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7, 국토교통부는 제 3차 신규택지추진계획(신도시 3기 계획)을 발표하고 고양시 창릉과 부천시 대장 등을 추가입지로 지정했다. 이로써 정부가 2018913일에 발표했던 수도권 30만호 공급계획은 완료되었다. 국토교통부는 신규택지까지 지하철을 연장하고 간선급행버스체계(super-BRT) 등의 교통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30만호의 주택이 추가공급되니 수도권의 인구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인구는 2016년부터 1천만명 선이 무너져서 2018년은 약 976만명이고, 경기도의 인구는 2003년부터 1천만명 선을 넘어서 2018년 약 1,307만명이다. 서울시에서 빠진 인구가 경기도로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2018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인천광역시의 인구를 합하면 약 2,57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9.77%를 차지한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의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율 47.43%보다 2.34%, 121만명이 늘어났다. 인구가 늘어나 주택이 부족해진 걸까? 정부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급한다고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2022년까지 수도권 주택수급은 안정적이다. 그러니 신도시 3기 계획은 2022년 이후의 공급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분권형 국가와 충돌한다. 개헌안이 합의되지 않았지만 청와대가 제시했던 헌법개정안은 제 1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했다. 이미 한국은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국가이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한데, 수도권 집중을 강화시키면서 분권을 표방한다니. 차라리 비수도권을 포기한다고 말하면 솔직하기라도 할 텐데, 정부는 다른 한편으론 분권과 균형발전을 얘기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한데도, 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마치 이것이 가능한 것처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불가능한 두 마리 토끼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균형발전의 실체는 비수도권의 발전이 아니라 바로 토건정치이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토건정치,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정치는 전형적인 토건정치이다. 토건국가는 토건업과 정치권이 서로 뒤를 봐주며 재정을 낭비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부패한 국가이자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위기를 심화시키는 위험국가이다. 그리고 토건정치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며 이런 토건국가를 더욱더 강화시키는 정치이자 성장이데올로기를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는 정치이다. 뭐라도 개발하면 삶이 좀 나아지겠지, 라는 주민들의 막연한 기대는 토건정치가 만든 세계관의 결과이다. 문제는 개발의 이익이 주민들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설령 돌아간다해도 개발의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는 점, 이런 부작용을 시작할 때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웠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기대는 대규모 사회기반시설(SOC)과 같은 토건사업보다 일자리와 소득을 통해 분배에 방점을 두리란 점 때문이었고, 우려는 그럼에도 여전히 성장론에 기반한 경제정책이란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가면서 기대는 크게 줄어들었고 반면에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제주도민들의 반대에도 강행되는 제주 제2공항, 울릉도와 흑산도의 공항, 24조원 규모의 23개 예비타당성면제사업 허용 등 2년을 경과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개발사업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금 정부에서 시작된 사업은 아니라고 해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사업들이 분별없이 추진되는 상황은 초기의 주장을 의심케 만든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1928일에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오찬 간담회에서 예타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전략사업을 발굴하고 적극지원해서 지역경제를 도약시키고 국가균형발전의 원동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213일 부산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을 언급했다.

동남권 신공항이 무엇인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0510월에 영남권 시도지사들이 동남권 신공항을 만들자는 공동건의문을 올렸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에 관한 검토를 지시했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이를 선거공약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사업타당성이 부족했기에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지다 결국 20113월에 신공항 사업은 경제성 부족으로 백지화되었다. 그렇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신공항만큼 좋은 선거공약은 없다. 그래서 신공항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공약으로 발표되었지만 2016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이 가덕도 신공항을 또 꺼내면서 불이 붙었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언급했다(후보 시절에 신공항을 언급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동남권 신공항은 건설비용이 7조원~8조원 정도 되는 대형사업이다. 이 비용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누구일까? 가장 단순하게는 건설업자, 계약은 대기업이 하지만 실제 공사를 담당할 수많은 하청업체들, 이익을 노리는 투자사들, 타당성 없는 사업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중앙정치인과 지역정치인들, 사업주체인 국토교통부와 산하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 용역계약이나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각종 전문가들, 떡고물을 노리는 지역언론사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는 자영업자들, 이해관계로 얽힌 각종 관변단체들 등이 이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이익이 분명한 만큼 동남권 신공항사업은 지금 진행되지 않아도 선거 때마다 계속 등장할 것이다. 엄청난 사업비를 투자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이 사업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지만 이렇게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내건 사업들에 대해서는 쉽게 비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대형개발사업들은 지역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지주나 건설대기업만 배불리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라리 주민들에게 현금으로 돈을 나눠주는 게 지역경제에 더 도움을 줄 거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업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건 이런 토건사업들이 경기를 부흥시키고 유권자들의 표를 모은다는 거짓신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운동 출신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광화문 지하화나 서부간선도로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마이스산업과 같은 대형건설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 거짓신화를 실현하는데 시민들의 세금을 엄청나게 쓴다는 점이다.

 

2. 균형발전의 실체는 토건잔치!

 

노무현 정부는 2003년부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방침을 발표하고 20071월에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전국 10개의 지방자치단체, 부산광역시(동북아해양수도-영도·해운대·남구) 대구광역시(지식창조 브레인시티) 광주광역시·전라남도(그린에너지피아, 나주시) 울산광역시(경관중심 그린에너지폴리스) 강원도(비타민시티, 원주시) 충청북도(교육·문화이노밸리-진천군·음성군) 경상북도(IT·BT드림밸리, 김천시), 전라북도(농업·생명허브, 전주시·완주군) 경상남도(산업자원거점도시, 진주시) 제주도(국제교류·연수폴리스)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혁신도시사업은 157개의 중앙정부 산하기관, 3만명 이상의 임직원들이 해당 지역으로 옮겨가고, 도시개발비로 당시 화폐로 44조원이 투자되는 대형 국책사업이었다. 1단계로 혁신도시가 건설되고, 2단계로 산학연 클러스터가 조성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역주민의 합의를 통한 정책이라고 밝혔지만 중앙정부가 설계하고 지방정부가 자기 지역의 낙후함을 앞 다투어 호소하며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더구나 광역자치단체가 중심이 되면서 혁신도시의 입지를 두고 기초자치단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원주시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자 강릉시와 춘천시의 주민들이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주민들은 혁신도시 선정을 반대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지역내 격차에 대한 대책이 없었고, 혁신의 성과가 인근 지역으로 전파될 것이라는 당위적인 설명만 있었다.

또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부추긴 것은 지역들간의 경쟁만이 아니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 말까지 전국 10곳의 혁신도시 공시지가 상승률은 타 중소도시의 공시지가 상승률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진주 혁신도시를 포함한 전국 혁신도시 지구의 공시지가 상승률은 11.16%인 데 비해 중소도시 20여 곳의 공시지가 상승률은 4.44%에 불과했다. 혁신도시의 건설은 누구에게 많은 이득을 줬을까?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10곳의 혁신도시에서 토지보상금을 받은 사람들 중 32%가 외지인이었고, 그들 중 42%가 수도권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혁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도심지가 공동화되고 지역 내에서 구도심과 신도심간의 격차가 생겼다. 이러니 문재인 정부는 또 도시재생사업을 한다며 5년간 50조원의 예산을 구도심에 쏟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업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지만 혁신도시 건설로 발생한다던 효과들은 과연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을까? 인구가 유입되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지방정부의 세수도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과연 실현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도 균형발전이 이렇게 강조될 이유도 없고 수도권 인구도 늘어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제주도 서귀포시 서호동, 법환동 일원에 건설된 혁신도시는 건설비만 3,473억원을 썼는데, 9개의 공공기관이 이전될 예정이었으나 국토교통인재개발원, 국세공무원교육원, 국세청주류면허지원센터, 국립기상과학원, 공무원연금공단, 국세청 국세상담센터가 이전했고,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경우 NIA글로벌센터만 제주에 만들어졌다. 이렇게 이전된 기관들만 보면 솔직히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이 기관이전에 따른 임직원 이주는 8개 기관이 모두 이전해도 743명에 불과했다. 혁신클러스트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수도권 지방이전기업에겐 법인세소득세 6년간 면제, 이후 350% 감면, 지방세에서 취·등록세 면제, 재산세 10년간 100%를 감면한다는 특혜가 붙었지만 201512월 말까지 분양을 신청한 기업체는 10개 불과했다. 국제학교 설립, 외국 영리병원 유치, 전지훈련센터처럼 무리한 사업들만 늘어났다. 효과는 별로 없고 개발의 욕구만 더 강해졌다.

혁신도시정책을 이어받지 않았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탓일까? 그렇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균형발전을 빌미로 광역경제권 활성화, 30대 지역발전선도과제, 지역특화프로젝트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없었고 사실상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제 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2018~2022)지역 주도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 균형발전총괄 지표 개발 및 지역차등지원, 생활밀착형 SOC사업 확대, 지역발전투자협약(계획협약) 본격 추진,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개편,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지역발전투자협약으로 지자체가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정부와 협의 후 협약을 체결한 뒤 추진한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점은 이런 계획이 지금까지 해왔듯이 대형개발사업을 부추기고 국공유재산까지 이런 개발을 위해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17개 시도별 역점과제를 보면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간재편전략들이 빼곡하다. 2022년까지 1748천억원을 투입한다는 이 균형발전계획은 과연 비수도권 지역을 활성화시킬 대안일까?

 

3. 균형이 안 되면 압축?

 

마강래는 지방도시 살생부에서 현재까지의 균형발전정책을 작심하고 비판한다. 시작부터 마강래는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은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조만간 이 문제로 인해 온 나라가 골머리를 썩일 것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많은 예산들이 균형발전, 지역활성화란 명분으로 지방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로 온 나라가 골머리를 썩일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지방소멸론, 한계마을, 인구절벽,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앙정부는 토건정치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강래의 주장이 기존의 논의와 가장 다른 점은 쇠락하는 도시들을 위해서라도 지방에 거점 대도시들을 키워야하고, 중앙정부는 이 대도시들이 수도권에 꿀리지 않을 만큼 커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것이 결론부에서 주장하는 압축도시’, ‘축소도시전략인데, 재정을 골고루 나누지 말고 집중하자는 논리이다.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지방 대도시 몇 개를 키우는 것’, 그리고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상생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예산의 제약 아래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국토균형발전이라고 마강래는 주장한다.

기존의 균형발전론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까지는 균형발전이 절대선처럼 얘기되어졌으니까. 하지만 이 비판이 제대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주거 및 상업 등의 도시 기능들을 혼합하고 높은 밀도로 이용하게 하는 실천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밀도 높은 개발을 하고 복합적으로 토지를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활성화시키는 전략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도 정치인, 기업, 언론, 대학, 각종 단체 등 온갖 이해관계자들이 먹잇감을 노리고 뛰어드는 토건의 현장에서, 어디가 압축과 축소의 핵심지로 지정되어야 할까? 이미 세종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증명되지 않았나.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안 되었던 점은 아는 지 모르는지 지역사회를 지배해온 개발카르텔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까지의 균형발전론이 보인 한계는 이론적인 것보다 현실적인 요인이 컸다. 제 아무리 좋고 혁신적인 정책들도 한국에만 도입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이론적인 설계보다 정치적인 영향력 탓이 컸다. 지금의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압축/축소전략을 쓴다고 토건의 방향이 달라질까? 한국사회 대부분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토건 카르텔의 해체 없이 정말 다른 대안이 가능할까?

마강래는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이유로 계속 재정문제를 거론하는데, 국가재정의 진짜 문제는 인구감소로 인한 재정감소보다 부패로 인한 재정낭비이다. “끝도 없는 예산낭비는 큰 효과없는 시장활성화나 조형물보다 단체장들이 치적사업으로 추진하는 대형개발사업에서 비롯된다. 예산의 제약을 논하기 전에 지금까지 예산이 어떻게 집행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데, 마강래는 어려운 과제를 피한다.

인구감소로 인한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감소, 지방재정 위기, 고령화로 인한 중앙정부의 복지비용 증가는 최근 들어 새롭게 제기된 문제들이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각종 개발사업들의 연구용역사업, 예비타당성조사, 투자심사 등을 그동안 제대로만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사업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왜 그런 예방이 되지 않았을까? 그건 전문가들에게도 개발은 주요한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 저런 전략 제안하는 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장의 창출이다.

더구나 인구와 고용감소를 통해 위기에 접근하는 마강래의 방식은 사실 기존의 정부가 진행해온 균형발전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대에 닥칠 문제는 재정악화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전혀 정치적인 의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201951일 영국은 기후변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에서는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이 제시한 그린 뉴딜정책이 많은 관심을 받았고, 뉴질랜드에서는 제로탄소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4. 균형발전보단 지속가능한 분권을!

 

한국의 토건정치가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있을 때 전 세계 청소년들은 개발과 성장을 멈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라며 동맹휴업에 나섰고 한국의 청소년들도 기후소송단을 꾸렸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48차 총회에 모인 전 세계 과학자들이 치열하게 토론을 벌여 하나의 문서에 합의했다.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바로 그 문서이다. 이 문서는 현재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2030년에서 2052년 사이에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온도가 1.5높아지고 온난화를 줄이려는 노력이 없을 경우 2이상 높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1.52의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0.5의 차이가 생물종의 다양성과 질병, 가뭄, 태풍, 해수면 상승, 건강, 산업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온난화의 효과가 전 지구인에게 동일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 보고서는 소외계층, 토착민, 농민, 도서국가 등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대규모 기후난민이 발생할 거라 예측한다. 실제로 심각한 식량난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지금 북한도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지구정치는 이렇게 기후변화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한국정치는 나 몰라라 토건정치이다. 그렇지만 지구를 떠나지 않는 이상 한국도 이런 세계적인 대응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이 가장 먼저 손봐야 하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높은 산업들인 에너지산업, 제조업, 건설업 등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토건산업도 없애며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지금 당장 정치의 과제이다.

현재의 에너지체계는 전국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체계이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들은 사고 위험에 시달리고, 석탄화력발전소 인근 지역들은 사고와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태양열, 풍력같은 신재생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이런 시설들이 주민과의 협의 없이 만들어지며 새로운 갈등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를 많이 생산해서 다른 지역으로 송전하는 대규모 시설보다는 각 지역들이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고준위핵폐기물처리장이라는 희대의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용량에 따라 부담을 진다면 고준위핵폐기물처리장의 입지는 수도권이어야 한다. 새로운 토건사업의 기획, 토건에 쏠린 균형발전 이전에 에너지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지금의 에너지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부터 큰 어려움이 생길까? 에너지 위기는 자급력은 떨어지면서도 집중되고 집약된 곳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지역의 소중심지들을 만드는 전략은 건설도 문제이지만 그 유지를 위해 주변 지역들을 약탈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이미 소중심지들이 주변 지역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런 체계를 확산시키는 게 정말 필요할까?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핀테크, 에너지신산업, 스마트시티, 드론,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등 8대 핵심 사업을 8대 혁신성장산업으로 성장하고 추진 중인데, 모두 성장을 전제한 산업들이다. 그런데 이런 성장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는 어떻게 준비될 수 있을까? 정부는 이런 산업을 지역화하기 위해 시험적으로 규제를 푸는 규제 샌드박스정책을 쓰고 국가혁신클러스트를 만든다고 하지만 정말 그것이 지역 특색에 맞는 산업을 만들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성장을 위해 만들어온 각종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등을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재활용/재사용/자원순환 클러스터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떤 대안을 제시해도 그것을 토건산업으로 변신시키는 한국에서는 새로운 성장산업보다 기성사회가 만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산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균형발전을 빌미로 토건산업을 추진하고 막대한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각 지역이 지역에너지체계를 만들고 재활용/재사용산업을 활성화시켜 다양한 일자리를 마련하고 시설보다 사람에게 투자하도록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쉽지 않다. 선거제도 개혁을 비롯한 패스트트랙에 관한 합의는 험난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면제사업에 관한 협상은 놀라울 정도로 여야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국회의원들이 선물보따리를 들고 지역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2020415, 21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시간이다. 그들은 어려운 과제는 다 피하고 손쉽게 개발공약들을 쏟아낼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미래세대의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이제는 발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당, 야당이 아니라 한국의 토건정치와 싸우고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사회의 핵심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전환 없이는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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