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1.06.21 08:03

내 나이 마흔 하나, 예비군도 끝났고 이제 민방위도 끝날 나이이다. 그러니 군대에 관해 다시 생각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 사는 일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찌하다 보니 군대에 관한 책도 한 권 쓰게 되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군대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고, 대학과 거리가 먼 우리 동네 청년들에게도 어김없이 영장은 날아온다.


내게 선배(?)군인으로서 조언을 구할 때마다 고민이 생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친분 있는 병역거부자들을 예로 들며 군대를 거부하라고 권할까?(나도 못 했으면서!) 아니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하나마나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얘기를 해줄까?(즐길 게 없다는 걸 알면서!)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 너무 걱정 말라며 등을 두들겨줄까?(군대에 다시 가라면 절대로 가지 않을 거면서!) 나도 갔다 왔으니 너도 가서 고생 한번 해보라는 식의 악담을 할까?(본전 생각?)


사실 군대라는 주제는 아직도 내게 무거운 주제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제 군번을 외우지는 못한다는 점이다(불행하게도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은 지금도 불쑥 튀어나오지만). 무거운 얘기들을 글로 꺼내자니 걱정이 앞서고, 마감날이 다가오자 결국 새벽에 잠이 깨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아직도 가끔 가위눌린 듯 군대 꿈을 꾼다).



나의 심심한 군대 이야기


나는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의정부의 306보충대를 거쳐 철원의 6사단에 배치를 받았다. 휴가와 각종 부대업무를 담당하는 중대 행정병으로 배치되었다가 시위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쫓겨나 위병소 근무를 서기도 하고 매점(PX)을 관리하다 다시 행정반으로 복귀되는 등 부대 내에서 뺑뺑이를 돌다 큰 사고 없이 제대했다(다행스럽게도 남자들 사이에 흔하다는 수색대나 스나이퍼를 할 기회가 없었다).


에피소드라면, 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더니 대학 후배가 소대장을 맡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건만 하필이면 그가 화생방 훈련 교관이었다.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던 그는 혹시 형이 자기 학교에 다녔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그 학교를 다녔다고 대답했다. 그 후배의 당혹스러운 눈동자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고 대기하던 중, 어느 일병이 고향과 고등학교를 묻기에 대답했더니 자기랑 같은 학교라고 아주 좋아하며 기수를 묻더라. 허나 그는 나의 6년 후배였다(그 때는 나도 동안이었단 말인가?). 짧은 물음과 대답 이후 긴 침묵이 이어지는 곳, 군대는 그런 곳이다.


침묵은 지겨웠지만 군대는 나름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가라 영수증 만들기와 숫자 맞추기는 지금도 요긴하게 써먹곤 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군인들의 생활을 무조건 악의 온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계급이 사회적 격차를 의식하지 않고 그야말로 짬밥 순대로 대할 수 있는 곳은 한국사회에 군대 밖에 없었다(물론 그곳에도 특권층은 있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밉지만 그 속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채워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다른 관계로는 채울 수 없는 ‘군대동기’라는 관계.


막상 갔다 오니 별것 아닌 것도 같은데 나는 왜 27살까지 군대를 미뤘을까? 그 당시에는 총을 든 폭력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외려 나중을 대비해서 그런 기술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폭력이 군대를 미룬 이유는 아니었다. 문제는 군대라는 ‘조직’이었다. 하극상(下剋上)을 친구로 삼아온 내게 일방적인 조직은 독약과 같았다(군대에서 그런 독약이 내 속에도 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군대가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라면 누가 입대를 거부할까?


군인들의 삶과 별도로 군대라는 조직은 분명 폭력적인 조직이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군대는 권력을 가진 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조직이고, 생명을 해치기 위한 조직이다. 그곳에 있다 보면 판단의 기준이 영향을 받고 폭력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것이 세상과 인간을 보는 잣대라는 건, 그 잣대가 타인에 대한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건 위험하다.


조심을 했음에도 군대에 갔다 온 뒤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군대를 회피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적개심이 샘솟았다. 군대를 면제받았다는 사회 지도층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았다. 그 적개심과 분노가 온전히 불공평과 부조리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였을까를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위안을 삼는다).


이 부조리한 분노가 언젠가 영장을 받을지 모를 우리 아들에게는 전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모든 젊은이를 군대에 보내 사람을 만들려는 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달라진 군대 이야기


최근에 대학생이나 청년들과 만나며 느끼는 점은 군대에 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했다는 여학생이 수업에 등장했고, 숙명여대에는 여대생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만들어졌다. 수업시간에 군대나 군가산점에 관한 토론을 붙이면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온다. 여자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남학생들의 얘기에 여학생들이 심심찮게 공감하고 청춘을 바쳤으니 군가산점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여학생들이 말하기도 한다. 이제는 군대도 ‘스펙’이고 ‘직장’이다.


전쟁의 위협이 실감나지 않는 곳에서 군대는 위험한 곳이 아니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연평도가 포격을 당해도 쉽게 전쟁이 벌어지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영장을 받을 때의 부담감이 줄어든다. 그리고 요즘은 구타도 줄어들고 인터넷도 하며 ‘우리 군대가 달라졌어요’라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니 거부감도 좀 줄어든다(등록금도 비싼데, 한번 정도 쉬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폭력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폭력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의 폭력성이 군대의 폭력성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고, 대중매체나 게임, 영화 등에서 느끼는 폭력성이 감수성을 둔하게 만든다. 폭력이 오락으로 변한 세상에서 군대는 ‘우정(?)의 무대’이다.


또한 조금 바꿔 생각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직장도 군대이다. 비정규직에 적은 월급을 받아도 끽 소리 못하고 상급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사회가 빡세지는 만큼 군대의 빡셈은 거쳐야할 과정일 뿐이다. 어차피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한국사회, 군대에 잘 적응하면 직장에도 잘 적응한다니 군대는 나의 사회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일지 모른다.


물론 여전히 군대는 청춘을 갉아먹는 곳이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시간을 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 등록금도 비싼데, 한번쯤 휴학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심지어 군대에서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억압적인 조직문화도 계급‘놀이’로 여기면 느낌이 달라진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계급장(아이템)을 먹으면 내 위치도 달라지니 무조건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심지어 군가산점제도까지 부활된다니).


그리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지만 요즘은 군화를 거꾸로 신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차피 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이니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또 모두가 가야 하는 군대에 가지 않는 나쁜 인간들이 있다지만 그건 일종의 능력같기도 하고 그걸 비난하자니 그 모습이 좀 찌질해 보이기도 한다.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부정(不正)도 능력이 아닌가? 능력껏 빠지는 게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쿨한 시대에는 청년들의 가슴과 머리도 차갑게 식는다.



나는 사람이 되기 싫다!


차갑게 식어버린 한국사회에서는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소총을 들고 안보교육을 받곤 한다. 동네에서 서로에게 비비탄을 쏘며 장난감총(정말 장난감일까?)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철없는 어른들의 작품이다.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은 미래의 군인으로, 바람직한 인간으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도대체 그 말에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아직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이지만 그 기준이 군대라니 우울할 뿐이다.


다행히 우울한 시대에도 희망은 꽃핀다. 얼마 전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친구를 면회했다. 두꺼운 유리벽, 마이크와 스피커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우울한 상황에서도 그 친구는 유쾌했다. 다행스럽게도 군대든, 감옥이든, 어느 곳에서나 사람은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에 있는가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우리는 아직까지 자신을 확신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그들이 강요하는 사람의 길을 걷지 않는 것, 그것이 큰 힘이다.


내년이면 감방에서 그 무게를 견디고 있는 그 친구와 술잔을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우정과 사랑이 없다면 힘겨운 세상을 어찌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군대의 가장 큰 적은 로맨티스트이다. 우정과 사랑을 즐기고 지킬 줄 아는 사람, 복불복의 경쟁 사회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이다. 나는 사람이기 싫은 암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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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1.30 14:13


나는 <GO>라는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 어느 한 편에 소속되어 그 집단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보호받는 삶을 거부하는 삐딱한 주인공들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 영화에 매력을 더하는 한 장면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투를 통해 세상을 가르쳐주는 장면이다. 다소 폭력적이지만 아버지는 주먹을 뻗어 그리는 원 안의 세상에 머문다면 안정적이지만 그 원을 벗어나면 어려움에 부딪치고 그런 어려움을 이기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아들에게 얘기한다.

하지만 강해져야 한다는 게 일방적인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 강해져야 한다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희생과 인내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쓰려는 폭력적인 합리성일 뿐이다. 그런데 <GO>는 그런 폭력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우정과 사랑이 타인과 더불어 살고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을 알려주기에 매력적인 영화이다.

사실 강해지는 방법은 몸을 단련하거나 집단을 만드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사상(思想)을 꼽고 싶다. 조금 엉성하고 세련되지 않더라도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돈이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사상은 꿈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상은 그 뜻 그대로 마음과 눈으로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을 돌아보고 내다보며 삶을 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힘, 그것이 바로 사상이다.

그래서 사상은 단순한 언어를 모아놓은 관념일 수 없다. “여러분은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열망을 가졌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마음 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유익한 것입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이나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는 체게바라의 말은 사상이 세계를 바꾸는 힘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그러니 사상의 자유는 삶과 세상의 변화를 꿈꿀 자유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런 소중한 자유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케케묵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잣대를 다시 들이대고 있고 사이버모욕죄라는 새로운 검열제도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 ‘국가경쟁력’을 내세워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며 약자들의 저항수단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저들의 논리는 철저하게 힘에만 의존하기에 폭력적이고 그렇기에 그것에는 사상이 없다. 저들은 단지 폭력을 사용해서 우리에게서 변화와 꿈을 빼앗으려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민주적인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동안 사상의 숨통을 조여 왔다. 우리에게 사상은 언제나 어떤 ‘~주의(~ism)’만을 뜻했고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생각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규범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런 다양성은 언제나 ‘~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만 인정되었다. 즉 우리는 모두가 꿈을 꾸고 사상을 누릴 자유를 얘기하지 않고 모두가 같은 꿈을 꾸거나 같은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더 분명하게 얘기하면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도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되뇌는 것 외에 자기 사상을 만들지 못했다. 언제나 당면과제만을 생각했지 꿈을 꾸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누군가에게 아주 명쾌한 설명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상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말이다. 그러니 사상의 자유가 지금 위기를 맞이한 듯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사상은 계속 위기를 경험해 왔다.

저들의 국가보안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사상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비판해 왔지만, 그것을 넘어설 다른 틀을 만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 낡은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꿀 희망의 원리를 우리는 구성하지 못했다. 자기가 내밀 수 있는 주먹의 경계 안에서만 세상을 보고 그 경계를 넘어서려 하지 않았고, 그 경계는 사상간의 넘나듦과 꿈의 공유를 방해했다.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그 경계를 넘어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비폭력이다. 비폭력의 의미는 경찰의 공권력같은 직접적인 폭력에 맞선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쇠고기 수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구조적인 폭력, 눈에 보이지 않게 천천히 우리 삶을 파괴하는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생명체에게 가하는 폭력이, 그리고 그런 폭력을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강대국’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직접적인 폭력의 구조는 비정규직의 양산이나 민영화라는 간접적인 폭력의 구조와 같은 것이다. 자기 동료를 먹으며 살을 찌우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신세란 끝없는 경쟁 속에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우리의 신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의 순환구조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간접적인 구조적 폭력에도 적극적으로 맞서는 비폭력이야말로 새로운 사상을 구현할 희망의 언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비폭력의 언어는 단지 인간의 것으로 제한되지도 않는다. 오체투지순례단의 눈물겨운 발걸음이 절망만 주지 않고 희망도 주는 건 주위의 다른 사물과 생명을 서로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는 단지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나 방식만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많은 희망의 언어들을 담고 있다(뉴라이트를 비롯한 케케묵은 집단들이나 정치인들이 80년대 운동권의 방식을 열심히 배워 써먹더라도 결코 베낄 수 없는 건 이런 행동 속에 담긴 마음과 사상이다). 이제 사상은 여러 가지 뜻 깊은 실천 속에 담긴 의미들로 새로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상의 자유는 단지 국가보안법 폐지로 완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상은 검열이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것은 원래 자유로운 것이다). 사상은 국가보안이나 질서와 같은 기존의 논리를 넘어서 다른 새로운 무엇으로 나가려는 것이자 나와 세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는 개인의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상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다. 사상이 없는 감정적인 연대는 사회적인 조건이나 분위기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언제나 약하다. 하지만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우리를 세상에 내려앉힌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사상의 자유라 믿는다. 그것은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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