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준의 블로거에 들렸다가 하워드 진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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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하워드 진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뭐랄까...
하워드 진은 특별한 지식인이었다.
어떤 이념에 맞춰 세상을 재단하지도 않고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는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나갔다.
내가 하워드 진에게 호감을 느낀 건 그가 공군 폭격수였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며 반전과 인권, 자유를 외치는, 투쟁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 반대한다](이후, 2003)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여전히 파시즘을 저지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항공대에 들어가 열렬한 폭격수가 되도록 나를 떼밀었던 도덕적 올바름을 지탱하는 명쾌한 확실성 위로 바야흐로 많은 생각들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게 『요가수행자와 인민위원The Yogi and the Commissar』을 빌려줬던 다른 승무조 사수와 나눈 대화를 통해 최초로 의구심이 지펴진 듯했다. 그는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며 양 진영 모두 국가적 힘을 위해 싸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영국과 미국이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파시즘이 자국의 자원과 국민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히틀러는 미치광이 독재자이자 침략자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영제국은, 이윤과 제국의 영광을 위해 곳곳의 원주민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벌인 대영제국의 기나긴 역사는 무엇인가? 또 소련을 보라. 역시 야만적인 독재는 아니지만, 전 세계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신의 국가적 힘에만 관심이 있지 않았던가?"

그에게서 나는 지식인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만족이나 이념에 갇혀 성장을 거부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지식인, 그것이 하워드 진의 참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하워드 진의 또 다른 매력은 지행합일, 언행일치이다.
그는 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드러내면서도 대학의 교수보다 강연장이나 거리의 투사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지식인의 삶을 구속하는 현실에서 진은 그 현실을 넘어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노엄 촘스키 등이 지은 [냉전과 대학](당대, 2001)에 하워드 진은 이런 글을 실었다.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정하던 촘스키는 시민적 자유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며 전문가를 찾았다.


"컬럼비아의 중견 역사학교수를 찾아가 시민적 자유와 관련한 주제를 쓰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다른 분야를 시도해 보라고 주의를 주었다. 시민적 자유는 너무나 논쟁의 여지가 많아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그는 시민적 자유의 옹호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한 개인의 직업이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권력 범위 내에서 승인 혹은 거부당하는 조건에서도, 설령 그 상황이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선택 가능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가치관에 따라 가르치고 행동하는 것과, 아니면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 권력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안전을 위해 자신에 대해 부정직해지고 자기검열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된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에도 진은 미국인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얘기를 미국인들과 전 세계에 전하며 자신의 앎을 삶과 일치시켰다.

여전히 세상은 위선과 전쟁에 휩싸여 있기에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형준이 번역한 [권력을 이기는 사람들](난장, 2008)이 진의 마지막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책에서 진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시민불복종은 우리를 자극하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서로 조직할 때, 우리가 참여할 때, 우리가 일어서서 함께 외칠 때, 우리는 어떤 정부도 억누르지 못하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슬퍼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늘이 진을 부른 것은 야속하지만 어쩌면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삶을, 더 실천적인 앎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워드 진의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아픈 진실에 눈을 뜬 사람들이 교양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참여하도록 그는 자신의 자리를 비켜준 것일지도...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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