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생협매장 문제로 <아이쿱 광주권 생협>과 <한살림광주생협>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아이쿱 생협이 한살림 매장 근처에 연이어 대형매장을 내어 한살림매장이 큰 위기를 겪거나 폐점되자 한살림이 먼저 토론회를 제안했다. 아이쿱 생협은 신설 매장이 조합원 협동의 결과물이고 먼저 매장이 들어섰다고 그것이 기득권이나 독점일 수 없으며 협동조합도 서로 경쟁할 수 있다고 답하며 토론회를 수락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토론회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이 토론회가 시작이어야지 끝이면 안 될 것 같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가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생협과 관련된 논쟁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생협 매장이 지역의 작은 가게들에 영향을 미치거나 문을 닫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생협과 거래하는 생산지들이 커지고 사업화되면서 자기 지역 먹거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 생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털어놓는 어려움을 접한다. 그럴 때마다 놀란 가슴을 달랜다. 생협은 자기 길을 잘 걷고 있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들리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해온 걸까? 이러다간 어느 순간 생협도 점점 일반 기업처럼 변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생긴다. 살림이나 호혜의 경제학이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학, 시장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닐까? 조합원이나 협동조합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사회의 의식이나 문화는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민의 삶은 더욱더 치열한 승자독식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건 아닐까?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상호부조가 만물의 진화를 돕는다는 이론을 사회에도 적용시켰다. 경쟁이 없다거나 무조건 경쟁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경쟁만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 아니고 외려 상호부조와 상호지지를 통해서 경쟁이 제거되면 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하는 삶이 경쟁하는 삶보다 훨씬 오랜 전통과 문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단지 ‘성장이냐 아니냐’라는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는 물음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삶과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경쟁이라는 말이 이미 나왔으니 그 말을 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경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경쟁은 더 다양한 말로 치장될 것이다. 아마 적대적인 경쟁과 호의적인 경쟁이 다르다는 말도 나올 것이다. 허나 그런 차이가 만들어지려면 사회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협동조합들을 지원하고 우호적인 경쟁자를 만든다는 이탈리아의 협동조합기금이 이탈리아라는 사회적 조건을 무시하고 논의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환경은 이탈리아와 비슷한가? 협동조합에 이로운 외부 환경이 조성되어 있나? 그런 환경이 없는 상태에서 조합원들이 경쟁을 당연한 원리로 받아들일 때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을까? 무조건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하는 매장, 같은 조합원임에도 일방적인 친절함을 강요당하는 매장 활동가나 실무자, 일반 기업이 겪는 문제를 협동조합은 겪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단지 매장의 입지만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가지 물음들을 놓고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면 좋겠다.

협동조합 7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은 ‘협동조합간의 연대’이다. 그런데 연대 이전에 서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인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역 내의 다른 생협이나 협동조합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를 어떻게 모시고 있나? 이 물음에 답을 찾아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

함께 살자, 이것은 결코 당위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에서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 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거죠.”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핍을 보상받을 물질이 아니라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관리나 억압에 저항할 수 있으며, 경멸당하고 무시당하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이다. 남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을 받쳐주는 것이 사람(人)이고 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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