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삼성불매운동이 한창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는 삼성카드를 폐기하거나 삼성가맹점을 탈퇴하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물산이 제주도 해군기지사업에 참여해 구럼비를 폭파하자 이에 대한 분노가 불매운동으로 시민들을 이끌고 있다.

 

허나 삼성물산이 폭파를 중단하면 불매운동이 중단되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토건국가’라는 말처럼, 이미 전국 곳곳이 제주도 강정마을과 비슷한 처지이고, 공사현장에는 어김없이 재벌들의 로고가 박혀 있다. 재벌들의 문제는 한 가지 사업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재벌들의 밥그릇》(홍익출판사, 2012년)은 우리의 인식을 넓혀주는 좋은 책이다. 그동안 재벌들의 문제점을 다루거나 폭로한 책들은 간혹 있었지만 그것을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 다룬 책은 없었다. 더구나 이 책은 일선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자의 시각이라 구체적인 관계를 엿보게 한다. 수치와 논리를 강조하는 시대이니만큼 이 책에는 재벌비판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수치가 가득하다.

 

 

중소기업을 위한 한국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여기저기 ‘기업하기 좋은’ 나라, 지방을 떠든다. 하지만 과연 중소기업에게도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까? 《재벌들의 밥그릇》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는 문제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제휴’나 ‘협력’의 명목으로 가로채고 있다.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재벌들이 그만한 기술투자를 하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한국의 10대 재벌이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에 쓴 돈을 합쳐도 이 돈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의 7.57%에서 2010년에는 6.57%로 하락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비중이 떨어졌다.

 

정말 재벌들이 기술을 가로챈다면 왜 중소기업이 법에 호소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도 책에 담겨 있다. 중소기업이 부품을 생산해서 재벌에 납품하는 하도급 구조 때문에 납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법적인 문제제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법에 호소해도 사실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렵고 재판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리고 설령 이긴다 해도 현행법에 따르면 보상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그러니 기업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이 재벌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비단 기술 가로채기만이 아니다. 이 책이 지적하는 중요한 문제는 중소기업들을 후려치는 납품단가 인하이다. 책에 따르면, 재벌들은 매년 최소 20%이상의 단가 인하를 목표로 삼는다. 원자재 시장의 가격변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회사의 연간 이익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에 맞춰 원가절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단가 인하 목표가 설정된다.” 그리고 납품 중소기업이 이익을 보면 무조건 단가를 깎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납품 중소기업의 이익률이 10% 이상이면 인하율은 5%, 이익률이 5%면 인하율은 2%, 이익률이 3%면 인하율은 1%로 정하는 식이다. 그러니 대기업의 사냥감이 안 되려면 이익률이 1% 이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더 이상 납품단가 인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거래대상에서 쫓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심하게 협력업체들을 쪼는 곳이 재벌 서열 1, 2위인 삼성과 현대차이다. 특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이런 방법으로 2002년에서 2005년까지 4년간 국내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단가 인하를 한 규모는 모두 3조 28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같은 기간 중 영업이익 10조 7,925억 원의 28%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이 울며 겨자먹기로 재벌들에게 납품하는 이유는 그렇게 부품을 공급하다보면 일본이나 유럽의 회사들도 거래를 하자고 요청하고 납품규모가 커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글로벌 경영의 선두주자는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인 셈이다. 이들이야말로 온갖 어려움과 희생을 감수하고 세계경영에 나서고 있으니.

 

재벌들이 좋은 일자리를 빼앗는다!

뒤처지는 중소기업 대신 잘 나가는 재벌들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다시 짜자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우리 삶을 포기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재벌들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한국의 노동시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1,114만 9,134명으로, 전체 종사자 1,261만 2,692명의 88.4%를 차지한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7년 10년 동안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287만 6,846명이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동안 대기업의 종사자 수는 오히려 10만 6,598명이 감소했다.”

 

IMF외환위기 이후 엄청난 공적자금을 받았던 재벌들은 정작 그 세금을 내온 노동자들을 해고해 왔다. 그러니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비난이 정부나 새누리당에서조차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의 상황은 반대이다. “선진국의 경우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8~50.2%로, 우리나라에 비해 10~40%나 낮다.” 재벌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독점하면서 노동시장에는 해를 입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황도 열악하게 만든다.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100으로 볼 때, 종업원 5~9명 규모의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2010년 1~3분기에 60.2로 2008년 62.3, 2009년 63.4에 비해 더 낮아졌다.”

 

이처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의 원인은 재벌중심의 경제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재벌들이 경제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이다. 삼성과 현대차 두 재벌의 “매출 합계액 121조 7,000억 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5%에 달”하는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사회에서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생계가 각종 ‘자영업’이다. 그런데 재벌들은 이조차 내버려두지 않는다. 기업형 슈퍼마켓(SSM)만이 문제는 아니다. 책에 나온 것만 정리해도, 재벌들이 운영하는 카페 브랜드가 8개, 외식업이 11개, 와인판매 7개, 골판지 6개, 온라인 교육 4개, 막걸리 4개 등이고 차량정비와 사진관, 소금 생산, 농산물 생산유통가공, 웨딩사업, 장례업, 콜택시 사업, 학원사업 등 그 영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계열사 수도 계속 늘어난다. 상위 20대 재벌의 계열사 수는 2002년 말 514개였는데, 2010년 말 859개로 무려 67%나 늘어났다. 얼마 전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비판을 받자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금방 입장을 바꿔 최근 신세계그룹은 베이커리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가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이런 ‘불공정한 하도급거래’의 고리를 끊고 문어발식 확장을 막지 않는 이상 정상경제는 불가능하다. 재벌총수들은 말끝마다 자본주의를 내세우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데, 그들이 기본적인 규칙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재벌과 중소기업의 하도급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저자는 “납품단가 연동제(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최소한 업종별 협동조합에 조정신청권이 아니라 협의권을 부여해서 집단 교섭을 보장”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중소기업과 재벌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동반성장과 같은 개념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8장에서 ‘피죤’의 막장경영을 다루며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얘기하듯이,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막장이 피죤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삼성그룹 또한 막장이다. 그리고 재벌회장들이 구속되었다 보석으로 풀려나는 걸 보면 한국사회 또한 이미 막장이다.

 

아마도 각종 경제 수치를 찾아 인터넷을 뒤져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재벌개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많은 수치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반면 비슷한 논의가 반복되는 점은 이 책의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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