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진짜 시험대’가 필요하다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패배라는 사실 외에 진보정치의 성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옳을까? 중요한 쟁점의 부각, 후보자 당선비율, 비례대표 정당지지율, 이런 기준들이 얘기되고 있지만, 이런 기준들은 부르주아정치의 기준과 얼마나 다를까? 승리를 판단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기준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듯하다.

유권자들이 꿨던 꿈은 이번 선거를 통해 얼마나 현실이 되었을까? 4대강 사업이 중단되고 삼성과 같은 재벌이 해체되고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되는 꿈은 얼마나 실현되었나? 그리고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4년 후의 지방선거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몇몇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정치혁명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니 진보정치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당선된 3곳의 구청이 진보정치의 미래에서 중요한 시험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단일후보가 당선된 여러 지역에서도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험을 진보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과거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단체장으로 선출되고 의회에서도 다수당을 구성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경험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공식적인 평가도 찾기 어렵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원의 의정활동이나 구청장의 구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점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무엇이 진보적 지방자치의 걸림돌이고 그 걸림돌을 제거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공동정부 구성과 관련해서는 과거의 정치권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수위나 주요한 몇몇 자리에 몇몇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민주당의 지역조직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정부 구성에만 관심을 쏟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진보정치의 시험대를 만들기는커녕 구태의연한 권력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 수도 있다. 그러니 밀실에서 타협을 하거나 정책을 만들지 말고 공개된 광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파트너는 후보를 단일화한 정당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이다. 그러니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도를 비롯해 이미 조례로 도입된 각종 제도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복지관과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등의 시설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작부터 진보정치는 뭔가 다른 점을 주민들이 실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다. 주민들의 삶이 바뀌어야 진보적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움직이는 동선, 주민들이 일하고 소비하며 쉬는 공간, 주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당선된 교육감들과 더불어 미래의 시민인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과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가야 한다.


사실 이런 과제들을 4년 안에 모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4년을 보지 말고 8년, 12년을 장기적으로 보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 주민들도 기꺼이 진보정치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려 할 것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브이의 가면과 옷을 입고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말한다. “그는 당신이고 저이기도 했어요. 그는 우리 모두였어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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