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상무와 감정노동의 현실

 

얼마 전 포스코의 한 상무가 비행 중에 스튜어디스를 모욕하고 “밥이 설익었다”, “라면이 짜다”, “라면이 익지 않았다”며 폭행하는 일이 발생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면서 감정노동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비행기만이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같은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식당과 술집같은 외식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콜센터나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들, “매우 만족했다”는 고객의 평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매우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노동과정의 스트레스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정신질환 자살자나 산재신청 횟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나라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방향’ 토론에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감정노동이 감정적 부조화(자아의 이중화), 낮은 직무만족(높은 직무 스트레스), 정신적 고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음주, 흡연, 약물, 도박 중독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사례조사 결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절반 정도가 가벼운 우울증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의 의지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 누구의 감정이 더 힘드나?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객실 승무원은 감정노동을 가장 많이 하는 직업으로 분류된다. 앨리 러셀 혹실드는 항공 승무원의 노동을 분석한 《감정노동》(이매진, 2009년)에서 “감정을 상품으로 바꾸거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도구로 바꾸는 데 자본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는 감정 관리를 사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감정관리를 좀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면서” “감정노동을 경쟁과 연결 짓고, 실제적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광고하고, 그런 미소를 만들도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노동자들이 미소를 만드는지 감독하고, 이런 활동과 기업의 이익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혹실드는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 관리를 더 많이 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고, 감정노동이 남녀의 성역할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여성에게 어머니 노릇을 요구하고, 이 사실은 묵묵히 직무 내용의 많은 부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감정노동은 주로 여성, 나이로 보면 30대 이하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판매․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수가 약 314만 명인데, 서비스 종사자의 약 66%, 판매 종사자의 약 50%가 여성이다. 특히 전화로 고객을 상담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100만 명의 상담원 중 약 89만명이 여성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하고, 2012년에는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수첩’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인권수첩’은 여성감정노동에 대한 정보와 감정노동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꿀 방법, 감정노동자가 보장받는 권리의 내용 등을 담고 있다(인권수첩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생협매장과 감정노동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감정노동이 없을까? 매장의 매니저나 활동가는 무조건 친절하고 웃어야 한다고 강요받지 않을까? 조합원들은 매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같은 조합원으로서 동등하게 대하고 있나? 생협의 매장이 무조건 친절해야 할까? 외려 조합원들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매장활동가들에게 감정노동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정신에 따른다면, 조합에 감정은 넘쳐 흘러야 하지만 그것이 노동으로 강요되면 안 된다. 그리고 물품의 유통에서 공급보다 매장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데, 매장에서의 관계와 역할, 활동에 관한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서의 임상혁 소장은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를 하라는 회사의 매뉴얼 말고 고객이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와 수용의 기준, 지속적으로 웃지 않을 권리, 고객과 마찰이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는 지침 등을 담은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협에서도 이런 매뉴얼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