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앙집중화된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인식은 시대가 정한 에피스테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중앙화된 것에 저항하는 지역화되고 경험적인 지식, 메티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방에 있는 출판사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대구에서 '한티재'라는 출판사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마도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과 무관하지 않을 출판사 이름이다.
[녹색평론]을 편집하던 팀이 대구에 남아 출판사를 꾸렸다.
대구에 가면 꼭 한번 들리고 싶은 '물레책방'과 더불어 지방에서 새싹을 틔우고 있다.
[근대의 아틀리에: 대구 근대미술 산책], [인문학을 만나다: 대구경북지역의 자생적 인문학 커뮤니티를 찾아서], [우리 시대의 몸/삶/죽음]에 이어 [비아캄페시나]를 출간했다.

예전에 변홍철 선생님이 서울에 왔을 때 잠깐 만나기도 했는데...
예상대로, 기대만큼 좋은 책을 출간하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비아캄페시나]는 무척 중요한 책이다.
"비아캄페시나는 부정의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산과 무역의 모델을 바꾸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소작농과 농민들은 남북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재정적, 사회적, 문화적 위기로 고통 받는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건 우리는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농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에 노력해야 한다. 소작농과 소농인 우리에게 패배는 없다. 우리는 강력하고 단호하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다수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들과 인류를 위해 안전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생명과 문화 양자 모두의 다양성을 소중히 여긴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 2000년 10월 3일 비아캄페시나의 '방갈로르 선언'"
이 선언에 비아캄페시나의 정체가 드러난다.
'한티재'이기에 이 책을 다룰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게 수도권으로 집중된 우리 사회에서, 지방의 출판사들이 하나씩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한티재'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우리 사회의 메티스를 지켰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원고를 청탁받은 부산의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그런 메티스의 보고이다.
왠만하면 지방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원고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프레시안'에서 서평을 청탁받은 [작은 것들의 정치]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원제는 The politics of Small Things: The power of the powerless in dark times 이다.
번역된 제목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과 관련이 있을까?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만 해야 할텐데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겠다.
번역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 기대도 크다.


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3과목을 진행하고 있다.
나의 대학생활 멘토는 현미선생이다.
낮은산출판사의 정우진씨가 보내준 만화책, 읽는 순간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선생이구나...
입과 말이 아니라 몸과 먹거리로 묵묵히 자신의 뜻을 알려주는...
찾아서 읽게 되는 만화책이다.
현미선생의 삶 역시 메티스의 체현이다.

나는 메티스를 품은 지식인으로 살고 있는가?
반성하게 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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