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가 직거래를 하겠다며 나섰다. 2013년 4월, 농림부는 농산물 유통구조개선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직거래 확대’를 내세웠다. 4% 수준의 직거래를 2016년까지 10%까지 늘리고, 이를 위해 직매장 100곳, 대규모 직거래 장터 10곳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직매장 설치나 공동사업장 설치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건 직거래 확대를 농협 중심으로 추진하고 그동안 직거래를 해온 소비자생협들을 따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생협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할 수 있다. 그동안 열심히 직거래운동을 해온 건 우리인데, 우리를 빼고 직거래를 확대한다니. 그런데 다시 잘 생각해 보자.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한다는 것만 생각하면, 지금 정부의 방침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운동의 면에서 생각하면 진정한(?) 직거래는 소비자생협이 아니라 생산자가 바로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꾸러미’ 사업이나 전북 완주군에 만들어진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생협의 유통방식인 직거래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 한살림운동에서 직거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동안 여러 홍보물이나 문건에서 직거래라는 표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써 왔다. 조합원들도 한살림운동을 직거래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는데, 이 직거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한살림은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직거래를 시작했을까? 한살림 초기 문헌을 보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간유통업자들이 농산물 가격을 폭등시킨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더 많이, 더 빨리 키우려는 문명을 대표하는 농약이 농민과 소비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돌아가신 박재일 선생님은 “오로지 증산에만 매달리던 당시 농업 현실, 그리고 무엇이든 쉽게 쓰고 버리며 더 많이 더 빨리 갖는 일에만 매몰된 생활양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 속에 지난 1986년 한살림운동을 시작했습니다.”라고 20주년 기념 대화마당에서 말씀하셨다.

당시의 고민은 ‘가격’을 낮추기 위한 직거래가 아니었다. 가격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이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한다.”, 이것이 한살림의 구호였다. 단순히 직거래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철학이 이 구호 속에 숨어 있었다. 지금 농림부가 주장하는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위한 직거래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책임생산하고 책임소비하며 서로 믿는 관계를 만들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직거래였다. 그래서 무농약과 유기농산물이 중요했고 손으로 풀을 뽑아가며 지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책임지고 소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더 싸게, 더 많이 소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소비를 줄이는 것도 한살림의 중요한 과제였다. 한살림운동이 “부엌과 화장실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며 최초로 재생휴지 사용운동을 벌이고 협성생산공동체가 최초로 폐식용유를 이용한 비누공장을 세우고 물살림운동을 벌인 건 소비되고 폐기되는 물건을 재활용하여 다시 순환의 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이 역시 직거래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생산-유통-소비-폐기 과정을 생태적으로 순환시키는 것이 한살림운동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소비의 변화만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하는 농부들도 공해물질이나 합성세제를 안 쓰며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아야 했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라고 외치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보자는 것이 한살림운동이었다.

이렇게 보면 한살림의 직거래는 지금 시중에서 논의되는 직거래와 차원이 다른 직거래이고 비틀거리는 세상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한살림의 직거래는 ‘가격’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조합원들이 알고 깨달으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운동의 가치도 실현되고 세상도 함께 변할 것이다.

올해 8월까지 기획재정부에 등록된 협동조합의 수가 2,314개이다. 한살림이 갈수록 늘어나는 다른 협동조합과 무엇이 다른지, 한살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과정은 그동안 운동이 사용해온 말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야할 길만 쳐다보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잊어버리기 쉽다. 갈 길이 바쁠수록 우리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까를 떠올려 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