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앙대에서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기업도 아닌 대학에서 무슨 구조조정일까? 2010년 3월, 중앙대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기업이 적자를 빌미삼아 노동자들을 해고하듯이 인기 있는 학과들만 남겨두고 돈 안 되는 학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는 속셈이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니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중앙대의 예가 이런 구조조정을 알리는 신호라는 점이다.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다. 한국의 다른 대학들이 중앙대 사례를 내세우며 비슷한 형태의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은 뻔한 일이다. 중앙대 학생들이 교내 공사장과 한강대교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대학이 구조조정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얼마 전 고려대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이 있자 잔잔한 파문이 일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조용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학생들이 이런 현실을 모를 리는 없다. 문제는 대학생들의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대학생들의 몸은 자본과 권력에 너무 익숙하다. 학과수업만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 모두가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은 이미 진부해졌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외식사업부들이 대학공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다. 학교 주변 밥값이나 월세, 전세도 물가와 재개발의 영향을 받아 계속 오르고 기숙사 생활비마저도 민간기업이 위탁운영하면서 점점 오르고 있다. 세콤을 비롯한 보안회사, 용역회사들이 관리하는 대학캠퍼스에는 고민을 털어놓을 선배도, 우정을 나눌 관계도 없다.


더 이상 대학은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아니다. 매캐한 최루탄가스 사이로 담배를 나누는 손길은 고사하고 수업노트를 복사해서 나누는 광경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생들은 명품이나 엣지있는 패션 아이템에 많은 관심을 쏟지만 학생식당이나 생활공간을 누가 관리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가격을 치른 만큼 서비스를 받고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며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경쟁의 규칙이 몸에 익어 있다. 몇 달 전 미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목록에서 대상을 삭제하는 ‘친구삭제(unfriend)’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는데, 미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모든 청년이 대학생일 필요는 없지만 대학생이 청년 인구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몰락을 모른 척 해야 할까?



소비의 중심에서 협동을 외치다!


1997년 대학가 소비의 상징처럼 얘기되는 이화여대에서 조그만 사건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와 그 앞의 거리는 대학가 소비문화를 대표해 왔지만 이화여대에서도 그런 문화를 거부하는 조용한 사건이 벌어졌다.


1996년 이화여대는 학생관을 헐고 신학생문화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당시 학생관 매점을 운영하던 대학생활협동조합(대학생협) 대신에 외부의 사업자에게 매장운영권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대학당국은 생협이 수익금으로 학생운동을 지원한다고 보면서 생협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자 이화여대 생협은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화여대생들에게 서명운동을 받고 노조와 연대하면서 학교의 방침에 저항했다. 그리고 1997년 10월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임시총회를 열었다. 당시 학생운동의 쇠퇴와 IMF로 학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3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임시총회에 참석했고, 이에 기가 눌린 학교는 결국 외주위탁 방침을 철회했다. 어려운 싸움을 거치면서 이화여대 생협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직원, 직원들도 참여하는 생협으로 발전했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대학생협이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과정은 학생운동과 무관하지 않았지만 생협의 특성상 그 활동은 운동보다 생활에 가깝다. 학생운동에는 그 이념과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다가서기 어렵지만 생협은 그렇지 않았다. 생협의 조합원 가입 동기를 보면, ‘매장 언니들이 친절해서’,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가장 필요한 하숙정보를 알려준 곳’이어서, ‘다른 매장보다 싸서’같은 생활상의 이유가 많았다.


생활의 필요 때문에 생협에 가입하지만 조합장과 임원을 선출하고 자발적으로 활동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조합원은 ‘성장’을 경험한다. 조합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도록 하면서 대학생협은 공동구매만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삶의 변화를 유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 상업문화를 배제하는 올바른 대학문화가 논의되었다. 1991년 태평양 노조가 싸울 때에는 매장에서 태평양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고 불매운동을 벌였고 97년 12월부터는 외제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밀살리기운동이 활발하던 때에는 우리밀 이화여대 지부가 만들어져 활동하기도 했고, 책벼룩시장을 통해 대학생들은 스스로 가격을 매기고 판매자, 생산자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이 서로 엮였다.


대학생협과의 싸움이 있은 지 십년, 기어이 이화여대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를 만들어 외부기업들을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화여대 생협은 물러서지 않고 조합원들이 조리법을 제안하고 그것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기획과 생산, 소비의 과정을 잇는 생활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외부자본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를 조합원의 참여확대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 고민꺼리를 준다).


지금 이화여대만이 아니라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생협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운동은 1985년 학원민주화운동의 일부인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시작되었다. 1987년 서울지역의 학생복지위원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모임을 가졌고, 1988년에 서울지역학생복지위원회연합(서복련)이 결성되었다. 그 해 10월, 최초의 대학생협인 서강대학교소비자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뒤 이화여대, 조선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에서 대학생협이 만들어졌고, ‘한솥밥을 먹는 우리’라는 대학노트 판매, 자판기용 종이컵 공동제작, 커피재료 공동구매, 우리옷 공동구매, 음식물찌꺼기 사료화, 분리수거운동 등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생협연합회 산하의 대학생협특별위원회(
http://www.univcoop.or.kr/)에 따르면, 대학구성원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비영리공익법인인 대학생협은 국공립대학교 9곳, 사립대학교 13곳이다. 각 학교마다 조합원의 수는 다르지만 대략 1천명에서 3천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은 대학생협설명회, 대학생 생협학교 등의 ‘교육사업’, 비조합원과 조합원들에게 대학생협의 활동을 알리는 ‘홍보사업’, 공동교섭, 공동구매, 공동제작 등 조합원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경제지원사업’, 일본대학생협과의 교류를 비롯한 ‘국제교류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대학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경험을 준다.



상생의 길을 포기한 사립대학들


그러나 이런 대학생협의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한국의 사학재단들은 대학 내의 공간을 기업들에게 파는 ‘장사’에 정신이 팔려 있다. 따지고 보면 자기들이 직접 지은 건물도 아니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모으거나 기업에게 지원을 받은 것인데도 마치 재단 사유물인양 공간을 판매하고 있다.


세종대학교가 대표적이다. 2009년 12월 세종대학교 대학본부는 학교 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고 세종대 생협에 통보했다. 그러자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내단체들이 반대했고 학생들의 반대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이런 반대에 전혀 대응을 않다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서야 공식입장을 밝혔고, 세종대 생협만이 아니라 외부단체와 지역단체들이 잇달아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자 결국 신축학생회관의 입찰만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사건에서 세종대학측이 내세운 입장이다. 대학본부는 생협운영이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수익사업을 하면서도 장학금 등의 학교복지기금을 내지 않기에 공개입찰을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생협의 목적이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학생들의 생활을 돕고 것이고 생협의 활동 자체가 학생들의 복지와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측의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다. 대학측의 얘기를 한번 그대로 옮겨 보자. “생협이 공개경쟁입찰에서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운영의 건실함을 입증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대학본부는 ‘구성원들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생협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9년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는 생협도 어느 정도 경쟁의 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애착심만으로 지켜줄 단계는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종대는 대학을 운영하는 원리가 경쟁이고 캠퍼스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공간이라는 비밀을 스스로 폭로했다.


또 다른 한편의 코미디는 총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서한이다. 세종대 문제가 언론을 타자 총장은 학교발전을 핑계로 다양한 건설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한 뒤에 다음과 같은 얘기를 덧붙였다. “이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의 진실된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몇몇 학생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허위사실들을 유포하여 순수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대학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졸업하고 소위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아갈지 모르지만, 오로지 실력을 쌓고 학업에 매진해 온 학생들의 이미지를 ‘데모나 하는 대학 졸업생’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불순한 학생들이 계속 대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학생들을 선동한다면 결국, 대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등록금 동결 및 50억 원의 추가 장학금 마련의 길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빨갱이 논리가 21세기 대학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대학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국의 대학이 이 모양인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깔끔하게 정리된 건 아니지만 일단 세종대학의 외주방안은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이 좀 가라앉으면 대학측은 다시 외주방안을 추진하리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경쟁의 장, 이윤의 장으로 변한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청년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청년귀농 프로젝트 ‘율면은 대학’, 20대 데뷔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이 운영하는 ‘마포는 대학’, 몸으로 살고 삶으로 만나는 청년모임인 ‘만행’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험들은 대학이라는 장을 벗어나 있다. 대학 내에서 대학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까? 아무래도 대학 내에서 변화를 꿈꾸려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언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협이 대학의 변화를 뒷받침할 든든한 버팀목이긴 하지만 생협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이 자기 역량을 되찾고 강화시켜야 하는데, 생협이라는 생활의 장이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성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생활을 통해 협동하는 대학생협의 문턱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협은 학생운동만이 아니라 녹색가게나 재활용 등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끌어안을 수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생협에 참여하는 이유는 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생협운동의 취지에 공감해서, 생협운동 열심히 하니까 등으로 다양하다. 학생들은 식당모니터링, 식당페스티벌, 생태문화제, 녹색가게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유기농활, 생협학교, 한일조합원 교류같은 교육을 통해 점점 역량을 쌓는다. 수습위원, 학생위원, 학생이사로 성장하면서 생활과 고민의 폭이 넓어진다.


물론 이런 과정이 쉽고 수월하지만은 않다. 대학생들에 비해 다른 구성원들의 인식은 떨어진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생협을 식당과 매점 등을 운영하는 복지기구로 생각하고 협동조합과 소비운동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도 참여율이 떨어지거나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졸업을 하기 때문에 활동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들이 필요하다.



대학을 새로 만들 힘은 어디에 있을까?


위기는 곧 기회라고, 이번 세종대 생협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다른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 사태를 보며 생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이지만 이런 관계망의 확장은 새로운 연대를 준비할 수 있다.


아무런 일 없이 공허하게 연대를 얘기할 수는 없고 함께 할 일을 찾으면 좋다. 매점이나 식당, 서점만이 아니라 대학생협이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망을 만들면 좋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거문제이다. 대학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하늘에 별따기인데 그나마 들어가도 기업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많아 비싸고 운영이 까다롭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 앞은 온통 원룸이다. 하숙집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월세도 만만치 않다. 보증금과 월세에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혼자 방을 얻어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2010년 1월 연세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이 적은 돈으로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신촌에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짓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의 다른 대학들과 연계해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뉴타운재건축 사업에 열중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함께 모여 살면 조금이라도 돈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돈을 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실험도 가능하다. 한국에도 ‘빈집’이라는 주거공동체가 있지만 대학가 옆에서는 그런 운동이 활발하지 않다.


외국에는 그런 예가 제법 많은 듯하다. 예를 들어 캐나다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주거공동체 Co-op sur Généreux(
http://sites.google.com/site/coopsurgenereux2/en)를 보자. 2003년도에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이 주거공동체는 13명이 사는 이층 건물이다. 대형쓰레기통 뒤지기(dumpster diving)를 하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구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거리에서 나누어주는 ‘폭탄이 아니라 음식을(Food not Bombs)’이라는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생활에 대해 토론하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 주거공동체에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까다롭다. 즉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적고 지역공동체와의 연계가 쉽게 이루어지진 않지만 새로운 실험이라 볼 수 있다.


미국에도 여러 개의 주거협동조합들이 있다. 텍사스 대학교의 학생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하는 컬리지하우스(
http://www.collegehouses.coop/)와 협동조합간 클럽(http://iccaustin.coop/index/)도 그런 곳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주택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여성 아나키스트 클레이르(Voltairine de Cleyre)의 이름을 본따 1998년에 만들어진 클레이르 공동체(
http://decleyre.org/coop/index)도 있다. 클레이르 공동체는 채식을 하고 마을극장을 운영하며 풀뿌리운동의 싹을 내리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대학생협의 활동이 활발하고 의류, 주거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에게 대학생협에 가입하라고 충고를 할 만큼 대학생협은 대학생활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대학생협이 운영하는 매점, 식당, 서점 등의 사업과 주거공동체를 연계하면 말 그대로 먹고 생활하고 사는 생활 전체가 협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꼭 새로운 집을 지을 필요는 없고 지역의 풀뿌리운동단체들과 연계하면 의외로 좋은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학의 안과 밖에 작은 꼬뮨들이 생겨서 대학을 바꿀 힘을 조금씩 만들지 않을까?


물론 대학생협의 힘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지는 않다. 관심을 두지 않아 보이지 않던 더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생활을 통해 관계망을 넓히면 단단한 연대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대학 내에서 청소용역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고려대의 ‘불철주야(불완전노동 철폐를 주도할꺼야)’와 공공노조 고려대분회의 연대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루는 ’살맛‘이라는 학생모임과 청소용역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부당한 인사조치나 계약해지를 막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도 용역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을 고민하는 학생모임인 ‘신바람’이 만들어졌다. 동덕여대, 성신여대에서도 학생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냈고, 청주대,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도 학교가 사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이런 이슈들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단 3일 만에 고려대에서는 1만 명의 학생이, 성신여대에서는 6,500명이, 덕성여대에서는 3,500명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했다. 가까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의 문제, 자신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따지고 보면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청소용역 노동자만이 아니다. 주차와 캠퍼스를 관리하는 일도 용역노동자들의 몫이고, 대학교육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시간강사들도 비정규직이다. 교수라는 허울만 좋은 꿈을 포기하고 자신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면 시간강사들은 새로운 관계에 눈을 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관계망들은 교수들의 권위적인 문화도 바꾸고 대학당국의 일방적인 결정도 막을 힘을 만들 수 있다.


아무런 단계 없이 이런 힘이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서로가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 부대끼며 조금씩 다가서야 한다. 서로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적어서 나눠보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그 대가를 화폐로 치르지 말고 지역통화를 사용하면 어떨까. 서로의 열정과 지식, 요령, 공간,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흥겨운 축제를 열면 어떨까.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대학도 공동체로 변할 수 있다. 학벌로 얼룩진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배움(大學)의 가능성이 지금 대학의 위기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듯이.



참고자료


박주희․이기춘, “대학생활협동조합의 학생참여에 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 《소비자학연구》제 16권 제 4호(2005).

대학생협특별위원회, 『대학생협 20년사』(발간예정)

대학생협특별위원회 학생연합회의, “2010 대학생협 학생워크샵” 자료집(2010).

이미옥, “짐 아이프의 지역사회개발론에 비추어 본 대학생협”,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기말페이퍼(2009).

사막에 사는 사람, “5월 11일의 콜로키움과 몬트리올의 Co-op sur Genereux”,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http://www.jihaeng.net).

김종진, “연세대 시설관리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 사례”, 청년유니온 카페(http://cafe.daum.net/alabor)

고재열, “‘밥과 장미’ 위한 할머니들의 투쟁”, 《시사IN》 2010년 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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