의 산림과 마을 소유의 미개척지”를 없애서 “농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이던 중요한 부분”을 가로챘다. 그로써 도덕이 경제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사라졌다.


물론 근대적인 식민국가가 등장하기 전에도 세금은 걷혔고 농민의 생산물은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하지만 세금을 정하고 걷는 방식이나 지역의 시장에서 가격을 정하는 방식은 식민지 시기와 달랐다. 자신들의 생활양식과 문화, 도덕이 식민지에서 완전히 힘을 잃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더 이상 미래를 준비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은 방법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시로 떠나 빈민이 되는 것이었다. 생계와 자급을 누릴 수 있는 여러 사회적인 장치들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도 국가의 완전한 전복과 파괴보다 도덕경제를 복원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식민지 이전의 농민공동체에 주목했다고 해서 스콧이 농민공동체를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보는 것은 아니다. 스콧의 말을 빌리면, “대부분의 농촌사회를 특징짓는 이러한 사회적인 장치들을 낭만화시키기 쉬운데 그건 심각한 잘못이다. 그러한 장치들은 근본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장치들은 모두가 마을 내의 자원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때때로 생존이 신분과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가이기도 했다는 점을 암시한다.…그런 장치들이 매번 작동하지도 않았고 작동한 곳에서도 필요에 따른 것이었지 이타주의의 산물은 아니었다. 땅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생계의 보장이야말로 노동력을 붙들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마을이 유지되려면 노동력이 필요하고 다른 마을로 떠나지 않도록 사람들을 붙잡아두려면 도덕경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타적인 것이 아니니 도덕경제가 나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타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래야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도움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이 똑같은 지위에 있다면, 그런 교환은 균형을 이루고 안정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소자작농은 자신도 나중에 똑같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소규모 자작농지를 가진 이웃의 수확을 도울 동기를 가진다. 그 누구도 자기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 자신의 이익에서 볼 때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계속해서 받고 싶다면 기꺼이 그래야만 한다.” 결국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가이다.


스콧은 농민의 이런 욕구와 이해관계를 분석하려면 ‘방법론적 개인주의’가 아니라 농민이 “도덕적인 가치와 구체적인 사회관계의 체계, 다른 사람의 행동을 기대하는 방식, 자신의 조상들이 옛날에 비슷한 목적을 달성했던 방식을 제공받는, 그가 태어난 사회와 문화 속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민들의 삶은 호혜성의 규범과 생계에 대한 권리를 빼고서 이해될 수 없는데, 이런 규범과 권리들은 농사 주기나 의식주기에 잠재되어 있기에 스콧은 “속담, 민요, 구술역사, 전설, 농담, 언어, 의례, 종교”를 분석해야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온갖 통계자료를 내세우고 계산기를 두드려서 농민들의 생계를 보장하겠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먼저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스콧은 식민지 시기의 농민반란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패배한 농민들은 적어도 문화적인 차원에서나마 자신들의 도덕질서(국가와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를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해서 시작의 가능성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농민의 도덕경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상징적인 피난처는 불안정한 생활을 위로받는 장소가 아니라 외려 하나의 탈출구이다. 이 피난처는 싹을 틔우고 있는 대안적인 도덕세계를, 즉 반체제 하위문화,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공동체이자 가치의 공동체로 단결하도록 돕는 실존적으로 참되고 정의로운 하위문화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이 피난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강의 기적’에 현혹되어 자기 생활터전이 공사판으로 변하는 것을 눈감아온 우리에게 스콧의 주장은 공상처럼 들린다. 경쟁력을 내세워 농촌을 버리는 판국에 다시 농민공동체라니. 특히나 우리사회에서는 국가나 자본에게 뭐 하나 받기는커녕 몸과 마음 다 내주기만 한 사람들이 열렬한 애국자요, 재벌들의 옹호자로 나선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나 한듯 스콧은 이런 모습이 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왜 우리는 국가처럼 보나?



《국가처럼 보기》는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등장한 근대국가는 사회 전체를 자신의 수중에 놓으려 했다. 구석구석 세밀하게 통제하기 위해 국가는 지도를 제작하고 언어와 도량형을 통일하며 소유권을 확립하고 공간을 집중시키고 다양한 세계를 표준화한다.


국가처럼 보는 사람들의 눈에 “가치 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농작물에 기생하는 벌레는 ‘해충’으로 낙인찍힌다. 또 가치 있는 나무는 ‘목재’가 되는 반면, 이와 경쟁하는 종은 ‘잡목’이 되거나 ‘덤불’ 쯤으로 여겨진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동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높은 가격이 매겨진 동물은 ‘사냥감’이나 ‘가축’이 되지만 그것과 경쟁하는, 혹은 그것들을 먹이로 삼는 동물은 ‘약탈자’나 ‘야생동물’ 쯤으로 간주된다.” 인간사회도 똑같이 나눠진다. 가치있는 인재와 쓸모없는 잉여인간로, 때로는 사회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로. 왜 그렇게 나눠져야 하는지, 그렇게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끊임없이 나눠지고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해야 한다.


스콧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진보적이라 믿는 “시민권, 공공 위생 프로그램, 사회 안전, 교통, 커뮤니케이션, 보편적인 공교육 그리고 법 앞의 평등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모두 국가 중심적, 하이 모더니즘적 단순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시각을 가지게 된 게 아니라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해진 지도와 세계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스콧은 이런 열망과 의식을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이라 부르는데, 이 “하이 모더니즘은 하나의 신념으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넓은 스펙트럼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하이 모더니즘은 사회 전체를 자신의 구상대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공통분모였고, 르 코르뷔지에의 대도시 구상, 레닌의 혁명당, 소련의 집단농장 등으로 구현되었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재개발과 재정착도 마찬가지이다. 스콧은 사람들을 새로운 공간에 재정착시키는 것이 “경관의 변화라는 차원을 훨씬 능가”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대부분을 생산해온 기술과 자원은 물론 비교적 자급적으로 살 수 있었던 독립적인 생활수단을 박탈한다. 이러한 기술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 없는 새로운 환경으로 사람들을 옮기는 것이다.” “농업의 근대화를 꾀하는 대부분의 국가 프로젝트 가운데 미처 잘 알려지지 않은 논리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농민의 자치권 그리고 중앙정부기관에 대한 농민 공동체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새로운 물리적 관행은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 부, 지위에 대한 기존의 분배방식을 변화시켰다.” 이런 계획들이 엘리트들의 하이 모더니즘 미학을 실현할 수는 있겠지만 민중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계획들은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파괴한다.


《농민의 도덕경제》에서 농민정치가 식민지를 거치며 국가정치로 점점 통합되는 과정을 비판했듯이, 《국가처럼 보기》에서도 스콧은 화전민이나 이동하며 경작하는 농민들이 넓게 퍼져 생활하는 비국가적 공간이 국가적 공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비판한다. 스콧은 농업이 산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또는 농민이 노동자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발전론을 따르지 않는다. 국가개발이 내세우는 사회복지 담론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콧은 그 과정이 언제나 “비국가적 자원들이던 과거의 공동체를 거의 항상 파괴하거나 분열시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근대국가의 확장을 비판하면서 스콧은 농민의 생활과 농업 속에 스며들어 있는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근대국가가 만들려는 유토피아는 다양한 삶을 표준화하고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이런 파괴에 맞서 지역적인 관행이 중요하다. 그러니 국가처럼 보지 말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우리 눈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인정하도록 노력하자고 스콧은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힘을 가진 자들의 하이 모더니즘을 견제할 민중들의 ‘강력한 시민사회’이다.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이 때의 민주주의란 토착적이고 경험적인 지혜를 뜻하는 “시민의 메티스가 조정이라는 방식으로 그 나라의 법과 정책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이다.


결국 중앙집중화되고 상품화된 삶에서 벗어나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다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농민공동체는 사라진 지혜들을 보존해온 보물창고로 등장한다.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다양한 기준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존해야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스콧의 가장 최근작인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은 삐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불린다. 그만큼 실감나지는 않더라도 역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의 역사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부제는 ‘동남아시아 고지대의 아나키스트 역사’이다. 스콧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버마, 중국에 걸쳐진 고지대의 주민들이 지난 2천년 동안 어떻게 국민국가의 지배를 피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아직 책을 다 읽진 못했지만 스콧은 그 기술을 산악지대에 흩어져 사는 것과 화전경작, 구전문화의 유지 등에서 찾는 듯하다. 스콧도 자신의 생각을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스콧처럼 보기



내가 스콧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국가‘를 배제한’ 또는 국가‘와 공존하는’ 정치공동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서이다. 스콧은 국가가 없는, 또는 국가라는 근대의 상상물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시기에 민중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근대국가의 등장이 그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에 관해 얘기한다. ‘국사’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관점들을 스콧은 잘 지적해 준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근본적인 지적들을 어떻게 소화시킬 것인가이다. 오랫동안 국가처럼 보는데 익숙해진 우리는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되짚어보는 방법을 이미 잊어버렸다. 그러니 우리 역시 추상적인 큰 담론으로 시작할 게 아니라 스콧처럼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발굴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현재모습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스콧의 물음들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되짚어본다면 어떤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요즘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나는 그 말에 호감을 느끼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혜와 달리 보호나 보장이라는 말은 어떤 주체가 다른 누군가를 대상으로 삼는 말, 특히 국가가 시민들을 대상화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국가라는 지배질서가 베푸는 시혜(사실은 내가 낸 세금!)에 매달려야 할까? 그 속에서 동등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을까? 조금 다르게 물으면 국가는 왜 나의 삶을 보호하고 보장하려 들까?


예를 들어, 국가가 도시빈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그런 보호와 보장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그들이 도시의 빈민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도시빈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도시를 선택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없어’ 도시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국가가 그런 밀어내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국가의 보호/보장을 받으며 계속 도시에서 불쌍한 사람들로 살아야 할까?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국가의 선의’에 의존해서 그들이 계속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도시빈민들이 도시에서 계속 빈민으로 살도록 보장하는 것이 과연 그들의 삶에 이로울까? 이런 근본적인 물음 없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선량한 오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런 논리는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자기 땅을 빼앗은 강도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래도 사는 게 어디냐라며 합의를 종용하는 야비한 변호사의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


비슷한 질문을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던질 수 있다. 왜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와야 했을까? 그들이 원해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우리가 ‘필요해서’ 그들을 불러들였고 ‘산업연수생제도’라는 야만적인 제도로 그들의 노동을 착취했다. 필요로 불러들인 사람들을 환대하기는커녕 착취하면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겠다고 한다. 뭔가 앞뒤가 바뀌어 있다. 우리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권리를 보장한다는 생각 역시 전적으로 ‘우리의 생각’일 뿐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생활을 보호하고 보장하고 있다.


요즘 들어 가장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남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이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남을 위해 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자신과 불쌍한 그들을 구분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대더라도 스콧의 표현을 빌면 그는 하이 모더니즘에 빠진 사람일 뿐이다. 그는 세상을 자기 눈에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은 그 세상의 장식품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들을 보호받아야 하는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는 관점, 내가 그들과 동일한 존재라고 선언할 수 있는 용기, 그들과 섞여 살아가는 구체적인 일상이다. 스콧은 그런 삶이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할 수 있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귀를 기울여볼만한 얘기들이다.



 

I. 들어가며


스콧의 『The Art of Not-being Governed』는 정치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그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국사(國史)를 배운 우리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고조선-삼국시대-고려-조선의 역사는 허구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연속된 국사’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국사책의 지도도 허구이다. 단일한 국가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판단도 가능하다. 홉스나 로크를 읽을 때 든 의문과 비슷하다. 누가 국가를 만드는데 동의했던가? 암묵적인 동의(tacit consent)가 실제 역사적인 개념이 아닌데도 왜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단일한 국가주권은 가능한가? 단일민족-단일국가가 근대가 만든 환상이라는 점은 여러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인데도 왜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 인정하지 않는가? 스콧의 관점을 정치적으로 응용한다면, 국가를 구성한다는 영토, 국민, 주권 모두가 근대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국가 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II. 2장 국가공간: 통치와 징발의 공간


스콧이 보기에 모든 공간이 국가공간일 수는 없다. 국가가 등장하려면 왕가가 주민과 땅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위치로 집중시켜야 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엘리트들은 농민들을 통해서만 먹고 살 수 있다. 국가공간의 등장에 단초를 제공한 것이 인도네시아벼(padi)이다. 벼는 적은 인구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했고, 이로써 국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곡식의 양을 최대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벼의 생산주기는 일정해서 국가는 수확량을 예측해서 세금을 걷을 수 있었다. 즉 벼는 국가의 가독성(legibility)을 높이고 징발될 수 있으며 수송하거나 저장하기에도 쉬웠다. 따라서 벼보다 더 이상적인 국가작물(ideal state crop)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대사회에서 국가형성을 막은 기본적인 장벽은 바로 거리였다. 식료품을 수송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육지보다는 해상수송이 더 수월했다. 육지의 국가는 보통 120km를 넘지 못했지만 해상수송은 거리의 제한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육지와 해상을 똑같이 1km로 표시한 근대의 표준지도는 매우 잘못되었다. 육지와 해상은 매우 다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유대관계를 가진다. 육지 내부도 마찬가지이다. 평지와 산, 늪, 습지, 숲은 구분되어야 하고, 국가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지역(state space)과 국가통제에 내심 저항하는 지역(nonstate space)이 구분되어야 한다. 근대의 표준지도는 지방의 관행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륙국가보다 해상국가가 곡식과 인력에 의존하지 않는 고도의 ‘국가성(stateness)’을 갖춘다. 좁은 해협과 같은 전략적인 위치의 해상국가는 핵심적인 무역상품에 대한 통제, 즉 세금, 통행세, 압수 등을 통해 자원을 확보했다. 허나 이런 이점이 절대적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해상국가는 기본적으로 육지의 농업국가보다 훨씬 적의 수의 주민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농업국가는 수의 힘으로 해상국가를 제압할 수 있었다(마치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농업국가인 스파르타와 시라쿠사가 해상국가인 아테네를 제압했듯이).


그런 점에서 벼 재배는 국가형성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벼 재배는 주기적으로 홍수가 범람하는 강가에서 잘 되었다. 벼를 재배하는 심장지대가 크고 이어진 곳에서 강대국이 등장했다. 반면 고지대의 농업지대에서는 소국가(statelets)가 등장했고, 이들의 연맹이나 연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벼를 재배하는 핵심지대가 존재하는 대규모 국가에서도 왕가의 통제권이 전체를 관장하지는 못했다. 습지나, 늪, 고지대는 왕실과 가까워도 정치적인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고 조공을 바쳐도 그건 예속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이런 공간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주거양식, 친족구조, 인종적인 자기동일성, 자급관행, 종교를 가졌다. 즉 이런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이중 주권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21세기 국민국가의 표준인 야심 없고 단일한 주권은 소수의 곡창지대의 핵심부 외에 드물었다. Beyond such zones, sovereignty was ambiguous, plural, shifting, and often void altogether. Cultural, linguistic, and ethnic affiliations were, likewise, ambiguous, plural, and shifting(61).



III. 3장 인력과 곡물의 집중: 노예와 물을 대는 논


인적자원을 중앙집중화시키는 것은 근대 이전 동남아시아 정치권력의 핵심요소였다. 이것이 치국(治國)의 첫 번째 원리이고 이 지역에서 식민지 이전 왕국의 모든 역사에서 mantra였다. 그리고 그런 국가공간을 만드는 것은 평평한 땅과 강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비옥한 땅, 통행할 수 있는 수로에서 멀지 않은 넓은 공간이 있는 곳에서 가장 쉬웠다.


허나 이런 공간들이 국가형성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물을 대는 논은 주민과 식료품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기에 가장 편리하고 대표적인 방식들을 가리키는 정치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쌀을 재배할 핵심지대가 없을 경우, 중앙집중화는 다른 수단들로, 예를 들어 노예화나 무역로에 대한 통행세, 약탈 등으로 이루어졌다.


비교적 땅이 풍부했던 동남아시아의 주민들은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수확을 확보할 수 있고 가족에게 유리한 이동경작을 선호했다. 그래서 인구는 분산되었다. 반면에 물을 대는 논은 인구를 밀집시켰고 상당한 양의 잉여를 보장하는 강력한 심장지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논이 있는 땅으로 이주했을 것 같지만 이것은 이론적인 얘기이고 전쟁, 전염병, 수확량의 변동, 기근, 미친 군조, 내전 등은 주민들을 동요시켰다. 국가가 없었던 사람들의 평화롭고 점진적인 군집이라는 왕가의 기록은 허구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주장은 전쟁과 노예제, 억압이 국가를 만들고 유지함에 있어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The accumulation of population by war and slave-raiding is often seen as the origin of the social hierarchy and centralization typical of the earliest states(67). 많은 왕가의 칙령들은 주민들을 강제로 정착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


그래서 보통 땅보다 인간을 놓고 전쟁을 벌였고, 그래서 전쟁은 피비린내나지 않았다. 이런 논리는 원거리 무역보다 핵심적인 농업생산에 더 많이 의존했던 내륙의 농업국가에서 가장 강력했다. 땅보다 인간이 중요했고, 이는 단지 곡식의 수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전투에서의 승리도 생존한 포로들의 수로 판정되었다(투키디데스의 말처럼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이데올로기나 인종이 아니라 공물을 놓고 싸웠고 에게해의 가장 중요한 무역상품은 노예였다).


근대 이전의 동남아시아 내륙지방의 지배자들은 GDP보다 ‘국가가 접근할 수 있는 생산(state-accessible product, SAP)’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The state-accessible product had to be easy to identify, monitor, and enumerate (in short, assessable), as well as being close enough geographically(73). 경작자에게는 이것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지만 국가에는 많은 보상을 주었다. 동남아시아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벼-국가(paddy-state)’였다. The superior productivity of wet rice per unit of land permits enormous population densities, and the relative permanence and reliability of padi rice, so long as the irrigation system is functioning well, helps ensure that the population itself will remain in place(74).


주요한 단일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가독성과 징발을 위해 필요했다. 단일작물은 동일한 생산리듬을 가지고 토지가치도 하나의 기준에 따라 정해질 수 있으며, 이런 농업환경은 가족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사회적, 문화적 동질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국가처럼 보기』에서처럼 스콧은 가독성을 강요하는 정책이 국가형성의 지름길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구를 분산시키고 혼합파종을 권하며 새로운 땅을 주기적으로 개간하는 이동농업과 화전농업은 국가형성의 적이었고(스콧은 화전농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도 근대시기에 만들어진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국가공간 외부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최소화시키려 노력했다.


허나 이런 국가의 성격이 문화적 동질성을 강요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것은 크리올 중심(The Creole Center)을 형성했다. 즉 these padi states were ethnically plural, economically open, and culturally assimilationist(82). 특히 다른 지역의 관리와 작가, 왕족을 포로로 잡은 경우 새로운 혼종 왕실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적 자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쉬운 동화와 빠른 이동을 선호했고 매우 유동적이고 침투할 수 있는 인종적 경계를 만들었다. 남부 버마의 두 개 언어를 쓰는 지역에서 인종적 정체성은 혈통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옷이나 머리 스타일, 주거형태, 인종적 정체성도 변화했다. 어느 곳에서나 인적 자원이라는 절대명령은 차별과 배제를 거부했다. 왕국이 잃은 것보다 더 많은 주민들을 끌어들일 때 그 왕국은 부득이하게 점점 더 세계주의적이 되었다. 흡수된 사람들의 다양성이 커질수록 본국의 문화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였고, 사실상 그런 문화적 혼종성이 성공의 조건이었다.


그래도 국가공간의 주요한 주민들은 노예로 확보되었고, 모든 국가들, 특히 해양 국가는 노예에 기반한 국가이다. 노예는 식민지 이전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환금작물(cash crop)’이었다고 말해도 옳다.


그래서 포로를 노예로 삼는 것 외에 다른 많은 방식들이 정치체제에서 등장했다. 부채노예(debt bondage)가 일반적이었고, 아이들은 팔렸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문화적으로 다른 구릉지대(hill) 주민들이었고 전리품으로 노예사냥이 인정되었다(그래서 구릉지대의 사람들은 유괴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노예무역의 규모와 영향은 상상을 초월했다. 분지(valley)의 주민들은 전쟁포로와 범죄자들의 재정착과 더불어 상업적인 노예사냥을 통해 늘어났다. 버마와 타이 모두 ‘노예국가(slaving states)’로 불러도 옳다. 노예사냥은 관리와 군인들의 전략적인 투자, 연합무역사업(joint trading venture)에 가까웠고, 약탈자들은 포로들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곡물과 주거지를 파괴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포로들은 대부분 왕가의 재산이 아니라 개인적인 재산이자 신분의 기호로 인정되었다.

허나 사람을 끌어 모으려는 벼-국가의 계획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위험하고 불안정한 기획이었다. 첫째, 재정적 가독성 때문이다. 주민등록과 비옥한 땅의 측량지도가 가독성의 핵심적인 행정도구인데, 이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왕실은 인적 자원과 곡식을 놓고 관리와 귀족, 성직자들과 경쟁해야 했다. 내부와 경쟁하지 않고 외부에서 사냥할 경우 소규모 노예사냥은 위험이 적은 반면 확보할 인력의 비율이 낮았고 대규모 전쟁은 수천명의 포로를 확보할 수 있지만 질 경우 왕가의 파멸을 불러왔다.


둘째, 자멸로서 국가공간(state space as self-liquidating)의 성격이다. 자신의 주변으로 많은 주민들을 포획해서 집중시킬수록, 주민들은 멀리 달아나려 한다. The heartland or core region of the padi state is the most legible and accessible concentration of grain and manpower.…the greater the pressure exerted on it, the more likely it would simply flee out of range or, in some cases, rebel(95).



IV. 나오며


스콧의 설명을 한국역사에 적용하면 몇 가지 흥미로운 설명이 가능하다. 가령, 민심이 곧 천심이다라는 유교적인 명제 역시 인적 자원을 통제하려는 왕가의 노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민심, 즉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권력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또한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가 부랑자를 단속하고 강제로 수리조합을 만들어 관개농을 확대시킨 것 역시 한국의 국가형성에 특징적인 지점이 될 수 있다. 농업의 확산과 근대국가의 형성이라는 관점은 뻔한 관점과 결론을 반복하는 한국정치를 흥미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요즘 서평 청탁이 자주 들어온다.
이번달에만 세꼭지가 들어왔다.
다른 원고보다 서평청탁은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인데, 원고 쓸 겸 책도 꼼꼼하게 읽고 책도 받고...^^

하지만 서평이 쉬운 글은 아니다.
나는 그런 부담감을 별로 가지지 않는 편이지만 저자와의 깊은 대화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을 담담하게 정리하는 편이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생각이나 느낌 같은 것을...

이번달에 서평 때문에 읽은 책, 읽고 있는 책은 다음과 같다.

[국가처럼 보기]는 강추하는 책이다. [농민의 도덕경제]보다 재미있다.
[반자본 발전사전] 역시 참 좋은 책이다. 번역이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일찍 번역되었어도 요즘 사회 분위기상 많이 팔릴 책은 아니다.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는 좀 더 읽어봐야 겠다.
[정치의 발견]은 명쾌하지만 불편한 책이다. 아, 최스쿨(최장집 교수와 그 제자들)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뭐 이런 우울함이 든다는...

서평 외에 느티나무도서관 장서개발강좌나 개인적인 관심사로 요즘 읽은, 읽고 있는 책은 다음과 같다.
[가난뱅이 난장쇼]는 [가난뱅이의 역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책이다. 하지메는 아직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참 크고 장한 일인데... 조만간 서평을 한번 써볼 생각이다. 가급적 다른 책과 묶어 쓰고 싶은데,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 중...
[민주적 공공성]은 강추하고픈 책이다. 역시 아렌트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도, 왠지 조금 더 보강을 하면 좋겠다는 욕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다시 구성하면 좋겠다는 책.

[식민지 공공성]은 흥미로운 책이다. 여러 명이 같이 쓴 책이라 들쑥날쑥한 면도 있지만 식민지 사회를 조금 더 내밀하게 볼 기회를 제공한다.
[도서관학 5법칙]은 약간 문화적 충격이다. 이 책을 쓴 랑가나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확 생길 수밖에 없는... 어떻게 그 시대, 인도에서 이런 생각을... 어쩌면 이 역시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의 뭔가 전 세계를 관통했던 기운일지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도 강추하고픈 책이다. 아, 통찰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관찰자의 눈높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는 책이다.

솔랑이는 무럭무럭 큰다.
이제 10kg에 육박하는 아이를 등에 업고 가끔 책을 읽고 원고를 쓴다.
육아를 통한 통찰력은 아직 잘 생기지 않는다.
책에 너무 익숙해서일까...
프레시안의 서평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아직 프레시안에 올라오진 않았는데, 연휴 때문인지 아니면 글에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쓴 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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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아직 개발이 덜 됐어.” 그리고 얼마 전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보육은 이미 사실 무상 보육에 가까이 왔다”는 충격적인 발언에 이어 무상급식과 관련해 “대기업 그룹의 손자, 손녀는 자기 돈 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손자 손녀는 용돈 줘도 10만원, 20만원 줄 텐데 5만원 내고 식비 공짜로 해준다면 오히려 그들이 화가 날 것”이라 말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도 화가 났다. 한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다. 그들은 이 세계에 어떤 생명/사람이 사는지를 모른다.


딱딱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었다면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을 느끼고, 그럴 때마다 그가 지닌 강한 힘을 의식하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의심하게 된다. 내게는 참으로 불편한 ‘복불복의 공정사회’가 그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가장 춥고 눈이 많이 온다는 이 겨울에 어떤 이는 얄팍한 비닐천막에 의지해 농성장을 지키고 어떤 이는 35미터 높이의 고공크레인에 올라 있지만, 힘을 가진 사람들의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치열한 몸부림이 힘 있는 자들의 눈에는 돌파해야 할 장애물이나 발전에 뒤따르는 부수적인 피해로 비친다. 그래서 힘 있는 자들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철거와 벌금으로 맞선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왜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까? 왜 우리와 비슷하게 보이던 사람도 힘을 가지는 순간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할까?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는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스콧의 얘기를 정리하면, 그들의 눈은 숲이 아니라 팔 수 있는 나무만 보도록 맞춰져 있다. 그들의 눈에 “가치 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농작물에 기생하는 벌레는 ‘해충’으로 낙인찍힌다. 또한 가치있는 나무는 ‘목재’가 되는 반면, 이와 경쟁하는 종은 ‘잡목’이 되거나 ‘덤불’쯤으로 여겨진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동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높은 가격이 매겨진 동물은 ‘사냥감’이나 ‘가축’이 되지만 그것과 경쟁하는, 혹은 그것들을 먹이로 삼는 동물은 ‘약탈자’나 ‘야생동물’쯤으로 간주된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진보적으로 믿는 “시민권, 공공위생 프로그램, 사회안전, 교통, 커뮤니케이션, 보편적인 공교육 그리고 법 앞의 평등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모두 국가중심적, 하이 모더니즘적 단순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시각을 가지게 된 게 아니라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해진 지도와 세계를 ‘만들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아직도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피부로 서서히 느껴지는 지구세계의 파멸이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감추기 위해 힘을 가진 자들은 ‘복원’과 ‘살리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스콧은 그런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가상적’ 생태를 만들기 위한 ‘삼림 복원’이 시도되어 뒤섞인 결과를 드러냈지만, 숲을 지탱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을 여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조건인데, 획일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다양성은 여전히 어려운 선택이다.


그렇다면 눈앞으로 다가온 파멸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스콧은 국가처럼 보지 않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우리 눈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인정하도록 노력하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힘을 가진 자들의 ‘하이 모더니즘’을 견제할 강한 시민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스콧은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그 민주주의란 토착적이고 경험적인 지혜를 뜻하는 “시민의 메티스가 조정이라는 방식으로 그 나라의 법과 정책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조금 식상할 수 있지만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되듯이 우리가 기댈 곳은 역시 민주주의 뿐이다.


‘또 다른 경제가 가능하다’가 아니라 ‘또 다른 경제가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던 스콧의 『농민의 도덕경제』처럼, 『국가처럼 보기』는 ‘또 다른 삶의 질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렇다고 스콧이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세계를 통제해서 생산을 확대하고 사회질서를 합리적으로 바로 잡으며 이 세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욕망이, 스콧의 표현을 빌면 “행정적 질서화에 대한 열망”이 ‘아방가르드’나 ‘전위’,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온 바이다.


그럼에도 스콧의 얘기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보는 법(seeing)’으로 설명하고, 국가가 파괴하고 무시해온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단지 바라보는 사고틀(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하이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이 다양성을 파괴하고 지역적 지식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사람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개인의 자율적인 역량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다시금 과거의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목소리를, 농민과 “전통적인 사람들”, TV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열정적인 책이 한국에서 차갑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한 언론사들의 서평을 보면 그들의 ‘책을 보는 법’이 드러난다. 《조선일보》의 서평은 이 책을 두 번이나 다루지만 소련의 집단농장 실험에 대한 비판, 외국의 국가공공사업에 대한 비판으로 다룰 뿐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 반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서평은 박정희와 4대강사업을 비판하지만 정작 스콧에 강조했던 농민과 공동체, 전통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이념의 틀을 뛰어넘어 삶과 그 터전을 지키려는 열정이 우리 사회에서는 기존의 앎을 확인하거나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 넘어가면 안타까움이 궁금증으로 바뀐다. 책을 번역한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전상인 교수는 소위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여기서 이념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왕 시작된 4대강 사업이 100년 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르는 성과를 낳겠다는 꿈과 각오를 함께 다지면서 말이다. 문제는 시간도 아니고 예산도 아니다. 정답은 정성이다.”  “지역주민 대부분이 원하는 데다가 사법부도 적법하다고 판단한 4대강 사업, 그리고 당사자인 자동차업계가 환영한다는 한·미 FTA를 민주당이 '절대 반대'로 임하는 자세는 공당(公黨)의 몫이 아니다”라고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는 분이 스콧의 책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좀 생뚱맞다. 이런 관점이 바로 스콧이 비판하는 관점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 책을 번역했을까? 자신이 동의하지 않지만 중요한 얘기니 알려야 한다는 지식인의 사명이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려면 책의 본문과 각주 뒤의 ‘옮긴이의 글’을 읽어봐야 한다.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 뒤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박사과정에 속한 김동완(현재는 박사다), 김민희, 김성연, 김예성, 여희경, 장지인, 정유진, 최민정은 이 책의 번역 과정에 참여했다.” “생애 최초의 번역 작업이 정말로 지긋지긋하고 힘들었”을 수 있지만 많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했다면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듯싶다. 『우리 시대 지식인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권력과 지식의 유착을 비판하며 지식인이 연구라는 자신의 본령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 분이, 사회 정의나 이념과 무관한 진리 추구를 부르짖는 분이 학생들과 함께 번역한 책에 자기 이름만 덜컥 올린 점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렇게 국가처럼 보는 분이 이로써 공직을 맡기 어려운 근거 하나를 만들었다는 점, 메마른 현실에 단비가 될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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