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세요? 저는 얼마 전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20년을 보냈고, 수도권에서 그 이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 옥천은 태어난 곳도, 지금까지 살아온 곳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곳입니다. 어떤 이는 귀촌, 귀농한 것이냐 묻지만 옥천에서 구한 집은 읍내에 있고 농촌보다는 작은 도시 풍경에 가깝습니다. 농사를 못 짓는 백수이구요. 그러니 귀촌도 귀농도 아닌 거지요.

그러면 왜 옥천으로 갔느냐? 수도권에 사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졌어요. 대부분의 자원을 외부에서 지원받으면서도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곳, 그러면서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자원을 독식하고 있는 곳이 부담스러웠죠. 풀뿌리운동과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수도권에 사는 것이 왠지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수도권을 떠나자는 이야기를 나눴고 일단 가보자는 합의가 되어 옥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우리 귀엔 낯설지만 옥천군은 1989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옥천신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옥천신문은 25년 동안 지역의 중요한 공론장이 되어 왔습니다. 2008년에는 친환경농업인들을 중심으로 옥천살림 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져 어린이집과 학교에 지역의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지역 내의 자활센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이 힘을 모아 옥천순환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지역대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남면은 주민들이 운영하는 지역발전위원회와 어머니학교, 배바우도서관, 배바우장터, 작은음악회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구 5만 3천명의 작은 군에서 이런 다양한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희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옥천에는 5일장이 섭니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현지 주민들의 느낌은 다릅니다. 북적이는 5일장에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고, 그에 비하면 옥천주민들이 주로 있는 상설시장은 썰렁합니다. 선거가 다가오니 군수는 이당 저당을 떠돌고,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되는 학교도 계속 나옵니다. 산업단지, 농공단지, 이런 사업들도 지역경제를 내세워 계속 시도됩니다. 한국 어느 곳에나 불안은 존재합니다.

그래도 30분이면 걸어서 돌 수 있는 읍내라 길에서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자주 나눕니다. 시민에서 군민이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함께 사는 거겠죠. 다른 지역에서도 꼬물꼬물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소식 전합니다. 따뜻한 봄 맞으세요.

공동체(共同體)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영어 community는 라틴어 communis에서 유래되었는데, 『옥스퍼드영어사전』에 따르면 이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의무나 책임, 선물을 준다’는 뜻의 munis의 조합어이다. 즉 공동체는 함께 어떤 책임을 지거나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공동체는 그 나름의 관습에 따라 같이 일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곳은 어디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가난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혼자서도 잘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공동체가 그리 절실하지 않고, 반면에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며 힘을 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참으로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다.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관계를 뜻하지 않기에 공동체의 힘은 관계를 통해 서로의 힘을 북돋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런 점을 자각할수록 그 힘은 강해진다.

 

구성원들이 서로 책임을 지거나 살림살이를 나누는 곳이기에 공동체는 어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목적을 실현하거나 이미 규정된 목적만을 실현하지 않는다. 그곳은 구성원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이고, 그래서 공동체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문턱은 아니어야 한다. 타자를 배제하는 유명한 공동체보다 공동체라 불리지 않아도 우정을 맺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공동체적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동서양 어디서나 인류 역사에서 이런 공동체들을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고,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예전에는 공동체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았다.

 

공동체가 사회의 중요한 대안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이다. 칼 폴라니(K. Polanyi)가 블레이크(W. Blake)의 싯구를 인용해 표현했듯이 자본주의는 ‘악마의 맷돌’이었다. 자본주의는 이전의 관계를 완전히 해체시키고 인간과 자연을 화폐로 측정되고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끊고, 우리 삶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방인들을 계속 만들었다. 이렇게 맷돌에 갈려나간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지지해줄 관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지금도 신자유주의라 통칭해서 불리는 여러 사회변화들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렇게 가난해진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보고 서로에 의지하며 사회의 주체로 서려는 곳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타자를 만나는 공간이자 자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자신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자를 인정하거나 존중할 수 없듯이, 나와 약속할 수 없는 사람은 타자와 약속할 수 없다. 내가 남에게 기댈 수 있어야 남도 나에게 기댈 수 있고, 내가 스스로 일어서야 타자도 일어설 수 있다. 협동조합은 타자와 더불어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나의 조건을 만드는 곳이고, 협동조합은 그 목적을 공통의 것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마주 보고 투명인간과 이방인들이 그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마주볼 방법을 찾을 때 다시 공동체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은 이미 존재하는 공동체를 활용하려는 곳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관계망을 찢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고, 때로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공통의 필요를 조직하고 공통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협동조합과 공동체는 매우 비슷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곳이다.

 

그렇지만 생활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만의 공동체, 폐쇄적인 공동체가 공동체란 말의 의미를 왜곡하듯이, 자본주의 영리기업과 비슷해지는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공동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 협동조합도 협동보다 경쟁을, 관계보다 소유를, 연대보다 시기를, 사랑보다 무관심을 퍼뜨리는 곳이 될 수 있다. 그 옛날 예수의 공동체가 기독교로 제도화되었듯이 협동조합도 공동체성을 포기할 경우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

협동조합 강의를 나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은 정부에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이 좀 쓰리다. 오죽 했으면 저런 기대를 할까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원을 못 받으면 협동조합을 하지 않을 것 같아 힘이 빠진다. 허공에 헛된 단어들을 뱉으려고 나는 이 자리에 섰던가, 뭐 이런 우울한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답은 해야 하니 협동조합은 정부에게 직접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정부로부터 독립되고 자율적이어야 한다고 답한다. 너무 실망하는 듯 하면 직접지원은 어려우나 공공기관에 납품할 때 우선순위를 얻거나 공간을 지원받을 수는 있다고 답한다. 그럴 거면 왜 협동조합을 하라고 이런 강좌를 여느냐 묻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묻고 싶다. 대체 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강의들이 지역에 넘쳐 날까? 여기에 뭔가 해답이 있다고 믿는 걸까?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져 협동조합을 만드는 건 쉬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설립준비를 해본 사람은 안다. 하나도 안 쉽다. 정관 하나 마음대로 못 하고 표준정관에 맞추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사업 시작도 안 했는데 사업계획서에, 예산서에, 임원 명부, 설립동의자 명부, 창립총회 공고문, 창립총회 의사록 등 귀찮은 일이 한 가득이다. 이런 과정을 지원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행정 입장에서 잔소리를 하지 자기 마음으로 일을 돕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원도 없고 설립할 때도 품이 많이 들고, 그렇게 만들고 나면 협동조합이 알아서 잘 굴러가나?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5명 이상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 본 게 언제였던가? 심지어 사업과 관련된 결정을, 이해관계가 얽힌 결정을 내려야 하니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삶터에서나 일터에서나 그런 현장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필요한데, 조합원의 출자금만으로 자본금을 충당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딜레마이다.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아야 돈이 생길 텐데,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경험도 부족, 자본금도 부족, 지원도 부족, 3부족인 협동조합이 어떤 대안이라는 건가?

그런데도 올 9월까지 설립신고가 된 협동조합이 2,600여개를 넘는다. 10개월 동안 이 숫자가 만들어졌으니 하루 평균 9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협동조합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조직하려는 걸까?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공동구매나 공동판매, 일자리이다(서울시를 기준으로 보면 문구나 식료품을 공동구매하거나 판매하겠다는 협동조합이 가장 많고, 강사 양성이나 창업교육 등 교육 및 서비스업, 출판․영상․통신 등 정보서비스업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공동구매나 공동판매가 협동조합의 전유물도 아니고 이미 온/오프라인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그리고 다른 전문기관들이 협동조합의 교육이나 서비스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없는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이미 있는 시장에서 영리기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는 건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협동조합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려우니 협동조합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협동조합의 힘을 깨달으며 활동을 시작하면 좋겠다.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을 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런 필요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야 협동조합의 힘이 생길 수 있다. 강좌를 듣는 게 아니라 강좌를 듣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몇몇이 모여 뚝딱 설립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필요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만나야 한다.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관계를 다져야 협동의 힘이 살아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어려운데 새로운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왜 잘 안 풀리고 어려울까 생각해보면 그 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 일이 어려운 건 내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일지도 모른다. 옆의 사람을 믿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협동이다.

피에르 신부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감옥에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피에르 신부는 그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차피 죽을 것 죽기 전에 집 한 채만 짓자고 말했다. 피에르 신부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더라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협동이다.

정책의 효과는 짧은 시간에 드러날 수 없다. 불과 2년밖에 안된 정책을 가지고 그 실제 효과를 따지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효과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효과를 예측해서 비판하는 것만큼 잘못된 비판은 없다. 기존의 정책이 보완되고 수정된 것이라면 그 방향이라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새로 시작된 정책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미리 예측하는 건 예언의 영역이지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약간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틀은 ‘경로의존성’이다. 과거에 어떤 정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보면 비슷한 정책이 어디로 갈지를 알 수 있다. 행정조직의 경우, 특히 그 관행이 잘 바뀌지 않는 한국의 행정조직 경우에는 그 방향이 잘 보인다.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아무리 얘기해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은 행정구조와 관행, 문화이다.

 

그런 점에서 혁신정책의 방향은 민이 아니라 관이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의 혁신정책은 대부분 관이 아니라 민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혁신정책이라 부르기 어렵고 시민운동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관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정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행정이 함께 변해야 하겠지만 ‘취약한 시민사회와 과도한 행정’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행정의 혁신이 두드러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발제문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첫째, 혁신이 어느 한 편의 과제인가? 함께 변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변해야 한다는 걸까? 둘째, 변화의 구체적인 힘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개인의 자율성과 함께 사회의 공공성(公共性)을 강화시킬 전략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1.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책: 의도는 좋다고 하나 방법이...


<서울특별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의 유창복 씨는 《마을공동체 1년 시민토론회 자료집》에 실은 “서울시 마을만들기 사업과 거버넌스의 과제”라는 글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사업을 하며 가장 염두에 둔 문제가 “칸막이행정, 형식적 거버넌스, 조급한 성과주의”라고 지적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은 실국이 담당하며, 마을공동체 담당관실과 마을지원센터가 정책조율 기능을 담당한다. 공동체위원회가 실질적인 심의기구로서 실국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다”는 거버넌스 원칙을 세웠고 ‘맞춤형 지원’과 ‘당사자주의와 보충성 원리’를 사업의 원칙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민과 관의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상호협업의 경험과 소통의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아울러 “마을 차원의 사회적 자본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마을 공공성, 주민들의 관계망, 사업의 주민주도성과 자립성, 장소성 등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합리적인 측정과 평가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런 노력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발제문에 따르면 그럼에도 서울시의 칸막이 행정을 넘어서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마을사업이나 주민이 시의 재정지원을 받는 “보조사업”이나 “보조사업자”가 아니라 “시의 주인으로서 시정에 참여하는 주체”임을 인정하라는 주장은 증명의 주장보다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주장처럼 들린다. 민관협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지난 1년 동안 쌓은 경험을 논하는데 사업에 관한 부분이 매우 구체적이나 ‘구조’를 논하는 부분은 매우 추상적이다. 사업의 기획과 평가 과정에서 민간의 주도성이 살아나고 행정의 권력이 이양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발제문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좋은 물음을 만들고 그 질문을 공유하는 과정에서만 좋은 고민과 해답들이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질문은 아니고 앞서 《마을공동체 1년 시민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구자인 연구소장의 “마을현장 거버넌스와 중간지원체계”, 최순옥 위원의 “마을공동체 사업 1년 성과와 발전방향”, 박현찬 연구원의 “마을공동체 사업, 성과와 비판, 그리고 발전과제”, 신원철 의원의 “마을사업 예산지원과 주민 자생력 제고”를 참고했고, 조정래 입법담당관의 “서울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추진방향 연구”(《입법담당관 정책보고서 제 3호》),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처장의 “서울특별시의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질문들”(2012년 4월 6일 간담회 발제문), 양재섭, 김인희 연구원의 “서울의 마을단위계획 운영실태와 자치구 역할 개선방향연구”(《서울연구원 보고서》)를 참고했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과 관련해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첫째, 서울시의 행정은 마을공동체 정책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경험했나? 이 부분은 측정할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다만 구조적인 면을 한번 점검할 수 있다. 서울시의 조직도를 보자. 혁신을 담당하기 위해 서울시장 밑에 서울혁신기획관이 만들어졌다.

 

구조적으로 서울혁신기획관이 시장 직속으로 서울시의 행정을 관장하는 지위에 있다. 이런 구조가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직속의 행정조직이 신설된 것일 뿐 이 자체가 조직의 혁신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구조가 시민사회로 행정의 권한이 이전되었음을 증명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칸막이행정을 무너뜨릴 계기가 되지도 못한다. 다른 나라의 행정혁신모델은 대부분 시민사회로 상당한 권한과 예산을 넘겨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행정구조의 개편만으로는 그 혁신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둘째,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역할분담은 잘 되고 있나? 여러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는 광역자치단체가 실제 사업을 하지 말고 기초자치단체의 시스템 개선을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광역자치단체가 신규사업을 만드는 걸 자제하고 기존 사업의 연계를 중시하며 업무의 질을 높여야 한다. 예를 들어 양재섭, 김인희 연구원은 서울시 추진과 자치구 추진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한다.

구분

서울시 주도형

자치구 주도형

장단점

▶충분한 계획 수립 역량으로 안정화된 사업추진 가능

▶충분한 예산의 운용 가능

▶객관적인 기준으로 공정한 평가와 모니터링 가능

▷기본계획과 실시설계의 주체 변경으로 인한 단절 발생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여러 사업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기에는 한계

▶지역 이해를 통한 장소중심의 통합적 정책시행 가능

▶창구의 단일화를 통해 주민과 밀착되고 피드백이 가능한 소통 가능

▶지역과 밀착하여 주민과 지속적 소통으로 사후관리 용이

▷전문부서 마련의 어려움과 절대적인 담당 인력의 부족

▷자치구 자체적 예산 마련에 한계

그런데 현재의 서울시 정책에서 이런 역할분담을 확인하기 어렵다. 역할분담이 없지는 않지만 광역자치단체가 기획하고 자치구가 실행하는 식의 역할분담이 사라지지 않았다.


셋째, 행정의 조급성은 정말 사라졌나? 사업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질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나? 유창복 센터장은 마을공동체사업이 ‘마을지향행정’을 만들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처럼 분명 일정한 변화는 있었다. 마을거버넌스를 만들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거버넌스의 마지막 단계는 평가가 아니다. 평가가 다시 기획으로 환류(feedback)되어야 거버넌스이고, 그 환류과정에서 민간의 주도성이 살아나야 거버넌스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거버넌스가 구현되고 있을까? 예를 들어, “마을의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는 마을, 마음껏 상상하고 함께 꿈꾸는 마을,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주고 듣는” 자리라는 00마을이야기의 2012년 지원사업 보고서 양식을 보자. 참여회원수, 축제참여자수가 전체적인 사업개요이다. 양식이 간소화된 건 분명 긍정적인 면이지만 양적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 수 없다. 민간의 주도성이 살아나고 있는 걸까?

 

진정 주민주도성이 살아나고 있을까? 신원철 의원의 지적처럼, 일방적인 지침과 선정, 평가 등은 시민사회를 규율하는 장치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기획→계획→예산편성→제안접수→심의․선정→지원→평가’라는 집행과정은 철저한 관주도 방식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넷째, 서울에 마을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 사람들이 친하지 않아서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시의 인구밀도는 16,483명으로 전국 평균 499명보다 약 33배 높고, 전국 최저인 강원도의 90명보다 약 183배 높다. 인구밀도만으로 서울시민보다 강원도민의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 예상할 방법은 없지만 생명체가 좁은 공간에 몰려 살 때 불행해지고 밀집하면 도시문제가 반드시 생긴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사실 서울시는 인구를 분산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서울시 전체 가구 약 350만 가구 중 집을 소유한 가구는 약 143만 가구이다. 전월세 가구가 약 199만 가구이다. 결국 약 57%의 가구는 정주하지 못하고 전월세 시세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마을공동체는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소유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주도하는 아파트공동체는 세입자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도시연대> 김은희 사무처장의 지적처럼, 우수사례지역이 보편적인 삶의 질 향상의 계기가 되기보다는 고립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성공사례보다는 마을이 무너지는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구자인 연구소장의 말처럼 “서울시는 지나친 과밀에서 나타나는 폐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국적 동향을 보면서 ‘지역이 살아야 서울이 산다’는 관점에서 국토 균형발전에도 기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섯째, 이미 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진 지역이나 단체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가?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나 정보부족으로 혜택이 편중된다는 우려가 실제로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남재경 서울시의원이 제기한 사업편중에 대한 지적이 정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인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사)마을이 제작한 《마을공동체기업 육성프로세스》(2012. 08)의 평가지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을의 필요를 파악할 정도의 안목과 조합원을 모을 자립도, 마을 내 취약계층을 파악하고 조직의 이익을 마을의 이익으로 연결지을 능력은 이미 드러난 조직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서류를 준비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나 주민들과 사업을 진행했던 경험은 기성단체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을 위해 멘토단이나 인큐베이터, 컨설턴트가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는 이들의 통일되지 않은 관점이 주민들의 혼란을 늘리기도 하고, 불필요한 사업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마을의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공적인 지원을 받아야 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시민참여의 효율성이 시민참여의 민주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폴(T. Skocpol)과 피오리나(M. P. Fiorina)가 지적하듯이 시민참여는 ‘대표되지 않은 참여자’(unrepresentative participators)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업이 다른 사업보다 더 절실하다는 기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의 민주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특히 마을공동체사업을 위탁받은 조직의 민주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여섯째, 모든 마을활동이 마을공동체사업이어야 하나? 마을공동체사업들이 진행되면서 정말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저런 사업들은 많지만 그 사업들을 통해 주민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나? 외려 지원사업 때문에, 지원을 받은 쪽과 지원을 받지 못한 쪽으로 나눠지고, 되는 사업일수록 그와 관련된 기획이 공유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을이 더 분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통반장, 지역단위 직능 사회단체, 자원봉사센터,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주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야 사업의 의미가 살아날 것인데, 그런 소식을 듣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마을활동이라는 것이 매우 정형화되고 그것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닌가? 갈등이 없는 아름다운 마을을 지향하는 게 정치없는 마을을 지향하는 건 아닌가? 스카치폴과 피오리나는 질서와 안정이 아니라 갈등이 시민의 민주적인 능력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즉 갈등하는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시민단체들의 확산이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갈등을 회피하는 마을공동체, 정치를 배제하는 마을공동체는 어떤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강화시키려는 것일까?

 

이 와중에 서울시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종교를 전파하려는 목적을 가진 마을공동체에는 행정,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며 조례를 개정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미 마을의 관변단체들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정치성을 배제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다며 마을사업을 하는 곳이 어디 있겠나? 이런 판단은 특정 정당의 당원들이 마을에서 배제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이 효과는 소수당에게 집중될 것이다. 이것이 마을의 민주주의를 살리는 결과를 가져올까?


일곱째, 마을공동체 사업과 무관하게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면, 박원순 시장은 SNS행정을 자신의 치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6개월간 1만 4,000여건의 의견을 받아 98%의 민원을 해결했다”며 “SNS 행정이 세계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민원을 해결했다니 좋은 듯하지만 시장을 통한 민원해결은 새로운 형태의 후견주의(clientalism), 주민들의 뒤를 봐주고 지지를 확보하는 방식이지 혁신정책이나 민주주의는 아니다. 사안을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하고 개인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한국의 지방자치제도에서 절실히 필요한데, SNS 행정은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2. 서울시 사회적경제 사업: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별이...


<서울사회적기업개발센터>가 2013년 2월에 발표한 “2013년 서울특별시 사회적 경제 현황과 정책흐름”이라는 PPT자료를 보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정책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우고 있다.

 

개발 중심의 하드웨어 전략을 추진했던 기존 서울시정에 비하면 긍정적인 전략이라 얘기할 수 있다. 제시하는 목적처럼 시민의 관점에서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경제를 강화시키며 경제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관건은 지방정부가 경제 영역에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는가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것이나 일치되는 것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이은애 센터장은 센터장이 되기 전인 2012년 1월에 발표한 “서울시 사회적 기업 육성정책의 평가 및 개선과제”(《서울경제》)에서 서울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여섯 가지를 제안했다.

 

①서울형 사회적 기업의 개념 및 정책목표 재설정. 한시적 재정지원에 의존한 ‘일자리 창출’을 너머, 지역사회 특유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내발적 발전을 이끄는 사회적 기업의 지역화와 이를 가능케할 생태계 조성이 핵심과정으로 제기되게 된다. ‘서울시민의 주도적이고 민주적인 참여와 사회․경제․문화적 수요에 기반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혁신적 해법을 제시하는 가운데 다양한 지역자원을 연계하므로써 사회적 목적 수행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나가는 예비 및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 재정의. 마을기업이나 자활공동체, 협동조합을 포괄하는 접근.

②창업단계 인건비 지원 중심에서 기업의 생애주기별 맞춤지원 전략으로 이행. 창업, 인증, 성장, 폐업이라는 주기. 인건비, 시설설비비, 무료 사회서비스 파일럿 사업비 등을 지원기관이 선택하도록. 우호적 시장 확보(공공기관 및 대기업 연계를 통한 조달시장 확대, 사회적 기업간의 내부시장 구축을 활성화, 서울 특유의 공공의 적극성과 정책역량을 활용하고 시민의 지지기반 형성. 칸막이 행정 제거하고 연계.

③서울시의 수요 및 자원조사를 통한 전략분야 및 전략지역 시범사업 필요. 서울시의 우선사업분야로 대학생 및 청년 주거문제 해결, 낙후지역 대안개발형 쇼셜 하우징, 도시농업, 로컬푸드 연계형 친환경 공공급식시스템 구축, 전통시장 및 소상인 지원, 지역공동체형 보육시설 확충, 자치구 특화산업 연계형 사회적 기업 창업.

④시민사회 역량 제고 및 네트워크 강화. 인력양성 지원사업.

⑤민관 거버넌스에 기반한 시너지 확보. (가칭)서울 사회적경제위원회 구성.

⑥사회적 기업의 개별 생존을 너머 생태계 조성을 돕는 풀뿌리 중간지원조직 확충.

 

이런 제안이 거의 반영되어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2013년 9월 12일 미래복지포럼에서 발표한 “서울시 사회적 경제 현황 및 활성화 전략”이라는 PPT 자료에서 아래와 같은 지원계획을 밝혔다.


좋은 내용이고 동의할 만한 내용인데,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업들을 다루는 것 말고 이런 사업들을 어떤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렇게 만들어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이 서울시민의 살림살이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는 기존의 경제를 보완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그 목적을 보면 보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정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 다른 물음으로 넘어가려 한다.


첫째, 한국사회의 경제 집중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1997년 IMF 이후에는 국제금융자본과 재벌, 자유주의 정부의 삼각동맹체제(이병천)가 한국사회를 지배하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모토로 삼는 ‘기업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고용없는 성장과 비정규직 양상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거래’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재벌의 사회적인 지배력은 더욱더 강해지고 있다.

 

자, 이런 현실을 두고 판단할 때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정책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나? 기존의 영리경제와 사회적 경제를 ‘공존’하게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은 정말 실현가능한 것인가? 예를 들어, 서울시가 선포한 ‘협동조합도시 서울’은 ▲공공서비스 영역에 시민 주도의 협동조합 참여 보장과 서비스 질 개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설립 촉진과 경쟁력 강화, ▲근로자 협동조합의 원활한 설립을 위한 지원, ▲다양한 생활협동조합 설립으로 지역 공동체성 회복, ▲시민 교육 체계 마련과 지도자·전문가 육성, ▲협동조합 활성화 조례 제정과 기금 조성을 통한 자립·성장지원 등을 내세웠다. 만일 이런 협동조합정책이 기존의 경제정책을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체하려 한다면 재벌과의 대결이 필수적인데, 그런 전략이 있는가? 특히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서울시가 그런 대결을 주도할 수 있을까?

 

서울시가 보완전략을 대체전략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을 떨칠 수가 없다. 더구나 민주화 이후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시장에 개입하는 신자유주의 관료집단을 견제할 힘이 구성되고 있는가? 민주화 이후 더욱더 적극적으로 국가를 포섭하는 재벌들의 지배전략에 대항할 힘이 마련되고 있는가? 사회경제적 시민권과 정치적 시민권이 상호 연관을 맺으며 향상될 수 있는 전략이 세워지고 있는가? 사회적 경제는 노동자이자 동시에 투자자인 노동자들을 조직할 전략을 가지고 있나? 자본파업에 대항할 힘이 형성되고 있나? 재벌의 지배구조를 변화시킬 전략이 마련되고 있나? 사회적 경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인 하도급거래구조를 변화시킬 힘이 있나? 재벌들의 골목 상권 침해를 막을 힘을 가지고 있나? 이런 물음들이 뒤따라 나온다.


둘째,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계급불평등의 심화라는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는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회적 경제가 교육, 주거, 고용에서 격화되는 경쟁과 불평등을 바로잡을 힘을 기르고 있나? IMF 이후 등장한 노동복지(workfare)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복지의 축소를 동반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사회적 경제의 의미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제도가 사회에 실제로 미쳤던 영향을 잘 따져봐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경로는 사회적 기업의 경로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정부는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만들면서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이렇게 인증을 내세웠지만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었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기업의 경로와 다를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사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의 경험을 통해 협동조합기본법을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 기업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의 지원을 통해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사회성이나 협동의 강화보다 고용 창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고, 시장경쟁에 내몰린 협동조합들이 실패를 경험할 것이고, 협동조합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명분(사회적 협동조합은 국가와 지자체의 사무 중 일부를 위탁받을 수 있다)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협동조합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왜곡이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사회적 경제라는 것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다. 현재의 사회적 경제 정책은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셋째, 사회적 경제가 확장되고 비가시적인 경제 영역을 가시적인 경제활동으로 만드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일일까? 즉 화폐경제에 포함되지 않았던 살림살이의 영역을 임금노동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일일까?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정책이 주력하는 7대 분야는 공동육아, 돌봄, 보건의료, 임대주택, 전통상인 및 소상공인, 베이비 부머,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그중 공동육아, 돌봄, 보건의료는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영리영역으로 가시화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까?

 

청년이나 경력단절여성, 이주민들이 직업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노동을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부장적이고 비민주적인 기업문화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이고 노동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부분을 고민하지 않으면서 정책을 구상하는 것이 과연 사회성이나 호혜성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적 경제가 지속되려면 다른 경제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다른 시장이 필요할 텐데 그것이 공공조달과 내부거래의 확대, 기업의 협조로 가능할까? 신경희 연구원의 “서울형 마을기업을 통한 지역공동체 활성화”(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보고서, 2012년)에 따르면, 2010~2012년 65개 마을기업의 담당자들은 마을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마을기업 유지를 위한 수익창출”(26.2%)과 “마을기업 운영자금 부족”(13.8%)을 들었다. 사실 수익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다른 가치는 쉽게 무기력해진다. 사회적 기업에 민주주의가 부족한 이유는 그것이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이를 ‘유통’이라는 말로 정리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경제나 빈곤에 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현대의 빈곤은 단순히 실업이나 저소득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배제의 차원은 매우 다양하고 우리의 상식과 달리 배제의 중요한 원인이 경제적인 변수보다 사회적 관계망과 교육에서 비롯된다. 물론 경제적인 빈곤이나 실업이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사회적 배제의 현상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소외는 경제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회적 경제정책은 이런 소외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더글러스 러미스는 쓰지 신이치와의 대담(『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에서 가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 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거죠. 물질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 즉 가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문젭니다. 관리되는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위험이 상처받는 것이 고통스러운 게 아닐까요?” 우리는 가난을 빈곤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러미스는 관계의 문제로 본다. 가난이 가졌던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는 계속 파괴되고 있다. 특히 세계화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가난이 아니라 ‘잉여’가 되는 사회이니까. 잉여사회에서는 가난한 사회가 가졌던 관계망이 유지될 수 없다.


넷째,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정책은 경제의 사회성을 확장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나? 과거와 달리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농업이 의도치 않게 농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듯이,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가 도시의 소상공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시 전체 취업자 약 503만명 중에서 자영업주가 97만명, 무급 가족종사자가 약 16만명에 달한다. 합하면 약 113만명으로 22.4%이다. 그리고 임금근로자 중에서 임시직이 113만 6천명, 일용직이 39만 6천명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앞선 신경희의 연구를 보면, 마을기업의 설립목적 중 가장 높은 비율이 “지역기반 주민 일자리 창출”(81.5%)이고 두 번째가 “주민교류와 지역공동체 활성화”(64.6%), “취약계층 주민 일자리 창출”((60.0%) 등이고 “전통상가, 지역경제 활성화”는 (18.5%)이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경제 영역들이 기존의 지역경제 영역과 잘 접목되지 않는 징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재단>의 월간지 《콩반쪽》2005년 5월호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05년 4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김밥할머니의 기부금을 모으면 95건, 약 1,149억원이라고 한다. 사회적 경제가 없었을 때에도 그런 경제를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는가?



3. 서울시 정책에 대한 총평


중간지원조직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컨설턴트나 상담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기는커녕 행정의 방침을 강요한다는 항의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회적 경제라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수를 늘리는 것은 아니다. 살림살이의 사회성이 실현되는 것이 사회적 경제이다. 그렇다면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벗어나 때로는 대결을 통해 새로운 건설을 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착한 경제’를 외칠 뿐 현실의 악과 싸우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혁신은 자기성찰을 동반할 때에만 지속가능하다. 서울시의 자기성찰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원전 1기 줄이기 캠페인으로 밀양 송전탑에 맞서 싸우는 할머니들의 고통과 신음을 감출 수는 없다. 한편에서는 마을공동체사업이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있던 마을이 처절하게 짓밟히는 이 모순을 둔 채 아름다움을 논할 수는 없다.

1. 고수와 선수, 우리는 무엇이 되려 할까?


고수와 선수는 다른 존재입니다. 보통 고수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낄 곳과 끼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가리지요. 그냥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합니다. 그래서 고수가 드러나는 계기는 아주 우연적입니다. 반면 선수는 잘 드러납니다. 드러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선수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드러낼 만큼의 자기 역량을 잘 포장합니다(그런 역량조차 없으면 사기꾼이겠지요). 고수와 선수들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고수와 선수 중 누구의 힘이 더 셀까요? 때로는 선수의 힘이 더 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수는 자신의 힘만을 운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수는 주위의 힘을 모을 줄 알고 그러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힘을 누그러뜨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잘 드러나지 않죠. 한 사람의 힘만 보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고 결과적으로 보면 고수의 힘이 더 센 거고, 고수는 세계와 사회를 조직합니다. 고수는 이해관계에 따른 사회가 아니라 공적인 장을, 협동의 관계망을 조직합니다.

 

현재의 협동조합운동판을 보면 선수들만 보이고 고수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저부터가 만나서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전혀 없지는 않아 다행일까요?). 고수이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더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럴 거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키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성룡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는데요, 저는 원작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사부가 제자를 그냥 엄하게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 써먹거든요. 밥하고 걸레질하고 빨래하고. 그런 일상의 동작 하나하나가 쿵푸의 초식이 됩니다. 이를 ‘도제(徒弟)’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어려서부터 시작하면 좋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면 몸에 익숙해지기(體化) 쉽다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또 다른’ 고수가 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모두 고수가 되는 건 아닙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지요. 고수가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각’과 ‘성찰’입니다. 깨달음만이 아니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처음에는 자기만 있다가 나중에는 ‘싸부’도 마음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함께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고수가 됩니다.

 

반면에 선수는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훈련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훈련은 생활에서 단련된 훈련이 아닙니다. 교사라 불리는 사람에게 학습된 것입니다. 영화에도 보면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겁니다. 생활과 잘 맞지 않고, 생활에 반하기도 하는 전문기술입니다. 나와 상대에 대한 고려 없이 근육과 힘을 강화시키는 기술입니다. 더구나 그 기술을 어떻게 써먹을지에 대해 교사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자각’이나 ‘성찰’의 과정이 없는 거지요. 당연히 누구누구 라인은 있겠지만 ‘싸부’도 없지요. 다른 사람은 대상일 뿐 자기 속의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때때로 선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선수가 여기저기서 마구 등장하는 상황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수가 판을 주도하는 상황은 분명 어떤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선수는 자신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활동과 영역을 부정하기 때문에 지극히 위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수는 자신이 고수인지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반성합니다. 자신이 고수임을 모르지 않지만 그것을 ‘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지도 않고 그 사람과 자신의 영역을 굳이 나누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그런 고수들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 대목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수가 되려는 걸까요, 선수가 되려는 걸까요?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걸까요? 그런 가르침을 받을 자세, 고수를 찾아 접하려는 태도는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 없이 협동조합을 시작합니다. 정부가 홍보하듯이 협동조합이 기업체보다 나쁜 틀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것이기에 무조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준비 없이 시작된 협동조합은 한국 현실에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 또 냉소로 바뀔 겁니다.

 

물론 협동이라는 것이 내 몸에 충분히 녹아들어 있기에 사업만 펼치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는 협동이 아니라 무한경쟁, 승자독식입니다. 협동도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하고, 이기기 위해 내부의 갈등을 억지로 무마하는 것이 협동문화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의 악조건을 극복하려면 좋은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상 속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내기 위해 안목을 기르고 그 사람들을 인정하며 내 일상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공부모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 명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임을 만드는 순간 이미 스승이 우리 옆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책이나 자료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고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거기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내가 뭘 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전문가라 자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볼까요? 내가 원주에 다녀왔다고 해서 내가 장일순 선생님이나 지학순 주교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원주의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보고 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알 수는 없습니다. 그 역사와 사업, 조합원수를 따질 수는 있겠으나 그 속엔 ‘체화’의 과정이 없고, 자연히 ‘자각’과 ‘성찰’의 과정도 없습니다. 정말 깊이 활동을 하고 있다면 자기 속의 고민을 충분히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지식이 아니라 일상 속의 깨달음을 전해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도제를 악용해 청년들을 부려먹는 사람이나 제도들도 생깁니다. 고수인체 하지만 선수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활동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엔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질문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과 그 질문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모호한 상태로 지식만 교류하는 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2. 나 없는 협동이 가능한가?


한국의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지금은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 많이 가지만 예전에는 일본엘 많이 갔습니다. 일본 생활클럽 생협은 ‘타자 속의 나’, ‘I among others’라는 개념을 쓰더군요. 저는 이 말을 처음 봤을 때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기는 이미 타자라는 말을 익숙하게 쓰고 있구나. 섬나라의 특성일 수 있겠지요. 제주도에 가면 육지 것이라는 말을 쓰듯이요. 섬에는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갑니다.

 

그런데 단지 새로운 사람을 타자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는 타자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와 그 존재 사이에 관계가 생기는 거지요. 옛날에 유럽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을 타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죠. 그러니 그 사이에는 타자라는 관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타자로 부르려면 그 사람을 타자로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타자에는 사실 나의 무엇도 포함됩니다.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가 되는 거지요. 그렇게 만나 다른 존재가 되고, 나와 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관계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클럽 생협의 I among others는 좀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타자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나는 무수한 타자들 속에 있다. 그리고 그 타자 역시 나를 타자로 여기는 나이다. 그걸 인정하자는 거죠. 그걸 인정할 때 협동의 힘이 생긴다고 보는 겁니다.

 

한국의 집단주의에는 일본이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처럼 원래 유교에는 없는 개념들이 일본과 한국에는 강하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식민지가 아닌 모국이었던 일본은 한국보다 개인주의가 강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극단적이기도 한데요, 어떤 때는 사무라이처럼 공을 위해 자신의 배를 가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아주 개인주의적인 거지요. 일본 만화책들을 보면 이런 경향을 느낄 수도 있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무수한 타자 속의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 관계망 속의 자신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관계의 주고받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협동이라는 말로 다른 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협동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거나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협동인 것처럼, 고만고만한 형식적인 관계를 협동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요?

 

한국사회에서 많이 오해되는 말 중에 하나가 상호부조입니다. 상부상조, 상호부조의 삶이란 게 어떤 일방적인 이타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혼자 감당하기 힘든 내 속에 있는 에너지를 분출하며 우리가 되는 과정이고, 우리 속에서 내 에너지를 충전하는 과정입니다.

 

협동조합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무수한 타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타자 속에는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에도 타자가 있지요. 때로는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하고, 때로는 정말 싫은 타자를 만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참고 목적의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협동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분명히 드러낼수록 협동은 더욱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드러냄의 방식이 문제인 거죠.

 

요즘 보면 울림, 공명(共鳴),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이 말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사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울림, 공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건 어떤 영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共感)의 문제입니다. 예전 드라마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공감의 시작인 거죠(물론 말로만 그러는,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계해야죠). 타자의 감정을 내 속에서 형성하게 될 때 우리는 제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협동조합을 통해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려 하는 걸까요?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제4회 전국 유기농업대회에서 발표된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방법'이라는 글의 발췌번역문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1.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의 본질은 물건을 팔고 사는 관계가 아니고 사람과의 우호적인 만남과 사귐의 관계이다. 즉 양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 돕는 관계이다. 그것은 생산자, 소비자로서의 생활을 새롭게 보는 데에 기초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는 소비자 측에서 사용되는 산지와 직거래라든가 생산자 측에서 사용되는 소비자에게 직접판매라고 하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싸게 사고 싶다.” 또는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팔고 싶다.”는 생각에서 중간단계를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고 목적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우리들이 제창하는 것은 신뢰를 토대로 하여 상호부조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제휴(서로 손을 잡음)이다.

생산물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제공되는데 대해서 소비자는 서로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대가와 사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통상 금전을 가지고 하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물건과 금전이 교환되는 형식으로 본다면 팔고 사는 것이며 법률적으로는 거래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래의 성격은 상호증여적인 성질의 행위이다. 즉 물건을 교환가치로서 평가하지 않고 사용가치로서 평가한다. 금전을 주고받는 형식으로서는 물건의 대금이지만 실질은 대상(代償)과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액면도 시장에서 형성되고 항상 변동할 필요가 없고 당사자끼리 자유롭게 결정할 수가 있고 고정시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상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어디까지나 대등의 자세를 흐트려서는 안 된다. 또한 전제로서 필요한 것은 오늘날 사회에서 삶으로 해서 우리들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부지불식간에 형성되어온 습성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에 있어서 경쟁심리에 쫒기고 있으며 남의 일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사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거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에 있다. 즉 금전보다 생명이 중하다든가, 행복은 꼭 금전으로 살 수가 없다는 아주 분명한 사실을 잊기 쉬우며, 편리한 것보다 안전한 것이 중요하다든가, 물건에는 상품보다도 상품이 아닌 것에 치중한 물건이 많다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2. 생산자는 소비자와 상담하여 그 토지에서 가능한 한 소비자가 희망하는 것만큼 생산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생산자는 수확한 것을 확실하게 모두 소비자가 인수하게 하고,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생산자가 생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산계획을 양자가 협의해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매년 소비자는 원하는 작물의 품목과 수량을 생산자에게 제시하고 이것에 따라 생산자는 그 토지에서 생산 가능한 작물을 받아들여서 각각의 희망수량을 생산목표로 하는 농사를 계획한다. 이렇게 작성한 영농계획을 생산자는 충실하게 이행하고 수확을 볼 때까지 사이에 비배관리네 만전을 기한다. 그리고 그간에 소비자가 작황의 관찰이나 농사 일손을 돕기 위해 생산자를 찾는 것은 농민들에 의해 크게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수확량은 여간해서 목표대로 실현되지 않고 언제나 다소의 상이는 면할 수가 없다. 때로는 대풍작이거나 대흉작이 있다는 것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자가 계획대로 작물을 실수 없이 재배관리 하는 한은 소비자로서는 어떠한 불평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3. 소비자는 그의 희망에 따라서 생산된 것은 그 전량을 인수하고 식생활을 될 수 있는 대로 전면적으로 이것에 의존한다. 일찌기 공동으로 세운 생산계획에 의해 수확된 농산물이 그 때에 그 양만큼 제공되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새삼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지만 항상 신선하고 가장 맛이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제공되는 가지 수와 양은 날짜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그날그날에 원하는 가지 수와 양에는 과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조리나 보존에 연구를 거듭함으로써 잘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4. 가격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는 생산자는 생산물의 전량이 인수될 것, 선별이나 묶음, 포장의 노력과 경비절약이 되는 것 등을, 소비자는 신선하고 안전하며 맛이 있는 물품이 되게끔 하는 등의 것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가격이라고는 하지만 물품대금이라고 하기보다는 행위에 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이므로 그것을 결정하는 데는 가격이론을 생각할 필요가 없고 양자가 납득이 되는 것이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상관없다. 상품의 질을 소비자가 생각할 때에는 마치 손으로 그린 그림과 복사한 그림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5. 생산자와 소비자가 제휴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호의 이해를 깊이하며 우정을 두텁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구성원들이 서로 접촉하는 기회를 많이 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접촉이 원만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대도시의 주부들이 농촌을 방문하고 농가의 생활과 농사일에 대해서 작은 부분이라도 접하는 것은 생산자의 환경과 입장을 이해하는데 매우 좋은 것 같으며 그것은 생산자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은 격려가 되는 것 같다.

 

6. 운반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제3자에게 의뢰하지 않고 생산자집단 또는 소비자집단의 손에 의해서 소비자 집단의 거점까지 운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생산자, 소비자 집단 내에 있어서 소수의 지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이며, 될 수 있는 대로 전원이 책임을 분담해서 민주적으로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의 가정사정을 잘 파악하고 상호부조적인 배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8. 생산자 및 소비자의 각 집단은 소집단 내의 학습활동을 중시하고 단지 안전 식량을 제공, 획득하는 것만으로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의 문제, 식생활전반에 관해서 눈을 떠야 할 문제가 많고, 자체의 운동이나 농약 등 환경오염 문제 등 학습하고 눈을 떠야 할 것이 많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주적인 학습에 의해서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무수한 위험 가운데에 매몰되고 있다.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습회를,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가요? 타자 속의 나가 어떤 말인지 좀 느껴지시나요?

 

저는 서로를 살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 서로가 서로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하고 디딤돌이 되려면 일단 만나야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만남이란 낯선 것이라는 점입니다. 낯설기에 익숙하지 않고 두렵지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익숙한 것들만 접하는 것을 만남이라 부릅니다. 물론 익숙한 것들과의 관계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만남은 낯선 것을 접하고 그것을 그대로 두는 것에서, 억지로 나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는 것에서, 그러면서도 손을 잡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영글면 굳이 우리라고 칭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공감하고 손을 잡게 될 겁니다.

 

그런 관계가 성공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건 아닙니다. 협동조합의 성공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실패를 통해 더 단단해지는 관계가 있는 반면, 성공하면서 무너지는 관계도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무엇을 지향하려는 걸까요? 우리는 왜 성공하려는 걸까요? 이런 물음을 던지며 강의를 마칩니다.

1. 지방자치제 ≠ 풀뿌리민주주의


정치는 단지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적인 장에서 펼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주로 정치를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무대로 좁혀서 보거나 정치적인 사건을 흐름보다 인물로 본다. 그러다보니 실제 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을 정치의 눈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정치인에게 의존하지 정치인을 활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과거 권력에게 감시나 탄압을 받은 경험들(직접 경험한 건 아니라도 친지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간접경험으로)은 정치의 장에 들어서는 걸 움츠리게 만든다. 제도정치, 생활정치, 삶정치, 여러 개념들이 떠돌고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제도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 제도를 원래 목적에 맞도록 운용할 사람과 문화가 필요하다. 목적에 맞도록 제도의 방향을 정하고 논의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갈등하고 소통하고 합의하며 공존할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사람을 지원하고 문화를 만드는 흐름을 부수적인 것들로 여긴다. 조례나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과정에는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힘이 집중되지만, 정작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을 교육하고 지원하며 문화를 만드는 과정에는 힘이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도는 상당히 빨리 만들어지지만 정작 제도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민주주의의 학교라 불리는 지방자치제도가 1991년에 부활되었지만 자치를 실현하고 있는 지역은 드물다. 모범사례로 얘기되는 몇몇 지역들이 있지만 그 지역들도 꼼꼼하게 살펴보면 몇몇 인물이나 몇몇 단체가 밖으로 부각되는 것이지 지역사회 자체가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고로 풀뿌리민주주의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공개적인 장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며 삶의 주체로 성장하고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결정들에 개입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노력들이 끊임없이 제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때 풀뿌리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여전히 권력에서 소외되고 정치를 경험하지 못하며, 제도를 활용하거나 참여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풀뿌리민주주의가 공허한 가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뜻은 좋지만 현실에서는 무기력한 가치. 그러다보니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보다 풀뿌리보수주의라는 말이 더 익숙하고, 시장이나 군수같은 단체장들은 지역사회의 ‘제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왕이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을 찾으려면 먼저 지금 이곳 현실을 분석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고, 지역사회 내의 평판이나 명망을 수집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분석하려면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의 지역사회지배구조를 분석하면 그 실체가 조금 드러난다. 일단 구조적인 면에서, 지역사회라 해서 중앙정부와 재벌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정부로 많은 권한이 넘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입에서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7: 3이라면 지출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비중이 3: 7로 역전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여전히 중앙이 기획한 사업을 지방이 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정부가 기획한 사업을 지방정부가 대행하고 있기에,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운영구조가 분권화되어 있지 않고, 지방선거 공천권이나 공무원 인사권은 정치인과 공무원의 활동범위를 통제한다. 그리고 소수의 재벌들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지방의 지사들이 거둔 수익은 수도권의 본사로 송금된다. 지역의 토착기업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고, 대형할인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프랜차이즈산업이 지방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중앙언론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지배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어도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에 위임된 집행권을 단체장이 자기 마음대로 행사한다. 대통령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장은 지방정부의 예산을 쌈짓돈삼아 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재선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터무니없는 사업들도 집행한다. 지방정부의 예산집행권과 각종 사업의 인․허가권, 공무원 인사권 등을 가진 단체장에게 맞설 지방의회의 힘은 약할 뿐 아니라 단체장과 연관된 보수정당이 지배하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더구나 선거 때의 공약을 지켜야 하는 지방의원들은 그 권한을 가진 단체장과 어느 정도 결탁할 수밖에 없다. 지방공무원들(또는 그들의 관료주의)은 한편으로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에 복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조직이나 개인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한다. 아무리 강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이런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런 대형사업들을 기획하는 건 어떻게 보면 지방선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 자신을 대표할 만한 대형사업을 하려하고, 공무원들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단체장을 만족시키려 국내외의 사례를 짜깁기해서 사업계획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이를 부채질하니 지방선거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리고 이런 사업기획을 돕는 온갖 ‘업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권을 노리는 단체들도 많다.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권력을 뒷받침하는 각종 관변단체들이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각 동단위까지 뿌리를 내린 새마을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의회를 빼고도 대한노인회, 각종 보훈단체, 체육단체, 한국예총, 여협, 로타리, 라이온스, 청년회 등의 단체들이 지방정부의 사회단체보조금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각종 자문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선도위원회,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읍․면개발위원회 등 수십 개의 위원회들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상공회의소들도 정치인, 관료, 학계, 관변단체들을 연계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로 건설업자들의 소유인 지역언론사들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개발사업을 정당화시키고, 지역의 대학들도 지방정부의 각종 용역을 받아 지방권력을 비호한다(대학교수들이 공무원 다음으로 위원직을 많이 차지하고, 각종 재단과 시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의사, 약사, 각종 직능단체들의 지역조직도 지역사회에서 이익을 거래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중앙에서 지역까지 다양한 권력망들을 구성하고 서로 이해관계를 타협하며 공생하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수백에서 수천 명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공권력이나 자본이 그들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준다.

 

이렇게 서로 끈끈하게 결탁되어 있으니 비리가 잦을 수밖에 없다. 《경남도민일보》 2012년 7월 8일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만 비리에 연관되어 징계를 받은 국가 공무원과 지방 공무원의 수가 17,000명에 달한다. 그리고 2013년 5월 1일 감사원이 매년 발표하는 ‘지역 토착비리 기동점검’ 결과발표를 보면, 입찰 부정, 인․허가 및 채용 비리, 금품수수, 공금횡령 등으로 총 33개 기관에서 70건의 비리가 적발되었고 68명의 공무원이 고발 또는 징계처분을 받았다. 진천군, 단양군, 용인시, 부안군, 전주시, 가평군, 동두천시, 남양주시, 안산시, 서울시, 해남군, 강원도, 영광군 등으로 지역도 참 다양하다. 사회가 바뀌고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직사회의 정책기획이나 집행과정은 투명하지 않다. 지역주민들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공무원도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몇몇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해를 입히는 것보다 공무원 몇 명이 입히는 해가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문제는 관련된 공무원들의 개인비리만이 아니다. 2013년 6월 20일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주요 투자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는 “지자체에서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편법으로 민간업체의 대출을 채무보증하여 불필요한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등 예산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을 낭비할 뿐 아니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타당성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거나 지방의회의 승인조차 받지 않는 경우도 적발되었다. 또한 세부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타당성 조사를 일관성 없게 추진한 사례도 적발되었다. 감사원은 이 결과를 토대로 관련자 7명을 파면 등 징계하고 범죄혐의자 6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총 69건의 조치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된 사업들을 보면 나주시의 미래일반산업단지(사업지 2,650억원)의 업무부당처리, 함평군의 동함평산업단지(사업비 711억원)의 업무부당처리, 음성군의 생극산업단지(사업비 451억원)의 부당지원, 충남개발공사의 청당지구 공동주택사업(사업비 3,497억원)의 채무보증 및 출자의 부적절함, 시흥시의 군자배곧신도시사업(사업비 2조 5,981억원)의 사업추진 부적정함, 경기도의 타당성조사 66건 중 15건의 경제성 조사 미실시, 9건의 타당성 조사 미실시였다.

 

또한 2013년 6월 4일 감사원이 발표한 ‘도서지역 개발사업 추진실태’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국고보조금을 받아 추진중인 도서개발사업 중 통영시와 완도군의 사업을 표본으로 감사한 결과 전체 317건의 사업 중에서 74.4%인 236건 1,280억원의 사업이 취소 또는 변경이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형식적으로 도서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서 국보보조금을 지원받고, 특정업체의 부탁을 받고 부당한 수의계약을 체결하거나 부적격 업체와 부당한 수의계약을 맺는 관련자 16명에게 정직 등 중징계를 요구했다. 지방정부의 재정이 취약하다고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고 민간자본과 계약을 맺으면 그 액수가 이렇게 커진다. 중간에 사고가 나면 지방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니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국책사업이니 공적인 사업이라며 밀어붙이지만 정부의 사업이니 무조건 정당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또한 전국 검찰청이 2012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정부보조금 비리를 집중 수사한 결과발표에 따르면, 약 70여 개의 업체와 단체가 약 631억원의 보조금을 허위수령했고 이와 관련해 312명이 입건되고 이 중 93명이 구속되었다. 사회일자리창출 지원금, 시민․사회․종교단체 보조금, 사회복지시설 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보조금을 부정수령한 사람은 대학 총장부터 농어민까지 다양했고, 이 돈을 생활비나 카지노 도박자금, 주식투자비, 변호사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정부에 붙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고, 시민들의 생활을 위해 집행되어야 할 돈이 몇몇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은 피해를 직접 입는 건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정부를 운영하는 예산은 기본적으로 시민의 세금이다(기업에서 걷는 법인세도 있지만). 시민의 돈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쓸 건지는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기에 그 부분을 반드시 물어보고 궁극적으로는 시민들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리자는 것이 풀뿌리민주주의이다. 지금은 그런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금이 낭비될 뿐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 되어야 할 것들이 사유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부당한 사업들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고향을 잃는다. 마을이 파괴되고 뿔뿔이 흩어진다. 전국적으로 마을공동체가 유행하는 사업으로 되고 있지만 이미 마을인 곳들은 하나둘씩 파괴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있어도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과제로만 남아 있다. 그러니 지방자치제도의 실시가 풀뿌리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여러 가지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2. 지방권력의 민주화 = 주민의 자치역량과 공론장


가장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와 공무원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지방행정이라는 건 중앙행정과 달리 주민들의 직접적인 필요와 연관되는 부분들이 많다. 지역발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진행되는 대부분의 사업들은 주민들의 필요와 무관한 것들이 많다. 중앙정부의 사업비를 따기 위해 이름만 거창하게 부풀리거나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 이름만 따오는 사업, 주민들의 눈을 현혹시키려 규모만 키워놓은 사업들이 꽤 많다. 이런 사업들에 허투루 들어가는 세금을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에 쓰도록 해야 한다. 제 아무리 새롭고 흥미로운 일을 상상하고 기획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방치하면 상처는 곪기 마련이고 심각한 병으로 발전되어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 곪은 곳을 찾아 도려내고 상처를 치료해야 지역사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官)과 민(民) 사이의 무게중심을 잡는 일이다. 거버넌스라는 말이 여기저기 사용되지만 민과 관의 ‘협력’은 아직 요원한 숙제이다. 협력을 논하기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어떤 눈높이로 바라보고 있는지 현실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전제하고 서로 좀 부대끼며 서로의 역할을 생각하고 좀 맞춰보고 난 뒤에야 협력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지방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시민사회의 힘을 강화시켜야 관으로 기운 지역사회의 권력기반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그런 변화를 자극해야 한다. 그러니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의 기능은 제 아무리 민관협력과 거버넌스를 떠들어도 결코 사라지면 안 되는 중요한 기능이다.

 

특히 지방정부가 가진 예산이나 주요한 자산들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위탁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의 사용을 결정한 권한은 당연히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무원이 공공성의 대변자인양 행세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사적인 의견이라 무시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풀뿌리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아무리 거버넌스를 떠들어도 ‘통치’의 관점이 ‘자치’로 바뀌지 않으면 풀뿌리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주민의 자치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주민자치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되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만들 방법은 쉽게 찾기 어렵고, 때로는 그 방법을 찾더라도 행정의 영향력과 개입으로 변질되곤 했다. 예를 들어, 주민참여예산제도처럼 자치역량을 강화시킬 것이라 기대를 받은 제도조차도 명목상의 제도로 전락해버린 곳들이 많다. 조례만 덩그러니 제정되고 예산위원회가 열리지 않는 곳도 많고 열리더라도 형식적으로 열리는 곳들이 많다. 더구나 민중권력을 구성하고 그 힘을 강화시킨다는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원래 취지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창구로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니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고해서 주민의 자치역량이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치역량이 형성되려면 지역정치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이나 청소년처럼 기성정치에서 소외된 주체들이 지역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치를 경험하고 그런 관점으로 지역사회를 바라보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지방정부의 위원회나 참여과정에 일정 비율을 여성과 청소년의 몫으로 할당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자격을 제한할 경우 대부분 관변단체나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위원회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 활성화되고 있지 않지만 수원시의 시민배심원제처럼 시민들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던 사람도 몇 번의 참여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처음부터 잘 되진 않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들을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몇몇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문적으로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맡았다면 이제는 그런 기능을 대중화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고, 이런 정보를 가공해서 시민들에게 알려줄 매체가 필요하다. 자기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시민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행정구역상 자기 동으로 분류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서울시나 경기도같은 광역자치단체 규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언론이 여론을 독점하는 상황이다보니 한국에서는 풀뿌리언론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지역언론사의 상당수는 지방정부에 기생하는 계도지나 지역여론에 영향을 미쳐 이권에 개입하려는 거짓언론이다. 지역의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공론(公論)을 자극할 수 있는 풀뿌리언론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하니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풀뿌리언론의 역할을 담당할, 지역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할 사람이나 단체가 필요하다. 충청북도 옥천군의 <옥천신문>처럼 지역의 여론을 만들고 공론장을 구성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인터넷이나 입소문을 통해서라도 여론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작은 모임이라 하더라도 지역의 소식을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모임들이 생겨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은 시민들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하다못해 민원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주민감사청구제도, 주민투표제도, 주민발의제도 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런 구체적인 방법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 단체가 일방적으로 시민에게 방법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알고 있는 지역의 문제나 현안을 단체가 함께 고민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시민은 지역의 기술이나 지혜를 알고 있고,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제도와 방법에 능하기 때문이다. 이 둘이 만나야 문화와 제도의 힘이 결합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개별적인 사안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바로잡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거 때만 반짝 연대하지 말고 지역의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속적인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지역의제를 서로 선점하려 하지 말고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지속적인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고민한다면 정당과 지역단체들이 구체적인 연대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단순히 선거연대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 지역사안을 함께 논의할 과정을 미리 준비하고 합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리 신뢰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눈높이를 맞출 필요가 있다. 선거나 사업을 위해 만나면 목적이 너무 앞서서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것이 선거나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광역자치단체 규모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단체들이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4년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도를 가지고 입씨름이 많은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단체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지방의회를 강화시키며 지역사회의 정책결정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제도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힘만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중앙정치와 지역정치가 서로 매개되어 풀려야 하고, 장기적으로 연방구가 형태로 중앙정부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 이런 전환을 위해서는 풀뿌리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만이 아니라 정당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약자들의 연대라는 말은 그 약자가 다수라는 현실의 구조를 은폐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오큐파이 운동에서 ‘1% 대 99%’라는 구호가 나온 건 약자가 다수임을, 다수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중앙정부나 국가에 비해 언제나 약한 곳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공간은 지역사회라는 점에서 이곳은 세상변화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두가 흐트러지듯이, 지역사회에서 시작하는 변화는 모든 사회변화의 기본이다. 물론 반대로 중앙의 변화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지만 각 지역의 특수성에 맞게 그 변화를 적용하는 힘은 지역사회에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지역사회의 힘이 중요하다.



3. 지역살림살이의 민주화 = 자급역량과 공공성의 강화


노동운동에서 ‘함께 살자!’라는 구호가 나왔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의 뒤를 잇는 구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것은 누구와 함께 살고자 하는가, 라는 부분이다. 시민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함께’만이 아니라 ‘살자’라는 얘기가 들어가려면 뭔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자는 건가? 노동운동이 다른 시민사회운동 또는 지역사회와 함께 살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그 내부에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보수는 보수적이라서 노동조합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고 진보는 내가 진보인데 노동조합이 왜 필요해, 이런 식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가 조직화되고 사회적인 발언권을 얻는 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 뒤이다. 발언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고 서로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노동조합이 고민하는 사회변화가 시민들의 ‘지역발전’으로 여겨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겠지만 일단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지역화라는 주제가 꽤 오래 논의되어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떤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것은 ‘관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동운동이 지역사회를 대상화시키고 시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거나 지역사회를 보수의 아성으로 전제하고 계몽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노동운동의 지역화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지역사회에 시설을 만드는 것으로만 보자면 노동조합보다 기업이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명목으로 쏟아지는 지원금들은 지역사회를 길들이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절에는 공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는 결정만큼 지역사회를 협박하기에 좋은 일도 없다. 이렇다보니 노동조합이 쉽게 지역사회로 스며들기 어려운데 시혜적이거나 계몽적인 관점을 가지면 그런 스며듦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물론 진주의료원의 폐원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노동문제는 지역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학교나 병원같은 생활과 밀착된 의제를 제외하면 노동문제는 지역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연대에 앞서 먼저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없다. 이것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대공장의 노동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많은 노동시간과 척박한 문화가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지역사회 활동을 가로막는 면도 있지만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울산광역시와 같은 대공장 밀집지역을 가더라도 지역사회가 활성화되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그런데 2013년 7월 24일 민주노총 부산ㆍ울산ㆍ대구 경남ㆍ경북본부,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ㆍ울산ㆍ경남본부와 대구ㆍ경북본부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거부한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주민의 생명권과 생존권, 재산권 등을 송두리째 빼앗고 주민을 전력난의 주범으로 내모는 한국전력공사의 송전탑 공사에 반대한다"며 송전탑 공사를 거부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설득해 밀양 주민들과 연대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지역사회가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드물다.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건 더 이상 당위가 아니다. 지역의 불확실한 미래를 고려할 때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는 그나마 티라도 나지 구미나 수원의 불산유출사고처럼 공장에서 다뤄지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활하는 지역주민들은 화약고를 안고 사는 셈이다. 발암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의 삶이 그렇게 발암물질을 포함한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법이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 자치가 가능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송전탑이 들어설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 용산참사로 목숨을 잃은 유족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주민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현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지했던 SKY 액트나 ‘현대차 희망버스’는 좋은 사례이다.

 

이렇게 삶터와 일터를 연계시키려는 전략 속에서만 진정한 자치가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생산과 소비가 연계되어야 하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산과 소비를 연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면, 응당 노동운동과 소비자생활협동조합운동이 서로 만났어야 할 텐데,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해 운동의 연대에 앞서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나 있을까?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를 따져보면 생산과 소비를 연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협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이 협동조합과 무관할 이유는 없다.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이라 불리는 로치데일 협동조합도 노동자들이 만든 조합이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적당한 가격에 정직한 생활재를 거래할 수 있도록 매장을 만들고 노동조건이 좋지 않거나 실직한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며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삶을 기획하는 곳이 협동조합이었다.

 

그리고 생산과 소비를 따질 때 사회적 경제, 자급의 가장 기본은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리고 먹는 건 노동만이 아니라 먹거리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이 농민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과 무관할 수 없다. 노동운동 쪽에서는 시민들이 노동과 관련된 사안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하지만, 노동만이 아니라 농민, 농적인 삶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더 무관심하다. 귀농, 귀촌이 한때 사회의 관심을 받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농민과 농촌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농촌은 도시에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배후지로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고, 귀농이나 귀촌은 도시민들의 목가적인 선택처럼 여겨지는 실정이다. 하지만 외국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농촌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농민이 살아날 방법, 더구나 농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이어갈 방법은 먼 숙제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도시와 농촌이 서로의 삶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농민회와 손을 잡고 농산물을 구입하거나 농활을 떠나는 예는 있었다.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광주 지부가 구례군 농민회와 함께 공동경작단을 운영하고 식당에서 쓸 쌀을 수매하는 건 좋은 사례이다. 이런 연계망도 매우 중요하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부산에서는 민주노총부산본부의 결의로 만들어진 노동자생협이 농민회와 연계해 활동하는 건 좋은 사례이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시도를 잘 살려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운동에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는 농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농민은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과정에 노동조합과 농민회만이 아니라 다양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들이 힘을 모은다면 더 큰 힘을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보육, 교육, 의료, 복지서비스 등 다양한 방향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함께 살자’의 과정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운동이 지역의 노동운동에 관해 무관심하거나 그들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협동조합이 아무리 붐이라도 협동조합 한 두 개가 지역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수는 없다. 다양한 협동조합들과 사회적 기업,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으고 서로의 존재와 역할을 이어갈 때에만 자급하는 살림살이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 지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들이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연계하는 연계망을 만들 때 서로의 삶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실질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생태계’는 지방정부가 만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는 지원이 끊어지는 순간 지속되기 어렵다.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과정(相互扶助)은 내가 남에게 의존할 뿐 아니라 남이 나에게 의존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로 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강해지는 과정이 상호부조이다. 풀뿌리민주주의는 그런 상호부조를 통해서만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중요한 자원이 공유되고 순환되며 지역의 자급역량이 강화되며 함께 쓰고 공유하는 것(公共性)이 확대될 때에만 자치도 가능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가 직거래를 하겠다며 나섰다. 2013년 4월, 농림부는 농산물 유통구조개선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직거래 확대’를 내세웠다. 4% 수준의 직거래를 2016년까지 10%까지 늘리고, 이를 위해 직매장 100곳, 대규모 직거래 장터 10곳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직매장 설치나 공동사업장 설치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건 직거래 확대를 농협 중심으로 추진하고 그동안 직거래를 해온 소비자생협들을 따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생협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할 수 있다. 그동안 열심히 직거래운동을 해온 건 우리인데, 우리를 빼고 직거래를 확대한다니. 그런데 다시 잘 생각해 보자.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한다는 것만 생각하면, 지금 정부의 방침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운동의 면에서 생각하면 진정한(?) 직거래는 소비자생협이 아니라 생산자가 바로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꾸러미’ 사업이나 전북 완주군에 만들어진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생협의 유통방식인 직거래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 한살림운동에서 직거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동안 여러 홍보물이나 문건에서 직거래라는 표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써 왔다. 조합원들도 한살림운동을 직거래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는데, 이 직거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한살림은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직거래를 시작했을까? 한살림 초기 문헌을 보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간유통업자들이 농산물 가격을 폭등시킨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더 많이, 더 빨리 키우려는 문명을 대표하는 농약이 농민과 소비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돌아가신 박재일 선생님은 “오로지 증산에만 매달리던 당시 농업 현실, 그리고 무엇이든 쉽게 쓰고 버리며 더 많이 더 빨리 갖는 일에만 매몰된 생활양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 속에 지난 1986년 한살림운동을 시작했습니다.”라고 20주년 기념 대화마당에서 말씀하셨다.

당시의 고민은 ‘가격’을 낮추기 위한 직거래가 아니었다. 가격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이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한다.”, 이것이 한살림의 구호였다. 단순히 직거래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철학이 이 구호 속에 숨어 있었다. 지금 농림부가 주장하는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위한 직거래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책임생산하고 책임소비하며 서로 믿는 관계를 만들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직거래였다. 그래서 무농약과 유기농산물이 중요했고 손으로 풀을 뽑아가며 지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책임지고 소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더 싸게, 더 많이 소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소비를 줄이는 것도 한살림의 중요한 과제였다. 한살림운동이 “부엌과 화장실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며 최초로 재생휴지 사용운동을 벌이고 협성생산공동체가 최초로 폐식용유를 이용한 비누공장을 세우고 물살림운동을 벌인 건 소비되고 폐기되는 물건을 재활용하여 다시 순환의 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이 역시 직거래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생산-유통-소비-폐기 과정을 생태적으로 순환시키는 것이 한살림운동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소비의 변화만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하는 농부들도 공해물질이나 합성세제를 안 쓰며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아야 했다.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라고 외치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보자는 것이 한살림운동이었다.

이렇게 보면 한살림의 직거래는 지금 시중에서 논의되는 직거래와 차원이 다른 직거래이고 비틀거리는 세상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한살림의 직거래는 ‘가격’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조합원들이 알고 깨달으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운동의 가치도 실현되고 세상도 함께 변할 것이다.

올해 8월까지 기획재정부에 등록된 협동조합의 수가 2,314개이다. 한살림이 갈수록 늘어나는 다른 협동조합과 무엇이 다른지, 한살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과정은 그동안 운동이 사용해온 말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야할 길만 쳐다보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잊어버리기 쉽다. 갈 길이 바쁠수록 우리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까를 떠올려 보자.

 한살림이 세상에 공표한 주요한 실천과제는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 지역살림이다. 이 과제들이 제각각인 것은 아니고 서로 연관된 것이지만, 넷 중에 가장 낯선 과제는 지역살림이다. 조합이 있는 지역의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지역을 살리자는 뜻은 대충 이해되더라도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라고 자꾸 묻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다지만 협동조합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 7원칙의 마지막 원칙도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concern for community)’인데, 이 역시 좀 추상적이다. 그 뜻을 보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동의하는 정책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말도 좀 애매하고, 정책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도 분명하지 않다. 차라리 협동조합이 거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로 환원하자고 명확하게 정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요즘 유행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협동조합은 일반 영리기업과는 다른 형태로 지역사회에 관심을 두고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 어떤 관계가 가능할까?

 

모심과살림연구소가 2012년에 발간한 『지역살림운동 길잡이』를 보면, “지역살림운동은 한살림이 그동안 역점을 두고 노력해 온 먹거리에 기반한 직거래 사업과 생활실천 활동의 경험들을 살려서 다양한 생활 속 과제들(교육, 환경, 복지, 일자리 등)을 협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감으로써 ‘조합원의 참여로, 이웃과 함께, 지역사회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생활양식과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려는 한살림의 뜻과 실천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한살림고양파주는 “조직이 주도하는 지역살림 혹은 시혜적 복지의 지역살림에서 나아가, 스스로 생활의 필요를 조직하여 시스템과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지역살림은 교육이나 환경 등 다양한 생활영역으로 한살림의 활동을 확장시키되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 그런 필요를 조직하는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역살림을 통해 사업영역이 넓어져야 하지만, 그 활동을 담당하는 것은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업이 아니라 조합원과 조합의 체계로 지역사회의 필요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왜 지역살림을 고민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답은 홀로 사는 게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면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기득권층이라 하더라도 기후변화나 핵사고를 홀로 감당하긴 어렵다. 그리고 국가는 삶의 디딤돌은커녕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을 살린다는 건 내가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지역을 살린다는 건 그곳에 사는 나를 살린다는 것이고 지역이 속한 나라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넓히고 바꿔야 지역살림을 해야 할 이유도 생긴다. 그리고 지역살림은 조합원들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움직이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활동과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은 바로 지역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이다. 눈에 보이고 머릿 속에 그려져야 감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지역이란 말은 참 감을 잡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내가 누구를 어디서 만나는지, 어디로 무엇을 하러 돌아다니는지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이다. 여러 명이 그렇게 움직이는 선을 그리다보면 공간과 관계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지역살림의 기본계획을 짤 수 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자료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지역살림운동 길잡이』를 보면, 지역살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왜 하려고 하는가(목적) :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필요, 조직 목표에 대한 확인

둘째, 누구와 함께 하려고 하는가(주체) : 함께 할 주체와 제안자, 파트너 찾기와 연결

셋째 , 언제 시작하려고 하는가, 목표시점을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시간계획)

넷째,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실천기반, 자원 확보 등)

다섯째, 예상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이해관계 등)

여섯째, 어떤 단계와 과정을 밟아갈 것인가(전략과 비전)

일곱째,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가(비용 및 효과 등)

 

가지 않은 길이기에 가야할 가치가 있다. 지역살림은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이다.

 이 국가와 저 국가의 사잇길


2008년에 때 아닌 논쟁이 건국 60주년 기념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60주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주장했고, 60주년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토와 주권을 가진 국가의 실효성을 주장했다. 아주 식상한 내용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논쟁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배워왔기에 거의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질 기회를 마련했다. 도대체 우리에게 건국이란 어떤 의미일까? 친일파를 몰아내기는커녕 친일파에 맞섰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하고 기득권층의 배만 불렸던 대한민국이 언제 누구의 뜻을 받들어 세워졌는지가 왜 중요한가?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더욱더 본질적인 질문, 즉 우리에게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먹거리조차 자유로이 결정할 수 없는 나라에서 왜 우리는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가? 국가가 내 뜻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나는 계속 국민이어야 하는가? 국민으로 살지 않으면 나는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

 

그동안 이런 물음을 던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국사(國史)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민족주의는 기득권을 차지한 자들을 보호하고 사회주의는 그들을 비판하며 노동자․농민의 세상을 주장했지만, 둘 다 자기 역사의 틀을 국가에서 찾았다. 각자가 자신의 국사를 기록하고 그 정당성을 고집해 왔기에, 우리는 국가가 아닌 다른 무엇을 통해 나와 우리의 행복을 그려본 적이 없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사람이 사는데 역사나 국가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허나 내 옆의 가족, 친구, 애인조차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태극기를 흔드는 애국자로 변신한다. 평상시에 “왜?”라는 물음을 던져본 적 없기에 국가는 은근히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충성을 바쳤건만 국가가 내 삶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내게 요구할 뿐 내가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딱히 맞설 방법도 없고 대안도 없으니 무섭고 더러워서 참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삶은 더 불안하고 서글프다. 지금 우리가 서글픈 것은 역사를 트집잡는 뉴라이트의 억지보다 새로이 역사의 흐름을 짚을 좌표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하더라도 이념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밤하늘에 뜬 별을 보고 사람들이 길을 찾듯이, 이념은 우리 사회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뉴라이트들이 지난 역사를 부여잡고 온갖 트집을 잡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늘을 보지 않고도 제 갈 길을 잘 찾아가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삶이 아니라 국가나 재벌이 정해놓은 좌표를 보며 쫓기듯 삶을 산다.

 

그런데 조선, 일제 식민지, 미군정,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놓인 사잇길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국사의 틀을 벗어나 풀뿌리 민중들이 살아왔던 기록을 엿볼 수는 없을까? 설령 그런 기록 자체가 진리는 아닐지라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면 그런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국가와 자본이 우리의 삶 속으로 침투하던 시대를 돌이켜보려 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당시 인구의 83%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오래된 미래’라는 말의 참신함이 어느 정도 냉랭해진 지금이지만 저 곳의 얘기가 아니라 이 곳의 얘기라면 다시 온기가 돌 수 있지 않을까?



식민지 시대의 저항하는 농민공동체


1980년대 초 라나지뜨 구하(Ranajit Guha)를 비롯한 인도의 역사학자들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관점을 비판하고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인식하기 위해 서발턴(subaltern)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스스로 만든 개념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에게 빌려온 개념이지만 이들은 이것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되짚을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특히 이들은 식민권력과 토착권력을 전복시키려는 농민들의 저항을 분석하며 농민을 다시 정치의 무대에 올려놓았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서발턴 개념을 빌려온 연구들이 제법 있지만 그 연구들은 주류 역사학을 비판하거나 탈근대/변경의 역사를 주장할 뿐 역사를 근본적으로 재해석하며 농민들을 정치의 주체로 재구성하지 않았다. 기존의 국사보다 인식의 폭이 넓어졌지만 권력의 결을 거스르며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시도는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거칠게나마 우리 농민들의 저항과 농민공동체의 형성을 살펴보려 한다.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P. Kropotkin)이 제안했던 아나코-코뮨주의(anarcho-communism)라는 개념은 일제 시기 농민공동체의 의미를 되짚어보는데 유용하다. 아나코-코뮨주의는 그동안 《녹색평론》에 몇 차례 소개했는데, 농업과 소공업에 바탕을 둔 자치와 자급의 마을공동체를 뜻한다. 외국말이라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 농민들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말은 낯설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서로 돕고 보살피며 함께 꾸려가는 삶은 전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농민공동체가 지금처럼 낭만적인 향수로 얘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농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실제 현실의 버팀목이었다. 19세기부터 한국의 농민들은 민란(民亂)을 일으키고 면과 동리 단위로 모정(茅亭), 농정(農亭), 농청(農廳)과 같은 공간에서 촌회(村會)나 향회(鄕會)를 열며 자치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제는 한국의 마을공동체들을 파괴하려 들었다. 이미 동학운동을 경험했던 일제는 자신의 지배를 위협하는 저항의 기반이 농민공동체임을 깨달았다. 이를 파괴하기 위해 일제는 한일합방 이전인 1896년 13도 개정 때부터 군수의 역할을 보좌하던 향장(鄕長)과 향청(鄕廳)을 폐지했고 1914년에는 부군면을 통합하고 면장을 임명했다. 마을이름도 ○○동으로 바꿔서 마을의 정체성을 없앴다. 그리고 경찰과 헌병의 수를 매년 늘리고 그들에게 범죄단속이나 첩보수집만이 아니라 모종심기와 토지측량, 위생검열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삶을 시시콜콜 간섭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일제의 식민지 지주제 또한 농민들의 삶을 뿌리채 뽑으려 들었다. 자작농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소작농은 높은 소작료와 각종 부역에 시달리다 일고(日雇)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했다. 쌀의 생산량을 늘리려는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은 수리조합을 만드는 비용을 농민들에게 부담시키며 삶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일제조차도 농민층의 붕괴를 보다 못해 1933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벌이며 농가경제의 자력갱생, 건전한 농민정신 함양을 주장할 정도로 농민들의 삶은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한국의 농민들은 이런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제 초기부터 의병(義兵)의 전통을 따르는 반란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났다. 일본 측의 통계를 따르더라도,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총 2,852회의 전투가 벌어졌고, 141,185명이 이 전투에 참여했으며, 죽은 사람만 해도 17,697명, 부상자가 3,706명, 체포된 사람이 11,994명에 달했다. 주로 해산된 군대나 지방유림의 지도를 받았지만 많은 농민

들이 이 반란에 참여했다.

 

그러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농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일어난 사건이고 사상가 함석헌의 말처럼 “씨의 역사”, “자주(自主)하는 민(民)의 역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3․1운동을 민족이나 독립의 관점으로만 해석해 왔지만 3․1운동은 조선 말기 수많은 민란들의 뒤를 이었고 가까이는 1894년 동학혁명의 기운을 이어받았다. 이 땅의 민중들은 산꼭대기에 횃불이나 봉화를 피우고 만세를 외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했다. 시골 장터가 열리는 곳마다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사람의 시신을 떠메고 상여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학생들은 학교 문을,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닫았다. 농민들은 일제 품종이나 묘목을 심지 않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일제 상품을 사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싸움을 벌였다.

 

3․1운동을 통해 이 땅의 민중들은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와 자급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점은 자치공동체가 해온 역할을 대신하던 면사무소가 공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전남 순천, 평안도 의주, 평안도 신미도 등지의 주민들이 면사무소를 접수하고 자치업무를 봤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농민들은 행정기관을 접수하고 서류철을 불태웠을 뿐 아니라 회의를 열고 공동체의 일을 함께 돌봤다.

 

일제가 3․1운동을 힘으로 짓누른 뒤에도 풀뿌리 민중들의 열망은 쉽게 식지 않았고, 1920, 30년대의 농민운동은 농촌공동체를 다시 세우려 했다.



농민공동체에서 싹튼 다양한 사상들


3․1운동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면서 다양한 사상들이 농민들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소작쟁의를 일으키며 지주제에 맞서던 농민들은 아나키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다양한 사상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국사는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농민들의 저항을 기록하지 않았고, 사회주의 역사관은 농민의 저항을 개량주의와 사회주의로 구분했다. 기존의 역사관은 임시정부의 법통이나 해방의 의미를 강조해야 했기 때문에 농민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그리며 해외의 독립운동을 주로 다뤘다. 그리고 사회주의 관점은 국내의 농민운동을 혁명과 개량의 관점에서 ‘평가’하며 사회주의 계열만을 진정한 사회운동으로 봤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관점은 천도교 계통의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나 기독교계의 농민운동, 협동조합운동 등을 일제 농민개량화정책의 결과물로 보며 개량주의라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운동을 개량주의로 재단할 수 있을까? 기독교계의 손정도(孫貞道)는 “우리가 時下를 쫏차 基督의 精神을 發揮하나니 朝鮮 內地나 滿洲나 基督敎的 新農村이 組織되여야 하겟고 압흐로는 네게 잇는 所有를 다 이 農村에 드리노켓느냐 하는 問答으로 그 이가 敎人되고 못됨이 나타나게 될거시다”라고 말하며 소유 없는 ‘기독교 사회주의’를 모색했다. 손정도는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설립해 “無産農民으로서 金錢이 잇는 資本家들을 抵抗하고 스사로 生産하기가 不能할지니 不可不 貧者 貧者끼리 協同互助하는 것으로 生産의 資本力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상촌 건설에 힘썼다. 그리고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영향을 받았던 이용도(李龍道)는 톨스토이를 스승이라 부르며 빈자와 연대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주장했다. 이용도는 장로교회에서 이단으로 선언되는 파문을 겪으면서도 교회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기도하는 공동체로 만들려 했다. 또한 3․1운동 이후 점점 보수화되는 교회에 실망하던 이대위(李大偉)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YMCA를 중심으로 사회복음운동과 농촌협동조합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유재기(劉載奇)는 협동조합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활화하는 유기적인 조직체라고 평가하며 장로회 농촌운동을 이끌었다. 유재기는 독일 라이파이젠식 신용조합과 영국 로치데일식 소비조합을 만들어 소농의 자립과 협동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흐름을 모두 개량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자기 재산을 모두 공동체에 바치고 서로 돕고 협동하며 살겠다는 사람들이 현실과 타협하는 개량주의자들일까? 빈부와 계급을 넘어 사랑과 협동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떠받치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이 개량주의로 평가되어야 할까?

 

그리고 당시의 농민운동을 사회주의운동과 그렇지 않은 운동으로 구분하는 것도 위험한 시각이다. 일제 시기의 농민운동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조동걸은 사회주의운동이 소작쟁의를 자신들의 운동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제도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부러 사회주의자를 만들었던 경우도 허다했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농민운동을 개량과 혁명을 평가하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농민공동체에서 싹트던 다양한 사상들을 새로이 평가할 수 있다. 가령, 톨스토이가 스스로 아나키스트임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자급하는 농촌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았음을 생각하면, 앞서 얘기한 기독교 사회주의운동이 지향하는 사회주의는 소련식 사회주의보다 아나코-코뮨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상에 맞춰서 현실의 농민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농민공동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상이 재구성되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외국의 이론을 좇아 만들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상을, 그리고 농민공동체 속에서 싹트는 자치와 자급의 이념을 볼 수 있다.

 

그 점은 천도교에서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천도교계의 김일대(金一大)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지만 동학당(東學黨)을 이어받은 천도교는 “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로서 광제창생(廣濟蒼生)을 하겟다는” 새로운 정치사상을 가진 교정합일체(敎政合一體)라고 주장한다. 1925년에 조직된 조선농민사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얻고, 농민대중의 교양을 향상시키고 농민대중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킨다는 목적을 세우고 소비조합운동, 생산조합운동, 기술향상운동, 경제균형운동(經濟均衡運動)을 펼쳤다. 김일대에 따르면, 1930년 조선농민사가 천도교청년당과 통합하면서 불과 10개월만에 새로 들어온 사원이 3만명, 새로 만들어진 군단위 농민사가 50개소, 리단위 농민사 1,000개소라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일대는 조선농민사가 조선 전체의 경제력을 발전시키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농민사는 계와 두레같은 전통적인 공동노동조직을 공동경작계로 꾸리고 군단위마다 공생조합(共生組合)을 만들며 농민들이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 했다. 그리고 《조선농민》과 《농민》등의 잡지를 발행하고 강연회를 열며 계몽운동과 농민야학에도 힘썼다. 《조선농민》은 야학의 교재로 사용될 〈농민독본〉, 〈농민과학 강좌〉, 〈위생강좌〉, 〈상식문답〉 등을 연재하고 농민야학과 귀농운동에도 힘을 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조선농민》과 《농민》이 아나키즘의 경향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연구가 거의 없지만 국문학계에서 이런 논의가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조선농민사의 중농주의를 민족주의적 개량주의보다 아나키즘에 기반한 자생적인 이념의 하나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이 잡지에 글을 실은 작가와 비평가들은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열었을 뿐 아니라 공동경작제를 통한 이상촌건설을 추구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허문일(許文日)의 〈自主村〉은 그런 이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얘기된다. 문학평론가 김택호는 허문일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민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를 강조했던 인내천주의가 제국주의의 사회진화론을 거부하고 이상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아나키즘과 소통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문학작품만이 현실의 노동조직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각 군의 농민사들은 공동경작에 관한 규약을 만들고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공동경작계는 협동노동을 공동체의 규약으로 발전시키며 서로 돕고 보살피는 자급과 공생의 체계를 마련했다. 조선농민사만이 아니었다. 1926년 6월 전진한(錢鎭漢)이 일본 동경에서 조직한 협동조합운동사(協同組合運動社)는 “①우리는 협동․자립 정신으로써 민중적 산업의 관리와 민중적 교양을 한다. ②우리는 이상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조합정신의 고취와 실지 경제를 기한다”는 목적을 내세웠다. 협동조합운동사는 방학 동안 경상북도 일원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열고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그래서 1928년 11월에는 협동조합의 수가 22개, 조합원수 약 5천명에 이르렀고 자본금도 4만 5천여원에 달했다.

 

그런데 이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걸었던 삶의 양식이었다. 독일의 사상가 란다우어(G. Landauer)가 말했듯이 협동조합의 정신인 서로 돌봄(mutuality)은 빈곤-노예-노동-생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바꾸고 자연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서로 돌봄은 돈의 지배를 없애고 일을 하고자하는 모든 사람이 일하게 하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이다. 한국의 아나키스트들도 협동조합운동에 많은 노력을 쏟았을 뿐 아니라 계와 두레같은 전통적인 노동조직에서 상호부조의 가능성을 찾았다. 따라서 이런 노동조직 자체가 아나코-코뮨주의와의 강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동학과 아나키즘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수운 최제우가 강조했던 바르게 이해하고 익히고 실천한다는 신경성(信敬誠)의 수행체계, 한울님이 네 몸 가까운 곳, 천지생명체에 모셔져 있으니 먼데서 구하지 말라는 인내천의 사상, 사물이 자기 속의 씨앗을 스스로 틔우며 조직해간다는 기화(氣化)의 사상은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논리와 맞닿아 있다. 즉 몸소 겪고 부딪치며 현실 속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직접행동(direct action), 자기 밖의 본질에 갇혀버린 고대와 근대의 정신을 비판하며 참된 자아(ego)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 정신과 육체, 사물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동학과 유사하다(사상적인 면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 더 자세하게 다루고 싶다).

 

이처럼 식민지 시기의 농민공동체는 새로운 사상의 싹을 틔우는 배양기였다. 농민들은 각 마을의 ‘촌계’, ‘동계’를 디딤돌로 삼아 민간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동회’나 ‘리회(里會)’같은 공동체적 연대를 이용하여 ‘면민대회’나 ‘촌민대회’를 열며 새로운 사회를 준비했다. 농민들은 “상호부조의 원칙에 의하여 정의를 지지하며 이상에 資할 과학으로 호상부조의 원리 아래 생존권 확립을 期하는 ‘이상향’을 지향”하기도 했다. 이상은 저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경향은 사회주의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명식(金明植)과 김사국(金思國) 등이 활동했던 서울청년회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상호부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서울청년회와 교류했던 전라도 지역의 사회주의운동들은 농민공동체를 디딤돌로 삼았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완도 근처의 작은 섬인 소안도(所安島)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소안노동대성회(所安勞動大成會)가 조선농민사의 공동경작계를 받아들여 함께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완도 주변에서 조직된 ‘필연단’과 ‘살자회’도 “우리는 역사적 필연성인 진화법칙에 의하여 합리적 신사회의 건설을 기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일치단결로써 민중운동의 충실한 역군이 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함양을 도모함. 우리는 신사회건설의 속성을 도모”하자는 강령을 결의하기도 했다. 아나키즘의 주요 노선인 상호부조가 사회주의 청년단체들의 주요한 강령이 된 것은 농민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사상들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다양한 사상의 흐름을 놓치고 그동안 역사를 아주 좁은 관점으로만 해석해 왔다. 당시 농민공동체에서 움트던 사상을 어떤 하나의 경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농민들 자신이 변화하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했고 공동체라는 기반이 그런 저항과 새로운 창조를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다만 일제가 그 싹을 무참히 짓밟았으면서 미처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졌을 뿐이다.



잠깐 피었다 사라진 아나키즘 공동체


그렇다면 아나코-코뮨주의의 지향을 실현한 농민공동체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일제 하의 한반도에서는 그런 이상촌을 찾기 어렵다. 춘천 신북면 천전리지역, 양주군 봉안촌지역, 북간도 어복촌, 안희제(安熙濟)의 발해농장 등의 이상촌 운동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그 이상촌과 아나코-코뮨주의와의 연관성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반도 밖의 북만주에서는 잠깐 동안 아나코-코뮨주의를 따르는 공동체가 만들어졌던 적이 있다. 무장항일조직인 신민부(新民府)를 이끌던 김좌진(金佐鎭)이 김종진(金宗鎭), 유자명(柳子明), 이을규(李乙奎) 등의 도움을 받아 만든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가 만들던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1924년 4월에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1927년에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1929년 7월 북만주 해림(海林)에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했다.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크로포트킨의 농업론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려 했고 항일운동에서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주의와 협동전선을 펼치려 했다.

 

이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우리는 한 개의 농민으로서 농민대중과 같이 공동노작(共同勞作)하여 자력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활개선과 영농방법의 개선 및 사상의 계몽에 주력한다”는 당면강령을 세우고 자신의 뜻을 실현할 공동체를 찾았다. 때 마침 당시 신민부는 무장투쟁노선을 주도하는 군정파와 일상적인 정착을 시도했던 민정파로 갈라져 있었는데, 군정파를 주도하던 김좌진이 정착과 투쟁을 병행하기로 결심하고 아나키스트들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1929년 여름에 한족총연합회가 결성되고 이들은 상호부조와 자유연합이라는 아나코-코뮨주의의 조직원리에 따라 자치적인 농민공동체를 만들려 했다.

 

한족총연합회는 자신이 만주에 사는 한국 교민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향상발전을 도모하며 동시에 항일구국의 완수를 위하여 재만동포의 총력을 집결한 교포들의 자주자치적 협동조직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족총연합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①교포들의 집단정착사업, 교포의 유랑 방지 및 집단부락 촉성, ②영농지도와 개량․공동판매․공동구입․경제적 상호금고 설치 등을 목적하는 협동조합사업, ③교육․문화사업, 즉 소학․중학의 설립운영, 각지조직의 연락 및 교포들의 소식․교포들의 생활개선․농업기술지도 등을 위한 정기간행물발행, 순회강좌․순회문고설치, 성인교육과 장학제도,  ④청장년에 대한 농한기의 단기군사훈련, ⑤중학출신자로써 군사간부양성을 위한 군사교육기관의 설립운영, ⑥항일게릴라부대의 교육 훈련․계획지도를 맡으며, 지방치안을 위한 지방조직체의 치안대의 편성지도 등을 위한 통솔부 설치.” 실제로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도정하기 위해 직접 정미소를 차리고 위탁판매까지 담당했다.

 

김종진은 “농민들의 조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자신들이 필요에 의하여 상호단결하여 맺어져야한다는 것”이라고 봤고 한족총연합회를 지도자의 조직이 아니라 “농민자신의 자의적인 조직”으로 만들려 했다. 김종진은 “주민자신들의 생활을 위한 공동체로서 그들의 경제적 협력기구를 조직하고 그것을 중심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하는 농촌자치체”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북만주의 지배권을 다투던 화요파 만주총국의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1월 이후 한족총연합회의 핵심인 김좌진과 김종진, 이준근(李俊根), 김야운(金野雲) 등을 연이어 암살하고 만주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한족총연합회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이 영향을 받아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해방 이후에 농민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예를 들어, 1946년 3월 10일에 조선농촌자치연맹(朝鮮農村自治聯盟)은 “①오등(吾等)은 자주 자치적 생활의 실천으로 농촌의 조직화를 기함. ②오등은 농촌의 합리적 경영을 위하여 공동경작, 생산수단 및 시설의 공동화를 기함, ③오등은 농공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농촌 실정에 적합한 공업 시설의 완비를 기함, ④오등은 농촌의 공동 이익을 위하여 협동조합적 기관의 철저 보급을 기함, ⑤오등은 비경제적 제 생활양식을 개선하여 생활의 과학화를 기함, ⑥오등은 우리의 교육급 문화기관의 완비를 기함, ⑦오등은 오등의 보건을 위하여 후생시설의 충실을 기함, ⑧오등은 상호부조적 윤리관의 실천에 의하여 국민도덕의 앙양을 기함”이라는 강령을 선언했다. 조선농촌자치연맹의 기원(祈願)은 그 강령을 이런 마음으로 노래했다. “사람살이의 터닦은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땀과 눈물은/ 온 사람의 겨레의 살터를 닦았다. 사람들의 온 겨레를 길러내인 그대들이여/ 그들의 땀과 눈물은/ 온 세상을 입히고 먹이었다. 터닦고 길러내인 그대들이여/ 이 자유의 씨를 그터에 뿌리고 가꿔라/ 온 세상의 겨레는 그 가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런 시도 역시 미군정과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계속 좌절되고 말았다. 자치․자급의 농민공동체를 만들려는 움직임들이 계속 있었지만 그 시도들은 국가의 개입과 자본주의의 침투로 계속 좌절되었다. 그러니 공동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힘으로 파괴되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해 왔기에 지금 우리에게 공동체는 국가보다 훨씬 낯설 뿐 아니라 너무나 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국가를 통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사유하지 못하고 국가를 통한 것만이 현실적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진정 우리가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을까? 공동체는 결코 무기력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는 극렬하게 국가에 저항했고 그랬기에 국가는 공동체의 힘을 빼기 위해 새마을, 자유총연맹같은 끄나풀을 심고 토호들을 만들어 공동체 내부를 파괴했고 협동의 힘을 가로채기 위해 농협, 수협, 신협 등을 만들었다.



식민지 속의 식민지인 농촌과 농민공동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농민공동체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한국사회에서 농촌은 ‘식민지 속의 식민지’인 이중의 식민지라 얘기될 수 있다. 한국이 아직도 사상과 이념의 식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시가 모든 자원을 약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은 이중의 식민지이다. 이중의 식민지이기에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손쉬운 과제일 수 없다.

 

이시백 작가의 소설 《누가 말을 죽였는가?》(삶이보이는창, 2008)를 읽으면 농민공동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하다. 지금 우리 농촌의 실제 모습은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에 등장하는 낭만보다 한미FTA라는 종말을 눈앞에 두고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는 무기력함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인구의 7% 정도로 줄어든 농민들이 세상의 능동적인 주체로 나서기는 어려운 듯하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 역시 이미 옛날 이야기로 변해버린 듯하다.

 

하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들만 농민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과거에 농민이었듯이, 지금 도시에서 뿌리를 잃고 헤매는 존재들은 ‘미래의 농민’들이다. 농촌이 몰락하면 그 다음은 소도시가, 식민지의 대도시가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과거의 농민들이 협동과 관계라는 과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면, 미래의 농민들은 홀로 고립된 채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먹고 입고 자는 곳, 어느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려면 나와 우리가 직접 짓고 만드는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안을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대안을 살아야 한다. 혼자서 살기는 어려우니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니 농민공동체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과거의 농민공동체가 저항의 기반이자 미래의 이념을 배양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온갖 위기를 헤쳐가려면 우리는 다시 삶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을 찾아야 한다. 무서운 속도로 식민화 과정을 밟아온 한국사회가 식민성에서 벗어나 자아를 되찾으려면 다시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공동체는 소비의 도시를 벗어나 자급과 자치의 기반을 갖춘 농민공동체이어야 한다.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구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며 서로 보살필 수 있는 든든한 공동체가 있다면 삶의 조건은 달라진다. 만일 닥쳐올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국가에서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녹색성장’에 포섭되고 있다(조력발전, 풍력발전 등 수많은 녹색성장이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공동체가 아니면 무엇이 중앙집권화된 국가에게 자치를 요구하고 빈곤과 비참함으로 내모는 시장을 통제할 힘을 만들 수 있을까?

원래 청탁을 받은 내용은 ‘협동조합 신드롬’이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협동조합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내실 있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주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바이고(나도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1)), 당분간 그 진행과정을 보며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 이곳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협동조합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불협화음은 매장을 둘러싼 문제이다. 급기야 지난 5월 2일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생협매장 문제로 <아이쿱 광주권 생협>과 <한살림광주생협>의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매장 문제가 현재 소비자생협들의 가장 큰 쟁점일까? 매장이나 그 입지가 중요하다는 건 일반 유통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고, 공급에서 매장으로 생협의 물류망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왜 그동안 서로 의논해서 원칙이나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간의 연대라는 원칙이 희미해진 상황에서 이런 갈등을 둘러싸고 ‘협동조합간의 경쟁’이라는 논리가 등장한 것은 유감이지만 매장 외에도 소비자생협의 정체성과 방향을 놓고 진지한 논쟁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녹색평론》에 실린 박승옥 선생과 신성식 경영대표의 논쟁은 의미가 있다. “망하지 않고 사업체로서 살아남고 사업이 지속되는 것과 성장신화에 갇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박승옥 선생의 지적과 “성장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경영원칙을 세워야” 하지만 한국에서 소비자생협의 성장은 불가피하다는 신성식 대표의 반박은 곱씹어 볼만한 주제이다.

 

이 논쟁을 시작으로 다양한 논쟁들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나 비전, 그 사업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협동조합운동역사에서도 주요한 주제였다. 이런 물음들이 있었에 협동조합운동이 지금껏 자기 몫을 충실히 해 오고 있었던 거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논의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 이야기꺼리들을 제안하려 한다.

 

협동조합의 탈협동화, 다른 나라의 일일까?

 

《살림이야기》제 17호(2012년 여름호)에 “살리지 못하면 죽는다― 유럽 탈협동화 경향이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협동조합의 탈협동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은 주로 갈러(Zvi Galor)의 글을 인용했는데, 이 글은 탈협동화 문제를 더 깊이 다룬 볼로냐대학의 바띨라니(Patrizia Battilani)와 베르겐대학의 쉬뢰터(Harm G. Schröter)의 공동연구 “탈협동화와 그 문제점들(Demutualization and its Problems)”(Quaderni DSE Working Paper, 2011년)을 소개하려 한다.

 

탈협동화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소유권 구조의 변화, 전통적인 협동조합에서의 이탈, 협동조합의 사회적 가치변화를 특징으로 본다. 바딸라니와 쉬뢰터는 20세기부터 탈협동화가 진행되어 왔고, 1980년대 이후 특히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그래서 2007년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탈협동화를 심층적으로 조사할 연구위원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탈협동화되었던 협동조합들이 다시 협동조합으로 변신하는 재협동화(re-mutualization)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기본적으로 탈협동화가 미국식 경쟁 자본주의와 비슷하고,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 연구에서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탈협동화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지목한다.

 

첫째, 기업이나 정치․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아 협동조합이 사기업이나 투자자소유기업의 절차와 전략을 따르면서 협동조합의 조직이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organizational isomorphism)

둘째, 공동소유구조가 너무 경직되어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어렵다며 사유화를 지지하고, 급속도로 강화되는 경쟁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화적 요인(cultural reasons)

셋째, 일반경제학 교육을 받고 상호성을 옹호하지 않는 경영진이 취임하고 이들이 조합원을 희생시켜 자기 이득을 취하려 하면서 생겨난 경영진의 착취(expropriation by managers)

넷째,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협동조합에 대한 반감이나 협동조합을 낡은 모델로 보는 의식이 확산된 정치적인 요인(political reasons)

다섯째, 자본이 제한되고 관리자에 대한 통제체계가 없는 협동조합의 비효율성 또는 성장전망의 부재(inefficiency or lack of growth perspectives)

 

이런 요인을 정리하면서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지난 20년 동안 ①조합원제도에 바탕을 둔 상호부조라는 전통적인 인센티브가 흐려질 경우(협동조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때), ②정부가 탈협동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③미래의 전망을 발전시킬 방법에 관한 대안적인 견해가 전통적인 견해보다 더 매력적일 경우에 탈협동화가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강조하는 건 협동조합이 기업으로 전환되기가 쉽지 않은데 정부가 탈협동화를 가능케 하는 법률들을 제정함으로써 여러 협동조합들(특히 보험과 관련된 협동조합들)이 탈협동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탈협동화가 적절한 법적인 틀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런 법적인 틀이 탈협동화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보통 탈협동화가 성과와 성장을 내세우지만 바띨라니와 쉬뢰터는 탈협동화가 더 나은 효율성과 성과를 보장한다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신세대협동조합과 같은 혼성조합(hybridization)이 탈협동화와 관련되어 있고 탈협동화가 혼성조합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한다.

 

바띨라니와 쉬뢰터의 연구를 통해 탈협동화의 경향이 수십년 동안 강화되어 왔고 미국식 경제의 확산과 세계화의 흐름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체결하고 세계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지적한 탈협동화의 원인이 한국의 소비자생협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의 대의원총회나 이사회가 형식적인 의결기구로 변하고 일반기업과 비슷하게 관리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1인 1표와 민주적 참여의 원칙을 훼손하는 현상, 일반기업의 경영전략이 협동조합에 적용되는 현상 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리고 한국에서 보편화된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논리가 협동조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을까? 그러다보면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조합’으로만 인식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울러 자본출자를 둘러싼 논쟁과 협동조합의 전략부재에 관한 논쟁 등도 불거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도구로 보는 정부의 시각은 어떤 형태로든 협동조합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외부의 우려처럼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동원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경우, 탈협동화 경향은 훨씬 더 강화될 수 있다. 바띨라니와 쉬뢰터가 지적하듯이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정책이 탈협동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생협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단 ‘협동조합간의 경쟁’이라는 틀은 이런 현실의 경향에 저항하고 그것을 바로잡기는커녕 탈협동화 경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한살림광주생협>과 <아이쿱 광주권 생협>의 토론회에서 매장경쟁과 관련해 어느 한 매장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서 그 지역에 다른 매장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독점’이고 협동조합 사이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조합원을 위하고 전체 협동운동의 몫을 고려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것은 경쟁이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독점의 반대말이 경쟁이라는 것은 하이예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한국에서는 주로 자유기업원)이 강조하는 논리이다. 소비자생협이 이런 논리를 따라야 할까?

 

자유주의 경제학과 다른 관점에 따르면 독점의 반대말은 경쟁이 아니라 공유나 경제민주화, 자급자족이다. 생협매장의 지나친 경쟁을 막고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경쟁을 방해한다는 논리로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설령 어쩔 수 없이 경쟁을 고려하더라도 그건 일반기업과의 경쟁에 대처하는 방법이어야지 협동조합 간에는 적합하지 않다. 외려 소비자생협이 일정한 매장운영협정을 만들고 그런 규칙이 사회적 시장을 만들도록 자극해야 하지 않을까?

 

멘자니(Tito Menzani)와 자마니(Vera Zamagni)는 “이탈리아 경제의 협동조합 네트워크(Cooperative Networks in the Italian Economy)”(《Enterprise&Society》, 2010년)에서 이탈리아 협동조합운동의 성공이 네트워크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한다. 보통 네트워크라고 하면 하나의 중심을 가진 중앙화된 네트워크나 이리저리 분산된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를 생각하지만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은 수평적인 네트워크(horizontal network)를 구성했기에 강한 힘을 키울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네트워크에서 한 단위는 단순한 구성원일 수 있지만 때때로 다른 단위와 선으로 연결되거나 전체 네트워크를 코디네이터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다른 단위들이 자신에 의지하게 되면 전체 네트워크의 주요한 단위가 될 수 있다. 이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시장경쟁력을 증가시키고 생산을 합리화시키며 공동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위험과 기회를 공유했다는 게 멘자니와 자마니의 평가이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경제블록’이라는 말이 등장했지만 그것이 멘자니와 자마니가 말한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그렇게 형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 중요하게 소비자생협들은 그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요한 단위가 되고자 하는가?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그런 경험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축적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래야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을 받는 조합원들이 현실의 경쟁논리에서 벗어나 협동의 논리로 현실을 바라보고 삶을 기획할 수 있다. 만일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경쟁의 논리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협동조합을 탈협동화시킬 수도 있다. 소비자생협들이 경쟁논리를 도입해 서로간의 적대적인 경쟁을 강화시킨다면, 당장은 개별 생협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탈협동화의 경향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한살림>도 예전에 이랬다, <아이쿱>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자기 살을 깎아먹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소비자생협의 구조가 비슷하게 적대적인 합병을 시도하려는 외부의 기업들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의 차이를 만들어야!


협동조합이 현실에 기반한 실사구시 운동이라지만 협동조합‘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생협은 언제든 탈협동화의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한 안창호 선생은 그 방식이 정의돈수(情誼敦修), 사랑을 도탑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동은 내가 더 이상 홀로 살 수 없음을 자각하는 과정이고, 협동조합은 그렇게 자각한 사람들이 서로를 떠받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생협은 여러 가지 외부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운동, 21세기의 대안》(들녘, 2003년)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은 “소비자협동조합의 합병시도에서 배우는 이론적, 실천적 함의(Some theoret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s of the attempted takeover of a consumer co-operative society)”(《Annals of Public and Cooperative Economics》, 2000년)라는 글에서 협동조합이 외부의 자극과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챌은 1997년에 앤드류 리건(Andrew Regan)이라는 민간업자가 유럽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이던 영국의 도매협동조합(Co-operative Wholesale Society, CWS)을 합병하려 했던 과정을 분석하면서 협동조합이 미디어의 영향이나 내부매수 등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런 문제가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사업(business enterprise)과 결사(membership association)의 분리에서 불거졌다는 점도 지적한다. 버챌은 협동조합이 사업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잠재적으로 이로운 건 조합원들 때문이라는 점을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점을 자각하고 잘 활용한다면 소비자생협이 시장에서 제한되지만 잠재적으로 아주 유용한 위치(limited but potentially quite fruitful place in the market)를 점할 것이라는 거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세인드 메리 대학 경제학과의 노브코비츠(Sonja Novkovic)는 협동조합/신용조합과정(MMCCU, the Master of management : Co-operatives and Credit Union)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차이(Co-operative difference)’를 사회적으로 인식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나 시민들이 이 차이를 이해하고 믿도록 하고 이 가치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거다. 노브코비츠는 아래와 같은 것이 협동조합의 차이라고 본다.


표1. 협동조합의 차이 이해하기

 

투자자 소유 기업

협동조합

가치 기준

상장과 경영

실질성과 고유함

목적

투자자 수익 극대화

조합원과 공동체의 필요

윤리적 태도

자선

정의

요점

단일함, CSR= 비용

다차원성; 최적화된 사회

출처: http://www.vtsummit.coop/pdf/Novkovic-Managing_the_Co-operative_Difference.pdf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의 사업은 이런 차이를 마케팅하는 것이고 마케팅이 곧 교육이고 교육이 마케팅이라는 점, 시설이 교육이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노동자(활동가)가 생산품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람과 큰 뜻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인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비자생협이 활동하는 장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버챌과 노브코비츠는 협동조합이 적대적인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논리를 내부에서 더 많이 교육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은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성장시키는 것이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협동조합의 전략이다.

 

플레차(Ramon Flecha)와 크루즈(Ignacio Santa Cruz)는 “경제적인 성공을 위한 협력: 몬드라곤 사례(Cooperation for Economic Success: The Mondragon Case)”(《Analyse & Kritik》 2011년)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가 경쟁력을 만들고 협동조합간의 연대나 이익의 공유, 매우 평등한 봉급체계, 안정적인 고용구조 등이 협동조합의 차이를 만들고 확산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노동인민금고나 인도주의적인 경영만이 아니라 공개적인 지적 토론과 풀뿌리민주주의가 있었기에 몬드라곤의 성공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나 8시간노동제, 연금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보는 눈과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선구자조합>이 매장에 읽을거리를 비치하고 대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것은 당시 노동계급에게 절실했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공간에서의 토론과 학습을 통해 계급의식을 형성해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이 <선구자조합>의 성공을 보장했다고 나는 본다.

 

그렇다면 지금 소비자생협에게도 ‘협동과 연대의 의식’을 만들고 확산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조직화에는 식생활이나 취미 등을 매개로 하는 모임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의식을 형성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할 모임도 필요하다. 가령, 소비자생협의 주요한 조합원인 주부들이 가부장적이고 자본화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다른 사회의 전망을 구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 각자의 다양성과 차이를 드러내고 무엇이 소비자생협의 전망인가를 토론할 수 있는 다양한 장도 필요하다. 1978년에 부산에서 만들어진 <양서협동조합>이 단순히 좋은 책을 거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1978년에 협동서점을 만들고, 1979년에는 협동출판사, 1985년에는 협동도서관, 1990년에는 협동연구소, 2000년에는 협동대학을 설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소비자생협들이 빠른 속도의 성장에도 이런 장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차이가 부각되지 않다보니 ‘의식과 삶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소비자생협들이 이런 괴리를 조장하는 면도 없지 않다. 이것은 소비자생협이 생산에 대한 관심을 놓고 소비와 매출고를 높이는데 관심을 두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윤리적 소비와 생산-소비의 연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호세 존스턴(Josée Johnston)은 “시민-소비자 혼성의 이데올로기 긴장과 홀 푸드 마켓 사례(The citizen-consumer hybrid: ideological tensions and the case of Whole Foods Market)”(《Theor Soc》 2008년)에서 윤리적 소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존스턴은 윤리적 소비운동이 역사적으로 네 단계, ①소비자의 힘을 조직해서 지역 내 생산에 개입하려 했던 19세기 영국의 협동조합운동, ②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디즘에서 출현했고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정체성에 주목했던 소비자 행동주의, ③미국의 소비자운동으로 유명한 네이더주의(Nadersim)가 통제받지 않는 기업자본주의를 비판하며 공정한 정보와 기업의 책임성을 강조한 시기, ④개인소비자에게 안전한 시장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집단적인 소비에 관심을 두고 환경과 같은 후기 산업사회의 가치에 주목했던 1980년대 이후의 대안적인 소비운동 시기를 거쳤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기업들도 소비자운동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일정 부분 적응하며 심지어 이런 운동을 새로운 사업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런 점에서 존스턴은 윤리적 소비운동이 이런 현실적인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존스턴은 해외에서 유기농 시장이나 대안적인 식생활문화를 개척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훌 푸드 마켓>을 분석하면서 윤리적 소비운동이 일정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본다. 이 어려움은 그 개념 자체의 모순에서 생기기도 하는데, 존스턴은 소비자운동(consumerism)과 시민의식(citizenship)이 원론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가진다고 본다.


표2. 소비자운동 대 시민의식

 

소비자운동: 개인이익의 최대화

시민의식: 사회와 생태계의 공공재에 대한 공동책임

문화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에 우선순위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제한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

정치경제학

소비자시장에 우선순위; 소비를 통한 사회지위

사회 모든 계급의 공평한 접근과 역량강화; 시장을 제한함

정치생태학

소비를 통한 보존

소비의 감소; 욕구와 필요의 재평가

출저: 앞의 논문


이 구분은 원론적인 의미이고 현실의 소비자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존스턴은 <훌 푸드 마켓>을 분석하면서 이 두 모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점점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자발적인 선호가 강조되다보니 절제하며 공공재를 보존하도록 국가를 압박하는 시민의 책임은 최소화되는데, 기업은 이런 편리하고 즐거운 쇼핑을 부추긴다. 그리고 좋은 맛과 영양, 건강함을 강조하는 <훌 푸드 마켓>의 홍보전략은 엘리트 계층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을 정당화시키고 불평등한 소득구조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또한 소비를 통한 보존이라는 전략은 더 많은 욕망과 소비를 자극하고, 자급하고 짧은 거리 내에 유통되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는 포장, 상품화되지 않은 식재료 등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존스턴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시민-소비자를 섞는 기업의 프레임이 녹색을 팔아먹는 전략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프레임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훌 푸드 마켓>의 윤리적 소비라는 프레임을 통해 시민-소비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사회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는 대중적인 관심과 더 높은 소비생활로 기업이윤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겉으로는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민-소비자는 약간의 제한요건만 받아들이면 영원한 경제성장과 소비자 주권이라는 소비자 이데올로기에 계속 몰입하면서도 시민으로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관심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소비자생협들은 이런 존스턴의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생산과 소비를 분리시키고 개인의 소비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자료를 보면, <한살림>의 ‘2009 수도권 지역 한살림 조합원 의식조사’에서 조합원의 자가주택 소유율이 74.7%, 월평균 가계소득이 454만원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2012년 아이쿱생협 조합원 소비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에 따라도 응답자의 77.6%가 대졸이고, 64.9%가 자기 집을 소유했으며, 가구의 평균소득은 약 422만원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생협운동 자체가 중산층의 전유물이라고 보지는 않더라도 현재 한국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구성이 중산층을 반영하고 그들을 마케팅목표로 삼는 전략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면 야박한 평가일까? 또한 소비자생협들 조합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소비의 확대보다 자기 욕구와 필요를 평가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나?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조합원의식이 충돌할 경우 소비자생협은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나? 직거래되는 농수산물에서 가공품으로 생활재의 비중이 변하고 있는데 소비자생협들은 생산자, 노동자의 삶에 어떤 관심을 쏟고 있나? 그리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 ppm을 넘은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소비자생협은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나?

 

이런 물음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소비자생협에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단지 조합원 교양이나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과 사업 차원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자신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협동조합운동의 지속을 쉽게 장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과 노동자를 고민하지 않는 소비자생협이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 리스트(Gilbert Rist)는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 책, 2013년)에서 “‘발전’은 분명히 한정된 자원을 끊임없이 수탈함으로써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풍요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보편적인 결핍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얼버무리는 실체적인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즉 소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생산과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는 소비자협동조합은 경쟁 자본주의에 쉽게 동화될 뿐 아니라 자신의 뜻은 아니라 할지라도 타자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시킬 수밖에 없다.

 

소비자생협에서 소비자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한살림>은 이런 물음을 더욱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한살림>이 <한살림농산>에서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으로, <한살림생활협동조합>으로 변해온 역사는 이런 고민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초기의 고민은 지금의 정체성과 방향, 사업방식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최혜성 선생은 1989년 7월에 발표된 “한살림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생명의 세계관이란 “인간이 사회 안의 공동체적 협동, 자연과의 조화된 공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고 한살림의 이념은 “사회적 노동에 의해 창출되는 모든 생활가치가 협동적으로 생산되고 공정하게 배분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고, 생활가치가 인간노동의 소산이자 자연의 소산임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생명의 젖을 먹여주는 자연의 생태균형을 유지시키고, 정의의 사회적 실천, 자연과의 조화된 생활을 통하여 내면적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것을 그 실천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살림 초창기의 소식지나 가입안내서를 살펴보면 유기농산물 거래의 목적은 안전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자연과 외국농산물의 수입으로 쓰러져가는 농촌 살리기, 농약으로 신음하는 농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과 소비자생협이라는 틀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제가 <한살림>에 있다고 본다. 즉 한살림은 윤리적 소비운동을 넘어서는 인식틀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스스로 실현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조합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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