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1.12.09 23:17
<프레시안>에는 '원순씨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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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현 정부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불렀다. 그동안 녹색, 공정, 공생처럼 좋은 말들의 의미를 줄줄이 왜곡해온 사람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측근들의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오고 '위키리크스'를 통해 부정한 외교가 들통 난 상황에서 현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니. 개그라면 웃겠지만 진심이라니 기가 막힌다.

아직은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으니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명박산성이 영원할 수는 없다. 비록 2008년 촛불의 행진은 명박산성에 막혔지만 이제 시민들은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용산 레아, 홍대 두리반, 4대강 공사 현장,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강정 마을 해군 기지 등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현실을 스스로 판단하려는 움직임이다.

물론 짜잘하게 부딪쳐봤자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냉소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통계 수치나 이론, 정책을 들먹거리며 자신을 믿고 '큰 거 한방'에 기대를 걸라고 설득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성공한 사건(?)만을 기억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MB, JP, DJ같은 약자로 얘기되는 정치인과 사조직처럼 움직이는 정당들의 전유물로 얘기된다.

갑작스런 사건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군불이 없다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프리 골드파브의 <작은 것들의 정치>(이충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정치의 군불을 때는 방법을 다룬다. 한나 아렌트와 어빙 고프먼의 이론을 받아들여 골드파브는 "사람들이 역사적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상호 작용 속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세계에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주장한다.

▲ <작은 것들의 정치>(제프리 골드파브 지음, 이충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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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 1989년의 루마니아 혁명, 2001년 9·11 테러, 2004년 미국 내의 반전 운동과 대통령 선거 운동 같은 굵직한 사건들에서 일상의 정치는 변화의 물꼬를 텄다. 골드파브는 "구조적 조건들이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황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나타난 변화가 공유되고 공개되며, 그런 공유된 변화에 입각해 행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큰 거 한 방도 세상을 달리 보려는 자잘한 시도들이 쌓여야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골드파브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상호 작용에 내재한 자유로운 공적 공간의 중요성"을 간파하면 식탁, 책방, 살롱, 공장, 학교 같은 일상 공간이 정치의 장으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공간에서 상황을 스스로 새로이 규정하며 시민들은 대안적인 정치의 싹을 키운다. 마치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시민들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일상적인 유형, 즉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를 사실상 만들어" 낸다.

물론 우리의 '가카'처럼 부조리한 권력자들은 공권력을 동원하고 미디어의 입을 막으며 공식 이데올로기를 시민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식적인 공간에서는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믿는 척했지만, 식탁의 주위에서, 독립적인 책방에서, 살롱에서, 그런 강요된 관계는 의문시되었다." 의심받기 시작한 권력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시민들은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이 권력을 정의하며 대항 지식, 대항 권력을 형성한다.

특히 골드파브는 인터넷이 좌파 운동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얘기한다.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하워드 딘과 <무브온>, 미국의 반전 운동을 예로 들며 골드파브는 인터넷이야말로 작은 것들의 정치를 펼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만났다. 그들은 자신의 글을 올렸고, 서로에게 반응했으며,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행위를 조율했다. 그들은 상황을 재정의했다. 상황은 그들의 정의에 따라 변화했다." 이야기와 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터넷이야말로 작은 정치를 큰 정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물이다.

그렇다고 작은 것들의 정치가 곧 권력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흔히 시민사회의 중요성이라는 통념으로 요약되는)가 권력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지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제도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동적인 운동들은 중요한 정치적·문화적 변화를 산출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출현하자마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상황을 정의하는 힘은 제도화되지 않으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 그렇지만 대안들이, 기존의 두 지배 정당 가운데 한 정당(예컨대, 민주당―옮긴이)에서 제도화된다면, 그와 같은 대안들은 미국인들에게 꾸준히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제도화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제도화는 정당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매우 다양한 사회 제도들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것처럼 교육과 미디어 제도들은 특히 중요하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말로만 떠들지 않고 골드파브는 'deliberately considered'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하고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골드파브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나는 꼼수다>의 유행과 '닥치고 정치'라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바로 작은 것들의 정치이다.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정치

이런 골드파브의 주장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정규군이 큰 것 같지만 어떤 때 가면 정규군을 다 동원할 수도 없어요. 쥐는 고양이가 잡게 생겼지 황소가 못 잡는단 말이야. 그런 모양으로 신문에서라든지 잡지에서 못하게 되면 차 마시러 들어가서 다방에서도 얘기하고, 친구 만나 음식점에 가서 얘기하고, 기차 타러 가서 그 안에서 얘기하고, 그게 게릴라전 아니냐. 정규의 언론 기관은 아니지만, 정규의 언론 기관이 다 맥이 빠져서, 권력에 팔려서, 종이 돼서 할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런다면 우리끼리 어디서든 만나는 대로 해야 돼."

함석헌의 이런 얘기는 이미 핵심을 짚었다. 그리고 골드파브보다 훨씬 더 강한 열정과 활동으로 함석헌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글과 강연에 매료되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는 활성화되지 못했을까? 한국의 시민들이 능동적이지 못해서? 한국 사회 시민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판단하기 어렵다. 문제는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몇몇 스타를 낳을 뿐 긍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민의 꿈과 희망을 대변하겠다는 인물들만 있었지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제도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아니 만들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다수 정치인과 정당들, 시민 운동 활동가들조차도 작은 것들의 정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시민들의 꿈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꿈을 꾸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촛불 집회의 끝물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편견과 망각의 정치'라는 글을 실었다. (☞관련 기사 : 편견과 망각의 정치) 3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원순닷컴이 한나라쩜 오알쩜 케이알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외려 그의 능력을 알기에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걱정스럽다. '반드시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게 서울 시장 당락과 무관한 박원순의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역사의 반복과 더불어 냉소주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열정을 경험한 뒤에 돌아가는 곳은 억압적인 학교와 공장, 가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정치의 장에 가두는 사고야말로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학교와 공장, 가정의 민주화 없이는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의 정치는 삶터의 장을 넘어 일터로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상은 작은 정치의 희망을 꽃피우는 장소가 아니라 정치의 무덤으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골드파브가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보자. 골드파브가 극찬하는 폴란드는 왜 민주 혁명 이후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렸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가 왜 시민들의 생활 기반을 파괴하는 한미 FTA나 제주 해군 기지, 핵폐기물 처리장 정책을 추진했을까?

이는 정치 논리로만 풀 수 없는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골드파브의 글에서 그런 통찰력을 찾아보긴 어렵다. 정치는 내용이 아니라 틀만 짜야 하기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제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이제 정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에, '삼성공화국을 해체하라'는 요구에 답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골드파브는 아렌트의 이론에 많은 점을 기대고 있지만 그녀가 현대 정치에서 감지한 위기감을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한 듯하다. 아렌트는 근대와 현대의 차이를 핵의 발명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다루는 정치는 전쟁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할 뿐 아니라 자연 자체를 새로이 만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약속>에서 아렌트는 핵무기의 등장이 "정치를 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바로 그것, 즉 모든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가능성을 위협"하는 모순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아렌트는 정치와 진리를 연관 짓는 걸 거부하지만 정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모순을 핵의 발명에서 찾았다. 이것은 아렌트의 정치 이론을 재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정치의 기반인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일정한 진리 앞에 서야 한다.

허나 골드파브는 이를 거부하는 듯하다. 골드파브는 책 제목을 따온 아룬다티 로이를 거론하며 "테러주의와 반테러주의에 대한 대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로서의 로이보다는 소설가로서의 로이를 참조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허나 나는 소설가로서의 로이만큼 반세계화 활동가로서의 로이(로이는 활동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도 좋아한다.

"만약 후세인 정권이 쓰러진다면 바스라 거리에 사람들이 뛰어나와 춤을 출지 모른다. 그렇다면 만약 부시 정권이 무너진다면 세계 전역에서 거리마다 사람들이 뛰어나와 춤을 출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 정의인가?

핵 발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의 정치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를 꿈꾸고 아직도 원자력의 신화를 믿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는 반핵(反核)을 지지해야 한다. 작은 것들의 정치, 제도 정치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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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5.01 15:16

인간승리로 연출되던 한 편의 드라마가 그 참혹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음모와 조작을 얘기하며 실날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결론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집에 TV가 없는지라 나는 그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줄기세포복제라는 과학기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사실여부를 섣불리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이야기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복제라는 자연적 한계를 넘어선 인위적인 기술에 대해 우리는 왜 그리 열광했고 아직도 그 흥분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걸까? 과학적인 논쟁이어야 할 기술에 관한 논란이 왜 영웅과 역적이라는 경계에 갇혀버린 걸까? 왜 아직도 내가 전체주의 사회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걸까? 책 속엔 정말 현실의 문제를 풀어갈 현명함이 담겨 있을까?



대중은 왜?


줄기세포 실험을 위해 스스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심지어 자신의 딸들에게도 기증을 권하겠다는 놀라운 발언들은 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약물을 복용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겪어야 하는 난자기증은 어느새 도덕적인 이타성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기증에 반대하거나 복제기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네 가족이라면…”이라는 위험하고 당위적인 가정과 ‘국익’을 앞세운 국가주의 논리 앞에서 그 비판의 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지나친 애정은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열풍이 무참히 짓밟았던 가냘픈 인권의 논리를 떠올리게 했다.

대체 이런 열광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났을까? 소위 냄비근성은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유전적인 요인일까? 20세기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이 물음에 답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자기 나름의 해답을 얻은 듯하다. 라이히는 『오르가즘의 기능』(윤수종 옮김, 그린비, 2005)이라는 발칙한 제목의 글에서 “6천 년이나 된 낡은 가부장적­권위주의적 문화를 재생산하는 오늘날 인간의 성격구조는, 자신의 내적 본성에 대항하여 그리고 외적인 사회적 불행에 대항하여 성격적으로 무장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얘기한다. 이 말에 따르면 무엇에 냉소하거나 열광하는 우리의 본성에는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어떤 구조적 요인이 잠재되어 있고, 그 요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이런 화두를 고민하던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에서 연구를 더 진척시켜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그것을 성격구조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그 성격구조가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즉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심리적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인간 속에 스스로를 재생산해 왔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읽다 보면 몇 가지 후련함을 느낄 수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 고만고만한 비판을 하는 한국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호쾌한 비판이 있고 지금 우리 사회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성과 관련된 얘기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한국사회, 그러면서도 성을 팔고 사는 행위가 묵인되는 한국사회, 제대로 된 피임교육이나 성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사회, 성적인 일탈이 온전히 개인의 성향 탓인 양 전자팔찌만 채우면 안전하리라 믿는 한국사회야말로 라이히의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릴 적부터 강요되는 성적인 불만족은 왜곡된 형태로 표출될 수밖에 없기에 성적인 억압이야말로 사회적인 억압과 열광의 자원이다. 라이히의 ‘성경제학’은 어려운 정치경제학보다 더 명쾌하게 변태적이고 기형적인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제자였으나 정신분석학계에서 배척을 받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공산당에게 버림받았던 라이히는 결국 미국 땅에서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아니라 식품의약국(FDA)에게 기소되어 감옥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마쳐야 했다. 이런 경력에서 드러나듯 라이히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자신의 현실과 치열하게 맞섰으며, 도덕적 엄숙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당시의 좌파들도 강하게 비판했다. 라이히가 보기에, 파시즘의 성장은 그것을 가능케 한 심리적인 구조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기존의 자유주의 이론이나 맑스주의 이론들은 이런 심리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파시즘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에 머물렀다. 즉 이들은 “대중들이 지닌 심리 구조의 본질과 그것이 유래한 경제적 토대와의 관계를” 깨닫지 못했다. 자연히 좌파는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무능력한 좌파,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무리들이다.

또한 흔히 얘기되는 것과 달리 라이히는 파시즘이 대중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면서도 대중을 매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라이히는 대중에 대한 강한 희망을 품었던 민주주의자였다. 라이히는 파시즘을 성장시킨 원동력이 대중이고 그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범죄자처럼 고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중의 그런 열광은 수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억압 받아온,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본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라이히가 대중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이 대중을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파악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라이히는 대중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그들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파시즘을 막을 수 있는 대중의 능동성이 살아나려면 “남의 뜻대로 움직이고, 비판능력이 없고, 생물학적으로 병들고, 노예상태에 빠져버린 대중들을 위에서 ‘이끌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모든 억압을 즉시 감지하고 적시에,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도록 그 억압을 떨쳐버리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라이히는 권력과 진실이 서로 대립한다고 보면서 국가의 해체와 사회적 자치야말로 대중의 역량을 부활시키는 핵심적인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중에 대한 공포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상의 파시즘 이론가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똑같이 대중을 논해도 그 애정의 깊이가 다르다.

라이히의 주장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변화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대중의 열광은 이성적인 설득이나 계몽적인 질타가 아니라 대중의 자율적인 결정과 책임의식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만족되지 못한 열정은 대리만족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리만족은 이제 그만!!!



자율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교육과 정치

라이히는 독일 파시즘이 대중심리를 장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으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길들이려 노력했다고 봤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는 체계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억압하고 타성에 길들여지는 법을 배운다. 가장 열려있고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야 할 시기에 청소년은 학교와 학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규율을 몸에 익혀야 한다. 그러니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수단 역시 댓글 문화에서 드러나듯 개인의 왜곡된 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다. 누리꾼의 세계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듯하지만 사실 그 강함은 판단의 왜소함을 감추는 가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거리의 철학자’라 불렸던 김상봉은 『도덕교육의 파시즘』(도서출판 길, 2005)에서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 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구성되는 존재이기에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도덕교육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고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를 판단하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도덕교육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따르는 민족,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장치였고, 그런 장치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도덕을 암기하라고 가르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김상봉은 “한국의 도덕 교과서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우리는 그것을 주저없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이라 표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네 도덕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파시즘적인 이타성을 가르친다. 물론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남을 돕는 이타성이야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따라 자신의 몸과 정신을 초개처럼 바치는 이타성은 파시즘의 주요한 자원일 뿐이다. 따라서 이타성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율적인 판단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상봉의 말처럼, “모든 자기부정은 보다 확장된 자기긍정을 위한 것이 아닐 때 그리하여 자기부정이 단지 부정을 위한 부정일 때, 그것은 노예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노예도덕은 “타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넘어 실체화된 국가를 위한 희생과 충성을 맹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로 변신한다.

특히 억압적인 노예도덕은 이질적인 목소리를 참지 못한다. 언제나 질서(뛰지 말 것)와 정숙(떠든 사람 이름적기), 통합(뭉쳐야 산다)을 강조하는 교육은 갈등과 시끄러운 토론,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정치야말로 만남과 토론을 전제하는 영역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서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데, 한국의 교육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철저히 차단하고 ‘중립성’을 칭송한다. 결국 중립이라는 명목하에 청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않고 시키는대로 복종하는,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에 길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한국에서 파시즘은 학습되고 있다.

어찌 보면 수능이 교육의 100%를 차지하는 한국사회는 노예를 양산하는 교육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사회학자 김덕영의 강력한 표현을 빈다면, “한국의 교육부라는 파쇼적 집단은 학생들에게 위에서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틀과 도식 안에 자신을 철저하게 가두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철저하게 복종하라고 다그친다. 교육부장관을 교주로, 교육방송을 성전으로, 수능강사를 성직자로 그리고 수능교재를 경전으로 받들지어다!”(『위장된 학교』, 인물과사상사, 2004)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수동적이고 자기억압적인 본능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그 엄청난 진부함으로 언제나 강력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정치도 톡톡히 한 몫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에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를 공급하는 한국의 지식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뉴(new)’, ‘신(新)’이라는 접두어를 달지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식상한 담론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새로움은 마치 권태로움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권태롭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어찌보면 그 권태로움이야말로 대중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기를 바라는 세력들의 치밀한 계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팩스턴(Robert O. Paxton)은 『파시즘』(손명희, 최희영 옮김, 교양인, 2005)에서 독재자의 이미지보다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시즘은 위기감을 조장하고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몰락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라도 공동체를 정화해야 한다는 믿음, 타고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파시즘은 이런 감정적인 분위기를 자극할 뿐 아니라 냉정한 계산과 현실판단을 이용했다. 즉 “파시스트들은 중도파와 보수파의 무능력을 잽싸게 이용해 대중정치를 파악해 들어갔다. 명망 있는 거물들이 대중 정치를 경멸하는 사이, 파시스트들은 대중 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민족주의를 널리 선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시스트들은 흥미진진한 정치적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능숙한 홍보활동을 펼쳐 대중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또 이들은 준군사 조직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으로 대중의 규율을 잡았으며, 마침내, 승패가 불확실한 선거 제도를 없애고 가부만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로 대체했다.” 팩스턴이 분석하고 있는 파시즘 사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지지보다 정치적 “양극화, 교착상태, 내·외부의 적에 대항한 대중 동원, 전통적 엘리트층과의 공모”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팩스턴의 관점은 지금 우리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파시즘은 멀리 있지 않고 현실의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태나 냉소, 무관심이 아니라 자율적인 열정과 능동적인 관심이다.


균열과 희망찬 시도들

한때 라디오는 자동차와 함께 대표적인 파시즘의 선전수단이었다.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괴벨스는 대대적으로 라디오를 보급하고 그것을 중요한 선전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독일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소리의 자본주의』(송태욱 옮김, 이매진, 2005)에서 그런 사회에서도 균열과 틈새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에서 라디오가 소통의 매체라기보다 일방적인 소리를, “우리 삶의 시간과 공간을, 나아가 사회적 현실의 성립을 거의 전면에 걸쳐 점령해버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라디오를 통과한 소리는 장소를 초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세계를 동질화시킨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매개이기도 하다. 라디오와 같은 매체는 “‘소리’를 부르주아적인 기호로서 유통시키고 소비해가려는 사회적 전략”인 ‘소리의 자본주의’를 구성했다. 또한 일본에서도 메이지 정부는 전신망과 유선전화를 “국민의 신체를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율 훈련용 미디어”로 이용했다.

그렇지만 요시미 슌야는 젊은이들이 이런 장치를 새로운 문화적 수단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지역의 중심부에 설치된 방송국에서 각 가정에 설치된 스피커로 음향을 내보내는 유선방송 전화는 “젊은이들 중 전기 매니아가 하드웨어 측면을 리드하며, 지역의 전기점이 설비를 담당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 그대로 촌락 공동체의 풀뿌리 운동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요시미 슌야는 전화가 “국가장치 뿐만 아니라 자생적 목소리 문화로도 기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은 무선 네트워크인 무선통신에 대한 분석으로도 이어진다. 20세기초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무선 라디오 붐이 일어나 아마추어들의 풀뿌리 전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즉 영화 <볼륨을 높여라>처럼 무선라디오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와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생겨난 라디오 클럽들은 서로 연계되며 “ 미국 전역을 뒤덮는 풀뿌리 정보망”으로 발전했고 “1916년, 민주주의 이념을 담은 메시지를 자신의 네트워크만으로 미국 전역에 전달하는 실험을 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볼륨을 높인다면 새로운 네트워크가 구성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런 사례에 주목하면서 요시미 슌야는 “19세기 이후 복제기술의 발전 과정에는, 오늘날에는 자명해진 방송이나 통신으로 대표되는, 모두 거리를 없애면서 국토나 지구를 뒤덮어가는 미디어로 일원화되는 움직임만이 아니라 다양한 중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적인 장치 그 자체가 어떤 사회적 진보성을 담보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런 장치는 파시즘의 매체로도 또는 민주주의의 매체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과학기술 자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의 사용하는 인간의 판단과 행위가 중요하다.

나찌즘의 마수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해야 했던 20세기의 탁월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런 판단과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1997)에서 인간이 처한 새로운 상황을, 즉 “인간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을 자연의 자녀로 속하게 만드는 마지막 끈조차 제거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을 우려했다. 그리고 자동화에 의한 노동 없는 노동사회, 인간 삶의 터전인 지구를 벗어난 우주로의 진출 같은 새로운 조건들도 판단의 과제로 제시되었다. 어찌보면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었던 이런 새로운 조건은 우리에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와 미래사이』(서유경 옮김, 푸른숲, 2005)에서 아렌트는 우리 시대를 유서 없이 유산이 남겨진 시대라 명명했다. 즉 “상속인에게 무엇이 그의 정당한 소유인가를 명시하는 유서는 과거에 속한 것의 미래적 용도를 지정”하는데, 만일 유서가 없다면 그 무엇도 그 소유의 미래를 규정할 수 없다. 이 비유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과거가 미래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주지 못하는 시대, 따라서 우리 스스로 과거와 미래 모두와 대면하며 우리 현실의 틈을 판단하고 과거와 미래 모두에게 진지하게 맞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대중을 경계했지만 아렌트는 인간의 위대함을 믿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불멸을 위해, 기억을 통해 전승되는 이름을 위해 위대한 행위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연적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근대적인 인간의 비극은 이런 행위의 우연성을 인간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이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행위할 뿐 아니라 그 자연조차 만들어 냄으로써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17세기 이래로 탐구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만을 알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사물 자체보다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옮겨갔다. 자연히 그 형성과정을 탐구하는 ‘역사’가 중요해졌고, “역사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과정, 즉 그 실존을 인류에게 전적으로 빚지고 있는 유일하게 총체적으로 이해되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건국역사라는 말처럼 인간의 삶 역시 하나의 ‘만드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역사를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지만, 이 관점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재배치하거나 현재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대의 역사는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내는 위대한 화음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재배치하고 미래를 조작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오만함이야말로 파시즘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렌트는 “행위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시작한 행위의 결과를 결코 예견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렌트의 역사관은 역사를 빌미로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조작하려는 경향이 강한 한국사회에, 인간의 다원성을 부정하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하려는 사회에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 갑갑한 현실에서 아렌트의 책을 자꾸 손에 쥐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인간과 세계의 실존 전체를 포괄할 수 없”고 “인간이 의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인간 이성의 범주는 “인간의 감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우리의 두뇌는 “지상에 속해 있고 지구에 한정되어 있다.” 유작(遺作)인 『정신의 삶』(홍원표 옮김, 푸른숲, 2004)에서 아렌트는 인간이 “현재라고 명명한 것은 희망 속에서 그를 앞으로 떠미는 과거의 무거운 짐에 대한 평생의 투쟁이며, 그가 확신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향수와 회상 속에서 ‘과거의 적막’을 향해 그를 뒤로 밀치는 미래(그것의 유일한 확신은 죽음인)의 공포에 대한 평생의 투쟁“이라고 얘기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모두와 치열하게 맞서며 그 틈을 벌여야 할 시공간일 뿐이다.

절망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원대한 공상이 아니라 내 삶에서 소소하게 만나고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 김신용이 노래했듯이, “불면, 찢어질 듯 가냘픈 날개를 가진 나비가 그 드넓은 바다의, 죽음의 혀 같은 물결 위를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그 어떤 질긴 목숨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나래를 치는! 나래를 치는...... 그 비애의 힘”(『환상통』, 천년의 시작, 2005)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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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획회의]라는 서평지에 쓴 글인데 최근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이 이 때와 비슷해서 다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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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10.20 21:58

경희대 대학원보에 쓴 글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좀 드러내보려 했다.
어쩌면 드러난 명박이보다 그것의 실체 없음, 사람들의 생각하지 않음이 그 실체일지 모르겠다는 추측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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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족족’ 검거하기 바라고 설사 인도에 산재되어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해 주길 바랍니다. 검거위주로 해서 시위대를 좀 많이 잡아야 돼”, 시위대를 보면 무조건 쫓아가서 잡으라는 경찰의 섬뜩한 무전내용이다. 그런데 이 무전의 시점은 과거 군사정권 때가 아니다. 2009년 5월 촛불 1주년 집회 때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일선 경찰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런 면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단체들은 불법폭력시위단체로 규정되어 정부지원이나 기업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국가브랜드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집단이기주의로, 철거민들은 도심 테러리스트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기도 했고, 군조직인 기무사가 움직인다는 소문도 솔솔 퍼지고 있다. 또한 정부는 새로운 저항의 양산박으로 떠오른 인터넷을 저작권법,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각종 법들로 규제하려고 들고 있다.

정부에 반대하기 때문에 사회의 악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은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아니기에 더 이상 정치는 필요 없다. 이렇게 정부의 억압이 강해지고 정치가 사라지면서 ‘파시즘’, ‘파쇼’, ‘전체주의’같은 단어들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면이 공포의 전부는 아니다.

 

플루토크라트와 대중의 공포

 

옆 나라 일본에서는 불안을 뜻하는 precarious와 노동자를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인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는 말이 유행이라 한다. 미래를 계획하며 삶을 준비할 수 없는 비정규직/일용직 시대,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승자독식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는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불안을 나눠 갖는 건 아니다. 금권정치(金權政治)를 뜻하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나라, 한국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재벌 총수들은 줄줄이 사면되고 파업노동자와 촛불시위대는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는 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가 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의 몸부림이 떼잡이로 낙인을 찍히는 나라에서는 공포도 사람을 가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함을 견뎌야하는 대중은 자기 삶을 틀어쥔 금권정치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만한 경쟁력을 갖추는 ‘미션 임파시블’을 강요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도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건 권력의 무서움보다 삶의 가벼움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폭력적인 이명박 정부보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나 철거, 실업, 비참한 상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20년대의 대공황과 혼란 역시 사람들에게 이런 두려움을 줬다. 그리고 그 시대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를 출현시켰다. 이 체제는 수많은 유대인, 집시, 빈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를 쓴 힐베르크(R. Hilberg)의 표현을 빈다면) 독일인의 일상을 ‘파괴기계’로 만들었다.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Eichmann)의 인상은 피에 굶주린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공무원이자 옆집 아저씨였다. 악마는 사악한 의도를 가진 범죄자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협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숨은 악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사람을 생명이 아니라 사물로 대하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불확실성의 생존경쟁, 전체주의의 작동방식

 

사실 그 원인을 분명하게 알면 사람들은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화장실의 귀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공포스러운 건 그것이 우리 일상 속에 잠재해 있을 뿐 아니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모르는 공포, 규칙도 합리성도 없는 공포, 그런 점에서 바우만(Z. Bauman)은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에서 불확실함이야말로 공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얘기한다. 정체를 모르기에 맞서 싸워볼 의지조차 품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공포이다. 그리고 그런 공포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벨트를 단단히 차고, 한층 더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홀로 남겨지는 공포, 추방당하는 공포”야말로 공포의 최고봉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가장 큰 특징이 비밀경찰이나 친위대같은 폭력적인 국가기구보다 ‘무정형(無定形)의 지배구조’라고 지적했다. 공무원과 정당, 정당 밖의 돌격대 등 여러 세력들이 제각기 지도자의 뜻을 받들고 있다며 주장하고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용산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4대강 사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지도자의 의지는 모든 곳에서 언제나 구현될 수 있으며, 지도자는 어떤 위계질서에도, 심지어 그 스스로 구축한 것에도 묶이지 않”는 사회가 바로 전체주의 사회이다.

더 나아가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불러오는 공포에 대한 오해도 지적한다. 전체주의 공포정치는 정치적인 반대파를 제거할 때가 아니라 그들을 제거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공포정치의 필수품인 숙청과 비밀경찰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파가 사라지고 난 뒤에 등장하고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감시한다. 이들은 국가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객관적인 적’을 규정하고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를 만든다. 지목된 용의자들은 갑자기 ‘수용소’에 갇히고 이 사회에서 사라진다(올 10월 7일 정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던 이주노동자 미누가 잠복해 있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들에게 갑자기 표적단속되어 추방을 기다리고 있듯이).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용의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은 서로를 고발하며 충성을 증명하고, 그렇게 서로에게 죄를 지으며 그 체제의 공범자가 되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 정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다한다. 전체주의는 모래알처럼 분리된 대중에 의해 힘을 얻고 그렇게 지속된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무서움은 드러난 억압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서로를 불신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눈에 드러난 독재자보다 형체 없는 지배가, 승자독식의 파괴적인 사회에 홀로 버려져 있다는 대중의 두려움이 전체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공포와 희망의 변증법

 

허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암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언제나 시민들의 수많은 저항이 강력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왔다. 현실세계의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 진지를 구축하고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공포에 시달리지만 그 공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의 뿌리를 내리려 한다. 억압을 감내하는 능동적인 정치행위와 동료 시민에 대한 믿음․연대는 전체주의 체제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희망을 퍼트리고 공포를 몰아낸다.

하지만 단지 눈에 보이는 정치인을 바꾸거나 정권을 바꾸는 것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형체를 드러내고 승자독식의 경쟁구도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공포의 정치는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다스리는 삶의 기반을 다질 때에만 우리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가장 급한 과제는 모래알처럼 분리되어 적대적으로 경쟁하는 대중에서 벗어나 서로 보살피고 협동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공포를 희망으로 만들 변증법의 힘은 서로의 고통에 슬퍼하고 연민하는 시민들의 소통과 공감, 울림에서 나온다. 의심을 거두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희망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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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6.12 09:00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9년에 출판한 '공화국의 위기'에서 정치적 거짓말의 의미를 분석한다.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미국에서는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아렌트는 미국방성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국민과 의회를 속이려 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파악한다. 진정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선출된 권력이 자기 국민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거짓말을 일단 시작하면 정부는 자기기만에 빠져들어 거짓말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을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사회정의나 공공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아렌트는 그런 상황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 언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불복종 행위야말로 공화국의 위기를 막을 진정한 정치행위라고 주장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자기 국민을 속이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정당성은 시민의 동의와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치인의 필수적인 덕목처럼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렇게 정치가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7.4%, 법원은 4.6%, 검찰은 2.6%, 국회는 0.9%로 나타났다. 임의로 결성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42.3%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정부는 공권력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에서도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사회가 크게 술렁거렸고, 오랫동안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그 당시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만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고 광우병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할 때 반드시 국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정부는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정부를 제소했기 때문에 먼저 대응하는 차원에서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부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캐나다 쇠고기 현지 작업장 점검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청을 거부했다(캐나다에서는 2003년 첫 광우병 사례가 보고된 이후 계속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캐나다가 이미 보고서를 국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왜 어떤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광우병 검역기준을 위반한 미국 도축장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청도 계속 거부하다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을 받기도 했다.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공개가 없는 정부의 말바꾸기는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간다.

그리고 작년만 해도 정부는 주변국의 조건에 맞춰 쇠고기 수입기준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겠다며 나서는 주변국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 정부는 누구의 정부이기에 국내 축산농가나 국민의 안전보다 국제기준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단 말인가?

이런 정부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학교에서 진실되게 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하는 게 뭐가 나쁜가? 모두가 서로를 속이며 거짓말의 공범이 되는 사회, 그곳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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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3.28 14:18

세상을 살다보면 참 우연히 일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어제 간만에 각시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씨네큐브에 갔는데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두 개의 영화를 놓고 고민을 조금 했습니다.


둘 다 나름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그러다 더 리더를 보기로 했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를 그동안 재미있게 봤었거든요.


빌리 엘리어트, 말이 필요없는 영화였죠. 경쾌한 춤과 음악이 이어지면서도 당시 영국 광부들의 파업을 잘 담아냈던...





디 아워스는 선배들과 함께 봤는데, '디 아더스'라는 공포영화의 속편인 줄 알고, 공포영화 싫다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는... 그런데 놀라운 일은 어제 우리 각시도 똑같이 공포영화라고 말했다는...(ㅎㅎㅎ 역시 천생연분이군요) 







하여간 '더 리더'를 봤는데, 멜로 영화일 줄 알았던 영화가 나름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더군요(그런게 달드리 감독의 특기이기는 하지만). 더구나 최근 인권연구소 창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렌트 세미나와 완전히 겹쳐버렸어요.

길에서 구토를 하는 소년을 돌봐줄 정도로 정이 많은 여인 한나, 어린 소년의 호기심으로 그 여인에게 빠져들었던 15살 소년 마이클의 얘기가 영화 전반부를 차지합니다. 어린 마이클은 한나와의 섹스에 빠졌고, 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의 세상에 빠져듭니다. 그러다 한나는 마이클을 그 또래들의 세계로 돌려주기 위해 짐을 싸서 떠나죠.

그렇게 헤어진 뒤 마이클은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고, 한나는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으로 되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범재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한나는 자신이 감시하던 유대인 300명을 살해한 혐의(폭탄이 떨어져 불타는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군 혐의)를 받습니다. 그 지옥에서 탈출한 한 여인이 책을 쓰면서 그 책에 언급된 6명의 독일인이 재판을 받는데 그 중 1명이 한나죠. 여차저차해서 한나가 6명의 죄를 뒤집어쓰게 되는데, 한나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기 싫어 죄를 인정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지요.

그런데 재판에서 한나가 자신에 관해 얘기한 내용은 아우슈비츠의 소장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얘기했던 내용과 비슷합니다. 매일 수용소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누군가를 정해서 아우슈비츠로 보내야만 했다. 나의 임무는 유대인들을 감시하는 것인데, 문을 열어줬을 경우 그들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은 그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한나는 자신의 임무를 넘어서는 행위를 선택하지는 않았지요.

아렌트가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가서 취재했던 전범재판에서 아이히만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당시 나치의 법률 하에서는 전혀 범죄가 아닌 일을 했고, 공무원으로서 자신이 시킨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라고 얘기합니다. 아이히만이 심문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아렌트는 "그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되는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을 받았더라도 그대로 수행했으리라는 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어쨌거나 이 광경을 보면서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사람에게서 생각과 판단의 능력을 빼앗아가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을 불러오는가를 말하려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너무 정답같은 얘기이죠. 하지만 저는 달드리 감독과 아렌트의 의도가 이런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달드리 감독의 시각을 볼까요? 영화에서 한나는 자기 죄를 피하려 했던 나머지 5명과 달리 그때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한나가 얘기하지 않은 건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점 뿐입니다.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한나는 무기징역형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 점을 알고 있던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 증언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한나에 대한 원망이든, 한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분노이든, 마이클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한나를 버렸던 거죠. 그리고 당시 독일 곳곳에 자리잡았던 수용소를 이미 알고 있었고 수용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알고 있던 많은 독일인들도 한나를 처벌하면서, 또는 한나와 자신을 구분하면서 모든 죄를 덮어버립니다. 최소한 한나는 자신이 무슨 짓을 왜 했는지 얘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할 판단력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덮어버리는 데에만 급급했죠.

그리고 한나는 재판을 하는 판사에게도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그 때 어떻게 했을 거냐고? 판사는 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혼자 힘으론 그런 결정을 반대하진 못했을 테니까요. 나치즘 하에서 그런 결정을 막기 위해 어떻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집단적으로 행위할까에 관해서는 판사조차도 자신이 없으니까요. 누구라도 한나의 위치에 가게 되었을 때 한나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특히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그런 결정을 반대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때로는 양심이 뒤늦게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마이클은 양심(또는 사랑?)을 이기지 못해 이혼을 하고 옛날처럼 책을 녹음해서 교도소의 한나에게 보내기 시작합니다. 한나는 그것을 통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며 마이클과 소통을 시도합니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며 한나는 삶의 활력을 찾기 시작하고 그러다 결국 가석방 허가를 받게 되죠. 가석방을 앞두고 교도소를 찾아온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 일자리와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나는 목을 매어 자살을 택합니다(왜 자살을 택했는지는 영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저는 '상처'였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기는 몹쓸 상처...). 한나가 남긴 돈은 유대인 문맹퇴치기금에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됩니다.

모두가 홀로코스트를 끔찍한 사건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끔찍하기에 그 누구도 수용소에 관해 기억하려 하지 않죠. 마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씁쓸히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기억되지 않는 사건은 마술처럼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이제 젊은 딸을 둔 아버지로 늙어버린 마이클이 딸에게 아버지의 삶을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어쩌면 이 '소통'이 달드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일지 모르겠네요.모두가 공범으로 변해버린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과거를 얘기하려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그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얘기하는 것만이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막는 방법일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마치 소크라테스의 재판 얘기처럼 한국사회에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이 책을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에 관한 보고서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는 책의 맨 마지막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이 끝난 뒤 아주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데요, 아렌트는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잠깐 판단을 미루고요, 제가 보기에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얘기를 건네고 싶어하는 사람은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보며 이 재판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파도 위에서 출렁이는 배’와 같은, 피투성이의 쇼"라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보다는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죄를 물을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유대인들은 사건의 원인을 캐지 않고 그 사건을 덮어버리기 위해 세계적인 쇼를 벌였다고 아렌트는 봅니다. 그러니 무능력, 즉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무능력함이 과연 아이히만만의 문제였을까요?

더구나 아렌트는 당시 유대인 공동체의 상류층들이 자기 민족을 어떻게 배반했는지에 관해서도 얘기합니다.

행정과 경찰 업무에 유대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베를린에서 유대인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던 일은 내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적으로 유대인 경찰에 의한 것이었음) 완전한 혼돈상태에 빠졌거나 독일의 인력 공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누수현상이 발생했을 것이다(“희생자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더욱이 대부분 사무실에서 일하던 그들이 수십만 명의 타인들을 절멸시키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대인 공동체를 국가와 분리된 게토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켰던 유명한 유대인들([전체주의의 기원] 1권에서 얘기되는)은 유대인들을 지옥의 입구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상층 유대인들의 배신은 '구원'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면 헝가리에서 카스트너 박사는 대략 47만 6,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정확히 1,684명을 구출했다. ‘맹목적인 운명’에 따라 선별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정으로 신성한 원칙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서류에 써서 그로 인해 그들의 삶과 죽음이 나뉘는 연약한 인간의 손을 인도할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이러한 ‘신성한 원칙들’은 누구를 구원으로 이끌어 냈는가? ‘지부르[공동체]를 위해 생명을 바쳐 일한’ 사람들(즉 지도층 인사들)과 ‘아주 저명한 유대인’이라고 카스트너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열심히 팔아서, 불쌍한 유대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서 세상의 지지를 받지요. 그러니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요? 물론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무시되어야 하는 건 아니죠. 영화에 잠시 비치듯이 어느 누구도 실감할 수 없을 만큼 그 고통이 컸으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쁘리모 레비나 서경식의 글, 또는 솔제비친의 소설에서 엿볼 수는 있지만). 그러나 고통스럽고 아팠다고 해서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죠. 아마도 아렌트는 그런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쓰고 난 뒤에 유대인 공동체들의 적이 됩니다.

아렌트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비유합니다. 예수의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압력에 못이겨 예수를 처형했던 본디오 빌라도는 처형이 끝난 뒤 손을 씻으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본디오 빌라도는 누구일까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선한 사람을 자처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영화를 보며, 아렌트의 글을 읽으며 저는 가끔 91년 5월의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죽어간 사람들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희망의 말을 남깁니다.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 인간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인간은 신이 용서해주기 때문에 자신도 ‘신과 같이’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용서할 때만’ 신도 ‘그와 같이’ 인간을 용서해준다고 가르치고 있다. 용서의 의무를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행하는 것을 인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자기의 마음을 변화시켜 다시 시작하겠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만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용서는 보복의 정반대이다.



신은 인간에게 용서하는 힘을 줬다고 합니다. 한나처럼 누구라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고통을 겪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조건 용서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아렌트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집단적인 고백이 실제로는 그 죄를 은폐하고 방어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렌트의 제자인 베이너의 말처럼 "아렌트에게 용서는 판단에 뒤따르는 것이지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아렌트는 용서야말로 아주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용서는 남을 위해 내가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환원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행위의 결과를 인정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니까요(때로는 그것이 자신에게 너무 고통스러울수 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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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3.21 23:25
'인권연구소 창'이 주관하는 철학과 인권 세미나(http://www.khrrc.org/index.php)에 참여하며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글을 다시 읽고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고,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말, 70년대 초의 정치상황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라는 개념이 현대적인 인권 개념의 재구성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렌트가 인권을 자기 철학의 핵심주제로 다루지는 않았지만(아렌트는 인권보다 시민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르지오 아감벤이 아렌트의 인권 개념을 비판하며 자기 얘기를 꺼내면서 아렌트의 사상이 자연스레 인권의 주제로 옮겨진 듯하다. 그런데 아렌트의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방식이 아렌트의 사상 전체를 살피고 그 속에서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나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렌트의 여러 책을 함께 읽으며 그 개념의 흔적을 찾아보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 아렌트가 쓴 [공화국의 위기]를 읽고 있다. 이 책은 60, 70년대 미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인데, 현재 우리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시민불복종'이라는 글에서 아렌트는 당시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과 흑인민권운동을 벌이던 시민불복종운동을 다룬다. 아렌트는 어떤 정치적 의견이 공동체 내에서 소통되며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정치라 보고 그런 소통과 관계의 장을 보장하는 것을 권력의 역할이라 봤다.

아렌트는 어떤 사안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을 경계하는데, 가령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을 어기는 행위의 정당성을 개인의 양심에서 찾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안을 비정치적인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러다보니 어떤 개인의 양심과 다른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흑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킹 목사의 양심과 미시시피의 인종주의자의 양심이 충돌할 때), 그 주장은 타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더구나 그런 양심이 정당화되려면 그 사람이 선과 악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자연적으로 타고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봤고 그 근거를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에서 찾기를 바랬다.

양심적인 거부자와는 달리 불복종 시민은 한 집단의 성원이며 싫든 좋든 이 집단은 자발적 결사를 이루는 것과 같은 정신에 따라 형성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논의에서 가장 큰 오류는 우리가 개인들―그들은 자신을 주관적이며 양심에 따라 사회의 습관과 법에 도전한다―을 다루고 있다는 가정이다.


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을 구분하면서 시민불복종을 중요한 정치행위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불복종 시민의 실상은 조직된 소수집단이며, 공동이익이라기보다는 공동의견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고, 정부의 정책이 다수에 의해 지지받을 것을 알 경우라도 그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리라는 결의를 갖는다.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그들의 일치된 의견에서 나온다.
시민불복종은 자신의 행위가 현재의 법질서를 해치거나 다수의 상식과 반대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여러 시민들이 힘을 모으는 정치행위이다. 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법질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거나 정부가 적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음모를 꾸밀 때에, 시민불복종은 변화를 이룰 유일한 수단이다. 아렌트는 당시 미국사회가 이런 상태(정부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정보기관이 은밀히 활약하는)였다고 보고 시민불복종 행위를 미국의 건국행위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국의 건국행위란 따져보면 식민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시민불복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민불복종은 공개적으로 법에 도전하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를 가진다. 사회가 유지되고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그 경계를 짓는 법이 필요한데, 시민불복종은 그 법의 경계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아렌트는 법조문보다 법의 정신이 중요하고 준법정신이 입법자의 태도를 가질 때, 즉 내가 곧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자 스스로 그 법에 복종하는 사람(인민주권이라고 해야 할까)일 때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불복종이 정당하다고 본다. 특히 새롭게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합의하지 않은 그 사회의 질서에 도전하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불복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렌트는 그런 불복종이 약속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의 행동이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합의와 약속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은 불복종을 하는 만큼 자신이 시민으로서 따를 수 있고 따라야 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 글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시민불복종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법률가들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법률가들은 이런 시민공동체의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인 행동을 개인의 범죄행위로 다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복종 시민을 한 집단의 성원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법정에서 피고가 될 개인적 범법자로 간주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의 할당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모든 것―피고는 다른 자들과 함께 뜻을 하며 법정에서 그를 진술하려 한다는 여론이나 시대정신(Zeitgeist)―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재판절차의 위풍이다.
법은 법에 대한 불복종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자유로이 단체를 만들 권리(결사의 권리)와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치제도는 불복종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유로이 단체를 만들도록 보장해야 한다. 아렌트는 로비스트들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시민불복종하는 단체들이 압력단체를 만들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결사의 권리가 현실에서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이런 분석은 지금 한국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이 사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는(요즘은 이런 방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자신의 주장을 더이상 받아주지 않는다고 여긴 시민들이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이 저항을 법으로 가로막으려 하지만 아렌트가 얘기하듯 촛불시민들의 불복종 행위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정치행위는 기존의 정치질서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시민들은 불복종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위기는 아주 심각하다.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자꾸 법원으로 가져가서 해결하려 하는데,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그 의제를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려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은 기관이다. 그리고 그 사법적인 판단의 잣대는 이미 낡은 것으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을 규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의 사법계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충원되지도 않고 그 작동과정 역시 민주적이지 않다(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판결에 개입하기도 하니).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정치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게 뻔하다. 시민불복종의 권리는 짓밟히고 그와 함께 결사의 권리,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단체를 자유로이 만들 권리도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쩌면 이제 저항은 아주 근본적인 수준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모른다. 권력이 정치를 포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저항은 건국행위 수준의 정치행위를 지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순히 법에 복종하지 않고 정부에 저항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사람들이 맺을 새로운 약속, 새로운 결사들을 만들며, 그들의 국가를 버리고 우리들의 공동체를 조금씩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폭력 불복종의 정신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터져나와야 한다.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정치가 왜곡되었으니 그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개인으로 흩어지지 말고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정치행위는 국가가 보장하는 시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근본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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