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09.04.03 10:52
요즘 보면 우리 사회가 개념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속된 말로 무개념의 사회가 되고 있는 거죠.

소위 권력의 핵심이라는 청와대의 행정관이 관련 업체의 접대를 받고 성매매까지 나서고.
그걸 조사해야 할 경찰청장이 자신도 예전에 접대를 해봤다며 재수없으면 성매매에 걸린다고 얘기하고.
이런 얘기가 드러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접대를 받고 성매매를 하며 자신의 힘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무개념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게 이명박 정부만의 잘못은 아닌 듯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상식이 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부안과 대추리의 주민들을 짓밟는 '몰상식'을 증명했지요.
그런 몰상식을 딛고 이명박 정부가 무개념의 정부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상식적인 정부가 들어선 적이 없는 게지요.

그리고 이런 몰상식과 무개념은 비단 정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권력이 그렇게 타락하는 동안 사회도 그 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동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고려대의 모습에서도 그런 무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 고대 출교생 사태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교수들을 감금했다며 학생들에게 '출교'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건인데요.
법원이 과한 처벌이라며 출교를 무효로 만들었는데도, 이제는 대학에도 '무기정학'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네요.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99428&gb=da
이미 졸업한 학생들까지 불러서 문제를 삼는다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임을 깨닫게 해주려는 걸까요?
김연아를 낳은 고대이니 그 자존심을 끝까지 세워보겠다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이 역시 고대 총장이나 교수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이미 대학은 권력이나 자본의 힘에 끌려다니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면 사태가 그렇게 가지 않았을 테니까요.
스승이 될 생각은 별로 없으면서 알량한 권위나 내세우고 있는 게 지금 대학의 모습이니까요.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지은 [대학과 제국]이란 책을 보면
정부와 기업이 대학을 어떻게 길들여왔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카멜롯 프로젝트, 트로이 프로젝트 등 미국이 남미나 다른 제3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들이 대학의 프로젝트로 발주되고, 사회과학자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요. 그래서 커밍스는 "미국의 유수한 지역학․국제학 연구소들은 정확하게 국가․정보기관․재단의 결탁의 산물"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로렌스 솔리는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이 대학을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합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기업이나 기업재단에서 대학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은 냉전시대에 정부보조금이 학문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학문분야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령 보수적인 군수제조업체가 설립하고 재정지원을 하는 존 M. 올린 재단은 시카고대학, 예일, 스탠포드, 하버드, 콜롬비아, 조지 메이슨, 조지타운, 듀크 대학을 포함하여 일류 법과대학을 가지고 있는 몇몇 대학들에서 진행되는 ‘법률과 경제학’이라는 연구 프로그램을 후원해 주고 있다. 이 ‘법률과 경제학’은 이 재단의 극우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법철학으로서, 공화당의 분석가 K. 필립스는 자신의 저서 『부자와 빈자의 정치학』에서 ‘법률과 경제학’은 H. 스펜서와 W.G. 서머의 시각을 상기시키는 신다윈주의 ‘이론’이라고 쓰고 있다. “시장에서의 상품선택 과정은 정부의 의사결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전도하고 있는 ‘법률과 경제학’같은 강좌가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처럼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대학의 강좌를 만들거나 그 강좌를 지원하면서 학문의 흐름을 주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소위 산학협동과정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보기도 합니다. 솔리에 따르면, "외국기업을 포함하여 기업들이 대학에 연구기금을 제공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경제학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납세자와 수업료에 의해서 세워진 대학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그에 상당하는 건물과 장비를 갖춘 기업실험실에서 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은 낮은 비용으로 대학원생들을 연구보조원으로 고용하여 민간부문의 연구원들보다 훨씬 더 적은 숫자로 동일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기업이 갖춰야 할 실험장비를 대학이 마련하게 하고(그러면서 생색도 내고), 값싼 노동력인 대학원생들을 착취하는 거죠. 꿩 먹고 알 먹고란 이런 걸 얘기하는 게 아닐까요?

또한 솔리는 한국정부가 미국 내의 한국학 연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얘기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미국 지식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미국대학에 돈을 풀었다고 합니다. “한국연구에 대한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대학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장려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학계의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시도한 가장 두드러지고 값비싼 조치였다.” 돈을 받는 대신 한국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연구를 삼가하고 아름다운 것만 드러내 달라는 거였죠. 그러니 우리는 미국에 한국학이 확산되어가고 있다며 기뻐하지만 사실 그 확산은 은밀한 거래일 뿐입니다.

이런 게 미국 대학만의 문제점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한국대학에서 사회주의나 기타 비판적인 강좌들이 모두 사라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학의 커리큘럼들을 두루 살펴보면 이런 영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곳곳에 자리잡은 산학협동단지나 벤처단지 등등을 보면 이미 대학은 기업의 영향력에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학이 상식적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게 어쩌면 몰상식한 건지도 모릅겠네요. 대학이 비판적 지식인들의 온실이라는 얘기는 이미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도의 성벽을 깨뜨려야 새 바람이 들어오지. 새 바람이 들어와야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지. 무엇으로 그 성벽을 깨뜨리느냐? 못할 것이 없는 정신의 포탄으로야 하지. 정신이 어디 있느냐? 사람에 있지. 사람이 누구냐 나지. 나밖에 사람은 없다. 막막한 우주에 사람은 단 하나이다. 그것이 나다. 「다른 사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 수도 없고 임의로 부릴 수도 없다. 내가 아는 건 나요,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건 나요, 내가 죽여도 좋은건 나다. 나 뿐이다. 그럼 이것 밖에 길이 없지 않나? 불은 불로야 일어나는 것이요, 바람은 바람으로야 일으킨다. 내가 폭발을 해야만 사회의 썩은 티끌을 불어 날리는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이렇게 말하면 너는 개인으로는 아니 된다더니 다시 개인에 돌아왔구나, 순환론이로구나 할지 모른다. 모르는 말이다. 나는 개인 아니다. 나는 아버지(全體)와 같이 있는 나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이란 건 거짓 것이다. 천지간엔 없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보고할 때 개인이란 것이 있지 참 삶에 개인은 없다. 내가 살려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는 것이 개인주의지, 전체를 섬기려고 짐을 내 등에 지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향기를 채우려고 나를 제단 위에 불사르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다. 이 날까지 역사는 언제나 개인 아닌 개인의 바치는 자기희생의 피에서만 수혈을 얻어 멸망을 면해 왔다. 모든 참 생명적인 혁명은 따져 들어가면 다 어느 가슴에서 나왔다. 삶 자체의 가슴에서 나왔다."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시대인 듯합니다. 오늘도 저는 가슴 덮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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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똘 2009.01.30 14:22

한국의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 시론적 연구

 

하승우

 

1. 들어가는 말

 

현재 한국 사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 토건국가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산업의 불균형, 수도권 집중화의 심화와 지방권력의 비민주성,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권력의 유착과 비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과도한 권력화, 전문성을 빌미로 견제를 받지 않는 관료정치의 강화 등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에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드러난 정책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은 한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여전히 권력이 노골적으로 횡포를 부리고 선거과정에서 비리도 발생하지만, 과거에 비해 정책결정절차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절차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있다는 점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주방폐장 주민투표에서 드러났듯이, 합리적인 절차가 비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사용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하승우, 2006). 사실상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주로 제도적인 면이었는데, 그 논의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합법적인 정치권력의 교체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민주주의의 내용은 보다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향을 잃은 채 공허한 하나의 수사적 이름으로 그 실질적인 내용을 잃어가고 있다.”(박주원, 2007: 177)

그리고 단순히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만으로 통합할 수 없는 다양한 균열선이 드러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 사이의 균열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고, 여기에 남성/여성의 성차, 학벌사회의 격차를 더하면 그 균열선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또한 ‘88만원세대’처럼 세대간의 균열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우석훈․박권일, 2007). 더구나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이런 균열선들을 더 깊이 파고 있다.

반면에 이런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힘이어야 할 소위 진보운동은 대중과 분리되어 영향력을 상실하고, 과거의 관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합법주의에 매몰되고 있으며,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진보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박래군, 2007). 최근 민주노동당의 붕괴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과거의 낡은 이념적/정파적 대립구도는 단순한 내용적인 한계를 넘어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한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위기의 현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반성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 대안은 새로운 프레임을,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 성찰과 반성의 계기는 전혀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 때 마련될 수도 있겠지만 잊혀진 것들을 재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도 마련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서 그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굳이 풀뿌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이 제도보다 사람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체를 기르며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 그리고 최근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풀뿌리운동(grassroots movement)과 풀뿌리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이다.

 

 

2. 풀뿌리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최근 들어 풀뿌리운동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함께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풀뿌리운동을 바로 지역운동과 연결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하승수는 풀뿌리자치운동을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풀뿌리운동은 ‘지역’보다 ‘삶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폭넓은 의미의 지역운동과는 구분”되고 있다. 즉 운동공간을 지역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나 활동가 중심의 운동노선을 따르면서 사람들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면 풀뿌리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승수, 2006).

그리고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오관영은 풀뿌리운동의 특성을 “운동을 조직화하고 드러내는 방식”에서 찾는다. 가령 속도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대한 반성, 공간을 재조직화하기 위한 운동, 주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창구를 만드는 운동, 다른 언어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운동, 여성을 중심으로 한 운동, 제도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운동으로 개념화한다(오관영, 2006).

이렇게 정의할 경우 풀뿌리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기는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풀뿌리운동으로 정의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겠다. 모든 지역운동이 풀뿌리운동일 수는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단순히 지방에서 진행되는 운동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지방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각각의 지방에 고립된 운동을 뜻하지도 않는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와 세계화의 현실에서 지방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풀뿌리운동을 공간적 차원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어려움은 이론적인 면에서도 존재한다. 지방 혹은 지역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의 규모를 풀뿌리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행정구역단위나 인구규모만으로 풀뿌리를 정의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방이나 놀이터처럼 행정구역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되는 운동도 있고, 지리산권역처럼 여러 행정구역에 걸쳐 진행되는 운동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지역이라는 규모를 물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풀뿌리운동의 규모는 운동의 이슈와 방식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지역에서 활동하고 지방에 뿌리를 내리 전략으로 풀뿌리운동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정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풀뿌리운동을 단순히 지역에 지부를 만드는 활동으로 제한하거나 지역으로 풀뿌리운동의 활력을 제한하려는 생각을 ‘운동의 풀뿌리화’라고 부르는 것은 풀뿌리운동이 가진 특징을 오해하게 만드는 그릇된 해석이다.

풀뿌리를 공간적 차원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풀뿌리운동을 정의해야 할까? 공간적 차원 외에 많이 쓰는 방법들은 풀뿌리를 주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 개인, 주민, 시민, 민중, 대중, 다중, 계급 등 여러 개념들이 정치적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먼저 정철희는 대중을 정치주체로 받아들이면서 풀뿌리정치란 “대중의 일상적인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이들의 정치적 능력을 찾아내려는 시도”(정철희, 2003: 157)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운동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조직화된 운동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시민과 개인을 연결짓고 생협에서 사용하는 ‘생활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기존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을 모두 비판하는 자율주의 쪽에서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운동을 바라보는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 가야 할 주체”(이호, 2002: 47)라 명명한다. 그러면서 이호는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지웠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호, 2002: 57)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승수는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중요한 것은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치능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주체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풀뿌리운동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풀뿌리운동의 목적”(하승수, 2006: 3)이라고 주장한다.

이호와 하승수의 관점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주민이라 호명하지만 그 주민의 범주를 분명하고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뿌리운동을 주체의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는 주체를 ‘존재’의 관점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관점에서 고민하게 한다. 이 글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

이 글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특정한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반대한다. 르포르(C. Lefort)는 민주주의의 전례 없는 혁명적 특징이 “권력의 소재지(the locus of power)를 비어 있는 장소(empty place)”(Lefort, 1988: 17)로 파악한 점이라고 주장한다. 즉 민중이 권력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그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민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권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사람들로 민중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규정이 가져올 수 있는 배제(exclusion)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런 '정의의 여백‘은 자칫 풀뿌리운동이 낳을지 모를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회생태론자인 북친(M. Boochin)은 이런 여백의 개념규정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근대 도시의 거대한 규모가 마을의회운동(neighborhood assembly movement)을 구성하는데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의회의 문은 누가 마을에 살든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개인은 마을의회에 참여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들은 참석하도록 강요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또는 무관심한 방관자나 나그네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은 충분히 논의거리들을 가질 것이다. 고려할 점은 참석하고 참여하려는 모든 이에게 집단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마을의회의 참된 민주적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Bookchin 연설문)

민주주의라는 말이 애초에 민중의 지배를 가리킴에도 풀뿌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 민중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대에 여성과 외국인,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면, 근대에도 마찬가지로 여성과 빈민,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이미 이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서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시민권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만일 시대와 사회적 상황이 변해 또 다른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들이 바로 풀뿌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을 지역이나 지방이라는 공간적 차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풀뿌리운동을 운동의 주체로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의 ‘희망투어’에서 드러났듯이, 중앙에서 고조되는 시민운동의 위기담론과 달리 삶의 터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다양한 풀뿌리운동들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이런 경향을 볼 때 한국의 풀뿌리운동이 기존의 시민운동이 드러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풀뿌리운동만으로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적 양극화, 매갈로매니아의 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이 가진 대안적인 희망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각한 인구집중(2005년말 전국의 48.3%)만이 아니라 사업체의 수도권 집중(2004년 기준 총사업체 수의 52%), 교육격차(지역별 학업성취도의 격차와 대학의 수도권 집중), 비정규직의 지속적인 증가 등 심각한 불균등발전은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난개발과 재개발 열풍 또한 고민의 틀을 확대시킬 것을 요구한다.

 

 

3. 민주화 운동의 단절과 잃어버림

 

기존의 사회운동은 풀뿌리민주주의나 풀뿌리운동이라는 개념보다 지역운동, 지역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김현우는 지역노동시장에 대한 개입, 지역경제운영을 위한 지역파트너십, 지방자치체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개입, 사회공공성 담론에 기반한 지역이슈, 지역발전전략이나 성장기획, 지역주민과의 유대강화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주장(김현우, 2005: 86~90)하지만 풀뿌리라는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관점을 따른다면, 김현우의 말처럼 이미 존재하는 지역 내의 다양한 운동자원과의 연대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런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즉 일반 대중이 참여를 통해 자기변화를 경험하며 정치적인 주체로 변하는 과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지역사회 변화전략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대중의 욕구나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소위 ‘과학적인 이론’의 틀에 삶의 방향을 맞추려는 운동과 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의 흐름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다양한 축을 맡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크리스챤아카데미, YMCA노동교육협회,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도시산업선교회, 야학협의회 등이 추구했던 운동은 풀뿌리운동의 틀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 9월 연세대학교에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도시문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미국의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S. Alinsky)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도시문제연구소>는 지역사회개발을 위해 빈민지역 주민들을 조직화하겠다는 목적을 가졌고, 1971년 9월 더 능동적이고 강력하게 활동하기 위해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설립했으며, 1973년 1월에 명칭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그리고 1976년에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한국도시연구소, 1999: 59~60).

또한 1971년에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교육사상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면서 기독교 교육운동 활동가를 중심으로 민중교육사상이 논의․실천되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과 더불어 선교조직 방법론으로서의 알린스키의 조직 이론이 중요한 실천원리로 자리잡았고, 이는 ‘의식화․조직화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의식화․조직화’는 이후 민중교육운동의 중요한 지향으로 설정되었다(홍은광, 2003: 119~158).

기독교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외국의 운동이론이 수입되는 한편, 한국사회 내에서 자생적으로 이론이 구성되기도 했다. 일찍이 함석헌은 씨론을 펼치면서 민중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역사를 재해석하고 민중중심의 사회운동론을 제시했다. 함석헌은 씨에게 다가가 씨과 함께 호흡해야 하고 씨이 스스로 자신의 바탈(性)을 되찾고 하나가 되도록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함석헌이 써던 수많은 글과 그가 행한 수많은 강연은 조직이 아니라 말과 글의 힘으로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도 유교와 가톨릭, 노장 사상과 동학 사상을 바탕으로 원주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신용협동조합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한살림운동)을 벌였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밝히듯이, 장일순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관점을 세우고 생명에 대한 모심과 섬김, 살림과 무위의 사상을 밝혔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장일순이 개입했던 수많은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운동이 지켜야할 분명한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다양한 운동의 유산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실되었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 강조되었던 스스로 눈을 뜨기 위한 ‘의식화’, ‘조직화’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의식화, 조직화로 전환되었다.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말은 동일했지만 그 기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앞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대중이 자신의 조건과 세계를 인식하고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했고, 뒤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전위조직이 대중을 계몽시키고 선도하는 정치세력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맑스-레닌주의 중심의 조직운동관은 기존의 운동과 이론에 대해서도 다른 식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운동의 의미를 개량주의 등으로 단순화하고 폄하했다. 사회변혁을 둘러싼 논쟁마저도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특정 텍스트의 과학성이 쟁점의 수준과 논의의 진척에 따라서 검증되기보다는, 어떤 텍스트에 권위가 항구적으로 부여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허재영 2004: 193)가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풀뿌리운동의 흐름과 이론적 논의는 점점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물론 작은 지역단위의 실험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운동의 주된 흐름이 되지 못했고 자연히 그와 관련된 논의들도 줄어들면서 이론적인 발전이 정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 네 명의 사상을 추적하며 그동안의 민주주의 담론에서 상실된 내용을 복원하고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놓으려 한다. 이들 네 명의 사상가는 각기 비슷하지만 다른 장에서 자기 활동을 펼쳤다. 프레이리는 브라질에서 추방된 이후 미국과 세계를 돌며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알린스키는 미국 내 지역을 돌며 빈민조직화에 힘을 쏟았다. 장일순은 원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각종 지역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청학련 등 민주화 운동에 도움을 줬고, 함석헌 역시 곳곳에 강의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렇게 달랐지만 시공을 초월해 서로가 만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일순이 프레이리를 읽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광산촌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던 장일순이 알린스키를 접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일순은 가톨릭센터에서 함석헌 등의 각종 지식인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중요한 문헌들을 번역해 보급하며 이른바 ‘원주캠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니 함석헌도 이를 통해 알린스키나 프레이리의 이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복원을 위한 이론적 디딤돌과 고민

 

그동안 알린스키를 다룬 논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에 《기독교사상》에 실린 글이나 그의 삶을 간략하게 조명한 글이 전부이다. 학위논문도 김규태의 “사회복지와 권력정책의 일연구 : R. 니버와 S. 알린스키를 중심으로”(1975)와 이경자의 “한국적 지역사회조직의 사회행동 모델 사례연구 :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중심으로”(2000)가 있을 뿐이다. 단행본으로는 알린스키의 글과 그 제자들의 글을 간추려 편역한 『S.D. 알린스키: 생애와 사상』(현대사상사, 1983)이 한글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하지만 <도시문제연구소>나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등의 단체들이 알린스키의 조직화론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지금도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은 알린스키의 이론을 중요한 이론적 틀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코넷의 트레이너인 최종덕은 코넷의 뿌리가 알린스키의 이론에 있음을 밝히면서 주민조직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알린스키의 이론이 실제 운동현장에서 많이 다뤄졌다면, 프레이리의 교육론은 그동안 교육학과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 주된 주제는 프레이리의 대화교육론, 변증법적 교육론, 인간주의 교육사상, 비판적 문해교육 등이었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프레이리의 사상을 다루고 한국 운동과의 접점을 구체적으로 모색한 논문도 있는데, 홍은광의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수용과정과 한국 민중교육운동에 대한 영향”(2003)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다룬 단행본들이 계속 번역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 번역된 프레이리의 저작은 『자유의 교육학』(아침이슬, 2007), 『교육과 의식화』(중원문화사, 2007),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마일스 호튼과 공저, 2006),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아침이슬, 2003), 『교육과 정치의식』(한국학술정보, 2003),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페다고지』(그린비, 2003-재번역), 『프레이리의 교사론』(아침이슬, 2000), 『인생이 학교다』(분도출판사, 1988)이다. 출판연도에서 드러나듯이 1970년대, 80년대에 소책자 복사본의 형태로 돌려보는 수준에서, 2000년 이후 프레이리를 다시 조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 프레이리의 이론을 맑스주의적 계급이론으로 해석하던 편향성에서 벗어나 프레이리의 이론적 장점을 다양하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은 신학대학원에서 주로 다루어졌고,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을 이어 내려오는 무교회주의나 스승인 유영모에게 이어받은 씨사상 등이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비폭력사상과 노장사상 등도 주된 연구주제였다. 종교학과 철학에서 함석헌을 간혹 주목해 왔는데, 이동수의 “함석헌과 정치평론”(2001), 문지영의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이념 연구: 함석헌의 저항담론을 중심으로”(2006)는 정치학 쪽에서 접근한 몇 안 되는 논문이다. 또한 함석헌은 《씨의 소리》를 1970년부터 시작해 약 10년간 발행했고, 그의 글을 모은 책만 해도 20권에 달한다. 함석헌의 삶을 다룬 평전도 조한서의 『평화를 사랑한 아름다운 사상가, 함석헌』(작은씨앗, 2007), 씨알사상연구회의 『씨알 생명 평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한길사, 2007), 김용준의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 2006), 이치석의 『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창, 2005), 함석헌기념사업회의 『다시 그리워지는 함석헌 선생님』(한길사, 2001)와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삼인, 2001),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한길사, 2001),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삼인, 2001) 등 여러 권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사)함석헌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www.ssialsori.net/)에서 함석헌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생전에 직접 책을 짓지 않은 장일순의 경우 논문으로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박순금의 “장일순 생명사상의 생태유아교육적 함의”(부산대학교, 2003), 이영화의 “무위당 장일순의 사상과 활동”(강원대학교, 2006), 박경빈의 “무위당 장일순의 서화에 대한 미학적 연구”(성균관대학교, 2006)가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대략적으로 다룬 논문들이다. 단행본도 장일순의 강연을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1997), 이현주 목사와의 대화를 엮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삼인, 2003),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엮은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녹색평론사, 2004), 최성현이 일화와 글, 그림을 엮은 『좁쌀 한 알: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도솔, 2004)이 전부이다. 그리고 무위당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http://www.jangilsoon.co.kr/)이 마련한 무위당 기념관과 여러 자료들은 장일순의 행적과 사상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외에 네 명의 사상가를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협동조합, 대안교육, 지역화폐 등의 공동체운동을 분석한 이근행의 “한국 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2006)와 1970~80년대의 대안공동체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고 있는 박주원의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기원”(2007)도 연구의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 연구는 네 명의 사상가의 얘기, 또는 그들에 관한 얘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인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각 사상가들의 이론이 방대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사상을 밝히고 정리하는 것만도 방대한 분량의 연구를 요구한다. 따라서 각 사상가들의 이론적 특징이 무엇이고 어떤 발전과정을 거쳤는지에 관해서는 이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이들의 사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만 간략하게 언급하려 한다.

그리고 이 연구는 이들의 사상이 현실운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보다 이들의 사상이 어떤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맞닿아 있는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이 도시빈민운동, 야학운동, 비폭력 평화주의, 무교회주의, 한살림운동, 지역공동체운동 등의 현실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상이 직접 현실을 이끈다는 생각은 현실을 살아가는 주민과 민중, 씨, 민초들의 경험과 의지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이들 사상가의 이론과 일치하기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과 현실운동의 접합점을 찾는 작업 역시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이후 연구의 과제로 남겨놓는다.

이 연구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네 명의 사상을 정리하고 그 사상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는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각각의 사상가들은 기존의 사회운동관과 다른 독특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독특하지만 서로 얽혀 있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자기의식화와 대화의 중요성은 민중(활동가도 민중이다!)의 의식에서 시작해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알린스키가 부각시킨 분노의 조직화와 대중에 대한 신뢰 역시 민중이 스스로 의식화,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석헌의 사상도 씨이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고 외부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보다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얼의 변화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일순 역시 민중을 모시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 공생의 사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 네 명의 사상가들은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의 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로 삼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생적인 변화의 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5.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단초들

 

(1) 프레이리: 자기의식화와 함께함, 대화

 

이미 20세기 중반에 체게바라(Che Guevara)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사회운동이 풀뿌리운동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교육학’이라고 이름지은 『페다고지(pedagogy)』에서 미래를 길들여진 현재로 재생산하려는 우파와 미래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좌파 모두를 비판하면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혁명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프레이리는 “진보적 교육자의 한 가지 과제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진지하고 정확한 정치적 분석을 통해서 희망을 위한 기회를 밝혀내는 것”(프레이리, 200b: 12)이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프레이리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재생산되는 지배구조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다. 프레이리는 이런 재생산의 원인을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의 모순”(프레이리, 2003: 56)에서 찾고 자기의식화만이 이런 모순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이 강조했던 전위조직이나 선도투쟁은 이런 자기의식화의 토대일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프레이리는 “해방교육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자기 사고의 주인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프레이리, 2003: 158)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혁명 지도부가 민중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민중 자신의 객관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즉 민중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관해 다양한 수준의 인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민중이 가진 특수한 세계관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교육과 정책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프레이리, 2003: 122)

그리고 이런 자기의식화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함’이다.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은,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부단한 투쟁 속에 있는 피억압자들(개인들이든, 민중 전체든)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 확립해 나가야 할 교육학의 몇 가지 측면을 제시할 것이다(프레이리, 2003: 60).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 양측을 매개하는 세계는 양측에게 영향과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하게 한다(프레이리, 2003: 119).

 

그렇다고 프레이리가 무조건 억압받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의 신비화, 민중지식의 절대찬양은 민중지식의 거부만큼이나 문제가 된다”(프레이리, 2002: 133)며 무조건적인 수용이 가지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라면, 민중지식을 절대 찬양하는 것은 ‘근본주의’”(프레이리, 2002: 133)라고 비판한다. 대중의 상식에 기초하지만 그 상식을 무조건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을 상식의 틀에 가두고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인정이나 거부는 양자 사이의 상호연관된 관계를 보지 못하고 둘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동일화하거나 차이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프레이리가 비판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 혹은 스니데르스가 ‘원시 문화’와 ‘선진 문화’라고 부른 것 사이의 변증법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법”(프레이리, 2002: 134)이다. 그리고 민중을 바라보거나 민중과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들 속에서 서로 배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프레이리가 추구했던 사회운동의 방법이었다.

따라서 어느 한 편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상화시켜서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의식화하는 방식은 결코 사회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고 프레이리는 믿었다.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바로 ‘대화’이다.

 

대화적 행동이론에서는 주체들이 서로 협동하여 세계를 변혁하는데 참여한다. 반대화적이고 지배적인 나(I)는 지배당하고 정복당하는 당신(thou)을 단지 사물(it)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대화적인 나는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당신이 또 다른 나를 구성하며, 그 나의 안에는 또 다른 당신이 있음을 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당신은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두 개의 당신이 되고 이 당신은 또 두 개의 나가 된다.(프레이리, 2003: 216)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민중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민중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민중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고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프레이리, 2003: 121)다.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은, 엘리트와 대중은, 전위조직과 민중은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공동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과 사회 속에 수동적으로 웅크린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보지 않았다. 수동적인 웅크림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 사람의 자기의식화와 함께 비슷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의 연대에서 형성될 수 있다. 그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함께함이고 대화이다. 이런 프레이리의 사상은 풀뿌리민중이 중요한 이유와 그들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알려준다.

 

 

(2) 알린스키: 분노의 조직화와 이해관계의 인정

 

알린스키는 타고난 조직가이자 주민조직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제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알린스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도 교섭을 강요할 수 있는 힘 없이는 교섭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추상적인 이념보다 “어떻게 힘없고 가난하고 무관심한 시민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느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알린스키, 1983: 37). 알린스키가 보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인 힘 없이 빈민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공허한 얘기일 뿐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선과 악의 문제는 힘을 얻고난 뒤에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알린스키는 주민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구성하고 그 힘으로 국가나 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을 많이 세웠다. 특히 알린스키는 분노를 조직화하는 전술, “불만을 선동하는 것, 그들이 좌절을 퍼부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 오랫동안 이전의 상태를 받아들여 밑에 깔려 있는 비행을 말소시킬 기구를 만들어 주는 것 등”(알린스키, 1983: 39~40)의 조직화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 분노만큼 인간의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분노와 함께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역조직화에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알린스키는 운동이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즉 현실이 “직접적인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권력장치의 투기장이며 그 안에서의 도덕이란 한낱 자기 이익과 정략적인 행동을 위한 수사학적 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알린스키, 1983: 141). 따라서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이 인간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추진력의 기능을 하고”, “자기이익의 중요성은 한 번도 의심되어 본 적이 없고, 인간 생활의 불가피한 요소로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알린스키, 1983: 155). 이런 알린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주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이다.

분노와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공공선이나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알린스키는 조직화를 위한 싸움에서 페어 플레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현실에서 공정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이미 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알린스키가 보기에 수단과 윤리는 반드시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수단의 윤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야 했다(Alinsky, 1989: 26~29).

마찬가지로 알린스키가 지역조직화 전략에서 방법과 목적을 분리시키는 점은 그 전략의 민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그러나 알린스키가 그런 전략을 주장한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였다. 오히려 타협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알린스키는 그런 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알린스키가 시카고에서 조직했던 빈민운동조직인 <백 오브 더 야드(back of the yard)>이나 흑인빈민운동조직인 <우드런 지역조직(The Woodlawn Organization)>, <FIGHT(Freedom, Integration, God, Honour, Today)> 등은 이런 전술을 충실히 따랐고 큰 성공을 거뒀다. 알린스키의 주장은 단순했다.

 

자, 너희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다. 너희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이렇게 차별대우받는 예를 깨뜨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단지 조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힘이란 것은 양극점이다. 즉 돈을 가진 사람들과 사람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너희들의 동료만이 너희들의 힘의 유일한 원천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너희들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이런 방법으로, 또 저런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너희들이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당장 한꺼번에 모두 궐기하라.(알린스키, 1983: 68~69)

 

하지만 분노를 조직화하는 것만으로는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조직할 수 있을까? 알린스키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폭넓고 총괄적인 것이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주민활동가는 주민들 속의 지도자급 인물을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지도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주민의 전통은 주민들의 경험이라는 직물에 얽혀 짜여 있다. 주민들의 전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편견과 믿음과 가치관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민주적 행동을 방해하는 사회적 힘과 마찬가지로 건설적이며 민주적인 행동을 주장하는 사회적 힘을 확인하는 것”(알린스키, 1983: 119)이라며 지역사회의 전통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린스키는 프레이리처럼 “개혁가들은 대중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범한 이해의 기초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전향시키려는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조치와 전략은 그러한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4)라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조직화 단계를 거치면서 주민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첫째, 조직의 구성원이 처음부터 끝가지 전부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누구나 말하게 하고 잘못된 의견이나 반대의견이라도 묵살하지 말고 공유화하며 존중해주어야 한다. 셋째, 전체의 이익이 되고 개인의 이익이 되는 공동의 선(善)을 발견케 하고 이에 모두가 동의하게 해야한다. 넷째, 전체 구성원의 의사가 모아지고 결정되어지면, 행동방법에 대해서 협의하고 결정해서 모두가 그 결정에 따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다섯째, 조직된 후 곧 조직을 가동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여섯째, 쟁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원화시켜야 한다. 알린스키는 조직은 쟁점으로부터 나오고 쟁점 또한 조직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따라서 쟁점을 만들어 내느냐 못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서 조직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이경자, 2000: 24).

설령 지역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중에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활동가는 신념으로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활동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중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면 안 된다. “그는 이러한 태도와 행동들이 열악한 환경의 결과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심판받아야 할 것은 대중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환경이다. 그러므로 사회변화에 대한 개혁가들의 열망은 더욱 견고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3) 이런 신뢰와 신념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알린스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알린스키는 활동가가 그런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가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을 통해 풀뿌리 민중은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며 자생적인 지도자(native leader)로 거듭나게 된다.

 

 

(3) 함석헌: 역사의식과 서로 울림, 꿈틀거림

 

김상봉은 서구철학의 타자성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을 함석헌의 역사철학에서 찾고 그것을 ‘슬픔의 해석학’이라 부른다. 고난과 슬픔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서 하나가 되는 연관성을 만들고 “역사의 슬픔이 곧 지금 우리 자신의 아픔과 슬픔이 되는 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며, 모든 주체가 그러하듯, 우리 또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감으로써 주체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과 슬픔은 우리의 자기의식의 본질적 내용이다.”(김상봉, 2002: 328) 이렇게 자신에게 돌아온 자의식은 슬픔과 하나되어 단순히 체념하지 않고 불행한 현실을 부정할 또 다른 현실을 사유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자의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자의식으로 그치지 않는다. 함석헌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인격이란 것은 있기는 개(個)로 있으나 그 바탕(性)은 사회적인 것”(함석헌, 1979: 162~163)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고 전체요, 마찬가지로 “한 시대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결코 개인행동의 타락이나 어떤 제도의 깨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사회가 어지러워진 결과로 오는 것이다. 어지러움은 그보다도 전체의 산 통일이 깨지는 데서 온다.”(함석헌, 1979: 277) 따라서 고난을 겪으며 회복된 자의식은 개인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전체의 통일을, ‘하나’의 회복을 추구한다.

따라서 심의용은 함석헌의 사상에서 고난이 “생명의 한 원리이며 동시에 생명의 길”이고 그렇게 생명을 품은 존재가 바로 씨이며 “이 씨알이 역사의 주체자”(심의용, 2005: 168)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심의용은 함석헌 사상에서 자치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서로 울림’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함석헌의 스스로 함 또는 자치(自治)는 서구적인 개인의 스스로 함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은 홀로 고립되지 않고 전체 속에 존재한다. 이 전체 속에서 개인은 우민(愚民)․우맹(愚氓)․민초(民草)․서민(庶民)․검수(黔首)․검우(黔愚)같은 부정적인 말에서 벗어나 씨로 성장한다. 비록 바닥에 있지만 어리석고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바닥에 버티면서 높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씨이라고 함석헌은 강조한다.

하지만 이 씨이 전체의 이름으로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석헌은

 

하나됨은 남의 인격을 존중해서만 될 수 있는 일인데 남의 인격을 아는 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서고야 될 일이다. 정말 제 노릇하는 사람은 제가 제 노릇을 할 뿐 아니라 남을 제 노릇 하도록 만든다(72). 거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인격은 곧 자존(自尊)이다. 스스로 높임이 스스로 있음(自存)이다(함석헌, 1979: 72~73).

 

라고 강조했다. 즉 하나됨은 차이를 존중할 때 가능하고 그 차이가 분리되거나 고립된 단자로 인식되지 않고 서로 엮여진 그물망 속에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으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진정한 하나됨은 내가 서고 남이 서고 우리가 설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은 “내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쓰고 사는 집에 당긴 불부터 꺼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있어 역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내다보고 거기 참여하는데서 사람의 살림이 나오는 것”(함석헌, 2002: 210~211)을 아는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함석헌은 전체가 단순히 부분의 합일 수 없다고 봤고 마찬가지로 전체가 나를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인 전체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역사 역시 인간의 인위적인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역사는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사건이고 그렇기에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절대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되고, 역사는 도그마가 된다.

따라서 함석헌은 민중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사람이 아니라 민중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 혁명가이고 그가 민중 속에서 하나되어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씨 속에 내포된 자기 바탈(性)을 되찾고 생명을 밝히는 것이어야 했다. 기풍과 습성의 변화 없이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여기서 함석헌은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만 제대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믿음, 그 사상이 정말 큰 것, 정말 높은 것, 정말 성한 것이 되려면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단번에 증발이 되어 구름으로 된다. 시냇물이 정말 강산의 초목을 살리려면 한 번 하늘에 올라가 비로 되어 퍼붓지 않으면 아니되고, 하늘에 오르려면 골짜기 그늘 밑 돌 틈에 있어서는 될 수가 없고, 반드시 저 흙탕물 이는 돌을 거쳐 바다로 가야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함석헌, 2001a: 242).

어떤 이론도, 어떤 도덕도, 어떤 운동도, 씨의 밸 고분지 밑까지 내려가지 않고는 역사의 진행을 서두르는 폭풍을 일으킬 수 없다.(함석헌, 2001a: 243).

 

그렇게 되면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게 된다. 아니, 이미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함석헌은 이를 ‘꿈틀거림’이라는 개념으로 축약된다. 민중의 꿈틀거림이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힘을 생성할 것이다.

 

그 꿈틀이 무서운 꿈틀이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터지고야 마는 봄이 온다. 삶은 절대이기 때문에 터지고야 만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生)의 항의(抗議)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이다. 내가 이름 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함석헌, 1979: 20).

 

엄혹한 70년대에 함석헌은 어떻게 꿈틀거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을까? 함석헌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아무리 억압적인 독재권력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방이든, 음식점이든, 역이든 사람들을 만나는 곳에서 대화의 물길을 만든다면 독재권력이 그것을 막지 못한다고 봤다. 함석헌은 이런 일상의 공론장이 씨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극제가 되리라 봤다.

함석헌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아래로 내려가 씨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옆을 지키며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씨이라는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함석헌은 생명이 자라듯이 사회의 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고 봤고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바탈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고 봤다. 이 점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제도나 전문가 중심의 활동이 씨들과 괴리되어 결국은 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자신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내 바탈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또한 그 변화는 개인의 고독한 사색이 아니라 씨들과의 서로 울림을 통해, 꿈틀거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4) 장일순: 모심과 공생, 무위

 

장일순의 사상은 세상을 전일적(全一的)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김종철은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사상’을 전한 것만으로도 장일순의 업적이 엄청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세상만물의 순환적인 상호의존 관계야말로 성장과 개발로 대표되는 폭력적인 지배가 판치는 현실을 넘어설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풀뿌리 민중에 대한 모심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74).

이런 전인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장일순은 이익과 경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졌고 이 둘의 연관성을 간파했다. 장일순은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선악과 애증을 갖게 되면, 취사선택이 있게 마련이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선호의 관념은 이(利)를 찾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현실에서 이웃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8)지리라고 봤다. 이익에 기반한 경쟁은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결국에는 생명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우주 속의 한 부분임을 망각하고 부분적인 이익만을 쫓을 경우 균형을 잃어버린 전체는 기울어지며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등’과 ‘이등 이하’를 경쟁 상대로만 볼 게 아니라 이쪽이 없으면 저쪽도 없는 거니까 서로 보완해 주는, 또는 하나를 이루는 그런 관계로 봐야 하는 거라. 그런 안목이 있어야 해. 그러니까 자기보다 성적이 못한 친구를 조금도 꾸밈없이 깔보지 않고 허심하게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그런 마음 바탕이 일상 생활 속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거야. 약하게 하려면 강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그렇지. 강한 놈이 만날 강할 수 있나? 만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수는 없잖아? 펴야지. 주먹을 펴지 않고는 쥘 수도 없으니까. 동일한 상태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장일순․이현주, 2003: 360).

 

장일순은 함석헌과 마찬가지로 개체라는 것이 전체와 분리되고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개체라는 게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와 합일 속에 개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를 이루면 큰일을 해낸다는 생각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지.”(장일순․이현주, 2003: 47) 각자가 제각기 자신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장일순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특히 장일순은 이미 경쟁과 파괴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 길은 내 위치를 지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끊임없이 활동가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밑으로 기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애, 검약, 겸손의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장일순은 이렇게 밑으로, 바닥으로 길 때 위로 상승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세상의 어둠이 빛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썩은 세상과 어두운 현실은 단지 썩음과 어두움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움과 빛을 품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세상과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 관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모시는 것이 중요해진다. 장일순은 경쟁과 시비의 논리를 극복하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모실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모시고 간다는 건 병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풀어주는 거지. 병하고 싸우면 말이지, 병은 점점 기승을 부리게 되거든.…위로해 줘야지.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는 거라.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풀어주면, 그러면 그들의 그런 행위가 없어지지 않겠어?(장일순․이현주, 2003: 241)

풀 한포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전부 위대한 것입니다(장일순, 1997: 118).

 

이렇게 나와 연결된 타자, 전체, 하나를 모시고 존경할 때 타자의 날카로움도 자연히 무디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심이 가능할 때 공동의 과제를 함께 처리할 수 있고, 전일적 관점에서 보면 모시는 것은 단순히 남을 존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로세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연대와 공생에 관한 관점으로, 생협에 관한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연대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장일순은 생협이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연대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개입해야 하고 생명운동과 민중운동, 계급운동과 다양한 부문운동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연대는 단순히 특정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연대나 서로 다른 단체의 활동을 돕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연대는 공생의 관계를, 그런 공생을 통한 무위의 변화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뉘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학생이 되기도 하고 학생이 선생이 되기도 하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166)를 만들어야 한다(이 말은 프레이리와 유사하게 교육의 본질이 서로 대화하고 나누는 과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산파의 역할로 규정한다.

이런 활동들은 장일순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맞닿아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은 업을 쌓게 되고 그 업은 성과와 관련된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공생공존하는 바탕에서 조화를 이루는 생활”(장일순․이현주, 2003: 45)을 뜻하고 그런 점에서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위무위(爲無爲)’를 뜻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인 도와 생명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이야말로 바로 무위이다.

장일순은 몸소 나서서 운동을 지휘하진 않았지만 민청학련을 비롯한 중앙의 굵직한 저항운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장일순의 호 ‘조한알’에서 드러나듯이, 장일순은 개체와 전체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했으며 생명의 전일성(全一性)을 강조했다. 그 관계 속에서 변화는 자연스런 무위(無爲), 수동적 적극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6. 결론: 네 사상가에서 드러나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

 

지금까지 살펴본 각각의 이론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네 명의 사상가들 모두 민중이 변화의 주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위조직이나 앞장서는 싸움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자각하고 조직하는 과정 속에서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네 사람 모두 강조했다. 물론 그런 스스로 함은 아무런 자극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동이나 활동가는 민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돕는 역할을,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맡는다. 민중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민중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시작하고 민중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상식에서 시작해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둘째, 그러기 위해 운동은 민중을 믿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중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때때로 접촉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닥으로 긴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과 상식, 전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민중을 모시고 살릴 때 가능하다. 단순히 민중을 일방적으로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배울 때 진정 민중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울고 서로 울리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고, 민중이 꿈틀거리며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지원한다.

셋째, 활동의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민중이 그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성과보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능동성이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성과는 그것이 가진 방향과 목표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기운을 자극했는가이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특정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특정한 권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민중의 얼을 살리고 생각하게 하며 권력을 와해시킨다.

물론 네 명의 사상가는 공통점만이 아니라 차이점도 가진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즉 전일적인 세계관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과 장일순이 ‘하나’와 ‘도’를 강조하며 각 개체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계급이나 집단의 의식과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그것과 대립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함석헌과 장일순이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근본적인 원리와 윤리를 얘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그 원리와 윤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전략과 방법을 얘기했다고 할 수 있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나로부터의 변화’가 어떻게 큰 변화를 만드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흔히들 풀뿌리민주주의같은 지엽적인 작은 변화로 어떻게 국가 전체를 바꾸는 힘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는 전체적인 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큰 바위를 쪼개는 물방울이나 나무뿌리의 힘처럼 질기고 작은 생명력이 결국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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