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협동조합‘과’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건 어떤 효과를 가진다. 구분되어야 하지만 분리될 수 없는 두 개념이 그냥 병렬적으로 나열된 느낌이다. 구분이 분리는 아니어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분리의 느낌이 강하다. 여유가 있으면 필요할 때 한번 접목해 봐야지, 이런 느낌을 준다.

 

이렇게 바꿔서 물어보자. 흔히 협동조합을 사업체이자 결사체라고 한다. 흔히 사업체의 운영방식을 경영으로 표현하고, 결사체의 운영원리를 민주주의라 표현한다. 그런데 이게 맞을까? 그렇다면 협동조합 활동가, 실무자, 조합원들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협동조합은 민주적인 통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 자연스레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민주적인 통제’는 뭘 말하는 걸까? 조합원이 통제하는 민주적인 조직이고 1인 1표를 가지고 있다는 2원칙에 대한 설명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민주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협동조합 7원칙 중 두 번째 원칙은 다른 여섯 가지 원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

 

또 협동조합운동의 오랜 역사를 말한다. 그런데 역사는 끊임없이 현실과 맞닥뜨리며 전진하고 후퇴한다. 협동조합운동의 역사가 만들어온 구조가 있다면 현실의 변화에 맞춰 바뀌어야 할 구조도 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현실의 변화에 발맞춰 어떻게 자신의 구조를 변화시켜 왔을까?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대다수 협동조합들의 정관이 똑같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건 내부구조나 활동양식도 동일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똑같은 구조를 가진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다양한 욕구와 열망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2. 서기 2020년의 협동조합운동은?


더글러스 러미스(D. Lummis)는 『래디컬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오해들을 지적한다. 지금 현실과 관련된 오해들을 추려서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 민주주의는 민중의 복지를 돌보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민중이 지지하는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이다.

- 민주주의는 자유선거이다.

- 민주주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 민주주의는 민중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

 

러미스는 이런 오해들을 반박하면서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가지는 게 아니라 민중이 중요한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이고, 발전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며, 정치가 선거라는 형식적인 장으로 제한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갈라질 수 없고, 민주주의는 민중이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제도나 원리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민중이 힘을 가지고 있는 상태, 출렁출렁 유동적인 상태라는 게 러미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어떠한가?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출렁거리며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장인가? 1980년에 레이들로 박사는 그 유명한 『레이들로 보고서』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적 특성이 협동조합의 모든 측면에서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히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했다.


- 조합원간에 어느 정도의 균질성과 연대의 기초가 되는 조직적 결속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각각 2ha의 농지를 가진 빈농 500명과 2000ha씩 소유한 부농 5명으로 조합원이 구성될 경우, 대농의 큰 사업량이 협동조합의 생존능력에 기여할지 몰라도 민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농업협동조합의 기반은 되지 못할 것이다.

- 민주주의는 투표율만이 아니라 조합원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의하여 측정된다. 

- 완전히 민주적인 협동조합에서는 서비스의 실제 이용자인 조합원만이 임원과 이사를 임명하고 선출할 권리를 가진다.

- 민주적인 협동조합은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과 모든 단계의 지도자 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 민주적인 협동조합에서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상징적 지위가 아니라 완전한 의미에서 조합원자격을 가져야 한다. 별도의 “남성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차별적인 “여성의 역할”도 존재하지 않는다.

- 사업장에서 종업원 사이의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협동조합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실현한다고 할 수 없다.

- 조직의 민주적인 성격은 조합원에게 자유롭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조합원이 의견을 제출하고 피드백(feed-back)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느냐에 의하여 판별할 수 있다.

-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는 협동조합에서는 모든 보고나 정보는 알기 쉬운 형태로 제공되어야 하며, 소수민족을 위해서도 그들의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 중요한 결정은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보다도 전체의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민주주의의 깊이는 관리구조의 최하위 단위에서 제출된 제안에 따라 얼마나 결정되느냐에 의하여 측정될 수 있다.

- 민주주의에서는 전문가나 전문기술관료가 조합원에게 상담과 조언, 그리고 권고를 듣고, 최종적으로는 평조합원이 결정한다.


레이들로 박사는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을 내다보며 이를 과제로 제시했는데, 이 과제들 중 지금 해결되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조합원들 사이에는 빈부를 넘어선 조직적인 결속이 이루어지고 있나? 조합원의 참여율은 어떻게 측정되고 있나? 임원과 이사는 어떻게 선임되고 있나? 조합은 어느 정도의 교육과 지도자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있나? 조합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은 구분되지 않고 다양한 남성들/여성들의 정체성이 인정되고 있나? 실무자나 활동가들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나? 조합의 정책결정과정에 조합원들은 어느 정도로 개입할 수 있나? 조합은 다양한 언어, 쉬운 언어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 가장 아래에서 제출된 제안이 어떻게 전체의 합의로 모아지고 있나? 평조합원이 조합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나?

 

현재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이런 물음에 어느 정도로 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뿔싸, 이미 시간은 2000년을 훌쩍 넘어 2014년이 되었다. 과거의 협동조합운동은 시대를 앞선 과감한 결정들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의 협동조합운동은 어떠한가?

 

2013년 1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2020년을 내다보면서 『협동조합 10년을 위한 청사진』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있지만 눈에 띄는 내용은 조합원제도와 지배구조에 있어 참여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현실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골자를 살펴보면,

 

- 구체적으로 청소년과 젊은이에 초점에 맞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구조를 탐색하여 참여와 관계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구조가 조정될 수 있고 그럴 필요가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 민주적 참여와 관계, 관여에 혁신을 유도하고 모범사례를 찾아내서 전파하고 유지시킨다

- 모든 협동조합이 조합원 전략을 채택하고 매년 전략을 보고하도록 지원한다.

- 소셜미디어를 통한 논평, 대화, 논쟁, 관계와 같은 여타의 혁신적이면서 전통적인 참여의 형태가 조합원제도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조합원, 후원자, 추종세력과 같은 서로 다른 참여의 형태가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지 여부를 고려해서 전통적 조합원제도의 요소들을 검토한다.

- 공동생산과 인적자원관리를 포함하여 기업조직의 맥락에서 혁신분야의 리더십을 확보한다.

- 개별적인 추진과제로서 자본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협동조합 특성을 저해하거나 손상시지 않으면서 자본 제공자를 위한 조합원과는 다른 제한적인 형태의 참여를 검토한다.


아이쿱생협연구소가 번역한 이 보고서를 여기저기서 읽은 것으로 아는데, 협동조합운동의 전략으로 어느 정도로 고민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과 청년의 특성을 반영하는 참여구조가 고민되고 있는지, 협동조합 내의 혁신적인 참여 사례가 전파/공유되고 있는 건지, 조합원의 참여를 끌어낼 전략이 매년 수립되고 있는 건지, 단순 홍보용 수단을 넘어 소셜 미디어가 쌍방향 소통의 수단이 되고 전통적인 참여형태와 접목되며 새로운 의사소통/의사결정구조를 만들고 있는 건지,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인 리더십이 확보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맨 마지막의 자본확보와 관련해 조합원의 참여형태를 다각화하는 문제 정도만 사업의 필요성 때문에 논의되고 있다.

 

『레이들로 보고서』나  『협동조합 10년을 위한 청사진』과 더불어 우리는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런 노력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나? 협동조합기본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등의 제도화와 관련된 논의들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협동조합의 내실을 다지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정말 서기 2020년의 협동조합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매번 땜질하듯 단기적인 방법을 얘기하는 것 말고 어떤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고 있나? 20세기 협동조합은 21세기 협동조합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구성과 사회조건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을까?



3. 한국사회와 협동조합, 민주주의


협동조합이 ‘섬’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협동조합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수준인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은 어디인가? 마을, 학교, 공장, 사무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미디어, SNS, 어디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느끼고 경험하며 그 감각과 방법을 키우고 있을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조직은 어떤 조직일까? 우리는 어디서 고정되고 획일화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민주주의‘들’을 활성화시키고 있을까? 무기력한 대의민주주의와 당위적인 직접민주주의의 대립을 넘어설 방법들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최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무슨 민주주의가 더 필요하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지금으로도 민주주의는 충분하고 민주주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지나쳐서 문제이고, 외국에서 얘기되듯이 현재의 문제는 과잉된 민주주의(demorecracy)라는 거다. 지금껏 자기 몫을 주장하지 못했거나 자기 삶과 연관된 결정들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기득권층은 기함하며 이들을 막아선다. 마치 당장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사회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한 때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몫 없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체이니 치안의 질서에서 벗어나 강하게 ‘아니오’라고 외치며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치안의 힘이 너무 강하다. 제주도 강정마을, 밀양, 청도, 여러 지역에서 마을이 위협받고 있고,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콜트콜텍, 여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내몰리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권리의 목록을 제 아무리 길게 만들고 읽어줘도 그것을 실제로 쓸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알아도 못 쓰고 쓸 수 없는 게 약자의 권리 아니던가. 몫을 논하는 순간 돌아오는 이 폭력 앞에서 민주주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한때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말도 유행했다. 개념에 앞서 한국에서 노동자와 청소년, 소수자들은 이미 헐벗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그 현장과 자리에 서지 않기를 원할 뿐 우리는 ‘죽음의 뺑뺑이’를 돌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존재들이다. 무기력한 민주주의가 이 뺑뺑이를 멈출 수 있을까?

 

사실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좀 과잉될 때에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달라는 목소리와 개입이 있어야 기득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잉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뜻하기에,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본질에 다가서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누가 과잉을 주장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누가 민주주의의 과잉을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단순히 자기 몫을 못 챙기는 사람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몫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다. 중요한 정치의제는 언제나 중앙이나 외부에서 논의되다 삶으로 툭 떨어진다. ‘자아성찰’과 ‘자기판단’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이고 실제 삶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수많은 착시현상들이 판단을 방해하니 판단력은 더욱 떨어지고, 똑똑한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시민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대략난감이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주체로 서지 못하는 민주주의, 서로를 알아보고 동등하게 인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 새로운 관계와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민주주의는 가식이다. 내가 저들을 위해 권리목록을 만들고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같이 살고 있는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마주보고 있는가?

 

우리 시대의 어려움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나 공론장은 계속 줄어드는데, 권리를 교육받은 시민들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생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건 공리이지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리는 분노보다 냉소를 낳기 쉽다. 이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 다른 권리목록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식화와 교육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공공성은 더욱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것은 국가와 시장, 시민 사회의 생각이나 이해관계가 엉키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늘어나고, 기후 변화나 먹을거리, 에너지 문제 등 국경을 넘나드는 사안들이 많아지는 우리 삶을 반영한다. 더 이상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다가올 파국을 함께 대비해야 하기에 공공성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물론 공공성 자체가 그런 다양한 사안에 관한 모범 답안은 아니다. 공공성은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같은 세계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민주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주의 없이도 공공사업의 진행은 가능하지만 공공의 이익은 민주주의 없이 확보될 수 없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사고해야 하는 건 우리의 자유를 위해, 더 솔직하게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다. 협동조합운동은 조합원의 자유와 공공성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협동조합운동이 힘을 가지려면 이런 많은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찾으며 사회의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협동조합이 모든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변화가 조합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끌려가지 말고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리차드 세넷(R. Sennett)은 『투게더』(현암사, 2013년)에서 협동과 관련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협력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세넷은 실험과 소통이라는 기술에 주목한다. 이 둘은 서로 연관되는데, “실험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것,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젋은이들은 반복적으로, 점점 더 큰 규모로 연습을 해나가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초기의 소통은 모호하다. 아기들이 보내는 신호가 애매모호한 것처럼 말이다. 놀이 규칙을 협상할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아이들은 그 애매모호성을 협상하고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이 대답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는 기술, 발언만이 아니라 동작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잘 관찰하기 위해 스스로는 말을 자제해야 할지는 몰라도, 그 결과 나누게 되는 대화는 더 풍부한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더 협동적이며 더 대화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이런 기술들을 연마해야 한다.

 

엄기호 역시 소통을 얘기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 “우리에겐 소리로만 전달되는 고통을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요. 그런데 누구나 자신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하면서, 말 아닌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고통의 목소리마저 독점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지금 누가 고통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했는가를 먼저 관찰하고 찾아내서 그 소리와 말을 공적인 무대에 세우는 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하고, 이런 점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운동을 외치면서 우리 사회가 단속사회,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버린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사회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딘 민주주의이지만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참여예산제도, 타운홀미팅, 어큐파이(occupy), 공유공간, 희망버스, SNS를 통한 이슈화 등. 이변 변화와 협동조합이 무관할까?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협동조합은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섬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4. 조합원주권과 민주주의


한살림운동은 생산자/소비자협동조합을 뛰어넘는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라는 중요한 화두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 화두는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조합원주권은 이 하나됨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조합원이라는 부름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규정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보면 생산자/노동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은 갈등을 거듭해 왔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소비하는 조합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소비자협동조합이라 하더라도 조합원 주권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조합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한다. 협동조합은 소비자에서 조합원으로 건너갈 징검다리를 놓아야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계되는 협동조합이라면 같은 조합원으로 묶이는 이 양자에게 어떤 역할과 권한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안 맥퍼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협동조합은 주권을 조합의 여러 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 조합원에게 줘야 한다. 조합원에게 주권이 있다 함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무기력한 반복이 아니라 조합 내의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조합원들이 그 과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이 그런 과정을 조직의 목적 중에서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개별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가진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시민들이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한살림운동에서도 이런 주장이 등장한다.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이었던 이순로는 “죽어가는 밥상, 생명을 살리고 갈라진 삶을 더불어 사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 길, 그것은 미리 깨달은 사람, 올바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해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하나씩 실천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뜻으로 그동안 한살림을 많은 가족들이 이용해 왔지만 이용만 해왔지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 발짝 더 나아가 손님의 자리에서 적극적인 살림꾼으로 탈바꿈한 것이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이라 하겠습니다. 협동조합에 참여하게 되면 계획소비와 책임생산이 가능해져서 개별단위로 남아 있을 때 이용할 수 없었던 물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고, 공동구입, 공동나눔 속에 개인발전과 참삶의 맛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살림운동은 무농약 농산물을 어떤 특정한 계층에 공급하는 이기주의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동적으로 만나 인간과 대지의 거룩한 생명을 살려내며 불합리한 삶의 모습을 걷어치우는 ‘함께 살림’ 운동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작은 힘을 모아서 꼭 해야 할,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합시다.”라고 강조했다.2) 이순로는 물품을 이용하는 손님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을, 공동체 속에서 참삶을 찾는 협동운동을 강조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래서 소비에는 ‘공부’가 중요하다. 소비영역의 활동에서 한살림의 특징을 찾는다면 공부모임에서 찾을 수 있다. “초창기 한살림을 더욱 한살림답게 한 것은 회원들과 진행한 공부였다. 1990년 4~5월에 걸쳐 열린 과천지역 한살림 공개강좌는 ‘공부하는 어머니는 생명을 키우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주제를 내걸었다. 매월 정기강좌가 진행되고, 화곡이나 관악, 과천 등 활동 주체가 꾸려지고, 모임이 튼튼하게 꾸려진 곳에서는 지역강좌도 마련되었다. 공동체에서 스스로 교육 자료를 발행하기도 했다.”3) 외부의 전문가나 지식인을 불러오는 강좌나 스스로 만든 교육과정, 이런 다양한 공부들이 소비자의 의식을 조합원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개별화된 소비자를 함께 소비하는 공동체로 조직했다. 지금도 이런 활동들이 ‘교육’과 ‘자주공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역한살림이 다양한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고 지역의 식생활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조합원 중 기초조직에 참여하는 비율이 1% 대라는 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다. 마을모임, 소모임, 매장모임 등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 모임들이 조합원의 ‘필요’와 ‘열망’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장이 되고 있는지는 점검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한살림 회원 생활 수칙’4)은 지금도 되새길 만한 수칙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웃과 더불어 깨끗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사회 속에서 이 세상은 온갖 오염으로 정작 모든 생명체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남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욕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여 한살림을 이루고자 합니다.

- 언제나 나의 존엄함을 생각합니다.

- 나를 솔직하게 느낄 수 있는 기도와 수행을 생활화합니다.

- 힘닿는 대로 봉사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 우리말 우리 글을 바로 씁니다.

- 음식은 먹을 만큼만 간단하게 조리합니다.

- 합성세재 대신 비누를 씁니다.

- 천기저귀와 면생리대를 씁니다.

- 쓰레기 양을 최소로 줄입니다.

- 유행을 따르지 않습니다.

-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무분별한 토지개발을 반대합니다.

-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합니다.

- 내가 먼저 인사합니다.

- 아이들에게 공동생활에 필요한 예의를 가르칩니다.

- 시간을 잘 지킵니다.

- 적은 액수라도 매달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후원금을 내고, 사회운동단체에 가입해서 후원합니다.

-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합니다.

- 생산자에게 편지를 하거나, 생산지를 방문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육류의 소비를 줄이고, 자급 가능한 곡식과 채소 중심의 식생활로 바꿔나갑니다.

-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 작은 생명체라도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는 말을 씁니다.

- 길에서 마주하는 아이도 우리 아이로 보살핍니다.

- 시설을 이용하는 놀이보다 자연 안에서 놉니다.

- 한살림 물건을 집을 때 ‘내가 작은 것 고르면 누가 큰 것 먹겠지’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한살림운동을 이웃에 권하여 함께 펼쳐갑니다.

- 환경보전형 농업(유기농업) 육성에 힘씁니다.


수칙은 존재하는데 이 수칙에 따라 지금 이곳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은 존재하는가? 수칙을 수련하는 조합원은 얼마나 존재할까?

 

그리고 조합원 주권이 실현되는 장은 어디인가? 총회인가, 이사회인가? 매장인가? 인터넷 장보기인가? 조합원의 주권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장이 있고, 조합원이 그 장의 영향을 받으며 조합원 의식을 강화시켜야 협동조합이 정체성이 강화되고 협동운동이 확장될 수 있다. 마거릿 콘(M. Kohn)은 이런 협동조합운동의 확장을 ‘감염’으로 본다. “물리적 접촉으로 새롭고 위험한 이념의 확산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출신이 다양한 회원과 연대 구조, 영토적 기반을 확보하며 정치 동원의 토대로 구실하기에 아주 적합한 조직”이었고, “생계를 위해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에 기댄 것이 아니라 상인이나 중개인에게로 돌아갈 잉여가치의 일부를 자원으로 나누어” 줬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은 “다양한 농민과 노동자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적․경제적 투쟁을 위한 자원을 획득하는 방식이 되었”고, “그러한 자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대감, 즉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로 비슷한 지위 하락을 경험하던 다른 개인들과의 수평적인 유대감이었다.”5) 주권은 수평적인 유대감 속에서만 제 몫을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이룰 방법을 찾는 건 여전히 과제이다.



5. 나가며


이 많은 과제들을 한꺼번에 모두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현실의 변화에 맞추어, 때로는 그 변화를 거스르며 자기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협동조합이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그와 관련해 조직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내부의 역량을 강화시킬지, 조합원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고 주권을 강화시킬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하나씩 진행되며 협동조합운동의 중장기적인 발전계획을 구상해야지만 2020년의 협동조합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나하나의 협동조합들이 자본주의 속에 틈을 만들고 조금씩 역량을 강화시켜도 그것이 하나의 섬이 되어버린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요즘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이념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간혹 듣는데, 대체 그 이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형태도 없이 공허하고 흐릿하게 나열된 것은 이념이 아니다. 이념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좌표이다. 사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만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면 그건 사회현실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대안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우리 시대의 냉소주의와 맞서려면 운동이 자기 원칙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이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녹색이 ‘녹색성장’으로 왜곡된 시대, 협동조합이 ‘창조경제’로 둔갑되는 시대일수록 이념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에 이념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이념과 그 이념을 실현할 구체적인 사업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우리는 매우 공허한 이야기들만 서로 주고받을 것이라 믿는다. 반면에 이념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방법은 생존전략이기에 구체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마취제 놓듯이 몽롱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진짜 실용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생존을 이야기할까?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몇몇 정치인의 무능이 아니라 정부시스템의 무능이고, 삼성그룹을 통해 증명된 것은 시장의 부패이다. 이 무능과 부패 속에서 침몰하는, 어쩌면 이미 침몰해버린 것은 사회이다. 이 침몰을 이야기하지 않고 대안을 얘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지금 우리는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나?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지만 상식을 갖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과 달리 민주주의 제도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에 이미 도입되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거로 뽑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학교’라 불리는 지방자치제도도 실시되고 있고,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도들도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도입되어 있다. 이렇게 웬만한 민주적인 제도들이 도입되어 있는데도, 왜 우리는 민주주의를 느끼고 경험하지 못할까?


민주주의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도 이렇게 추상적이었을까? democracy라는 단어가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주의’로 번역되다보니 민주주의도 어떤 이념인 듯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이념이 아니다. 어원을 따지면 민주주의는 민중의 지배를 뜻한다. 그게 다이다. 다른 얘기는 없다. 민중이 권력의 주인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를 적어 놓은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이런 상식에 따라 누구나 지배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였다. 지식인들만 아는 특별한 이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몸으로 실행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삶의 양식이었다.


민본주의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민본주의(民本主義)는 군주나 대신들이 민중을 위하거나 위해야 한다는 ‘주의’가 아니었다. 민본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니 그들의 뜻을 따르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이자 삶의 태도를 가리켰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나 민본주의를 특별하고 복잡한 어떤 이념이라 여긴다. 그래서 평범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관심을 둘 일이 아니라 여긴다. 민주주의는 학력도 높고 돈벌이도 괜찮은 사람들의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그런 ‘자격’을 얻을 때까지 민주주의는 미래의 과제로 미뤄진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긴 하지만, 정작 그것이 내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민주주의의 모델이나 원론에 대한 책들은 제법 있지만 정작 내 삶이 민주주의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를 말해주는 책들은 거의 없다. 추상적인 권리목록을 나열하거나 시민권,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책들은 있지만 그런 권리를 내 생활에서 써먹을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아직도 무거운 단어이다. 민주주의는 골방에 모여 토론하고 집회에 나가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이나 대중의 관심을 받는 정치인들,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자들의 것이지 나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서 내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도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엄마 치맛자락 뒤에 숨어 고개만 내미는 아이처럼 우리는 민주주의를 곁눈질하면서도 직접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당신들의 민주주의


이렇게 느껴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건 아니다. 우리가 민주주의가 추상적으로 느끼거나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건 역사적인 경험과 의도적인 학습 때문이다. 일제 식민권력과 군인들이 총칼로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민주주의는 ‘위험한 단어’였다. 한낮 대로변에서 “민주주의, 만세!”라고 외치면 ‘빨갱이’로 몰려 끌려가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지금 우리 현실은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정치인에게 토마토를 던지고 경찰이 시위대를 보호하는 장면은 남의 나라 일이지 무식하고 법을 안 지키는 한국 사람들의 일이 아니다.


한때 ‘제3의 물결’이라 얘기되며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부흥을 얘기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물결은 영미식 민주주의 체제를 제 3세계에 전파하는 과정이었을 뿐 그 사회의 시민들이 권력의 주인으로 등장하도록 돕는 과정이 아니었다(최근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을 재스민 혁명이라 부르는 목소리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사회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를 무시하고 서구식의 경제개발과 시장경제, 정당과 대의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보급하는 과정이었다. 제도는 그렇게 도입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삶이 그 제도에 맞춰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도가 시민들의 삶에 맞게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이 제도에 맞춰야 하니 주인과 손님의 자리가 뒤바뀐 셈이다.


이렇게 지배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발전된 것으로 미리 정해놓고서 그것을 따라가는 것만을 민주주의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삶에 어울리는, 우리의 생활과 맞는 정치제도는 봉건적이고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시민들의 민주적인 열망과 생각이 ‘스스로’ 터져 나왔던 순간도 있었다. 봉건왕조와 일제 식민지, 미군정, 군사독재로 이어졌던 어둠의 시절에도 시민들은 자신의 힘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사건의 시간이 되면 거대한 힘으로 폭발했다. 시민들의 힘이 만든 ‘해방구’는 사람들이 공적인 분노와 공적인 행복을 느끼게 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걸자 자신만의 삶을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분노와 뿌듯함이 가슴 속을 채웠다.


그런 의미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의 목소리는, “8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 쟁취하자”, “노동자 피땀 짜내는 독점 재벌 해체하라”라고 외쳤던 87년 노동자들의 꿈은 살아있는 민주주의였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고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라 외쳤던 80년 광주의 목소리, “더 이상 못 속겠다, 거짓 정권 물러가라”는 87년의 외침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 곳에 있었다. 2003년과 2008년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뭔가가 바뀌지는 않지만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에 개입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민주주의가 살아있던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뭔가를 바꾸었다고 느끼는 순간, 거리에서 물러나 집과 공장으로 돌아오는 순간, 민주주의는 쉽게 생명력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지식인들의 잘못도 크다.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배운 것들’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주인들에게 권력을 돌려줄 생각은 않고 민주주의라는 모델로 가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양, 마치 자신들만이 그 비법을 알고 있는 양 행세하며 사람들의 열정과 행동을 순화시키거나 길들이려 했다.


결국 이런 과정에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영미식 시장과 정치에 익숙한 엘리트들이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이득이 아니라 소외를 경험했다. 적응하지 못함은 시민의식의 뒤떨어짐으로 설명되었고 사람들은 그 적응의 어려움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다. 소외당하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 고통을 말하지 못하고 ‘내 탓이요’를 외치거나 그 고통을 비슷한 다른 상대에게 쏟아냈다. 그래,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내가 끼어든다고 될 일이 안 되나? 강한 자에게는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약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우리는 ‘약은 삶’을 택해 왔다. 이런 삶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틀린 민주주의


‘산업역군’이나 ‘모범시민’은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과거의 군사독재는 시민을 경제발전을 위한 군대로 만들고 생활을 길들여왔다. 삶터와 일터를 철저하게 나눈 채 시민을 가정과 공장에 가두고 길들였다. 민간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시민을 ‘~형 인간’에 가두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작업장 민주주의를 포기한 경제성장은 시민의 가면을 쓴 산업역군을 계속 강요했다. 민주주의가 가능한 사회는 노동사회나 모범적이고 건전한 사회가 아니라 여가사회와 다양하고 생동력있는 사회인데, 우리는 여가를 사치로, 다양성을 불화로 비난하도록 배워왔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 여유가 생기고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었던 시기는 그나마 1987년 민주화 이후였다. 그런데 경제적 평등의 물꼬를 튼 건 정치의 민주화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 민주주의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론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마치 민주주의가 완성된 양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직장과 가정으로 돌려보냈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려면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는 궤변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진보를 자처하던 지식인들도 이런 궤변에 힘을 실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져야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주장은 정치를 위한 삶의 여유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옳지만 삶의 가치를 소득에 맞췄다. 소위 ‘중산층의 신화’는 적절한 주거와 생활수준 이상을 갖춘 중상층의 사람들만 정치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을 주제넘은 일이라 믿게끔 했다. 즉 정치에 대한 일상적인 무관심과 선거 때의 순간적인 투표를 모범적인 시민의 권리로 만들었다.


이런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공간적인 규모’만이 아니라 ‘삶의 규모’를 정하고 그 규모에 맞지 않은 삶을 후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도시가 농촌을 지배하고 노동자들이 농민들의 착취를 딛고 사는 것을 정당화시켰다. 중산층이 아닌 사람, 중산층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민주주의’를 꿈꾸는 것만 허락되었다. 이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버려야만 시민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에 물음을 던져보자.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착취하지 않고 수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제 3세계를 착취하지 않고 제 1세계(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제 3세계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서 선진국의 복지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들이 겪고 있는 복지국가의 위기가 탈식민주의의 흐름과 무관할까? 나오미 클라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정치와 경제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재난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많은 공유재산을 빼앗아 적은 수의 지배자들에게 몰아주면서도 스스로를 민주주의라 부르고 있다.


엄청난 쇼크와 고통을 겪으며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민주주의와 크게 상관이 없을 법한 내용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선거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은 민주적이고, 명확한 이념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국민을 팔아대는 정당도 민주적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소비자 민주주의, 관객 민주주의라는 뒤틀린 행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뒤틀린 민주주의에 뒷돈을 두둑하게 대주며 이득을 챙기는 것이 바로 재벌들이다.


2009년의 용산참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뒤틀림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국가가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고 전쟁을 벌였다. 멀쩡하게 생활하던 사람들이 그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었는데 아무도 이 상황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용산구청은 구청에 와서 떼를 쓰면 ‘민주시민’으로 대우받을 수 없다는 플랑카드를 내걸고 주민들을 철저히 대상화시켰다. 4대강 사업은 자연과 생명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회를 민주적이라 부른다면 대체 어떤 사회가 비민주적일까?


우리 현실은 왜 이 모양일까?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시민의 의견을 대변해줄 정당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 우리에겐 믿음직한 지도자가 없다. 민주주의가 어떠한 대표도 용납하지 않는 체제는 아니므로 지도자는 중요하고 리더십도 필요하다.


허나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소수의 독점물일 수 없다. 제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그가 더 이상 우리의 말을 똑바로 듣지 않는다면 그는 민주적인 지도자일 수 없다. 아니, 그런 지도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시민의 정신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민주적인 사회에서 정치는 시민들이 누리는 공적인 행복이기 때문이다. 다른 일로 바쁠 때 내 몫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 몫이 없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들을 보면 뛰어난 리더십에 알아서 맡기라는 식의 얘기가 많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직업정치인’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왜냐하면 ‘직업정치인’의 수가 늘어난다고 정치가 활성화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외려 정치의 장이 좁아지고 직업정치인들이 그 장을 독점하고 조작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다른 건 필요 없고 투표나 열심히 하자는 식의 주장은 매우 위험한데도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주장이 솔솔 새어 나온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이거나 ‘이미 망각된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에 존재했을지 모를 민주주의는 이미 사라졌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오게끔 새로운 해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민주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피동의 정치에서 능동의 정치로


일찍이 “소유란 도둑질”이고 “정치에 몰두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짓”이라 선언했던 사상가 프루동은 『19세기 혁명의 일반이념』(1849년)이란 책에서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활동할 때마다, 그리고 거래할 때마다 기록되고, 등록되고, 과세되고, 날인되고, 측정되고, 숫자가 매겨지고, 평가되고, 허가되고, 인가되고, 경고를 받고, 금지되고, 선도되고, 교정되고, 처벌받는 것이다. 그것은 공익이라는 구실 아래, 그리고 일반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기부금 납부를 강요받고, 훈련을 받고, 배상금을 물고, 착취당하고, 독점의 희생자가 되고, 탈취당하고, 쥐어짬을 당하고, 현혹되고, 강탈당하는 것이다. 사소한 저항을 하기만 해도, 불만의 ‘불’자만 꺼내도 억압당하고, 벌금이 부과되고, 멸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추적되고, 학대를 받고, 구타를 당하고, 무장해제되고, 질식당하고, 투옥되고,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하고, 추방되고, 희생되고, 팔려가고, 배반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조롱을 당하고, 비웃음을 받고, 모욕을 당하고, 명예를 손상당하게 된다. 이런 것이 정부이고, 정의이며, 도덕이다.”


150년 전의 가혹한 진실을 숀 쉬한은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에서 오늘 상황에 맞게 다음과 같이 재구성했다.


“비디오테이프에 기록되고, 캠코더에 녹화되고, 감시당하고, 감독당하고, 문서화되고, 분류되고, 항목별로 나눠지고, 암호가 부여되고, 사진 찍히고, 인가되고, 디지털화되고, 바코드가 찍히고, 범주화되고, 국가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지고, 할인 카드화되고, 사은품을 받는 보너스 카드화되고, 체계화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유전자 기록이 보관되고, 폐쇄회로 화면에 잡히고, 접근통제 카드화되고, 신분증명 카드화되고,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고, 인구조사 꼬리표가 붙고, 측정되고, 평가되고, 차례로 나열되고, 스캐닝되고, 돌려지고, 감정되고, 위계를 부여받고, 대상화되고”


지금 우리의 일상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우리의 굴욕적인 일상은 얼마 전에 알려진 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경북 구미의 전자부품업체 KEC는 파업에 맞서 1년이나 직장폐쇄를 한 뒤에, 공장으로 복귀한 노조원들에게 파업가담 정도에 따라 다른 색깔의 티셔츠를 입히고 따로 관리하며 반성문을 쓰게 하고 매일 낭독시켰다. 우리는 이 사건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나? 2003년 한 노동자가 쓸쓸이 죽음을 택했던 부산의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서는 그의 추도식에서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라며 탄식했던 또 다른 노동자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얘기인가? 이런 사회에서 분노 없이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지배하는 자들이 비상식적이니 우리 역시 상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 이론을 구성해야 한다. 고대 아테네나 근대의 미국, 현대의 유럽을 모델로 삼을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고유한 경험과 문화, 열정이 민주주의 이론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 이론들은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토크빌이 본 미국의 민주주의도, 유럽식 계급타협에 기초한 복지국가 모델도 그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시대를 초월한 민주주의 이론이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주체인 민중이 바뀌면 그들의 열정과 사상을 담은 민주주의 이론도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진 모습에서 시작하는 민주주의 이론이 필요하다.


오로지 우리의 현실만 고집하자는 건 아니다. 외국의 경험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배워야 한다. 가령 스위스의 민회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연방주의라는 시스템 덕에 가능했다. 그리고 남미나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실험들에도 관심을 둘 만하다. 그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완성된 모델이나 이론으로 배우려 들지 말고 그 사회의 고민과 생활을 배워야 한다.


흔히 이론이라고 하면 지식인들의 과제인 듯 들리지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이론을 ‘신봉’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론을 얘기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누가 ‘원전’을 가장 잘 해석하고 지도자의 말을 잘 ‘수용’하는지가 중요한 한국사회에서는 이론이 쉽게 현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허나 다른 영역의 이론들이 몇몇 지식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손 치더라도, 민주주의 이론은 결코 몇몇 사람의 두뇌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싶다면 말이다.


사실 대중과의 소통고리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끊어버리고 대학 속에 몸을 감춘 지식인들은 이미 지식인들이라 부르기 어렵다. 외려 김여진같은 연예인들이 바깥에서 대학을 파고들며 지행의 합일을 보여주고 있고 그야말로 지식인답다. 지금은 지식인들의 ‘항변’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이 필요한 시기이고, 그들이 제기하는 민주주의 이론 역시 반성의 과정을 거쳐 시민들의 생활과 접목되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얘기는 흥미롭다. 라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라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공정함, 포용, 상호책임성같은 민주적 가치들이 우리 공적 삶의 모든 지평에 스며드는 삶의 방식”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 세계의 다양한 민주주의 사례들을 수집해서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특징을 아홉 가지로 정리한다.


1. 시민들은 집중된 부의 손아귀에서 정치권력을 되찾아오고 있다.

2. 시민들은 정부를 시민을 위한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

3. 투자자, 저축가, 소비자는 자신들의 일상적인 경제적 선택에 민주주의적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4. 시민들이 자치 테두리를 정하면, 기업은 그 테두리 안에서 자기 기능을 수행한다.

5. 이제는 일부 거대기업들조차 기업이익과 지구의 이익을 일치시킨다는 기업이념을 새로 세우고 있다.

6. ‘지역의 살아있는 경제’는 지역산업이 경제권력을 분산시키고, 에너지 폐기물을 줄이며, 공동체 결속을 진작시키고, 지역시민들이 지역 산업을 지지하는 덕분에 생겨나고 있다.

7. 외부자본 통제 없이도 시장이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소유주와 노동자간 격차를 줄인 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8. 수많은 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실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9. 공동체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고 ‘회복’을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법률을 시행할 때, 범죄율은 낮아지고 공동체는 치료된다.


이 아홉 가지 특징에서 드러나듯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나 경제 영역의 변화로 제한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이고 우리가 생활을 바꾸려 결심할 때에만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


라페는 “우리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고서 어떻게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우리가 네트워크의 두터운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통찰을 받아들인다면,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모든 선택이 일정한 파문을 일으킨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페의 말처럼 우리의 결심이 이미 변화의 시작을 뜻한다.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더 이상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이미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생활공간에서, 가정과 학교, 직장, 거리, 구청, 시청,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


민주주의란 쓰면 쓸수록 더욱더 익숙해지고 강해지는 힘이다. 반면에 쓰지 않으면 움츠려들고 약해지는 힘이다. 우리가 지금껏 그 힘을 약화시켰다면 그 힘을 강화시키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힘을 기르자.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지금도 리비아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리비아를 지배해온 카다피 국가원수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총격과 폭격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군대와 용병이 위협하고 시민들의 저항은 몇 달 째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가 뭐 길래 이렇게 질기게 싸울까?


그런데 리비아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시민들의 저항에 불이 붙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재스민 혁명’이라는 말도 2010년 12월 튀니지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며 대통령을 몰아낸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군대가 출동한 상황에서도 튀니지 시민들은 바리케이트를 치며 저항했고 결국 대통령을 몰아냈다. 그 이후 알제리와 이집트 등으로 저항의 불꽃이 계속 번지고 있다. 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할까?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시민들을 보며 민주적인 나라의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당장 내 눈앞의 일은 아니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팔짱 끼고 관망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재국가의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라며 흐뭇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그곳의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일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해도 4대강사업은 엄청난 예산을 쓰면서 ‘강 살리기’를 내세워 강을 파괴하고 있고, 반면에 시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무상급식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아야 한다는 게 상식인데도, 열심히 일해도 수도권에 집 한칸 장만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재벌가의 아이들은 황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태어난다(GS그룹 전무의 10살짜리 아들의 보유주식 평가액이 무려 680억원이다). 이만하면 굉장히 억울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왜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지 않는가?


지금은 차갑게 식어버린 듯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나라’였다. 불과 20년 전인 1991년 5월에 한국사회는 ‘분신정국’이라 불렸다. 4월에 명지대 대학생 강경대가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뒤쫓아온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목숨을 잃으면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과나 사죄는커녕 오리발을 내미는 정권의 부조리함과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대학생들은 스스로 자기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수십 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한 도시가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되었고 공수부대가 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하지만 총을 들고 싸우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더 이상 쉽게 군대를 동원할 수 없었고, 87년 6월 민주화 항쟁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재스민 혁명과 다르지 않았다.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의 시민들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저항했을까?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사람들은 먹고 살기 어려울 때 민주주의를 원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도 그건 한가한 사람들의 낭만적인 토론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권력을 독점하려 했을 때 그들을 통제하려는 방법으로 민주주의가 등장했고 민주정이 수립된 뒤에는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는 경제개혁조치가 뒤따랐다.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민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는 배부른 담론이 아니었다. 하루에 15시간을 일하고도 끼니조차 제대로 이을 수 없었던 노동자, 저곡가 정책에 신음하던 농민, 온갖 세금에 시달리던 시민, 비참한 현실을 보고도 말을 꺼내지 못했던 대학생들이 제 몫을 요구한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다. 저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니 재스민 혁명을 보며 우리가 생각할 바는 지금 우리의 삶이다.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의 시민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민주주의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이제 민주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한 시민으로 살기 위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다’면 누가 권력을 잡든 무슨 상관이랴,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권력자들이 우리에게 시혜처럼 베푸는 정책들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모은 재산을 나눠주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가 짬짬이 내는 세금들이 그들의 ‘껌값’으로 사용된다.


대학생들도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에서 밥이나 커피를 사먹을 때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담배를 피울 때도, 술을 마실 때도, 생활 속에서 세금을 낸다. 수업시간에 대학생들이 하루에 내는 세금을 계산해보니 만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 돈들이 모여 우리 정부의 예산이 된다. 그러니 정부가 무엇을 해주기만 바라는 건 자기 밥그릇도 제대로 못 찾아먹는 어리석은 짓이다. 청년실업대책, 등록금 인상대책도 애타게 청원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요구할 문제이다. 내가 내는 세금 나를 위해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화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더 이상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먹고 쓰는 것들은 한국에서만 생산되지 않고, 자연히 빈부의 격차나 권력의 독점도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시민이라는 추상적인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먹고 쓰고 이용하는 것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결정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일본의 방사능 유출, 중국에서 불어오는 중금속 황사만 보더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의 시야가 더 넓어져야 한다. 그들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치열하는 경쟁하며 혼자 살아남는 일이 아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민주주의에는 원조가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를 보면서 한걸음씩 나가야 할까? 민주주의하면 보통 우리는 세련되고 화려한 서구식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허나 민주주의에 ‘원조’와 ‘선진국’이 있을까? 미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군대를 파견하고 소란을 떨고 있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 지금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시위대가 주청사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의 단체협상권을 빼앗으려는 주정부에 맞서 수 천명이 시위를 벌이며 “법안을 죽여라(kill the bill)”고 외치고 있다. 법을 죽여라고 외치다니, 세상에 이렇게 과격한 시민들이 있다니, 이게 미국의 실상이다.


사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잘못 배워왔다. 그동안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책에서나 배우는 것이지 일상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모범시민이라면 라디오나 텔레비전, 케이블TV로 중개되는 정치를 듣거나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직접 행동하는 건 금지되었다. 누구든 정치인을 비판하고 그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장은 반드시 거리가 아니어야 했다. 왜냐하면 거리는 어떤 매개(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시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흥분하고 연대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배워왔다.


그런 점에서 2008년 종로와 시청 앞 거리를 달궜던 시민들의 외침은 그런 모범시민의 틀이 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젊은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니들이 뭘 알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모범시민들은 여전하지만,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불붙었다 수그러들고 다시 불붙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런 꿈틀거림이야말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힘이다.


꿈틀거리며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권을 되찾으려는 시민들에게 권력은 대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사회적인 대안을 만들라고 위임한 권력인데, 주인이 자기 몫을 찾고 대안을 요구하려는데 머슴이 주인들에게 대든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을 때까지, 잘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모델이 등장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할까?


『모비딕』의 작가로 알려진 허만 멜빌은 『필경사 바틀비』라는 요상한 소설을 썼다. 책에서 바틀비의 대사는 주로 “나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이다. 우리 삶의 대안을 마련하라고 권력과 힘, 등록금을 줬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얘기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라고 얘기하는 부조리함에 바틀비는 부조리함으로 맞선다. 바틀비는 ‘나’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거부’로 내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틀비는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절대적 불복종’을 선언한다. 대안을 제시하진 못하더라도 내겐 부당한 삶을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실제로 미국의 교육학자 존 테일러 게토는 대학에서 시험을 거부하자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대학생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들어왔고 그만큼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험을 치고 평가를 받을 게 아니라 대학생이 대학교육을 평가해야 한다. 시험답안지에 “나는 이 시험을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으며 학생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존 테일러 게토는 주장한다. 대학본부는 교육의 특수성과 학문적 권위를 떠들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객이 왕이라는 게 상식이다.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당연한 사실을, 상식을 얘기하는 것이다. 저항을 위한 저항을 벌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당당히 나의 권리를 요구하고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의 입장을 당당히 밝히며 버텨라. 버티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언제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참여할 수 없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의 발견>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2011

정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넘쳐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정치를 원한다는 얘기는 듣기 쉽지 않다. 그 점은 이른바 진보정당이 등장한 뒤에도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그러나 정치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으론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가 살아나야 좋은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발견>은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진다.

<정치의 발견>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보통 정치를 다루는 책은 자신의 논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이 책은 말하려는 바를 간결하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치는 현실 세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벌이는 활동이기에 정해진 이념이나 노선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근대 사회에서 정치는 선거와 정당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제도와 조직을 민주적으로 만들고 퇴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지도자의 역할’, ‘정치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정치가의 리더십은 의사소통과 말의 힘을 통해, 일상생활의 경험과 언어를 통해 발휘된다. 진보정치는 권력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권력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00쪽을 조금 넘긴 분량에 저자의 주장을 잘 담았다.
 
정치와 진보

또 다른 장점은 독자층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 강의를 정리했기에, 독자층도 ‘진보파’이다. 어정쩡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진보파에 대한 불만과 충고를 과감하게 쏟아낸다. 목적만을 강조하는 진보파에게 이 책은 “좀더 정치적이고 좀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성을 통해 경쟁”해야 하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정치가는 “정치적 이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인격적인 깊이를 갖춰야” 한다(미국의 사회개혁가 솔 알린스키와 정치가 버락 오바마가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진보파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지만 진보정치를 외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화두를 제안한다.

또한 이 책은 ‘정치’라는 단어에 실린 지나친 무게감을 좀 덜어낸다. 어쩌면 정치에 대한 지나친 흥분과 냉소는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바라는 기대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거란 비관이 빚은 결과물일지 모른다. 조금은 편해져야 그 단어를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너무 무거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를 ‘발견’해낸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특히 3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에서 얘기되는 촛불집회 토론회에는 나도 참여했고, 민주주의와 관련해 저자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부제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아니라 ‘제도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진보정당의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였다면 내 평도 여기서 그쳤을 것이다. 짧은 지면에서 얘기하기엔 나눠야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싶은 점을 몇 가지 얘기하고 싶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매우 일면적일 수 있다”고 “하나의 의견 내지 주장”이라 얘기하니 비판적인 대화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현실주의와 편견

   
▲ <한겨레> 자료
첫 번째로 고민되는 점은 ‘정치란 무엇인가’이다.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책이 시작되는데, 정치 지평을 좁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정치에서 중요한 개념은 권력이고, 누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달라진다. 이 책에서 논의되는 권력은 국가의 공권력이다.

막스 베버와 달리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정치란 인간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서(in-between) 생겨나고 다양한 인간들 사이에 세계를 만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아렌트에게 권력은 목적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의 능력이고 다수의 시민들이 구성하는 공론장이다. 권력과 폭력의 차이점은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다는 점이고, 권력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능력이며, 정부만이 (공)권력을 가진다는 생각은 기득권층이 주입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나 ‘정치적인 것’이 중요한 건 정치 지평이 넓기 때문이다(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번역된 샹탈 무페의 책도 그러하다).

두 번째 논쟁점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도덕성이 정치적 행위를 규제하는 기준이 될수록 정치가 도덕적일 수 있는 기반은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맥락에서 이런 주장을 했는지는 이해된다. 사심 없는 정치, 권력을 잡지 않는 정치를 내세우는 진보정치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 이런 얘기가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덕을 순결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의 덕목이자 공동체의 재화를 나누는 방식이라 본다면 정치와 도덕은 분리될 수 없다. 아니 분리돼서는 안 된다. 이런 기준과 가치가 없다면 정치는 끊임없는 협상과 타협의 과정일 뿐 가능성의 장이 아니다(“인간적 삶을 풍부하고 의미 있게 살게 하는 것”이 진보라는 말도 도덕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통치와 민주주의

세 번째 논쟁점은 정당이다. 저자는 정당민주주의가 현대민주주의의 기본이고 “리더십 있는 정당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정당이나 좋은 정치인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런 정당이나 정치인이 강한 시민사회 없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진보정당 사람들이 리더십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나더라도 그와 더불어 정치에 참여할 시민이 없다면 도루묵이다. 시민 없이 정치나 민주주의가 변화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지금껏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이 민주주의를 포기할 이유는 못 된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민주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다.

대의제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대의제도가 자신의 본령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 세계를 만들자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정치 세계와 생활 세계를, 정당 정치와 생활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쟁점은 저자가 강조하는 ‘통치의 정치학을 익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왜 통치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봐야 할까?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2010)에서 통치의 관점이 진보의 이름으로 세계의 다양성과 시민의 경험적 지혜를 파괴해온 역사를 지적한다. 통치를 얘기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와 멀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부록이 껄끄러웠다. "도시 재개발에 반대하지" 않고 용산 참사로 "도시계획자, 공무원, 법관, 경찰관들이 키워온 자부심"이 상처 입을까 걱정하는 저자의 정치학, 이런 일을 올바르게 결정할 "정부다운 자세"가 존재한다는 정치학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글•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그린비·2006), <참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한양대학교출판부·2007) 등을 썼다.


 

민주주의는 생활방식이자 삶의 과정이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도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민주적으로 살지는 못한다. 민중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는 스스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있을 때에만 빛을 발한다. 따라서 민주시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최근 한국사회의 중요한 화두도 민주주의이다. 선거로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을 뽑는 한국에서 새삼 민주주의가 화두로 되는 건 민주시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회가 민주시민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자연스레 민주시민으로 성장해야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데,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는 그런 성장이 어렵다. OECD 가입국가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지만 가장 불행하고 자살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무관심과 냉소가 생기기 쉽다. 대다수의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4대강 사업을 찬성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에서는 민중의 지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라는 부제를 단 손석춘의 책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우리교육, 2010)도 그런 목소리 중 하나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묻는다. “대다수 한국인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권자가 된 어느 날부터 투표를 하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누군가에게 꼭 뒤눌려 살아가며 삶을 마감합니다. 씁쓸하게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 그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일까요.”


청년들이 스펙을 쌓느라 정신을 놓아버린 시대에 지은이는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주권자로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자기계발의 ‘제1과 제1장’이 왜 ‘민주주의 학습’인지, 민주주의의 빛깔을 묻는 게 왜 우리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직결되는지를 밝”히려 한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기에 지은이는 “민주주의를 자유와 평등, 또는 법치라는 고답적이고 식상한 틀로 분석하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난해한 이론을 다루지도 않”겠다고 얘기한다.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는 “민주주의란 우리 개개인의 인생과 직결된 ‘삶의 문제’라는 데서 출발”하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생생한 보기를 들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풀어”가겠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지은이는 먹고 사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민주주의가 중요한 이유, 대화나 타협보다 싸움과 갈등이 필요한 이유 등을 얘기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정치의식이나 주권의식이 저절로 생기지 않기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과 현상에 관해 공부하며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7가지 습관을 익히자고 제안한다.


“1. 민주주의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진실에 눈떠라.

2. 사람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세력과는 싸워라.

3. 신문-방송의 틀을 벗어나 대화하고 토론하라.

4. 직업 정치인이 정치를 독점하도록 방관하지 말라.

5. 생계 차원을 넘어 창조적 경제생활을 하라.

6. 단 한 번인 자신의 인생을 주권자로 살아가라.

7.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하고 연대하라.”

손석춘의 말처럼 몸에 익은 습관이 될 때에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얘기이긴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쉬움도 많이 느끼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독자에 대한 고려가 아쉽다. 정말 불안한 청춘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면 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소재로 삼아야 할 텐데 그런 소재들을 보기 어렵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프랑스혁명, 동학농민혁명, 4월혁명, 80년 5월의 광주항쟁, 촛불항쟁 등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주옥같은 사건들이 다뤄지는 건 좋다. 하지만 그 사건과 지금 현실을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건들은 청춘들에겐 ‘그냥 역사’일 뿐이다.


손석춘은 “민주주의를 굳이 자기계발의 맥락에서 제안하는 이유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 아는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밋밋하게” 느낀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정말 다 아는 이야기일까? 현실을 사는 청년들은 밋밋해서가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니기에 민주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김순천의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녁, 2009)에서 학교를 떠난 한 소녀는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단다. “아저씨는 커서 된 게 그거예요?” 왜 이렇게 물을까? “할 말 없잖아요. 그쪽은 다 큰 거고, 우리는 크는 중이니까. 우리는 아직 꿈도 있고 나이도 어리잖아요. 아무리 눈에 안 좋게 보여도, 저희도 사람이니까 의견을 존중해줬으면 해요.”


그러니 진짜 문제는 청년들의 밋밋함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을 학교 밖, 사회 밖으로 내몰고 냉대하는 기성세대의 관점이다. 청소년들이 민주적으로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극히 성인 중심, 기성사회 중심이기 때문에 미래의 민주주의는 불안하다.


2010년 3월 10일, 대학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김예슬의 『김예슬선언』(느린걸음, 2010)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비민주적인 체제를 떠받쳐 왔다고 고백하면서 김예슬은 그 체제에서 벗어나 거부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반면에 기성세대는 이 선언에 묵묵부답이다. 그러니 자신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는 기성세대야말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김예슬의 얘기를 들어보라. “대학거부 선언 이후 많은 중고생, 대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지금 대학 1학년생들은 고교시절 촛불집회를 경험한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이 공통으로 호소했던 말이 있다. “명박산성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부모산성 뛰어넘기’에요.”


김예슬이 특별한 사람일 수 있지만 많은 대학생들의 자기고백이나 공감이 뒤를 잇는 걸 보면 이미 청춘들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보다는 지금 그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혁명가’를 원한다. 새로운 혁명가들이 계속 탄생하려면 그들에게 책을 안겨줄 게 아니라 혁명에 쓸 무기를 줘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우 약하다.
기득권층이 지배하고 재벌이 승승장구하며 이명박이 집권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취약한 게 아니다.
우리네 민주주의가 약한 것은 그것이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몸으로 겪으며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네 민주주의는 언제나 머릿속 아테네를 떠다닌다.
경험적이지 않기에 그 지식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슨 무슨 민주주의를 떠들기는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실제 공간에서, 일상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지식인은 아주 드물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제도의 수준에서만 얘기되지 실제 삶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진행되는 회의인 듯한데, 회의 발표 자료를 모두 공개했다.
http://tlc.oise.utoronto.ca/wordpress/conferences/
800페이지에 가까운 발표문들이 PDF파일로 묶여 있다.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섹션: 시민권의 학습과 참여민주주의 - 논쟁과 개념, 이슈들
2섹션: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3섹션: 고등교육에서 민주주의 학습
4섹션: 비공식 교육기관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5섹션: 사회운동과 정당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6섹션: 지역공동체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7섹션: 지역과 지방 거버넌스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8섹션: 전지구적 맥락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읽어보진 못했으나 서구사회에서는 시민권(citizenship)이 다시 핵심적인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여성과 이주민, 청소년처럼 기존의 시민권 논의에서 배제되어온 정치주체들을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포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라 얘기할 수 있다.

지금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가제)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잡고,
선거만이 아니라 주민소송, 주민투표, 주민발의, 참여예산제도 등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하는 방법,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
웹상에서 이슈를 조직하고 알리는 방법,
동네를 조직하고 정치화하는 방법 등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다음 달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최소한 뭐라도 한 가지 하면서 욕을 하고, 내 속의 분노를 정치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보자는...
그런 과정에서만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몇일 전 박원순 변호사는 국장원의 고발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은 이미 전문으로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발표되었으니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7125625&Section=03)

국정원이 주요한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들리는 소문이 아니니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국정원이 국가를 내세워 민간인에게 명예훼손을 빌미로 고발한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박원순 변호사의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시민사회진영이 조금씩 단결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도 박원순 변호사가 흘린 눈물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다른 애기를 한다는 게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행동에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박원순 변호사가 '절반의 진실'만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전에 따르면 진실은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름'을 뜻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거짓 없이 얘기했지만 참되고  바르게 얘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자회견 내용에 관해 최소한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박원순 변호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활동해 왔다.

"저는 참여연대를 떠난 이후로는 정부 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을 맡겨놓고 나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박원순 변호사는 실제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운동과 거리를 두어 왔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이슈와 운동에 관심을 두고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활동을 평가할 때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기존 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주로 자신이 주도했던 참여연대나 총선시민연대의 관점을 따랐고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아주 독선적인 자세로 대했다. 예를 들어, 하종강 선생의 글을 보면 박원순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드러난다(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read&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

그러면서도 박변호사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비자금에 면죄부를 제공하는 사회공헌위원회에 선뜻 참여하기도 했다(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15586). 한국의 재벌들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찬성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내용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가령, 삼성처럼 노조조차 금지하는 재벌이 회장의 비리를 면죄받는 조건으로 수천 억원을 내놓는다고 할 때, 그것을 기부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삼성이 진정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면 그룹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제대로 처우하고 노조를 설립하는 게 진정한 사회공헌이 아닌가?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기업 내의 노동조건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듣기 못했다.

이런 자세는 운동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듣는 사람이 불쾌할 수 있지만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런 자세가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실련>이 시민운동을 내세우며 기존의 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을 때 운동간의 연대는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그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더 심각한 점은 시민운동이 소수의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창안과 상상력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시민사회운동과 선을 그어버렸고 그런 영역을 선점해 버렸다. 나는 그것이 일정 정도 스스로를 옥죄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실 기자회견 전문을 볼 때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의 내용은 부당함에 대한 항의이지 그 부당함의 원인에 대한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지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알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가야 할지 판단하는 역할은 그 자신이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그를 좋아하거나 그의 실용적 정책이나 의견수렴을 좋아할 생각이 없다. 용산참사는 200일을 넘어섰고 내가 아는 인권활동가들은 상습적인 벌금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착한 이명박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셋째, 박원순 변호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지역홍보센터나 하나희망센터, 아름다운 가게 건, 민간단체의 인사에 국정원인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이한 세력들이 관여했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던 내용들이다. 지금 시대에 국정원이 그런 곳에 실제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기자회견 전문을 읽으며 걸렸던 부분은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위치도 있고 충분히 그것을 문제삼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왜 이제서야 그 문제를 폭로하는 가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의 개입을 언급한 시점은 올해 6월 23일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드러난 정황만 봐도 지역홍보센터 계약해지 시점은 올해 2월이고, 하나희망재단이 부결된 것도 올 1월이다. 그외 박원순 변호사가 개인사찰이나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탄압으로 얘기한 사례들도 대부분 올 5, 6월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특히 올해부터 개입을 일삼았다는 얘기일까?

친박연대가 국정원의 사찰을 얘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왜 그동안은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작년부터 심심찮게 국정원의 정치사찰 얘기가 나돌고 국정원법 개정이 논란이 되었는데, 왜 그 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한 사람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건 더욱더 위험하고 운동을 망치는 일이다. 다만 이번 기자회견이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운동'보다는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듯 드러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의 내용을 문제삼아 박원순 변호사가 '큰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단 역시 그리 달갑지는 않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한 개인의 영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박변이 개입했으니 일이 좀 되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운동이 싸워온 그 모든 내용이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으로 드러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벌금형과 수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냉소와 무시 등에도 굴하지 않고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개인적인 부조리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운동의 '선배'라면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 나는 선배들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고, 설령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면 그 성과를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그런 역할을 다하는 '진정한 선배'를 중앙의 언론에서는 보지 못했다.


『축복받은 불안』(에이지21, 2009)이라는 책의 제목은 참 기이하다. 모두가 불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시대에 저자인 폴 호켄Paul Hawken은 불안과 축복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불안』은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책의 원제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약간 드러난다. 보통 ‘blessed ignorance’라는 표현을 ‘모르는 것이 약’으로 번역하듯이, 원제목인 ‘blessed unrest’는 ‘불안한 것이 약’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호켄은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고 인류의 삶의 불안해지는 만큼 그 위기와 불안을 바로잡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자연스레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지 않거나 믿지 못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현실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구를 살리는 아래로부터의 면역운동

 

불안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듯 호켄은 생태계 파괴에 맞섰던 브라우어와 카슨,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했던 파크스와 소로,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던 부족민과 이름 없는 사람들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 예를 들어 환경파괴기업을 감시하는 ‘파수꾼 단체Keeper group’, 기업과 프로젝트, 제도, 지역을 감시하는 ‘감시 단체Watch group’, 현장에서 직접 환경을 보호하는 ‘친구단체Friends organization’,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방어꾼 단체Defenders’, 기업광고나 홍보기업의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문화방해자Culture jammers’, 슬로우 푸드운동, 사회적 기업 등 수많은 운동들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사용한다. 세상이 위기에 처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운동들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호켄은 이런 운동들이 몸에 침입한 병균을 치료하고 몸을 회복시키는 면역체계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병에 걸리면 몸이 알아서 치료를 시작하듯이, 이런 다양한 운동들은 정치적인 부패나 경제적 질병, 생태계 파괴와 같은 지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나 팔과 다리, 가슴 등의 역할이 다르듯이, 이 운동 또한 각자가 관심을 두는 중점적인 의제에 따라 지구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런 운동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접속되어 불공정이나 부조리에 맞서는 힘을 더욱 늘리고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에 맞설 만큼 때로는 그 힘이 강력해지기도 한다.

과거의 경직된 운동과 달리 이런 운동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시민들의 필요와 지식에 의존해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흐름,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흐름,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흐름을 존중하고 그 흐름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호켄은 이 운동이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모든 인간에 대한 공평함의 필요성”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형태가 제각각이지만 호켄은 이 운동들이 환경보호, 사회정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토착문화라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얽혀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환경보호운동은 지구를 죽이는 병적인 정책에 대한 인류의 면역반응으로, 사회정의운동은 가족과 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경제적/법적 병원균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유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에 토착문화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호켄은 이런 세 가지 큰 흐름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라고 본다.

운동의 형태가 작고 다양하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호켄은 그런 회의적인 평가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운동이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고 사람들이 운동에 깔린 다양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운동이 실제로 활성화되고 있고 그러면서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고든 무어, 클린턴 같은 강자들도 기부금을 내거나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이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면역체계가 강해져서 지구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호켄이 책 뒤에 붙인 부록은 이런 가능성이 단지 공상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증거들이다.

다만 호켄은 “면역반응이 현재는 아주 많이 불완전해서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이고 “어떻게 함께 작용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질병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듯이, 이 운동도 분명 실패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호켄은 이런 운동이 성공하려면 ‘자아인식능력’, 즉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함께 모여 행동해야만 인류는 불안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과 행동, 소비행태를 바꾸는 과정에서만 자치와 시민의 힘은 치료되고 복원될 수 있다.

 

 

대안은 무수히 많다!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들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로 나서자고 주장하는 점에서 호켄의 얘기는 충분히 귀담아 들음직 하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호켄만이 아니다. 가령 에이프릴 카터April Carter는 『직접행동』(교양인, 2007)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소개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에 주목한다. 호켄이 아래로부터 다양한 운동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핀다면, 카터는 지구화라는 현상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이 어떻게 직접행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만날 수 있을지를 다룬다.

그리고 리처드 스위프트Richard Swift는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이후, 2007)에서 권력의 중앙집중화로 무기력해진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한 방법이 바로 ‘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생태민주주의가 개인의 욕망과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단초가 될 것이고 남반구 전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노력이 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을 것이라고 스위프트는 기대한다.

각기 다른 개념에 주목하지만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불안을 벗어나려는 풀뿌리 민중의 자발적인 투쟁과 그들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지구의 파괴를 막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리라 기대한다. 허울 뿐인 세계화나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에 매달렸던 헛된 꿈보다 지역의 고유성에 바탕을 둔 자치와 자급의 삶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대안의 부재보다는 대안에 대한 냉소나 무관심이 우리의 삶을 더욱더 위태롭게 한다.

 

 

여전히 이념은 필요하다!

 

그런데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는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해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인다. 카터가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하려 하고 스위프트가 자유민주주의를 강한 민주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면, 호켄은 그 질서에 강하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켄은 운동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토대를 다진 하이에크의 사상을 공진화coevolve의 관점에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듯이, 부조리하고 왜곡된 정치/경제 질서를 그대로 둔 채 다양성만 강조하는 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최상은 아니기 때문에, 자아인식능력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성장할 수 있다. 좋은 활동들의 리스트가 자동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피하려 하기에 호켄은 세계화가 작은 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성을 장려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가령 환경보호론자와 토착민이 정치적인 동맹관계를 맺어 “환경보호단체는 정치적 캠페인 조직경험이나 정부 및 언론동원능력 등 자원을 제공하고, 원주민단체는 조상들이 살아온 땅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라는 명분을 제공한다”면 환상의 콤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 이런 국제적인 역할분업이 분명 초국적기업의 나쁜 영향을 가로막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분업은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끔 한 세계의 불평등한 지배구조 자체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즉 지금 당장은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평생의 건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축복은 아직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고 불안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풀뿌리 민중의 투쟁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고 힘을 모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권력과 초국적 자본의 힘을 없애고 생명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가속화되고 있는 파괴의 흐름을,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삽질을 막으려면, 적절한 시간에 저항의 힘이 살아나야 한다. 호켄은 생태학적 복원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치워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듯이,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쉽게 복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인간의 면역체계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이념을, 전일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다양성과 활력을 상실한 건 사실이지만 역사를 거치며 누적되어온 그 희망은 여전히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오래된 희망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고 살리는 건 단순히 낡은 틀을 부여잡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한국의 경우도 맑스주의가 풍미했던80년대 이전의 다양하고 풍부했던 지적 전통과 다양한 운동들을 다시 평가하고 되살려야 한다).

물론 호켄이 이 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호켄 스스로도 웬델 베리의 말을 인용하며 여러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패턴을 위한 해결책solving for pattern’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시대는 축복의 길잡이가 될 좌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념의 시대는 아직 가지 않았고 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경인일보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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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냉소적인 말이 유행했다. 뼈 빠지게 일해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람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다른 무엇을 바쳐도 좋다고 믿었다. 경제만 살아난다면 독재자가 출현하건, 생태계가 파괴되건, 기본적인 노동권이 무시되건 상관없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경제를 살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게 되었다. 왜 경제를 살려야 할까? 정말 경제만 살아난다면 정말 우리는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쨌거나 그렇게 모든 걸 바쳤건만 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각내고 있다. 그런 실패는 특정한 정책의 실패나 외부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 경제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도 비롯되었다. 원래 경제란 말은 오이코스(oikos), 즉 가계(家計)라는 말에서 나왔다. 쉽게 얘기해 경제는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살림살이’를 뜻했다. 가족들이 다른 일을 하는데 지나치거나 궁핍하지 않도록 적절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가정살림의 지혜이듯, 공동체의 경제는 적절한 규모를 지키며 시민들이 정치나 문화에 관심을 쏟게 하는 지혜를 갖춰야 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경제 살리기는 살림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삶이 튼튼하게 세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그동안 우리 삶은 주가와 부동산 거품에 실려 둥둥 떠다녔다. 살림살이는 내실을 다지는 것을 포기하고 거대한 권력이나 자본에 살림을 팔거나 맡기는 식으로 흘러갔다. 그러다보니 우리 삶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휘둘리는 근본적인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삶이 세계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좋은 방법은 바로 정치이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적절한 살림인지, 특히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건 경제가 아니라 정치의 몫이고 민주주의의 몫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힘과 부, 기질이나 문화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내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 필요한 합의요, 공동체를 튼튼하게 하는 기본조건이다.

우리의 경제 살리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 그런 기본조건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가 공동체를 튼튼하게 만들기는커녕 빈부의 격차를 더욱 늘리고 있고 서로간의 합의를 무시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의 위기가 나의 기회라고 믿는 잘못된 경제적 계산이 함께 하는 정치적 자유를 대체했다. 윤리와 합의를 지키는 것이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지는 세상,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혼자 많은 부를 챙기더라도 이런 세상에서는 온전히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는 과정은 정치나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시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며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없을 때 그 공동체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공동체 차원에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동등하게 살아가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공동체의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똑같이 교육을 받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경쟁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만든다. 그러니 삶이 위기에 처할수록 정치에 무관심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에 더욱더 관심을 쏟아야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 밥숟갈을 놓으며 끼니를 걱정해 왔던 셈이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경제는 기업가에게 맡겨두고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잘못된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 삶이 지금 이 모양이다. 그러니 아직도 청와대 비서관이 성매매를 하다 잡혔는데 경찰청장이 이를 두둔하고, 부패청산을 내세웠던 정부가 뒷구녕으로 구린 돈을 받는다. 에이, 더러운 잡놈들 하며 정치를 더욱더 멀리 할수록 세상은 더욱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12.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율의 하락이 곧 민주주의의 위기는 아니지만 그런 무관심은 치명적이다. 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만이 우리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한다. 당장 지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자급과 공생의 정치

 

하승우

 

요즘 들어 민주주의의 핵심원리가 대의민주주의라는 주장을 자주 접한다(로버트 달R. Dahl이나 최장집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해석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원을 망각한 무지의 소치이다. 단순히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 있음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민주주의가 민중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등장했고 그 투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역사성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지배층이 민중에게 준 선물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왕과 귀족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일반 민중을 배제하고 지배하는 현상, 그래서 민중이 공동체의 정치주체로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민주주의는 집회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가 투표권과 발언권을 가지고 몇 시간 동안 논쟁을 벌이는 집회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였고, 전문가를 배격하고 시민이 아마추어(idiotai)로 참여하는 평민 민주주의였으며, 모든 시민이 돌아가며 한번씩 공직을 맡는 교체(rotation)의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특정 계층이나 전문가가 정치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순환시켜야 하고 그런 순환을 거치며 민중이 정치주체로 성장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에는 민주주의란 말이 없는 대신 민본주의(民本主義)란 말이 있었다. 맹자(孟子)는 “지배받는 백성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것이요,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신들은 다음으로 존귀한 것이다. 그리고 지배하는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 “한 나라의 군주(제후)가 그 나라의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그 군주는 곧 변혁하여 새롭게 갈아치워야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민중을 위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이렇게 보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민주주의는 특정 계층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민중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등장했다. 민주주의는 현실의 부조리한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대안이었고,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되고 않고 주체로 서려는 꿈틀거림이었다. 이런 꿈틀거림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게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래도 대의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가 소수의 민주주의였을 뿐이라며 대의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허나 현대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고대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전유물이고 시민의 자격은 제한되며(외국인, 빈민, 이주노동자의 시민권을 생각해 보라!) 정치권력은 민중을 통제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대의민주주의가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더욱더 민주적이라는 점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던 서구 선진국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삼고 식민지를 늘렸다는 점은 그 민주주의가 타인의 땀과 피를 딛고 개화했음을 증명한다. 제 아무리 멋들어진다 한들 그것이 타자의 땀을 착취하고 피로 억누른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보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그런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건 무지보다 더 심한 문제이다.

그리고 서구의 대의민주주의가 도입되지 않았던 때에 우리에게는 고유한 정치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었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나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외부의 것을 무조건 배우고 수용해야만 가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서구가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많은 사상가들은 ‘고대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근대라는 난쟁이’라는 은유를 자주 썼다. 근대의 사람들에게는 고대라는 유산의 크기가 너무 컸다. 스스로 움츠려 들지 않기 위해 그들이 썼던 은유가 바로 고대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태어나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는 난쟁이였다. 비록 은유를 썼지만 근대인들은 결코 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인이 남겨놓은 정치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 글은 대의민주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에 스며있는 민중의 정치적인 잠재력을 깨닫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나아가 반정치적 또는 비정치적이라 여겨지는 농민의 삶과 농촌공동체에서 실현되었던 중요한 정치원리를 발견하려 한다.

 

 

자연상태의 발명과 국가에 갇힌 정치

 

최근 서구 학계에서 유행하는 정치이론들은 모두 자연상태를 발명했던 홉스(T. Hobbes)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제국과 다중을 주장하는 네그리(A. Negri)나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존재에 주목하는 아감벤(G. Agamben) 모두 홉스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네그리는 『다중』(세종서적, 2008)에서 홉스가 “부르주아지에게 적합했던 사회체의 성격과 시민권의 형태”를 정의하면서 “국민국가의 형태로 유럽에서 발전할 주권의 형태”(22쪽)를 규정했다고 주장한다. 홉스는 자연상태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질서를 잡을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질서에서 합리적인 시민은 무질서로 이끌 주권을 국가에 양도하고 규율 잡힌 질서 속에서 자신의 소유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지는 국가주권이 결정한다. 홉스는 그런 자연상태가 실제로 존재했는가보다 주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물음, 즉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사라졌고 무엇이 각자의 이득을 더 많이 보장할 것인가라는 계산만이 남았다.

그런 점에서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에서 “홉스의 자연상태란 국가의 법률과는 무관한, 법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법을 구축하고 그러한 법 속에 정주하는 예외이자 경계선”(216쪽)이라고 말한다. 홉스에게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사라지면 언제든지 사회는 자연상태로 복귀한다. 주권이 없는 곳에는 오로지 폭력과 죽음뿐이다. 바로 이런 끔찍한 예외상태를 빌미로 국가는 언제든지 민중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었다. 자연상태를 전제하는 이상 국가를 제외한 정치는 불가능했다.

네그리와 아감벤의 논의는 홉스가 자연상태를 발명하고 그것을 전쟁과 동일시함으로써 근대의 국가주권을 정당화시켰다고 본다. 홉스는 주권자와 계약을 맺는 인간의 동의가 이성과 언어, 이득과 손해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주권은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라는 ‘착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 자연상태는 국가와 무질서의 경계를 규정하는 국가주권을 정당화시켰을 뿐 아니라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홉스는 시민들의 정치적인 성장을 돕던 사회적 관계를 지워버리고 그들을 이기적인 개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순간, 언제나 무질서라는 최악의 상태가 떠오른다. 국가를 넘어선 대안, 국가를 배제한 대안은 자연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다. 민중의 대안적인 상상력은 국가라는 틀 속에 갇혔다. 민주주의를 주권으로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진정 그런 자연상태가 존재했는가? 크로포트킨(P. Kropotkin)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2005)에서 그런 상태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원시사회의 씨족공동체에는 서로 돕고 사는 풍조가 만연했고, 독립된 가족과 사유재산의 출현에도 공동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집중된 부를 재분배하는 제도들(예를 들어, 포틀래취)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삶에서 어떤 시기에도 전쟁이 정상적인 상태인 적은 없었”고, “형평성, 상호부조, 상호지지 등의 개념은 대중들이 자신의 사회조직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작용해왔고, 이는 포악한 신정제나 독재정치에 복종하고 있을 때조차 발휘”되었다(149~150쪽).

시간이 흘러 과거의 씨족 공동체가 사라지고 촌락공동체가 만들어진 뒤에도 상호부조의 생활양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촌락공동체는 “공동경작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가능한 상호지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지식이나 인종 간의 결속 그리고 도덕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합”(163쪽)이었고, 민회라는 고유한 정치질서를 마련했다. 농민들의 민회는 인공적인 정치질서가 아니라 협동노동과 공동소유에 기반한 자연적인 정치질서였다. 민회는 촌락 공동체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민회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공동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근대국가가 등장해 촌락공동체들을 억압하고 해산시킨 뒤에도 촌락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시도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촌락공동체 제도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생각에 매우 잘 맞아 떨어”졌기에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관습과 습속”이 농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281쪽).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근대국가의 주권을 넘어설 대안이 공유제와 농민에게 있고 “현재 만연되고 있는 무모한 개인주의 체제하에서도 농민 대중들은 상호지원이라는 유산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음”(294쪽)을 주목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홉스의 자연상태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국가의 주권을 정당화하며 민중의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기 위해 ‘발명된 개념’이다. 근대국가는 개인의 소유관계를 제한하고 땅의 공유와 공동작업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성장을 추구했던 공동체의 역사를 은폐하고 전통을 끊으려 했다. 그리고 사회계약에 따른 대의민주주의 역시 민중의 관심을 개인적인 소유로 전환시키고 정치를 특정 계급이 독점하면서도 지지를 받기 위한 장치였다. 거대하게 세워진 의사당이나 행정부는 민중의 일상생활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촌락공동체의 정치질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지 않았다. 민회라는 정치공간은 의회처럼 민중의 일상생활과 분리된 인공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소농의 삶과 자급․공생의 정치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윤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이 바로 정치의 생명력이다. 자연히 농민의 삶, 특히 소농의 삶은 그 삶에 맞는 정치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농민은 땅을 일구며 땅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자연의 지혜를 알고 있었고 홉스처럼 자연을 일방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고 자연상태를 전쟁으로 몰고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농민은 인위적인 변화를 거부하며 자연적인 평화로움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 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농민은 “폭력에 대해서는 비폭력으로, 권력에 대해서는 무저항의 자세로” 맞서고 “인간의 속성으로서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폭력이나 지배욕을 제어하는 기능”을 자연스레 배웠다(유킨도, 130쪽). 스스로 땅을 일구어 먹고 살 수 있다면 폭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는 농사일은 농민들이 서로 돕고 함께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그래서 소농의 삶에서는 ‘자급(自給)’과 ‘공생(共生)’이 중요한 정치원리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급을 뜻하는 아우타르케이아(autarkeia) 또는 아우타루키(autarky)는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뜻했다. 그런데 이 자급은 경제적인 자립성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납세의 의무를 지니고 투표권을 갖는 것 외에도 공공생활이나 군사활동 등 모든 기능에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상호협력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이 중요한 공동체의 결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공동체의 규모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규모를 유지한다고 해서 농민의 삶이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는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민은 여러 가지 다양한 생명 종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결코 토양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유킨도, 85쪽)는 점도 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깨달았다. 여러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삶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듯이, 여러 사람들의 서로 보살피는 삶이 공동체를 튼튼하게 한다는 점도 분명했다.

개인적인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이나 생산물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삶도 망가뜨린다는 점은 삶에 깃든 지혜였다. 그래서 농민의 삶에서는 발명보다 그런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이 더욱더 중요했다. 그 발견은 얼마나 놀라운가? “제4의 눈은 그곳의 풍경 속에 조상의 영혼이 참여함을 확실히 파악하고, 타관 사람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흙 위에 아름다움을 새기고, 무심히 그것을 감상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농심(農心)이란 이러한 것이 아닐까.”(유킨도, 151쪽)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고대 그리스의 농민공동체는 지중해 세계의 확대와 상업의 발전을 거부했다. 울프 선드호슨(Ulf Sundhaussen)이 지적했듯이, 당시 농민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간계층의 미덕이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만들어서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협한다고 봤다. 상업상의 경쟁은 외부 공동체와의 전쟁을 불러왔고, 공동체 내부에서도 빈곤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민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주강현은 한국 농민공동체의 핵심을 조선 후기에 발전했던 ‘두레’에서 찾는다. 보통 30~50호 정도의 가구가 모인 두레는 단순히 서로 일을 도와주는 모임이 아니라 “사유적 요소를 극복하고 공유적 계기와 밀접하게 결합”된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레는 단순히 서로 일을 돕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마을의 공유재산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두레의 구성원들은 함께 일하며 생긴 수익금을 모아 자산을 늘리고 일정한 액수를 반드시 적립했다. “두레가 분화된 이후에는 각자 노동의 대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조선 후기의 두레에서는 공동체적 강제가 강했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 부분을 공동 적립시켜야 했다.”(99쪽) 그리고 18, 19세기에 지배층이 동계를 하나의 납세단위로 묶어 공동납(共同納)을 강화하자, 이런 세금부담은 주민들을 단합시켰고 동중답(洞中沓)과 같은 마을의 공동재산을 확대시키기도 했다. 이 공유재산은 두레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공유재산은 농민들의 자급과 공생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레는 촌회와도 연관되었다. 두레는 “마을의 정신적 상징인 마을굿을 모시며, 두레를 조직․운영하고, 동산(洞山) 등 공유재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촌회(村會)를 열어 공동의 일을 토의 결정”했다(84쪽) 두레는 마을굿과 공동노동의 조직과 운영, 공유재산의 관리를 위해 촌회라는 정치기구를 뒀고, 그 속에서 농민들은 정치를 경험했다(호남지방의 경우에 두레는 모정(茅亭)이라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때때로 이 두레는 양반층의 향촌지배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의 농민공동체를 양반들이 지배하던 봉건적인 공동체로 보는 편향된 시각은 그 내부의 정치적인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다. 양반들이 마을을 지배했다고 해도 그것이 고대부터 내려온 농민공동체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했다. 양반이 주도하던 향회도 단순히 농민들을 지배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때때로 향회는 “대소민을 막론하고 빈부 모두 곤궁해지는 위기적 상황에서, 끝없는 관의 가렴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 생존을 위하여 상하가 연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철종 때 괴산에서는 수령의 자의적 결가책정에 대하여 반대하는 향회가 29차례나 열렸으며 각처에서 관의 부조리한 조처에 굴종하지 않고 통문을 돌려 향회를 소집, 단합된 여론을 배경으로 수령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읍소(泣訴)’를 감행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감영에 진정하는 ‘의송(議送)’에 나서는 등 향회는 점차 반관적 저항을 위한 모임의 장소가 되었고 드디어 민란의 온상 구실을 하게 되었다.”(김용덕, 40쪽) 이처럼 마을 내에는 봉건적인 지배원리와 농민의 자치적인 정치원리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처럼 동서양 어느 곳에서나 농민공동체는 자기 나름의 공동체적 정치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런 질서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자연스런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농민의 삶은 자급과 공생에 바탕을 둔 정치가 자율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임을 말해준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농민들은 공동체를 꾸리고 자급하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고 삶과 일치하는 정치원리를 실현했다. 농민의 삶으로 다져진 거인의 정치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의 성립은 이런 소농의 정치질서를 파괴하고 대체하기 시작했다.

 

 

식민지와 농민공동체의 파괴

 

농민의 삶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확장을 거부했다. 화폐경제에 편입되기 전에는 “가족 한 사람당 농지가 얼마나 확보되는가 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였고 “자급자족 단계에 있는 농업에서는, 항상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농지가 얼마나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농민의 최대 관심사”(유킨도, 108쪽)였다. 하지만 화폐경제는 이런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식민지화는 농민공동체를 체계적으로 파괴시켰다.

『농민의 도덕경제: 동남아시아의 반란과 생계』(아카넷, 2004)에서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은 지주와 국가에게 얼마나 빼앗겼나보다 자신에게 ‘얼마가 남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농민의 생계윤리가 전통적인 농민공동체를 지배해 왔다고 본다.

이런 농민의 윤리는 호혜적인 제도들을 통해 실현되었다(스콧은 이런 호혜적인 제도들이 평등주의적이거나 이상적인 제도보다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 노동력을 붙들어두려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쨌거나 그런 생계의 도덕윤리는 “빈민에게는 생계의 사회적 권리가 있다는 것”과 “엘리트는 가난한 자들의 생계를 위한 예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최대한 공식화는, 엘리트는 결핍의 시기에 종속자들의 생계유지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적극적인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54쪽)을 분명히 했다. 마을의 공유재산은 과부나 고아들이 살아가도록 지원했고 “정상적인 시기에 ‘가장 약한 자의 생존’을 보장”(67~68쪽)했다.

하지만 서구 제국의 식민지화는 이런 도덕경제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식민권력은 공유지를 박탈했고, 세계시장 편입에 따른 곡물가격의 불안정은 생계를 위협했다. 이런 변화는 농민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을의 임야나 공유지가 사라져 마을 공동체의 보호틀이 사라졌고, 마을의 부유층은 빈곤층의 요구를 무시하며 사법기관이나 경찰을 동원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시장가격의 변동과 인구증가로 마을의 재분배 압력은 효력을 잃었다(89~90쪽). 농민의 자급적이고 서로 보살피며 살아갈 토대 자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덕경제를 무너뜨리면서 식민권력은 세금으로 농민을 착취했다. 인두세와 토지세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거셌지만, 식민권력은 자신들의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의 범위를 더 넓혔다. 과거의 지배자들과 달리 “왕권에 저항할 수 있었던 지역 수장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132쪽)던 식민권력은 근대적인 무기와 상비군을 도움을 받아 저항을 잠재웠다. 그리고 식민권력은 “분산된 지역적 관습과 절차를 좀더 동질적인 전체로 통일”시키기 위해 중앙집중화된 강력한 관료제도를 만들었다. 식민권력은 농민들의 경제적인 삶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삶도 짓밟았다.

식민지 국가의 등장과 농민공동체의 붕괴는 스콧이 관찰했던 동남 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일제 식민권력은 한국 사회에 배타적 소유권을 확립했고 공유지를 박탈했다. 1919년대에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은 배타적인 토지소유권을 확립했고, 많은 농민들이 소유권을 잃었다. 두레와 촌회의 전통 역시 식민권력의 침투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제 식민권력은 전쟁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이를 위해 강력한 관료제도를 도입했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사례는 농민의 삶과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가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식민권력은 최소한의 동의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채 농민들을 수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켰다. 그러니 식민지를 경험한 곳에서 근대정치로의 전환과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국가와 자본의 폭력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이어졌고 민중의 정치적 잠재력은 끊임없이 그 폭력에 시달렸다.

 

 

민주주의의 혁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비극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공유지를 박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세금을 걷기 위한 관료체계와 내부의 반란을 막기 위한 공권력이 강화되면서 국가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전통적인 공동체나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는 낙후되거나 봉건적인 유산으로 매도당하고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민중의 몸 속에 각인된 정치적인 잠재력을 두려워하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민중의 삶과 정치를 분리하려 한다.

그런 분리의 수단이 바로 제도화이다. 그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제도로 가두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세계 역사를 통틀어 근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도로 구현된 적이 있었나? 민주주의를 특정한 제도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정치현상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함석헌이 얘기했던 바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함석헌은 민중을 지배하는 기풍과 제도의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육신이 사는데 집 옷이 있듯이 제도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울타리다. 집은 닫기운 것이요, 닫겼기 때문에 집이지만 집 안에 오래 있으면 공기가 흐리고 독소가 생겨 사람이 죽게 되듯이 제도는 고정한 것이요, 고정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지만 제도가 오래면 사회는 반드시 해를 입는다. 그것은 생명은 쉴 새 없이 자라는 것인데 제도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를 언제나 건전하게 발전시키려면 제도를 끊임없이 고쳐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에 강건한 기풍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할 때는 실질적으로는 사회제도의 혁신을 말하는 것이다. 제도를 그냥 두고 개선을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제도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성장에 맞는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이제 민주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이고 제도는 그런 성장을 반영하는 근본적인 혁신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우리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을 찾을 것인가? 선드호슨은 “서구식 처방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과거의 결함으로부터, 또 산마리노 같은 나라의 역사로부터 배워서, 다수 인민 즉 농민계급을 민주적 정치 속으로 참여시키는 길을 선택”(169쪽)하자고 얘기한다. 그렇다, 1만년 이상을 이어온 자급자족과 지속의 공동체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결코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상하는 반동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전통을 복원하고 주권의 논리로 민중을 억압하는 국가를 넘어설 대안일지 모른다. 따라서 무기력하게 대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할 게 아니라 민중의 역동적인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녹아있는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농민의 정치원리를 따르는 정치질서는 인공적이거나 가공의 정치상황을 발명하거나 상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1만년 이상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온 정치원리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자연상태에 대한 학습된 두려움이나 국가주권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 자급과 공생의 길을 개척하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촛불저항이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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