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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5 인권도시와 일상성의 생활공간
posted by 몽똘 2011.04.25 08:15
4월 22일에 열린 인권도시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이다.
강현수 교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 은우근 교수의 '인권 거버넌스 실현으로서 인권도시'라는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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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권리가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분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도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논의에는 공감이 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뭐랄까요, 맛있다는 사탕을 입에 넣었더니 달달하긴 한데 뭔가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 점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편성의 함정: 누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서 ‘하이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빌어 사회공학적인 설계가 자신의 유토피아적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하려 했는지를 비판합니다. 민중을 위한다는 수많은 계획들이 실패한 이유는 민중을 배제한 채 민중을 위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스콧은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지(經驗知)인 메티스를 접목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제인 제이콥스 역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대규모의 계획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엮이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도시가 어떤 종류의 내재적이고 기능적인 질서를 갖는지 알지 못한 채 도시의 겉모습을 계획하거나 어떻게 하면 도시에 마음에 드는 질서정연한 외관을 부여할지 골몰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는 게 제이콥스의 생각인데요.[각주:1]


그렇다면 인권도시, 인권거버넌스의 내용 말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자하는 도시의 특징과 그 속의 질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할텐데, 오늘 발제문들은 그 반대의 느낌을 줍니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내용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 강조되는데, 저는 이런 방식으로 도시가 정말 변할 수 있을지 좀 의문입니다.


그리고 광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는 무엇이지? 광주항쟁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은우근 교수님의 발제문에서도 “80년 5․18당시 민중을 주변으로 몰아낸 힘과 30여년이 지난 오늘 민중을 주변으로 몰아낸 힘은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가 인권도시운동에서 전략적 고민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 조례추진과정에서도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지니는 의미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며, 조례 제정 당시에도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광주의 정체성과 인권을 연결시키는 과정에 광주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그 와중에 어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인권은 ‘발명품’으로서의 역할만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계획단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쁜 집을 지어놨으니 들어와서 이쁘게 살아라”는 얘기 역시 사는 사람의 욕구와 권리를 침해합니다. 브라질에서 참여예산제도가 시작된 이유도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며 실제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사람들은 변할 것이다. 잘 만들어진 완성품이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한국에 참여예산조례가 소개된 이후 전국적으로 110개가 넘는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조례는 4, 5개에 그치고 있다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인권도시나 인권조례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도시?: 일상성과 일상의 변화


저는 도시가 변화한다는 건 결국 도시민들의 일상이 변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강현수 교수님의 발제문에서 강조되는 르페브르 역시 그 일상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르페브르는 일상을 ‘혁명 시도가 실패하는 원인이자 결과’라고 했는데요. 단순히 사회체제의 변화만으로는 일상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하고 이렇게 변화되지 않는 일상은 ‘혁명의 방호벽’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 불리는 성공회대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사태해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일상은 참으로 완고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상이 변하지 않는 한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됩니다. 모순적인 양면을 가진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일상을 바꾸려면 대안적인 일상이 필요한데, 현재의 도시공간은 대안적인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가? 공정하고 윤리적인 가치가 생활의 동선으로 구현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할까?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두 개의 도시입니다. 구심과 신도심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발전하고 있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인권도시와 인권거버넌스는 어느 도시를 위한 것일까요? 설령 제도의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신도심을 위한 담론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권리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예를 들어 재산권과 주거권이 충돌할 때, 환경권과 문화권이 충돌할 때, 인권담론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필요합니다.

  1. “뉴욕 이스트할렘East Harlem의 어느 주택단지에는 눈에 확 띄는 직사각형 모양의 잔디밭이 있는데, 이 잔디밭은 단지 주민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단지를 자주 방문하던 어느 사회복지사는 자기 생각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사람들이 이 잔디밭을 자주 입에 올리고, 또 끔찍하게 잔디밭을 싫어하면서 그걸 없애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물으면 으레 “저걸 어디에 써요?”라든가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같은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결국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다 말을 잘하는 어느 주민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지을 때 우리가 뭘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 집을 헐어 버리고는 우리는 여기로 밀어넣고 친구들은 다른 데다 밀어 넣었죠. 여기는 커피 한 잔이나 신문 하나 구할 데도 없고 50센트 빌릴 데도 없어요. 누구 하나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신경도 안 써요. 그런데 높은 사람들이 와서는 잔디밭을 보고 한마디씩 하지요. ‘참 예쁘군요!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리는군요!’라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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