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강의하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게 청량리로 가는 열차냐고 묻던 남루한 차림의 그 남자는 말이 고팠던지 계속 말을 걸었다. 이어폰을 빼고 눈을 맞추자 그 남자는 내게 스포츠토토 복권을 하냐고 물었다. 로또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당황하자 그는 자신의 복권을 꺼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잘 써야 한다고, 자기 아는 형님은 2만원 넣어서 100만원을 탔다고 얘기하다 그는 갑자기 지갑을 꺼냈다. 낡은 파란색 지갑에는 복권 용지로 보이는 하얀 종이가 가득했고 다행히 천원 지폐 몇 장 외에 만 원권도 보였다. 실패한 희망이 가득한 지갑을 접으며 그는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가카와 박원순 시장 얘기를 꺼냈다. 가카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일감이 줄었다고, 박원순 시장이 바로 서울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2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라며, 나이든 사람들은 보수적인데 자신은 박원순을 찍었노라며 열변을 토할 때쯤 지하철은 청량리에 도착했다. 클라이맥스라 아쉬웠지만 지갑 안의 만 원권이 복권용지로 변하지 않길 바라며 그 남자를 보내야 했다.


남자가 내린 뒤 복권과 박원순의 관계를 찾으려 애를 썼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 스포츠토토 복권을 하며 머리를 단련시키지 않아서일까? 내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왜 그에겐 당연한 일상일까?


실마리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던가. 내가 사는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를 지나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그 아파트 단지의 벽에는 시민들의 쉼터인 토월약수터를 파괴하는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수지구에 몇 남지 않은 녹지를 보존하려는 좋은 마음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아파트 벽 같은 자리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렸다. “신분당선 연장선 착공 경축! KTX-GTX 동천역에 환승역 추진하라!” 약수터를 지키자와 마을을 파헤치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걸 보며 나는 실마리를 찾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박원순을 지지하는 진보이고, 수지구에 사는, 분당을 꿈꾸는 중산층이 김문수와 가카를 지지하는 보수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인간의 마음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자기 식으로 재단하려는 몹쓸 사람들이나 할 얘기이다.


내가 찾은 실마리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도저히 함께 품을 수 없는 욕망들을 모두 움켜쥐고 살아야 할 만큼, 아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한 많은 걸 더 빨리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삶을 파괴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꼼수다’를 즐겨 들어도 2012년에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정권은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위기를 해결하거나 욕망을 풀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두 손에 움켜쥔 욕망을 내려놓고 위기에서 벗어나려 적극적으로 몸부림을 쳐야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내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를 노동조합이 떨어뜨린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집값을 높인다며 마을을 공사판으로 만들지 않고, 전력수요를 대비한다며 핵발전소를 짓지 않아야 우리는 가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1988년 귓 속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뉴스 방송에 뛰어든 남자는 우리가 그런 세계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했다. 구속된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도 그런 진실을 폭로한다. 제목부터 숨이 막힌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라니.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 누구도 꿈을 가둘 수는 없다. 우리도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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