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월드컵 축구에서 골을 넣었을 때와 비슷한 함성이 동네를 뒤흔들었다. 선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해 봤다. 한 가지 떠오르는 건 평창 올림픽 유치.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온통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사람들이 기뻐하며 눈물 흘리는 광경에, 꼴 보기 싫은 인물들의 등장에 난리법석이다.

그런데 하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엑스포 등 수많은 국제행사를 치르는 동안 우리의 살림살이는 얼마나 나아졌나? 복지에 써야 할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었지만 남은 건 빚밖에 없다. 차량을 통제하고 이런저런 행사에 동원되고 전 국민이 영어를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소동을 불평 없이 받아들였건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또 올림픽을 유치했다며 소란을 피우고, 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든다. 2007년 7월 민주노동당은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러시아의 소치가 선정되었을 때 “언제까지 스포츠 쇼비니즘에 국민을 들러리 세울 건가?”라고 묻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은 국제스포츠경기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발전시킨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빚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점, 동계올림픽이 반(反)생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개발지의 인구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유치 실패가 오히려 주민들의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불과 4년이 지난 2011년 7월, 민주노동당의 논평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로 시작한다. 동계올림픽이 ‘평화와 통일의 올림픽’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4년 전의 논평이 지적했던 문제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살림살이 면을 보면, 2010년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27.5%로 매우 낮다.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군은 재정자립도가 19.9%로 지방세 수입으로는 공무원의 인건비를 근근히 해결하는 실정이다. 강원도는 자생적인 산업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각종 교부세와 보조금으로 근근이 지방정부를 운영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동계올림픽이 평창군과 강원도에 어떤 도움을 줄까? 강원도민의 살림살이에 들어가야 할 예산이 얼마나 건설사와 지역토호들의 손으로 사라질까?

물론 올림픽 유치로 많은 국비 지원을 받겠지만 대규모 경기장과 시설을 짓고 나면 그걸 관리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0년 각 월드컵 경기장의 평균 사용횟수는 30~40회에 그치는데, 관리비는 수십 억원에 달했다. 마찬가지이다. 동계올림픽을 흥청망청 전국 잔치로 치르겠지만, 행사가 끝나면 이런 비용은 고스란히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변한다.

그리고 6개의 경기장을 더 지을 뿐 아니라 강원도 내에 국제공항이 없어 경기장까지 도로를 닦고 고속철도를 놓는다고 한다. 그런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경기장을 짓고 도로와 고속철도를 놓는 신기술이 지난 4년 동안 개발되었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어떻게 ‘생태 친화적인 올림픽’이 가능하단 말인가? 한번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강원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바탕 벌어지는 소동을 보며 한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진보정당이라면 지역 내부의 힘을 끌어내고 모아서 자생적인 지역발전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비전을 파괴하는 동계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민주노동당이 ‘진심으로 환영’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아직도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평창올림픽에 들어갈 7조 이상의 세금으로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새로운 대안을 기대한다.

지난번 칼럼을 쓰고 난 뒤, 속해 있는 단체의 블로그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다. 줄여서 표현하면, 내가 하는 얘기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실제 현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절반의 진실이라 생각한다. 지난번 칼럼은 진보정당이 지역이나 지방자치를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글이기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 얘기가 궁금하신 분은 http://blog.grasslog.net/archive/709을 방문해보시길). 그래서 오늘은 좀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지방선거에 대비하는 선거연합 논의가 한창이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선거인지라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그 논의에 집중하다보면 깃발만 꽂으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좀 환기시키는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정책정당으로 활동하려면 정책을 세울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들이 수집되어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에 가면 주로 성명․논평, 활동보고, 운영위, 대의원대회 소식만 올라와 있지 지역에 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내친 김에 민주노동당의 시․도당 홈페이지를 쭉 둘러봤다. 그런데 서울시당, 충남도당에만 약간의 지역자료가 있고 다른 시도당의 경우 자료실이라는 이름이 좀 무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지방정부의 원자료를 올려놓은 수준이지 그 자료를 민주노동당의 관점에서 가공하고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의 각 지역후보들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선거에 임할 생각인가? 물론 민주노동당이 히트시킨 몇 가지 공약들이 있지만 그 공약들을 지역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그 지역의 실정에 맞게 공약들을 다시 가공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려면 그 지역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당 내에서 지역별로 정책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지 제법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연구소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지역정보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만 과거와 달리 기본적인 자료들은 지방정부의 홈페이지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시정백서와 각종 통계자료, 예산서 등을 PDF나 엑셀파일로 다운받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면 민원을 넣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그것을 직접 구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시의 2010년 본예산서를 그냥 쓱 훑어만 봐도 많은 문제점이 눈에 띤다. 일단 사회단체보조금이 14억이나 잡혀 있는데, 대부분이 관변단체의 운영비와 사업비로 지출되고 있다. 1조 1천억원이 넘는 예산에서 수송 및 교통부문 예산이 약 2,772억원으로 25%를 차지한다. 이 액수는 사회복지예산보다 무려 300억원이나 많다. 또한 교육체육과 시예산이 553억원인데 그 중 304억원이 엘리트 체육 및 생활체육 육성에 사용된다. 지역이슈가 별 것 있나, 이런 것들이 바로 이슈이다.


몇 년치 예산서와 시정백서, 도시기본계획, 복지계획 등을 늘어놓고 그 관계를 추적하다보면 지역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들을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이렇게 쓰일 돈이 사실은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보자.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이 내거는 구호들을 추상적으로만 느낄까?


우리가 집권하면 이렇게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려면 참여의지를 자극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판을 깔아야 한다. 지역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혼자 하기 힘들다면 당이 가진 역량을 지역으로 내려 보내라.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사람을 보내 지역의 정보들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라. 거창하게 연구소를 세우려하니 차일피일 미뤄진다.


이제 진보정당에게는 감동을 주는 리더십만이 아니라 수치로 얘기하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늦다.


민주노동당의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첫번째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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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전략과 초심의 진보정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집권전략이 논의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구상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으면 도루묵이니 지금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을 때 집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런 논의에 묻어나기도 한다.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논의하고, 선거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등 진보정당의 움직임도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다. 왜 진보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삼는가? 물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공직자를 배출하고 집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교육을 진행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일도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선거가 정당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중요한 실험대이지만, 그 실험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뒷받침될 때에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무엇일까? 신문을 장식하는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삶이나 욕구와 무관한 공공시설들이 많은 돈을 들여 허술하게 세워지고, 갑자기 멀쩡한 동네가 재개발지구나 사업지구로 지정되기도 한다. 그 지역과 상관없는 지역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어떤 공립 어린이집에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런 사건들이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당은 이런 사건들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고 정책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활동으로 정당은 자신의 정당성과 정책을 시민들에게 조금씩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당의 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정당은 이런 과정을 얼마나 착실히 밟아왔을까? 2005년도에 민주노동당이 발간한 『당원 정치의식 및 정책성향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의 일상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당원이 지구당원의 39.8%, 시도당원의 54.7%, 중앙당원의 61.8%를 차지한다. 그리고 일상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원의 62.2%가 직장일이 바빠서라고 답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이런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속 시원한 말과 과감한 정치활동으로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진보정당의 지방의원들이 착실하고 꼼꼼한 정치활동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과 주민들이 진보정당을 믿고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의원들만 돋보일 뿐 정당의 정체성은 점점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의 정당이 있을 뿐 정당의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진보정당이 자기 마을에서 하려는 일을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당원들이라도 그런 내용을 알고 참여할까?


이런 상황에서 집권전략을 논의하는 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선거가 다가왔으니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선거철에 지역에 뭘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보수정당에도 수두룩하다.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집권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그것만이 진보정당의 목표일 수는 없다. 더구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지금의 선거판은 내 편을 단단하게 다지지만 다른 편을 내몬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집권(執權)전략이 아니라 집권(集權)전략이 된다. 선거에 지든 이기든 친구보다 적만 늘어난다.


진보정치는 우리와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가능하다. 나는 진보‘정당’보다 ‘진보’정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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