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도 읽으면서 수다도 떠는 생활공간이자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마을 문제를 고민하기도 하는 사랑방인 작은 도서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지방정부의 예산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등이 그런 좋은 변화의 사례들이다. 민주주의의 학교로 불리는 지방자치제도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다른 새로운 비전들도 많이 제안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전이 늘어나는 만큼 걱정도 늘어난다. 작은 도서관의 수가 많아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이어야 할까? 작은 도서관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1천 권의 서적은 어떻게 선정되어야 할까?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어떤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주민들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도서관이 책을 고르고 읽을 자유를 침범하지는 않을까? 도서관이 독서실로 변하지 않고 사랑방이자 생활공간의 역할을 다하려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할까? 도서관의 수가 늘어나면 마을이 질적인 변화를 겪을까? 조례가 제정되면 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이런 고민들이 자연스레 해결될까? 도서관 조례와 작은 도서관 조례가 꼭 따로 제정되어야 할까? 관의 지원을 받더라도 민간도서관의 자율성을 훼손되지 않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주민참여예산제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위원회나 지역회의, 예산학교를 개최하는 건 쉬울 수 있다. 허나 주민들은 어떤 정보를 얼마나 주민의 눈높이에서 제공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 만큼 주민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실제로 위원으로 참여하려는 주민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관변단체에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주민들의 훈련은 되어 있나? 회의를 민주적으로 진행할 규칙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형식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실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장소, 어떤 시간대에 회의를 개최해야 더 많은 수의 주민이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홍보하고 알려야 더 많은 수의 주민, 더 많은 공무원이 주민참여예산제도에 관심을 가질까? 어떻게 하면 단체장 선거에 휘둘리지 않고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을까?


또한 작은도서관 지원조례, 친환경무상급식조례, 사회적기업육성지원조례 등이 주민참여예산조례와 따로 논의되어야 할까?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힘을 모아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구체적인 물음들에 답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면 그 뒷끝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물음들에 답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실제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할 일은 계속 늘어난다.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들을 볼수록 자기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생긴다. 그러다보면 어렵게 제도를 만들어도 정작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이, 실무를 맡을 사람이 부족하다. 지역 내에서 이런저런 명함을 여러 개 가진 ‘선수’들이 비전을 세우고 제도만 만든 뒤 할 일을 다했다고 손을 놓아버리면 사업은 허공에 붕 떠버린다. 주민을 내세우지만 정작 주민은 없고 사업만 남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제법 반복되어 왔다.


지방자치를 풀뿌리민주주의라 부르는 건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비전을 세우는 사람들의 수만 계속 늘어나고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집행하고 평가할 사람들의 수는 외려 줄어드는 듯하다.


다른 어떤 사업이나 제도, 조례보다 사람을 기르는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선수들의 방언이 아니라 민중의 언어로 비전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비전도 성공하고 변화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질러대는 사람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쫀쫀하게 따지고 챙기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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