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아렌트라면 어땠을까? 아렌트가 지금 한국에 산다면 정치를 어떻게 볼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독재나 전체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공론장에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어떤 작가는 이를 나치의 등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비유가 적절한가 아닌가의 여부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51%의 국민이 박근혜씨를 지지했다는 사실로만 판단될 수 없다. 왜냐하면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던 독일 총선에서도 나치의 지지율은 44%였기 때문이다. 이 지지율을 등에 업고 합법적으로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나치를 제외한 다른 정당들을 해산시키고 여론의 입을 틀어막으며 전체주의를 실현했다.

그리고 아렌트는 선거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선거가 곧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려 근대 정당과 선거가 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할 것이라 우려했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시민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적인 의견을 서로 나누며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정답을 쫓지 않는다. 선거에서의 지지율보다는 공론장을 파괴하는 정치’,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정치’, ‘사유하지 않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정치’, ‘차이를 부정하고 효율성만을 강요하는 정치의 등장이 정치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아렌트를 읽고자 하는 이유도 단순한 지적 호기심보다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논의하려는 바람일 것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그 체제 너머의 정치를 보려는 사람에게, 정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개인주의의 냉소나 전체주의의 열광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아렌트는 좋은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국내외의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이다. 하지만 그 사상을 직접 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렌트의 언어와 사상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국내에 소개된 번역서들이 낯설음과 어려움을 더한다. 그리고 사상이란 현실과의 치열한 대면에서 나오는 것인데, 아렌트의 사상이 나오게 된 맥락은 책으로 이해하기 어려다.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개념들을 한국 현실과 어떻게 맞닥뜨리게 해야 할지 막막한 면도 있다. 어려운 책을 읽다보면 아렌트를 공부하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관심과 의문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아렌트가 궁금한 사람과 아렌트를 활용하고픈 사람 모두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고 아렌트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제 I부와 제 II부로 나눴고 관심에 따라 제 I부와 제 II부를 읽는 순서를 바꿔도 좋다. 아렌트의 사상을 조곤조곤 보고 싶은 사람은 제 I부부터, 아렌트의 관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한 사람은 제 II부부터 읽어도 된다. 따로 읽어도 될 만큼 아렌트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글을 쓰려 노력했으니 두 가지 맛 파스타 또는 짬짜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한 쪽의 깊은 맛을 느끼려고 하는 사람에겐 미흡할지 모르겠으나 어느 걸 선택할지 망설이는 사람에겐 여러 고민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I부는 수용소와 공론장이라는 아렌트 사상의 고갱이를 다루고, II부는 아렌트가 평생을 걸고 맞섰던 전체주의라는 화두에 주목하고 그 문제의식을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본다. 아렌트에게 수용소와 전체주의는 평생을 따라다닌 악몽이었다. 그 악몽을 끄집어내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악몽이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무슬림이라 불렸다. 아랍 사람이나 이슬람 교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엎드려 기도하는 듯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던 수용소의 은어였다.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채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측은함과 동정을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런 삶과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정치로부터 도피해서 개인적인 생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바로 그 때문에 주어진 질서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을 구성할 용기나 의견이 없으면서도 내가 주권자라며 공허한 호기만 부리는 건 아닐까?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편끼리 똘똘 뭉쳐서 비슷한 각도로 세상을 재단하고 어긋난 부분에 대한 불만만 쏟아내는 건 아닐까? 나도 당당한 주체라며 자신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공통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서로 공유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채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건 아닐까? 고립되어 있으면서 고독한 척 위선을 부리는 건 아닐까? 수용소는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타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을 규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I부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수 있도록 아렌트의 사상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전체주의는 단순히 독재자가 지배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비공식 조직이 공식기관의 힘을 대체하고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만드는 지배구조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면서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불안을 자극하며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도록 만드는 비밀경찰이 암약하는 체제이다. 실제 현실이 아니라 조작된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고 우리 자신도 이미 규정된 지위로만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큰 비극이 발생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이다. 295명의 승객이 사망했고 9명이 아직도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의 학생들과 먹고살기 위해 배에 올랐던 사람들이 이 참사로 떼죽음을 당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참사에 책임을 진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이 원인인지, 왜 사고가 참사로 이어졌는지,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고 하지만 사실을 은폐하고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할 뿐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정부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다시 한번 극심한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자식과 가족, 이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규와 몸부림에 가만히 있으라고,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정치적인 선전이라고 비난하는 이들과 우리는 정말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시민들이 선출한 정부가 시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끔찍한 세계전쟁과 정부의 거짓말, 폭력이 난무했던 20세기를 겪었던 아렌트는 이런 경우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II부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한국의 현대사를 되짚어본다.

아렌트를 읽으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1987년 민주화나 1993년 문민정부의 수립, 1997년 국민의 정부, 2003년 참여정부의 수립은 시민이 새로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는 세계를 부활시켰을까? 만일 그러하다면 왜 아직도 우리에게 정치는 부정하고 타락한 것이거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어떤 무기력한 것으로만 느껴질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한국의 정치는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글쓴이들은 이런 물음들에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주고자 노력했다. 글쓴이들은 길잡이로서 정치의 부활을 모색하는 이 흥미로운 여행에 앞장선다. 혹시 몰라 두 명이 지도를 함께 그렸고, 그래도 글쓴이들의 지도가 완벽한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돌다리를 두들겨보며 가려 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렌트의 원문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이끌어가려 했다. 가능하면 위태롭고 험난한 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 길을 지나지 않으면 다음 길로 이어지지 않는 곳도 있으니 힘들어도 같이 손을 잡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각 장의 마지막에 함께 읽기와 해설을 둔 것은 우리와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확인하기 위한 장치이다. 물론 때로는 길잡이를 따르지 않고 내키는대로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묘미일 수 있다. 그러니 길잡이에게서 여행의 모든 재미를 찾으려고 하지는 말기를... 다만 글쓴이들이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를 헤아리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은 아렌트에 관한 하나의 해석이고, 아렌트가 강조했듯이 다양한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뤄가는 합주(action-in-concert)’, 두 사람의 합주이다. 이 합주가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합주를 듣는 독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합주를 들으며 또 다른 합주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독자들의 몫이다. 깊은 바다에 홀로 들어가는 건 두려운 일이기에 이 책은 작은 불빛만 밝혀 놓았고 직접 들어가 텍스트를 건지는 작업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많은 몫을 밀어놓는 무책임한 저자들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렇게 아렌트를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빈다.

글을 쓰는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같이 아렌트 세미나를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아렌트에 관한 독서회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춰본 결과물이자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함께 이사와 간간이 고민도 나누고 밥도 나누며 만든 성과이다. 지역출판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한티재에서 이 책을 내게 되어 또 기쁘다. 모두 고마운 일이다.

 

그제는 출판사와, 어제는 각시랑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했다.

몇 부가 나갈 것 같냐는 물음에 그냥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살이 붙어 다양하고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사건들, 잊혀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들을 다시 호명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내가 드러나는 책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건들이 드러나는 책이다.

"멀리 외국의 혁명을 동경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엄청난 저항과 투쟁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것이"라는 점, 안성과 수원의 3-1운동과 소안도,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투쟁,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 백석동 주민투표, 매향리 국적포기 선언, 수원촛불, 장애인이동권 투쟁, 이라크전 인간방패, 지율스님 천성산 반대 농성, 남원주민 도로건설 반대, 대추리 주민 국적 포기선언, 세종대 생협, 달구벌 버스, 병역거부선언, 녹색당 창당 등 우리 역사의 사건들로 시민불복종과 직접행동, 정치를 설명할 수 있어 좋았다. 책 표지에 깨알같이 적힌 사건들은 이 책이 단지 '내 책'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치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너희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내 나름의 근거로 설명했다.

이제 책은 손을 떠났고, 총선 직접과 직후라는 상황이 선거를 중심에 두지 않는 정치를, 직접행동하는 정치를 얼마나 주목할지 걱정되긴 한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편하다. 내 할 몫은 했으니까...ㅎㅎ 이제 남은 건 친구들의 몫?ㅋㅋ

제 책을 증정받으신 분들은 '행복의 책'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다. '행운의 편지' 아시죠? 책을 받고 난 뒤 10명의 사람들에게 책을 사서 나눠주고 리뷰를 써서 올리지 않으면 평생 저주가 따라다닌다는...ㅎㅎ 제게서 이미 책을 받으신 녹색당 관계자분들, 세종대 생협 분들, 앞으로 제 책을 받으실 분들 긴장하시길...^^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646766


대학생협특별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학생협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일상을 비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부딪쳐보는 수밖에...^^;;
헐, 전날에 강의하는 분이 고미숙 선생이시네.
어쩌면 적절한 배합일지도...^^;;

이제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사건사고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북풍',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라는 '노풍', 4대강'전쟁'(사업이라 부르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크더군요) 등이 시민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지요.

그리고 반MB라는 구도로 짜지는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연합으로 당선되는 건 더 어려운 듯하고, 당선되고 나면 당선자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듯합니다.
유권자연대라는 단체들이 선거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선거도 그다지 흥미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네요(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창림, 서형원, 김혜련, 오관영 등등의 선수들께는 죄송...^^;;).
그래도 흥미로운 기운은 꼬물꼬물 싹트고 있는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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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하변이 만드는 새로운 블로그(www.ivoice.or.kr)도 이런 목소리를 많이 담으시겠죠?^^

저는 요즘 선거 이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 조짐이 좋지 않아서 미리 희망스런 일들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그런 일들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한양대 연구소도 그만뒀습니다(이거, 왠지 형제가 자퇴분위기인데요...ㅎㅎ).
7월에 아이가 태어나긴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분유값 떨어지면 도와주실 거죠? 아니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라도 열심히 팔아주셔야 합니다. 책 받으신 분들은 반드시 서평쓰기...ㅎㅎ)

'지식협동조합'의 뒤를 잇는 '대안대학'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꾸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공간을 공유하고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면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여기 들리는 분들도 나중에 아이가 크면 걱정이 되시겠죠. 우리 아이가 제2,제3의 김예슬이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말짱도루묵인 대학교육을 받는 아이러니를 피하려면 많이 도와주셔요.
좋은 아이디어도 주시구요.

다들 선거 때문에 바쁘실테니 선거 이후에 한번씩 찾아뵙지요.
그럼... 

 


도시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치솟는 전세값이 마음을 꺼멓게 태우고, 정리해고와 실업이 남의 회사 얘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야근과 잔업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데도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돈은 술술 어딘가로 샌다. 쓰린 속을 달래며 일을 하려니 이제는 몸도 슬슬 이상을 보이는 듯하다. 좀 쉬고 싶어도 직장에서 짤리지 않으려면 외국어나 최신 프로그램을 익히며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심지어 몸매나 유머감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열심히 사는 데도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질까?

나만 힘든 거라면 그럭저럭 참겠는데 우리 아이들의 삶도 행복하지 않다. 갓난쟁이들에게는 아토피가 끊이지 않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터진다. 학원을 보내고 싶지 않아도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 갈 곳이 마땅치 않고, 사실 집 밖만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맘 같아선 쉬엄쉬엄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느니,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느니, 불길한 말만 들리고, 왕따에, 사이코 패스에, 세상은 미처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생활자들은 이런 많은 고민들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감당해 왔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많은 돈과 노력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의 생활능력은 세계 최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면,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 살이 훈장처럼 박히도록 일하며 역경을 기회로 만들어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갔나? 그동안 간, 쓸개 다 빼주며 뼈빠지게 일한 결과는 무엇인가? 또 하나의 가족, 무슨 가족을 떠들던 기업들은 조금만 적자가 나면 가족들을 쳐내기에 바쁘고,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정작 그 기적을 일궈온 시민들은 죽 쒀서 개주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원래 다 그런 거다, 내가 뭘 어쩌겠냐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


생활에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시민들의 근성이 이상하게 정치로 가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헝그리정신, 악바리근성이 정치 쪽으로만 가면 냉소와 허무주의로 바뀐다. 술자리에서는 정치인, 전문가 못지않게 열변을 토해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착한 양이 되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산다.


물론 도시생활자들이 몰라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서는 정보가 넘쳐 난다. 많은 정치인들은 진보/보수나 좌/우, 자신의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그런 정보들에 익숙하기에 자신을 세련되고 똑똑한 시민이라 여기지만 각종 정보에만 밝을 뿐 자기 자신의 정치관을 고민해본 적이 없다. 매일마다 스캔들과 부패사건이 터지니 마치 쇼핑을 즐기듯 품평회를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에 관해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러니 “못살겠다 바꿔보자”라는 외침에 바로 따라붙는 건 “갈아봤자,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냉소이다.


루쒼(魯迅)의 『아Q정전』을 보면 아Q의 정신승리법이 나온다. 건달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아Q는 잠시 서 있다 이렇게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맞은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아Q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것을 늘 뒤에 가서 떠들어대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렸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이 같은 정신적인 승리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기 비하의 제1인자라고 여겼다. ‘자기 비하’란 말만 빼면 어쨌든 ‘제1인자’가 된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Q를 닮은 건 아닐까? 정치인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들에게 당한 거라구.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우리는 생각했던 것을 늘 정치인들 뒤에서 떠들고 앞에 가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한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얘기를 학교에서 배우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법 앞에만 서면 움츠려든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순종적인 민주시민이라고 여긴다. ‘순종적인’이란 말만 빼면 어쨌든 민주시민이니까.


다른 정치는 불가능할까?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보면 아주 훌륭한 도시생활자가 나온다. 우에하라는 남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개(展開)해봐”라며 상대방에게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면 우에하라는 국가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 지금 우리에겐 우에하라와 같은 배짱이 있을까?


지나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더 많이 일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행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이나 준법정신, 근면함과 성실함이 아니라 바로 정치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개인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행복의 조건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집값이나 전세값만 좀 내려가도 살기가 훨씬 편할 텐데 지금까지 우리는 널뛰기하는 그 값을 치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그 값이 정확한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셈만 정확하게 해도 삶이 한층 행복해질 텐데 그런 행복을 뒤로 미룬 채 “내 탓이오”만 외쳐 왔다.


전세값만이 아니다. 건강을 챙기는 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알고 있지만 건강 역시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불평등’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정규직 노동자보다 좋지 않다. 아무리 건강해지고 싶어도 먹는 게 부실하고 일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리고 사는 곳이 쾌적하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니 애써 고통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 이래도 건강이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적인 문제이니 건강 문제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정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고, 건강보험이나 의료시스템을 정하는 의료보건정책을 만드는 것도 정치에 속한다. 마을에 복지관, 도서관 등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 아이들의 아토피도 따지고 보면 도시의 생활환경과 연관되어 있으니 정치가 잘 이뤄진다면 아이가 몸을 박박 긁으며 힘들어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볼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가 고통스럽고 아픈 건 정치가 제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정치의 역할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보육이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떤 교육을 받는지는 모든 부모의 관심사이다. 이런 관심사를 개인적으로 풀려고 하니 우리 아이 잘 봐달라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촌지를 쥐어주며 부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런 관심을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푼다면 어떻게 될까? 보육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돌아가는 실상을 파악하고 아이들이나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면 어떨까?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문제인데도 나 혼자서 풀려고 하니 돈도 많이 들고 결과도 좋지 않다.

 

세상사는 게 원래 다 그렇지라며 담배를 꺼내 물거나 내 탓이라 자책하지 말고 정치에 관심을 좀 쏟자. 교육정책이 바뀌면 아이들의 삶도 달라질 수 있고 나도 더 이상 아이들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 노동관계법이나 보건의료관계법이 바뀌면 건강하게 삶의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주택법과 도시개발관련 법률을 바꾸면 2년마다 이사 걱정에 마음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된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두고 혼자서 먼 길을 돌아가니 지치고 힘이 든다.


귀찮게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내 아이들, 아이의 아이들, 대대손손 그렇게 선택받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태계 위기, 에너지 위기, 사회안전망의 위기 등 크고 심각한 위기들을 혼자 힘으로 쉽사리 헤쳐갈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런 요구들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여러 엔지오들의 노력으로 성별이나 장애, 연령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니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면 내게는 그것을 바로 잡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허나 제 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그걸 실제로 써먹는 사람이 없으면 법은 도루묵이 된다. 계속 요구하고 일을 바로잡아야 법이 제 역할을 한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이 나라가 조금 더 정의롭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내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자.


베란다에 플라스틱 화분을 놓고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다. 바짝 말라버린 씨앗이지만 바람을 쐬이고 물을 줬더니 몇일 만에 푸른 싹을 틔웠다. 삭막한 아파트 베란다 플라스틱에서 생명이 자라난다. 생명의 힘은 이리도 질기고 강하다. 미리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내 속에 잠재된 정치의 싹을 틔워보자.


이 책은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첫 작품이다. 우리 각시는 내가 부러워하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 내 글에 맞추느라 그 솜씨를 살리지 못했다. 다음번엔 내가 우리 각시의 솜씨를 따라가면 좋겠다.


그리고 7월이면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난다. 솔랑이가 태어날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우리 부부에게도 중요한 과정이다. 함께 하면 좋겠다.


2010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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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시와 함께 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 드디어 나왔다.
냉소하지 않고 희망을 품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술들을 한 권에 담았다.
소위 무림의 고수들만 아는 비법들을 평범한 시민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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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들어가는 글


I. 정치란 무엇일까?

1. 짜증나는 정치, 바꿀 수 없을까?

        정치가 사라지면 살기가 편할까?

        기업이 정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

        정치 참여가 양극화를 막는다

        정치 참여가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II. 선거와 참여제도 활용하기

1. 선거를 제대로 치러볼까?

        선거 때 누구를 찍어야 할까?

        투표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들

        직업으로서의 정치?


2. 선거 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뽑은 사람들을 감시하기

        잘 못하는 정치인과 공무원 들을 괴롭히기

        정신 못 차리는 정치인들 쫓아내기

        내가 직접 조례를 만들기

        우리 동네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마을예산, 이렇게 쓸 수 없나?


III. 정당 활용하기

1.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깐, 당신들 당비는 내고 당원 하나?

        당원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당은 어떻게 당론을 결정할까?

        지구당은 왜 폐지되었을까?

        재미있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2. 정당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천과정을 바꿔보자

        정당의 돈줄을 잡아라

        선거제도부터 바꿔라


IV. 엔지오 활동하기

1. 엔지오란 무엇인가?

        엔지오, 넌 누구냐?

        엔지오와 시민단체는 뭐가 다를까?

2. 엔지오 고르기

        환상의 짝꿍 엔지오 찾기

        엔지오를 고르는 기준은?

3. 엔지오 활동하기

        후원하기

        자원활동하기

        단체 만들기와 지원받기

4. 엔지오 활동, 세상을 바꿀 수 있나?

5. 생활 속의 엔지오, 생활하면서 대안을 만든다

        먹으면서 바꾼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건강하게 바꾼다, 의료생활협동조합

        불안을 넘어 협동한다, 다양한 협동조합들


V. 여론 만들기

1. 웹2.0과 현명한 군중

        블로그는 소통이다

        우리가 바로 미디어다

2. 허튼짓은 이제 그만, 정보공개제도가 있다

        정보공개청구, 속살 파헤치기

        도전! 정보공개청구

        정보공개청구가 바꾼 제도 그리고 삶


VI. 직접 맞서기

1. 시민불복종하기

        복종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복종하지 않는다고 권력이 무서워할까?

2. 마을에서 동지를 모아볼까?

        우리 동네 예산은 어떻게 쓰일까?

        주민자치센터는 누가 운영할까?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생긴 일

        학교운영위원회 참여하기

        아마추어의 반란: ‘가난뱅이’들의 생존전략


부록: 권리 찾기 매뉴얼

1. 찾아보자, 내 권리

        세계인권선언의 권리목록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살피기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2. 내 힘으로 바꾸는 세상

        첫번째 고개-정보 얻기

        두번째 고개-공공기관이나 정치인에게 요구하기

        세번째 고개-정당과 엔지오를 활용하기

        네번째 고개-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압력 가하기

        다섯번째 고개-직접 나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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