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해석된다. 그런데 권리를 보장받는 인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눈 두 개, 코 하나, 팔과 다리를 가진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까? 그렇다면 원숭이나 침팬지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유독 인간에게만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앞서, 또는 그보다 뛰어난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근대에 ‘발명’된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자들처럼 이성을 가진 존재만을 인간이라 부른다면, 그 이성은 무엇으로 측정될 수 있을까? 만일 그 이성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 ‘정신’을 뜻한다면, 그런 정신이 없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사실 사람의 생활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정신을 인간의 특징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망과 문화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불편함이 다른 누군가의 당연함으로, 나의 권리가 어떤 존재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까다롭게 묻지 않더라도 개발권/발전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권리를 인간의 권리로 제한하는 순간 인권은 생태계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권을 넘어 사회적인 권리로 해석될수록 인권은 생태주의와 충돌하곤 한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태계를 파괴해 왔으니...


흔히 인권운동과 생태주의운동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인간을 위한 운동이 인간만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운동과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생태주의를 단지 자연을 보존하자는 구호로만 이해하지 않는다면, 인권이 인간이라 정의되지 않는 생명체(태아),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명체(프랑켄슈타인)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생태주의와 인권의 접점이 보인다. 그 접점은 바로 평화이다. 생명체의 생존과 생활을 권리이자 문화로 본다면 평화는 그런 권리와 문화를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다. 평화로운 삶에서 생명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 보살피는 가능성을 누릴 수 있다.



평화유지와 평화로운 삶의 차이


서양에서 평화를 뜻하는 피스(peace)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팍스(pax)는 서로 다투지 않겠다는 합의를 뜻했다. 다투지 않겠다니 평화의 의미와 일치하는 듯하지만, 평화가 단지 분쟁이나 전쟁없는 상태만을 뜻할까? 더구나 팍스라는 말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쓰이면서 이 평화는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인 평화를 뜻했다(로마시대 이후에도 팍스라는 말은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처럼 초강대국이 구현한 세계질서와 평화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팍스가 뜻하는 평화란 주체들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강요된 질서에 가까운데도 이를 좋은 상태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평화가 목에 칼을 들이댄 위협적인 질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에 따르면, 로마시대의 평화는 전쟁의 승리와 패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국이 된 전쟁 당사국들간의 합의, 전투에서 형성된 새로운 관계와 그것에 대한 로마법의 인정을 뜻했다. 여기서 평화란 무력보다 법적인 상태와 가까웠고, 평화협정이라는 말처럼 평화는 무조건적인 강압보다 인위적인 합의에 가까웠다. 평화의 다른 이름은 질서였고, 그 질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질서의 결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 팍스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은 팍스에서 유래된 피스라는 말을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평화(平和)로 번역했다. 비록 평화라는 말은 없었지만 동양에서는 태평(太平), 인화(人和), 대동(大同), 대도(大道) 등이 평화로운 삶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질서나 법적 상태를 뜻하는 평화의 의미와 달랐다. 예를 들어 《예기(禮記)》에 따르면, “대도(大道)가 행해지니 천하가 만민의 것이 되고 어질고 유능한 자가 선출됨으로써 모두가 신의를 중히 여기고 화목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만을 사랑하거나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고 모두가 한 가족같이 사랑하였다. 그럼으로써 늙은이는 수명을 다하고 젊은이는 재능을 다하고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들도 부양받게 되었다. 또한 남자는 모두 직분이 있고 여자들은 모두 시집을 갈 수 있었다.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이처럼 풍습이 순화되어 간특한 모의가 통하지 않으니 변란이 일어나지 않고, 도둑질과 약탈이 없으니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이것을 일러 ‘대동’이라 말한다.” 이 대동의 의미가 팍스나 피스와 같을까? 대동사회에서는 정부가 질서를 만들기는커녕 정부가 가만히 놔둘 때 백성들이 평화를 즐겼다. 너와 내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 누구나 꿈꾸는 이상사회는 위대한 지배자나 특정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민중의 평화로운 삶에서 구현되었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서양에서도 등장했다. 로마시대의 키케로(Cicero)는 노예제도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평화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데서 오는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며, 또 노예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근대의 공화주의자들 중 몇몇은 민중이 평화의 수호자일 때에만 자유와 평화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상가 이반 일리치(I. Illich)는 팍스에 관해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팍스라는 말을 학살을 정당화시키고 군대를 통제하는 말로 이용했지만 12세기에 팍스는 영주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일리치에 따르면, 팍스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자급할 생존수단을 전쟁의 폭력에서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런 ‘신의 평화’, ‘땅의 평화’는 단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휴전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문제였기에 평화는 하나의 질서로 환원될 수 없었고 각자의 자율성을 누렸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일리치는 “내게는 한 인간사회가 누리는 평화는 그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하는 시(詩)만큼 개성적”이고 “각 시대와 각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강요하는 평화유지와 평화로운 민중의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평화가 시의 언어처럼 다양하고 자율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강요된 질서나 살아남기 위해 타자 앞에 무릎을 꿇는 굴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평화가 지속되다보면 나의 존엄함을 잃고 자기 스스로 의지를 꺾고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는 결국 세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파괴한다.



휴전과 전쟁국가, 전쟁상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가혹한 현대사를 거쳐온 한반도의 주민들에게 평화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도 외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반도, 서로 포격이 오가며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있는 휴전상태의 한반도에서 평화란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를, 즉 질서유지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 휴전상태를 유지해야 하기에 우리는 노예상태나 강대국의 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에게 평화기념관이 아닌 전쟁기념관이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휴전과 분단이라는 현실은 지금도 평화를 위한 전쟁, 국익을 위한 파병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예외상태이다보니 병역거부가 ‘시민의 권리’나 ‘인권’의 차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징병제도가 우리에게는 상식이자 시민의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민족/국민과 적대적/위협적인 타민족/국민을 구분하는 경계가 세워지고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전쟁국가는 안보를 빌미로 자신의 질서를 시민들에게 강요할 명분을 얻는다. 전쟁국가에서는 평화로운 삶의 추구가 질서유지와 안보를 내세운 평화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전쟁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평화로운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건 기존의 평화관을 극복하지 못한 탓도 크다. 일리치는 민중의 편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역사가들도 평화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중의 혁명과 투쟁을 다룬 기록들은 그나마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누려왔는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일시적인 투쟁의 역사만 기억할 뿐 훨씬 더 오래되고 길었던 평화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리치는 “농민과 유목민, 마을문화와 가정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게는 검토할 만한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에 “속담과 수수께끼와 민요에 담겨 있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평화로운 삶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만일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간의 최소한의 폭력과 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 버린다고 일리치는 경고한다.


그리고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D. Lummis)는 전쟁이 일상화되고 평화가 예외적인 경우로 느껴지게 된 이유가 생태계의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매스컴에서는 ‘치안’, ‘안전’, ‘안정’, ‘공안’같은 말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반면에 ‘평화’니 ‘헌법 9조’니 하는 말을 입에 담으면 무슨 특수한 이데올로기나, 편중된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평화’라는 말을 더 이상 친숙하게 느끼지 못한다. 본디 평화란 각각의 가정이나 공동체나 지역 안에서 개개인이 누리던 극히 당연한, ‘안심’이라는 씨앗에서 싹튼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의 평안’이라는 기본적인 충족감이, 우리 주변에서 떨어져 나가 어느새 아주 먼 곳으로 유배되어버린 것만 같다.…사정은 환경문제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우리사회에는 자연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금욕적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와 소비라는 ‘쾌락’을 취할 것인가, 자연환경이라는 ‘인내’를 취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이런 착시현상들은 우리 자신의 삶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아니 우리의 전쟁같은 일상은 평화의 시야를 가리고, 나 자신을 전쟁의 희생자이자 전쟁을 치르는 주체로 만든다.


국가간에는 전쟁이 없지만 그런 질서를 받아들이는 한 국가 내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끔찍한 전쟁이 진행 중이다. 아주 평화로운 상태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켠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시야를 인간에서 생태계의 다양한 생명체로 넓히면 그 치열한 전쟁터가 드러난다. 한국에서도 신종인플루엔자나 조류독감,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 지역의 모든 가축들이 죽임을 당한다. 보통 한 해에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다. 살처분이라는 다소 누그러진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한 번에 수만의 생명체를 몰살하는 홀로코스트이다. 이런 살육을 저지르고도 우리가 평화를 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2003년 10월 지율스님이 고속철도 관통구간인 천성산의 도롱뇽을을 대신해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소송을 낸 것은 도롱뇽만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천성산이 죽고, 도롱뇽이 죽는다면 다음 죽을 차례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인식합시다”라는 지율스님의 말은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 끊임없이 파괴되어 왔고 그 파괴 속에 우리가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100일을 넘긴 단식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고속철도 공사는 완공되었다.


그러면서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팍스의 또 다른 명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더 이상 질서나 안보가 아니라 바로 경제이다. 전쟁국가의 명분도 경제이고 그 결정이 옳다고 믿는 우리의 명분도 경제이다. 그리고 이런 파괴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고 4대강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도록 세뇌당해온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권과 생태주의의 접점인 평화를 파괴해 왔다. 공장의 착취와 억압, 생태계의 파괴는 무관하지 않다. 토건국가의 다른 이름이 전쟁국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틀로 평화의 관점을 확장시켜야 하고 인권과 생태운동이 서로 눈을 맞춰야 한다.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辻 信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전쟁을 말할 때 저는 자연계에 대한 전쟁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환경문제와 평화문제가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유팩 같은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군수산업을 포함한 경제 그 자체가 일종의 전쟁이라는 인식은 전혀 못하고 있어요. 확신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과제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과 인권, 생태


일리치는 평화를 깨트리는 전쟁의 주역이 세상의 오해와 달리 바로 경제발전이라고 지적한다. 일리치는 민중의 평화(popular peace)와 ‘팍스 에코노미카(pax economica)’의 대립을 지적하면서 민족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민중의 자급생활을 보장하던 평화인 민중문화와 공유지, 여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엘리트들이 발전을 내세워 민중을 지배했다고 지적한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자급적 생존방식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적인 것을 ‘비사회적’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미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이런 팍스 에코노미카는 경제권력들의 균형,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질서를 민중들에게 강요한다. 자치와 자급의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는 경제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인권운동과 생태주의운동이 손을 잡아야 한다.


토다 키요시(戶田 淸) 교수는 민주화란 “평화(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고, 환경보전이나 차별의 극복까지도 포함하는 적극적 평화)의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얘기한다. 에너지, 군수, 자동차, 식품 등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이, 그리고 “유해상품의 합법적 판매나, 나아가서 농약의 대량사용을 비롯해서 ‘자연에 대한 폭력’까지 포함”하는 폭력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평화로운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 안에서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재생산해가는 얼개”인 서브시스턴스(subsistence)가 보장되려면 “환경과의 조화, 사회적 공정[성], 소비의존증이 아닌 진실로 풍요로운 생활조건”이 필요한데, 이는 민주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실 우리 시대에 생태는 이미 인권의 중요한 항목이다. 지적소유권에 따른 종자(種子)의 독점과 신체적인 권리의 상실, 생태계 파괴에 따른 생명체의 오염과 기형화, 가장 극단적으로는 핵의 위협이 인간의 생활세계 자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정신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누리려면 내가 생활하는 터전이 그런 권리를 뒷받침해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몫 없는 사람들의 몫,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 ‘인권의 정치’라면, ‘생태의 정치’는 그 몫과 목소리의 범위를 더 넓히라고 요구한다. 아니 몫과 목소리를 나누는 기준을 해체하고 서로의 관계망의 새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녹색과 적색을 무조건 뭉뚱그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운동들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하며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자기만족을 비판하는 러미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은 아주 중요하고 또 정곡을 찌르고 있고, 저 자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기에는 아주 큰 함정이 있어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노력을 이해하고, 그 위엄을 인정하면서 논의할 수 있는 형태로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사람들의 생활과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마음이 죽었다’느니 하는 말을 그 시대에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포기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말도. 그런 말들을 내뱉고는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외국인들이 실제로 그 당시 교토에 많았어요.” 생태주의운동이 인권운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사회를 민주화시킬 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러미스는 “기업이 대규모 공해를 일으키고 있는데 내가 그런 작은 일들을 죽어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는 무력감. 하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전쟁상태에서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운동에 참가하면, 자신의 활동과 거대한 환경문제와의 관계가 분명해질 겁니다. 즉 자신의 작은 행동과 커다란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거란 말입니다.”라고 지적한다. 인권운동이 생태주의운동의 시야를 받아들일 때 활동의 전일성(全一性)이 회복될 수 있다.


이렇게 인권과 생태의 관점을 통합하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2004년 5월 평택에서 열린 ‘5․29반전평화문화축제’에서 문정현 신부는 이렇게 연설했다. “저는 6개월 동안 유랑하면서 평화가 무엇인가를 터득했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청주에 갔습니다. 천연기념물인 두꺼비와 맹꽁이가 개발에 밀려서 멸종이 되지 않도록 서식처를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성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고 싶은 곳을 쉽게 갈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강대국의 침략으로 죽어가는 부녀자들 노인들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그러기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리고 평화활동가 조약골은 이 강연을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로 만들었다.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일리치의 말처럼 평화를 시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들이 우리 사회에도 등장하고 있다.


평화의 시를 느끼는 감수성이 일상을 사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남이 만들어준 안전한 평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평화를 가능케 한다. 하나의 평화, 하나의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평화, 다채로운 질서를 가능케 한다. 지배자들의 구별짓기, 경계짓기, 분할통치(divide and rule)를 넘어서야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다



※ 참고한 책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음, 김경인 옮김,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 2010)

이반 일리치 지음, “평화의 근원적 의미”(《녹색평론》 2002년 1~2월호)

토다 키요시 지음, 김원식 옮김, 『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사, 2003)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혁명론』(한길사, 2004)



8월 25일부터 열리는 제주인권회의에서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아직 인권에 대해 감이 오지 않지만 그동안의 고민을 좀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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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1. 올바름에서 풀뿌리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외치는 ‘착한 교육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농촌마을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가난한 농민을 만나게 된다.


“박사님, 민중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는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집 구조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형편없는 시설에 대해, 극도로 좁은 공간에 온 가족이 몸을 구겨넣어야 하는 형편에 대해 일러주었다.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마저 마련할 돈이 없다고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에겐 행복할 권리나 희망을 가질 권리가 금지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자, 박사님, 뭐가 다른지 봅시다. 박사님도 댁에 가면 피곤할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박사님은 하시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랴, 글 쓰랴, 독서하랴, 이런 연설을 하랴, 바쁘시겠지요. 그런 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박사님, 지친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한쪽은 자식들이 깨끗이 씻은 몸에 잘 차려입고 굶주리지 않고 잘 먹은 얼굴로 맞이하는데, 다른 한쪽은 더럽고, 굶주리고, 빽빽 울고, 시끄러운 아이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네 민초들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상처받고 상심하고 절망한 채로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식을 때리고, 그것도 ‘도가 지나치게’ 때린다면, 박사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삶이 너무나 힘든 까닭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지만, 이것은 계급적 지식이다.[각주:1]


이런 경험을 통해 프레이리는 ‘착한 교육학자’에서 ‘민중의 교육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그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의 경험은 특히 정치적 교육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습과정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정치적 교육이 진보적이려면 민중 집단이 만들어낸 세계 읽기와 민중의 담론, 민중의 구문, 민중의 의미, 민중의 꿈과 욕구에서 표현되는 세계 읽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각주:2]


나는 인권이 풀뿌리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이런 만남에서 찾고 싶다. 인권이 제아무리 정당하고 올바른 개념과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의 시선과 언어, 꿈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이런 관점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실제 활동에서 녹여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삶을 바꾸려는 풀뿌리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상가 장일순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긍정으로 가는 것 아닌가? 예수가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참된 자기를 얻는데 그 참된 자기라는 게 뭐냐 하면 우주의 본체와 같은 것임을 깨닫는 거라. 그러니까 여기서 ‘신비로운 수동성’이란, 위대한 자기 긍정에 이르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말한다고 봐야겠지.”[각주:3]
나 속의 타자, 우리 속의 타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아니, 타자 속의 나, 그 속의 우리를 보며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장일순 스스로도 이런 글을 남겼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 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밝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을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에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각주:4]


사상가 함석헌 역시 자신을 바꾸고 초월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부정을 못하고 제가 사람인 줄만 알고, 제가 심판자․개혁자․지도자인 의식만 가지고 제가 스스로 죄수요 타락자요 어리석은 자임을 의식 못하는 사람은 혁명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잡는 것 아니라 명(命)을 바로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각주:5]


 풀뿌리의 관점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욕구를 실현할 기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밖과 소통하지만 내부에 깃든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각자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보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혼자 서는 못할 일을 함께 이루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인권은 지식인이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민중의 언어로, 전문가나 활동가의 활동에서 민중의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럴 때 류은숙의 말처럼 “인권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각주:6] 그렇다면 지금의 인권담론은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언어로 거듭나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런 노력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풀뿌리 민중의 정치행위로 이해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학교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세계인권선언이나 사회권규약을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고 설령 배운다 하더라도 실제로 써먹기 어렵다.[각주:7]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있지만,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두발자유를 단속하고 체벌을 가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전문가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일반 대중의 언어로 체화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풀뿌리의 관점은 이런 징검다리를 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인권담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 풀뿌리운동이 결합될 수 있다.



2. 인권과 풀뿌리운동의 확장, 무엇이 마을인가?


반대로 인권의 관점은 기존의 풀뿌리운동이 관심을 가져온 영역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은 그동안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풀뿌리운동의 주요한 의제도 보육이나 청소년, 주부와 연관된 것들로 제한되었다. 물론 풀뿌리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으로 확장되고, 의제가 평화나 주거권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운동의 주된 흐름은 ‘가족’을 중심에 둔다.


예를 들어, <시민의신문>과 <한국청년연합회(KYC)>가 엮은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풀뿌리가 희망이다』(시금치, 2005)는 <광명YMCA>를 비롯한 11곳을 대표적인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그리고 김기현의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이매진, 2007)는 <부천YMCA>의 녹색가게, <광명YMCA>의 등대생협, 부산의 <희망세상>, 안성의 <안성의료생협>, 네 곳을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또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이음, 2008)은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대전여민회>의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북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강원의 원주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 강원도 철암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의 <희망세상> 등 9곳을 풀뿌리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들은 앞서 지적한 바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인식의 격차는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김영현: 아무래도 결혼 중심으로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도 생협 조합원이고 성미산 지키기에 서명도 했지만,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어요.

위성남: 가족 중심의 커뮤니티고, 삼사십 대가 많고, 미혼 커뮤니티는 아주 취약하죠. 미혼이 최근에 늘어나는 추세인데 독자적인 자기 커뮤니티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죠. 기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고민이나 관심사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저같은 기혼이 미혼커뮤니티를 대신 고민해줄 수는 없잖아요? 바라만 보고 있죠. 언제될지 모르지만 본인들이 아쉽고 답답하면 만들겠지 하면서.……

………

권김영현: 기존 커뮤니티에 접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 쉼터나 성소수자 커뮤니티처럼 마을에서 공개되지 않는 커뮤니티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가 지역운동과는 연결되기에는 어려운 조건들이 있는 것 같아요.[각주:8]


한편으로 풀뿌리운동이 강조하는 ‘스스로의 변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배타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풀뿌리운동 또한 철저한 자기부정이라는 성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기부정 없이 ‘우리’만 부각되다 보면 풀뿌리운동이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풀뿌리운동이 일상적인 생활정치 속에 소수자의 시각을 녹여내고 그것이 가진 차이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도현의 글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라 그로스Nora E. Groce라는 사회학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 섬인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에서 농인deaf people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섬에서 농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만의 농 문화를 형성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농인들은 지역사회의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각주:9] 그렇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시점에서 풀뿌리운동은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단지 장애운동만이 아니다. 풀뿌리운동은 아이들의 언어, 주부의 언어, 장애인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가? 풀뿌리운동은 공용어를 찾으며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인권운동이 발전시켜온 감수성과 합리성은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도시’로, ‘주부들을 위한 정치’에서 ‘주부들의 정치’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도시’에서 ‘장애인의 도시’로 우리 운동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풀뿌리운동과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와 인권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짐 아이프(Jim Ife)의 물음은 그 어려움을 잘 드러내 준다. “지역사회개발은 인권의 기본원칙에 역행하여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대원칙은 지역사회개발에 있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에 대한 경계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가 지역사회 활동가에게 인종차별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지역사회 활동가는 지역사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고(이러한 거절이 지역사회 자결 원칙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정당한 거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언제나 이처럼 명쾌할 수만은 없다. 인권은 논쟁적인 개입이므로, 지역사회 활동가는 때로 지역사회와 인권에 관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인권에 관한 논쟁은 그 지역사회 내에서 인권이 어떻게 규정되고, 어떻게 이해되는가, 다른 곳에서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방식의 지역사회개발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각주:10]


풀뿌리운동이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만큼 인권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나 “열 사람의 한걸음”같은 구호보다 그 사이의 실천이, 그 실천을 위한 관심과 행동을 유도할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3. 국가에서 지역사회, 마을로


어떤 면에서 인권의 탄생과 확산은 근대국가체계의 형성․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그러하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도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얘기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체제의 형성과 법질서를 통해 구현되고 국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하는’(당위) 정치적 결사체로 얘기된다. 인권은 사회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계약의 목적으로 선언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자연상태에서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는 국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을까? 이런 가상의 자연상태에 관한 전제가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방해한다. ‘현재의 국가’가 문제일 뿐 정녕 ‘미래의 국가’는 인권을 수호하는 파수꾼이 될 수 있을까? 허나 국가는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관료조직의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자율성을 가진 국가, 착한 국가는 가능할까? 이런 얘기를 길게 하다보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시점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인식틀frame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중심에 둔 사회구성체 논쟁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마을, 자치와 자급이라는 인식틀로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전과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제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복지국가의 모델이 여전히 중요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의 논의만 살펴도 서구의 복지국가 내에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왜곡되었는지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없이 서구의 복지국가가 가능했을까? 복지국가는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났을까?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는 복지국가가 사회의 대안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앞서 간단히 살펴본 네 가지의 정책전략[복지국가 옹호, 뉴라이트, 조합주의, 마르크스주의―인용자] 중 어떤 것을 사용하더라도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장 중심의 사회․경제․정치적 시스템―복지국가는 그 내부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은 한순간도 환경파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사회의 발전된 형태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사회변동의 구조로서 (생태학적 관점에 기초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다른 구조, 다른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각주:11]
심지어 아이프는 복지국가의 장점이라 얘기되는 적절한 최저생계 보장, 사회적 불평등 감소, 공평성이 실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의 기밀성, 사회의 익명성, 관료주의 등이 강화되었을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각주:12]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국가에서 사는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정책과 그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둔다면 복지국가 모델은 여전히 중요하게 보일지 모른다. 대중의 능력을 얕잡아 보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자비로운 시각이야말로 나쁜 국가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고 참아야 하는 딜레마일까? 그렇지만 왜 그런 자신의 가치와 믿음이 우리의 미래이어야 할까? 특히나 식민지의 국가구조와 교육체계, 정신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채 식민성의 굴레에 갇혀 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가 외부적인 기준에 맞춰 자기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국가와 개인의 계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개별자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인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개인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로버트 오언R. Owen은 이를 “우리가 지금 주장하는 원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한결같이 실현되는 자신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인적 행복은 주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늘리고 확장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각주:13] 그리고 이런 식의 관념은 이미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생각이다.[각주:14]


이런 인간관을 받아들인다면 요구하는 권리에서 구성하는 권리로 논의가 확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치와 자급의 마을이 구성된다면 그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힘과 관계도 그만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인간의 욕구와 역량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그 내부의 기준에 따라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인식틀의 전환이 중요하다. 중앙정부, 민족/국민국가에 맞춰진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내가 디디고 있는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와 관련해 최근 인권과 관련된 조례들이 제정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조례들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교육감, 전북교육감 등이 추진중인 학생인권조례보다 앞서, 2004년 1월 목포시는 ‘목포시건축물의 허가 등에 있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의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고 신축되는 병원, 공공시설 등 대형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사전점검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의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서 외국인 주민이 정책이나 공공시설물 이용, 고용과 관련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광주광역시가 2009년 10월에 제정한 ‘광주광역시 인권 증진 및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조례’ 역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도시의 발전비전으로 인권을 내세운 조례이고 2010년 3월 경남도의회가 통과시킨 ‘경상남도 인권증진 조례안’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례들이 지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안산시가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을 기반으로 다문화라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광주광역시의 인권조례가 민주, 인권, 평화를 내세운 도시개발이나 지역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비판은 그 진의(眞意)를 의심케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조례 제정이 시민문화나 아래로부터의 동력 없이 진행되거나 그런 동력을 제도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조례가 다른 조례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가이다. 하나의 조례만으로 지역사회가 혁명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는 조례로 표현되는 제도화와 그 합의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화적인 영역들이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아이린 칸이 지적하는 바는 곱씹어 볼 만하다. “페루는 남미에서 산모와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특히 지방 원주민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산 호세 드 세까의 마을과 오코페카, 후쿠마키리, 상끄와 루페이의 공동체들, 안데스의 아야쿠초에서는 지역 NGO주도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거리와 비용, 부족한 시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그들의 문화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직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시설을 찾아가는 일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와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년 동안 관계가 향상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설을 이용하였고 마을의 전통적인 산파들과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출산환경이나 출산전후 관리가 그 지역문화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 있는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거나, 출산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것, 혹은 태반을 가족에게 돌려주어 직접 묻게 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들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고 그 지역언어로 설명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사망률이나 환자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경우를 통해 우리는 소외문제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가난한 여성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할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배울 수 있다.”[각주:15]


조례는 지역사회의 법이고 법은 시민의 공공성과 여론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조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지역성을 반영할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사회운동의 힘을 제도로 잘 흡수한 참여예산제도가 한국사회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련된 정보와 참여의 부족, 지역과 맞지 않는 기계적인 제도의 도입, 제도의 발전과정에 대한 평가의 부족 때문이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과 풀뿌리가 만나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다.


인권과 풀뿌리의 만남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을 일구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밑거름으로 변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인권과 풀뿌리는 가진 자들의 삶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사람들, 허나 채우기 위해 버릴 줄도 아는 사람들의 삶에서 꽃피기 때문이다.

  1.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38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27쪽. [본문으로]
  3. 장일순․이현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 2003), 108쪽. [본문으로]
  4. 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시골생활, 2010), 26~27쪽. [본문으로]
  5. 함석헌, [들사람 얼](한길사, 2001), 28쪽. “정치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기술과 제도를 내는 것이요, 철학자․도덕가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도리어 지혜를 가르치고 힘을 주는 것이다. 나라는 씨의 나라요 세계는 씨의 세계다.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사실 이날껏 민중이라면 구더기같이 업신여기고 더럽게 안 것이 낡은 윤리와 사상의 특색이었다. 들이 다 그것이다.”(같은 책, 236쪽) [본문으로]
  6.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8쪽. [본문으로]
  7. 김순천, 『대학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2009)을 보라. [본문으로]
  8.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제 41호(2009년 11․12월호). [본문으로]
  9.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47쪽. [본문으로]
  10. 짐 아이프 지음, 류혜정 옮김, 『지역사회개발』(인간과복지, 2005), 150쪽. [본문으로]
  11. 짐 아이프, 앞의 책, 43쪽. [본문으로]
  12. 같은 책, 61쪽 [본문으로]
  13. 로버트 오언 지음, 하승우 옮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지만지, 2009), 27쪽. [본문으로]
  14.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1997)이나 김종철, 『간디의 물레』(녹색평론, 1999)를 보라. [본문으로]
  15.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들리지 않는 진실: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 166쪽. [본문으로]
'인권연구소 창'이 주관하는 철학과 인권 세미나(http://www.khrrc.org/index.php)에 참여하며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글을 다시 읽고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고,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말, 70년대 초의 정치상황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라는 개념이 현대적인 인권 개념의 재구성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렌트가 인권을 자기 철학의 핵심주제로 다루지는 않았지만(아렌트는 인권보다 시민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르지오 아감벤이 아렌트의 인권 개념을 비판하며 자기 얘기를 꺼내면서 아렌트의 사상이 자연스레 인권의 주제로 옮겨진 듯하다. 그런데 아렌트의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방식이 아렌트의 사상 전체를 살피고 그 속에서 인권개념을 논의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나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렌트의 여러 책을 함께 읽으며 그 개념의 흔적을 찾아보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 아렌트가 쓴 [공화국의 위기]를 읽고 있다. 이 책은 60, 70년대 미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인데, 현재 우리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시민불복종'이라는 글에서 아렌트는 당시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과 흑인민권운동을 벌이던 시민불복종운동을 다룬다. 아렌트는 어떤 정치적 의견이 공동체 내에서 소통되며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정치라 보고 그런 소통과 관계의 장을 보장하는 것을 권력의 역할이라 봤다.

아렌트는 어떤 사안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을 경계하는데, 가령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을 어기는 행위의 정당성을 개인의 양심에서 찾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안을 비정치적인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러다보니 어떤 개인의 양심과 다른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흑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킹 목사의 양심과 미시시피의 인종주의자의 양심이 충돌할 때), 그 주장은 타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더구나 그런 양심이 정당화되려면 그 사람이 선과 악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자연적으로 타고날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봤고 그 근거를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에서 찾기를 바랬다.

양심적인 거부자와는 달리 불복종 시민은 한 집단의 성원이며 싫든 좋든 이 집단은 자발적 결사를 이루는 것과 같은 정신에 따라 형성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논의에서 가장 큰 오류는 우리가 개인들―그들은 자신을 주관적이며 양심에 따라 사회의 습관과 법에 도전한다―을 다루고 있다는 가정이다.


아렌트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을 구분하면서 시민불복종을 중요한 정치행위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불복종 시민의 실상은 조직된 소수집단이며, 공동이익이라기보다는 공동의견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고, 정부의 정책이 다수에 의해 지지받을 것을 알 경우라도 그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리라는 결의를 갖는다.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그들의 일치된 의견에서 나온다.
시민불복종은 자신의 행위가 현재의 법질서를 해치거나 다수의 상식과 반대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여러 시민들이 힘을 모으는 정치행위이다. 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법질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거나 정부가 적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음모를 꾸밀 때에, 시민불복종은 변화를 이룰 유일한 수단이다. 아렌트는 당시 미국사회가 이런 상태(정부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정보기관이 은밀히 활약하는)였다고 보고 시민불복종 행위를 미국의 건국행위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국의 건국행위란 따져보면 식민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시민불복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민불복종은 공개적으로 법에 도전하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를 가진다. 사회가 유지되고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그 경계를 짓는 법이 필요한데, 시민불복종은 그 법의 경계를 넘어서려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아렌트는 법조문보다 법의 정신이 중요하고 준법정신이 입법자의 태도를 가질 때, 즉 내가 곧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자 스스로 그 법에 복종하는 사람(인민주권이라고 해야 할까)일 때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불복종이 정당하다고 본다. 특히 새롭게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합의하지 않은 그 사회의 질서에 도전하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불복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렌트는 그런 불복종이 약속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의 행동이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합의와 약속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은 불복종을 하는 만큼 자신이 시민으로서 따를 수 있고 따라야 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 글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시민불복종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법률가들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법률가들은 이런 시민공동체의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인 행동을 개인의 범죄행위로 다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복종 시민을 한 집단의 성원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법정에서 피고가 될 개인적 범법자로 간주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의 할당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모든 것―피고는 다른 자들과 함께 뜻을 하며 법정에서 그를 진술하려 한다는 여론이나 시대정신(Zeitgeist)―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재판절차의 위풍이다.
법은 법에 대한 불복종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자유로이 단체를 만들 권리(결사의 권리)와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치제도는 불복종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유로이 단체를 만들도록 보장해야 한다. 아렌트는 로비스트들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시민불복종하는 단체들이 압력단체를 만들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결사의 권리가 현실에서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이런 분석은 지금 한국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이 사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는(요즘은 이런 방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자신의 주장을 더이상 받아주지 않는다고 여긴 시민들이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이 저항을 법으로 가로막으려 하지만 아렌트가 얘기하듯 촛불시민들의 불복종 행위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정치행위는 기존의 정치질서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시민들은 불복종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위기는 아주 심각하다.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자꾸 법원으로 가져가서 해결하려 하는데,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그 의제를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려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은 기관이다. 그리고 그 사법적인 판단의 잣대는 이미 낡은 것으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을 규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의 사법계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충원되지도 않고 그 작동과정 역시 민주적이지 않다(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판결에 개입하기도 하니).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정치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게 뻔하다. 시민불복종의 권리는 짓밟히고 그와 함께 결사의 권리,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단체를 자유로이 만들 권리도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쩌면 이제 저항은 아주 근본적인 수준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모른다. 권력이 정치를 포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저항은 건국행위 수준의 정치행위를 지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순히 법에 복종하지 않고 정부에 저항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사람들이 맺을 새로운 약속, 새로운 결사들을 만들며, 그들의 국가를 버리고 우리들의 공동체를 조금씩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폭력 불복종의 정신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터져나와야 한다.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정치가 왜곡되었으니 그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개인으로 흩어지지 말고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정치행위는 국가가 보장하는 시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근본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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