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0.12.29 11:34
 

한 사회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지역사회 내의 평판이나 명망을 수집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분석하려면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한국의 지역사회지배구조를 분석하면 그 실체가 조금 드러난다. 일단, 지역사회라 해서 중앙정부와 재벌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정부와 많은 권한이 넘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7: 3이라면 지출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비중이 3: 7로 역전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여전히 중앙이 기획한 사업을 지방이 집행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소수의 재벌들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대형할인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또한 중앙언론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지배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에 위임된 집행권력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자기 마음대로 행사한다. 대통령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장은 지방정부의 예산을 쌈짓돈삼아 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재선을 위해 터무니없는 사업들을 집행한다. 이를 막을 지방의회의 힘은 약할 뿐 아니라 단체장과 연관된 보수정당이 지배하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사실 선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지방의원들은 그 권한을 가진 단체장과 결탁할 수밖에 없다. 지방공무원들(또는 그들의 관료주의)은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에 묶여 있지만 민주화 이후 독자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공무원 밑으로 통 단위까지 관변조직이 만들어져 있다. 어떠한 명분을 대더라도 이런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권력을 뒷받침하는 각종 관변단체들이 존재한다. 각 동단위까지 뿌리를 내린 새마을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의회를 빼고도 대한노인회, 각종 보훈단체, 체육단체, 한국예총, 여협, 로타리, 라이온스, 청년회 등의 단체들이 지방정부의 사회단체보조금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방정부의 각종 자문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선도위원회,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읍․면개발위원회 등 수십 개의 위원회들을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상공회의소들도 정치인, 관료, 학계, 관변단체들을 연계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로 건설업자들의 소유인 지역언론사들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개발사업을 정당화시키고, 지역의 대학들도 지방정부의 각종 용역을 받아 지방권력을 비호한다(대학교수들이 공무원 다음으로 위원직을 많이 차지하고, 각종 재단과 시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의사, 약사, 각종 직능단체들의 지역조직도 지역사회에서 이익을 거래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중앙에서 지역까지 하나의 권력망을 구성하고 서로 이해관계를 나누며 공생하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수천에서 수만 명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공권력이나 자본이 그들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준다.


반면에 우리가 가진 힘과 사람들을 한번 꼽아보자. 몇 명이나 되고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나? 민주노총, 민언련, 민노당, 진보신당, 시민단체 등 지역의 진보적인 단체들을 죄다 끌어 모아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고, 이런 단체들마저도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라 하나로 묶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누구를 믿고 누구의 편에 설까? 가치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제시하는 비전이 더 현실적일까?


이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진보적 지방자치는 그냥 말일 뿐이다. 얼마 되지 않는 몫을 놓고 싸울 것인가, 우리의 편을 더 많이 모을 것인가,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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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9.07 18:59

지난 몇 년간 지역사회를 살릴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의제, 지역재생,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 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다양한 방법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안적인 지역발전의 모습을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방법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많은 중요성을 가진다.

허나 아무리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이라도 그것이 우리사회의 성격과 맞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1980년대에는 국가의 성격을 놓고 사회구성체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치열함이 없고 더더구나 지역사회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논쟁도 없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한 방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프로젝트만 있지 장기적인 발전전략이나 비전이 없다. 지식인, 활동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단기적인 사례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들여온 방법들도 이런 단기적인 프로그램을 짜는데 이리저리 짜깁기식으로 활용될 뿐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짜려면 우리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관계를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 나는 지난 100년 이상의 흐름을 봐야 지역사회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가령 동학혁명으로 대표되는 민중의 자치·자립에 대한 욕구와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두레와 동회, 계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들로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들은 단지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삶까지 두루 헤아리는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런 강력한 뿌리가 있었기에 일제 식민지, 군부독재 시기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합운동과 저항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강했기에 일제 총독부와 해방 이후의 미군정, 군부독재는 그런 자치와 자립의 흐름을 파괴시키고 자기 내부로 흡수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런 지배구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지배구조를 깨고 자치와 자립의 구조를 회복시킬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재원과 사람만 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들만 오가고 있다. ‘모델만 만들면’ 어떤 지역에서든 똑같이 찍어낼 수 있다는 환상이 팽배해 있다.

그리고 그나마 얘기되는 대안적인 지역비전마저도 중앙집권화된 국가전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진보전인 전략, 산업화 노선을 위해 희생을 거듭해온 농민과 농업, 농촌공동체를 회복시킬 진보적인 지역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전략을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고 지역전략마저도 중앙에서 구상된다. ‘우리가 집권하면’이라는 꿈같은 얘기에 다른 모든 걸 보류해온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진보라는 말이 삶터와 일터를 철저히 구분했고 일터의 진보성이 때로는 지역생활의 보수성과 연결된다는 점은 회피되었다. 왜 진보세력은 언제나 지역사회에서 소수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강력한 연대의 관계망을 구성하지 못할까? 일상생활이 어떻게 체제와 촘촘히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지, 일상의 공간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의식을 보수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생산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매달려’ 생활을 방관해온 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에겐 기대고 싶은 희망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진보적인 지역체제는 대체 어떤 것일까? 영국 노동당의 좌파시장 켄 리빙스턴이 이끌던 런던은 한때 대처 정부에 맞서는 양산박이 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뽀르뚜 알레그리라는 도시를 자신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우리 진보정당의 그림은 무엇인가? 의정활동 우수의원을 꼽으면 대부분이 진보정당 의원들인데도 왜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까? 현안에 밀려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전략은 모래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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