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몽똘 2010.04.16 07:36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을 읽고 있다.
읽다보면 책의 내용과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이 어찌나 많이 일치하는지...
경제력의 집중, 정치적인 통제의 확대, 여론의 조작, 무의식적 욕망을 통제하는 장치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일차원적인 사회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마르쿠제는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 모두가 오역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의 한 단락이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산업문명이 가장 발달된 지역에서 드러나는 총체적인 동원의 사회는 복지국가와 전쟁국가의 특징들을 가장 생산적인 형태로 결합한다. 예전 사회와 비교할 때, 이 사회는 진정 '새로운 사회'이다. 전통적인 문제들은 제거되거나 격리되었고 혼란스러운 요소들은 처리되었다. 주요한 경향들은 잘 알려져 있다. 대기업의 필요에 따라 국가경제를 집중하는 것, 정부가 그런 과정을 자극하고 지원하고 때때로 심지어 통제하는 힘이 되는 것, 이 경제를 전 세계적인 군사동맹, 금융협정, 기술지원, 발전계획의 체제에 연결시키는 것, 기업과 노동에서 블루칼러와 화이트칼라의 리더십 유형이 점점 동화되는 것, 서로 다른 사회계급들의 여가활동과 열망이 점점 동화되는 것, 학문과 국가의 목적 사이에 이미 확립된 일치점이 확장되는 것, 통합된 여론이 개인의 가정으로 침투하는 것, 침실이 매스미디어에 개방되는 것 등이다."

"The society of total mobilization, which takes shape in the most advanced areas of industrial civilization, combines in productive union the features of the Welfare State and the Warfare State. Compared with its predecessors, it is indeed a 'new society'. Traditional trouble spots are being cleaned out or isolated, disrupting elements taken in hand. The main trends are familiar: concentration of the national economy on the needs of the big corporations, with the government as a stimulating, supporting, and sometimes even controlling force; hitching of this economy to a world-wide system of military alliances, monetary arrangements, technical assistance and development schemes; gradual assimilation of blue-collar and white-collar population, of leadership types in business and labor, of leisure activities and aspirations in different social classes; fostering of a pre-established harmony between scholarship and the national purpose; invasion of the private household by the togetherness of public opinion; opening of the bedroom to the media of mass communication."

일차원적 인간의 출판년도가 1964년이니, 지난 36년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온 셈이다.
일차원적 사회에 관한 논의를 끝내면서 마르쿠제는 삐딱하게 사유하기(negative thought)가 어려운 이유를 언어의 조작주의(operationalism), 기능적이고 폐쇄적인 언어에서 찾는다.
시적 언어의 상실, 초월적인 예술의 언어의 상실이 이렇게 조작된 언어들의 지배를 불러왔다.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요, 현재의 사회적 현실이 우리의 규범이라는 경험주의라는 이데올로기(ideological empiricism)는 우리 시대 일차원적 사유를 대변한다. 오직 현실만이 영원할 뿐 다른 이데올로기는 없다.

이런 사유를 넘어서야 대안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새로운 현실을 꿈꾸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그게 대안이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다르게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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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코프스키 2010.04.17 12:59  Addr  Edit/Del  Reply

    한국 사회에서 번역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요. 로쟈 - 도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 참조 - 라는 분도 지적하셨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만 <<번역은 반역인가>> 도서처럼 한국 사회에는 아직 번역문화가 부박한 현실탓이 강하기는 합니다. 도서는 번역이 어그러진 역사를 설명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저 도서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거지요.

    마르쿠제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쇼오죠오, 사카이 다카시 - <<폭력의 철학>>의 저자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에리히 프롬을 연상케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 등만 탐독해도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지요. 현대의 '조작'이라고 하는 기술도 '경험으로부터의 차단'과 '경험의 두려움'을 계속 생성하는 장치입니다. 소개부분만 해도 상당히 섬뜩한 부분이기도 한 모습인데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도 이와 같은 상상을 한 겁니다. 오히려 오웰이 예언한 <<1984>>년 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언어조작은 이미 [웩더독]과 같은 영화나 <<여론을 만든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즈>>와 같은 도서에서 확인한 바이지만 최근 <<넛지>>와 같은 도서도 조작의 필요성 내지는 절실성을 설파하고 있기는 합니다. - 두 도서와 영화는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원리는 대동소이 하지요.

    마지막 부분들은 상에서 일부 언급한 것과 같은 보육기 장치하고 연관은 크네요. 거기다가 아래 편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은 모순 결론에 이르게 한 소련 붕괴의 여파는 바로 현실이 곧 이상이고 영원한 것은 변화가 아닌 현실이라고 설파하는 지경에도 이르른 것이죠. 이러니 비행 - 클래식 음악중에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 ~ 1908)의 '왕벌의 비행'이 있지만 - 정신 내지는 불량정신이 절실한 이유가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 몽똘 2010.04.23 20:14  Addr  Edit/Del

      쇼죠의 얘기와 마르쿠제의 얘기는 많이 맞닿아 있지요. 비행정신,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