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특징짓는 아이콘은 바로 '컨테이너'일 듯 싶다.
200년년 부산 APEC회의 때가 최초라고 하지만 컨테이너로 길을 막고 그 사이를 용접하는 그 놀라운 발상은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위키피디아에 '명박산성'이 등록될 만큼 이것은 참으로 한국의 '고유한'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일단 당선된 이상, 권력이 결코 시민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명박산성에서 컨테이너는 소위 한국의 국가성격이 여전히 소통보다 '불통(不通)'임을 잘 증명해 주었다.

촛불집회 때 컨테이너의 용도를 잘 깨달았던지, 이명박 정부는 그 다음부터 컨테이너를 방어를 넘어 공격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200일 째를 접어들고 있는 '용산에서의 국가폭력'에서도 컨테이너가 등장했다.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의지해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짓이겼고 결국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는 가난도 범죄라고 얘기하며 국가는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특공대를 투입했다.
죽은 사람이 여섯 인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은 채 200일 째를 맞이하고 있다.
컨테이너가 고공진압 때 사용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상상력, 명박산성을 뒤이은 이명박 정부의 아이콘이다.

용산 때 그 효과를 깨달았는지 정부는 쌍용자동차에도 용산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컨테이너를 사용했고 역시나 경찰특공대를 이것에 태웠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을 줄 알면서도 이 컨테이너에 타야 했던 경찰특공대의 마음은 어땠을까?
용산과 비슷한 참사가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왜 컨테이너에 타야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쌍용자동차 노조원 2명이 추락해서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생명에 지장이 없어 다행이지만 무리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있는 곳에 희생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는 공권력을 마치 사권력처럼 사용하고 있다.
공권력은 공적으로 정당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규모와 과정도 공식적이어야 한다.
크레인에 컨테이너를 묶어 고공진압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반대하면 무조건 진압한다, 명령에 따르기 싫으면 나가라, 이런 식의 일방적인 권력행사는 공권력이 아니라 사적인 권력의 속성이다.
더구나 이 사권력은 철저히 기업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민은 없고 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그러면서 뒷돈을 대주는 기업들만 있을 뿐이다.

소통도 싫다, 반대도 싫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이런 정부의 말을 계속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이제 한국에서 컨테이너는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컨테이너에 짐을 싸서 이 땅을 떠나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점도 깨달았으면 한다.
지금 이런 식으로라면...


지난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빡빡한 미국방문 일정에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만나 한미FTA 등 현안을 논의했다 한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상원의원도 아닌 주지사를 만나 왜 한미FTA와 같은 국가간 협정을 논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미국경제가 먼저 살아나야 다른 나라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미국경제, 그 안에서 비중이 큰 캘리포니아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경제를 걱정하는 발언은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요즘처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제까지 걱정해주니 그 따뜻한 연대감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눈물을 흘렸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방문과 대화내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런 깜짝 이벤트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취향인 듯하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것일까?

어쨌거나 아놀드를 만나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지난 27일 “일시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목숨을 던질 그런 자세로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겠다고 말하지 않나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인용하며 “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져라”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8일에는 “먼 훗날 몸을 던져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한층 더 터프한 모습으로 돌아온 우리의 대통령, 우리는 박수치며 환영해야 할까?

무엇을 결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터미네이터의 장비는 곧 장만할 태세이다. 정부가 이번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경찰청은 집회대응 예산으로 48억 5,400만원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만만치 않다. 야간 조명차 2대, 물대포 3대, 물보급차 4대, 차벽트럭 17대, 신형보호복 2,106벌, 무선망 수신기 3,606개, 중형소화기 255개, 소형소화기 2,106개, 첨단채증장치 3세트 등이다.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 군단을 곧 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가 터미네이터식의 전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고, 그래서 정치의 세계는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보장해야 한다. 이상적인 정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현실 정치는 여러 협상과 타협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난 너만 구하면 된다’는 터미네이터식 발상은 정치의 세계가 구성되는 원리인 견제와 균형, 타협과 협상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영화를 보면 로봇조차도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은?).

목숨을 바쳐 일을 하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자세는 이번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화해와 통합을 강조한 것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대체 어떤 목표를 세웠길래 정치의 기본을 무시하고 온갖 첨단 장비로 무장하며 목숨을 바쳐 그것을 추진하겠다는 걸까? 아직 모든 게 분명하지 않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입장을 바꾸는 정부인지라 뭘 하겠다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은 친절하게 라디오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히는 편이니 얘기를 들어보자. 귀국한 뒤의 첫 라디오연설 주제는 청년실업이었다. 그러면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한 목숨 바쳐 일하겠다는 걸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자신의 경험담까지 들며 많은 얘기를 했지만 건질 만한 얘기는 이 정도인 듯하다. 세상에 경험만큼 소중한 스승은 없으니 비정규직이든, 임시직이든 무조건 취직해서 노조가 있건 없건 찍 소리 하지 말고 시키는 대라 일하라(월급은 제때 받으려나?). 이율곡 선생을 본받아 청년리더 10만 명을 양성하기 위해 7,500억원의 예산을 특별히 편성하겠으니 불만을 가지지 말라(1인당 750만원씩 나누나?). 그래도 국내에 일자리가 없으면 해외로 10만 명을 파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4대 보험은 되려나?)는 얘기이다.

허나 어떡하나? 실업자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준비생까지 합치면 청년실업자는 수는 대략 1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10만을 양성하고 10만을 파견해도 청년실업율을 낮추기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대통령은 정말 목숨을 바칠 만한 필생의 역작을 슬며시 다시 꺼내고 있다. “4대 강 정비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라는 말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4대강을 정비하면 그것이 곧 대운하가 아니겠는가.

터미네이터를 좋아하는 명바기네이터가 돌아왔다. 그것도 예전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촛불시위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한반도의 생태계는 다시 한번 멸망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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