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이 지정한 ‘협동조합의 해’라서인지 전국이 들썩인다. 해외의 협동조합들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기사들이 TV나 신문에 자주 실리고, 협동조합과 관련된 행사나 강좌들이 많은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는 협동조합 난장 한마당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협동조합도시 서울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덩달아 나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협동조합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왜냐하면 축제의 뒤편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협동조합을 뒤흔들고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세종대학교이다. 지금 세종대 대학생협은 7월 20일까지 매장을 정리하라는 법원의 계고장을 받은 상태이다. 지난 2월 칼럼에도 썼지만 2009년부터 세종대학측은 학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며 대학생협을 몰아내려 했고, 학생들의 반대로 이런 시도가 무산되자 법정으로 사안을 끌고 갔다. 그리고 법조문과 원칙을 따르는 법정은 1심과 2심 모두 대양학원이 ‘갑’이니 어쩔 수 없다며 대학생협에게 운영권을 포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으로 사안이 올라갔지만 지난 7월 30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생협이 관리하는 자판기를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발송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비운 방학을 틈타 생협을 몰아내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로써 대학생협의 모범으로 불렸던 세종대생협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될 위기에 처했고 학생들의 복지도 마찬가지이다.

학내 매장의 운영권을 둘러싼 싸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매장의 문제가 아니다. 세종대 생협은 학내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금이 과거 사학비리로 쫓겨났던 사람들이 학교로 복귀하는 시기이자 그런 사립대학들이 학교발전을 내세우며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대에서는 대학생 조합원들이 모여 강제집행에 맞설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학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생협을 뒤흔들고 있다. 사무장이 의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유사의료생협들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부자들만 건강해지는 건강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실제 의료생협의 수보다 엄청나게 많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유사의료생협을 막겠다며 의료생협을 세우는 요건을 강화시키고 있다.

애초에 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사의료생협은 제아무리 조합원 수와 출자금을 늘려도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합원이야 가짜로 만들면 되고 돈은 빌리면 된다. 반면에 원래의 의료생협은 협동조합의 원칙상 그런 과정을 밟을 수가 없다. 자발적인 참여로 조직되는 협동조합이 그런 꼼수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협동조합의 취지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대책이라며 내놓은 설립요건 강화는 유사의료생협을 잡기는커녕 자발적으로 의료생협을 만들려는 노력을 가로막을 것이다. 원조 족발처럼 원조 의료생협이라는 말을 써야 할 지경이다.

이런 실정인데도 정부는 사회적 기업이 처음 만들어질 때 그랬던 것처럼 협동조합을 몇 개 만들었는가에만 신경을 쓸 것이다. 자기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몇 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시대이니 정부는 이런 사소한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협동조합을 키웠다 잡아먹었다, 기득권층의 손아귀가 시민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진정 협동조합의 해를 반기고 누리고 싶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바로 세종대이고 의료생협들이다. 협동조합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지키지 않으면서 협동조합을 지지한다,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고 떠들지 말자. 한 곳에서의 승리와 기쁨이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 있도록 지금 이 곳을 지키자. 이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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