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은 용산참사 100일째를 맞이하는 날이었다. 상황이 어떠했건 5명의 주민과 1명의 경찰이 무리한 진압계획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사업비만 28조원에 달하는 큰 사업에, 역세권 개발을 통해 수조원의 개발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대기업의 욕심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욕심에 빌붙은 용역회사와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정부의 욕심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욕심이 대화를 가로막은 상황에서 용산참사는 한국사회의 다른 개발사업들이 그렇듯이 ‘예고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건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잠깐 들른 용산참사의 현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참사가 일어난 건물에는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경계를 섰고, 뒷건물인 촛불미디어센터 레아에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용산 유가족과 범대위 대표단은 사건현장에서 노숙농성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어떤 해결방안이나 소통의 지점 없이 농성은 22일을 넘기고 있고, 순천향병원에는 희생자들의 시신이 계속 안치되어 있다.


물론 그동안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용산 범대위의 김태연 상황실장이 구속되었고, 박래군 공동대책위원장은 사전구속영장을 받았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군포연쇄살인사건을 활용해 용산사건을 무마하라는 이메일을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냈다. 용산제 4구역 재개발조합은 유가족과 전철연이 불법점거, 철거방해를 하고 있다며 8억 7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민참여재판은 무산되었고, 변호인단은 검찰이 수사기록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자 재판에 불참했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정부라면 이런 극단적인 대립을 해소할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야 옳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가져온 원인인 일방적인 재개발정책을, 거주민에게 불리한 개발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옳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전혀 다른 쪽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용산참사를 불러온 제4구역만이 아니라 제 2, 3구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재개발정책이 강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 세입자나 거주민들이 참여할 방법이나 재개발조합을 민주화시킬 방법, 폭력적인 철거를 막을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집이 생활의 터전보다 재테크의 공간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용산참사는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상태라면 용산참사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이다. 그런 점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지은 조세희 작가는 “곤봉이나 군대의 총만이 폭력은 아니다. 아이가 배고파서 울 때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지 않고 놔두는 것도 폭력이다.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그냥 지나간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용산참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관련된 사람들을 힘으로 몰아붙여 사건을 덮으려 하고 있다. 이미 철거가 진행된 폐허의 자리에 번지르르한 건물이 들어서면 시민들이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버릴 것이라 정부는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과거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남을 짓밟아 성공한 사람, 멀쩡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들이 두 다리 쭉 펴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런 사람들이 성공의 모델로 보이지만, 그런 사회에서는 힘과 돈을 가진 사람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맘 편히 살 수 없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이 편해지고 이 사회가 제 갈 길을 찾으려면 용산참사라는 사건을 넘어서야 한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이 편히 쉬고, 병원에 갇힌 사람들이 편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세상, 돈을 내세운 개발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우리는 용산참사라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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