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9년에 출판한 '공화국의 위기'에서 정치적 거짓말의 의미를 분석한다.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미국에서는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다. 아렌트는 미국방성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국민과 의회를 속이려 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파악한다. 진정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선출된 권력이 자기 국민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거짓말을 일단 시작하면 정부는 자기기만에 빠져들어 거짓말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을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사회정의나 공공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아렌트는 그런 상황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 언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불복종 행위야말로 공화국의 위기를 막을 진정한 정치행위라고 주장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자기 국민을 속이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정당성은 시민의 동의와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치인의 필수적인 덕목처럼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렇게 정치가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7.4%, 법원은 4.6%, 검찰은 2.6%, 국회는 0.9%로 나타났다. 임의로 결성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42.3%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정부는 공권력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에서도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사회가 크게 술렁거렸고, 오랫동안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그 당시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만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고 광우병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할 때 반드시 국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정부는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정부를 제소했기 때문에 먼저 대응하는 차원에서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농림수산식품부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캐나다 쇠고기 현지 작업장 점검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청을 거부했다(캐나다에서는 2003년 첫 광우병 사례가 보고된 이후 계속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캐나다가 이미 보고서를 국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왜 어떤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광우병 검역기준을 위반한 미국 도축장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청도 계속 거부하다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을 받기도 했다.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공개가 없는 정부의 말바꾸기는 공화국을 위기로 몰고 간다.

그리고 작년만 해도 정부는 주변국의 조건에 맞춰 쇠고기 수입기준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겠다며 나서는 주변국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 정부는 누구의 정부이기에 국내 축산농가나 국민의 안전보다 국제기준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단 말인가?

이런 정부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학교에서 진실되게 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하는 게 뭐가 나쁜가? 모두가 서로를 속이며 거짓말의 공범이 되는 사회, 그곳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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