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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30 정서,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posted by 몽똘 2009.01.30 14:25


[라디오스타]를 보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보그]를 다니는 친구가 이준익 감독을 인터뷰하고 난 뒤 그가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전해줬다. [왕의 남자]를 보고 그다지 탐탁치 않았지만 그의 사상을 한번 더 훑어보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각이라는 친구가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보다 훨씬 좋은 영화, 이준익 감독의 포스가 느껴지는 영화라고.

 

두번째 추천은 맞는 말 같다. [왕의 남자]보다 [라디오스타]는 분명히 더 좋은 영화이다. 그러나 첫번째 추천은 조금 실망이다. 그의 영화가 아나키즘을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중앙권력에 대한, 권력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비현실적이다(물론 영화가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지만 내가 말한 부분은 다른 차원이다).

 

몰락한 가수왕이 강원도 영월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한 축의 이야기와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힘을 주는 한결같은 매니저의 우정, 그리고 양념처럼 들어가는 영월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 사실 이 스토리 라인만 봐도 지극히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영화가 가진 상식이다.

 

영화는 시골사람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사람 냄새나고 풋풋하고. 물론 서울보다 지방의 인심이 더 낫다는 건 사실이다. 허나 가수왕과 그 매니저보다 더 사람냄새나지 않는 인물들이 그 주변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나마 인간의 냄새를 풍기던 영월 지국장마저 후반부로 갈수록 비인간으로 변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비현실적인 영화.

 

그리고 그 영화에서는 지역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사람들을 영락없는 그곳의 주민들로 만들어버린다. 서울과 지역의 괴리감과 현실감이 영화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스타]보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 훨씬 더 현실적인 영화이고 사람냄새 나는 인간적인 영화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라디오스타]가 완전히 무의미한 영화는 아니다.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소리의 자본주의]라는 책을 떠올렸다.

 

20세기에 라디오는 파시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나치는 독일에 국민형 라디오를 보급하고 라디오를 중요한 정치동원의 도구로 삼았다. 심지어 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런 라디오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책이 바로 [소리의 자본주의]이다.

 


요시미 슌야. 송태욱 옮김. [소리의 자본주의](이매진, 2005)

 

슌야는 라디오의 파시즘적인 속성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슌야는 정보기술이라는 도구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분절을 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즉 소리를 부르주아적인 기호로 유통시키고 소비하려는 '소리의 자본주의' 전략이 있지만 그런 전략에 대항하는 전략도 바로 그 동일한 매체를 통해 발전한다는 얘기이다.

 

특히 슌야는 라디오 이전에 정보전달기능을 했던 전화를 사회학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유선전화를 방송설비와 결합시킨, 즉 각 가정에 스피커를 놓고 이를 전선으로 연결해 중계할 수 있는 유선방송전화의 기능에 주목한다.

 

"유선방송 전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사회 내부의 방송과 전화 네트워크다. 특히 초기에는 통화할 수 있는 범위가 커뮤니티 내부로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네트워크는 지역 내의 모든 지점을 순식간에, 게다가 가로지르면서 연결해감으로써 당시 농촌에서 운영되고 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유선방송 전화는 적어도 발전 초기에는 촌 안의 젊은이들이 중심에 서고, 젊은이들 중 전기 매니아가 하드웨어 측면을 리드하며, 지역의 전기점이 설비를 담당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 그대로 촌락 공동체의 풀뿌리 운동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탄생 뒤 유선방송의 변화는 이런 촌락 공동체의 유대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됐다."

 

[라디오스타]에도 나오지만 일방적인 송출 기능을 중단하고 쌍방향 소통기능을 담당하면서 라디오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된다. 그야말로 라디오방송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된다. 외상값을 청구하고, 일자리를 찾고, 고스톱 방법을 묻는. 그야말로 생활의 이슈들을 공론화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라디오가 가진 또다른 중간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이다.

 

그리고 라디오는 이성적인 매체라기보다 정서적인 매체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처럼 종합적인 이미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소리를 통한 청각적인 이미지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파시즘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힘 때문이다). 라디오가 뿜어내는 정서적인 연대는 지역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국방송이 되고 난 뒤에도 그런 기능을 담당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전국방송은 '소리의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영월에서 전국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비현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역시 [라디오스타]는 순진한 영화이다.

그러나 중간네트워크로서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진 희망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마포FM]을 비롯해 관악구, 광주 등지에서 소출력 시민라디오가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슌야의 얘기로 마무리를 해보자.

 

"이 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19세기 이후 복제기술의 발전 과정에는, 오늘날에는 자명해진 방송이나 통신으로 대표되는, 모두 거리를 없애면서 국토나 지구를 뒤덮어가는 미디어로 일원화되는 움직임만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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