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0.09.07 18:59

지난 몇 년간 지역사회를 살릴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의제, 지역재생,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 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다양한 방법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안적인 지역발전의 모습을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방법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많은 중요성을 가진다.

허나 아무리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이라도 그것이 우리사회의 성격과 맞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1980년대에는 국가의 성격을 놓고 사회구성체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치열함이 없고 더더구나 지역사회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논쟁도 없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한 방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프로젝트만 있지 장기적인 발전전략이나 비전이 없다. 지식인, 활동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단기적인 사례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들여온 방법들도 이런 단기적인 프로그램을 짜는데 이리저리 짜깁기식으로 활용될 뿐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짜려면 우리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관계를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 나는 지난 100년 이상의 흐름을 봐야 지역사회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가령 동학혁명으로 대표되는 민중의 자치·자립에 대한 욕구와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두레와 동회, 계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들로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들은 단지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삶까지 두루 헤아리는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런 강력한 뿌리가 있었기에 일제 식민지, 군부독재 시기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합운동과 저항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강했기에 일제 총독부와 해방 이후의 미군정, 군부독재는 그런 자치와 자립의 흐름을 파괴시키고 자기 내부로 흡수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런 지배구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지배구조를 깨고 자치와 자립의 구조를 회복시킬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재원과 사람만 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들만 오가고 있다. ‘모델만 만들면’ 어떤 지역에서든 똑같이 찍어낼 수 있다는 환상이 팽배해 있다.

그리고 그나마 얘기되는 대안적인 지역비전마저도 중앙집권화된 국가전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진보전인 전략, 산업화 노선을 위해 희생을 거듭해온 농민과 농업, 농촌공동체를 회복시킬 진보적인 지역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전략을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고 지역전략마저도 중앙에서 구상된다. ‘우리가 집권하면’이라는 꿈같은 얘기에 다른 모든 걸 보류해온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진보라는 말이 삶터와 일터를 철저히 구분했고 일터의 진보성이 때로는 지역생활의 보수성과 연결된다는 점은 회피되었다. 왜 진보세력은 언제나 지역사회에서 소수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강력한 연대의 관계망을 구성하지 못할까? 일상생활이 어떻게 체제와 촘촘히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지, 일상의 공간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의식을 보수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생산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매달려’ 생활을 방관해온 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에겐 기대고 싶은 희망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진보적인 지역체제는 대체 어떤 것일까? 영국 노동당의 좌파시장 켄 리빙스턴이 이끌던 런던은 한때 대처 정부에 맞서는 양산박이 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뽀르뚜 알레그리라는 도시를 자신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우리 진보정당의 그림은 무엇인가? 의정활동 우수의원을 꼽으면 대부분이 진보정당 의원들인데도 왜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까? 현안에 밀려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전략은 모래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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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8.13 10:59

8월 25일부터 열리는 제주인권회의에서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아직 인권에 대해 감이 오지 않지만 그동안의 고민을 좀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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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1. 올바름에서 풀뿌리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외치는 ‘착한 교육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농촌마을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가난한 농민을 만나게 된다.


“박사님, 민중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는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집 구조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형편없는 시설에 대해, 극도로 좁은 공간에 온 가족이 몸을 구겨넣어야 하는 형편에 대해 일러주었다.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마저 마련할 돈이 없다고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에겐 행복할 권리나 희망을 가질 권리가 금지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자, 박사님, 뭐가 다른지 봅시다. 박사님도 댁에 가면 피곤할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박사님은 하시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랴, 글 쓰랴, 독서하랴, 이런 연설을 하랴, 바쁘시겠지요. 그런 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박사님, 지친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한쪽은 자식들이 깨끗이 씻은 몸에 잘 차려입고 굶주리지 않고 잘 먹은 얼굴로 맞이하는데, 다른 한쪽은 더럽고, 굶주리고, 빽빽 울고, 시끄러운 아이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네 민초들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상처받고 상심하고 절망한 채로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식을 때리고, 그것도 ‘도가 지나치게’ 때린다면, 박사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삶이 너무나 힘든 까닭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지만, 이것은 계급적 지식이다.[각주:1]


이런 경험을 통해 프레이리는 ‘착한 교육학자’에서 ‘민중의 교육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그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의 경험은 특히 정치적 교육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습과정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정치적 교육이 진보적이려면 민중 집단이 만들어낸 세계 읽기와 민중의 담론, 민중의 구문, 민중의 의미, 민중의 꿈과 욕구에서 표현되는 세계 읽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각주:2]


나는 인권이 풀뿌리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이런 만남에서 찾고 싶다. 인권이 제아무리 정당하고 올바른 개념과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의 시선과 언어, 꿈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이런 관점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실제 활동에서 녹여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삶을 바꾸려는 풀뿌리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상가 장일순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긍정으로 가는 것 아닌가? 예수가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참된 자기를 얻는데 그 참된 자기라는 게 뭐냐 하면 우주의 본체와 같은 것임을 깨닫는 거라. 그러니까 여기서 ‘신비로운 수동성’이란, 위대한 자기 긍정에 이르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말한다고 봐야겠지.”[각주:3]
나 속의 타자, 우리 속의 타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아니, 타자 속의 나, 그 속의 우리를 보며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장일순 스스로도 이런 글을 남겼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 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밝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을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에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각주:4]


사상가 함석헌 역시 자신을 바꾸고 초월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부정을 못하고 제가 사람인 줄만 알고, 제가 심판자․개혁자․지도자인 의식만 가지고 제가 스스로 죄수요 타락자요 어리석은 자임을 의식 못하는 사람은 혁명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잡는 것 아니라 명(命)을 바로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각주:5]


 풀뿌리의 관점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욕구를 실현할 기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밖과 소통하지만 내부에 깃든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각자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보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혼자 서는 못할 일을 함께 이루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인권은 지식인이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민중의 언어로, 전문가나 활동가의 활동에서 민중의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럴 때 류은숙의 말처럼 “인권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각주:6] 그렇다면 지금의 인권담론은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언어로 거듭나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런 노력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풀뿌리 민중의 정치행위로 이해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학교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세계인권선언이나 사회권규약을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고 설령 배운다 하더라도 실제로 써먹기 어렵다.[각주:7]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있지만,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두발자유를 단속하고 체벌을 가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전문가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일반 대중의 언어로 체화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풀뿌리의 관점은 이런 징검다리를 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인권담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 풀뿌리운동이 결합될 수 있다.



2. 인권과 풀뿌리운동의 확장, 무엇이 마을인가?


반대로 인권의 관점은 기존의 풀뿌리운동이 관심을 가져온 영역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은 그동안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풀뿌리운동의 주요한 의제도 보육이나 청소년, 주부와 연관된 것들로 제한되었다. 물론 풀뿌리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으로 확장되고, 의제가 평화나 주거권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운동의 주된 흐름은 ‘가족’을 중심에 둔다.


예를 들어, <시민의신문>과 <한국청년연합회(KYC)>가 엮은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풀뿌리가 희망이다』(시금치, 2005)는 <광명YMCA>를 비롯한 11곳을 대표적인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그리고 김기현의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이매진, 2007)는 <부천YMCA>의 녹색가게, <광명YMCA>의 등대생협, 부산의 <희망세상>, 안성의 <안성의료생협>, 네 곳을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또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이음, 2008)은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대전여민회>의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북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강원의 원주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 강원도 철암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의 <희망세상> 등 9곳을 풀뿌리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들은 앞서 지적한 바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인식의 격차는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김영현: 아무래도 결혼 중심으로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도 생협 조합원이고 성미산 지키기에 서명도 했지만,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어요.

위성남: 가족 중심의 커뮤니티고, 삼사십 대가 많고, 미혼 커뮤니티는 아주 취약하죠. 미혼이 최근에 늘어나는 추세인데 독자적인 자기 커뮤니티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죠. 기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고민이나 관심사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저같은 기혼이 미혼커뮤니티를 대신 고민해줄 수는 없잖아요? 바라만 보고 있죠. 언제될지 모르지만 본인들이 아쉽고 답답하면 만들겠지 하면서.……

………

권김영현: 기존 커뮤니티에 접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 쉼터나 성소수자 커뮤니티처럼 마을에서 공개되지 않는 커뮤니티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가 지역운동과는 연결되기에는 어려운 조건들이 있는 것 같아요.[각주:8]


한편으로 풀뿌리운동이 강조하는 ‘스스로의 변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배타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풀뿌리운동 또한 철저한 자기부정이라는 성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기부정 없이 ‘우리’만 부각되다 보면 풀뿌리운동이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풀뿌리운동이 일상적인 생활정치 속에 소수자의 시각을 녹여내고 그것이 가진 차이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도현의 글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라 그로스Nora E. Groce라는 사회학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 섬인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에서 농인deaf people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섬에서 농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만의 농 문화를 형성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농인들은 지역사회의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각주:9] 그렇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시점에서 풀뿌리운동은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단지 장애운동만이 아니다. 풀뿌리운동은 아이들의 언어, 주부의 언어, 장애인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가? 풀뿌리운동은 공용어를 찾으며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인권운동이 발전시켜온 감수성과 합리성은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도시’로, ‘주부들을 위한 정치’에서 ‘주부들의 정치’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도시’에서 ‘장애인의 도시’로 우리 운동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풀뿌리운동과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와 인권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짐 아이프(Jim Ife)의 물음은 그 어려움을 잘 드러내 준다. “지역사회개발은 인권의 기본원칙에 역행하여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대원칙은 지역사회개발에 있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에 대한 경계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가 지역사회 활동가에게 인종차별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지역사회 활동가는 지역사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고(이러한 거절이 지역사회 자결 원칙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정당한 거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언제나 이처럼 명쾌할 수만은 없다. 인권은 논쟁적인 개입이므로, 지역사회 활동가는 때로 지역사회와 인권에 관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인권에 관한 논쟁은 그 지역사회 내에서 인권이 어떻게 규정되고, 어떻게 이해되는가, 다른 곳에서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방식의 지역사회개발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각주:10]


풀뿌리운동이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만큼 인권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나 “열 사람의 한걸음”같은 구호보다 그 사이의 실천이, 그 실천을 위한 관심과 행동을 유도할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3. 국가에서 지역사회, 마을로


어떤 면에서 인권의 탄생과 확산은 근대국가체계의 형성․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그러하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도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얘기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체제의 형성과 법질서를 통해 구현되고 국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하는’(당위) 정치적 결사체로 얘기된다. 인권은 사회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계약의 목적으로 선언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자연상태에서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는 국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을까? 이런 가상의 자연상태에 관한 전제가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방해한다. ‘현재의 국가’가 문제일 뿐 정녕 ‘미래의 국가’는 인권을 수호하는 파수꾼이 될 수 있을까? 허나 국가는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관료조직의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자율성을 가진 국가, 착한 국가는 가능할까? 이런 얘기를 길게 하다보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시점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인식틀frame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중심에 둔 사회구성체 논쟁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마을, 자치와 자급이라는 인식틀로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전과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제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복지국가의 모델이 여전히 중요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의 논의만 살펴도 서구의 복지국가 내에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왜곡되었는지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없이 서구의 복지국가가 가능했을까? 복지국가는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났을까?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는 복지국가가 사회의 대안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앞서 간단히 살펴본 네 가지의 정책전략[복지국가 옹호, 뉴라이트, 조합주의, 마르크스주의―인용자] 중 어떤 것을 사용하더라도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장 중심의 사회․경제․정치적 시스템―복지국가는 그 내부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은 한순간도 환경파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사회의 발전된 형태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사회변동의 구조로서 (생태학적 관점에 기초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다른 구조, 다른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각주:11]
심지어 아이프는 복지국가의 장점이라 얘기되는 적절한 최저생계 보장, 사회적 불평등 감소, 공평성이 실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의 기밀성, 사회의 익명성, 관료주의 등이 강화되었을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각주:12]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국가에서 사는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정책과 그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둔다면 복지국가 모델은 여전히 중요하게 보일지 모른다. 대중의 능력을 얕잡아 보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자비로운 시각이야말로 나쁜 국가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고 참아야 하는 딜레마일까? 그렇지만 왜 그런 자신의 가치와 믿음이 우리의 미래이어야 할까? 특히나 식민지의 국가구조와 교육체계, 정신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채 식민성의 굴레에 갇혀 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가 외부적인 기준에 맞춰 자기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국가와 개인의 계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개별자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인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개인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로버트 오언R. Owen은 이를 “우리가 지금 주장하는 원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한결같이 실현되는 자신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인적 행복은 주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늘리고 확장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각주:13] 그리고 이런 식의 관념은 이미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생각이다.[각주:14]


이런 인간관을 받아들인다면 요구하는 권리에서 구성하는 권리로 논의가 확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치와 자급의 마을이 구성된다면 그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힘과 관계도 그만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인간의 욕구와 역량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그 내부의 기준에 따라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인식틀의 전환이 중요하다. 중앙정부, 민족/국민국가에 맞춰진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내가 디디고 있는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와 관련해 최근 인권과 관련된 조례들이 제정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조례들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교육감, 전북교육감 등이 추진중인 학생인권조례보다 앞서, 2004년 1월 목포시는 ‘목포시건축물의 허가 등에 있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의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고 신축되는 병원, 공공시설 등 대형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사전점검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의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서 외국인 주민이 정책이나 공공시설물 이용, 고용과 관련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광주광역시가 2009년 10월에 제정한 ‘광주광역시 인권 증진 및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조례’ 역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도시의 발전비전으로 인권을 내세운 조례이고 2010년 3월 경남도의회가 통과시킨 ‘경상남도 인권증진 조례안’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례들이 지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안산시가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을 기반으로 다문화라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광주광역시의 인권조례가 민주, 인권, 평화를 내세운 도시개발이나 지역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비판은 그 진의(眞意)를 의심케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조례 제정이 시민문화나 아래로부터의 동력 없이 진행되거나 그런 동력을 제도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조례가 다른 조례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가이다. 하나의 조례만으로 지역사회가 혁명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는 조례로 표현되는 제도화와 그 합의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화적인 영역들이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아이린 칸이 지적하는 바는 곱씹어 볼 만하다. “페루는 남미에서 산모와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특히 지방 원주민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산 호세 드 세까의 마을과 오코페카, 후쿠마키리, 상끄와 루페이의 공동체들, 안데스의 아야쿠초에서는 지역 NGO주도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거리와 비용, 부족한 시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그들의 문화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직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시설을 찾아가는 일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와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년 동안 관계가 향상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설을 이용하였고 마을의 전통적인 산파들과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출산환경이나 출산전후 관리가 그 지역문화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 있는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거나, 출산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것, 혹은 태반을 가족에게 돌려주어 직접 묻게 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들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고 그 지역언어로 설명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사망률이나 환자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경우를 통해 우리는 소외문제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가난한 여성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할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배울 수 있다.”[각주:15]


조례는 지역사회의 법이고 법은 시민의 공공성과 여론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조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지역성을 반영할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사회운동의 힘을 제도로 잘 흡수한 참여예산제도가 한국사회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련된 정보와 참여의 부족, 지역과 맞지 않는 기계적인 제도의 도입, 제도의 발전과정에 대한 평가의 부족 때문이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과 풀뿌리가 만나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다.


인권과 풀뿌리의 만남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을 일구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밑거름으로 변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인권과 풀뿌리는 가진 자들의 삶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사람들, 허나 채우기 위해 버릴 줄도 아는 사람들의 삶에서 꽃피기 때문이다.

  1.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38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27쪽. [본문으로]
  3. 장일순․이현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 2003), 108쪽. [본문으로]
  4. 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시골생활, 2010), 26~27쪽. [본문으로]
  5. 함석헌, [들사람 얼](한길사, 2001), 28쪽. “정치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기술과 제도를 내는 것이요, 철학자․도덕가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도리어 지혜를 가르치고 힘을 주는 것이다. 나라는 씨의 나라요 세계는 씨의 세계다.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사실 이날껏 민중이라면 구더기같이 업신여기고 더럽게 안 것이 낡은 윤리와 사상의 특색이었다. 들이 다 그것이다.”(같은 책, 236쪽) [본문으로]
  6.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8쪽. [본문으로]
  7. 김순천, 『대학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2009)을 보라. [본문으로]
  8.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제 41호(2009년 11․12월호). [본문으로]
  9.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47쪽. [본문으로]
  10. 짐 아이프 지음, 류혜정 옮김, 『지역사회개발』(인간과복지, 2005), 150쪽. [본문으로]
  11. 짐 아이프, 앞의 책, 43쪽. [본문으로]
  12. 같은 책, 61쪽 [본문으로]
  13. 로버트 오언 지음, 하승우 옮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지만지, 2009), 27쪽. [본문으로]
  14.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1997)이나 김종철, 『간디의 물레』(녹색평론, 1999)를 보라. [본문으로]
  15.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들리지 않는 진실: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 16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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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6.07 08:59
 

좌파와 출파: 역사의 이단은 어떻게 등장하나?



조경달의 『이단의 민중반란』(역사비평사, 2008)과 『민중과 유토피아』(역사비평사, 2009)를 읽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역사학자 조경달은 근대 이행기의 민중운동이 자율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근대 이행기의 민중운동을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민족운동과 혼동”하면 안 되고 “민중이 자신들의 생활주의에서 비롯된 고유한 문화와 논리를 가지는 이상, 비록 지식인들의 지도를 받아들였더라도 그 운동에는 자율적인 측면이 많이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 증거로서 조경달은 갑오농민전쟁과 동학, 3․1운동 등 각지의 민중반란을 분석한다.


이런 연구를 통해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조경달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근대사가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목표를 향해 발전되었다는 주장은 허구이다. 조경달의 목소리를 빌리면, “유토피아와 현실의 국가는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국가는 민중의 유토피아사상을 배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점은 근대국가의 창설이 실패해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현재로부터 제기되는 중요한 의문, 즉 민중의 입장에서 근대=국민국가란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던가 하는 의문을 조선 근대사의 맥락에서도 제기해야만 한다. 아직도 통일국가를 실현할 수 없는 회한에 가득 찬 조선의 현실은 자칫하면 국민국가를 이상화理想化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그러한 불행한 현실이 있기 때문에 조선은 유토피아로서 국가의 상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민중과 국가의 관계를 다시금 냉정히 바라보는 지평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조경달은 『이단의 민중반란』에서 갑오농민전쟁을 꼼꼼히 분석한다. 최제우의 원시동학과 최시형의 정통동학이 만든 체계의 틈에서 서장옥과 전봉준, 김개남의 이단동학이 자라고 민중들은 이에 열광한다. 조경달은 흔히 갑오농민전쟁의 성과로 알려진 집강소에 대해서도 그것이 실제로는 ‘관민상화’의 산물, 즉 힘을 잃은 공권력이 반란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본다. 결론을 보면, 조경달은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민중이 변혁의 주체로 등장하기는 했으나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지는 못했다고 분석한다. “변혁의 주체를 단 한 사람의 초인적 진인=구세주에서 총체적인 민중으로 확대하고자 한 것이야말로 동학의 획기적인 면”이지만 국왕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근대에 저항하는 반근대적 변혁지향을 품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 역사에서 다양한 정치적 계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조경달은 임술민란이 민란시대를 알린 신호탄이라 얘기한다. 조경달은 수령구조에서 소외된 몰락양반이나 향촌 지식인들이 ‘덕망가적 질서’를 갖췄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덕망과 정의감이 있는 사족이 존재하기를 바라고 그들에 의해 향촌의 질서가 조화롭게 재생하기를 기대하는 심성”을 가진 민중이 이들과 함께 일종의 유토피아를 꿈꿨다고 본다.


임술민란이 일어날 당시 전라좌도 3읍 암행어사였던 김원성金元性은 이런 보고를 남겼다고 한다. “호남(전라도)의 여러 읍에는 출파出波와 좌파坐波의 명맥이 있는데, 모두 향유鄕儒 가운데서 문자를 조금 해독하고 자못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관정官政을 살펴 득실을 논하고 시비를 말하며 잘못을 기꺼이 비방한다. 앉아서 지휘하는 자를 좌파라 하고, 분주하게 노동하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서 경향京鄕으로 출몰하는 자를 출파라 한다. 이번 여러 읍의 소요는 (사람들이) 관리의 가혹한 정치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른바 수창자首昌者는 출파나 좌파와 같은 자들이다.”


흥미로운 기록이다. 반란의 수장인 출파와 좌파라. 이 구절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시대에 스스로를 좌파라 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중들 사이에서 조그만 권력을 가진 그들은 외국의 급진적인 이론을 수입하기에 바쁘고 권력을 비방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분주하게 일하며 그들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좌파들은 ‘앉아서 지휘’하고자 한다. 자신들은 큰 판을 읽으며 마치 도박바둑을 두듯이 말을 움직이려 한다. 저만큼 떨어져서 보면 크게 읽을 수 있겠지만 가까이 가서 두루 살피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정통이 필요하지만 이단도 필요한 것은 현실의 층이 다양하고 사람들의 삶 역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주하게 노동하고 움직이며 온갖 동네에서 출몰하는’ 출파가 필요하다. 민중과 더불어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출파들은 곳곳에 반란의 씨앗을 심고 기운을 일으켰다. 출파와 좌파의 힘이 모이고 민중들이 함께 꿈틀거리면서 반란이 일어났다.


허나 모두가 앉아서 지휘하려 들면, 자연히 분란이 생기고 망할 수밖에 없다. 분란과 갈등이 생기는 건 부정적이지 않지만 앉아서 지휘하는 자들의 분란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좌파만 수두룩하고 출파는 거의 없거나 인정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이단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좌파들은 더불어 꿈꾸기를 주저한다. 자신의 순수성이 훼손될까 걱정일까, 아니면 함께 하길 싫어하는 천성일까? 혼자 고고한 삶을 추구하다보니 ‘명망’은 높지만 ‘덕망’은 낮다. 똑똑하고 말을 잘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좌파가 하지 못한다면 출파가 그런 역할을 보완해야 할 터인데 좌파는 넘쳐 나지만 출파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거듭 반란의 실패를 경험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출파의 모습을 풀뿌리운동에서 본다. 풀뿌리의 힘이 강해질수록 이단의 힘도 강해지고 새로운 반란이 싹을 틔울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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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5.23 10:19
 

모두들 살기 힘든 세상이라 얘기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는데도 도무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삶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행복을 예감하기 어려울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중요한 원인이 자발성의 부족과 공적 행복에 대한 무지라고 봅니다. 한때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그들 사이에 신뢰와 규범, 연결망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지요. 그런 사회자본이 형성되려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관계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화된 한국사회에서 ‘이웃사촌’은 이미 옛날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요즘처럼 남과 경쟁하느라 바쁜 시절에 누가 남과 관계를 맺으려 할까요? 오히려 관계를 맺으면 맘 편히 경쟁하기 어렵고 내 요구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어려우니 모르고 사는 게 더 좋고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사회처럼 개인주의를 따르는 합리성이 옳다며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실업과 에너지 위기, 식량위기, 온갖 위기들을 헤쳐가려면 혼자 힘으론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국인들도 차츰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젖어왔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볼링을 즐기던 생활에서 벗어나 공동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관계의 가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개인주의를 보지만 정작 미국사회는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자원활동이 시도되며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라고 생각하면 등을 돌리게 됩니다. 자원활동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려면 주어진 역할보다 스스로 계획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즉 자원활동가들의 권한이 커져야 합니다. 자원해서 하는 일이니만큼 반드시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평범한 시민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첫걸음을 떼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꼭 내가 해야 하나?”, “괜히 참여했다가 나만 피곤해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떠돕니다. 그러다보면 조심스런 관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첫걸음을 쉽게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먼저 걸음을 뗀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자원활동을 시작하면 저런 행복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첫걸음을 떼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와, 저거 굉장히 귀찮고 어렵겠구나


시작부터 이런 계획이 성공하긴 어렵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람이 성장하듯이 자원활동도 처음에는 더디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관심도 넓어지고 활동력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실패의 여부가 계획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패보다는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시민들의 역량이 강화되어야만 자원활동의 힘도 강해집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구체적인 정보입니다. 함께 하자고 아무리 권해도 정보가 없으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을이나 공동체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참여자의 눈높이에 맞춰져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마을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진행해서 주민들의 욕구나 공동체의 필요를 밝혀내고 그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참여의 장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정보 없이는 참여가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권한과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만 매달리면 자원활동이 계속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한국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보육, 교육 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높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 점에서 자원봉사센터가 그런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풀뿌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풀뿌리라는 말을 되뇌는 건 다시 떳떳한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풀뿌리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뿌리는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보자는,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입니다.

따라서 자원활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그래서 자원활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자원활동은 변화의 과정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목표여야 합니다.


그런데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내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는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의 독립운동을 분석하면서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을 개인의 생활에만 쓰는데, 아렌트는 혁명과 독립이라는 큰 사건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유에 행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독재자 밑에서 개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없듯이, 참된 행복은 건강하고 올바른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요즘처럼 어지럽고 복잡한 시대에 진정 자유로운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아렌트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원활동은 단순히 남을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자원활동은 나를 위한 활동이고 내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인 관계를 위한 활동입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부족에는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알려주는 말이지만 아이 한 명에 온 마을의 관계가 얽혀있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이렇게 관계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살려면 다른 사람도 더불어 행복해야 하고, 마을에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원활동도 결국에는 나의 행복을 위한 활동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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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4.26 16:53
 

선거로 제한된 정치적 상상력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20년을 맞이한다. 자치단체장선거가 1995년에 부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자치제도는 16년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실험을 거쳐 왔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사춘기를 지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갈 단계인데, 아직도 우리의 자치는 너무나 허약하다.


올해의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들처럼 ‘그냥 선거’일 뿐이지 정치의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말로만 ‘자치’를 떠들 뿐 자치의 실제 주인이어야 할 주민들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5+4’라는 선거연합만 논의되고 있지 주민들이 자치의 주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함께 지역의 정책과 비전을 세우며 정치인의 권력독점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은 선거가 중요하고 반MB,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단결하자고 말하지만 전라도로 가면 그 구호는 반민주당으로 바뀐다. 그리고 당비를 내는 민주당 당원의 비율이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8년 동안 집권했지만 자치의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시민단체들이 활용해온 시민후보 전술이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할까? 이런 물음에 충분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집권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활동이 시작되고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선거에 좀 집중해 보자. 200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정당들은 정치개혁을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자고 합의했다. 지구당은 정당의 중요한 기관인데 왜 개혁을 위해 폐지되었을까? 보수정당들은 지구당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천비리가 자주 불거지자 지구당을 폐지했고,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런 결정에 반발했지만 실정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구당이 폐지되고 시․도당만 유지되면서 각 지역의 당원조직들은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라는 애매한 기구들로 전환되었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정당은 공직자를 선출하고 다양한 지역의 이슈를 전국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고 이슈를 제기하는 지구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구당은 지역의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치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따라서 지구당 없는 정당조직을 생각하기 어렵고,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당연히 평당원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지구당을 중심으로 당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보수정당의 지구당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모두 없앤다면 우리 정치에서 남겨놓을 것은 없다. 오히려 지구당이 없다보니 지역의 억울함과 분노가 공식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중앙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중요한 결정들은 중앙에서 내려지고 사업들도 중앙의 이슈를 따른다. 중앙언론에서 보도되는 중앙의 이슈에는 민감하지만 당원들조차도 자기 마을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진보정당들조차 분권화된 정당구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장의 집권전략이 자치를 위한 정당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정당과 친하게 지내보려 해도 좀처럼 거리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당법은 지역정당의 출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현행 정당법은 로컬파티(local party)의 출현을 막고 있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을 창당하려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에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5개 이상 둬야 한다. 그래서 2006년 지방선거 때 시도된 충청북도 옥천의 풀뿌리옥천당은 정당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야 했다. 이런 정당법 하에서는 자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정당을 끼지 않고 시민이 선거에 참여하면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한다. 선거기호에서 뒤로 밀릴 뿐 아니라 선거운동도 나중에 시작해야 한다. 또 선거에 참여하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돈을 혼자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후보자로 등록을 하려면 시도지사의 경우 5천만원, 자치구청장이나 시장선거는 1천만원, 광역의원 선거는 300만원, 기초의원 선거는 2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누구나 선거에 후보자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는 뻥이고 제법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뜻을 품은 사람들을 지원할 후원회가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정치자금법 제 6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특별․광역시장, 시도지사에게만 정치인 후원회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법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뜻 있는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한다. 왜 아름다움을 가로막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이 선거과정을 혼탁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시민의 정치참여는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되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트위터만이 아니라 UCC나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은 정치적인 생각을 자유로이 나누며 토론하고 나쁜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도 교환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민들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홍길동처럼 집을 나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밖에.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 106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인이 집집마다 돈이나 물건을 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과 집집마다 들려서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정책을 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뽀샵으로 손질한 얼굴 말고 실제 얼굴을 알아야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당당하게 유권자의 요구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기초의원의 경우 그렇게 살갑게 만나야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진정 국민의 머슴이라면 집집마다 돌면서 품을 팔아야 옳으니 무조건 금지할 일이 아니다.


정치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공직선거법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제 60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와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선거운동조차 가로막는 것은 이주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정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어릴 적부터 경험해야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데 지금 법은 그 싹을 자르고 있다(최소한 교육감 선거에서라도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옳다). 풀뿌리의 우군은 이런 사람들인데 참여를 금지당하니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정책을 결정할 사람을 뽑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한 정치만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의 정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법이 일일이 나서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권리를 막으니 이를 어쩌나.



제도를 넘어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역의 시민들이,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야 자치는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삶의 기반이 너무 부실하다.


우리는 옛날보다 발전했다고 여기지만 적어도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살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정치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9, 20세기에 이 땅에서 수많은 민란들과 저항들이 나타났던 건 자존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정치문화, 자치와 자급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치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가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문화를 강제로 짓밟았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다.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고, 그 문화를 명령과 복종의 수동적인 문화로 대체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치문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문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죽어버린 법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다. 그런 행동들로 자극을 받고 새롭게 해석되면서 법은 조금씩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꿈이다. 꿈은 완성된 법전이 아니라 몸부림이고 꿈틀거림이다. 조그만 꿈틀거림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다. 중앙의 정치바람보다 자기 마을의 꿈틀거림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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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4.23 20:25
이사를 하면서 베란다를 가지게 되었다.
생명과 자급의 삶을 얘기하면서 정작 내 삶에는 자급의 여지가 없었는데, 베란다가 생기면서 이제 그 삶을 누리게 되었다.

플라스틱 화분이지만 그 속에 흙을 채우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아침 저녁으로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공기를 쐬여 주자 어느새 작은 싹들이 하나둘씩, 조금 지나니 무리를 지어 고개를 내밀었다.
저 가냘픈 것들이 어떻게 흙을 뚫고 나왔을까 신기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듯한 바싹 마른 씨앗에서 저리 푸른 싹이 자라다니...
새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진실되지 못한지를 깨닫는다.
이미 죽어버린 듯한 세상도 이렇게 작은 조건만 맞춰줘도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데,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니, 그 얼마나 오만한 말일까...
아침, 저녁으로 그 생명의 변화가 신기해서 베란다를 서성이곤 한다.

내친 김에 콩나물도 기르리라 맘 먹었다.
콩나물콩을 구해 물에 불렸다가 시루 속에 넣고 아침 저녁 시간 날때마다 물을 붓고 따르기를 반복했다.
가려줄 천이 없어 그냥 보자기를 접어 위에 가만히 덮어두었다.
정말 물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았건만 콩나물들은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일주일 지나니 먹을만치 길게 자랐고 어제 첫 수확을 했다.
첫 수확이니 나눠먹으려 친정집에 콩나물을 좀 보냈다.
남은 콩나물로 국을 끓여먹으니 왠지 마음이 다르다.
콩나물 대가리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생명은 조건만 맞춰지면 스스로 잘 자란다.
어떻게 클지는 그 자신만이 알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공부를 시킨다.
어느새 고추, 깻잎, 상추, 청경채, 쑥갓의 싹들이 베란다를 가득 메우면서, 얘들과 어떻게 더불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혹 비좁지는 않을까, 심을 곳과 흙을 더 구해 넓혀줄까, 남은 음식물로 퇴비를 만들어 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자라는 것들과 얘기를 나눈다.
쓰러진 작은 싹 하나라도 일으켜보려 신경을 쓰게 된다.

고맙다.
희망을 품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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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10.03.21 17:08
얼마전 수원행동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나눴던 내용이다.
선거에 대해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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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객민주주의 넘어서기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학교나 직장, 동네 등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의 모든 곳들이 민주주의와는 거의 상관없는 곳들이다. 경험한 적이 없으니 민주주의는 멀게만 느껴지고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나마 우리가 민주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곳은 선거 뿐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대표를 선택할 수 있고 대표가 헌신적으로 그들의 뜻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근대국가는 대중의 정치를 ‘선거로’ 제한했고 정치를 의회와 행정부의 전유물로 만들어 왔다. 근대는 정치인이 정책을 생산하고 유권자가 그 정책을 구매하는 시장으로 정치를 변질시켜 왔다. 우리는 관객처럼 물끄러미 그네들의 정치판을 바라보기만 한다.

사실 관객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의미는 주인됨을 뜻하는데 관객은 지나가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과 관객이 서로 말을 건내며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힐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관객의 주인됨이 가능할 때나 가능한 얘기이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관객을 배제할 뿐 아니라 배신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드러내지 못할 수 있고(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은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선호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거나 드러낼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 또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이를테면, 대중들은 조중동과 보수화된 언론들이 쏟아내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선전, 조작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선거는 대중이 직접 정치하는 걸 막는 장애물일 뿐이고 언제나 대중을 배반한다. 그래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Jean J. Rousseau)는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 국민조차 선거기간에만 자유로울 뿐 나머지 기간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민주적이라 여기는 비밀투표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원리가 아니라 사실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원리로 변질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을 뽑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대표는 유권자에게 직접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일단 뽑히고 나면 소환되지 않는 이상 대표는 대중을 배신할 수 있다(국민소환제조차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 유권자는 국회의원을 통제하려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처럼 대의 민주주의가 유권자와 대표의 관계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선거라는 형식은 대중이 자신의 주인공을 승인하는 과정으로 변질되기 쉽다.

2010년 지방선거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4대강사업, 세종시 등 중앙정치의 이슈들이 지역의 이슈들을 압도할 것이고, 예전 선거를 보면 지역별로 각종 개발사업이나 녹색성장산업들이 패키지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도 다가온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풀뿌리보수주의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단일후보를 내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반MB연합후보라는 틀이 얼마나 가벼운가? 이명박을 싫어하면 모두다 내 편일까? 단일후보를 만들면 시민들은 무조건 이를 지지해야 할까? 중앙에서 모여 패키지를 합의를 보는 건 시민을 관객의 자리에 앉혀 놓는 대의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6월의 선거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올 한 해에 정치무대 자체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더 이상 관객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내가 직접 정치무대에 뛰어들면 어떨까? 시민들이 함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새로운 정치실험을 위해 과거의 의미들, 예를 들어, 한일합방 100주년, 4월민중항쟁 50주년, 5월 광주항쟁 30주년같은 사건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2. 선거 때 무얼 할까?


(1)첫 번째 방법, 그냥 투표만 할까?

마치 투표를 하는 게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글쎄올시다. 만일 투표를 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면 내 마음은 편할까? 그 놈이 그 놈같은 선거판에서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스트레스이다.

정말 끌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무효표를 만들면 어떨까? 그냥 무효표만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무효표를 만들려면 자신이 무효표를 찍는 이유를 널리 알리고 선거 대신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외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인터넷에 무효표 사이트를 만들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2)두 번째 방법, 선거운동을 좀 도와줄까?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반MB를 내세운 후보단일화가 한창이다. 지방선거에서 반MB연대가 과연 올바른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명박이 싫으니 다른 정당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싶을 수 있다. 이왕 선거운동을 할 거면 성별, 직업별, 계급별 비례에 맞는 사람을 밀어주자. 그리고 똑같은 후보라면 여성을, 농민이나 노동자계급 출신을 밀어주자. 그래야 배신의 확률이 낮아진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할 생각이라면 미리 선거법을 좀 공부해 두는 게 좋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공무원도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고, 향토예비군 간부,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 새마을,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의 임원 및 대표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들은 “교육 기타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거나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선거권자의 지지도를 조사하거나 이를 발표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소속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법령이 정하는 외의 금품 기타 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중 즉시 공사를 진행하지 아니할 사업의 기공식을 거행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정상적 업무외의 출장을 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휴가기간에 그 업무와 관련된 기관이나 시설을 방문하는 행위” 등이 금지되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뭘까? 이런 사람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하자. 이런 사람들이 암암리에 선거운동을 하며 토호들의 당선을 도우니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자. 그리고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하거나, 계열화나 하도급 등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조직·기업체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면 신고하자.

또한 후보자와 그 배우자(배우자 대신 후보자가 그의 직계존비속 중에서 신고한 1인을 포함),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활동보조인 및 회계책임자를 제외하면 어깨띠나 옷, 표찰, 수기, 마스코트 등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자. 그리고 “누구든지 숫자ㆍ부호 또는 문자를 조합하여 전화번호ㆍ전자우편주소 등 수신자의 연락처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프로그램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정보를 전송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 있다. 자기 연락처나 메일주소를 밝히지 않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면 신고하자.

선거법이 좋은 건 아니다. 개떡같지만 국민이 아닌 자나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왜 참여하면 안 되는 걸까?


(3)세 번째 방법, 정치계약을 맺자!

선거만 되면 서민후보, 무슨 무슨 후보가 난립한다. 열심히 일하겠다니 기특하지만 그 말을 어찌 믿고 4년 동안 책임을 맡길 수 있으랴. 그러니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와 정확하게 계약을 맺자. 즉 후보자와 ‘정치계약’을 맺자! 그냥 당선을 위해 뛰어주는 게 아니라 ‘정치계약’을 맺자. 당선되고 난 뒤에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면서 민심을 받들었다고 떠들지 못하도록 일본의 ‘대리인운동’처럼 대리인으로 일하게 하자.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것보다 선출되고 난 뒤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 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을 강조한다. ‘대리인 운동’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리인만큼 중요한 것이 상호성장이라고 본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든 그 속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 제도권 밖의 운동이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고민에 활력을 제공하는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체계가 있어야 정치세력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그리고 후보자들한테만 요구하지 말고 주민들에게도 똑바로 감시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책임서명운동을 하자.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뽑은 책임을 지고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서명운동. 선거감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가 스스로 결의하고 동네일에 참여하겠다는 ‘공정선거운동’을 하자.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위한 서명이나 날인이 아니라면 서명을 받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진보정당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국회에 진출한 자원과 지역을 연결하며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맡겠다는, 즉 아젠다 형성과 정책연관성을 살리고 법률과 조례가 결합하는 중간매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자. 그리고 그 약속을 증명하는 의미로 정당공천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단체가 함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지금 다른 지역에서는 지금 유권자연대, 마포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같은 실험들이 진행중이다. 그런 사례들을 참조해도 좋다.

- 관악유권자연대는 지역정치에서 다룰 정책을 만들고 주민후보를 발굴하고 당선시키는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후보를 공개모집하고 후보검증절차를 거쳐 주민후보를 선정할 예정이고, 주민후보들은 관악유권자연대가 지향하는 가치들, 즉 인권, 복지, 생태, 풀뿌리민주주의, 연대와 협동의 가치에 동의해야 한다. 관악유권자연대는 선거 이후에도 행정과 의정을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cafe.daum.net/2010gwanak)

- ‘마포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약칭 마포풀넷)는 선출절차에 따라 정해진 주민후보에게 전면적인 지원(선거자금, 선거인력, 선거정책)을 해서 후보 개인이 돈을 쓰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주민후보’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은 마포풀넷과 후보자와 주민 사이의 서로 지켜야 할 구체적 약속이 담긴 소정의 ‘협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주민후보의 구체적 성격(무소속 여부 등)은 운영위원회에서 안을 제시하고, 회원 투표로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http://community.microtop10.com/archive/13)


(4) 네 번째 방법, 어차피 낙선할 거라면, 하고 싶은 말 다 하자!

만일 후보자로 선거에 나설 생각인데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그냥 길목 좋은 곳에서 하루 종일 떠들자. 뻔한 얘기 말고 진솔한 삶의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괜히 옆의 측근 말만 듣고 당선될 수 있을 거란 부질없는 희망을 버리자. 혹시 아나? 진솔한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당선될 수 있을지. 아니면 적어도 15/100 이상의 득표를 얻어 기탁금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나.


(5) 다섯 번째 방법, 생활정치보고서를 만들자!

보통은 선거운동을 하며 온 힘을 다 빼고 선거가 끝나면 아노미 상태가 된다.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아무런 평가 없이 그냥 지나가고 4년이 지나면 또 다시 선거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평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가는 꼭 니가 잘 했니, 내가 잘 했니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다. 선거에 임하기 전에 미리 활동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거에서의 목표는 당선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정책, 청소년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목표를 둔다면 당선과 무관하게 그 의제들을 후보자나 당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에 실천하는가를 계속 따져야 한다. 그리고 선거운동도 그런 의제들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순환되도록 해야 하고, 단순히 선거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를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세부적인 과제를 정하고 그 과제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고 그런 활동이 실제로 그런 과제를 실현하는데 잘 맞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목표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그 목표에 맞춰 세부적인 행동계획을 짜고, 그 행동계획을 실천한 뒤에 각각의 계획들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어느 지역을 가든 선거에 뛰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있지만 선거과정을 기록하고 그것을 평가한 자료들은 보기 어렵다. ‘선수’들은 있는데, ‘매뉴얼’은 없다. ‘생활정치보고서’라는 매뉴얼을 작성하고 선거 때마다 업그레이드한다면 다음 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6) 여섯 번째 방법,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자!

현재의 선거는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이 어떠하건 그것이 표로 연결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다. 당선만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선거는 친구보다 적을 만드는 과정이고 그나마 관계가 있던 사람들마저도 하나씩 그 관계가 분명해지며 정리되는 과정이다. 그러다보니 선거는 승리하든 지든 지역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서로 치유할 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있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은 없나?

어떻게 하면 지역정치를 통해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어찌보면 방법은 간단할 수 있다. 친구가 되려면 만나야 하고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지역주민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는 문제는 무엇일까? 동네를 한바퀴 돌다보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꺼리들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얘깃거리가 많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떤 얘기에 관심을 가질까?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열 받게 만드는 얘기가 아무래도 가장 효과를 거두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에서 사람들이 가장 열 받아 하는 문제는 뭘까? 거기서 시작해 사람들을 만나고 꼬시고 친구가 되면 지역일을 풀어 가는데 좋다.


(7) 일곱 번째 방법, 지금부터 지역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하자!

지역의 미래계획을 짜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이 아니라 바로 주민이어야 한다. 그냥 주민이라고 하면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 누가 사는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우리 마을의 독특한 문화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이며 숨겨진 자원을 찾아야 한다.

10년 뒤의 우리 마을을 생각해 보자. 나는 이 마을에 살고 있을까? 내가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있다면 왜일까? 단지 전세나 월세 때문에?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서? 한국의 수도권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얘기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다보면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한숨이 나올 때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나누며 서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들과 더불어 지역발전계획을 짜야 한다.


(8) 여덟 번째 방법,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뿌옇게 보이던 지역토호들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하는지, 어떤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기록하고 지역토호 지도를 그리자. 적을 알면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활동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를 꼼꼼히 기록하는 스파이가 되자.

소위 진보단체나 정당이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지역토호들이 누굴 만나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거의 모른다. 선거를 통해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자.^^

선거가 끝난 뒤에 이 토호지도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분명히 토호들이 사는 지역에 여러 가지 개발사업들이나 수상한 정책들이 시행될 것이다. 그때 이 토호지도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3. 모두가 행복한 정치는 불가능할까?


(9) 아홉 번째 방법,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자!

그동안 여러 선거를 거쳤는데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나마 당선되면 노련한 지역 활동가가 사라지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지역정치인이 생기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지방의회에서 소수파로서 그다지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고 개인적인 야심에 따라 활동영역을 광역, 국회의원 등으로 넓히다보니 정작 자기 기반이 약해진다. 결국 당선된 사람은 지역 내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단체 후보를 당선시킨 단체는 행복했을까? 출마 후 지역단체들의 활동영역과 지역정치인의 활동영역이 괴리되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하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체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도움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가지고, 정치인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소수파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가진다. 결국 당선자와 단체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심지어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단체는 행복했을까?

부패한 정치구조를 개혁할 뿐 아니라 권력을 주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정치권으로 투신하고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것, 분명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치세력화는 더욱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실현된 적이 있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 걸까?


(10) 열 번째 방법, 내가 행복하기 위해 마을이 행복해야 한다!

과거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임파워먼트(개인적 임파워먼트와 조직적 임파워먼트)를 강조했다. 왜 그럴까? 선거에 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는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정치화되고 정치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저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다. 정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주민운동에 요구된다.

좋건 나쁘건 여러 가지 주민참여제도들이 우리 사회에 도입되어 있다. 정보공개청구,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발의, 참여예산 등 다양한 방법의 활용해서 정치적 기회구조를 스스로 만들자. 아이 한 명이 자라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과정을 만들어 보자. 행복해지고 싶다면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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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12.29 12:27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소식지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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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풀뿌리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던 사람들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뿌리 깊은 변화를 이루지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바퀴처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에게 모든 걸 다 바치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나 혼자,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아픔과 고통에 자꾸 눈을 감고, 그 마음을 다스리려 자꾸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내가 혼자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이 무게를 견디며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 위안합니다.

하지만 조세희 선생님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책에서 이런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농지가 강을 죽인다고 매도당하며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내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어쩌면 이미 늦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죽어버린 땅을 등 뒤에 남기고 소설에서처럼 우리는 달나라를 갈망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풀뿌리라는 말을 되뇌는 건 이런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뿌리는 우리의 삶이 더욱더 단단히 이 땅에 뿌리를 내려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보자는, 그리고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겠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풀뿌리는 그런 점에서 변화의 시작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과정입니다.

올해는 여성민우회 생협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여성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이 지난 세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온 변화는 아주 소중합니다. 민우회의 ‘사회주부’는 여성대중을 조직화하고, 대중의 참여 증진을 통해 여성을 세력화하며 대중 속에서 리더십을 발굴하고, 여성대중의 지지를 받는 운동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민우회생협의 조합원선언은 환경, 여성, 지역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여성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은 가치와 생활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소소한 생활의 변화부터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까지 민우회는 다양한 변화의 물꼬를 터왔습니다.

하지만 개발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며,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이나 가사일을 여성에게 떠맡기려 합니다. 이 모든 조건들은 가치가 삶으로 녹아드는 걸 방해합니다.

그래서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서로가 서로의 역할과 활동방식을 이해하는 단계가 필요한 듯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섞은 음식이 조화로운 맛을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가치와 생활이 잘 버무려져 새로운 삶이 드러나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이 섞이려면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화백회의는 만장일치로 운영됩니다. 드라마에는 마치 그 회의가 정치적인 음모의 장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전체 회의장에서 토론될 수 있었고 차이가 합의로 이어질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디딤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내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010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머슴임을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할 겁니다. 그런 장에서도 관계는 만들어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후보자는 상대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보다 내게 표를 찍을 건지 안 찍을 건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내 진심(眞心)보다는 표심(票心)에만 관심을 쏟는 게 바로 선거입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가 자연스레 바뀌리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합니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합니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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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9.01 10:00

이번 일본의 선거로 자민당은 소위 '55년 체제'(1955년부터 시작된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의 끝을 보게 되었다(1993년 오자와가 자기 계파 의원들을 이끌고 자민당을 탈당하면서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그러니 약 49년의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진 셈이다.
다소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일본 특유의 연합으로 권력을 유지할 줄 알았건만 일본 사회 내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불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이어지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을 혁신세력이라 부를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들이 표방하고 있는 미래가 우리 세계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권력독점의 역사가 끝났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특히 내가 재미있어 하는 점은 풀뿌리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상 미국과 일본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정치와 일본정치의 보수성을 얘기하며 풀뿌리운동이 전국정치를 바꾸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고 얘기했던 사람들, 지역사회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며 그 한계를 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새로운 논리를 개발할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의 승리를 풀뿌리의 힘으로만 해석하는 건 분명 억지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나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분명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변화와 소통을 꿈꾸는가,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껴 투표하지 않지만 자신의 정책에 공감해 투표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그것은 아래로부터 조직된 풀뿌리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아래가 보수화되어 있다면 아무리 변화를 외치고 소통을 해도 그것이 선거에서의 지지로 드러나지는 않을 터이니...
그러니 밑바닥을 흐르는 변화의 기운은 분명 풀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한국의 풀뿌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일단 정치를 무거운 과제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래로부터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어느 시점에서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치적인 중립성'이라는 신화가 풀뿌리단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 중립성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중립성의 틀을 벗어던지는 것이 특정 정당에 대한 선거지지로 곧바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당들이 풀뿌리단체들이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 세계 어느 정당에나 계파는 있지만 계파끼리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누적된 업보이니 그런 문화를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식의 논의, 나는 참이요 진리며 다른 의견은 위선이고 악이다라는 식의 논의도 사라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변화된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풀뿌리운동의 활동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고, 어느 쪽이 풀뿌리운동의 활동에 도움을 줄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선거연합은 후보자 나누기가 아니라 그런 정책의 공유를 통해서, 그리고 그런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풀뿌리운동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데,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권력의 형태도 함께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과 정책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 좀 지겹고 신물이 나고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고 투표나 선거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단 선거나 투표만이 희망인 듯 얘기하지 말고 그런 정치행위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긴 진정한 희망을 끌어내야 하고 그 희망을 정책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를 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풀뿌리운동이 지원해야 한다.

시흥시장보궐선거, 제주도 주민소환투표에서 드러나듯이 풀뿌리 사람들의 자신감은 아직까지 10% 근처를 헤매고 있다. 권력의 분명한 잘못이 드러나고 충분히 그것을 심판할 수 있을 때도 사람들은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은 변화와 대안을 추진할만큼 자신감을 품지 않고 있다.
현실의 정치는 진공상태가 아니어서 무수한 관계와 많은 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여를 수없이 강조해도 그것이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직접적인 정치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중간에 많은 징검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돌다리 하나만 두드려보고 돌아서지 않도록, 자신감을 가지도록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들겨주고 어깨도 걸어보며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인문학도 그런 방법의 하나이고,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지역사회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계획(action-plan)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의 원천도 필요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자신감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나 시장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풀뿌리가 자립할 수 있다면 자신감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풀뿌리운동이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공유의 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개별적인 이해관계로 부서지지 않도록, 공동체의 이해관계(이를 공공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참여하라고 목 아프게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참여할 것이다( 나는 참여예산제의 활성화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있다고 믿는다).
풀뿌리운동의 애매함은 공동체에 기반한 운동이 이미 공동체가 와해된 곳에서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 있을 수 있는데, 다시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은 사람간의 관계를 잇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물질화시키고 규범과 제도로 만들 터전이 필요하다.
한때 위에서 내리꽂는 방식으로 'NGO센터'나 '도서관' 등이 논의되기도 했는데,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방식의 공유영역 확장 운동이 중요하다.
이런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나는 사람들의 자신감도 더욱더 강해지리라 믿는다. 실제로 운영해보고 만들어보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강해지고 희망을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내리라 믿는다.

다 쓰고 보니 일본의 선거와 그리 관계가 없는 듯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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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1.30 14:22

한국의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 시론적 연구

 

하승우

 

1. 들어가는 말

 

현재 한국 사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 토건국가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산업의 불균형, 수도권 집중화의 심화와 지방권력의 비민주성,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권력의 유착과 비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과도한 권력화, 전문성을 빌미로 견제를 받지 않는 관료정치의 강화 등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에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드러난 정책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은 한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여전히 권력이 노골적으로 횡포를 부리고 선거과정에서 비리도 발생하지만, 과거에 비해 정책결정절차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절차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있다는 점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주방폐장 주민투표에서 드러났듯이, 합리적인 절차가 비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사용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하승우, 2006). 사실상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주로 제도적인 면이었는데, 그 논의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합법적인 정치권력의 교체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민주주의의 내용은 보다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향을 잃은 채 공허한 하나의 수사적 이름으로 그 실질적인 내용을 잃어가고 있다.”(박주원, 2007: 177)

그리고 단순히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만으로 통합할 수 없는 다양한 균열선이 드러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 사이의 균열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고, 여기에 남성/여성의 성차, 학벌사회의 격차를 더하면 그 균열선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또한 ‘88만원세대’처럼 세대간의 균열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우석훈․박권일, 2007). 더구나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이런 균열선들을 더 깊이 파고 있다.

반면에 이런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힘이어야 할 소위 진보운동은 대중과 분리되어 영향력을 상실하고, 과거의 관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합법주의에 매몰되고 있으며,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진보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박래군, 2007). 최근 민주노동당의 붕괴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과거의 낡은 이념적/정파적 대립구도는 단순한 내용적인 한계를 넘어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한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위기의 현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반성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 대안은 새로운 프레임을,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 성찰과 반성의 계기는 전혀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 때 마련될 수도 있겠지만 잊혀진 것들을 재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도 마련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서 그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굳이 풀뿌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이 제도보다 사람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체를 기르며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 그리고 최근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풀뿌리운동(grassroots movement)과 풀뿌리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이다.

 

 

2. 풀뿌리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최근 들어 풀뿌리운동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함께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풀뿌리운동을 바로 지역운동과 연결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하승수는 풀뿌리자치운동을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풀뿌리운동은 ‘지역’보다 ‘삶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폭넓은 의미의 지역운동과는 구분”되고 있다. 즉 운동공간을 지역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나 활동가 중심의 운동노선을 따르면서 사람들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면 풀뿌리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승수, 2006).

그리고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오관영은 풀뿌리운동의 특성을 “운동을 조직화하고 드러내는 방식”에서 찾는다. 가령 속도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대한 반성, 공간을 재조직화하기 위한 운동, 주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창구를 만드는 운동, 다른 언어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운동, 여성을 중심으로 한 운동, 제도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운동으로 개념화한다(오관영, 2006).

이렇게 정의할 경우 풀뿌리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기는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풀뿌리운동으로 정의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겠다. 모든 지역운동이 풀뿌리운동일 수는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단순히 지방에서 진행되는 운동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지방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각각의 지방에 고립된 운동을 뜻하지도 않는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와 세계화의 현실에서 지방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풀뿌리운동을 공간적 차원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어려움은 이론적인 면에서도 존재한다. 지방 혹은 지역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의 규모를 풀뿌리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행정구역단위나 인구규모만으로 풀뿌리를 정의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방이나 놀이터처럼 행정구역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되는 운동도 있고, 지리산권역처럼 여러 행정구역에 걸쳐 진행되는 운동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지역이라는 규모를 물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풀뿌리운동의 규모는 운동의 이슈와 방식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지역에서 활동하고 지방에 뿌리를 내리 전략으로 풀뿌리운동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정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풀뿌리운동을 단순히 지역에 지부를 만드는 활동으로 제한하거나 지역으로 풀뿌리운동의 활력을 제한하려는 생각을 ‘운동의 풀뿌리화’라고 부르는 것은 풀뿌리운동이 가진 특징을 오해하게 만드는 그릇된 해석이다.

풀뿌리를 공간적 차원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풀뿌리운동을 정의해야 할까? 공간적 차원 외에 많이 쓰는 방법들은 풀뿌리를 주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 개인, 주민, 시민, 민중, 대중, 다중, 계급 등 여러 개념들이 정치적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먼저 정철희는 대중을 정치주체로 받아들이면서 풀뿌리정치란 “대중의 일상적인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이들의 정치적 능력을 찾아내려는 시도”(정철희, 2003: 157)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운동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조직화된 운동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시민과 개인을 연결짓고 생협에서 사용하는 ‘생활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기존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을 모두 비판하는 자율주의 쪽에서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운동을 바라보는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 가야 할 주체”(이호, 2002: 47)라 명명한다. 그러면서 이호는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지웠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호, 2002: 57)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승수는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중요한 것은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치능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주체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풀뿌리운동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풀뿌리운동의 목적”(하승수, 2006: 3)이라고 주장한다.

이호와 하승수의 관점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주민이라 호명하지만 그 주민의 범주를 분명하고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뿌리운동을 주체의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는 주체를 ‘존재’의 관점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관점에서 고민하게 한다. 이 글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

이 글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특정한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반대한다. 르포르(C. Lefort)는 민주주의의 전례 없는 혁명적 특징이 “권력의 소재지(the locus of power)를 비어 있는 장소(empty place)”(Lefort, 1988: 17)로 파악한 점이라고 주장한다. 즉 민중이 권력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그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민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권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사람들로 민중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규정이 가져올 수 있는 배제(exclusion)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런 '정의의 여백‘은 자칫 풀뿌리운동이 낳을지 모를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회생태론자인 북친(M. Boochin)은 이런 여백의 개념규정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근대 도시의 거대한 규모가 마을의회운동(neighborhood assembly movement)을 구성하는데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의회의 문은 누가 마을에 살든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개인은 마을의회에 참여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들은 참석하도록 강요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또는 무관심한 방관자나 나그네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은 충분히 논의거리들을 가질 것이다. 고려할 점은 참석하고 참여하려는 모든 이에게 집단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마을의회의 참된 민주적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Bookchin 연설문)

민주주의라는 말이 애초에 민중의 지배를 가리킴에도 풀뿌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 민중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대에 여성과 외국인,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면, 근대에도 마찬가지로 여성과 빈민,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이미 이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서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시민권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만일 시대와 사회적 상황이 변해 또 다른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들이 바로 풀뿌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을 지역이나 지방이라는 공간적 차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풀뿌리운동을 운동의 주체로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의 ‘희망투어’에서 드러났듯이, 중앙에서 고조되는 시민운동의 위기담론과 달리 삶의 터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다양한 풀뿌리운동들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이런 경향을 볼 때 한국의 풀뿌리운동이 기존의 시민운동이 드러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풀뿌리운동만으로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적 양극화, 매갈로매니아의 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이 가진 대안적인 희망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각한 인구집중(2005년말 전국의 48.3%)만이 아니라 사업체의 수도권 집중(2004년 기준 총사업체 수의 52%), 교육격차(지역별 학업성취도의 격차와 대학의 수도권 집중), 비정규직의 지속적인 증가 등 심각한 불균등발전은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난개발과 재개발 열풍 또한 고민의 틀을 확대시킬 것을 요구한다.

 

 

3. 민주화 운동의 단절과 잃어버림

 

기존의 사회운동은 풀뿌리민주주의나 풀뿌리운동이라는 개념보다 지역운동, 지역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김현우는 지역노동시장에 대한 개입, 지역경제운영을 위한 지역파트너십, 지방자치체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개입, 사회공공성 담론에 기반한 지역이슈, 지역발전전략이나 성장기획, 지역주민과의 유대강화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주장(김현우, 2005: 86~90)하지만 풀뿌리라는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관점을 따른다면, 김현우의 말처럼 이미 존재하는 지역 내의 다양한 운동자원과의 연대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런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즉 일반 대중이 참여를 통해 자기변화를 경험하며 정치적인 주체로 변하는 과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지역사회 변화전략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대중의 욕구나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소위 ‘과학적인 이론’의 틀에 삶의 방향을 맞추려는 운동과 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의 흐름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다양한 축을 맡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크리스챤아카데미, YMCA노동교육협회,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도시산업선교회, 야학협의회 등이 추구했던 운동은 풀뿌리운동의 틀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 9월 연세대학교에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도시문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미국의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S. Alinsky)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도시문제연구소>는 지역사회개발을 위해 빈민지역 주민들을 조직화하겠다는 목적을 가졌고, 1971년 9월 더 능동적이고 강력하게 활동하기 위해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설립했으며, 1973년 1월에 명칭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그리고 1976년에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한국도시연구소, 1999: 59~60).

또한 1971년에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교육사상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면서 기독교 교육운동 활동가를 중심으로 민중교육사상이 논의․실천되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과 더불어 선교조직 방법론으로서의 알린스키의 조직 이론이 중요한 실천원리로 자리잡았고, 이는 ‘의식화․조직화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의식화․조직화’는 이후 민중교육운동의 중요한 지향으로 설정되었다(홍은광, 2003: 119~158).

기독교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외국의 운동이론이 수입되는 한편, 한국사회 내에서 자생적으로 이론이 구성되기도 했다. 일찍이 함석헌은 씨론을 펼치면서 민중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역사를 재해석하고 민중중심의 사회운동론을 제시했다. 함석헌은 씨에게 다가가 씨과 함께 호흡해야 하고 씨이 스스로 자신의 바탈(性)을 되찾고 하나가 되도록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함석헌이 써던 수많은 글과 그가 행한 수많은 강연은 조직이 아니라 말과 글의 힘으로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도 유교와 가톨릭, 노장 사상과 동학 사상을 바탕으로 원주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신용협동조합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한살림운동)을 벌였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밝히듯이, 장일순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관점을 세우고 생명에 대한 모심과 섬김, 살림과 무위의 사상을 밝혔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장일순이 개입했던 수많은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운동이 지켜야할 분명한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다양한 운동의 유산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실되었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 강조되었던 스스로 눈을 뜨기 위한 ‘의식화’, ‘조직화’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의식화, 조직화로 전환되었다.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말은 동일했지만 그 기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앞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대중이 자신의 조건과 세계를 인식하고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했고, 뒤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전위조직이 대중을 계몽시키고 선도하는 정치세력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맑스-레닌주의 중심의 조직운동관은 기존의 운동과 이론에 대해서도 다른 식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운동의 의미를 개량주의 등으로 단순화하고 폄하했다. 사회변혁을 둘러싼 논쟁마저도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특정 텍스트의 과학성이 쟁점의 수준과 논의의 진척에 따라서 검증되기보다는, 어떤 텍스트에 권위가 항구적으로 부여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허재영 2004: 193)가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풀뿌리운동의 흐름과 이론적 논의는 점점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물론 작은 지역단위의 실험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운동의 주된 흐름이 되지 못했고 자연히 그와 관련된 논의들도 줄어들면서 이론적인 발전이 정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 네 명의 사상을 추적하며 그동안의 민주주의 담론에서 상실된 내용을 복원하고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놓으려 한다. 이들 네 명의 사상가는 각기 비슷하지만 다른 장에서 자기 활동을 펼쳤다. 프레이리는 브라질에서 추방된 이후 미국과 세계를 돌며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알린스키는 미국 내 지역을 돌며 빈민조직화에 힘을 쏟았다. 장일순은 원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각종 지역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청학련 등 민주화 운동에 도움을 줬고, 함석헌 역시 곳곳에 강의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렇게 달랐지만 시공을 초월해 서로가 만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일순이 프레이리를 읽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광산촌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던 장일순이 알린스키를 접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일순은 가톨릭센터에서 함석헌 등의 각종 지식인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중요한 문헌들을 번역해 보급하며 이른바 ‘원주캠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니 함석헌도 이를 통해 알린스키나 프레이리의 이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복원을 위한 이론적 디딤돌과 고민

 

그동안 알린스키를 다룬 논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에 《기독교사상》에 실린 글이나 그의 삶을 간략하게 조명한 글이 전부이다. 학위논문도 김규태의 “사회복지와 권력정책의 일연구 : R. 니버와 S. 알린스키를 중심으로”(1975)와 이경자의 “한국적 지역사회조직의 사회행동 모델 사례연구 :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중심으로”(2000)가 있을 뿐이다. 단행본으로는 알린스키의 글과 그 제자들의 글을 간추려 편역한 『S.D. 알린스키: 생애와 사상』(현대사상사, 1983)이 한글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하지만 <도시문제연구소>나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등의 단체들이 알린스키의 조직화론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지금도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은 알린스키의 이론을 중요한 이론적 틀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코넷의 트레이너인 최종덕은 코넷의 뿌리가 알린스키의 이론에 있음을 밝히면서 주민조직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알린스키의 이론이 실제 운동현장에서 많이 다뤄졌다면, 프레이리의 교육론은 그동안 교육학과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 주된 주제는 프레이리의 대화교육론, 변증법적 교육론, 인간주의 교육사상, 비판적 문해교육 등이었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프레이리의 사상을 다루고 한국 운동과의 접점을 구체적으로 모색한 논문도 있는데, 홍은광의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수용과정과 한국 민중교육운동에 대한 영향”(2003)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다룬 단행본들이 계속 번역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 번역된 프레이리의 저작은 『자유의 교육학』(아침이슬, 2007), 『교육과 의식화』(중원문화사, 2007),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마일스 호튼과 공저, 2006),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아침이슬, 2003), 『교육과 정치의식』(한국학술정보, 2003),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페다고지』(그린비, 2003-재번역), 『프레이리의 교사론』(아침이슬, 2000), 『인생이 학교다』(분도출판사, 1988)이다. 출판연도에서 드러나듯이 1970년대, 80년대에 소책자 복사본의 형태로 돌려보는 수준에서, 2000년 이후 프레이리를 다시 조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 프레이리의 이론을 맑스주의적 계급이론으로 해석하던 편향성에서 벗어나 프레이리의 이론적 장점을 다양하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은 신학대학원에서 주로 다루어졌고,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을 이어 내려오는 무교회주의나 스승인 유영모에게 이어받은 씨사상 등이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비폭력사상과 노장사상 등도 주된 연구주제였다. 종교학과 철학에서 함석헌을 간혹 주목해 왔는데, 이동수의 “함석헌과 정치평론”(2001), 문지영의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이념 연구: 함석헌의 저항담론을 중심으로”(2006)는 정치학 쪽에서 접근한 몇 안 되는 논문이다. 또한 함석헌은 《씨의 소리》를 1970년부터 시작해 약 10년간 발행했고, 그의 글을 모은 책만 해도 20권에 달한다. 함석헌의 삶을 다룬 평전도 조한서의 『평화를 사랑한 아름다운 사상가, 함석헌』(작은씨앗, 2007), 씨알사상연구회의 『씨알 생명 평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한길사, 2007), 김용준의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 2006), 이치석의 『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창, 2005), 함석헌기념사업회의 『다시 그리워지는 함석헌 선생님』(한길사, 2001)와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삼인, 2001),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한길사, 2001),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삼인, 2001) 등 여러 권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사)함석헌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www.ssialsori.net/)에서 함석헌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생전에 직접 책을 짓지 않은 장일순의 경우 논문으로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박순금의 “장일순 생명사상의 생태유아교육적 함의”(부산대학교, 2003), 이영화의 “무위당 장일순의 사상과 활동”(강원대학교, 2006), 박경빈의 “무위당 장일순의 서화에 대한 미학적 연구”(성균관대학교, 2006)가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대략적으로 다룬 논문들이다. 단행본도 장일순의 강연을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1997), 이현주 목사와의 대화를 엮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삼인, 2003),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엮은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녹색평론사, 2004), 최성현이 일화와 글, 그림을 엮은 『좁쌀 한 알: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도솔, 2004)이 전부이다. 그리고 무위당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http://www.jangilsoon.co.kr/)이 마련한 무위당 기념관과 여러 자료들은 장일순의 행적과 사상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외에 네 명의 사상가를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협동조합, 대안교육, 지역화폐 등의 공동체운동을 분석한 이근행의 “한국 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2006)와 1970~80년대의 대안공동체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고 있는 박주원의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기원”(2007)도 연구의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 연구는 네 명의 사상가의 얘기, 또는 그들에 관한 얘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인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각 사상가들의 이론이 방대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사상을 밝히고 정리하는 것만도 방대한 분량의 연구를 요구한다. 따라서 각 사상가들의 이론적 특징이 무엇이고 어떤 발전과정을 거쳤는지에 관해서는 이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이들의 사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만 간략하게 언급하려 한다.

그리고 이 연구는 이들의 사상이 현실운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보다 이들의 사상이 어떤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맞닿아 있는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이 도시빈민운동, 야학운동, 비폭력 평화주의, 무교회주의, 한살림운동, 지역공동체운동 등의 현실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상이 직접 현실을 이끈다는 생각은 현실을 살아가는 주민과 민중, 씨, 민초들의 경험과 의지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이들 사상가의 이론과 일치하기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과 현실운동의 접합점을 찾는 작업 역시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이후 연구의 과제로 남겨놓는다.

이 연구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네 명의 사상을 정리하고 그 사상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는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각각의 사상가들은 기존의 사회운동관과 다른 독특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독특하지만 서로 얽혀 있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자기의식화와 대화의 중요성은 민중(활동가도 민중이다!)의 의식에서 시작해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알린스키가 부각시킨 분노의 조직화와 대중에 대한 신뢰 역시 민중이 스스로 의식화,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석헌의 사상도 씨이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고 외부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보다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얼의 변화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일순 역시 민중을 모시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 공생의 사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 네 명의 사상가들은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의 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로 삼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생적인 변화의 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5.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단초들

 

(1) 프레이리: 자기의식화와 함께함, 대화

 

이미 20세기 중반에 체게바라(Che Guevara)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사회운동이 풀뿌리운동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교육학’이라고 이름지은 『페다고지(pedagogy)』에서 미래를 길들여진 현재로 재생산하려는 우파와 미래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좌파 모두를 비판하면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혁명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프레이리는 “진보적 교육자의 한 가지 과제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진지하고 정확한 정치적 분석을 통해서 희망을 위한 기회를 밝혀내는 것”(프레이리, 200b: 12)이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프레이리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재생산되는 지배구조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다. 프레이리는 이런 재생산의 원인을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의 모순”(프레이리, 2003: 56)에서 찾고 자기의식화만이 이런 모순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이 강조했던 전위조직이나 선도투쟁은 이런 자기의식화의 토대일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프레이리는 “해방교육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자기 사고의 주인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프레이리, 2003: 158)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혁명 지도부가 민중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민중 자신의 객관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즉 민중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관해 다양한 수준의 인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민중이 가진 특수한 세계관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교육과 정책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프레이리, 2003: 122)

그리고 이런 자기의식화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함’이다.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은,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부단한 투쟁 속에 있는 피억압자들(개인들이든, 민중 전체든)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 확립해 나가야 할 교육학의 몇 가지 측면을 제시할 것이다(프레이리, 2003: 60).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 양측을 매개하는 세계는 양측에게 영향과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하게 한다(프레이리, 2003: 119).

 

그렇다고 프레이리가 무조건 억압받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의 신비화, 민중지식의 절대찬양은 민중지식의 거부만큼이나 문제가 된다”(프레이리, 2002: 133)며 무조건적인 수용이 가지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라면, 민중지식을 절대 찬양하는 것은 ‘근본주의’”(프레이리, 2002: 133)라고 비판한다. 대중의 상식에 기초하지만 그 상식을 무조건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을 상식의 틀에 가두고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인정이나 거부는 양자 사이의 상호연관된 관계를 보지 못하고 둘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동일화하거나 차이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프레이리가 비판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 혹은 스니데르스가 ‘원시 문화’와 ‘선진 문화’라고 부른 것 사이의 변증법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법”(프레이리, 2002: 134)이다. 그리고 민중을 바라보거나 민중과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들 속에서 서로 배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프레이리가 추구했던 사회운동의 방법이었다.

따라서 어느 한 편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상화시켜서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의식화하는 방식은 결코 사회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고 프레이리는 믿었다.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바로 ‘대화’이다.

 

대화적 행동이론에서는 주체들이 서로 협동하여 세계를 변혁하는데 참여한다. 반대화적이고 지배적인 나(I)는 지배당하고 정복당하는 당신(thou)을 단지 사물(it)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대화적인 나는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당신이 또 다른 나를 구성하며, 그 나의 안에는 또 다른 당신이 있음을 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당신은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두 개의 당신이 되고 이 당신은 또 두 개의 나가 된다.(프레이리, 2003: 216)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민중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민중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민중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고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프레이리, 2003: 121)다.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은, 엘리트와 대중은, 전위조직과 민중은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공동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과 사회 속에 수동적으로 웅크린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보지 않았다. 수동적인 웅크림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 사람의 자기의식화와 함께 비슷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의 연대에서 형성될 수 있다. 그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함께함이고 대화이다. 이런 프레이리의 사상은 풀뿌리민중이 중요한 이유와 그들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알려준다.

 

 

(2) 알린스키: 분노의 조직화와 이해관계의 인정

 

알린스키는 타고난 조직가이자 주민조직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제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알린스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도 교섭을 강요할 수 있는 힘 없이는 교섭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추상적인 이념보다 “어떻게 힘없고 가난하고 무관심한 시민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느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알린스키, 1983: 37). 알린스키가 보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인 힘 없이 빈민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공허한 얘기일 뿐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선과 악의 문제는 힘을 얻고난 뒤에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알린스키는 주민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구성하고 그 힘으로 국가나 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을 많이 세웠다. 특히 알린스키는 분노를 조직화하는 전술, “불만을 선동하는 것, 그들이 좌절을 퍼부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 오랫동안 이전의 상태를 받아들여 밑에 깔려 있는 비행을 말소시킬 기구를 만들어 주는 것 등”(알린스키, 1983: 39~40)의 조직화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 분노만큼 인간의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분노와 함께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역조직화에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알린스키는 운동이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즉 현실이 “직접적인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권력장치의 투기장이며 그 안에서의 도덕이란 한낱 자기 이익과 정략적인 행동을 위한 수사학적 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알린스키, 1983: 141). 따라서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이 인간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추진력의 기능을 하고”, “자기이익의 중요성은 한 번도 의심되어 본 적이 없고, 인간 생활의 불가피한 요소로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알린스키, 1983: 155). 이런 알린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주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이다.

분노와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공공선이나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알린스키는 조직화를 위한 싸움에서 페어 플레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현실에서 공정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이미 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알린스키가 보기에 수단과 윤리는 반드시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수단의 윤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야 했다(Alinsky, 1989: 26~29).

마찬가지로 알린스키가 지역조직화 전략에서 방법과 목적을 분리시키는 점은 그 전략의 민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그러나 알린스키가 그런 전략을 주장한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였다. 오히려 타협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알린스키는 그런 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알린스키가 시카고에서 조직했던 빈민운동조직인 <백 오브 더 야드(back of the yard)>이나 흑인빈민운동조직인 <우드런 지역조직(The Woodlawn Organization)>, <FIGHT(Freedom, Integration, God, Honour, Today)> 등은 이런 전술을 충실히 따랐고 큰 성공을 거뒀다. 알린스키의 주장은 단순했다.

 

자, 너희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다. 너희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이렇게 차별대우받는 예를 깨뜨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단지 조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힘이란 것은 양극점이다. 즉 돈을 가진 사람들과 사람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너희들의 동료만이 너희들의 힘의 유일한 원천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너희들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이런 방법으로, 또 저런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너희들이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당장 한꺼번에 모두 궐기하라.(알린스키, 1983: 68~69)

 

하지만 분노를 조직화하는 것만으로는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조직할 수 있을까? 알린스키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폭넓고 총괄적인 것이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주민활동가는 주민들 속의 지도자급 인물을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지도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주민의 전통은 주민들의 경험이라는 직물에 얽혀 짜여 있다. 주민들의 전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편견과 믿음과 가치관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민주적 행동을 방해하는 사회적 힘과 마찬가지로 건설적이며 민주적인 행동을 주장하는 사회적 힘을 확인하는 것”(알린스키, 1983: 119)이라며 지역사회의 전통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린스키는 프레이리처럼 “개혁가들은 대중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범한 이해의 기초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전향시키려는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조치와 전략은 그러한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4)라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조직화 단계를 거치면서 주민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첫째, 조직의 구성원이 처음부터 끝가지 전부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누구나 말하게 하고 잘못된 의견이나 반대의견이라도 묵살하지 말고 공유화하며 존중해주어야 한다. 셋째, 전체의 이익이 되고 개인의 이익이 되는 공동의 선(善)을 발견케 하고 이에 모두가 동의하게 해야한다. 넷째, 전체 구성원의 의사가 모아지고 결정되어지면, 행동방법에 대해서 협의하고 결정해서 모두가 그 결정에 따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다섯째, 조직된 후 곧 조직을 가동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여섯째, 쟁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원화시켜야 한다. 알린스키는 조직은 쟁점으로부터 나오고 쟁점 또한 조직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따라서 쟁점을 만들어 내느냐 못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서 조직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이경자, 2000: 24).

설령 지역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중에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활동가는 신념으로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활동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중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면 안 된다. “그는 이러한 태도와 행동들이 열악한 환경의 결과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심판받아야 할 것은 대중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환경이다. 그러므로 사회변화에 대한 개혁가들의 열망은 더욱 견고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3) 이런 신뢰와 신념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알린스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알린스키는 활동가가 그런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가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을 통해 풀뿌리 민중은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며 자생적인 지도자(native leader)로 거듭나게 된다.

 

 

(3) 함석헌: 역사의식과 서로 울림, 꿈틀거림

 

김상봉은 서구철학의 타자성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을 함석헌의 역사철학에서 찾고 그것을 ‘슬픔의 해석학’이라 부른다. 고난과 슬픔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서 하나가 되는 연관성을 만들고 “역사의 슬픔이 곧 지금 우리 자신의 아픔과 슬픔이 되는 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며, 모든 주체가 그러하듯, 우리 또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감으로써 주체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과 슬픔은 우리의 자기의식의 본질적 내용이다.”(김상봉, 2002: 328) 이렇게 자신에게 돌아온 자의식은 슬픔과 하나되어 단순히 체념하지 않고 불행한 현실을 부정할 또 다른 현실을 사유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자의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자의식으로 그치지 않는다. 함석헌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인격이란 것은 있기는 개(個)로 있으나 그 바탕(性)은 사회적인 것”(함석헌, 1979: 162~163)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고 전체요, 마찬가지로 “한 시대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결코 개인행동의 타락이나 어떤 제도의 깨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사회가 어지러워진 결과로 오는 것이다. 어지러움은 그보다도 전체의 산 통일이 깨지는 데서 온다.”(함석헌, 1979: 277) 따라서 고난을 겪으며 회복된 자의식은 개인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전체의 통일을, ‘하나’의 회복을 추구한다.

따라서 심의용은 함석헌의 사상에서 고난이 “생명의 한 원리이며 동시에 생명의 길”이고 그렇게 생명을 품은 존재가 바로 씨이며 “이 씨알이 역사의 주체자”(심의용, 2005: 168)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심의용은 함석헌 사상에서 자치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서로 울림’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함석헌의 스스로 함 또는 자치(自治)는 서구적인 개인의 스스로 함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은 홀로 고립되지 않고 전체 속에 존재한다. 이 전체 속에서 개인은 우민(愚民)․우맹(愚氓)․민초(民草)․서민(庶民)․검수(黔首)․검우(黔愚)같은 부정적인 말에서 벗어나 씨로 성장한다. 비록 바닥에 있지만 어리석고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바닥에 버티면서 높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씨이라고 함석헌은 강조한다.

하지만 이 씨이 전체의 이름으로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석헌은

 

하나됨은 남의 인격을 존중해서만 될 수 있는 일인데 남의 인격을 아는 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서고야 될 일이다. 정말 제 노릇하는 사람은 제가 제 노릇을 할 뿐 아니라 남을 제 노릇 하도록 만든다(72). 거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인격은 곧 자존(自尊)이다. 스스로 높임이 스스로 있음(自存)이다(함석헌, 1979: 72~73).

 

라고 강조했다. 즉 하나됨은 차이를 존중할 때 가능하고 그 차이가 분리되거나 고립된 단자로 인식되지 않고 서로 엮여진 그물망 속에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으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진정한 하나됨은 내가 서고 남이 서고 우리가 설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은 “내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쓰고 사는 집에 당긴 불부터 꺼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있어 역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내다보고 거기 참여하는데서 사람의 살림이 나오는 것”(함석헌, 2002: 210~211)을 아는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함석헌은 전체가 단순히 부분의 합일 수 없다고 봤고 마찬가지로 전체가 나를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인 전체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역사 역시 인간의 인위적인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역사는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사건이고 그렇기에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절대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되고, 역사는 도그마가 된다.

따라서 함석헌은 민중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사람이 아니라 민중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 혁명가이고 그가 민중 속에서 하나되어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씨 속에 내포된 자기 바탈(性)을 되찾고 생명을 밝히는 것이어야 했다. 기풍과 습성의 변화 없이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여기서 함석헌은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만 제대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믿음, 그 사상이 정말 큰 것, 정말 높은 것, 정말 성한 것이 되려면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단번에 증발이 되어 구름으로 된다. 시냇물이 정말 강산의 초목을 살리려면 한 번 하늘에 올라가 비로 되어 퍼붓지 않으면 아니되고, 하늘에 오르려면 골짜기 그늘 밑 돌 틈에 있어서는 될 수가 없고, 반드시 저 흙탕물 이는 돌을 거쳐 바다로 가야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함석헌, 2001a: 242).

어떤 이론도, 어떤 도덕도, 어떤 운동도, 씨의 밸 고분지 밑까지 내려가지 않고는 역사의 진행을 서두르는 폭풍을 일으킬 수 없다.(함석헌, 2001a: 243).

 

그렇게 되면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게 된다. 아니, 이미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함석헌은 이를 ‘꿈틀거림’이라는 개념으로 축약된다. 민중의 꿈틀거림이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힘을 생성할 것이다.

 

그 꿈틀이 무서운 꿈틀이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터지고야 마는 봄이 온다. 삶은 절대이기 때문에 터지고야 만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生)의 항의(抗議)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이다. 내가 이름 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함석헌, 1979: 20).

 

엄혹한 70년대에 함석헌은 어떻게 꿈틀거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을까? 함석헌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아무리 억압적인 독재권력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방이든, 음식점이든, 역이든 사람들을 만나는 곳에서 대화의 물길을 만든다면 독재권력이 그것을 막지 못한다고 봤다. 함석헌은 이런 일상의 공론장이 씨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극제가 되리라 봤다.

함석헌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아래로 내려가 씨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옆을 지키며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씨이라는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함석헌은 생명이 자라듯이 사회의 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고 봤고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바탈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고 봤다. 이 점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제도나 전문가 중심의 활동이 씨들과 괴리되어 결국은 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자신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내 바탈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또한 그 변화는 개인의 고독한 사색이 아니라 씨들과의 서로 울림을 통해, 꿈틀거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4) 장일순: 모심과 공생, 무위

 

장일순의 사상은 세상을 전일적(全一的)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김종철은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사상’을 전한 것만으로도 장일순의 업적이 엄청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세상만물의 순환적인 상호의존 관계야말로 성장과 개발로 대표되는 폭력적인 지배가 판치는 현실을 넘어설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풀뿌리 민중에 대한 모심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74).

이런 전인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장일순은 이익과 경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졌고 이 둘의 연관성을 간파했다. 장일순은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선악과 애증을 갖게 되면, 취사선택이 있게 마련이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선호의 관념은 이(利)를 찾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현실에서 이웃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8)지리라고 봤다. 이익에 기반한 경쟁은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결국에는 생명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우주 속의 한 부분임을 망각하고 부분적인 이익만을 쫓을 경우 균형을 잃어버린 전체는 기울어지며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등’과 ‘이등 이하’를 경쟁 상대로만 볼 게 아니라 이쪽이 없으면 저쪽도 없는 거니까 서로 보완해 주는, 또는 하나를 이루는 그런 관계로 봐야 하는 거라. 그런 안목이 있어야 해. 그러니까 자기보다 성적이 못한 친구를 조금도 꾸밈없이 깔보지 않고 허심하게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그런 마음 바탕이 일상 생활 속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거야. 약하게 하려면 강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그렇지. 강한 놈이 만날 강할 수 있나? 만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수는 없잖아? 펴야지. 주먹을 펴지 않고는 쥘 수도 없으니까. 동일한 상태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장일순․이현주, 2003: 360).

 

장일순은 함석헌과 마찬가지로 개체라는 것이 전체와 분리되고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개체라는 게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와 합일 속에 개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를 이루면 큰일을 해낸다는 생각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지.”(장일순․이현주, 2003: 47) 각자가 제각기 자신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장일순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특히 장일순은 이미 경쟁과 파괴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 길은 내 위치를 지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끊임없이 활동가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밑으로 기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애, 검약, 겸손의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장일순은 이렇게 밑으로, 바닥으로 길 때 위로 상승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세상의 어둠이 빛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썩은 세상과 어두운 현실은 단지 썩음과 어두움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움과 빛을 품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세상과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 관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모시는 것이 중요해진다. 장일순은 경쟁과 시비의 논리를 극복하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모실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모시고 간다는 건 병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풀어주는 거지. 병하고 싸우면 말이지, 병은 점점 기승을 부리게 되거든.…위로해 줘야지.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는 거라.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풀어주면, 그러면 그들의 그런 행위가 없어지지 않겠어?(장일순․이현주, 2003: 241)

풀 한포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전부 위대한 것입니다(장일순, 1997: 118).

 

이렇게 나와 연결된 타자, 전체, 하나를 모시고 존경할 때 타자의 날카로움도 자연히 무디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심이 가능할 때 공동의 과제를 함께 처리할 수 있고, 전일적 관점에서 보면 모시는 것은 단순히 남을 존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로세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연대와 공생에 관한 관점으로, 생협에 관한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연대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장일순은 생협이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연대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개입해야 하고 생명운동과 민중운동, 계급운동과 다양한 부문운동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연대는 단순히 특정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연대나 서로 다른 단체의 활동을 돕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연대는 공생의 관계를, 그런 공생을 통한 무위의 변화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뉘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학생이 되기도 하고 학생이 선생이 되기도 하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166)를 만들어야 한다(이 말은 프레이리와 유사하게 교육의 본질이 서로 대화하고 나누는 과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산파의 역할로 규정한다.

이런 활동들은 장일순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맞닿아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은 업을 쌓게 되고 그 업은 성과와 관련된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공생공존하는 바탕에서 조화를 이루는 생활”(장일순․이현주, 2003: 45)을 뜻하고 그런 점에서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위무위(爲無爲)’를 뜻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인 도와 생명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이야말로 바로 무위이다.

장일순은 몸소 나서서 운동을 지휘하진 않았지만 민청학련을 비롯한 중앙의 굵직한 저항운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장일순의 호 ‘조한알’에서 드러나듯이, 장일순은 개체와 전체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했으며 생명의 전일성(全一性)을 강조했다. 그 관계 속에서 변화는 자연스런 무위(無爲), 수동적 적극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6. 결론: 네 사상가에서 드러나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

 

지금까지 살펴본 각각의 이론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네 명의 사상가들 모두 민중이 변화의 주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위조직이나 앞장서는 싸움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자각하고 조직하는 과정 속에서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네 사람 모두 강조했다. 물론 그런 스스로 함은 아무런 자극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동이나 활동가는 민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돕는 역할을,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맡는다. 민중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민중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시작하고 민중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상식에서 시작해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둘째, 그러기 위해 운동은 민중을 믿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중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때때로 접촉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닥으로 긴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과 상식, 전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민중을 모시고 살릴 때 가능하다. 단순히 민중을 일방적으로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배울 때 진정 민중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울고 서로 울리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고, 민중이 꿈틀거리며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지원한다.

셋째, 활동의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민중이 그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성과보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능동성이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성과는 그것이 가진 방향과 목표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기운을 자극했는가이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특정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특정한 권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민중의 얼을 살리고 생각하게 하며 권력을 와해시킨다.

물론 네 명의 사상가는 공통점만이 아니라 차이점도 가진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즉 전일적인 세계관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과 장일순이 ‘하나’와 ‘도’를 강조하며 각 개체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계급이나 집단의 의식과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그것과 대립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함석헌과 장일순이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근본적인 원리와 윤리를 얘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그 원리와 윤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전략과 방법을 얘기했다고 할 수 있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나로부터의 변화’가 어떻게 큰 변화를 만드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흔히들 풀뿌리민주주의같은 지엽적인 작은 변화로 어떻게 국가 전체를 바꾸는 힘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는 전체적인 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큰 바위를 쪼개는 물방울이나 나무뿌리의 힘처럼 질기고 작은 생명력이 결국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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