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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4 노무현과 깊이에의 강요
posted by 몽똘 2009.05.24 11:08

오전에 글을 발표할 자리가 있어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노무현이 자살했대요'라고 말하는 다른 분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농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말을 하는 분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며 이게 현실이구나 실감했다.
먼저, 그토록 싫어했지만 목숨을 버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내세에서 그가 행복한 삶을 누리길 빌고 많은 존경을 받았으면 한다.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도 화제는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황석영이 최근 이명박을 따라다니며 벌인 코미디는 화제에 오르지도 못했다.
대중이 부여한 명예를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양 권력에 빌붙어 팔아넘긴 행태는 어떠한 비난을 받아도 그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은 한국 현대사만큼 파란만장했고 그가 남긴 성공과 저지른 오류 모두가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평가가 현실권력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차단했고, 그의 유서처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그의 결단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수를 던짐으로써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정치가'임을 증명한 셈이다.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한국 현대 정치인의 반열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는 어설프게 박정희 흉내나 내는 이명박이라는 사람보다 자신이 훨씬 탁월한 정치인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남긴 유서 역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무게를 남겼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구라'를 남발하고 있을 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은 자기 그릇을 보여줄만한 '명작'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에 좌절하여 자살하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보며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깊이를 채우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결국 삶을 마감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기대를 걸었고, 또 그런 만큼 그가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많은 실망을 했다.
사실 나는 그가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즐거웠다. 한국에서 선거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허나 그것 뿐이었다.
그가 당선되어 한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리라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라 대통령이었으니까.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이 사회를 바꾸리라는 기대를 나는 버린지 오래되었으니까.

아마 당분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한 인물에 관해 얘기를 나눌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안타까움이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부안 방폐장, 대추리, 파병, 한미FTA같은 사건들은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사실에도 그를 찬양할 수 없게 한다(그 모든 사건들이 한 개인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깊이에의 강요'에서 화가가 자살하자 깊이를 강요했던 그 평론가는 이런 글을 남겼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 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런 비평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고통과 충격에 시달릴 유족들에게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수많은 시민들에게도 평안함이 다시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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