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딜>을 봤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민영화(民營化)는 시민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고, 기업과 그 시설과 서비스를 기업에 넘기는 권력층에게만 유리하다. 공중의 이익을 해치는 민영화는 사실상 사영화(私營化), 기득권을 가진 몇몇 개인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검은 거래이다. <블랙딜>을 보면 그 점이 분명해진다.

 

영화에 공감하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뭔가 세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물며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앞에 두니 지금 당장은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고 이 일이 내 일처럼 여겨지지 않으니 관심이 잘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참여를 하든 하지 않든 어떤 결정은 내려지고 그 결정은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민영화를 코앞에 둔 의료만 봐도 그렇다.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만들어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개정안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의료민영화, 불편한 진실’이라는 동영상을 보면 잘 드러난다(http://www.youtube.com/watch?v=yTs5An6iUas). 그런데 이 결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설마 정부가 그런 일을 하겠어,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리 할까, 이런 생각은 두려움을 감소시키려는 우리의 바람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그런 일을 하고 기업에게는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이다.

 

이런 파국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부에 호소한들 지금의 정부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병원에 호소한들 그들은 돈을 버는 사업에 열중할 것이다. 국가-시장-시민사회라는 구도로 현실을 이해한다면, 국가와 시장은 이미 한편이 되어 공공성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결국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국가와 시장을 압박해야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정부와 기업의 검은 거래를 막으려면, 일단 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을까? 민영화가 검은 거래라면 돈을 주는 자와 돈을 받는 자가 분명히 있다. 법안을 추진하는 공무원이 누구인지, 뒤를 봐주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개정안을 근거로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이 어디인지, 그 당사자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이들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민영화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역할을 언론사가 마땅히 맡아야 하는데, 한국의 언론은 정부와 기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 역할을 가만히 앉아서 기대할 순 없다. 그러니 시민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자기 분야에서 진행되는 정책결정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공공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인물이니 그 인물들을 드러내어 검은 거래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담당자들도 추적해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책실명제를 확대하고 잘못된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담당자들이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하고, 공무원들이 퇴직 후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 취직하는 ‘회전문 인사’를 막는 제도를 입법화시켜야 한다. 제도가 중요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관료들의 부패를 막는 장치를 강화시켜야 검은 거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공공서비스라면 그 결정권한이 응당 주민과 시민에게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부당하게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니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과 시민의 의견을 반드시 묻도록 제도화시켜야 한다. 진주의료원 폐원처럼 주민들이 반대하는데 도지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공공성과 관련된 주요사안은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제도화시켜야 한다. 주민들에게 정보를 알리지 않고 밀실에서 결정된 정책들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적인 공공성이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에 그런 가치를 실현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민간기업의 부조리를 내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노동조합이다. 정부기관에는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민간기업의 내부정보에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런 내부정보를 다루고 공론화시킬 수 있는 기구는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기업 내에서 힘을 갖고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시키고 노동조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는 직장평의회(Betriebsrat)와 감독이사회(Aufsichtsrat)를 통해 노동자가 기업의 주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실현되어야 경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민간기업이라 하더라도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면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대한 법률이나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은 기업이 지역주민에게 관련된 정보를 고지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런 정보들을 시민이 확인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도록 시민사회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이런 법과 제도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설령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단서 조항을 만들어 시민들의 활용을 막을 것이므로 정부나 기업에 맞서 싸우고 공통의 합의를 만들어가려는 시민들의 연대와 노력이 중요하다.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청도와 밀양의 송전탑, 제주도 강정마을의 주민들, 세월호 유가족,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스타케미칼, 함께일하는재단의 노동자들,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농민들, 손을 잡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단은 이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려는 노력 속에서 공공성이 조금씩 실현되리라 믿는다.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 아니라면 누구도 민영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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