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제도와 주민소환운동은 같지만 다르다. 제도가 있다고 해서 그 제도의 목적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주민소환제도는 주민소환운동을 통해서만 자기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즉 운동이 없다면 제도는 사문화된 규정일 뿐이다.

주민소환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정치적인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다. 2006년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국회가 부패와 무능에 빠진 상태였고, 여야가 지방부패 척결을 위해 주민소환제 입법을 약속했음에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국회의장이 동북아역사재단법 등 4개 법안을 직권상정하겠다고 하자 민주노동당이 표결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주민소환법을 직권상정법안에 포함시켰다. 이 표결이 통과되면서 2007년 7월 1일부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민소환제도가 시행되었다.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에서도 정치가 작동한 셈이다.

사실 주민소환제도 자체가 무조건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2003년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역사상 두 번째 도지사 주민소환이 이루어졌다. 전력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책임이 명분이었으나 기업의 자금이 동원됐고 소환을 뒤이은 선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보수파가 당선되었다. 주민소환제도의 부정적인 결과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이다.

그러니 제도 자체는 ‘양날의 칼’이다. 칼의 쓰임새는 칼 자체가 아니라 칼을 쓰는 사람에 달려 있다. 정치인을 실제로 소환할 수 있는가 아닌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소환운동을 통해 칼잡이는 무엇을 하고자 하고, 더 중요하게는 소환 과정의 정치에, 소환 이후의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려 하는가, 라고 생각한다.

 

□ 탄핵의 복기, 소환의 준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은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법은 「지방자치법」 제20조의 규정에 의한 주민소환의 투표 청구권자ㆍ청구요건ㆍ절차 및 효력 등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한다.” 즉 주민소환은 단지 정치인을 소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민의 직접참여와 행정의 민주성, 책임성 강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주민소환은 소환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 65조는 이렇게 적혀 있다. “①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은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파면에 목적이 있지 시민과의 연관성이 없고 그 과정에 시민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다. 탄핵은 시민의 투표가 아니라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도로만 보면 주민소환보다 탄핵이 훨씬 어렵고 탄핵의 경우 이후의 정치적인 과정도 시민들이 개입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주민소환이 계속 실패해 온 반면(경기도 하남시의 시의원 소환만 성공했다), 탄핵은 2017년 3월에 성공했다. 왜 그럴까? 주민소환의 요건이 탄핵보다 더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탄핵은 되고 주민소환은 안 되는가, 이것은 정치적인 질문이다.

탄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탄핵권한이 없는 시민들의 찬성율이 70%를 넘어서?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100만명을 넘어서? 최순실 게이트와 부패, 무능과 같은 탄핵의 이유가 분명해서? 이런 여론에 떠밀려 야당들도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아마도 다양한 이유들이 결합되어 탄핵 가결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009년 김태환 도지사 소환에서 드러났던 문제들이 대통령 탄핵에서도 드러났을까? 당시 투표율이 낮았던 대표적인 이유는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선거 방해였다. 탄핵과정에는 시민들이 개입할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방해는 불가능했다. 도지사측이 만든 ‘선거 참여= 찬성, 선거 불참 = 반대’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도지사 소환과정에 대한 회고를 보면, 도지사의 실정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매일 JTBC를 비롯한 뉴스가 탄핵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고 해설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도지사 소환과정에서는 없었다. 당시에 해군기지, 영리병원, 케이블카, 내국인 카지노 등 김태환 지사의 정책들에 관한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자연히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마음만큼 도지사를 소환하려는 마음이 생기기엔 정보가 부족했다.

만약 대통령 탄핵을 투표로 결정했다면 제주도의 투표율은 얼마나 나왔을까? 만약 박근혜가 제주도 출신의 정치인이었다면? 어떻게 보면 대의민주주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탄핵은 갈등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지만 그 싸움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투표라는 정치행위는 개인의 판단과 결심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와 여론, 지지하는 대안 등의 영향을 받는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소환 자체는 권력을 비우는 것이지 권력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제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주민소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의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민소환은 모든 걸 거는 승부가 아니라 다음 승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원희룡 도지사의 독주는 원희룡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독주를 방치하는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이다. 이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으면 원희룡 도지사가 아닌 다른 누가 권력을 잡아도 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만일 2009년에 김태환 도지사를 소환했다면 원희룡 도지사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제주사회는 이미 주민소환을 한번 경험했다. 2009년과 2019년은 같을까? 처음이 아니라면 상대가 어떤 수를 쓸 것인지 알고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수를 마련하며 맞대응할 수 있다.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고, 관권선거, 여론조작, 이슈 은폐 등에 대한 대응책을 하나씩 준비할 필요가 있다. 단지 수가 아니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라면 전략이 필요하다.

 

 

□ 정치는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소환실패/성공의 정치적 효과

 

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운동은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면 과정이 종결되지만, 정치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해도 그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치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기대만큼 실망을 품게 된다. 애초에 기대를 달리 잡으면 실망도 달라진다는 얘기이다.

앞서 언급했던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민주당 주지사가 소환되고 공화당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도지사에 당선된다. 미국의 주민소환은 소환과 선거를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더욱더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그래서 소환반대운동은 현주지사에 대한 신임이기도 하다). 2012년 위스콘신 주에서는 공화당의 스캇 워커 주지사가 소환되었지만 53.1%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에 성공했다. 워커 주지사가 소환된 이유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상권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는데, 소환청구에 100만명의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무난하게 소환될 거라 예상되었다. 관건은 각자 서로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주지사를 비판하는 시민들도 소환까지는 아니라고 봤다. 명백한 부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정책에 대한 찬반은 소환의 이유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워커 주지사는 노조의 단체협상권 제한이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전략을 썼다. 즉 소환청구는 정치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정치의 시작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8년 6월까지 총 93건의 주민소환투표청구가 있었고, 이중 실제 투표로 이어진 사례는 8명(5건), 소환된 이는 2명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주민소환제도는 무의미한 것일까? 한 사례만 들어보자. 2008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광진구의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청구활동이 시작되었다.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사퇴를 하지 않자 주민들이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시의원은 사퇴하고 청구는 종결되었다. 미투표 종결된 85건 중 원인해소가 25.8%(24건)이다. 앞서의 광진구 사례에 견주어 본다면 만약 소환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시의원이 사퇴했을까?

그리고 김태환 도지사가 주민소환투표 기간에 “1년이 아니라, 5년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퍼뜨린 것으로 안다. 다음 선거에 나올 생각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김태환 지사는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친척의 구속이나 공천 등 여러 문제가 있었겠지만 소환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불출마했을까? 만일 김태환 지사의 소환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누가 도지사로 당선되었을까?

제 4회 도지사선거에서 득표율은 다음과 같았다.

구시군명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득표율)

열린우리당

진철훈

한나라당

현명관

무소속

김태환

합계

411,862

277,003

44,334

(16.15)

112,774

(41.10)

117,244

(42.73)

274,352

제주시

218,768

138,717

22,748

(16.49)

56,423

(40.91)

58,722

(42.58)

137,893

북제주군

74,387

51,650

10,793

(21.22)

16,607

(32.65)

23,455

(46.12)

50,855

서귀포시

62,209

43,561

5,087

(11.79)

19,930

(46.22)

18,098

(41.97)

43,115

남제주군

56,498

43,075

5,706

(13.42)

19,814

(46.63)

16,969

(39.93)

42,489

 

그리고 제 5회 도지사선거의 득표율은 다음과 같았다.

구시군명

선거인수

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득표율)

민주당

고희범

무소속

현명관

무소속

우근민

합계

424,098

276,056

48,186

(18.03)

108,344

(40.55)

110,603

(41.40)

267,133

제주시

305,765

195,450

36,447

(19.19)

74,905

(39.45)

78,514

(41.35)

189,866

서귀포시

118,333

80,606

11,739

(15.19)

33,439

(43.27)

32,089

(41.53)

77,267

 

만일 주민소환이 성공했다면, 다른 걸 떠나서 도지사직을 상실했던 우근민이 다시 후보로 나올 수 있었을까? 신구범씨가 제 6회 도지사선거에 나올 수 있었을까? 낡은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올 생각을 버렸다면 제주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위의 득표율을 보면 제 4회, 제 5회 민주당, 현명관, 김태환/우근민의 득표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당시의 주민소환운동이 깨지 못한 건 김태환이 아니라 우근민이 다시 나와 당선될 수 있는 권력구조였다.

그렇다면 당시 주민소환운동은 단순히 김태환을 도지사직에서 끌어내리는 차원을 넘어 제주의 토호권력, 궨당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급진적인 차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의 실패는 투표함을 열지 못한 게 아니라 이 급진적인 차원을 더욱더 활성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드러났다고 본다.

 

 

□ 소환과정도 정치다

 

만약 주민소환도 못할 거면 정치인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대의민주주의가 분명한 한계를 보였고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가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같은 제도인데, 이 제도를 쓰지 못하는 건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피해를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주민소환이 없는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의 기득권정치구조를 허용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이 드러내는 건 보수적인 지역권력구조와 진작에 드러났어야 하는 지역사회 내부의 균열선이다. 이 구조와 균열선을 드러내지 않으면 지역사회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들은 계속 바뀌겠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고 난개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주민소환운동을 논한다는 것은 또다른 층위의 권력구조변화와 맞물려 있다. 바로 총선이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3명인데 이렇게 무기력한 때가 있었나? 국회의원도 소환하자는 국민소환제가 논의되는 시점에서, 도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경고장이 아니라 해임장을 보내는 건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다.

그렇다면 주민소환운동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진정한 논쟁점이 아니다. 진짜 고민점은 우리가 주민소환운동을 할만한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주민소환을 통해 제주의 권력구조를 변화시킬 전략을 짜고 있는가, 라고 본다. 그런 의지와 역량, 전략이 있다면 소환투표가 실패해도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쪽팔려도 계속 이런 구조에서 욕이나 하며 버텨야 한다. 불행은 현재의 생태, 정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존버’하며 버틸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소환은 ‘못된 정치인’을 끌어내리기 위한 특정한 변수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정치인’을 만들기 위한 상수일 수 있다. 주민소환운동은 매우 정치적인 운동이다. 현행 법률상 한계가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한계 때문에 제도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는 정치의 소멸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원희룡 지사 주민소환운동을 통해 제주의 시민사회운동은 어떤 정치판을 만들고자 하는가? 소환 과정의 정치, 소환 이후의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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