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떤 완성된 과정이나 단계로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곧바로 뭔가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에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의 지혜를 모아 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물론 어떤 과정이나 단계가 그렇게 지혜를 모으기에 좋은 조건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본다면 모범 사례모델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의 성공이, 어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생각들이 하나의 모델로 정리되어 다른 곳에 이식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나 정치에 관해 강의할 때 가장 많이 요청받는 것이 그와 관련된 사례이다. 사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는 사례가 있을까? 내가 보기엔 없다. 밖으로는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공동체나 출판사, 단체들도 막상 가 보면 몇몇 사람들이 주요한 결정들을 내리고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결정을 보완하는 수단 정도로 여겨진다.


반면에 민주주의가 실패한 사례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왜 실패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민주적인 사회구조를 이유로 든다. 이런 구조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렵고 때론 비효율적이라고 얘기한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충분한 지적인지는 모르겠다. 바로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더욱더 필요한 게 아닐까?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운동을 하는 거지?


어느새 이런 부조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어 버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사회에 살지만 정작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거나 요구하지 못한다. 생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삶의 과제로 가져오는 건 목숨만큼 큰 대가를 요구한다. 공부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살 수는 없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불온한 민주주의. 이미 법정에서 판결이 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야 하는 노동자에게, 학생의 인권이 조례로 보장된다는 사회에서 홀로 고립되어 아파트 난간에 올라선 청소년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일까? 삶은 이렇게 절박한데 민주주의는 박제된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민주주의가 더 필요한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무슨 민주주의가 더 필요하냐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지금으로도 민주주의는 충분하며 민주주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지나쳐서 문제이고, 외국에서 얘기되듯이 현재의 문제는 과잉된 민주주의(demorecracy)라는 거다. 지금껏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거나 자기 삶과 연관된 결정들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기득권층은 기함하며 이들을 막아선다. 마치 당장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사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이건 그들의 과장이 아니라 그들의 실감일 수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송호근의 입장을 살펴보자. 송호근은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평등 지향적 심성을 지적한다. 원인보다는 결과에 더 민감한 평등주의 심성이 한국 사회를 하향 평준화시켰고, 이런 습속folklore이 누적됨으로써 책임과 의무가 결여된 평등주의가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평등주의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비난의 심성, 분노와 적개심의 에너지 등이 공정성을 권리 투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한국 사회를 파괴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송호근이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원적 평등과 관용이다. “똑같은 양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분배 기준을 요구하는 다원적 평등 개념을 주장하고, “양보의 기억을 쌓는관용을 강조한다.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비해 모범생 같은 결론이다.


어쨌거나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평등을 지향하면서 사회의 반목만 낳았다는 것이 송호근의 분석인데, 이 분석은 좀 문제가 많다. 일단 사회적인 평등을 논하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송호근은 사회주의권을 제외하고 자본주의권에서 한국은 소득 불평등이 비교적 낮았던 국가에 속한다. 적어도 금융, 토지, 주택 소유를 논외로 하고 소득만을 비교했을 때에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낮은 매우 모범적인 국가로 꼽혀 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는 소득만이 아니라 그가 배제한 금융, 부동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1988년과 2006년 사이에 토지 소유자 중 상위 50%가 소유한 면적 비중은 98.2%에서 99.6%로 늘어났다. 소위 민주화 이후 토지 소유에서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사회가 평등해지는데 반목만 늘어났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고, 외려 실질적인 평등이 더욱더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과잉을 주장하는 얘기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일 때가 많다. 이들은 본질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본심이 드러날까 봐 아프다며 엄살을 떤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과잉을 주장해야 하기에 실제 역사가 왜곡되기도 한다. 가령 송호근은 “1987년 민주화 과정은 재산 축적을 향해 무한 질주를 해 온 교양 없는 중산층결과의 평등을 앞세운 노동계급 간 전면 대결로 촉발되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과정이 재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각 집단과 계급의 이해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민주주의는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대결이 아니라 기득권층과 새롭게 구성되는 정치 주체의 대결이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


이런 잘못된 정보는 한국 사회가 공정 사회나 기회 균등을 부르짖어도 사실상 두 개의 질서로, 즉 특권을 남용하는 소수의 기득권층과 주어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민들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감춘다. 인사 청문회에서 보이듯 기득권층에겐 부동산 투기가 상식이고 직위를 남용한 특혜가 권리이며 학벌은 상속되는 재산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에겐 불법 증여나 분식 회계가 상식이고 특별사면이 권리이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를 원인 없는 적개심이라 불러야 할까? 민주주의가 사회를 하향 평준화시킨 게 아니라 기득권층과 시민들의 삶이 완전히 분리된 건데, 이것이 평등주의 탓일까?


과잉을 주장하는 기득권층에게는 지금껏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자신과 동등해지는 것이 싫다. 민주주의는 그런 동등함을 전제하기에 불손한 것이고, 과잉과 문란의 위험을 내포한 민주주의는 절제되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당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임금 인상이 아니었다.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 및 상여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조장組長에 의한 자의적인 평가 폐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노동자 간의 지위 구분 철폐, 식사의 질 개선, 복장과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 철폐, 강제적인 아침 체조 중단을 포함한 정말로 긴 요구 목록을 제시했다”.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과잉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다. 법으로 보장된 휴일을 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계약서를 쓰자고 맘 편히 얘기 할 수 없는 사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사회에서 우리도 그들과 동등하다고 얘기하는 평등은 질서를 파괴하는 위험한 것이 된다.


그래서 송호근의 모범 답안 같은 다원적 평등과 관용은 현실의 불평등과 반민주주의를 지속시킬 뿐이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순수관용비판A Critique of Pure Tolerance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정파적인non-partisan 관용을 추상적또는 순수한관용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관용이 현재의 차별과 착취, 억압을 지속시킨다고 비판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선전할 수단을, 자기 삶과 연관된 결정을 내릴 힘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모두가 똑같이 관용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래서 마르쿠제는 보편적인 관용이 아닌 차별하는 관용discriminate tolerance을 제안했다. 이는 루쉰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릴것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왕의 머리가 잘리지 않았다면 과연 프랑스혁명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때로는 불공정한 조건을 바로잡기 위한 과잉된 개입이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좀 과잉될 때에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목소리와 개입이 있어야 기득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잉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뜻하기에,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본질에 다가서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누가 과잉을 주장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학교와 연관 지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학교가 과잉을 외치며 지키려 하는 본질적인 이해관계나 기득권은 무엇일까? 학교가 학생회 선거에 개입하고 학생들의 삶을 규율하려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청소년의 삶을 규율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런 부조리한 현실과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와 학생은 같은 세계에 살고 있고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때에 따라 필요한 게 아니라 언제나 필요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 그게 가능할까?

노동자나 소수자의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선 인권조례가 논의되고, 주민들의 참여를 님비라 매도하거나 폭력으로 진압하는 상황에서도 어느 한쪽에선 주민참여조례들이 제정된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에 살다 보면 사람의 판단력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학교를 봐도 그렇다. 무상급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을 함께 밥을 먹는 공동체 문화, 즉 식구食口라 부를 수는 없다. 대학 등록금이 반값으로 떨어질 수는 있으나 대학의 교칙이나 수업 과정에 대한 권리는 오로지 대학 당국의 것이다(학생회마저 조폭들이 장악하는 대학에는 정치의 자리가 없다). 단지 수업만이 아니라 학교의 공간을 구성하고 학생들이 생활할 권리조차 학교 당국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더라도 그 사안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가 교사나 학교에 있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제도가 권리를 보장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한때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몫 없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체이니 치안의 질서에서 벗어나 강하게 아니오라고 외치며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치안의 힘이 너무 강하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귀포경찰서장이 수배자를 찾는다며 온 마을을 뒤지고, 서울시 중구청장이 대한문 앞 농성장을 부수고 화단을 만드는 건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권리의 목록을 제 아무리 길게 만들고 읽어 줘도 그것을 실제로 쓸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알아도 안 쓰는 게 약자의 권리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계속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쇠사슬을 감고 저항하던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이 경찰에 끌려가는 사진에서는 치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건 그냥 폭력, 공권력의 탈을 쓴 노골적인 폭력이다. 몫을 논하는 순간 돌아오는 이 폭력 앞에서 정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한때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에서 노동자와 청소년, 소수자들은 이미 헐벗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그 현장과 자리에 서지 않기를 원할 뿐 우리는 죽음의 뺑뺑이를 돌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존재들이다. 무기력한 민주주의가 이 뺑뺑이를 멈출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치의 등장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아니, 자기 자신과 우리의 몫을 사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얼마 전 의정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정치에 관한 궁금증을 질문지로 미리 받았는데, 인상에 남은 질문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회는 왜 말로 할 것이지 맨날 주먹다짐이나 하나요. 다 큰 어른들이……. 다들 생각도 있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일 텐데 왜 그리들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는지 궁금해요.” “박근혜가 이번에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박정희 정권 당시 독재정치가 맞는 건가요?” “보수 진영은 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걸 좌빨이라며 비난하나요?” “보수와 진보는 왜 항상 싸우기만 하나요? 보수와 진보의 각각 제대로 된 정의는 무엇이고 둘 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나요?” 이런 심도 깊은 질문들에 나는 국회란 원래 논쟁하고 싸움하라고 만들어 놓은 장이니 더 열심히 싸워야 하고, 다만 지금처럼 카메라가 켜진 곳에서만 싸우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했냐는 질문에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긴급조치를 남발한 사람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다음 질문들은 좀 어렵다. 질문 자체에 답하는 게 어렵다기보다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궁금해서였다. 왜 고등학생의 정치의식에서 보수와 진보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문이나 매체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계속 부각시켜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정치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건 보수와 진보 이전에 자신과 우리의 몫이다. 보수와 진보는 그 몫을 인지하고 난 뒤에야 의미 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참정권이다. 17세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바뀔까?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교육감을 선택할 수 있다면 학교가 어떻게 바뀔까? 지금처럼 정치인이나 교육 공무원들이 시혜의 관점으로 학생이나 청소년의 권리를 접근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학생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 유권자들이 가득한 학교 앞은 선거철마다 후보자들의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사 역시 수업 외의 시간에 학생들을 대하는 시선이 바뀔 것이다. 자기 몫을 생각한다면 보수와 진보보다 이게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찾아보면 정보가 없지도 않다.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내놔라 운동본부)’는 이미 5가지의 명쾌한 요구안, 선거권·피선거권 내놔라’, ‘모이고 외칠 권리 내놔라’, ‘학교 민주주의 내놔라’, ‘판단할 권리 내놔라’, ‘우리 동네 내놔라를 요구하고 있다. 너무나 훌륭한 요구이다. 문제는 이런 요구를 실현할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이 요구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구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할까? 나는 알고 있는 내놔라 운동본부를 정작 당사자인 고등학생들은 모르는데 어찌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던지다 보면 희망이 그려지지 않는다. 정치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이미 고등학교부터 대상화되어 관전 포인트를 찾는 객관적인문제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자기 몫을 못 챙기는 사람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몫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다. 중요한 정치 의제는 언제나 중앙이나 외부에서 논의되다 삶으로 툭 떨어진다. ‘자아 성찰자기 판단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이고 실제 삶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수많은 착시 현상들이 판단을 방해하니 판단력은 더욱 떨어지고, 똑똑한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시민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대략 난감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정치학교를 열고 싶어 하는 선생님도 만났는데, 쉽지 않을 꺼라 얘기했다. 정치는 동등한 자들이 자웅을 겨루는 장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교는 정치에 적합한 장이 아니다. 어느 한편을 시혜나 훈육의 대상으로 보는 곳에서는 정치가 시작될 수 없다. 정치에 관한 지식을 교육할 수는 있겠지만 그곳이 정치의 장일 수는 없다. 그곳을 지배하는 원리는 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체로 서지 못하는 민주주의, 서로를 알아보고 동등하게 인정할 수 없는 민주주의, 새로운 관계와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민주주의는 가식이다. 내가 저들을 위해 권리 목록을 만들고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같이 살고 있는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마주 보고 있는가?

 

의식과 교육이 민주주의를 체화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과 정치를 얘기하다 보면 종종 냉소를 경험한다. 이런저런 일에 개입해 봐야 별 효용도 없고 나만 피해를 볼 것이라 생각하고, 나아가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고 주저앉히며 원래 다 그런 거라고 한다. 현실에 무심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밝을수록 더 심한 냉소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냉소를 품은 사람들을 의식화시키고 교육한다고 한들 그 삶이 바뀔 수 있을까?


재작년에 관둔 대학에서 나는 시민교육이라는 과목을 담당했다. 인문 정신을 내세운 교양 과정 개편이 그 과정을 이수할 사람들과 합의 없이 진행되었고, 학생들이 무슨 과목인지도 모른 채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 수강 대란이 벌어졌다(좋은 내용이면 과정이 중요치 않다는 생각은 그곳에서도 반복되었다). 시민교육도 그 교양 과정의 일부였고, 심지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기에 학교 내외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교육의 방법에 관한 합의가 없었고, 가장 심각한 건 강사들이 학생들을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설령 내가 좋은 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삶과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 사실 시민으로서의 삶이란 학습되는 게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최상의 교육은 내가 시민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 그 삶이 주변에 울림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따라오라 설명하지 않아도 공명할 수 있는 교육의 관계, 그것이 민주주의 아닐까?


하지만 강사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빈약해진 채, 시민교육은 학생들이 팀을 짜서 현장 활동을 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민으로서의 삶이 왜 중요하고, 시민의 권리를 조직하는 법이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민원을 넣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법,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고용계약서를 써야 하는 이유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정작 학교에서의 내 삶은 그 앎을 반영하지 못했다. 학교를 관두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앎을 반영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앎과 삶의 모순, 이 커다란 간극을 해결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그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대체 어떤 교육이 가능할까? 하물며 시민교육이라니.


물론 대학 밖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수업을 맡으며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학내에 많은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살리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교육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학점을 매기고 받는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가? 내용을 함께 기획하고 실천했다면 이미 평가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지 않은가?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채 민주 시민이 되라고 하니 일시적인 경험이 장기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팀을 구성하는 목적이 학점 경쟁을 위해서라면 TV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과 대학을 바꾸기 위해 대학 안과 밖이 어떻게 연계되었던가? 사학 재단의 소유물로 둔갑한 공공재인 대학을 바꾸기 위해 시민교육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어떤 역할을 했던가? 만일 시민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그 학교의 교과과정이나 교칙이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을 텐데, 지금도 그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걸 보면 그 과정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대학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는 민주시민교육을 봐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교육을 받아서 어디에 어떻게 써먹으란 얘기인가? 청소년들이 노동기본권에 대한 교육이나 인권교육을 받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어디에 써먹으란 얘기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유소나 편의점의 사장이나 점장, 매니저에게 그것을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학생이나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을 받는다손 치더라도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그 내용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정치와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이나 공론장은 계속 줄어드는데, 권리를 교육받은 시민들은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건 공리이지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리는 분노보다 냉소를 낳기 쉽다. 이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 다른 권리 목록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식화와 교육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다. 다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역사는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안창호 선생과 이승훈 선생은 학교를 세웠다. 평범한 사람들이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둥글게 둘러앉아 삶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일제가 아닌 어떤 다른 국가로부터도 독립할 수 있을 거라고, 자치와 자급이 이루어진다면 일제가 물러가지 않아도 이미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지금 나라가 날로 기우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총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중요한 건 백성들이 깨어나는 것입니다라는 오산학교의 설립 정신은 그 고민을 말해 준다.


비록 안창호, 이승훈 선생의 이상촌 계획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그들이 학교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바는 원주나 홍성으로 이어져 지금도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그들의 계획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학교와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하나의 체계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살림살이를 해결하고 이런 관계망이 지역사회를 단단하게 만든다면 이상촌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구상했다.


의식과 교육이 아니라 생활이, 직접 그렇게 살아 보는 경험이, 그리고 그런 앎을 반영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앎이 식민지라는 현실을 극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방관자의 자세에서 벗어나 그 문제를 내 것으로서 삼아 참되고 실속 있게 행한다는 무실역행務實力行, 서로의 사랑을 도탑게 하라는 정의돈수情誼敦修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이승훈 선생의 말 역시 우리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지금 필요한 건 삶과 괴리된 앎이 아니라 삶으로 단단하게 뭉쳐질 수 있는 앎과 그런 앎의 관계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물음과 깨달음, 같은 세계에 사는 동료 시민과의 구체적인 만남과 관계, 이 관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 가는 세계, 이런 것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나는 이 말들을 사랑으로 살림살이(경제)를 살고 우정으로 정치하자고 풀이하고 싶다. 정치가 사랑의 장이 아니라 우정의 장인 것은 연인이 아니고 친구여야 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며 서로의 잘남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우정을 맺으며 산다면, 저들의 과잉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마냥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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