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본의 선거로 자민당은 소위 '55년 체제'(1955년부터 시작된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의 끝을 보게 되었다(1993년 오자와가 자기 계파 의원들을 이끌고 자민당을 탈당하면서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그러니 약 49년의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진 셈이다.
다소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일본 특유의 연합으로 권력을 유지할 줄 알았건만 일본 사회 내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불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이어지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을 혁신세력이라 부를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들이 표방하고 있는 미래가 우리 세계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권력독점의 역사가 끝났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특히 내가 재미있어 하는 점은 풀뿌리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상 미국과 일본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정치와 일본정치의 보수성을 얘기하며 풀뿌리운동이 전국정치를 바꾸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고 얘기했던 사람들, 지역사회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며 그 한계를 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새로운 논리를 개발할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의 승리를 풀뿌리의 힘으로만 해석하는 건 분명 억지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나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분명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변화와 소통을 꿈꾸는가,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껴 투표하지 않지만 자신의 정책에 공감해 투표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그것은 아래로부터 조직된 풀뿌리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아래가 보수화되어 있다면 아무리 변화를 외치고 소통을 해도 그것이 선거에서의 지지로 드러나지는 않을 터이니...
그러니 밑바닥을 흐르는 변화의 기운은 분명 풀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한국의 풀뿌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일단 정치를 무거운 과제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래로부터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어느 시점에서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치적인 중립성'이라는 신화가 풀뿌리단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 중립성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중립성의 틀을 벗어던지는 것이 특정 정당에 대한 선거지지로 곧바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당들이 풀뿌리단체들이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 세계 어느 정당에나 계파는 있지만 계파끼리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누적된 업보이니 그런 문화를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식의 논의, 나는 참이요 진리며 다른 의견은 위선이고 악이다라는 식의 논의도 사라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변화된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풀뿌리운동의 활동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고, 어느 쪽이 풀뿌리운동의 활동에 도움을 줄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선거연합은 후보자 나누기가 아니라 그런 정책의 공유를 통해서, 그리고 그런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풀뿌리운동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데,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권력의 형태도 함께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과 정책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 좀 지겹고 신물이 나고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고 투표나 선거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단 선거나 투표만이 희망인 듯 얘기하지 말고 그런 정치행위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긴 진정한 희망을 끌어내야 하고 그 희망을 정책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를 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풀뿌리운동이 지원해야 한다.

시흥시장보궐선거, 제주도 주민소환투표에서 드러나듯이 풀뿌리 사람들의 자신감은 아직까지 10% 근처를 헤매고 있다. 권력의 분명한 잘못이 드러나고 충분히 그것을 심판할 수 있을 때도 사람들은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은 변화와 대안을 추진할만큼 자신감을 품지 않고 있다.
현실의 정치는 진공상태가 아니어서 무수한 관계와 많은 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여를 수없이 강조해도 그것이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직접적인 정치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중간에 많은 징검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돌다리 하나만 두드려보고 돌아서지 않도록, 자신감을 가지도록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들겨주고 어깨도 걸어보며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인문학도 그런 방법의 하나이고,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지역사회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계획(action-plan)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의 원천도 필요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자신감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나 시장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풀뿌리가 자립할 수 있다면 자신감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풀뿌리운동이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공유의 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개별적인 이해관계로 부서지지 않도록, 공동체의 이해관계(이를 공공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참여하라고 목 아프게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참여할 것이다( 나는 참여예산제의 활성화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있다고 믿는다).
풀뿌리운동의 애매함은 공동체에 기반한 운동이 이미 공동체가 와해된 곳에서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 있을 수 있는데, 다시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은 사람간의 관계를 잇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물질화시키고 규범과 제도로 만들 터전이 필요하다.
한때 위에서 내리꽂는 방식으로 'NGO센터'나 '도서관' 등이 논의되기도 했는데,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방식의 공유영역 확장 운동이 중요하다.
이런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나는 사람들의 자신감도 더욱더 강해지리라 믿는다. 실제로 운영해보고 만들어보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강해지고 희망을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내리라 믿는다.

다 쓰고 보니 일본의 선거와 그리 관계가 없는 듯하기도 하지만...^^;;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고 난 뒤 주민자치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풀뿌리민주주의보다 풀뿌리보수주의라는 말이 신문지상을 더 많이 장식하고 있듯이, 한국의 주민자치는 여전히 혼탁한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축제나 랜드마크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넘쳐나고 건설비리에서부터 인사청탁까지 온갖 부조리들이 넘쳐나다 보니, 관변단체와 각종 이익단체들이 지역의 발전전략을 좌우하다보니, 주민자치를 얘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이다.

그리고 주인공이어야 할 주민들이 정작 자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당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에, 수도권으로 모든 게 집중되어 자체 역량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자치냐는 볼멘 목소리가 한국 주민자치의 현주소이다. 오히려 자치보다는 중앙의 개발전략에 밥 숟갈 하나라도 얹으려는 욕망이 한국의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주민자치는 무관심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뜨거운 갈망에 휘둘리고 있다.

하지만 점점 변화하는 생태계 변화가 증명해주고 있듯이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살아남아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주민자치


이제 더 이상 주민자치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추상적인 개념, 원론적인 이념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되돌이표를 찍고 있다. 왜 주민자치가 중요한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위기와 공포에서 구출해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를 조금 더 근본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아도 정치인들이 알아서 나라를 이끌고 기업인들이 알아서 경제를 발전시키리라 기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의 건강과는 무관하게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고 기업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일감을 외주용역에 맡기는 이 시대에 그런 기대는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더 이상 국가는 우리 삶을 보호하지 못하고 기업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서 우리 삶을 관리해주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더구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식량위기, 에너지위기가 우리 사회를 덮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태계 파괴로 쌀과 밀, 콩, 옥수수같은 곡물수입이 중단되거나 줄어든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전기가 끊기고 교통이 중단되고 슈퍼와 할인마트의 진열대가 텅텅 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식량위기와 에너지위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런 위기가 한 국가를 넘어 지구 전체를 덮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삶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부터라도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닦아나가야 한다. ‘거버넌스(governance)’나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건 이런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사람의 살림살이가 둘로 나뉘지 않듯이 정치와 경제는 삶의 두 단면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주민자치는 여러 가지 선택사항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필수적인 사항 중 하나이다.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며 함께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면서 위기에 대처하고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 미래세대의 행복은 능동적인 주민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삶은 가능하다


보통 우리는 대안을 고민할 때 큰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하다. 작은 마을보다 국가나 세계적인 차원을 고민하지 않으면 왠지 쪼잔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 그런 쪼잔함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그런 쪼잔한 흐름들이 서서히 대안으로 힘을 기르고 있다. 다만 그런 사례들은 중앙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를 뿐이다.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철암과 부산 반송, 대전의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울산, 대전의 참여예산제는 시민들이 예산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안에서는 유채꽃으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햇빛발전소로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전북 진안은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여러 사회적 기업들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대안적인 유통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성과 원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들은 지역공동체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고, 대전한밭레츠는 지역화폐를 활성화시키며 관계의 그물망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얘기해도 이미 많은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이런 실험들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대안을 볼 때 그 규모를 보는데 익숙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정과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도서관, 예산, 발전같은 키워드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야 한다. 각기 다른 사례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된 핵심은 있다. 그건 바로 주민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며 나와 타자의 구분을 넘어서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뭘까?


주민자치의 핵심은 주민들의 ‘욕구’(needs)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냥 참여하세요라고 당위적으로 설득하지 말고 참여를 통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자기지역공동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욕구를 확장시켜 우리의 욕구로 만들어야만 대안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실천지(實踐知), 경험지(經驗知)가 지역발전모델에 반영되어야 한다. 남이 만들어주거나 남을 따라하는 모델은 그 지역의 고유함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주민들이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자문회’이나 ‘공청회’로는 주민들을 모을 수 없다. 참여는 권한을 가질 때에만 활성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권한은 분리된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서로 서로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의 자격, 우리의 자격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소통과 토론, 성장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13일 장애민중연대 현장활동단이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장애운동에 잘 모르는 내가 강연을 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쪽이 내게 강연을 부탁한 건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실은 대학의 공공성과 관련된 글 때문인 듯하다.
어쨌거나 강연을 소개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김도현씨나 제법 친분이 있는 단체인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장애운동에 대해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장애운동을 공부할 때 가장 좋은 입문서는 도현씨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인 듯하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보지 않고, 장애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설명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장애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해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장애인을 장애우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여성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여성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장애인 내부의 다양한 차이,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서는 안 되는 이유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장애운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97년 에바다 사건 때부터 장애운동을 해온 도현씨의 내공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쨌거나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도 여전히 내용은 부실하다.
허나 앞으로 장애운동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하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대강의 강연문을 작성해 봤다.
앞부분은 사람에 쓴 글을 약간 수정했고, 뒷부분은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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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의 다른 기원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취업시장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당시 교단의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종교해석에 도전해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은 몇몇 뛰어난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를 만들려 했습니다. 초기 대학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토론 공동체’라 불렸다. 그러니 대학의 정체성은 어느 누군가가 정해줄 수 없었고, 대학을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로 그런 교육이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캠퍼스 공간은 높은 담으로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지역공동체 속에 자리를 잡았고, 대학생은 능동적인 지역시민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자극했고, 그렇기에 대학의 학풍은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련된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때론 국가권력과 대립하면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이 자리를 잡은 지역사회는 혁명적인 사상의 근원지였고 때론 실제 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학은 특정 교단이나 인물의 소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공적인 공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혁명성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은 국가의 ‘억압’이나 자본의 ‘유혹과 조작’에 시달렸고, 대학 내부의 ‘권위주의’와 ‘부패’는 대학의 공동체성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원래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몸부림쳤던 사건이 바로 1968년 전 세계를 뒤흔든 대학생들의 반란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베트남전과 징병을 반대하며 주방위군과 충돌했고, 대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된 대학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을 점거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학생들은 교과과정과 교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오쩌뚱의 포스터를 정문에 내걸었습니다. 폴란드의 대학생들은 “자유 없이 학문 없다”고 외치며 군대와 충돌했습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다시금 대학을 토론과 자치를 위한 코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유럽 대학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움과 연대성은 68년의 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지요.

그런데 한국 대학의 역사는 서구와 다른 과정을 밟아 왔습니다. 대한제국과 식민지기에 한국의 대학은 ‘서구 따라잡기’와 ‘식민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밝히는 토론공동체라는 원래의 정신은 무시된 채, 형식적인 교과과정과 같은 껍데기만 이식되었던 거죠. 우리의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으로 여겨졌기에 대학교육은 외국물을 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학생이 외우고 따르는 것을 뜻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은 토론과 혁명적인 사상의 근거지가 아니라 서구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는 공간이었습니다(식민지 시기 대학생들이 공부했던 사회주의 사상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죠).

그래서 대학의 교육과정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엘리트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대학은 출세와 권력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지배이데올로기를 배우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엘리트 구조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동문들의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집중된 한국사회의 자원은 서울대학과 지방대간의 격차를 늘려 학벌사회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뿌리를 내려온 학생운동의 역사는 이런 지배의 역사에 대항하는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공간 자체가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섭되거나 사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도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대학이라는 공간을 비운 사이에 그곳은 더욱더 지배이데올로기를 착실히 다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한국의 대학에서 희망을 얘기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국가의 학문정책이 한국연구재단(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지식인들의 논의방향을 규정하고 자본의 산업전략이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공간 곳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에 바쁘고, 대학의 직원들은 외주용역노동자들과 연대는 커녕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쁩니다. 대학생들 역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학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2. 대학, 니들이 공공성을 알아?

 

최근 대학들이 공공성을 회복하겠다며 시도하는 여러 사업들이 있기는 합니다.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업은 담장허물기와 도서관의 개방입니다.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이 캠퍼스를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자유로이 이용하게 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하게 하는 것은 대학공간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좋은 방안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생색내는 것으로 그치고, 이런 시설 개방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습니다.

담장허물기나 도서관 개방 외에도 대학들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나 행사, 대학 축제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주민들에게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과 대학생들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학생과 지역주민의 삶이 서로 연계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개방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대학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대학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운영이 지역사회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를 여전히 나눠서 생각한다는 점을 뜻합니다. 대학 자체의 경계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대학이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의 발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쪽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사업’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대학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영어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의 산학협동과정이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손을 잡고 진행되기도 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에 직접 투자해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렇게 지역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2008년 정부가 법을 개정해 사학재단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은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적립금 투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상태라면 대학과 지역사회의 결합은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것은 대학이 그 결합의 의미를 공공성보다 자기 살을 찌우는 사업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대학을 연대의 공간으로 만들기

 

국가나 대학이 자연스럽게 공공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공공성은 단순히 대학이 지역사회에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섞이며 소통하고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을 담당할 때에만 대학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형태의 운동을 통해 공공성을 조금씩 실현해가야 합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2001년부터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대학을 만들자며 ‘무장애대학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문제를 이해하려는 이 운동은 장애인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통해 대학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운동이고 제도적인 변화는 이런 운동의 목표를 조금씩 실현하는 듯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고등교육에서 입학거부만이 아니라 수업참여나 교내외 활동을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인 대학생들의 이동 편의와 학습 지원을 위해 1천 600백명의 대학생도우미를 대학에 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도우미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이동을 돕거나 강의 내용을 대필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4천명에 달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숫자에 비하면 그 수가 부족한데도,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중증장애인 학습을 돕는 대학생 도우미 예산을 2008년에 비해 4억원이나 삭감(26억에서 22억원)했습니다. 제도변화는 주로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시․청각 장애인의 어려움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주로 편의시설이나 도우미같은 하드웨어나 지원에만 초점을 맞출 뿐 대학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장애대학이 만들어지려면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차이와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대학 공간 자체를 평등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해리포터>라는 영화를 아실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해리 포터는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잘 집중하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호그와트 학교에서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머글’이라 불리며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사는가에 따라 똑같은 사람도 달리 평가됩니다. 사람이 가진 능력은 똑같은데,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이 ‘비정상’으로, 어떤 세계에서는 ‘탁월한 능력’으로 평가받지요.

이처럼 ‘차이’는 그냥 다르다는 의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차이가 차별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장애인이 경쟁의 기준과 규칙을 짜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짠 경쟁게임에서 장애인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구조를 짜 놓고 장애인에게는 시혜의 관점을 들이댑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몇 개를 대학 내에 마련해 놓고 도우미 몇 명을 붙여주고 그걸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면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렇게 되면 차이는 ‘분리’를 불러오게 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분리되어 대학교라는 공적인 장에서도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장애인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따라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며 그 차이를 낳는 구조적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하면 대학은 언제나 ‘비장애인의 공간’일 수밖에 없고 장애인대학생의 수업권 이외의 더 큰 권리들을 발굴하거나 확장시킬 수 없으며, 대학이 다른 대학이나 지역사회의 장애민중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원인이 장애인만이 아니라 기존의 비장애인마저도 ‘무능한 인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들을 바꾸지 않으면 타자와의 관계가 파괴될 뿐 아니라 결국 내 삶도 버려지게 됩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쓰레기가 되는 삶’(wasted life)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서로의 삶이 관계를 맺고 행복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해체하고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더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분리 외에도 학점과 영어능력 등 스펙에 따라 대학생들의 삶도 정해지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는 경쟁을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무의미한 감정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런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학생들이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대학이 차별의 공간에서 ‘차이와 연대’의 공간으로 바뀌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의 결정과정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논리적인 합리성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분노와 폭발하는 열정도 필요로 합니다. 요즘 현실공간이나 인터넷에서 자기 논리나 이익을 분명하게 밝히는 똑똑한 대학생들은 늘어나지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대학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거짓된 경계를 부수고 우리의 이해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장애인대학생과 비장애인대학생이 서로의 현실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구성될 때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대학의 교과과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공감하고 소통하려면 서로의 의사전달수단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교과과정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만 있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없습니다. 소통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속의 생각은 언어만이 아니라 몸짓으로, 수화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표현을 듣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학생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 교수, 직원들도 이런 소통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마련될 때 대학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교수협의회, 직원노조가 사학재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에서는 학생들끼리 아무리 연대해도 그 힘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가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하고, 반대로 대학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2004년에 ‘목포시건축물의허가등에있어장애인편의시설설치사항의사전점검에관한조례’가 주민발의로 통과되면서 최초의 장애인 관련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례는 신축되는 대형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때 반드시 사전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조례는 지역사회의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의 내부가 보수화되었다면 대학의 외부를 변화시켜 대학을 압박할 수 있고, 지역사회가 보수화되었다면 변화된 대학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역사회와 대학의 경계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최근 ‘사회적 경제’의 흐름과 더불어 노동권을 보장하는 공간으로도 변신하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운동과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 속으로 통합되는 운동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하기에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르는 기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기준에 맞서고 기준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4. 눈을 가린 정의에서 눈을 뜬 연대로

 

정의의 여신 아스트레이아는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엔 저울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눈을 가리고 공평하게 판단해서 잘못을 없애는 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정의는 두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지켜볼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쪽 입장, 저쪽 입장을 골고루 반영해서 결정하는 게 정의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가 듣고 판단을 내릴 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가린 정의’보다 ‘눈을 뜬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를 아무리 올라가도 그 끝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끝은 이미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규칙을 짜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으면 남에게 짓밟혀 쓰러지거나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짓밟아야 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합니다. 누구도 그런 걸 원하지 않지만 우리가 규칙을 짤 수 없기에 친구들과 싸워야 합니다.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같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한 언론사의 저작권을 담당하는 법무법인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에게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소식이었다. 단체 홈페이지 뉴스DB 게시판에 기사를 무단게재했다는 이유로 수천 만원의 배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파문이 확산되자 언론사는 이 게시판이 공익을 위해 운영되었고 배상 청구 이후에 뉴스게재를 중단했기에 소송과 배상을 포기하겠다고 단체에 통보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기사를 축약하거나 부분발췌를 해도 위법이고 홈페이지에 기사프레임을 링크하는 것도 위법이다. 심지어 출처를 밝혀도 저작권법을 피할 수 없다고 하니, 한 마디로 아예 신문기사에 손을 댈 생각을 말라는 얘기이다. 심지어 불법 복제물을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회 이상 삭제 명령을 내린 뒤에 게시판을 최대 6개월 동안 폐쇄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이는 언론사가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자 정부가 이를 도와 시민들을 ‘사이버 추방’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더욱더 기가 막힌 일은 일부 법무법인들이 기업의 저작권 고소 대행을 맡아 무차별적으로 ‘묻지마 저작권 고소’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일공유사이트에서 영화나 음악을 파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합의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법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변호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법무법인은 대표 변호사 부인 명의로 출판업체를 차린 뒤 이곳 직원 30명에게 저작권 침해 사건 고소장 작성 등 법률 사무를 맡기고 그 합의금을 회사에 분배했다가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이런 장사꾼들이 판을 치다보니 인터넷이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얘기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인터넷이란 공간은 정보의 복제와 유통, 가공이 자유롭다는 장점 때문에 활성화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음악, 그림, 사진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소통하고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터넷은 ‘자유와 소통의 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 공간에도 자물쇠가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이버 자물쇠가 채워질수록 IT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저작권이라는 권리 자체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지식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하나의 상품을 만들려면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하나의 이론을 완성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많은 이들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 하물며 땅을 비롯한 자연은 어느 누구의 배타적인 소유물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소유권을 존중한다. 하지만 농사를 짓지도 않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서 그 땅을 놀리고 황폐화시키고, 생활이 아니라 투기를 목적으로 무한정 집을 사모아도 그 소유를 무조건 인정해야 할까?(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한국의 집부자 1위는 무려 1,083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의욕과 건전한 윤리의식까지 갉아먹도록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을 우려해서인지 이미 16세기 조선시대에 정여립((鄭汝立)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외치며 천하가 모두의 것이라 선언했고, 약 170년 전 프랑스의 사상가 프루동은 “소유란 도둑질이다”라고 외쳤다. 인터넷 공간은 이들이 꿈꿨던 공유가 가능한 최후의 보루이니 그곳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호사의 천국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흡혈귀에 비유된다고 한다. 미국을 따라갈 생각이 아니라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부 법무법인들은 묻지마 고소를 반성하고 이를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 적어도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말이다.


아직 2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특징짓는 아이콘은 바로 '컨테이너'일 듯 싶다.
200년년 부산 APEC회의 때가 최초라고 하지만 컨테이너로 길을 막고 그 사이를 용접하는 그 놀라운 발상은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위키피디아에 '명박산성'이 등록될 만큼 이것은 참으로 한국의 '고유한'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일단 당선된 이상, 권력이 결코 시민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명박산성에서 컨테이너는 소위 한국의 국가성격이 여전히 소통보다 '불통(不通)'임을 잘 증명해 주었다.

촛불집회 때 컨테이너의 용도를 잘 깨달았던지, 이명박 정부는 그 다음부터 컨테이너를 방어를 넘어 공격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200일 째를 접어들고 있는 '용산에서의 국가폭력'에서도 컨테이너가 등장했다.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의지해 철거민들의 농성장을 짓이겼고 결국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는 가난도 범죄라고 얘기하며 국가는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특공대를 투입했다.
죽은 사람이 여섯 인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은 채 200일 째를 맞이하고 있다.
컨테이너가 고공진압 때 사용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상상력, 명박산성을 뒤이은 이명박 정부의 아이콘이다.

용산 때 그 효과를 깨달았는지 정부는 쌍용자동차에도 용산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컨테이너를 사용했고 역시나 경찰특공대를 이것에 태웠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을 줄 알면서도 이 컨테이너에 타야 했던 경찰특공대의 마음은 어땠을까?
용산과 비슷한 참사가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왜 컨테이너에 타야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쌍용자동차 노조원 2명이 추락해서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생명에 지장이 없어 다행이지만 무리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있는 곳에 희생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는 공권력을 마치 사권력처럼 사용하고 있다.
공권력은 공적으로 정당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규모와 과정도 공식적이어야 한다.
크레인에 컨테이너를 묶어 고공진압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반대하면 무조건 진압한다, 명령에 따르기 싫으면 나가라, 이런 식의 일방적인 권력행사는 공권력이 아니라 사적인 권력의 속성이다.
더구나 이 사권력은 철저히 기업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민은 없고 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그러면서 뒷돈을 대주는 기업들만 있을 뿐이다.

소통도 싫다, 반대도 싫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이런 정부의 말을 계속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이제 한국에서 컨테이너는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컨테이너에 짐을 싸서 이 땅을 떠나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점도 깨달았으면 한다.
지금 이런 식으로라면...

식민지 시대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해방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었을까? ‘국사(國史)’를 배워온 우리들에게 그 사회는 그냥 민족‘국가’였고, 대학의 세미나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뒤에는 민족이 사회주의로 바뀌었을 뿐 대안은 여전히 ‘국가’였다. 이호룡의 『한국의 아나키즘』(지식산업사, 2001)은 1910년대 이후 한국의 지성사가 발전해온 과정을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국사를 재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호룡은 우리가 근대의 지성사를 파악할 때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사상 연구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를 수용한 시기와 수

용한 동기가 잘못 파악되었고, 사회주의의 조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지 못했으며, 공산주의 수용의 사상적 배경을 놓쳤고, 1920년대 초 사상계의 분화를 잘못 이해했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는 한국 근대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매우 편향되게 그 역사를 파악했다는 지적이다.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가 그동안 억눌려져 왔던 사상의 단면을 드러낸 것은 맞지만, 그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 빙산을 드러내는 작업은 훨씬 더 많은 역사적인 추적과 분석을 요구한다. 이호룡은 이런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외의 사상을 그 아류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사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민중에게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던 사회진화론을 극복할 사상체계가 필요했고, 이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사회주의와아나키즘이 함께 소개되었다. 그리고 대동사상이나 사회개조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를 대체할 사회의 원리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이호룡은 한국사회가 이미 1880년대부터 아나키즘을 접했고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이호룡은 1910년대 사회주의의 주류가 아나키즘이었다고 주장한다. 1905~1920년 동안 일본, 중국에서 아나키즘운동이 활발했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자연히 아나키즘운동이 대세였다는 해석이다.

사실 내 관심은 1919년 3월 1일 이후 한국사회의 민심(民心)과 운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이다. 닭이냐 달걀이냐, 아나키즘이냐, 사회주의냐를 떠나 어느 문헌에서건 3․1운동을 한국사회의 운동에서 핵심적인 변화의 지점으로 지적하기 때문이다. 3․1운동으로 드러난 민중의 폭발적인 힘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학습하게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힘에 주목하며 의식화, 조직화의 길로 나서게 된다. 아마도 아나키즘이 그 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민중의 힘에 주목했던 사상이자 우리 몸에 익은 상호부조의 전통을 반제국주의 사상과 잘 결합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호룡은 책에서 “‘문화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 등의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자유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한국인에게도 주어졌고, 그 합법공간을 이용하여 아나키즘 선전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조금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듯하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사건은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의 창설이다. 이호룡은 조선노동공제회의 주축이 아나키즘 세력이었다고 얘기한다. 이는 사회주의운동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가 책에서 인용하듯이, 공제회의 기관지인 《공제》에 아나키즘 관련 글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고, 보통 사회주의 계열로 분리되는 서울청년회의 김명식 등이 아나키즘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조선노동공제회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을 추적하는 것 또한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이호룡은 일제 강점기에 아나키즘이 주된 사회운동의 흐름으로서 존재했음을 선언한다.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겨누며 아나키즘은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이호룡은 얘기한다. “한국 사상계는 다양성을 상실하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좌우 대립으로 치달았다. 좌우 대립을 완충시킬 수 있는 제3의 사상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민족의 사상적 통합에 많은 문제점이 초래되었다.” 민족의 사상적 통합에 많은 문제점이 초래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사상적 좌표가 상상력 없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아나키즘은 새로운 상상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역사의 과정을 밟았다면 어땠을까라는 공상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상상에서 아나키즘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인가?



『축복받은 불안』(에이지21, 2009)이라는 책의 제목은 참 기이하다. 모두가 불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시대에 저자인 폴 호켄Paul Hawken은 불안과 축복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불안』은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책의 원제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약간 드러난다. 보통 ‘blessed ignorance’라는 표현을 ‘모르는 것이 약’으로 번역하듯이, 원제목인 ‘blessed unrest’는 ‘불안한 것이 약’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호켄은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고 인류의 삶의 불안해지는 만큼 그 위기와 불안을 바로잡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자연스레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지 않거나 믿지 못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현실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구를 살리는 아래로부터의 면역운동

 

불안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듯 호켄은 생태계 파괴에 맞섰던 브라우어와 카슨,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했던 파크스와 소로,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던 부족민과 이름 없는 사람들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 예를 들어 환경파괴기업을 감시하는 ‘파수꾼 단체Keeper group’, 기업과 프로젝트, 제도, 지역을 감시하는 ‘감시 단체Watch group’, 현장에서 직접 환경을 보호하는 ‘친구단체Friends organization’,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방어꾼 단체Defenders’, 기업광고나 홍보기업의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문화방해자Culture jammers’, 슬로우 푸드운동, 사회적 기업 등 수많은 운동들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사용한다. 세상이 위기에 처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운동들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호켄은 이런 운동들이 몸에 침입한 병균을 치료하고 몸을 회복시키는 면역체계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병에 걸리면 몸이 알아서 치료를 시작하듯이, 이런 다양한 운동들은 정치적인 부패나 경제적 질병, 생태계 파괴와 같은 지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나 팔과 다리, 가슴 등의 역할이 다르듯이, 이 운동 또한 각자가 관심을 두는 중점적인 의제에 따라 지구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런 운동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접속되어 불공정이나 부조리에 맞서는 힘을 더욱 늘리고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에 맞설 만큼 때로는 그 힘이 강력해지기도 한다.

과거의 경직된 운동과 달리 이런 운동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시민들의 필요와 지식에 의존해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흐름,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흐름,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흐름을 존중하고 그 흐름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호켄은 이 운동이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모든 인간에 대한 공평함의 필요성”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형태가 제각각이지만 호켄은 이 운동들이 환경보호, 사회정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토착문화라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얽혀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환경보호운동은 지구를 죽이는 병적인 정책에 대한 인류의 면역반응으로, 사회정의운동은 가족과 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경제적/법적 병원균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유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에 토착문화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호켄은 이런 세 가지 큰 흐름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라고 본다.

운동의 형태가 작고 다양하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호켄은 그런 회의적인 평가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운동이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고 사람들이 운동에 깔린 다양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운동이 실제로 활성화되고 있고 그러면서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고든 무어, 클린턴 같은 강자들도 기부금을 내거나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이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면역체계가 강해져서 지구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호켄이 책 뒤에 붙인 부록은 이런 가능성이 단지 공상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증거들이다.

다만 호켄은 “면역반응이 현재는 아주 많이 불완전해서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이고 “어떻게 함께 작용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질병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듯이, 이 운동도 분명 실패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호켄은 이런 운동이 성공하려면 ‘자아인식능력’, 즉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함께 모여 행동해야만 인류는 불안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과 행동, 소비행태를 바꾸는 과정에서만 자치와 시민의 힘은 치료되고 복원될 수 있다.

 

 

대안은 무수히 많다!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들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로 나서자고 주장하는 점에서 호켄의 얘기는 충분히 귀담아 들음직 하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호켄만이 아니다. 가령 에이프릴 카터April Carter는 『직접행동』(교양인, 2007)에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소개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에 주목한다. 호켄이 아래로부터 다양한 운동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핀다면, 카터는 지구화라는 현상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이 어떻게 직접행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만날 수 있을지를 다룬다.

그리고 리처드 스위프트Richard Swift는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이후, 2007)에서 권력의 중앙집중화로 무기력해진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한 방법이 바로 ‘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생태민주주의가 개인의 욕망과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단초가 될 것이고 남반구 전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중의 노력이 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을 것이라고 스위프트는 기대한다.

각기 다른 개념에 주목하지만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불안을 벗어나려는 풀뿌리 민중의 자발적인 투쟁과 그들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지구의 파괴를 막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리라 기대한다. 허울 뿐인 세계화나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에 매달렸던 헛된 꿈보다 지역의 고유성에 바탕을 둔 자치와 자급의 삶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대안의 부재보다는 대안에 대한 냉소나 무관심이 우리의 삶을 더욱더 위태롭게 한다.

 

 

여전히 이념은 필요하다!

 

그런데 호켄과 카터, 스위프트는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해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인다. 카터가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하려 하고 스위프트가 자유민주주의를 강한 민주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면, 호켄은 그 질서에 강하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켄은 운동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토대를 다진 하이에크의 사상을 공진화coevolve의 관점에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듯이, 부조리하고 왜곡된 정치/경제 질서를 그대로 둔 채 다양성만 강조하는 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최상은 아니기 때문에, 자아인식능력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성장할 수 있다. 좋은 활동들의 리스트가 자동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피하려 하기에 호켄은 세계화가 작은 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양성을 장려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가령 환경보호론자와 토착민이 정치적인 동맹관계를 맺어 “환경보호단체는 정치적 캠페인 조직경험이나 정부 및 언론동원능력 등 자원을 제공하고, 원주민단체는 조상들이 살아온 땅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라는 명분을 제공한다”면 환상의 콤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 이런 국제적인 역할분업이 분명 초국적기업의 나쁜 영향을 가로막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분업은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끔 한 세계의 불평등한 지배구조 자체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즉 지금 당장은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평생의 건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축복은 아직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고 불안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풀뿌리 민중의 투쟁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고 힘을 모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권력과 초국적 자본의 힘을 없애고 생명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가속화되고 있는 파괴의 흐름을,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삽질을 막으려면, 적절한 시간에 저항의 힘이 살아나야 한다. 호켄은 생태학적 복원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치워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듯이,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쉽게 복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인간의 면역체계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에 여전히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이념을, 전일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다양성과 활력을 상실한 건 사실이지만 역사를 거치며 누적되어온 그 희망은 여전히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오래된 희망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고 살리는 건 단순히 낡은 틀을 부여잡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한국의 경우도 맑스주의가 풍미했던80년대 이전의 다양하고 풍부했던 지적 전통과 다양한 운동들을 다시 평가하고 되살려야 한다).

물론 호켄이 이 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호켄 스스로도 웬델 베리의 말을 인용하며 여러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패턴을 위한 해결책solving for pattern’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시대는 축복의 길잡이가 될 좌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념의 시대는 아직 가지 않았고 가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지행네트워크의 첫 책이 나왔다.
다른 삶을 꿈꾸며 이명원, 오창은씨랑 함께 공간을 만든지 벌써 2년이 지나갔다.
그 2년의 세월 동안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토론을 하며 나눴던 고민들이 이 책에 담겼다.
출판사의 책소개가 조금 거창해서 부담을 느끼고, 책 앞 오창은씨의 지행 소개가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런 꿈을 꿨다는 생각도 든다.

책의 제목은 2007년 겨울에 진행했던 청년특강의 제목 '아닙니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을 땄다. 원제는 너무 길어 책에 들어가기 힘들어서리...^^;;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이 '강렬한' 추천사를 써 주셨다. 보통 추천사는 책의 내용이나 필자들에 관한 얘기를 하기 마련인데, 김종철 선생님은 이명박 정부와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추천사에 담아주셨다. 정작 지행 얘기는 맨 마지막 문단 뿐이라는..ㅎㅎ
http://jihaeng.net/home/bbs/board.php?bo_table=lecture&wr_id=453

맨 마지막 에필로그는 내가 썼다.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한다'는 글인데, 아직 분명하게 구상이 잡히진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제안 형태의 글을 써봤다.
지행의 앞날도 지식협동조합이라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형태로 잡힐 듯하다.

어쨌거나 다소 두꺼운 책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고 그만큼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김남곡 지음, 『진보를 연찬하다』(초록호미, 2009년)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직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지만 우연히 선생님 책을 접하고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었기에 그 고마움을 전할 겸 무작정 글을 씁니다.

요즘 들어 대체 진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한때 진보적인 민족작가라 불렸던 황석영 씨가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다니고, 자신을 진보적이라 주장하던 사람들이 생전 그렇게 비판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미화하거나 정치적 기회로 삼고. 그런 모습을 보며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대체 무엇인지, 그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걸 유연함이라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원칙을 버린 변절이라 비판해야 할지, 그런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혼란이 꼭 최근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소위 진보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눌 때 간혹 당혹스러움을 감축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왜 자기가 진보적이라 믿는 걸까, 그리고 최소한 자신이 말한 바는 지키며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진보적이라 불리는 정치세력들이 보이는 그 강한 배타성과 고통의 불가능,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좋다는 생각들. 그런 것들은 언제나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당혹스러움과 혼란에 빠져있던 터라 선생님의 책이 반갑고 고마웠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답답함을 많이 풀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인 연찬(硏鑽)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서로 맞서려는 방식의 토론이나 다수결에 의한 결정방식이 아니라, 단정(斷定)하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함께 규명해가는 방식”인 연찬은 “누가 옳은가를 서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서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함께 물어가고 끝까지 규명해가는” 것이라 하셨지요. 나는 선이고 반대편은 악이기에 서로 말을 섞을 필요가 없고 그렇게 섞지 않는 게 올바른 태도라는 생각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소통을 가로막아 왔습니다. 진보라 불리던 사람들도 맑스나 엥겔스같은 사람들의 ‘원전’에 맞춰서 모든 걸 판단하려 들었지 소통의 자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찬은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연찬방식이야말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또 공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보 역시 “특정한 사상이나 실천을 고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굳어져서 완고한 것은 진보가 아니다. 진리를 향해 고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라는 말씀도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하셨지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 보수, 시장을 규제하는 국가의 역할을 진보라 부르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궁극적 진화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 그 자체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이며 그것을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단히 혁신하려는 ‘열린 사고’의 실천을 ‘진보’라고 부르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했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여러 가지 글을 모은 책이라 하지만 글 전체에 그런 연찬의 정신이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질과 의식, 제도와 자아,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두루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 “물질적 생산력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제도, 그리고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혁명이 서로 보완․조화되는 새로운 진보의 지평”을 열려는 치열한 고민이 앞서 가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런 진보의 방향과 더불어 선생님은 진보적인 제도와 의식을 실천할 방법도 알려주셨지요. 선생님이 진보의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알려주셨지요. 첫째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도록 그 경계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정하는 사회제도를 발전시키는 것, 둘째는 자연과 조화되는 생산력을 발전시켜 물자를 넉넉히 해서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발전시키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셋째는 의식을 혁명해서 다른 사람을 침범하는 행동의 천박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자기중심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정리하자면 제도, 물질, 의식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변화가 필요하고 선생님은 세 번째 의식이 가장 중요한 진보의 조건이라 지적하셨습니다. 더불어 분노와 증오보다 사랑과 협동을 통해 점점 더 삶의 범위를 넓혀가는 변화가 진보라는 지적은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진보의 방향과 방법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건 보수만이 아니라 분명 진보에게도 문제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은 그 문제를 “자유로운 개성의 신장을 바탕으로 한 평등사회로서 주로 연대․공존․상생의 상호작용이 내용으로 되는” 횡적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소유의식과 차별의식에 바탕을 둔 종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에서 찾으시더군요. 이런 종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협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들도 동료들을 배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의 운동가들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정말로 진실한 인간, 진실한 사회를 원한다면 자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 또한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특히 저는 그런 횡적인 삶의 방법으로 공동의 ‘마을지갑’을 만들자는 말씀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마을의 가족들이 일해서 얻은 것 중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을 제하고 자유의사에 따라 남는 이익을 마을지갑에 넣어 모은다는 생각은 참 좋았습니다. 야마기시회의 공동체원리와 비슷하지만 우리 전통과 맞닿아 있는 듯해서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렇듯 연찬과 다양한 접합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더 분명하고 풍부하게 보여주셨지요.

그런데 선생님의 연찬이 중도(中道)를 향하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름의 삶을 통해서 진리 그 자체도 ‘중도’(中道)요, 진리에 이르는 길도 ‘중도’라고 생각하고”, “세계가 변해가는 과정도, 한 사람의 관념계의 변화도 바로 이 ‘중도’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나 뉴레프트가 “인간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움”을 갖춘다면 서로의 공통분모를 키워 좌와 우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맡을 기반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셨지요. 그러면서 이런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연대, 인간화의 길과 선진화의 길의 연대, 세계화의 길과 지방화의 길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 하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하기에 의식적으로 선진화와 인간화를 합쳐 중도를 찾으려 하신 듯합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선진화’가 민주주의 제도와 물질적 조건을 더욱 개선하는데 강조점을 둔다 하더라도, 성숙한 시민의식, 즉 ‘상생 협력’의 의식을 결코 경시할 수 없고 경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또 ‘인간화’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고 ‘인간의 향기’가 느껴지는 삶과 의식에 그 강조점을 둔다 해도 민주주의 제도와 물질적 조건들을 결코 경시하거나 배척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가 각각 최선의 길이라고 여기는 ‘인간화’와 ‘선진화’의 길이 사실은 크게 다른 길이 아니라는 공동의 자각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이 선진화와 인간화가 서로 배치되거나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침투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때이다. 이렇게 될 때 상생과 협력의 대통합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보수는 지속가능한 번영을, 진보는 실현가능한 새로운 문명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숨은 선생님의 속뜻을 헤아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생각이 단순히 좌와 우를 뭉뚱거리자는 주장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압니다. 아마 남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를 강요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쪽으로 다가서는 것을 ‘신뢰’라고 여기시기에, 신뢰 없는 우리 사회에 신뢰와 희망을 만들기 위해 먼저 몸을 낮추신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세상의 변화란 게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믿기에 그렇게 주장하신 거라 믿습니다. 인류가 문명의 길을 걷고 있다면 자본주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선진화도 인간화와 만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거겠죠.

선생님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무시하진 않지만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끊고 인간을 생명없는 기계로 만드는 ‘악마의 맷돌’이라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증명해온 바입니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이란 것이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자본주의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살리는 ‘좋은 생산’이나 협동의 경제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흉내를 내고 협동을 이용할 수 있을 지언정 그 정신을 자본주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요.

물론 연찬은 옳고 그름을 미리 정하지 말고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 물어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참됨, 사람을 죽이는 참됨이 가능하지 않듯이 그 연찬에도 어떤 ‘결의’가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떤 듯을 품는가에 따라 묻고 답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얼마 전 생명평화탁발순례단과 함께 오체투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고작 하루를 지내고 그에 관해 얘기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오체투지를 하며 진정 우리가 소통해야 할 대상은 보수가 아니라 바로 생명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아스팔트조차도 이마를 대고 있으니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지더군요. 아스팔트에 누우니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지구를 안아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지구의 숨통을 틀어막고 살을 파내어도 당신은 이렇게 모진 우리를 떠받치고 있구나, 이제는 우리가 당신을 껴안고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생명, 지구와 함께 연찬의 장을 펼쳐야 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좋은 생산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자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진화 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구조를 강화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함께 누리는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급할 수 있어야 자치할 수 있는데, 선진화는 그런 자급의 구조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97년 IMF 외환위기 전에 약 50% 정도였는데, 지금은 70%를 넘나든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바람이 불수록 의존도는 심해지고, 한미FTA가 실현되면 그런 흐름은 걷잡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선진화와 인간화가 손을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진보가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런 당위가 빛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보수는 이념적인 보수가 아니라 기득권층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보수가 선생님의 말처럼 단지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일까요?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고 그들이 온갖 죄를 저질러도 사면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국가를 동원해서 자기 이익을 취할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더구나 보수라면 적어도 자기 전통과 자주성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져야 할 텐데, 이 땅의 보수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미국식 합리성(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을 따르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미국과 하나 되는 걸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이 땅의 아이들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목숨을 잃어도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무슨 보수입니까? 제가 보기엔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기득권층입니다. 오랜 시절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권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특권을 가지려 그들은 사회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화물연대> 故박종태 씨가 요구했던 건 건당 920원하는 배달수수료를 30만원, 3만원도 아니고 단지 30원 인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요구했던 건 수 억원의 보상금이 아니라 다른 곳에 둥지를 틀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극단적인 내몰림이었고, 그 결과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떤 이는 망루에 올랐다 공권력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야만을 그대로 둔 채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런 기득권층을 내버려두고 진보만 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물론 선생님의 말처럼 분노와 증오만으론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가 동일한 차원에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 십년 살아온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 망루에 올라간 부모가 까맣게 탄 시체로 돌아오는 걸 보는 사람들, 아침에 깨워서 보낸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아들이 분노와 증오를 품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는 생명을 그 파괴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라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이 사회에는 구조화된 폭력이 존재합니다.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고 그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분노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구조와 그것을 무조건 지키려는 기득권층에 더욱더 분노하는 게 오히려 문명의 역사를 여는 길이 아닐까요?

선생님은 뉴라이트나 뉴레프트가 그런 극단을 바로 잡아 중도의 길을 열어 가리라 기대하시지만 그건 그냥 희망사항일 듯합니다. 아시겠지만 뉴라이트라 자처하는 자들 역시 분명한 자기 이념 없이 기득권층에 빌붙어 떡고물이나 주워 먹으려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아닙니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원로들이 조화나 협력처럼 누구나 좋아할만한 단어가 아니라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그 극단에 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더욱더 분노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현실’을 내세운 알리바이를 깰 수 있지 않을까. 청년들이 한다면 욕을 먹을 말들을 원로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중도를 얘기하며 정도(正道)를 걷는 분도 있어야 하겠지만 극단을 고집하며 사도(邪道)를 걷는 분도 있어야 새로운 대안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아쉬움이 들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조세희 선생님같은 분이 계셔서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2005년 농민대회가 열리던 날에도, 2009년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현장에도 선생님은 달려와 우리 사회의 야만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증언이 있기에 우리는 그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단단하게 제 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부대껴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연찬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남주 선생님이 자신의 시에서 노래했듯이 사상은 “썩고 병들어 만신창이가 되어 이제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는 그런 세상”에서 태어나고, 그렇기에 사상의 머물 곳은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나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도 아니고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진보는 보수가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자기 자리를 마련할 때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힘을 얻게 됩니다. 진보가 배워야 할 것은 보수의 싱크탱크나 여론몰이 전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마음에 깃든 ‘진심(眞心)’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꿈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꿈꾸는 자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아마 선생님과 저도 서로 연찬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이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논하며 맺었던 말을 그대로 남깁니다. “이상 두서없이 선생님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느꼈던 소회를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선생님의 뜻을 오해했거나 왜곡한 부분이 있다면 저의 부족함 탓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욱 건필하십시오.”

갑자기 떡볶이가 한국의 정치논쟁의 소재로 등장했다. 서민과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탁구를 치며 시민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에 민주당은 떡볶이 먹고 어린애 안아준다고 서민의 어려움이 풀리는가라고 물으며 그 시간에 차라리 기업을 설득하라고 비판했다. 서민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시장이니 서민적인 정치 이미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시장이겠지만, 선거나 중요한 정치적 고비 외엔 정치인들의 코빼기조차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장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자주 군것질거리로 삼는 떡볶이지만 정치인들이 자기 이미지 만들 때 말고 평상시에도 먹을지 의심스러운 것이 떡볶이다.

사실 대통령이 저잣거리로 나서 시민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걸 비판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자신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도 포기하고 서민을 위해 팔 걷고 나서겠다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말이 많고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건 바로 소통의 방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시장을 찾았을 때 상인들이 입을 모아 요구한 건 대형마트의 진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대기업들의 중형 마트까지 등장해 동네 구멍가게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어렵사리 만난 대통령에게 가난한 상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정한 대통령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말은 좋지만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싼 가격에 물건을 들여오는 대형마트와 영세상인들의 공생이 정말 가능할까?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최소한 150개의 가게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웬만한 시장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셈인데, 이 둘의 공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자고로 소통이란 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며 기꺼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상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은 답을 내려 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얘기가 오갈 수 있도록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적 소통은 사회적 약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아픔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려 할 때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지금 한국 정치에는 소통이 없다. 이 대통령의 소통불능을 비판하는 민주당 역시 소통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민주당이 발표한 '뉴민주당 플랜'을 보면 뉴민주당이 아니라 뉴라이트 플랜 같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욕심은 '중도개혁주의'라는 해괴한 방향으로 향했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얘기하지만 경제성장을 해야 분배가 가능하니 경쟁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사전적 기회의 평등을 확대한다는 '기회의 복지'라는 개념은 본심을 드러낸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생활밀착 정당' 역시 소통과는 무관한 그네들의 말잔치이다.

사실 이런 소통불능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옥탑방이라는 말을 모른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의 정몽준 최고위원은 2008년에 버스비가 70원이라고 얘기해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민과 소통하려면 서민의 경험에서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대단한 엘리트 출신인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서민정치가 되려면 서민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한국의 정치구조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한다. 지방선거마저도 정당공천제로 꽁꽁 묶여 있어 평범한 시민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는다. 그러다보니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만 있지 서민의 정치는 한국에 없다.

현재 한국의 소통은 꽉 막혀 있다. 빨리 그 맥을 뚫지 않으면 시장에 나가 악수를 하고 떡볶이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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