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의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킹 독트린』이라는 책을 읽었다. 전 세계의 재난 현장을 돌아보고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학자는 위기가 권력을 독점시킨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다. 가난하고 약한 대다수 사람들이 쓰나미나 전쟁같은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소수의 기업과 정치인들은 그런 재난으로 이득을 취하며 더욱더 배를 불리고 있다. 저자는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이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른다.

이 책은 한국도 사례로 다룬다. 1997년 IMF로 쇼크를 경험한 한국정부는 경제규칙을 바꿔 다국적 기업이 한국을 마음껏 유린하게 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2년 동안 세 배나 늘었고 많은 산업시설과 노동력, 자원이 외국회사로 넘어갔으며 자살률은 두 배나 증가했다. 저자는 이 모든 불행이 우연한 사고보다 의도적인 공격과 약탈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금모으기 운동은 ‘저질게임쇼’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만약 나오미 클라인이 지금 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떻게 분석할까? IMF를 거치며 위기에 대비하기는커녕 우리 사회는 더욱더 위기에 취약해졌다. 식량자급률이 24%에 지나지 않고 에너지의 97%를 수입해야 하는 사회, 환율과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사회, 좋은 일은커녕 제발 더 나쁜 일만 생기지 않기를 기대하는 게 지금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얘기하듯이 모두가 어렵고 힘드니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 삶이 나아질까?

일단 모두가 고통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LG, SK, 국내 4대그룹의 2008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매출 1위 삼성은 220조원으로 2위 현대차의 110조원을 2배나 앞섰다). 그것도 2007년의 473조원에 비해 약 62조원이 늘어났으니 엄청난 성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매출이 늘어났으니 축하할 일일까?

하지만 4대 기업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결코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다. 경제의 규모와 영향력이 몇몇 재벌들에게 집중되는 건 소수가 지나친 권력을 가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재벌들은 그런 권력을 이용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왔기에 그런 집중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껏 알려진 것만으로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회사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피해를 입힌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LG그룹의 구본호는 주가를 거짓 공시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비리와 부정의 온상인 기업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재벌들은 일자리 창출을 거부하며 금산법이나 방송법 등 더 많은 이윤을 볼 투자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고통분담을 얘기하려 하는가? 고통은 결코 분담되지 않고, 사회의 약자들에게 집중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위기는 일종의 기회인 셈이다.

더구나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민을 쇼크 상태에 몰아넣을 이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권력독점을 막으려는 시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정부나 기업 외엔 그 누구도 경제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는 시민에 대한 경고이니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정부나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민을 철거민으로, 도시게릴라로 내몰아 그 삶을 송두리째 뽑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런 억압에 시민이 지치면 북한과 충돌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며 반전을 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쇼킹 코리아가 너무 싫어 모두가 짐을 싸서 떠나거나 더 이상 순종하는 시민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까?

어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적 지방자치'와 관련해 강연할 때 참고한 자료이다.
예전에 썼던 글을 조금 고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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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지방자치와 지방권력의 강화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지방권력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해 왔다. 근대적인 정치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지방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인들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활동하고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밀리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중앙권력이 전체적인 발전전략이나 정책을 구상하고, 지방권력은 그런 구상을 실행하는 역할분담구조가 자리를 잡아왔다. 그리고 중앙의 정치인이 지역엘리트의 뒤를 봐주고 지역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중앙-지방의 후견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이런 권력의 역할분담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였고,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고 국민주권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기에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이후에도 계속 시련을 겪어왔다.

그 문제점은 여러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일단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는 바람직한 자치에 관한 상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즉 행정자치와 경찰자치, 교육자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분권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분권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이고 중앙부처의 힘이 여전히 강력하며 지방정부의 의견은 배제되고 있다. 사실상 국토의 불균등발전과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가 중앙과 지방간의 힘의 격차를 계속 벌이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전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분권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기도 하다.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상황은 분권과 지방자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온 뒤에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도권 인구 비중만 해도 2007년 48.6%로 증가했다. 금융기관 대출의 수도권 비중은 95년 59.3%에서 2007년 68.3%로, 은행예금의 수도권 비중은 95년 64.8%에서 2007년 68.4%로, 대기업․중소기업의 수도권 비중은 1999년 49.2%에서 2006년 53.4%로 커졌다. 그리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지방재정 규모가 중앙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2004년 기준)이지만 의존재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재정자립도가 50% 미만인 자치단체가 전체의 84.4%를 차지) 분권 이후에도 역할분담구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집중화 현상은 지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즉 지방의 대도시들이 다른 지역의 인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수도권의 중심이 서울이라면, 부산과 울산이 경남권의, 대구와 포항이 경북권의, 전주와 익산이 전북권의, 대전과 천안이 충남권의, 청주와 충주가 충북권의, 춘천과 원주, 강릉이 강원도권의 수도권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중심부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사회는 경제기반이 붕괴되고 인구가 줄면서 침체위기에 빠져 있다(강준만 2008).

따라서 지방선거를 치러도 중앙정치의 상황이 선거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중앙정치에 호흡을 맞춰야 자기 지역을 살릴 방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들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도 여전히 중앙집권적인 정치, 행정구조를 알리바이로 삼아 자신들이 응당 맡아야 할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방치하고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독자적인 권력구조를 확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즉 지방정부는 지방의 자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정부의 견제와 감독을 피하고, 중앙집권적인 행정구조와 빈약한 재정을 핑계 삼아 지역의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방의 단체장들은 예산을 무리하게 집행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각종 부조리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예상된 것들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는 수동성을 강요당했고 중앙정부의 대리인들이 지역의 권력을 나눠먹기 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억압적인 군사정부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여를 빌미로 각 지역에 행정동원형 주민기구들을 만들었다. 시․군자문위원회(1962), 시․도정 자문위원회(1964), 리․동개발위원회(1972) 등 각급 위원회들이 만들어져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그 정책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주로 지역의 토호들이 이런 위원회를 여러 개 장악하며 공무원들과 연줄관계를 형성했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는 통, 반장을 중심으로 한 ‘반상회’가 공식화되어 주민들을 동원하고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협의회, 민족통일협의회, 사회정화추진협의회, 청소년선도위원회, 자유총(반공)연맹 등의 단체들이 조직되어 중앙정부의 민간동원단체로서 지방권력을 분점해 왔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지방자치 = 민주주의의 심화’ 또는 ‘분권 = 시민사회의 강화’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30년 이상 군부정권 하에서 조직적으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지역의 권력구조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지방선거 역시 이런 지역의 보수성을 강화시키는 장치로 작동했다. 더구나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의 고리는 지역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런 보수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런 보수성을 약화시키고 분권의 민주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한국의 사회운동단체들 역시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싸우기 위해 중앙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 역시 지방이나 지역보다 중앙정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에의 참여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과정을 살펴볼 때, 한국사회에서 분권은 단순히 국가의 기능을 줄이고 권력을 분화시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를 자극하고 생활정치를 활성화시키는 능동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민주적인 권력구조가 세워지도록 기존의 보수화된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민주적인 제도를 확립하며 그 제도를 운용할 능동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즉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지방자치는 지역사회에 대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정부의 역할은 지역의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고 진보정당은 이런 능동적인 역할을 자극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또한 진보적 지방자치는 한국사회의 미래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중앙집중형 국가는 통일을 대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로 주장되는 연방제가 아니라 진보적 지방자치에 기반한 연방주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에서 각 지역정부를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연방정부로 전환해 통일국가를 운영하는 ‘코리안연방공화국’을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당헌에 따르면, “국가사무를 대폭 지방에 이양함으로써 지방행정권을 확대하고 국세중심의 재정을 개혁하여 지방정부의 재정을 강화하도록 하고 자치입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국민의 소환권과 발안권 등으로 직접 민주제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민중의 직접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직접민주주의 경험과 진보적 시민운동의 권력감시 활동을 적극 활용한다. 나아가 건전한 시민단체 대중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폐지하는 등 대중의 정치활동을 적극 보장, 실현한다.”

이런 당헌을 실현할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제도개혁만으로 연방주의가 완성될 수 있을까? 제도는 사회를 감싸는 옷일 뿐이다. 참여의 정치문화를 만들고 능동적인 시민들을 만드는 과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분권을 실시하고 참여제도를 도입할 뿐 아니라 제도를 활용할 능동적인 시민을 만드는 과정을 만들 때 실현될 수 있다.

 

 

2. 현재의 지방권력구조가 가진 문제점

 

1) 제왕적 단체장제도와 후견주의 피라미드

한국의 단체장들은 지역사회의 공식적인 정책행위자이자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행위자이다. 단체장은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배정의 우선순위를 최종결정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인사권한을 이용해서 공무원들도 장악하고 있다. 단체장의 권한은 지역의 발전방향을 정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그런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단체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거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견제할 권한을 가진 지방의원들과 지연, 학연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재선을 노리는 의원의 지역구 숙원사업을 지원하고 의원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협력과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또한 단체장은 건축이나 위생 등 주민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에 대해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기업들도 좌지우지하며 부패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단체장은 지역토호들을 지원하거나 직접 주민들을 상대로 인기성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며 다양한 득표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단체장은 공무원과 지방의원, 기업가, 지역토호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자원들과 개별적인 교환관계를 맺으며 지방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별적인 교환관계들이 확장되면 후견인-피후견인 피라미드(patron-client pyramid)가 구성된다.

또한 단체장은 이런 지역적인 후견주의(clientelism)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중앙의 유력정치인과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를 구축한다. 왜냐하면 지역후견주의 피라미드의 유효성은 단체장의 지위와 권력, 자원에 의존하는데,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것은 중앙정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의 단체장들은 여당이 되기 위해 잦은 정당입당과 탈당을 시도한다(박종민, 2000)

 

2) 지방의원의 과잉대표와 부패의 네트워크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들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익을 채우는 사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즉 지방의원들이 공공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의 토지이익을 추구하거나 직무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면서 이권을 추구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이런 이권추구는 단체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지방의원의 의무를 거스르며 단체장과의 유착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실제 예를 통해 살펴보면 2006년에 당선된 대전광역시 지방의원들의 경우, 개별업종별로는 상업종사자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건설업이나 금융업 및 광공업이, 운수업과 농축임수산업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렇게 지방의원의 직업점유율이 3차 산업과 2차 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자영업자들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과잉대표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지방의회 자체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배응환, 2006). 그리고 이런 직업배경은 정당 소속과 무관하게 개발위주의 사업편성을 지지하게 만들고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한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의 경력을 살펴봐도 대전광역시의 경우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모두가 관변단체, 지방의원, 정당인, 경제인 등을 경험했다. 지방의원이 되려면 정치나 관에 연결되는 관변단체나 정당조직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증명된다(배응환, 2006). 즉 새롭고 참신한 인물이 지방의원으로 선출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지역권력구조에 편입된 인물들이 지방의원으로 선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역사회내의 부패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3) 지방공무원의 성과주의와 정실주의(patronage)

2000년에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8.1%가 지방정치의 문제점으로 공무원의 부패구조를 꼽았고, 응답자의 72%가 지역토착세력과 관료의 유착관계가 심하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강명구, 2000).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공직윤리와 업무수행능력을 불신하고 지역의 토착세력과 공공부문의 공무원들이 부정한 거래를 일삼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한국의 지방공무원사회에는 사실상의 인사권을 가진 시장에 대한 줄서기 및 지연과 학연에 의한 연고주의 등 전근대적인 습성과 전국규모의 통일성과 신분보장이라는 근대적인 습성이 혼재되어 있다(최승범, 2002). 그래서 공무원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서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단체장들이 보유하게 된 강력한 인사권을 의식(퇴임후에는 지방공기업 임원으로 배치)해 단체장에게 복종하는 이중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선거 때마다 공무원들의 줄서기 현상이 심해지고 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공무원들이 지방선거에 개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4) 토호세력의 강화

지역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가문, 학연,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지역현안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사회 엘리트 개인이나 집단을 지역토호라고 부를 수 있다(박재욱, 2000). 그리고 이런 지역토호들은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각종 위원회나 관변단체들에 넓게 포진해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에게 많은 지원을 받으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연히 이들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정치적인 영향력은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예총, 대한노인회, 한국소비자연맹, 체육회, 보훈단체(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대한무공수훈자회), 지방문화원, 광복회, 새마을단체, 바르게 살기운동단체, 한국자유총연맹, 이 13개 단체는 관련 법률을 통해 많은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지원금이 2004년에 사회단체보조금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이들 13개 단체가 전체 보조금 중 약 60%에 달하는 734억원을 지원받았고, 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3개 단체가 전체 액수의 30%, 약 340억원 가량을 지원받았다. 그 뒤 이들 단체에 대한 지원액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지방정부들은 이 삭감분을 민간경상보조금, 민간행사보조․위탁금 등으로 보존해주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사업을 보조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들 3개 단체들은 지원금의 80% 이상을 운영비로 지출하고 각종 사업비조차 지방정부에게 받아서 지출하고 있다. 또한 새마을단체는 전국 137개소에서 지자체의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187개소, 한국자유총연맹은 138개소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다. 이런 편중된 지원은 이런 단체들을 장악하고 있는 토호들의 힘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언론들(중앙언론의 지사들 포함) 역시 지역의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를 감시하기는커녕 관언유착 관계를 맺고 있고, 기자와의 간담회나 주민계도용 신문구입 등은 지역언론이 감시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런 지역언론은 어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단순한 사실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지방정부의 편을 들기도 한다. 또한 지역토호로 불리는 세력들이 지방언론지를 만들어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5) 일당의 지배구조와 지역정책의 부재

지역주의 공천과 투표로 인한 특정 정당의 지방정부 독점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의 75%, 기초단체장의 67%를 장악했고 광역의원의 76%, 기초의원의 40%를 장악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집행권과 감시․감독권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에서 민주당은 전체의 57.6%에 해당하는 의석을 얻었고 전남에서도 64%의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이런 일방 지배구조 하에서 지방정부의 내부적인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가 강하다보니 지역에 관한 정책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2006년 지방선거에서 핵심쟁점은 두 가지, 중앙/지방권력 심판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정책구성의 토대가 되는 지역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나 지역현안에 관한 분석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주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난개발, 개발들과 관련된 공약들이 정책자료집을 채우는 실정이다.

 

6) 지역시민단체의 침체

지역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정당체계를 보완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이익을 규정하고 요구할 수 있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훈련과 정치참여를 자극할 수 있으며 지역의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시민단체들은 그런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지방정부가 여는 공청회나 토론회에 참석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수준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앙정치를 무대로 활동하는 단위가 지방자치나 지역의제와 관련된 고민을 심도 있게 진전시키기도,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학교나 교회, 주민조직과 같은 미시적인 공공기구에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정상호, 2006). 또한 주민들의 관심이 지역사회에 맞춰져 있지 않고,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라는 현실에서 시민단체들의 당위적인 주장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지역시민단체들은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후견주의 피라미드의 힘에 계속 밀려나고 있다.

 

 

3. 진보적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자치제도 개혁

 

1) 단체장권한의 견제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일차적인 권한은 지방의회에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일당지배 구조에서 지방의회가 얼마나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앙정당의 정체성이 지방의원의 판단력을 결정하거나 의원의 이해관계를 대체하지 못하고, 소수당이라도 발언하고 개입할 기회를 가지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예산심의권한 외에 단체장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최소한 의회사무국에 관한 인사권 확보)을 지방의회가 가져야 하고, 행정사무에 관한 지방의회의 조사권(관계자의 출두, 증언, 기록제출 요구를 거부할 시 처벌 강화)도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유급제가 되었으니 매년 1회의 정기 행정사무감사방식을 벗어나 일상적, 상시적인 감시․견제기능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즉 중앙정부가 단체장을 견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수평적 권력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그러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정당이 책임을 지고 의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2) 정보공개제도의 활성화와 투명성 확보

2000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참여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응답자의 29.3%가 참여제도의 미흡을, 24.2%가 지방행정에 관한 정보부족을 꼽았다. 사실 참여는 당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참여의지를 뒷받침하도록 그와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보공개제도는 공무원, 시민 모두의 의식과 행동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1998년부터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정보공개수준은 형편없다. 특히 ‘시민참여’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정책결정과정”과 “예산집행”에 대한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시민운동도 정보공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폐쇄성이 더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하승수, 2002).

따라서 실제 정보공개에 소요되는 비용(복사수수료를 인하하고 공익과 관련된 경우 전액 감면)을 줄이고, 정보공개심의회의 공무원비중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보공개를 청구하기 전에 지방정부가 예산이나 판공비, 행정과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한국의 청주시와 안산시는 이런 정보공개를 시민/주민참여조례안으로 명문화시켰다).

그리고 중앙공직자만이 아니라 지방공직자들도 자신들의 재산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법이나 겸직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고 공공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3) 4인 선거구제로의 개편과 정당법, 선거법 개정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일당지배 현상을 극복하려면 선거구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일본의 경우 3~5인 선거구제를 택해서 소수파의 의사가 충분히 의석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자치단체들이 임의로 쪼개놓은 2인 선거구제를 4인 선거구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광역의원만이 아니라 기초의원에서도 여성비례 50% 이상을 강제조항으로 만들고, 가능하다면 공천에서 프랑스처럼 남녀동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현행 정당법의 규정을 완화시켜서 지역정당(local party)의 등장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토착형 지역정당이 아니라 지역차원의 네트워크형 정치운동조직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관변단체나 후견주의 네트워크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초록정치연대>나 다른 풀뿌리지역운동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운동과 제도정치를 연계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법 개정을 통한 지역정당의 설립은 지역정책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도가 올바른지 고민을 해야 한다. 책임정치 실현이라는 구호는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정당이 분권형 정당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정치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에게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호배정은 올바르지 않다.

 

4) 관변단체에 대한 통제

지역사회에서 과도하게 대표되는 정치세력들의 힘을 제어하고 시민참여의 활성화를 자극하는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3대 관변단체를 위시한 지방정부의 외곽단체들에 대한 임의적인 사회단체보조금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보조금을 전면적으로 중단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운영비 지급을 점차적으로 줄이거나 금지해서 보조금이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사회단체보조금조례를 제정해서 사회단체보조금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체 출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방정부 내의 각종 위원회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공직자윤리위원회, 교육경비보조금심의위원회, 보육위원회 등 수 십개의 위원회들은 1년에 회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같은 인물이 여러 개의 위원회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통합이 필요한 위원회들은 과감하게 통합하고, 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비중을 줄여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위원회들에는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겠지만, 자원봉사의 개념이 강하고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하지는 않은 위원회(예를 들면, 주민자치위원회나 보육위원회 등)에는 일반 주민들 중에서 참가 의욕이 있는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4. 진보적 지방자치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의 연계방안

 

1) 생활정치에서 정당의 역할

정당은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연계하는 틀이 될 수 있다. “정당이 제 기능을 수행할 때,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의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치-지방정치간 상호건설적인 협력을 이룰 수 있다”(김욱, 2006) 그리고 정당은 지역정치의 첨예화를 막는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또한 정당은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무원들에게 단체장이나 의원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즉 정당은 지방자치단체의 의사결정과 성과에 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의 민주화 없이 정당의 지역정치 참여를 무조건 긍정할 수는 없고 정당 내부조직의 분권화와 운영방식의 민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정당공천제도는 국회의원이 지구당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해서 지역정치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국회의원들은 지방의 빈약한 재정자립도를 보충하는 교부금이나 보조금의 결정에 국회의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의정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공공사업과 보조금을 지역에 유치했는가를 자신의 주요한 홍보전략이자 재선전략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정당의 민주적인 분권화를 위한 방안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의 중심축은 지구당 제도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상향식 공천과정과 비례대표의원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지구당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2) 지방분권적 정당개편과 민주적인 지구당 제도의 부활

현재 비민주적인 지역권력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당위적으로 사안에 접근할 수는 없다. 지구당 제도가 폐지된 것은 한 개 지구당에 보통 년간 2~3억이 들고 정당 전체로는 년간 506억 내지 7598억원이 소요되는 고비용 때문이었다(박동수, 1998). 사무국장만이 아니라 총무, 각종 관리장과 통, 반별 담당자들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역의원들이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서 공천권 등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정치란 기본적으로 비용을 대가로 참여를 통해 민주적 합의를 구하는 과정이기에 경제적 효율성의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정영국, 2000). 특히 지구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하의상달의 통로 및 정치참여의 기본단위이므로 고비용 구조를 이유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은 이익집단이나 사회적 결사가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적 여론수렴기능을 폐지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따라서 지구당 폐지가 아니라 운영의 개선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여겨진다(박찬표, 2003).

이런 정당운영의 개선을 위해 외국의 사례들을 참조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 지구당의 하부조직인 각 branch마다 선임한 대표자들로 구성된 지구당(Constituency Labour Party: CLP)을 운영하는데, 지구당의 결정 사항에 대한 투표권은 이들만이 갖고 있다. 그리고 노동당의 후보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직접 지구당에 서류를 내는 대신 그 지역의 노조 지회, 사회주의 단체, 하위 당 조직 등 관련 기관의 지명을 받는다. 따라서 지명을 받는 수는 12명 정도이거나 이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지구당의 집행위원회에서는 이를 다시 4~6명 정도의 최종 선발 후보자 명단(shortlist)으로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이들 최종 선발 후보자들은 지구당의 총회(general management committee)에서 질의와 토론 시간을 거친 뒤 투표를 통해 과반수를 획득하면 후보자로 선정된다(강원택, 2003). 이런 영국 사례는 민주적인 지구당 운영과 공천과정의 한 예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는 정당법이 엄격하게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구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독일 정당법은 정당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지역조직에 기반한 당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명문화하고 있다. 즉 한 정당의 연방차원 조직체 아래에는 지역별 조직체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전당대회와 그로부터 선출된 당 집행부를 통한 독자적인 의사형성이 토대와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도부의 민주화를 위해 집행부가 2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고, 당 기관간의 권력분립과 민주적 통제를 위해 당심판원(Parteischiedsgerichte)을 두고 있다. 그리고 당평의회(Parteirat)는 당 집행부가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하기 전 청취권을 갖고 있는데, 이는 27개 권역 조직체에서 보낸 대의원들에 의해 구성된다(김면회, 2003).

특히 독일 녹색당은 시의회, 군의회, 주의회, 그리고 연방의회에서 여러 시민운동 단체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기구들로부터 여러 민중운동 단체에게 특별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을 자신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영국 노동당과 유사하게 녹색당에서 선거의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우선 지방집단에 대해 자신이 보증받을 만한가 하는 점을 묻게 된다. 지방집단의 보증을 받은 후보자는 그 다음 주 조직에 자신의 이력서와 정치성명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든 당원들에게 배포된다. 마지막으로 후보자들은 주말에 열리는 주 전체의 당대회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의회에 있어서 자신들의 우선 과제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피력한 뒤 일반당원들로부터 질문을 받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색당의 일부 지부들은 시민운동단체의 대표들과 같은 비당원들이 녹색당의 결정 사항들에 대해 표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부들은 투표권을 주지 않더라도 비당원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스프레트낙․카프라, 1990).

영국과 독일의 사례는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정당구조 확립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지구당이 아래로부터의 의사수렴을 위한 기본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당 위원장도 선출되어야 한다. 지방선거 후보자를 공천할 때 지역의 사회단체에게 추천이나 지명을 받도록 하는 방법은 정당과 지역시민사회단체를 연계시키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공천과정에서 후보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그런 토론과 논쟁과정에서 공천과정의 민주성이 자연스럽게 담보되고 정책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토의민주주의의 활성화). 또한 평당원들의 대표자가 당의 정책에 관해 사전에 의견을 듣도록 하는 당평의회나 당기관간의 분쟁을 통제하는 일종의 사법기관인 당심판원제도도 수용할 만한 제도이다. 선거 때만이 아니라 당원들이 지속적으로 당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야 한다.

이런 시사점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 정강을 살펴보면, 시․도당 대의원대회는 “시·도당 규약의 제정과 개정, 시·도당 운영위원회가 제출한 안건의 심의, 결정, 지역위원회의 주요한 업무”를 결정한다. 그리고 지역위원회 대의원대회는 지역위원장 및 부위원장, 사무국장, 당소속 관할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 지역위원회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선출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데, “지역위원회의 사업계획 승인, 중요사업 결정” 등의 권한을 갖는다. 앞서 얘기한 시사점을 고려해서 이런 내부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정당 내부의 제도들은 정당의 이익대표기능과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근거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 당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경우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의 효과도 낳을 수 있고 정치참여를 자극할 수도 있다.

 

3)주민참여제도의 재정비와 내실화

정당과의 연계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들도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참여를 당위적으로 강조한다고 정치참여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이 지방정치에 보이는 관심도는 매우 낮고, 특히 여성과 젊은 층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나 네트워크 구성이 바로 주민참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는 참여의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즉 주민참여를 활성화시킨다고 해서 증가된 주민참여가 주민 다수의 복지증진이라는 지방정치에 목적에 자동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 지식, 노력, 금전 등에서 발생하는 참여의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지방정치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따져볼 경우 상류층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정치적 소외층의 참여를 증가시키기 위해 참여비용을 줄이고 주민의 능력과 의지를 고취시키는 시민교육을 실시하며 상류층의 과잉대표를 제어하기 위해 공무원이 중립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이승종, 2000). 그리고 지방의회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후견주의 피라미드를 붕괴시킬 수 있도록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참여를 제도화하는 제도적인 방안들로 주민발의제도, 주민투표제도, 주민소환제도 등이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참여의 벽이 여전히 높고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은 2006년 8월 행자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일괄적으로 통보한 주민참여예산조례안도 마찬가지이다.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들이 그 취지와 달리 지역의 특정 이해관계나 행정의 조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제도들이 제 의미를 가지려면 제도들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청구인 요건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청구인을 완화할 경우 이런 제도들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지역이 권력의 무풍지대가 아닌 만큼 그런 남용은 반작용을 통해 일정정도 제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방정책의 계획, 실행, 평가단계에 주민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그 과정에 참여한 주민들이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져야 한다.

 

4) 광역 단위의 지방정책연구소 설립과 정당연수원의 활성화

지역의 정당조직이 활성화되고 주민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더라도 그런 활성화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되어 실질적으로 지역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탈정치, 정치적 무관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따라서 4인 선거구제로의 확대와 함께 정당의 지역정책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고 그런 기능은 정당의 본래 목적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일단 현행 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는 광역단위에 정당이 지방정책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의 현황을 분석하고 정책화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소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포럼을 구성해도 좋다. 또한 가능하다면 광역단위만이 아니라 기초단위에도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방의원들이 지역정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연구소를 설립하는 비용이 문제일 수 있지만,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진행하는 각종 개발용역비를 모으면 연구소 운영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연구소가 원활하게 운영된다면 시민사회와 공무원, 정당간의 정책 네트워크 구성도 가능하다.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단체장과 공무원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방의원 연수프로그램은 그런 역할을 맡기에 부족하고, 민간단체가 진행하는 연수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지방의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는데, 별도의 기구를 마련할 필요 없이 그런 기능을 정당의 연수원이 맡으면 된다.

 

 

5.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지방자치를 구현하고 있는가?

 

1)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민주노동당 당헌을 보면, 수도권으로의 집중화 현상에 대한 대안이나 구체적인 분권과정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리고 연방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상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사회 지방자치의 한계가 정치, 경제, 문화의 면에서 지방이 가진 한계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정책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비전은 한국 내에서도 실현되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이다. 지방이 자급능력을 잃고 내부식민지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연방공화국은 모순을 은폐할 뿐이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수도권으로의 집중화 현상을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장기적인 기획을 필요로 한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영역에서 집중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수도권이라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방자치는 헛된 꿈일 뿐이다.

 

2) 진보적인 지역비전은 존재하는가?

민주노동당은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에 맞는 지역사회 비전을 만들고 있는가? 즉 단체장으로 당선되면 그 기간동안 그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이 비전이 없다면 보수적인 지방정부를 설득해서 변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진보적 지방자치에 따른다면, 이 비전은 전문가나 당원이 아니라 지역주민, 지역시민과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새로운 지역비전이 토건국가식 개발주의를 극복하려면 적극적인 시민참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동당은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지방선거의 시기가 도래하면 지역의제 발굴이나 후보발굴에 집중하고, 선거 이외의 시기에는 중앙의 투쟁방침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 문제다. 그것은 지방자치나 진보적 지방자치에 대한 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한상진 외, 2006).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구호일 뿐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당내 구조도 부족하다.

진보적 지방자치는 주거, 교육, 사회복지와 같은 생활정치의 주요 의제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비전을 만들 때 가능하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참여예산제같은 정책들을 지방선거나 지역정치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할 게 아니라 지역적인 상황에 맞게 무엇을 가장 먼저 실행하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방에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단순히 선거용이라면 그것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의제를 발굴하고 실천하는 과정 곳곳에서 지역 내의 다양한 모임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두 글에서는 그런 연대에 관한 고민보다는 진보정당이 지역사회에서 이것저것을 다 하겠다는 욕심만 드러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3) 내부정치의 과잉과 외부정치의 부재

민주노동당의 성공적인 지역정치 사례라 불리는 울산 지역의 진보정치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진보정치의 현실을 ‘내부정치의 과잉’과 ‘외부정치의 부재’라는 말로 정리했다. 정치세력간의 충돌이나 갈등은 정당정치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도권 경쟁이나 다른 세력에 대한 배제로 나타날 경우 그것은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때로는 정책을 구성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내부로 정치역량이 집중되면서 진보적 지방자치의 연대세력이어야 할 다른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연대’라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같은 지역주민으로서 일상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일상활동이 자연스럽게 선거에서의 지지로 드러나게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서서히 해결되고 있는가? 그리고 진보정당은 지역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가? 민중의 직접참여를 보장한다는 당헌의 의미가 살아나려면 일종의 참여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화는 한 번의 이벤트나 사건만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적인 참여문화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예를 들어, 민중의 집)이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정당이 성과를 가져가려 하지 말고 그 성과나 성공의 몫을 지역주민에게 돌리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4) 진보정당은 선한 조직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가 반드시 도덕적인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지역 주민들의 평판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주민들의 좋은 평판을 받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말로만 ‘머슴’을 자처하지 말고 주인의 말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을 몸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활동문화는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대중을 이끌려는 엘리트 의식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인 듯하다. 그러니 생활정치의 이슈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소위 성공사례를 따라잡기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은 일요일, 온 가족이 모여 장을 보러 간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올라가니 마트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코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식을 하고 물건을 고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삑삑거리는 계산대를 지나 짐수레를 가득 채운 침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이다.

이렇게 대형할인마트에서 쇼핑하는 장면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 슈퍼맨이 일한다는 슈퍼마켓, 좌판과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인 재래식 시장과 달리 대형할인마트는 그 휘황찬란한 근대성을 자랑한다.

세계 최초의 대형 할인마트는 1962년에 생긴 미국의 월마트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1993년 11월 이마트가 처음 문을 열면서 대형할인마트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수와 판매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전체 소매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6.6%로 추정되고 있다(더구나 이마트, 홈플러스 상위권 회사의 점포수가 161개로 전체 할인마트의 47.1%, 매출액은 12.7조원으로 할인마트 매출액의 54.1%를 차지한다). 수치로 보면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채 400개를 넘지 않는 대형할인마트가 한국 전체 소매시장의 16.6%를 차지하고 있다니 엄청난 일이다.

사람들은 왜 대형할인마트를 찾을까? 대형할인마트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대형할인마트는 싸다?

 

맞벌이 부부들은 주말에 한꺼번에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를 찾는다. 이른 새벽까지도 문을 열고, 늦은 시간이면 김밥이나 초밥, 반찬거리가 몇 백원씩 할인되니 어찌 아니 좋을쏘냐. 공장에서 만든 물건들의 값은 밖에서 사는 것보다 싸고 물건이 워낙 많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웬만하면 마트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시식코너에서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고(한 때는 인터넷에서 마트에서 밥을 공짜로 먹는 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방해를 받지 않고 물건들을 서로 비교하며 살 수 있으니, 공간도 비좁고 물건도 많지 않은 소형 가게와 비교하면 대형 마트가 소비자에게 훨씬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외부와 단절된 환한 조명과 경쾌한 음악까지 틀어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형할인마트들은 매장에 진열하는 품목을 꾸준히 늘리며 공간의 복합화를 추진해 왔다. 이제는 단순히 먹거리나 가정용품같은 생필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의류매장이나 전자제품코너같은 공간들을 갖춰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한다. 이제는 기름을 넣는 주유소 기능까지 대형할인마트들이 한다고 하니, 마트에 들리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대형할인마트들은 직접 공장이나 산지와 거래하며 중간유통마진을 없애서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한다고 한다(어떤 대형마트는 자기 매장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파는 곳이 있다면 신고를 하라고 할 정도이다). 싼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니 누군들 마트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가격을 곰곰이 따져 보면 대형할인마트에서는 공장에서 만든 물건의 가격이 농산물의 가격보다 훨씬 싸다. 왜 그럴까?

앞서 봤듯이 대형할인마트는 몇 안 되는 기업이 많은 매장을 내며 소매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을 무기로 중소기업이나 공장에게 낮은 가격을 강요한다. 슈퍼마켓과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똑같지만, 마트는 슈퍼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상품을 공급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86%는 불공정거래를 경험했지만 거래를 중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참는다고 한다. 마트의 싼 가격은 중소기업을 희생시킨 대가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싸게 살수록 부모님의 월급봉투도 얇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농산물은 공장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산지의 가격을 아무리 낮춘다 하더라도 농산물의 가격은 협상하고 강요해서 결정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주변 농가의 것을 가져와서 파는 재래시장의 가격이 마트의 가격과 비슷하거나 싼 경우가 많다. 가끔 농산물 할인행사를 해도 그건 신선도가 떨어진 농산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마트는 한 가정이 필요한 만큼 작은 단위로 상품을 팔지 않거나 작은 단위일 경우 비싸게 가격을 매긴다. 그래서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언제나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을 사기 마련이다. 그러니 상품 하나하나의 가격은 싸다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돈을 쓰게 만든다.

그러니 대형할인마트의 할인은 중소기업이나 농민의 몫을 빼앗는 ‘착각’이거나 과소비를 하게 만드는 ‘환상’일 뿐이다.

 

대형마트와 웰빙

 

<지식채널e>의 ‘구멍없는 구멍가게’는 대형할인점과 동네 구멍가게를 비교한다. 대형할인마트가 늘어날수록 경쟁력 없는 작은 구멍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2001년 이후 1만 1,400개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리고 구멍가게를 애용하는 한 할아버지는 소주 1, 2병 사러 마트 갈 수도 없고 왕창 물건을 살 돈도 없다며 “조금 비싸지만 구멍가게는 외상도 되고”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더 비싸게 물건을 사야 하는 이 가혹한 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대형할인마트의 서비스가 구멍가게보다 더 좋을까?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의 서비스가 대형할인마트보다 나쁠까? ‘말만 잘하면 공짜’라는 말처럼 구멍가게에는 주인과 손님의 ‘흥정’이 있었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부족한 주머니를 넉넉한 인심으로 채울 수 있었다. 마트에 홀로 놓인 전자저울 대신 구멍가게에는 주인의 ‘눈대중’이, 부족한 사람에겐 한 가지 더 얹어주는 ‘마음’이 있었다. 자주 들리는 ‘단골손님’은 후한 대접을 받았고 때로는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니 동네의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구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구멍가게는 가게에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꽃이 피는 공간. 추운 겨울날이면 난로 주위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얘기부터 마을일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구멍가게의 역사를 장식했고 구멍가게는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었다.

이제 구멍가게가 사라지면서 단골과 흥정, 외상이라는 말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대형할인마트는 인심을 저울로, 흥정을 정가로, 단골을 포인트로 대체한다. 그 속에는 살가운 관계가 숨을 쉴 공간이 없다.

더구나 한꺼번에 많기 사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트에 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차를 몰고 마트에 가고 그러다보니 주말이면 마트 주변 도로는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변하면 그 매연은 마트가 위치한 곳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들이마셔야 한다. 그러니 그 편리함도 다른 것을 희생하고서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이다. 그런데도 대형할인마트의 서비스가 구멍가게보다 더 나을까?

김재인의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서해문집, 2008)에 따르면, 대형마트 하나가 생기면 약 150개의 점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대형 마트가 350개 정도가 되니 약 5만 개의 점포가 사라진 셈이다. 이렇게 대형할인마트는 동네의 구멍가게들의 문을 닫고 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앤다.

그래서 2008년 3월 5일에는 <대형마트 규제와 중소상인 육성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대형마트 입점 규제(인구수와 재래시장과의 거리를 고려할 것), 대형마트 영업 규제(중소상인에게 영향을 주는 품목 제한, 오후 8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규제), 처벌규정 강화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형할인마트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형할인마트에서는 누가 일을 할까? 마트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거나 물건을 진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심지어 마트는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부의 용역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을 데려다 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 시작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후마니타스, 2008)는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내 아이들만큼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가 대형할인마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이고 그 비율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대형할인마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중소기업이나 농민, 구멍가게의 희생이 늘어나고,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형할인마트가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그런 악순환을 막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얼마 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같은 대형할인마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팔겠다고 밝혔다(심지어 어느 마트는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표기해 판매하기도 했다). 마트들은 저마다 가격을 낮추는 가격경쟁을 벌이며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있다. 이윤을 늘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고 팔려 한다는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와 대형할인마트는 동일한 논리에 서 있다.

우리 삶을 바꾸는 변화를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마트보다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게를 찾는 것에서부터 조그만 변화는 시작된다.



얼마 전 청와대는 한 달에 한번이나 격주에 한번씩 ‘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코너로 대통령이 라디오에서 연설을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과 웹 2.0의 시대에 대통령은 왜 케케묵은 라디오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방송사의 PD들이나 언론단체들은 대통령이 라디오에서 말 좀 하겠다는데 왜 난리를 치며 반대할까? 도대체 라디오가 뭐 길래?

 

괴벨스의 입

 

세계 최초의 라디오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무선으로 전신 신호를 주고받는 단순한 기계였다. 라디오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은 보통 독일의 마르코니(G. Marconi)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세르비아 출신의 미국 과학자 테슬라(N. Tesla)가 처음 발명했다. 한때 발명왕 에디슨(T.A. Edison)과 일을 하기도 했던 테슬라는 마르코니보다 먼저 라디오를 발명하고 1897년에 미국 특허를 출원했지만 1904년 마르코니에게 특허권을 빼앗긴다(에디슨은 우리가 위인전에서 받았던 좋은 이미지와 달리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탄생한 라디오는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괴벨스(P.J. Goebbels)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독일 나치당의 선전장관으로 활동하던 괴벨스는 독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라디오를 활용했다. 나치는 독일의 모든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하고 그 라디오를 통해 히틀러와 자신들의 계획을 국민들의 귀에 반복해서 불어넣었다(나중에 괴벨스는 세계 최초로 정기TV방송을 시작했고 올림픽을 그 기회로 삼았다).

당시의 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이라 불렸다. 괴벨스는 “우리는 방송중계를 통해서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청취자에게 우리 집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조형적인 그림을 전달해야 한다. 지도자의 연설을 준비하는 도입 연설을 언제나 내가 맡아 하면서, 청취자에게 우리 대중집회의 마법과 분위기를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요아힘 C. 페스트 지음, 안인회 옮김, 『히틀러 평전』, 푸른숲, 723~724쪽). 라디오는 연설만이 아니라 각종 집회의 분위기도 그대로 각 가정으로 전달했다. 집에 있는 사람들도 마치 나치당의 집회에 와 있는 것처럼 함께 호흡하며 흥분과 전율에 몸을 떨었다.

거짓말도 자꾸 들으면 진실처럼 들리듯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고 괴벨스가 자신 있게 말할 정도였다.

한때 자신들의 이웃이었던 유대인들을 무조건 잡아가고 가둘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거짓말 탓이었다. 심지어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할 때조차도 국민들은 독일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소년병들이 그 거짓 승리를 위해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다(그렇지 속지 않았다면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패배한 전쟁에 내보낼까).

라디오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효과는 또 다른 사건으로도 증명되었다. 1938년 10월 미국 CBS방송국의 PD였던 오슨 웰즈(O. Welles)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자신이 쓴 『화성침공』이라는 드라마 대본을 방송했다. 외계인의 침입을 알리는 속보가 나오자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나거나 총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이 사건은 라디오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시켜 줬다.

그래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원하는 바대로 그들을 조종하기 위해 라디오를 이용했다. 스위치를 켜기만 하면 언제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람들의 귓속으로 바로 전달할 수 있으니 누군들 그 힘을 이용하고 싶지 않을까? 인터넷의 시대에 좀 구리긴 하지만 라디오를 이용하려는 권력자의 발상은 이런 의도를 담고 있다.

일본의 작가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소리의 자본주의』(송태욱 옮김, 이매진, 2005)에서 그 의도를 분명하게 지적한다. 현대사회에서 라디오가 소통보다 일방적인 주장을 전하며 “우리 삶의 시간과 공간을, 나아가 사회적 현실의 성립을 거의 전면에 걸쳐 점령해버렸다”는 점은 분명하다(25쪽). 라디오를 통과한 소리는 장소를 초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세계를 동질화시킨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매개이자 “‘소리’를 부르주아적인 기호로서 유통시키고 소비해가려는 사회적 전략”인 ‘소리의 자본주의’를 구성했다(45쪽).

 

당신의 취향, 라디오

 

영화 <아는 여자>에서 이연(이나영 役)의 취미는 라디오 듣기이다. 이연은 말 그대로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고 휴식을 취한다. 버스기사나 택시운전사처럼 혼자 일하는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작은 즐거움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라디오는 상품과 초대권이 뿌려지는 행운의 장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정겨운 얘기가 공유되며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는 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운과 기억을 통해 라디오는 아직 살만한 현실이라며 사람들을 ‘위안’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과 정겨운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한다.

그런데 그렇게 긴장이 풀어지면서 슬그머니 광고 메시지가 끼어든다. 텔레비전과 달리 라디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요즘은 인터넷을 이용해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흘러나오는 전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가 노래와 사연을 고르고 왜 그런 물건을 상품으로 주는지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냥 라디오의 ‘수다’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길 뿐이다.

피카르트(M. Picard)는 그런 수다가 사물 속에 깃든 신성(神性)인 ‘침묵’을 파괴한다고 얘기했다. 잡스러운 소리를 생산하는 라디오가 침묵의 모든 영역을 점령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인간의 모든 느낌, 의욕, 지식이 라디오에 의해서 생기고 인간 자체가 라디오를 통해서 비로소 인격체가 된다. 라디오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이 생긴다. 라디오를 통해서 처음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려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 혹은 일거리를 필요로 하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느끼게 된다.”(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침묵의 세계』, 까치, 201쪽)

라디오가 전달하는 많은 메시지에 익숙해지면 그 무엇도 판단할 수 없고, 의미 있는 말조차 수다에 묻혀버린다. 결국 “라디오는 인간을 더 이상 말에 귀 기울이지 않도록 길들인다. 그것은 곧 인간이 인간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이며, 인간을 당신으로부터, 당신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당신을 떼어놓는다는, 따라서 사랑으로부터 당신을 떼어놓는다는 뜻이다.”(같은 책, 209쪽)

 

볼륨을 높여라!

 

그런데 이런 라디오도 한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마이크를 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라디오는 전혀 다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예술가 찰리 채플린(C. Chaplin)은 자신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라디오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히틀러를 꼭 빼닮은 주인공은 히틀러 대신 마이크를 잡고 괴벨스의 입을 통해 자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연결 시켰습니다. 이러한 발명의 진짜 의도는 인간의 선함에 전 지구적 형제애와 우리 모두의 화합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 퍼져나가 인간을 고문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두는 제도에 희생된 수백만의 절망하고 있는 남녀노소에게까지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채플린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에서 자유의 나팔수로 변한다.

이처럼 현실에서 강제로 입막음을 당한 사람들은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신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 논리에 도전하는 발신자가 되기도 한다.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 등장하는 마크(크리스챤 슐레이터 役)도 발신자의 입장에서 위안이 아니라 ‘비판’을 가한다.

캄캄한 지하실,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면 고등학생 마크는 디제이 ‘해피 해리’로 변신한다. 마크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세상과 학교, 가족, 친구들에 대한 불만은 무형의 전파를 타고 비슷한 응어리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마크의 독백은 학교 친구들의 호응을 얻으며 어느새 ‘해적방송’으로 성장한다. 진실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실제로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무선라디오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와 네트워크가 구성되었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도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열정을 잃어버린 락가수 최곤(박중훈 役)이 조그만 도시의 라디오 DJ를 맡으면서 마을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아니, 사실은 최곤이 DJ 역할을 성실하게 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으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일방적으로 방송을 내보내던 라디오는 어느 순간 마을의 소식통이 되고 사람들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라디오는 잡스런 소리가 아니라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된다.

이런 이야기는 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 전파법이 개정되어 소출력라디오방송이 허용되면서 한국에서도 마을라디오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마포 FM>이 대표적인 예이다(http://www.mapofm.net). 마포 주변에서 FM 100.7Mhz에 주파수를 맞추면 들을 수 있는 <마포 FM>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와 함께 다른 곳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L양장점’, 여성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꽃다방’, 장애인들이 마이크를 잡는 ‘함께쓰는 희망노트’, 노점상인들을 위한 ‘희망마차’ 등의 프로그램은 그 성격을 잘 보여준다.

라디오 자체는 비어 있는 물건이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것은 파시즘의 매체로, 아니면 민주주의의 매체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것은 침묵을 파괴하는 소외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을 기르는 공동체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라디오스타는 누구일까?



국가 없는 삶은 어떨까?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원천봉쇄와 언론의 왜곡, 순종적인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촛불은 꿋꿋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촛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그 안타까움은 이명박 정부가 계속 시민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버틴다면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옛날 같으면 어금니 꽉 깨물며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혁명’을 일으키자고 외쳐볼 만도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났다. 비폭력을 외치는 목소리는 단지 두려워서가 아니라 정당한 방식으로 저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우리의 정당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과거보다 더 나은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혁명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혁명의 길을 찾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과제를 풀기란 쉽지 않다. 정부에는 아직 여러 장의 카드가 남은 있는 듯한데, 이쪽은 정부와의 협상이나 정치세력의 조직화라는 애매한 카드만 남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과제를 속 시원히 풀어줄 대안적인 정당이나 정치조직을 찾기도 어렵다. 옛 길은 포기되었건만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으니 이 막막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막막함은 우리의 인식이 기성의 정치논리에 길들여져 있어서 생긴다. 우리의 상상력이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현실은 그리 막막하지 않다. 이미 저들은 물대포와 경찰특공대, 폭력진압까지 일삼은 허약한 권력일 뿐이다. 아니 저들은 권력이라고 칭하기에도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초등학생들까지 “쥐를 잡자 찍찍찍”을 외치는 상황에서 저들은 이미 권위를 잃어버린 폭력, 폭력밖에 가지지 못한 공권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조건 폭력에 똑같이 힘으로 맞서고 누르려 하는 건 어리석은 시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권력을 넘어선 상상력이다.

 

국가라는 짐승 안에서 살아남기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은행나무, 2006)는 상상력의 별로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에하라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세상에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개(展開)해봐”라며 누구에게나 들이대는 우에하라의 거침없는 발언이 흥미롭지만 정말 나의 공감을 끌어낸 것은 책 전반에 깔려 있는 세계관이다.

우에하라는 국가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라는 우에하라의 얘기는 단순하지만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국가에 요구하고 국가로부터 어떤 확답을 받아내려 할까? 권력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해 왔으니 이제 그 지긋지긋한 믿음을 버릴 때도 된 듯한데, 아직 의식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에하라는 이런 우리들에게 타협하지 않는 불복종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익숙한 상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일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지배의 논리에 포섭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반복해서 부를 게 아니라 그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 국가라는 짐승을 길들여야 한다. 우리 안에 갇혀서는 짐승의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밖으로 나가 짐승을 굶기면 그 놈도 말을 듣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문을 열고 나가는 방법은 뭘까? 국가폐지를 목표로 삼는 정치조직을 만들거나 이념을 구성하면 될까? 하지만 국가를 없애겠다던 사회주의 운동의 실패는 단순히 조직이나 이념만으로 국가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증명했다. 어떤 완성된 청사진을 가지고 현실을 그에 맞춰가는 방식으론 이제 사회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방향에 맞추지 말고 각자가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국가 없는 삶을 대비해야 한다. 무엇을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말고 마음으로 믿고 그렇게 살면 된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라는 우에하라의 외침은 권력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변화의 잠재력을 말해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는 말은 그런 개개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려 준다.

더구나 이 변화의 과정은 유쾌하다. 촛불집회가 이미 증명했듯이, 저항과 즐거움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분명한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즐거우면 사람들은 계속 저항에 나설 것이다. 어린 지로가 우에하라의 삶을 이해할 수 없어도 “춤을 추다보니 이게 또 무지하게 즐거웠다. 국가는 없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의식적인 선전이나 선동이 아니더라도 함께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레 서로의 삶이 녹아들고 대안이 뭉쳐질 수 있다. 엠마 골드만이 말했듯이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망설인다. 국가 없이 과연 살 수 있을까? 국가가 없으면 무질서와 혼란이 우리 삶을 위협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물음은 학습된 상식일 뿐이다. 국가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더 평화로운 삶을 누렸다. 『남쪽으로 튀어!』는 그 삶을 ‘유이마-루’라고 부른다. “‘유이마-루’라는 건 서로 품앗이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예전부터의 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요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집도 섬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해 지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야에야마 땅에 온 뒤로 사람들이 귀찮을 만큼 친절하게 대해주던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이곳이라면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한마디로 사유재산이라는 의식이 별로 없는 것이다. 모든 물건이 섬사람 모두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두레와 품앗이 같은 좋은 전통이 있고, 아직도 그런 전통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니 국가와 결별하는 것이 홀로 남겨지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가와 헤어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

‘단지’ 소설일 뿐인데, 그 얘기에 너무 흥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같은 얘기를 조금 다르게 얘기해 보자.

 

다중과 함께 세계공화국으로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의 『다중』(세종서적, 2008)은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을 찾는다. 낯설었던 ‘다중’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건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정치주체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실제로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다중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등장하고 있다).

제국의 시대에 권력은 한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작용하고 그 정점에는 초강대국 미국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는 거침없이 세계 곳곳을 정복하고 있고,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사막화와 같은 생태계 파괴 역시 국경선을 넘어섰다. 이런 세계에서 한 국가의 권력자조차 마음대로 끌어내리거나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네그리와 하트는 이런 물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제 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배하는 권력은 언제나 피지배자들의 동의나 복종에 의존한다. 주권의 권력은 따라서 언제나 제한된다.” 이미 제국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다중의 삶 역시 국가주권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 과거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여전히 유효한 다중의 무기는 “노예상태에 놓인 자신들의 지위를 거부하고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위협”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전 민족을 이끌고 이명박 정부에서의 탈출을 도와줄 모세가 필요할까? 네그리와 하트는 모세가 아니라 내부의 차이를 서로 소통하고 함께 행동하면서 공통된 것(the common)을 ‘생산’하는 다중이 그런 역할을 스스로 맡으리라 본다. 심지어 그런 다중의 저항은 제국의 주권까지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를 자율적으로 구성할 것이라 그들은 예상한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 못해도 다중은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아마 네그리와 하트도 한국의 촛불집회를 봤으면 틀림없이 놀라자빠졌을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잠재력이야말로 차이를 소통하고 공통된 것을 생산하려는 거대한 일렁거림이 아닌가. 촛불을 서울광장으로 제한하려는 해석들이 있지만 사실 촛불은 서울광장만이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밝혀졌고, 심지어 전 세계에서도 밝혀졌다. 그리고 촛불이야말로 하나로 뭉쳐지면 큰 불꽃을 이루지만 실은 제각기 다른 불꽃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촛불이야말로 최종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역시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된다. 복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저항의 불꽃은 낡은 세계를 불태우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특히 네그리와 하트는 “저항의 변화 형태들과 경제적․사회적 생산의 변형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응”을 강조하며 저항주체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네그리와 하트는 ‘비물질 노동’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문제해결, 상징적․분석적 과제들 그리고 언어적 표현 등과 같이 일차적으로 지적이거나 언어적인 노동”이나 “(미소를 지으며 서비스하는) 법률적 지원 노동, 항공 승무원들,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비물질 노동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 비물질 노동의 생산양식과 다중의 저항양식이 결합하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리라 본다.

현재 촛불집회는 스스로 학습하며 대운하, 민영화, 공영방송 등으로 자신의 의제를 확장하고 있지만 기륭전자, 이랜드, 미조직 노동자와 같은 여러 다양한 저항과 효과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아마도 “협력적 의사결정과정, 대등하게 결합된 친연집단들(affinity groups) 등등의 다양한 중요한 실험들”이 아직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한계는 단지 촛불집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촛불집회의 동력을 대의민주주의로 흡수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들은 자신들이 의제를 제안하고 제한하려 한다. 한편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네그리와 하트는 그런 주장이 왜 뒤쳐진 것인가를 잘 지적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대의민주주의가 “다중을 통치(정부)에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하는 두 가지 모순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다중을 제국에 묶어둔다고 비판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다중에게 “민중의 지배라는 통제된 소량의 약을 주고 이에 의해 다중의 무시무시한 과잉을 예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의민주주의는 다중을 제국의 내부로 포섭하려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정치 시스템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라는 우에하라의 외침은 운동 이상의 그 무엇을 요구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국가주권의 틀에 갇히지 말고 새로운 틀을 구상해야 한다.

이왕 지르는 거 국경선을 벗어나 원대한 뜻을 품어보는 것이 좋겠다. 세계공화국, 얼마나 그럴싸한가. 이미 18세기에 칸트(I. Kant)가 『영구평화론』에서 그 터를 닦기도 했으니 전혀 생뚱맞은 얘기는 아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니 가능/불가능을 논하기가 어렵고, 똥인지, 된장인지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찍어먹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에서 국가사회주의나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으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이념을 제안한다. 고진에 보기에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복지국가나 사회민주주의도 더불어 약해지자 자유주의나 종교 원리주의가 판을 치는데 이를 바로잡을 선택은 바로 어소시에이션이다.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려는 운동”인 어소시에이션을 오래된 미래로 제안한다.

『남쪽으로 튀어!』의 유이마-루처럼 어소시에이션은 호혜의 원리에 바탕을 둔 대안사회를 지향한다. 이 이념은 이미 맑스(K. Marx)와 프루동(P. Proudhon)이 공감했던 것으로 화폐와 자본주의에 맞서 “대체통화, 신용, 그리고 생산-소비협동조합(어소시에이션)의 연합”을, 대중을 약탈하고 재분배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국가에 맞서 세계공화국을, 민족이라는 거짓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네이션에 맞서 자유의 상호성을 주장한다.

고진은 이런 어소시에이션의 이념이 칸트에서 이미 드러났다고 얘기한다. 그 사회는 바로 “칸트적으로 말하면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사회”이다. 그리고 실제로 칸트는 “상인자본의 지배를 거부한 소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을, “그 이후에 출현할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션이즘의 핵심을 파악”했고 국가들이 그들의 주권을 양도함으로 “‘영구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연합을 제창”했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다중의 힘이 생산양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면, 고진의 이념은 규제적 이념(regulative idea)으로서 현실을 이상으로 인도한다. 규제적 이념은 우리가 조금씩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런 이상이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꿈 없는 인간이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설령 실현되지 않는 꿈이라 해도 꿈이 있기에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네그리와 하트와 달리 고진은 다중의 잠재력에만 의지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진은 네그리와 하트가 국가의 독자성을 무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중의 자기소외로서 있는 국가는 다중이 자기통치하는 것에 의해 지양될 것이라는 아나키즘의 논리입니다. 여기에서는 국가의 자립성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다중의 반란은 국가의 지양보다 국가의 강화로 귀착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진의 말에 따르면 국가는 그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전략은 내부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외부에서 지양하는 힘, 즉 “국가를 ‘위로부터’ 꼼짝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요구한다. 그래서 고진은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해서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운동을 연계시키는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를 주장한다.

이제 촛불도 이런 어소시에이션의 이념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넘어 자급과 자치의 삶을 강화시킬 대안경제를 구상하고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며 타자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상호성의 체계를 구성하면 어떨까?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러 생활협동조합과 지역화폐의 실험은, 지역의 풀뿌리공동체의 실험들은 그런 맹아를 품고 있으니 전혀 허황된 얘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국가주의 틀에 너무 오랫동안 사로잡혀 왔기 때문에 외부로 운동을 확장하고 글로벌 커뮤니티, 글로벌 어소시에이션을 구상하는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어쨌거나 내부를 단단하게 다지고 외부와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자세가 갖춰진다면 촛불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다중의 능동적인 저항과 자본=네이션=국가를 대체하는 어소시에이션의 이념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다. 이제 꿈을 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그 삶을 살아야 한다.

 

땅에 뿌리내리기

 

김종철은 『땅의 옹호: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녹색평론사, 2008)에서 공생공락의 삶을 강조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대안의 삶을 사는 건 특별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사안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태의 핵심을 직시하고, 우리가 정말 지향해야 할 ‘선진사회’란 대체 무엇이며,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사색할 줄 아는 비판적 능력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능력을 회복한다면 우리는 일상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네그리나 하트, 고진과 달리 김종철은 그런 일상적인 변화 속에서 땅과 농민의 존재를 강조한다. 좋은 세상이란 스스로 밥을 차려먹고 스스로 결정하는 세상이고, 그런 세상의 가장 바탕이 농경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옹호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농경문화라는 근본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평등한 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 개인적 자율성, 자치와 자립, 비폭력주의,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와 보살핌 등등, 아무리 인간정신이 경멸을 당하는 짐승스러운 상화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이러한 윤리적 덕목들은, 따지고 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형성되고 확립되어온 마을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강화되어온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진처럼 NAM이라는 어소시에이션을 새롭게 만들고 네그리와 하트처럼 비물질 노동과 조응하는 새로운 운동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래되고 소박한 원리이다. 단지 농경이 먹거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농경문화는 일 만년 이상 인류가 생활해온 삶의 방식이고, 농민들의 삶은 그 자체가 서로 보살피고 협동하는 관계를 구성하고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농촌공동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버리지 않고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개인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왔다. 농업을 산업의 하나로 보고 부가가치만을 논하는 시대에 김종철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땅을 옹호한다.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자본이나 국가의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 미래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연대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념을 대지 않아도 ‘대동(大同)세상’, 즉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는 세상, 즉 한 식구로 사는 세상”이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혈연, 지연, 부족, 인종, 종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는 세상”,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밥을 함께 먹는 세상, 그것이 바로 대안사회이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의 욕망을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일찍이 간디는 “지구는 모든 사람의 기본욕구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장기적인 지속성의 토대 위에서 차별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고 그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농업중심의 순환적 생활방식에 토대를 둔 사회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척결해야 할 것은 세계의 ‘낙후된’ 사회의 가난이 아니라, 세계의 ‘선진’ 사회의 풍요로움”이라는 말은 언제나 풍요로움과 선진화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농촌공동체에 바탕을 둔 생태적이고 소박한 순환사회만이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대안적인 삶도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자본과 국가는 끊임없이 이런 대안을 거부하며 우리의 삶을 압박할 것이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충돌, 침략은 우리 삶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저들의 계략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 침략은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지 결코 민중과 민중 사이의 대결일 수는 없다는 가장 근본적이되 흔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과 국가의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의 삶을 꾸준히 살고 대안을 실현하면 된다.

우에하라가 또 다른 삶을 찾아 떠나면서 지로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그래,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살자. 그러면 언제든 새로운 관계를 만날 수 있다. 김종철의 말처럼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까.


쇠고기를 넘어 삶의 변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지요. 단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놀라운 건 아닙니다. 더 이상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겠다라는 분노와 권력에 대한 조롱이 거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에, 내가 권력의 주인이라고 자각하며 정치가 그들의 독점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권력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한국의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왕에 맞서 일어난 수많은 민란들, 일제 식민지 권력에 맞섰던 평범한 민초들의 3․1운동, 부패하고 정당성을 잃은 권력에 맞섰던 4․19, 부마항쟁,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 91년 5월, 2002년 촛불집회 등 수많이 사례들이 우리 역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촛불행진을 새롭고 특별한 일로만, 그리고 준비되지 못한 우발적인 사건으로만 기록하는 건 그런 저항의 역사를 망각하길 바라는 강자들의 바람에 말려드는 겁니다. 맨 손으로 권력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의지는 매우 강하고 그렇기에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진심을 담은 것 같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사과하고 미국과 추가협상도 진행되며 조금씩 촛불의 힘을 빼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앞으로 촛불행진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한편에서는 이제 정당과 대의민주주의로 저항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언제까지 거리로 나와 요구를 주장할 수는 없지 않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정당과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리고 앞으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시민의 뜻과 바람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시민을 소외시키는 정당 내부의 잘못된 구조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은 채, 제도정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건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는 건 대중을 신뢰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권력이 시민의 것이라는 주장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이고, 실제로는 자신들이 권력과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를 독점해야 한다고 믿는 엘리트주의자들이라 대중의 정치를, 거리의 정치를 믿을 수 없는 겁니다.

또 다른 편에서는 국민소환제나 국민투표, 정권퇴진을 주장합니다.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그 뒤를 이을 사람들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상 그런 제도들이 한 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듯 하지만 그런 바람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저항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도에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죽 쒀서 개 준다는 속담을 실현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도는 언제나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요? 요즘 ‘생활정치’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가만히 보면 좀 이상하게 사용되는 듯합니다. 단순히 먹거리의 문제, 생명을 위협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리고 생명과 건강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생활정치라고 불러야 할까요?

생활정치는 기존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이번 촛불행진에서 청소년과 여성들이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등장했다고 하지만, 사실 청소년과 여성들은 그 전부터 정치의 주체가 되려고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기존의 성인 남성 중심의 정치제도가 이들을 정치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뿐이지요.

그런데 ‘새로운 등장’을 강조하는 세력들은 기존의 정치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은 채 그 성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이런 세력들은 청소년과 여성의 참여를 놀라워 하지만 정작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문제에 대해 여전히 무관심합니다. 참여를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학교와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가정으로 청소년과 여성을 다시 돌려보내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기득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존 정치구조의 교묘한 방식이고, 소위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조차 그런 구조와 은밀히 타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촛불은 일상의 삶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장을 참여의 장으로 만들며 성인 남성 중심의 대의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경험하는 장으로 가정과 학교를 바로 세우고 더 많은 청소년과 여성들이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수동성과 냉소를 심는 일상의 생활과정을 능동적인 정치참여의 과정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진정한 생활정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뜻을 바로 세우고 그 뜻을 지키고 키우려 노력해야 합니다. 반드시 거리에 나와 촛불을 켜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내 맘 속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거리로 나설 수 있습니다(아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거리로 뛰쳐나올 일은 수없이 많을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수를 두려워하는 듯하지만,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복종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뜻, 자발적으로 검열을 하지 않으려는 뜻입니다. 냉소하며 물러서려는 마음이야말로 권력을 쥔 자들이 가장 기뻐할 상황입니다.

그렇게 뜻을 키우면서 우리 사회에서 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손을 잡고 그들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연대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촛불은 더욱 밝아질 겁니다. 오래 타오를 뿐 아니라 더 크게 타오르면 촛불은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을과 코뮨을 논하다

 

하승우

 

조한혜정 지음 《다시, 마을이다》(또하나의문화, 2007년)

조한혜정 외 지음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또하나의문화, 2006년)

고병권․이진경 외 지음 《코뮨주의 선언》(교양인, 2007년)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난 뒤 공간을 보는 법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시선이 높이 올라가야 전방 15도 정도였고 땅바닥을 보며 걷거나 가야할 목적지로 빨리 걸음을 옮기느라 바빴다. 하지만 요즘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주민자치센터나 마을도서관, 놀이터, 공원, 학교, 복지관 등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단독주택이 어느 정도 있는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밝은지 살피느라 걸음이 늦다. 가끔 지방에 내려가야 할 때도 한 시간 정도 미리 내려가 마을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런 시선의 변화가 많은 얘깃거리를 줬기에 좋았지만 요즘은 버거울 때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마을 풍경이 불편해서다. 어디를 가든 비슷한 모습과 내용의 시설물들, 차도가 넓어지는 만큼 줄어드는 인도와 그만큼 위험해지는 보행자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와 삶에 지친 사람들의 한숨, 문을 닫는 구멍가게들...

얼마 전 전셋집을 구하러 서울 바닥을 헤매며 든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가급적이면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지 않는 집에 살고 싶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그런 동네들을 찾기도 했지만 좁은 골목엔 어김없이 재건축조합 공고나 조합장 선거 공고가 붙어 있었다. 재개발 예정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이대로라면 ‘토박이’라는 말은 곧 사전 속의 단어가 될 듯하다.

물론 남쪽의 농촌과 어촌으로 내려가면 아직 시골도시의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의 고즈넉함에는 북적거리는 생명의 기운이 없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인근의 대도시로 떠나고, 주름진 사람들과 거리만이 사라질 날을 예감하며 그곳을 지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마을은 비전(요즘 귀가 따갑게 듣는 단어이다)을 가지고 있을까?

 

 

‘다시 마을’에서 ‘어떤 마을’로

 

《다시, 마을이다》는 조한혜정씨가 신문이나 잡지에 썼던 칼럼과 대안교육 현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짧은 글들을 모았고 글재주 있는 사람의 글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다(반면 사건에 관한 통찰은 있지만 ‘깊이’ 얘기하지 못한다). 하자센터라는 대안교육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성미산학교의 교장을 맡는 등 도시형 대안학교운동을 벌이며 느꼈던 고민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제목은 마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책의 많은 부분은 교육을 다루고 있다. 물론 대안교육은 대안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기에 대안교육의 문제는 마을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이 미래의 시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연관성은 더 깊어진다(아이들이 ‘미래의 마을주민’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안교육으로 만난 사람들이 서로 공간을 나누고 돌보며 살아가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이 책의 제목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한혜정씨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고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방안으로 마을에 주목한다. 책을 살펴보면 조한혜정씨는 성미산 공동체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하다(성미산 주민들이 만든 생활협동조합과 학교, 아이스크림 가게, 반찬 가게, 차병원, 마을방송, 마을축제 등은 지역운동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노인들이 골목길 이곳저곳에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고,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가지 않고 가게도 자주 망하지 않아 단골이 되는 그런 마을이 후기 근대적 주거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을로 가는 방법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저자는 대안교육이든 마을만들기든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고 활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사회를 파헤치고 무한경쟁을 가속화시키는 세력은 시장과 자본이다. 저자는 “국가와 시민이 힘을 합쳐 자본이 독점해 가는 학습 영역을 탈환해 와야 할 때”이고 “대안교육계는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아래 그간의 교육적 실험을 체계화하여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저자는 도로가꾸기와 건물세우기로 변질되고 있는 정부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놀라운 일”이라 평가한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한국의 국가권력이 시장과 손을 맞잡고 땅덩어리를 파헤치고 교육을 망가뜨려 왔다는 건 상식이라 믿었던 터라 저자의 논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언론매체에 실린 글이고 연설문처럼 대상을 염두에 둔 글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에 실린 글만으로 조한혜정씨의 생각을 섣불리 판단하긴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는 나의 궁금증을 많이 풀어줬다. 이 책의 1부는 2005년 봄의 「돌봄과 소통이 있는 가족문화와 지역사회를 위한 심포지움」을, 2부, 3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다뤘다. 그래서 2, 3부도 《다시, 마을이다》와 연관성을 갖지만 가장 연관된 내용은 1부이다.

1부는 ‘돌봄사회’를 핵심주제로 내세우고 “집중적 권력과 배제의 논리로 움직이는 경쟁사회에서 포용과 소통의 원리가 주도하는 ‘따뜻한 근대’”로 이행할 방법을 가족과 대안학교, 마을에서 찾고 있다. 조한혜정씨만이 아니라 발제자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해체가 한창 진행 중인 후기 근대적 위기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을 돌봄이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다. 특히 “남성 이익을 대변하는 억압적인 지배기구”로 국가를 파악하던 기존의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벗어나 국가를 “여러 행위 주체들의 네트워크로 보면서 돌봄을 바탕으로 한 국가형성에 참여를 할 준비”(조한혜정)를, “여성운동을 통한 여성결사체의 정책 참여”, “성별적인 돌봄 규범과 실행이 일상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꾸는데는 보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허라금)을 강조한다.

사적인 영역이 다시 정치화되고 있고, ‘돌봄’에 대한 강조는 그 경향을 대표한다. 과거에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공사영역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허무는 방향이 과거와 다르다. 과거의 방식이 사에서 공으로 뚫고 나가는 것, 즉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방해하던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방식은 사적인 영역 자체를 정치화하는 방향으로, 돌봄을 국가의 재구성원리로 내세우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이런 방향전환은 국제결혼, 이주의 여성화라는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나는 돌봄의 가치가 중요하고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얘기, 키테이(Kittay)가 제안한 ‘돌봄의 사회적 책임의 원리’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나 제도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공감할 수가 없다. “돌봄을 바탕으로 한 국가”가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러면서 ‘돌봄’이라는 탈근대적 사유가 근대적인 복지국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자발적인 결사체들의 역할에 개입할 경우 기존의 자율적인 활동이 제한을 받는다. 이 점은 돌봄의 일종인 지역아동센터가 제도화되면서 ‘공부방’의 역할이 애매해졌다는 점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국가는 시설중심의 과시하는 사업,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하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활동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운동의 의미도 퇴색되기 쉽다.

그리고 근대이든 후기 근대이든 국가의 폭력성, 특히 한국 국가의 폭력성은 여전하다. 국익을 빌미로 농민의 삶과 농촌공동체를 무참히 짓밟고 경쟁력을 핑계로 시장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있는 한국의 국가권력에 왜 참여하고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나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책이 주장하는 돌봄의 가치가 단순히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돕는 게 아니고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에 근거한 행복한 삶과 사회”(사토 마나부)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와 어울릴 수 없다. 통치이건, 요즘 유행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이건 국가권력의 속성은 내부를 동질화하고 획일화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돌봄의 가치와 국가의 속성은 일치될 수 없다.

국가는 결코 마을을 만들 수 없다. 국가는 마을의 구역을 정하고 공무원을 임명하며 마을 안에 건물을 세울 수 있지만 그 마을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의 자율성과 자치를 인정하는 순간 국가는 자기 내부에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을 허용하는 셈이다. 그런데 자율성과 자치의 권리를 가지지 못한 마을은 마을일 수 없기 때문에 마을과 국가는 공존하기 어렵다.

《다시, 마을이다》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는 마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마을이 어떤 것인가를 얘기하지 못한다. 마을이 필요하고 마을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만 그 주장을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코뮨주의 선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코뮨주의, 우정과 기쁨의 공동체?

 

《코뮨주의 선언》은 여러 지식인들이 힘을 모아 만든 <수유+너머>에서 펴낸 책이다. <수유+너머>는 국내에 스피노자,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을 알리고 노마디즘, 유목민 등의 개념을 유행시킨 바 있다. 이 책은 <수유+너머>가 10년 동안 준비한 이론적 노력의 결실이자 맑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발표 160주년을 맞이하는 선언이다.

10년의 연구성과가 축적된 탓인지 낯선 개념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여전히 기계나 감응, 지층화같은 낯설고 어려운 개념들이 보이지만). 모두 9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6장부터는 코뮨주의 선언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철학적 정리이다(이진경, 고병권이 예전에 했던 작업들처럼 다른 사상가들의 입장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 글들이다).

《코뮨주의 선언》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장들을 코뮨주의라는 하나의 줄기에 꿰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완성에 저항하는 사유이고 실천”으로서의 코뮨주의라고 주장한다. 코뮨주의는 완성된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시키는 유연한 틀로 제시되고, 그 내부는 적대의 정치를 넘어선 우정의 정치학, 사적 소유로부터의 ‘떠남’과 ‘탈주’, 타자성을 추방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우정의 관계를 맺는 구성의 정치학 등으로 채워진다. <수유+너머>의 코뮨주의는 과감하게 국가에서 떠나 “자본과 국가에 의해 추방당한 광범위한 지대에서 코뮨적 삶의 방식을 구성”하려 한다.

코뮨을 건설하기 위해 망설일 필요가 없다. 고병권씨와 이진경씨는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고 “코뮨주의는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세상의 이름이 아니라, 언제든 도달할 수 있고 언제든 실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선언한다. 이제 우리 삶의 곳곳이 코뮨의 가능성을 가진다.

이 코뮨은 개체와 집합체의 대립,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어서고 분리와 경쟁이 아니라 공생과 공-조(共-調), 협조에 바탕을 둔 공동체이다. 적을 없애기 위해 내부의 차이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이질성과 타자에 문을 연 우정과 환대의 관계, 코뮨의 활동에 참여하는 한에서 구성되는 공동체, 리더나 중심을 제거하지 않고 각각의 영역이 모두 중심이고 능력을 가진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그 경계를 근본에서부터 변환하는” 공동체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참 많은 고민을 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기에 저자들이 들으면 어리석다 나무라겠지만 이런 코뮨을 현실에 세우기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많은 내용을 몸과 마음으로 소화하려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좋은 내용임을 인정하지만 멀게 느껴진다.

사실 코뮨을 얘기하기 위해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어려운 얘기는 하나도 없지만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권정생 선생은 우리 시대의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가 어떤 마음(능력이 아니다)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미 얘기한 바 있다. 우리시대의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사회와 삶을 파괴하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고 하느님을 찾는 길이다. “가장 사람다운 삶과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고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느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우정과 환대를 얘기하지 않아도 “가족 중에 누군가 먼길을 떠나면 그날부터 끼니마다 밥을 한그릇씩 떠놓”고 “우연히 집에 찾아오는 나그네가 있으면 기꺼이 대접”하는 마음,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아예 사랑채를 비워놓고 나그네를 받아들”이고 “들판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 함께 점심을 먹는” 마음, 고수레와 까치밥, 까마귀밥을 남기는 마음은 자연의 생명체와도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다. 코뮨을 얘기하지 않아도 “산에 사는 노루나 토끼가 마을에 내려오면 절대 잡지 않는다. 그들이 마을에 내려온 이상, 우리 마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살고 있는 능구렁이도 우리집을 지켜주는 집지키미가 된다”는 마음은 이미 코뮨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코뮨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이미 잃었고 생존경쟁과 독식의 욕망만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의 희망은 살아있나?

 

국가는 신자유주의 현실에서도 잘 살아남았고 오히려 자기 기능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국가약화의 신화’는 국가를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사상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비판을 감소시킨다. 《제국이라는 유령》(이매진, 2007)에서 엘린 메익신즈 우드는 “지구화의 본질은 민족국가가 가진 능력의 쇠퇴가 아니라 지구적 자본을 위해 세계를 조직화하는 민족국가의 독특한 기량”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이 세계화에서 이득을 보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세계를 조직할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드는 “참으로 효과적인 반대투쟁을 하려면 자본의 힘이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국가 안의 중심점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마을은 국가 없는 곳이 아니라 국가가 지배하는 곳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을이나 코뮨에 관한 논의들은 이런 현실을 자꾸 비켜가려고만 한다.

그리고 마을의 자치는 스스로 물자를 공급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급할 수 없는 사회는 자치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마을을 세우고 특이성이 서로 리듬을 이루는 사회를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 외부에서 존재하려면 자급이 가능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조차 자급하지 못하는 마을이 어떻게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앞서 살핀 논의들 어디에도 이런 고민을 찾을 수 없다. 농민공동체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은 어떻게 자치를 할 것인가? 나라의 자치만이 아니라 마을의 자치를 위해서도 자급의 문제는 반드시 고민되어야 한다.

대안은 더 밑바닥에서 나올 수 있고 이미 현실에 잠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현실에 대한 대안이 어느 순간 대안 없음으로 바뀐 건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대안이 현실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서, 현실 속에서 대안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우리들만의 대안으로 자라버렸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퍽퍽하기 이를 데 없는데 대안을 외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잘 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진보에 대한 냉소를 넘어 진보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건 그런 분리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다독이고 사로잡아야 한다.

탈선하고 탈주한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 이 세상에 소금처럼 귀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마을이 주류가 되려 하거나 벗어남으로 그친다면 그 소금은 소금일 뿐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물질이 되지 못한다.


  1. 여름_녀름 2009.02.19 02:05 신고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의 돌봄노동에 치를 떠는 사람인데돔 이를 국가가 수행하길 원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네요(여성들의 돌봄노동은 사회적으로 인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라는 것은 그 덩어리와 단어일 뿐이지 실질적인 주체는 아닌데 국가가 돌봄노동을 해야한다라고 하면 국가안에 누군가가 돌봄노동을 맡게 되겠죠. 그 누군가가 남성주체 혹은 그동안 돌봄노동을 하지 않던 (덜)하던 영역에서 각성하여 몸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 동안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끊임없이 돌봄노동을 하던 사람들만 더욱더 역할의 강화를 요구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취생몽사 2009.02.19 17:45

      안녕하세요. 공감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저 역시 그런 내부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부조리를 재생산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블로그에 첫 댓글을 남기셨네요.^^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자급과 공생의 정치

 

하승우

 

요즘 들어 민주주의의 핵심원리가 대의민주주의라는 주장을 자주 접한다(로버트 달R. Dahl이나 최장집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해석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원을 망각한 무지의 소치이다. 단순히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 있음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민주주의가 민중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등장했고 그 투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역사성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지배층이 민중에게 준 선물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왕과 귀족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일반 민중을 배제하고 지배하는 현상, 그래서 민중이 공동체의 정치주체로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민주주의는 집회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가 투표권과 발언권을 가지고 몇 시간 동안 논쟁을 벌이는 집회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였고, 전문가를 배격하고 시민이 아마추어(idiotai)로 참여하는 평민 민주주의였으며, 모든 시민이 돌아가며 한번씩 공직을 맡는 교체(rotation)의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특정 계층이나 전문가가 정치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순환시켜야 하고 그런 순환을 거치며 민중이 정치주체로 성장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에는 민주주의란 말이 없는 대신 민본주의(民本主義)란 말이 있었다. 맹자(孟子)는 “지배받는 백성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것이요,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신들은 다음으로 존귀한 것이다. 그리고 지배하는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 “한 나라의 군주(제후)가 그 나라의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그 군주는 곧 변혁하여 새롭게 갈아치워야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민중을 위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이렇게 보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민주주의는 특정 계층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민중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등장했다. 민주주의는 현실의 부조리한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대안이었고,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되고 않고 주체로 서려는 꿈틀거림이었다. 이런 꿈틀거림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게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래도 대의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가 소수의 민주주의였을 뿐이라며 대의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허나 현대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고대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전유물이고 시민의 자격은 제한되며(외국인, 빈민, 이주노동자의 시민권을 생각해 보라!) 정치권력은 민중을 통제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대의민주주의가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더욱더 민주적이라는 점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던 서구 선진국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삼고 식민지를 늘렸다는 점은 그 민주주의가 타인의 땀과 피를 딛고 개화했음을 증명한다. 제 아무리 멋들어진다 한들 그것이 타자의 땀을 착취하고 피로 억누른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보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그런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건 무지보다 더 심한 문제이다.

그리고 서구의 대의민주주의가 도입되지 않았던 때에 우리에게는 고유한 정치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었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나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외부의 것을 무조건 배우고 수용해야만 가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서구가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많은 사상가들은 ‘고대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근대라는 난쟁이’라는 은유를 자주 썼다. 근대의 사람들에게는 고대라는 유산의 크기가 너무 컸다. 스스로 움츠려 들지 않기 위해 그들이 썼던 은유가 바로 고대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태어나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는 난쟁이였다. 비록 은유를 썼지만 근대인들은 결코 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인이 남겨놓은 정치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 글은 대의민주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에 스며있는 민중의 정치적인 잠재력을 깨닫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나아가 반정치적 또는 비정치적이라 여겨지는 농민의 삶과 농촌공동체에서 실현되었던 중요한 정치원리를 발견하려 한다.

 

 

자연상태의 발명과 국가에 갇힌 정치

 

최근 서구 학계에서 유행하는 정치이론들은 모두 자연상태를 발명했던 홉스(T. Hobbes)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제국과 다중을 주장하는 네그리(A. Negri)나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존재에 주목하는 아감벤(G. Agamben) 모두 홉스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네그리는 『다중』(세종서적, 2008)에서 홉스가 “부르주아지에게 적합했던 사회체의 성격과 시민권의 형태”를 정의하면서 “국민국가의 형태로 유럽에서 발전할 주권의 형태”(22쪽)를 규정했다고 주장한다. 홉스는 자연상태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질서를 잡을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질서에서 합리적인 시민은 무질서로 이끌 주권을 국가에 양도하고 규율 잡힌 질서 속에서 자신의 소유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지는 국가주권이 결정한다. 홉스는 그런 자연상태가 실제로 존재했는가보다 주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물음, 즉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사라졌고 무엇이 각자의 이득을 더 많이 보장할 것인가라는 계산만이 남았다.

그런 점에서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에서 “홉스의 자연상태란 국가의 법률과는 무관한, 법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법을 구축하고 그러한 법 속에 정주하는 예외이자 경계선”(216쪽)이라고 말한다. 홉스에게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사라지면 언제든지 사회는 자연상태로 복귀한다. 주권이 없는 곳에는 오로지 폭력과 죽음뿐이다. 바로 이런 끔찍한 예외상태를 빌미로 국가는 언제든지 민중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었다. 자연상태를 전제하는 이상 국가를 제외한 정치는 불가능했다.

네그리와 아감벤의 논의는 홉스가 자연상태를 발명하고 그것을 전쟁과 동일시함으로써 근대의 국가주권을 정당화시켰다고 본다. 홉스는 주권자와 계약을 맺는 인간의 동의가 이성과 언어, 이득과 손해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주권은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라는 ‘착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 자연상태는 국가와 무질서의 경계를 규정하는 국가주권을 정당화시켰을 뿐 아니라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홉스는 시민들의 정치적인 성장을 돕던 사회적 관계를 지워버리고 그들을 이기적인 개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순간, 언제나 무질서라는 최악의 상태가 떠오른다. 국가를 넘어선 대안, 국가를 배제한 대안은 자연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다. 민중의 대안적인 상상력은 국가라는 틀 속에 갇혔다. 민주주의를 주권으로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진정 그런 자연상태가 존재했는가? 크로포트킨(P. Kropotkin)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2005)에서 그런 상태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원시사회의 씨족공동체에는 서로 돕고 사는 풍조가 만연했고, 독립된 가족과 사유재산의 출현에도 공동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집중된 부를 재분배하는 제도들(예를 들어, 포틀래취)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삶에서 어떤 시기에도 전쟁이 정상적인 상태인 적은 없었”고, “형평성, 상호부조, 상호지지 등의 개념은 대중들이 자신의 사회조직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작용해왔고, 이는 포악한 신정제나 독재정치에 복종하고 있을 때조차 발휘”되었다(149~150쪽).

시간이 흘러 과거의 씨족 공동체가 사라지고 촌락공동체가 만들어진 뒤에도 상호부조의 생활양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촌락공동체는 “공동경작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가능한 상호지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지식이나 인종 간의 결속 그리고 도덕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합”(163쪽)이었고, 민회라는 고유한 정치질서를 마련했다. 농민들의 민회는 인공적인 정치질서가 아니라 협동노동과 공동소유에 기반한 자연적인 정치질서였다. 민회는 촌락 공동체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민회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공동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근대국가가 등장해 촌락공동체들을 억압하고 해산시킨 뒤에도 촌락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시도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촌락공동체 제도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생각에 매우 잘 맞아 떨어”졌기에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관습과 습속”이 농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281쪽).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근대국가의 주권을 넘어설 대안이 공유제와 농민에게 있고 “현재 만연되고 있는 무모한 개인주의 체제하에서도 농민 대중들은 상호지원이라는 유산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음”(294쪽)을 주목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홉스의 자연상태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국가의 주권을 정당화하며 민중의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기 위해 ‘발명된 개념’이다. 근대국가는 개인의 소유관계를 제한하고 땅의 공유와 공동작업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성장을 추구했던 공동체의 역사를 은폐하고 전통을 끊으려 했다. 그리고 사회계약에 따른 대의민주주의 역시 민중의 관심을 개인적인 소유로 전환시키고 정치를 특정 계급이 독점하면서도 지지를 받기 위한 장치였다. 거대하게 세워진 의사당이나 행정부는 민중의 일상생활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촌락공동체의 정치질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지 않았다. 민회라는 정치공간은 의회처럼 민중의 일상생활과 분리된 인공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소농의 삶과 자급․공생의 정치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윤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이 바로 정치의 생명력이다. 자연히 농민의 삶, 특히 소농의 삶은 그 삶에 맞는 정치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농민은 땅을 일구며 땅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자연의 지혜를 알고 있었고 홉스처럼 자연을 일방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고 자연상태를 전쟁으로 몰고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농민은 인위적인 변화를 거부하며 자연적인 평화로움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 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농민은 “폭력에 대해서는 비폭력으로, 권력에 대해서는 무저항의 자세로” 맞서고 “인간의 속성으로서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폭력이나 지배욕을 제어하는 기능”을 자연스레 배웠다(유킨도, 130쪽). 스스로 땅을 일구어 먹고 살 수 있다면 폭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는 농사일은 농민들이 서로 돕고 함께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그래서 소농의 삶에서는 ‘자급(自給)’과 ‘공생(共生)’이 중요한 정치원리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급을 뜻하는 아우타르케이아(autarkeia) 또는 아우타루키(autarky)는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뜻했다. 그런데 이 자급은 경제적인 자립성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납세의 의무를 지니고 투표권을 갖는 것 외에도 공공생활이나 군사활동 등 모든 기능에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상호협력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이 중요한 공동체의 결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공동체의 규모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규모를 유지한다고 해서 농민의 삶이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는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민은 여러 가지 다양한 생명 종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결코 토양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유킨도, 85쪽)는 점도 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깨달았다. 여러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삶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듯이, 여러 사람들의 서로 보살피는 삶이 공동체를 튼튼하게 한다는 점도 분명했다.

개인적인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이나 생산물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삶도 망가뜨린다는 점은 삶에 깃든 지혜였다. 그래서 농민의 삶에서는 발명보다 그런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이 더욱더 중요했다. 그 발견은 얼마나 놀라운가? “제4의 눈은 그곳의 풍경 속에 조상의 영혼이 참여함을 확실히 파악하고, 타관 사람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흙 위에 아름다움을 새기고, 무심히 그것을 감상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농심(農心)이란 이러한 것이 아닐까.”(유킨도, 151쪽)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고대 그리스의 농민공동체는 지중해 세계의 확대와 상업의 발전을 거부했다. 울프 선드호슨(Ulf Sundhaussen)이 지적했듯이, 당시 농민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간계층의 미덕이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만들어서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협한다고 봤다. 상업상의 경쟁은 외부 공동체와의 전쟁을 불러왔고, 공동체 내부에서도 빈곤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민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주강현은 한국 농민공동체의 핵심을 조선 후기에 발전했던 ‘두레’에서 찾는다. 보통 30~50호 정도의 가구가 모인 두레는 단순히 서로 일을 도와주는 모임이 아니라 “사유적 요소를 극복하고 공유적 계기와 밀접하게 결합”된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레는 단순히 서로 일을 돕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마을의 공유재산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두레의 구성원들은 함께 일하며 생긴 수익금을 모아 자산을 늘리고 일정한 액수를 반드시 적립했다. “두레가 분화된 이후에는 각자 노동의 대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조선 후기의 두레에서는 공동체적 강제가 강했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 부분을 공동 적립시켜야 했다.”(99쪽) 그리고 18, 19세기에 지배층이 동계를 하나의 납세단위로 묶어 공동납(共同納)을 강화하자, 이런 세금부담은 주민들을 단합시켰고 동중답(洞中沓)과 같은 마을의 공동재산을 확대시키기도 했다. 이 공유재산은 두레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공유재산은 농민들의 자급과 공생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레는 촌회와도 연관되었다. 두레는 “마을의 정신적 상징인 마을굿을 모시며, 두레를 조직․운영하고, 동산(洞山) 등 공유재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촌회(村會)를 열어 공동의 일을 토의 결정”했다(84쪽) 두레는 마을굿과 공동노동의 조직과 운영, 공유재산의 관리를 위해 촌회라는 정치기구를 뒀고, 그 속에서 농민들은 정치를 경험했다(호남지방의 경우에 두레는 모정(茅亭)이라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때때로 이 두레는 양반층의 향촌지배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의 농민공동체를 양반들이 지배하던 봉건적인 공동체로 보는 편향된 시각은 그 내부의 정치적인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다. 양반들이 마을을 지배했다고 해도 그것이 고대부터 내려온 농민공동체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했다. 양반이 주도하던 향회도 단순히 농민들을 지배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때때로 향회는 “대소민을 막론하고 빈부 모두 곤궁해지는 위기적 상황에서, 끝없는 관의 가렴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 생존을 위하여 상하가 연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철종 때 괴산에서는 수령의 자의적 결가책정에 대하여 반대하는 향회가 29차례나 열렸으며 각처에서 관의 부조리한 조처에 굴종하지 않고 통문을 돌려 향회를 소집, 단합된 여론을 배경으로 수령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읍소(泣訴)’를 감행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감영에 진정하는 ‘의송(議送)’에 나서는 등 향회는 점차 반관적 저항을 위한 모임의 장소가 되었고 드디어 민란의 온상 구실을 하게 되었다.”(김용덕, 40쪽) 이처럼 마을 내에는 봉건적인 지배원리와 농민의 자치적인 정치원리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처럼 동서양 어느 곳에서나 농민공동체는 자기 나름의 공동체적 정치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런 질서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자연스런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농민의 삶은 자급과 공생에 바탕을 둔 정치가 자율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임을 말해준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농민들은 공동체를 꾸리고 자급하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고 삶과 일치하는 정치원리를 실현했다. 농민의 삶으로 다져진 거인의 정치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의 성립은 이런 소농의 정치질서를 파괴하고 대체하기 시작했다.

 

 

식민지와 농민공동체의 파괴

 

농민의 삶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확장을 거부했다. 화폐경제에 편입되기 전에는 “가족 한 사람당 농지가 얼마나 확보되는가 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였고 “자급자족 단계에 있는 농업에서는, 항상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농지가 얼마나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농민의 최대 관심사”(유킨도, 108쪽)였다. 하지만 화폐경제는 이런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식민지화는 농민공동체를 체계적으로 파괴시켰다.

『농민의 도덕경제: 동남아시아의 반란과 생계』(아카넷, 2004)에서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은 지주와 국가에게 얼마나 빼앗겼나보다 자신에게 ‘얼마가 남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농민의 생계윤리가 전통적인 농민공동체를 지배해 왔다고 본다.

이런 농민의 윤리는 호혜적인 제도들을 통해 실현되었다(스콧은 이런 호혜적인 제도들이 평등주의적이거나 이상적인 제도보다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 노동력을 붙들어두려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쨌거나 그런 생계의 도덕윤리는 “빈민에게는 생계의 사회적 권리가 있다는 것”과 “엘리트는 가난한 자들의 생계를 위한 예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최대한 공식화는, 엘리트는 결핍의 시기에 종속자들의 생계유지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적극적인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54쪽)을 분명히 했다. 마을의 공유재산은 과부나 고아들이 살아가도록 지원했고 “정상적인 시기에 ‘가장 약한 자의 생존’을 보장”(67~68쪽)했다.

하지만 서구 제국의 식민지화는 이런 도덕경제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식민권력은 공유지를 박탈했고, 세계시장 편입에 따른 곡물가격의 불안정은 생계를 위협했다. 이런 변화는 농민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을의 임야나 공유지가 사라져 마을 공동체의 보호틀이 사라졌고, 마을의 부유층은 빈곤층의 요구를 무시하며 사법기관이나 경찰을 동원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시장가격의 변동과 인구증가로 마을의 재분배 압력은 효력을 잃었다(89~90쪽). 농민의 자급적이고 서로 보살피며 살아갈 토대 자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덕경제를 무너뜨리면서 식민권력은 세금으로 농민을 착취했다. 인두세와 토지세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거셌지만, 식민권력은 자신들의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의 범위를 더 넓혔다. 과거의 지배자들과 달리 “왕권에 저항할 수 있었던 지역 수장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132쪽)던 식민권력은 근대적인 무기와 상비군을 도움을 받아 저항을 잠재웠다. 그리고 식민권력은 “분산된 지역적 관습과 절차를 좀더 동질적인 전체로 통일”시키기 위해 중앙집중화된 강력한 관료제도를 만들었다. 식민권력은 농민들의 경제적인 삶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삶도 짓밟았다.

식민지 국가의 등장과 농민공동체의 붕괴는 스콧이 관찰했던 동남 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일제 식민권력은 한국 사회에 배타적 소유권을 확립했고 공유지를 박탈했다. 1919년대에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은 배타적인 토지소유권을 확립했고, 많은 농민들이 소유권을 잃었다. 두레와 촌회의 전통 역시 식민권력의 침투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제 식민권력은 전쟁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이를 위해 강력한 관료제도를 도입했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사례는 농민의 삶과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가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식민권력은 최소한의 동의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채 농민들을 수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켰다. 그러니 식민지를 경험한 곳에서 근대정치로의 전환과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국가와 자본의 폭력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이어졌고 민중의 정치적 잠재력은 끊임없이 그 폭력에 시달렸다.

 

 

민주주의의 혁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비극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공유지를 박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세금을 걷기 위한 관료체계와 내부의 반란을 막기 위한 공권력이 강화되면서 국가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전통적인 공동체나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는 낙후되거나 봉건적인 유산으로 매도당하고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민중의 몸 속에 각인된 정치적인 잠재력을 두려워하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민중의 삶과 정치를 분리하려 한다.

그런 분리의 수단이 바로 제도화이다. 그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제도로 가두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세계 역사를 통틀어 근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도로 구현된 적이 있었나? 민주주의를 특정한 제도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정치현상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함석헌이 얘기했던 바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함석헌은 민중을 지배하는 기풍과 제도의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육신이 사는데 집 옷이 있듯이 제도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울타리다. 집은 닫기운 것이요, 닫겼기 때문에 집이지만 집 안에 오래 있으면 공기가 흐리고 독소가 생겨 사람이 죽게 되듯이 제도는 고정한 것이요, 고정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지만 제도가 오래면 사회는 반드시 해를 입는다. 그것은 생명은 쉴 새 없이 자라는 것인데 제도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를 언제나 건전하게 발전시키려면 제도를 끊임없이 고쳐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에 강건한 기풍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할 때는 실질적으로는 사회제도의 혁신을 말하는 것이다. 제도를 그냥 두고 개선을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제도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성장에 맞는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이제 민주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이고 제도는 그런 성장을 반영하는 근본적인 혁신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우리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을 찾을 것인가? 선드호슨은 “서구식 처방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과거의 결함으로부터, 또 산마리노 같은 나라의 역사로부터 배워서, 다수 인민 즉 농민계급을 민주적 정치 속으로 참여시키는 길을 선택”(169쪽)하자고 얘기한다. 그렇다, 1만년 이상을 이어온 자급자족과 지속의 공동체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결코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상하는 반동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전통을 복원하고 주권의 논리로 민중을 억압하는 국가를 넘어설 대안일지 모른다. 따라서 무기력하게 대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할 게 아니라 민중의 역동적인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녹아있는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농민의 정치원리를 따르는 정치질서는 인공적이거나 가공의 정치상황을 발명하거나 상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1만년 이상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온 정치원리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자연상태에 대한 학습된 두려움이나 국가주권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 자급과 공생의 길을 개척하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촛불저항이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제대로 된 혁명

- D.H.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즐거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한국의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관한 이론적 고찰: 시론적 연구

 

하승우

 

1. 들어가는 말

 

현재 한국 사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 토건국가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산업의 불균형, 수도권 집중화의 심화와 지방권력의 비민주성,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권력의 유착과 비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과도한 권력화, 전문성을 빌미로 견제를 받지 않는 관료정치의 강화 등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에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드러난 정책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은 한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여전히 권력이 노골적으로 횡포를 부리고 선거과정에서 비리도 발생하지만, 과거에 비해 정책결정절차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절차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있다는 점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주방폐장 주민투표에서 드러났듯이, 합리적인 절차가 비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사용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하승우, 2006). 사실상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초점을 맞춰 온 것은 주로 제도적인 면이었는데, 그 논의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합법적인 정치권력의 교체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민주주의의 내용은 보다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향을 잃은 채 공허한 하나의 수사적 이름으로 그 실질적인 내용을 잃어가고 있다.”(박주원, 2007: 177)

그리고 단순히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만으로 통합할 수 없는 다양한 균열선이 드러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 사이의 균열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고, 여기에 남성/여성의 성차, 학벌사회의 격차를 더하면 그 균열선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또한 ‘88만원세대’처럼 세대간의 균열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우석훈․박권일, 2007). 더구나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이런 균열선들을 더 깊이 파고 있다.

반면에 이런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힘이어야 할 소위 진보운동은 대중과 분리되어 영향력을 상실하고, 과거의 관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합법주의에 매몰되고 있으며,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진보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박래군, 2007). 최근 민주노동당의 붕괴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과거의 낡은 이념적/정파적 대립구도는 단순한 내용적인 한계를 넘어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한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위기의 현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반성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 대안은 새로운 프레임을,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 성찰과 반성의 계기는 전혀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 때 마련될 수도 있겠지만 잊혀진 것들을 재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도 마련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서 그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굳이 풀뿌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이 제도보다 사람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체를 기르며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 그리고 최근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풀뿌리운동(grassroots movement)과 풀뿌리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이다.

 

 

2. 풀뿌리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최근 들어 풀뿌리운동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함께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풀뿌리운동을 바로 지역운동과 연결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하승수는 풀뿌리자치운동을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풀뿌리운동은 ‘지역’보다 ‘삶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폭넓은 의미의 지역운동과는 구분”되고 있다. 즉 운동공간을 지역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나 활동가 중심의 운동노선을 따르면서 사람들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면 풀뿌리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승수, 2006).

그리고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오관영은 풀뿌리운동의 특성을 “운동을 조직화하고 드러내는 방식”에서 찾는다. 가령 속도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대한 반성, 공간을 재조직화하기 위한 운동, 주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창구를 만드는 운동, 다른 언어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운동, 여성을 중심으로 한 운동, 제도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운동으로 개념화한다(오관영, 2006).

이렇게 정의할 경우 풀뿌리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기는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풀뿌리운동으로 정의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겠다. 모든 지역운동이 풀뿌리운동일 수는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단순히 지방에서 진행되는 운동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지방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각각의 지방에 고립된 운동을 뜻하지도 않는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와 세계화의 현실에서 지방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풀뿌리운동을 공간적 차원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어려움은 이론적인 면에서도 존재한다. 지방 혹은 지역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의 규모를 풀뿌리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행정구역단위나 인구규모만으로 풀뿌리를 정의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방이나 놀이터처럼 행정구역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되는 운동도 있고, 지리산권역처럼 여러 행정구역에 걸쳐 진행되는 운동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지역이라는 규모를 물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풀뿌리운동의 규모는 운동의 이슈와 방식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위 지역에서 활동하고 지방에 뿌리를 내리 전략으로 풀뿌리운동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정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풀뿌리운동을 단순히 지역에 지부를 만드는 활동으로 제한하거나 지역으로 풀뿌리운동의 활력을 제한하려는 생각을 ‘운동의 풀뿌리화’라고 부르는 것은 풀뿌리운동이 가진 특징을 오해하게 만드는 그릇된 해석이다.

풀뿌리를 공간적 차원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풀뿌리운동을 정의해야 할까? 공간적 차원 외에 많이 쓰는 방법들은 풀뿌리를 주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 개인, 주민, 시민, 민중, 대중, 다중, 계급 등 여러 개념들이 정치적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먼저 정철희는 대중을 정치주체로 받아들이면서 풀뿌리정치란 “대중의 일상적인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이들의 정치적 능력을 찾아내려는 시도”(정철희, 2003: 157)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운동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조직화된 운동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시민과 개인을 연결짓고 생협에서 사용하는 ‘생활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기존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을 모두 비판하는 자율주의 쪽에서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운동을 바라보는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 가야 할 주체”(이호, 2002: 47)라 명명한다. 그러면서 이호는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지웠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호, 2002: 57)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승수는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중요한 것은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치능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주체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풀뿌리운동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풀뿌리운동의 목적”(하승수, 2006: 3)이라고 주장한다.

이호와 하승수의 관점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주민이라 호명하지만 그 주민의 범주를 분명하고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뿌리운동을 주체의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는 주체를 ‘존재’의 관점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관점에서 고민하게 한다. 이 글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

이 글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특정한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반대한다. 르포르(C. Lefort)는 민주주의의 전례 없는 혁명적 특징이 “권력의 소재지(the locus of power)를 비어 있는 장소(empty place)”(Lefort, 1988: 17)로 파악한 점이라고 주장한다. 즉 민중이 권력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그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민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권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사람들로 민중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규정이 가져올 수 있는 배제(exclusion)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런 '정의의 여백‘은 자칫 풀뿌리운동이 낳을지 모를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회생태론자인 북친(M. Boochin)은 이런 여백의 개념규정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근대 도시의 거대한 규모가 마을의회운동(neighborhood assembly movement)을 구성하는데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을의회의 문은 누가 마을에 살든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개인은 마을의회에 참여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들은 참석하도록 강요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또는 무관심한 방관자나 나그네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은 충분히 논의거리들을 가질 것이다. 고려할 점은 참석하고 참여하려는 모든 이에게 집단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마을의회의 참된 민주적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Bookchin 연설문)

민주주의라는 말이 애초에 민중의 지배를 가리킴에도 풀뿌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 민중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대에 여성과 외국인,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면, 근대에도 마찬가지로 여성과 빈민,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이미 이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서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시민권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만일 시대와 사회적 상황이 변해 또 다른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들이 바로 풀뿌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을 지역이나 지방이라는 공간적 차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풀뿌리운동을 운동의 주체로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의 ‘희망투어’에서 드러났듯이, 중앙에서 고조되는 시민운동의 위기담론과 달리 삶의 터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다양한 풀뿌리운동들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이런 경향을 볼 때 한국의 풀뿌리운동이 기존의 시민운동이 드러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풀뿌리운동만으로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적 양극화, 매갈로매니아의 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이 가진 대안적인 희망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각한 인구집중(2005년말 전국의 48.3%)만이 아니라 사업체의 수도권 집중(2004년 기준 총사업체 수의 52%), 교육격차(지역별 학업성취도의 격차와 대학의 수도권 집중), 비정규직의 지속적인 증가 등 심각한 불균등발전은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난개발과 재개발 열풍 또한 고민의 틀을 확대시킬 것을 요구한다.

 

 

3. 민주화 운동의 단절과 잃어버림

 

기존의 사회운동은 풀뿌리민주주의나 풀뿌리운동이라는 개념보다 지역운동, 지역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김현우는 지역노동시장에 대한 개입, 지역경제운영을 위한 지역파트너십, 지방자치체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개입, 사회공공성 담론에 기반한 지역이슈, 지역발전전략이나 성장기획, 지역주민과의 유대강화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주장(김현우, 2005: 86~90)하지만 풀뿌리라는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관점을 따른다면, 김현우의 말처럼 이미 존재하는 지역 내의 다양한 운동자원과의 연대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런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즉 일반 대중이 참여를 통해 자기변화를 경험하며 정치적인 주체로 변하는 과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지역사회 변화전략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풀뿌리운동은 대중의 욕구나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소위 ‘과학적인 이론’의 틀에 삶의 방향을 맞추려는 운동과 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의 흐름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다양한 축을 맡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크리스챤아카데미, YMCA노동교육협회,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도시산업선교회, 야학협의회 등이 추구했던 운동은 풀뿌리운동의 틀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 9월 연세대학교에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도시문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미국의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S. Alinsky)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도시문제연구소>는 지역사회개발을 위해 빈민지역 주민들을 조직화하겠다는 목적을 가졌고, 1971년 9월 더 능동적이고 강력하게 활동하기 위해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설립했으며, 1973년 1월에 명칭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그리고 1976년에는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한국도시연구소, 1999: 59~60).

또한 1971년에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교육사상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면서 기독교 교육운동 활동가를 중심으로 민중교육사상이 논의․실천되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과 더불어 선교조직 방법론으로서의 알린스키의 조직 이론이 중요한 실천원리로 자리잡았고, 이는 ‘의식화․조직화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의식화․조직화’는 이후 민중교육운동의 중요한 지향으로 설정되었다(홍은광, 2003: 119~158).

기독교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외국의 운동이론이 수입되는 한편, 한국사회 내에서 자생적으로 이론이 구성되기도 했다. 일찍이 함석헌은 씨론을 펼치면서 민중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역사를 재해석하고 민중중심의 사회운동론을 제시했다. 함석헌은 씨에게 다가가 씨과 함께 호흡해야 하고 씨이 스스로 자신의 바탈(性)을 되찾고 하나가 되도록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함석헌이 써던 수많은 글과 그가 행한 수많은 강연은 조직이 아니라 말과 글의 힘으로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도 유교와 가톨릭, 노장 사상과 동학 사상을 바탕으로 원주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신용협동조합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한살림운동)을 벌였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밝히듯이, 장일순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관점을 세우고 생명에 대한 모심과 섬김, 살림과 무위의 사상을 밝혔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장일순이 개입했던 수많은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운동이 지켜야할 분명한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다양한 운동의 유산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실되었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 강조되었던 스스로 눈을 뜨기 위한 ‘의식화’, ‘조직화’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의식화, 조직화로 전환되었다.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말은 동일했지만 그 기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앞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대중이 자신의 조건과 세계를 인식하고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했고, 뒤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전위조직이 대중을 계몽시키고 선도하는 정치세력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맑스-레닌주의 중심의 조직운동관은 기존의 운동과 이론에 대해서도 다른 식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운동의 의미를 개량주의 등으로 단순화하고 폄하했다. 사회변혁을 둘러싼 논쟁마저도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특정 텍스트의 과학성이 쟁점의 수준과 논의의 진척에 따라서 검증되기보다는, 어떤 텍스트에 권위가 항구적으로 부여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허재영 2004: 193)가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풀뿌리운동의 흐름과 이론적 논의는 점점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물론 작은 지역단위의 실험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운동의 주된 흐름이 되지 못했고 자연히 그와 관련된 논의들도 줄어들면서 이론적인 발전이 정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 네 명의 사상을 추적하며 그동안의 민주주의 담론에서 상실된 내용을 복원하고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놓으려 한다. 이들 네 명의 사상가는 각기 비슷하지만 다른 장에서 자기 활동을 펼쳤다. 프레이리는 브라질에서 추방된 이후 미국과 세계를 돌며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알린스키는 미국 내 지역을 돌며 빈민조직화에 힘을 쏟았다. 장일순은 원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각종 지역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청학련 등 민주화 운동에 도움을 줬고, 함석헌 역시 곳곳에 강의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렇게 달랐지만 시공을 초월해 서로가 만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일순이 프레이리를 읽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광산촌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던 장일순이 알린스키를 접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일순은 가톨릭센터에서 함석헌 등의 각종 지식인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중요한 문헌들을 번역해 보급하며 이른바 ‘원주캠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니 함석헌도 이를 통해 알린스키나 프레이리의 이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복원을 위한 이론적 디딤돌과 고민

 

그동안 알린스키를 다룬 논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에 《기독교사상》에 실린 글이나 그의 삶을 간략하게 조명한 글이 전부이다. 학위논문도 김규태의 “사회복지와 권력정책의 일연구 : R. 니버와 S. 알린스키를 중심으로”(1975)와 이경자의 “한국적 지역사회조직의 사회행동 모델 사례연구 :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중심으로”(2000)가 있을 뿐이다. 단행본으로는 알린스키의 글과 그 제자들의 글을 간추려 편역한 『S.D. 알린스키: 생애와 사상』(현대사상사, 1983)이 한글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하지만 <도시문제연구소>나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등의 단체들이 알린스키의 조직화론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지금도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은 알린스키의 이론을 중요한 이론적 틀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코넷의 트레이너인 최종덕은 코넷의 뿌리가 알린스키의 이론에 있음을 밝히면서 주민조직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알린스키의 이론이 실제 운동현장에서 많이 다뤄졌다면, 프레이리의 교육론은 그동안 교육학과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 주된 주제는 프레이리의 대화교육론, 변증법적 교육론, 인간주의 교육사상, 비판적 문해교육 등이었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프레이리의 사상을 다루고 한국 운동과의 접점을 구체적으로 모색한 논문도 있는데, 홍은광의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수용과정과 한국 민중교육운동에 대한 영향”(2003)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다룬 단행본들이 계속 번역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 번역된 프레이리의 저작은 『자유의 교육학』(아침이슬, 2007), 『교육과 의식화』(중원문화사, 2007),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마일스 호튼과 공저, 2006),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아침이슬, 2003), 『교육과 정치의식』(한국학술정보, 2003),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페다고지』(그린비, 2003-재번역), 『프레이리의 교사론』(아침이슬, 2000), 『인생이 학교다』(분도출판사, 1988)이다. 출판연도에서 드러나듯이 1970년대, 80년대에 소책자 복사본의 형태로 돌려보는 수준에서, 2000년 이후 프레이리를 다시 조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 프레이리의 이론을 맑스주의적 계급이론으로 해석하던 편향성에서 벗어나 프레이리의 이론적 장점을 다양하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은 신학대학원에서 주로 다루어졌고,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을 이어 내려오는 무교회주의나 스승인 유영모에게 이어받은 씨사상 등이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비폭력사상과 노장사상 등도 주된 연구주제였다. 종교학과 철학에서 함석헌을 간혹 주목해 왔는데, 이동수의 “함석헌과 정치평론”(2001), 문지영의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이념 연구: 함석헌의 저항담론을 중심으로”(2006)는 정치학 쪽에서 접근한 몇 안 되는 논문이다. 또한 함석헌은 《씨의 소리》를 1970년부터 시작해 약 10년간 발행했고, 그의 글을 모은 책만 해도 20권에 달한다. 함석헌의 삶을 다룬 평전도 조한서의 『평화를 사랑한 아름다운 사상가, 함석헌』(작은씨앗, 2007), 씨알사상연구회의 『씨알 생명 평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한길사, 2007), 김용준의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 2006), 이치석의 『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창, 2005), 함석헌기념사업회의 『다시 그리워지는 함석헌 선생님』(한길사, 2001)와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삼인, 2001),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한길사, 2001),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삼인, 2001) 등 여러 권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사)함석헌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www.ssialsori.net/)에서 함석헌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생전에 직접 책을 짓지 않은 장일순의 경우 논문으로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박순금의 “장일순 생명사상의 생태유아교육적 함의”(부산대학교, 2003), 이영화의 “무위당 장일순의 사상과 활동”(강원대학교, 2006), 박경빈의 “무위당 장일순의 서화에 대한 미학적 연구”(성균관대학교, 2006)가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대략적으로 다룬 논문들이다. 단행본도 장일순의 강연을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1997), 이현주 목사와의 대화를 엮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삼인, 2003),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이 엮은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녹색평론사, 2004), 최성현이 일화와 글, 그림을 엮은 『좁쌀 한 알: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도솔, 2004)이 전부이다. 그리고 무위당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http://www.jangilsoon.co.kr/)이 마련한 무위당 기념관과 여러 자료들은 장일순의 행적과 사상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외에 네 명의 사상가를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협동조합, 대안교육, 지역화폐 등의 공동체운동을 분석한 이근행의 “한국 공동체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2006)와 1970~80년대의 대안공동체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고 있는 박주원의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기원”(2007)도 연구의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 연구는 네 명의 사상가의 얘기, 또는 그들에 관한 얘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인 풀뿌리민주주의운동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각 사상가들의 이론이 방대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사상을 밝히고 정리하는 것만도 방대한 분량의 연구를 요구한다. 따라서 각 사상가들의 이론적 특징이 무엇이고 어떤 발전과정을 거쳤는지에 관해서는 이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이들의 사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만 간략하게 언급하려 한다.

그리고 이 연구는 이들의 사상이 현실운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보다 이들의 사상이 어떤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맞닿아 있는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이 도시빈민운동, 야학운동, 비폭력 평화주의, 무교회주의, 한살림운동, 지역공동체운동 등의 현실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상이 직접 현실을 이끈다는 생각은 현실을 살아가는 주민과 민중, 씨, 민초들의 경험과 의지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이들 사상가의 이론과 일치하기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사상과 현실운동의 접합점을 찾는 작업 역시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이후 연구의 과제로 남겨놓는다.

이 연구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네 명의 사상을 정리하고 그 사상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는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각각의 사상가들은 기존의 사회운동관과 다른 독특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독특하지만 서로 얽혀 있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자기의식화와 대화의 중요성은 민중(활동가도 민중이다!)의 의식에서 시작해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알린스키가 부각시킨 분노의 조직화와 대중에 대한 신뢰 역시 민중이 스스로 의식화,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석헌의 사상도 씨이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고 외부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보다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얼의 변화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일순 역시 민중을 모시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 공생의 사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 네 명의 사상가들은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의 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로 삼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생적인 변화의 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5.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이론적 단초들

 

(1) 프레이리: 자기의식화와 함께함, 대화

 

이미 20세기 중반에 체게바라(Che Guevara)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사회운동이 풀뿌리운동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교육학’이라고 이름지은 『페다고지(pedagogy)』에서 미래를 길들여진 현재로 재생산하려는 우파와 미래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좌파 모두를 비판하면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혁명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프레이리는 “진보적 교육자의 한 가지 과제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진지하고 정확한 정치적 분석을 통해서 희망을 위한 기회를 밝혀내는 것”(프레이리, 200b: 12)이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프레이리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재생산되는 지배구조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다. 프레이리는 이런 재생산의 원인을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의 모순”(프레이리, 2003: 56)에서 찾고 자기의식화만이 이런 모순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이 강조했던 전위조직이나 선도투쟁은 이런 자기의식화의 토대일 수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프레이리는 “해방교육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자기 사고의 주인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프레이리, 2003: 158)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혁명 지도부가 민중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민중 자신의 객관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즉 민중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관해 다양한 수준의 인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민중이 가진 특수한 세계관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교육과 정책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프레이리, 2003: 122)

그리고 이런 자기의식화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함’이다. 프레이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은,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부단한 투쟁 속에 있는 피억압자들(개인들이든, 민중 전체든)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 확립해 나가야 할 교육학의 몇 가지 측면을 제시할 것이다(프레이리, 2003: 60).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 양측을 매개하는 세계는 양측에게 영향과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하게 한다(프레이리, 2003: 119).

 

그렇다고 프레이리가 무조건 억압받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의 신비화, 민중지식의 절대찬양은 민중지식의 거부만큼이나 문제가 된다”(프레이리, 2002: 133)며 무조건적인 수용이 가지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프레이리는 “민중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라면, 민중지식을 절대 찬양하는 것은 ‘근본주의’”(프레이리, 2002: 133)라고 비판한다. 대중의 상식에 기초하지만 그 상식을 무조건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을 상식의 틀에 가두고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인정이나 거부는 양자 사이의 상호연관된 관계를 보지 못하고 둘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동일화하거나 차이를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프레이리가 비판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강조하는 것은 “민중의 지식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 혹은 스니데르스가 ‘원시 문화’와 ‘선진 문화’라고 부른 것 사이의 변증법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법”(프레이리, 2002: 134)이다. 그리고 민중을 바라보거나 민중과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들 속에서 서로 배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프레이리가 추구했던 사회운동의 방법이었다.

따라서 어느 한 편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상화시켜서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의식화하는 방식은 결코 사회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고 프레이리는 믿었다.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바로 ‘대화’이다.

 

대화적 행동이론에서는 주체들이 서로 협동하여 세계를 변혁하는데 참여한다. 반대화적이고 지배적인 나(I)는 지배당하고 정복당하는 당신(thou)을 단지 사물(it)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대화적인 나는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불러내는 당신이 또 다른 나를 구성하며, 그 나의 안에는 또 다른 당신이 있음을 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당신은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두 개의 당신이 되고 이 당신은 또 두 개의 나가 된다.(프레이리, 2003: 216)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민중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민중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민중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고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프레이리, 2003: 121)다.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은, 엘리트와 대중은, 전위조직과 민중은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공동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과 사회 속에 수동적으로 웅크린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보지 않았다. 수동적인 웅크림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 사람의 자기의식화와 함께 비슷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의 연대에서 형성될 수 있다. 그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함께함이고 대화이다. 이런 프레이리의 사상은 풀뿌리민중이 중요한 이유와 그들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알려준다.

 

 

(2) 알린스키: 분노의 조직화와 이해관계의 인정

 

알린스키는 타고난 조직가이자 주민조직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제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알린스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도 교섭을 강요할 수 있는 힘 없이는 교섭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추상적인 이념보다 “어떻게 힘없고 가난하고 무관심한 시민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느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알린스키, 1983: 37). 알린스키가 보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인 힘 없이 빈민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공허한 얘기일 뿐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선과 악의 문제는 힘을 얻고난 뒤에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알린스키는 주민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구성하고 그 힘으로 국가나 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을 많이 세웠다. 특히 알린스키는 분노를 조직화하는 전술, “불만을 선동하는 것, 그들이 좌절을 퍼부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 오랫동안 이전의 상태를 받아들여 밑에 깔려 있는 비행을 말소시킬 기구를 만들어 주는 것 등”(알린스키, 1983: 39~40)의 조직화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 분노만큼 인간의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분노와 함께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역조직화에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알린스키는 운동이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즉 현실이 “직접적인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권력장치의 투기장이며 그 안에서의 도덕이란 한낱 자기 이익과 정략적인 행동을 위한 수사학적 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알린스키, 1983: 141). 따라서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이 인간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추진력의 기능을 하고”, “자기이익의 중요성은 한 번도 의심되어 본 적이 없고, 인간 생활의 불가피한 요소로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알린스키, 1983: 155). 이런 알린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주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이다.

분노와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공공선이나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알린스키는 조직화를 위한 싸움에서 페어 플레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현실에서 공정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이미 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알린스키가 보기에 수단과 윤리는 반드시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수단의 윤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야 했다(Alinsky, 1989: 26~29).

마찬가지로 알린스키가 지역조직화 전략에서 방법과 목적을 분리시키는 점은 그 전략의 민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그러나 알린스키가 그런 전략을 주장한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였다. 오히려 타협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알린스키는 그런 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알린스키가 시카고에서 조직했던 빈민운동조직인 <백 오브 더 야드(back of the yard)>이나 흑인빈민운동조직인 <우드런 지역조직(The Woodlawn Organization)>, <FIGHT(Freedom, Integration, God, Honour, Today)> 등은 이런 전술을 충실히 따랐고 큰 성공을 거뒀다. 알린스키의 주장은 단순했다.

 

자, 너희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다. 너희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이렇게 차별대우받는 예를 깨뜨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단지 조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힘이란 것은 양극점이다. 즉 돈을 가진 사람들과 사람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너희들의 동료만이 너희들의 힘의 유일한 원천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너희들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이런 방법으로, 또 저런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너희들이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당장 한꺼번에 모두 궐기하라.(알린스키, 1983: 68~69)

 

하지만 분노를 조직화하는 것만으로는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조직할 수 있을까? 알린스키는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폭넓고 총괄적인 것이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주민활동가는 주민들 속의 지도자급 인물을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지도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주민의 전통은 주민들의 경험이라는 직물에 얽혀 짜여 있다. 주민들의 전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편견과 믿음과 가치관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민주적 행동을 방해하는 사회적 힘과 마찬가지로 건설적이며 민주적인 행동을 주장하는 사회적 힘을 확인하는 것”(알린스키, 1983: 119)이라며 지역사회의 전통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린스키는 프레이리처럼 “개혁가들은 대중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범한 이해의 기초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전향시키려는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조치와 전략은 그러한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4)라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알린스키는 조직화 단계를 거치면서 주민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알린스키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조했다. 첫째, 조직의 구성원이 처음부터 끝가지 전부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누구나 말하게 하고 잘못된 의견이나 반대의견이라도 묵살하지 말고 공유화하며 존중해주어야 한다. 셋째, 전체의 이익이 되고 개인의 이익이 되는 공동의 선(善)을 발견케 하고 이에 모두가 동의하게 해야한다. 넷째, 전체 구성원의 의사가 모아지고 결정되어지면, 행동방법에 대해서 협의하고 결정해서 모두가 그 결정에 따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다섯째, 조직된 후 곧 조직을 가동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여섯째, 쟁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원화시켜야 한다. 알린스키는 조직은 쟁점으로부터 나오고 쟁점 또한 조직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따라서 쟁점을 만들어 내느냐 못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서 조직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이경자, 2000: 24).

설령 지역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중에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활동가는 신념으로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활동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중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면 안 된다. “그는 이러한 태도와 행동들이 열악한 환경의 결과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심판받아야 할 것은 대중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환경이다. 그러므로 사회변화에 대한 개혁가들의 열망은 더욱 견고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23) 이런 신뢰와 신념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알린스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알린스키는 활동가가 그런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가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을 통해 풀뿌리 민중은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며 자생적인 지도자(native leader)로 거듭나게 된다.

 

 

(3) 함석헌: 역사의식과 서로 울림, 꿈틀거림

 

김상봉은 서구철학의 타자성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을 함석헌의 역사철학에서 찾고 그것을 ‘슬픔의 해석학’이라 부른다. 고난과 슬픔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서 하나가 되는 연관성을 만들고 “역사의 슬픔이 곧 지금 우리 자신의 아픔과 슬픔이 되는 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며, 모든 주체가 그러하듯, 우리 또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감으로써 주체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과 슬픔은 우리의 자기의식의 본질적 내용이다.”(김상봉, 2002: 328) 이렇게 자신에게 돌아온 자의식은 슬픔과 하나되어 단순히 체념하지 않고 불행한 현실을 부정할 또 다른 현실을 사유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자의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자의식으로 그치지 않는다. 함석헌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인격이란 것은 있기는 개(個)로 있으나 그 바탕(性)은 사회적인 것”(함석헌, 1979: 162~163)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고 전체요, 마찬가지로 “한 시대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결코 개인행동의 타락이나 어떤 제도의 깨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사회가 어지러워진 결과로 오는 것이다. 어지러움은 그보다도 전체의 산 통일이 깨지는 데서 온다.”(함석헌, 1979: 277) 따라서 고난을 겪으며 회복된 자의식은 개인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전체의 통일을, ‘하나’의 회복을 추구한다.

따라서 심의용은 함석헌의 사상에서 고난이 “생명의 한 원리이며 동시에 생명의 길”이고 그렇게 생명을 품은 존재가 바로 씨이며 “이 씨알이 역사의 주체자”(심의용, 2005: 168)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심의용은 함석헌 사상에서 자치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서로 울림’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함석헌의 스스로 함 또는 자치(自治)는 서구적인 개인의 스스로 함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은 홀로 고립되지 않고 전체 속에 존재한다. 이 전체 속에서 개인은 우민(愚民)․우맹(愚氓)․민초(民草)․서민(庶民)․검수(黔首)․검우(黔愚)같은 부정적인 말에서 벗어나 씨로 성장한다. 비록 바닥에 있지만 어리석고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바닥에 버티면서 높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씨이라고 함석헌은 강조한다.

하지만 이 씨이 전체의 이름으로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석헌은

 

하나됨은 남의 인격을 존중해서만 될 수 있는 일인데 남의 인격을 아는 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서고야 될 일이다. 정말 제 노릇하는 사람은 제가 제 노릇을 할 뿐 아니라 남을 제 노릇 하도록 만든다(72). 거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인격은 곧 자존(自尊)이다. 스스로 높임이 스스로 있음(自存)이다(함석헌, 1979: 72~73).

 

라고 강조했다. 즉 하나됨은 차이를 존중할 때 가능하고 그 차이가 분리되거나 고립된 단자로 인식되지 않고 서로 엮여진 그물망 속에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으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진정한 하나됨은 내가 서고 남이 서고 우리가 설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은 “내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쓰고 사는 집에 당긴 불부터 꺼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있어 역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내다보고 거기 참여하는데서 사람의 살림이 나오는 것”(함석헌, 2002: 210~211)을 아는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함석헌은 전체가 단순히 부분의 합일 수 없다고 봤고 마찬가지로 전체가 나를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인 전체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역사 역시 인간의 인위적인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역사는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사건이고 그렇기에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절대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 그것은 거짓이 되고, 역사는 도그마가 된다.

따라서 함석헌은 민중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사람이 아니라 민중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 혁명가이고 그가 민중 속에서 하나되어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씨 속에 내포된 자기 바탈(性)을 되찾고 생명을 밝히는 것이어야 했다. 기풍과 습성의 변화 없이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여기서 함석헌은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만 제대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믿음, 그 사상이 정말 큰 것, 정말 높은 것, 정말 성한 것이 되려면 민중의 바다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단번에 증발이 되어 구름으로 된다. 시냇물이 정말 강산의 초목을 살리려면 한 번 하늘에 올라가 비로 되어 퍼붓지 않으면 아니되고, 하늘에 오르려면 골짜기 그늘 밑 돌 틈에 있어서는 될 수가 없고, 반드시 저 흙탕물 이는 돌을 거쳐 바다로 가야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함석헌, 2001a: 242).

어떤 이론도, 어떤 도덕도, 어떤 운동도, 씨의 밸 고분지 밑까지 내려가지 않고는 역사의 진행을 서두르는 폭풍을 일으킬 수 없다.(함석헌, 2001a: 243).

 

그렇게 되면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게 된다. 아니, 이미 민중은 스스로 깨어날 힘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함석헌은 이를 ‘꿈틀거림’이라는 개념으로 축약된다. 민중의 꿈틀거림이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힘을 생성할 것이다.

 

그 꿈틀이 무서운 꿈틀이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터지고야 마는 봄이 온다. 삶은 절대이기 때문에 터지고야 만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生)의 항의(抗議)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이다. 내가 이름 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함석헌, 1979: 20).

 

엄혹한 70년대에 함석헌은 어떻게 꿈틀거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을까? 함석헌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아무리 억압적인 독재권력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방이든, 음식점이든, 역이든 사람들을 만나는 곳에서 대화의 물길을 만든다면 독재권력이 그것을 막지 못한다고 봤다. 함석헌은 이런 일상의 공론장이 씨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극제가 되리라 봤다.

함석헌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아래로 내려가 씨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옆을 지키며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씨이라는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함석헌은 생명이 자라듯이 사회의 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고 봤고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바탈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고 봤다. 이 점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제도나 전문가 중심의 활동이 씨들과 괴리되어 결국은 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자신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내 바탈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또한 그 변화는 개인의 고독한 사색이 아니라 씨들과의 서로 울림을 통해, 꿈틀거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4) 장일순: 모심과 공생, 무위

 

장일순의 사상은 세상을 전일적(全一的)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김종철은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사상’을 전한 것만으로도 장일순의 업적이 엄청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세상만물의 순환적인 상호의존 관계야말로 성장과 개발로 대표되는 폭력적인 지배가 판치는 현실을 넘어설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풀뿌리 민중에 대한 모심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74).

이런 전인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장일순은 이익과 경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졌고 이 둘의 연관성을 간파했다. 장일순은 “인간이 사물에 대해서 선악과 애증을 갖게 되면, 취사선택이 있게 마련이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선호의 관념은 이(利)를 찾게 되고, 이것은 자연히 현실에서 이웃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8)지리라고 봤다. 이익에 기반한 경쟁은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결국에는 생명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우주 속의 한 부분임을 망각하고 부분적인 이익만을 쫓을 경우 균형을 잃어버린 전체는 기울어지며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등’과 ‘이등 이하’를 경쟁 상대로만 볼 게 아니라 이쪽이 없으면 저쪽도 없는 거니까 서로 보완해 주는, 또는 하나를 이루는 그런 관계로 봐야 하는 거라. 그런 안목이 있어야 해. 그러니까 자기보다 성적이 못한 친구를 조금도 꾸밈없이 깔보지 않고 허심하게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그런 마음 바탕이 일상 생활 속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거야. 약하게 하려면 강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그렇지. 강한 놈이 만날 강할 수 있나? 만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수는 없잖아? 펴야지. 주먹을 펴지 않고는 쥘 수도 없으니까. 동일한 상태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장일순․이현주, 2003: 360).

 

장일순은 함석헌과 마찬가지로 개체라는 것이 전체와 분리되고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개체라는 게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와 합일 속에 개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를 이루면 큰일을 해낸다는 생각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야지.”(장일순․이현주, 2003: 47) 각자가 제각기 자신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장일순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특히 장일순은 이미 경쟁과 파괴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 길은 내 위치를 지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끊임없이 활동가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밑으로 기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애, 검약, 겸손의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장일순은 이렇게 밑으로, 바닥으로 길 때 위로 상승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세상의 어둠이 빛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썩은 세상과 어두운 현실은 단지 썩음과 어두움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움과 빛을 품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세상과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 관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모시는 것이 중요해진다. 장일순은 경쟁과 시비의 논리를 극복하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모실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모시고 간다는 건 병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풀어주는 거지. 병하고 싸우면 말이지, 병은 점점 기승을 부리게 되거든.…위로해 줘야지.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는 거라.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풀어주면, 그러면 그들의 그런 행위가 없어지지 않겠어?(장일순․이현주, 2003: 241)

풀 한포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전부 위대한 것입니다(장일순, 1997: 118).

 

이렇게 나와 연결된 타자, 전체, 하나를 모시고 존경할 때 타자의 날카로움도 자연히 무디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심이 가능할 때 공동의 과제를 함께 처리할 수 있고, 전일적 관점에서 보면 모시는 것은 단순히 남을 존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로세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연대와 공생에 관한 관점으로, 생협에 관한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연대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장일순은 생협이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연대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개입해야 하고 생명운동과 민중운동, 계급운동과 다양한 부문운동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연대는 단순히 특정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연대나 서로 다른 단체의 활동을 돕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연대는 공생의 관계를, 그런 공생을 통한 무위의 변화를 전제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뉘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학생이 되기도 하고 학생이 선생이 되기도 하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무위당을기리는모임, 2004: 166)를 만들어야 한다(이 말은 프레이리와 유사하게 교육의 본질이 서로 대화하고 나누는 과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은 가르치는 자의 역할을 산파의 역할로 규정한다.

이런 활동들은 장일순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맞닿아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은 업을 쌓게 되고 그 업은 성과와 관련된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공생공존하는 바탕에서 조화를 이루는 생활”(장일순․이현주, 2003: 45)을 뜻하고 그런 점에서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위무위(爲無爲)’를 뜻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인 도와 생명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이야말로 바로 무위이다.

장일순은 몸소 나서서 운동을 지휘하진 않았지만 민청학련을 비롯한 중앙의 굵직한 저항운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장일순의 호 ‘조한알’에서 드러나듯이, 장일순은 개체와 전체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했으며 생명의 전일성(全一性)을 강조했다. 그 관계 속에서 변화는 자연스런 무위(無爲), 수동적 적극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6. 결론: 네 사상가에서 드러나는 풀뿌리민주주의운동

 

지금까지 살펴본 각각의 이론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네 명의 사상가들 모두 민중이 변화의 주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위조직이나 앞장서는 싸움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자각하고 조직하는 과정 속에서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네 사람 모두 강조했다. 물론 그런 스스로 함은 아무런 자극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동이나 활동가는 민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돕는 역할을,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맡는다. 민중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민중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시작하고 민중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상식에서 시작해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둘째, 그러기 위해 운동은 민중을 믿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중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때때로 접촉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닥으로 긴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과 상식, 전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민중을 모시고 살릴 때 가능하다. 단순히 민중을 일방적으로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배울 때 진정 민중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울고 서로 울리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고, 민중이 꿈틀거리며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지원한다.

셋째, 활동의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민중이 그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성과보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능동성이 중요하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성과는 그것이 가진 방향과 목표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기운을 자극했는가이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특정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특정한 권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민중의 얼을 살리고 생각하게 하며 권력을 와해시킨다.

물론 네 명의 사상가는 공통점만이 아니라 차이점도 가진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즉 전일적인 세계관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함석헌과 장일순이 ‘하나’와 ‘도’를 강조하며 각 개체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계급이나 집단의 의식과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그것과 대립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함석헌과 장일순이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의 근본적인 원리와 윤리를 얘기했다면,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그 원리와 윤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전략과 방법을 얘기했다고 할 수 있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함석헌, 장일순의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나로부터의 변화’가 어떻게 큰 변화를 만드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흔히들 풀뿌리민주주의같은 지엽적인 작은 변화로 어떻게 국가 전체를 바꾸는 힘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는 전체적인 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큰 바위를 쪼개는 물방울이나 나무뿌리의 힘처럼 질기고 작은 생명력이 결국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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