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고 시커먼 해일이 도시를 삼키는 광경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그냥 철렁하기만 했다. 허나 그 뒤를 이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사고는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종말이 다가온 듯했다. 심각한 재난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에 이미 21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6개를 짓고 있고 2030년까지 핵발전소가 총 41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에게 불구경할 여유가 있을까?


사고소식을 들으며 이제 돌을 맞이하는 아이 얼굴을 바라본다. 어느 순간 핵발전과 관련된 보도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안전한(?) 한국형 원자로가 전략적인 수출품목으로 떠오르는 걸 보며 머릿 속이 핑 돌았다. 이 아이를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전사로 키워야 하나? 보태줄 건 없더라도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남겨줘야 할텐데, 핵은 미래 자체를 파괴한다.



핵발전과 민주주의의 파괴


지금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우리가 쓸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미래를 팔고 있다. 핵발전으로 생기는 핵폐기물은 최소한 2만 5,000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끔찍한 물질이다. 이런 물질을 두고 누가 ‘안전’을 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연방사능이나 병원에서 순간적으로 쬐는 방사선과 달리 핵사고로 인한 방사능은 호흡기와 피부, 음식을 통해 체내에 흡수되어 몸 속에 축적된다(오염된 땅과 물은 반드시 인간에게 복수한다). 당장은 우리에게 해가 없다손 치더라도 체내에 축적된 방사능이 미래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위험하고 끔찍한 물질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왜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지, 어디에 지을 것인지, 거기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와 관련된 정보들은 철저히 차단된다. 소수의 핵심관료들과 전문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사실 핵무기만큼 핵발전은 ‘비밀스럽고 비민주적인’ 기술이자 위험한 기술이다. 핵무기가 현재를 파괴한다면 핵발전은 ‘예고된 파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반전(反戰)과 반핵(反核)은 함께 붙어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예고된 파괴가 중단되지 않는가? 북한의 핵개발을 막고 대량살상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왜 핵발전에는 이렇게 너그러울까?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이윤 없는 부패는 없다. 원전 1기당 건설비용이 대략 2조원을 넘긴다고 하니 이윤을 노리는 똥파리들이 어찌 꼬이지 않겠는가. 위험하고 끔찍한 핵발전이 중단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러 신문과 주간지들이 핵발전을 추진하는 한국의 핵마피아를 다뤘다. 대략적인 그림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대림산업, 대우건설의 5대 재벌기업, 이들과 어울리는 학계와 전문가 집단이 한국의 핵산업을 이끌고 있다. 즉 권력과 자본, 이들에 빌붙은 지식인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막고 ‘중립’과 ‘전문성’을 내세우며 핵개발을 주도하고 있고 갖은 이권을 나눠먹고 있다. 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원전 건설과 관련된 핵마피아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제 3세계를 노리고 있다. 토다 기요시의 말처럼 “원자력개발은 전문가 지배, 관료 지배, 대기업 지배를 강화한다.” 핵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핵개발이 비민주적인 이유는 핵마피아가 나눠먹는 이권에만 있지 않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중앙정부의 손에서 결정되고 전력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서울의 전력자급율은 1.9%에 불과하다). 핵발전소가 세워지는 지역들을 보라. 대부분 한반도의 외곽지역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못 사는 지역들이다. 핵마피아들은 지역발전을 빌미로 주민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터전을 파괴한다. 그래서 지방은 자신들이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해서 수도권에 ‘에너지 조공’을 바쳐야 한다(조공을 바쳐야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얻을 수 있으니). 에너지 조공을 계속 받기 위해 핵마피아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민주적인 지역발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며 핵을 선전하는 원자력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핵발전소에서 일할 리 없고, 원자력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명박 대통령이 핵발전소의 연료봉을 갈 리도 없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청 노동자들이고 위험한 곳에서라도 일하며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발적 노동이라고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노예노동인 셈이다. 나의 안락함을 위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도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핵발전에 반드시 뒤따르는 핵쓰레기들,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도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1978년에 고리 1호기가 처음 발전을 시작한 이후 계속 쌓여가는 핵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정부는 비밀리에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핵폐기장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곳도 역시 지방이다. 경북 영덕군과 영일군, 강원도 울진군, 충남 안면도, 경남 양산, 경기도 굴업도, 전남 영광, 전남 고창, 전북 부안 등이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론되어 왔다. 처음에는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핵폐기장을 몰래 지으려다 주민들의 반발로 계속 실패했고, 지금은 한수원이 많은 돈을 풀어 주민들의 여론을 내세워 신청을 하게 만들고 중앙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역시 민주주의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참으로 비민주적인 과정이다.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로 핵폐기장이 들어설 후보지에서 핵의 안전성 여부는 쟁점조차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후보지들은 ‘지역발전’을 내세워 핵폐기장 유치를 추진하고, 붕괴한 지역경제에 낙담한 주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식이다. 허나 누가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 있는 곳을 발전된 지역이라 여길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주민들은 떠나고 지역은 더 뒤처지고 생활은 더 어려워진다. 승자는 중앙의 비민주적 권력과 주민의 이름을 팔아먹는 지역의 토호권력 뿐이다.



반핵운동과 주민들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은 싹트는데, 핵폐기장이 들어서려는 곳마다 주민들은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평범한 주민들이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직접 맞설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핵운동의 역사를 봐야 한다.


1989년 3월 정부가 경북 영덕군을 핵폐기장 후보지 1순위로 정하자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 주민의 1/3 가량이 집회에 참여했고 국도를 점거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정부는 계획을 포기했고, 이에 힘을 얻은 반핵운동은 4월에 ‘전국핵발전소추방운동본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반핵운동을 벌였다.


그 이후에도 정부가 핵폐기장을 지으려는 곳마다 주민들의 저항은 이어졌다. 그 중 광주항쟁 이후 최악의 주민시위로 꼽히는 안면도 투쟁은 눈여겨 볼 만하다. 1990년 11월 과학기술처가 안면도에 원자력 제2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핵폐기장을 건설하려 한다는 보도가 <한겨레>에 실리자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당시 <공해추방운동연합>의 간사가 안면도에 들어가 주민저항을 조직했고, 보수적인 단체로 분류되는 청년회의소(JC), 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청년회들, 심지어 지역의 건달들까지 힘을 모아 <안면도핵폐기장반대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약 2만 여명의 주민 중 절반이 집회에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공동체가 힘을 발휘했다(최대규모의 집회로 불린 11월 8일의 집회에는 약 1만 5천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주민들은 한 가구당 한 명 이상을 반드시 집회에 참석시키고 참여하지 않는 가구에 5만 원씩 벌금을 물린다는 규약을 만들었다. 나아가 핵폐기장 유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고 동네 상여도 빌려주지 않는 징계를 내리기도 했으며 유치 신청자나 그 자식들을 해고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안면도의 주민항쟁은 폭력/비폭력의 경계를 넘어서 진행되었다. 경찰의 폭력진압에 맞서 청년결사대가 조직되고, 안면지서가 불에 타기도 했다. 주민들은 안면읍사무소를 접수하기도 했고 육지와 연결되는 하나뿐인 다리를 폭파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안면공화국 만세’라는 구호가 시위 도중에 등장하기도 했다. 만일 주민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평화가 안면도를 뒤덮었을 것이다. 안면도 투쟁은 주권을 회수한 민중들이 국가의 법치주의나 폭력/비폭력의 경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런 저항에 밀려 정부는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을 포기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을 돈으로 유혹하며 안면도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려 들었다. 허나 이마저도 1992년 5월 주민공작을 일삼던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이 묵던 여관을 마을청년들이 습격해서 서류를 빼앗고, 1993년 1월 유치를 찬성하던 주민의 양심선언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핵폐기장을 짓겠다는 계획은 포기될 수 없었다. 핵발전을 이미 시작한 곳에서는 포기가 불가능하다. 핵발전소가 늘어나는 만큼 핵폐기물의 양도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경기도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그 옆의 덕적도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고립된 섬에서 빠져나와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반대시위를 벌였고 당시 액수로 5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하겠다는 정부 발표에도 계속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의 시위가 1년을 끌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는 지반이 약해서 핵폐기장에 알맞지 않다는 지질조사 결과가 나와 스스로 계획을 접는다(이처럼 핵과 관련된 사업들은 상식을 거부한다).


표류하던 핵폐기장 건설은 2003년 5월 중앙정부와 전북 부안군수가 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부안군민의 의견을 뒤집고 위도 주민 80%의 서명을 받아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자 다시 시작되었다. 이에 부안군민들의 반대집회가 이어졌고 180여 일의 눈물겨운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에게 현금보상을 하겠다는 산자부와 한수원의 거짓말 행진과 주민들을 분열시키려는 공작이 시작되었다. 더구나 정부는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합의를 유도하기는커녕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로 촛불집회를 막았다(인구 7만이 안되는 부안에 8천여명의 전경이 투입되었으니 정부는 주민들의 입을 공권력으로 꽁꽁 틀어막은 셈이다). 그리고 중앙언론들은 지역이기주의, 폭력사태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으며 부안주민들을 몰아붙였다.


결국 부안에서는 주민투표라는 새로운 대안이 등장했다. 주민투표는 이렇게 돈과 공권력의 힘이 주민들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밝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그 주민투표마저 거부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려 들었다. 그럼에도 부안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투표를 준비했고, 외부의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 변호사들이 투표진행을 위해 힘을 모았다. 주민투표 이전에 약 10개월 동안 방폐장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지역사회 내에 퍼져서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토론을 불러일으켰고, 부안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핵폐기장을 막아냈다.


핵폐기장 건설은 4개 지역 방폐장 동시 주민투표라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 경주의 지반이 매우 약해 핵폐기장에 적합하지 않고 공사현장에 수맥이 흘러 방사능이 유출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민주적인 나라에 살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핵폐기장 사고’를 예약한 채 살고 있다. 다만 사고가 언제 터질지 알지 못할 뿐이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끔찍한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허나 미래의 누군가는 그 공포를 감당해야 한다.



재난자본주의를 넘어서


왜 끔찍한 재난이 반복되는가?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의 재난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기회이자 이익이기 때문이다. 재난이 쑥대밭을 만들고 간 자리에서 누군가는 재건축과 재개발의 가능성을 본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없다. 앞서 주민들의 저항이 증명하듯 현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재난 현장을 돌아보고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나오미 클라인은 위기가 권력의 독점을 정당화시킨다는 결론을 내린다. 가난하고 약한 대다수 사람들이 쓰나미나 지진, 전쟁같은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소수의 기업과 정치인들은 그런 재난으로 이득을 취하며 더욱더 배를 불린다. 심지어 경제공황이나 전쟁같은 재난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기도 하고 이를 위해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수많은 시민들을 고문하며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재난을 통해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이 바로 재난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도 힘으로 누르고 돈으로 유혹하면 일이 성사될 수 있고 그러면 엄청난 돈을 챙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니 아무리 설득하고 요구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국가나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절망적인 재난을 막을 방법은 그들의 뜻을 대표할 대의제도나 공권력에 있지 않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야 가까스로 재난을 막을 수 있었다. 안면공화국이 선포되고 부안독립신문이 발간되어야 기득권층은 타협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수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논하는 얘기들은 사람들의 착각을 부추길 뿐이다. 근본적으로 한 국가 내에 두 개의 나라가 만들어져 있고 민중이 사는 나라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험한데 어떻게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몇몇 사람이 바뀐다고 재난자본주의가 무너질까? 민중을 대표하기는커녕 내부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나 진보적인 정책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진보정당들은 헛된 기대만 부추길 뿐이다.


따라서 민중의 힘을 드러낼 방법은 직접행동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권력이나 자본이 아니라 민중에게 힘을 주기 위한 방법이기에 직접행동은 민주주의의 토대이다. 이 민주주의에서 나라가 생기고 권력이 생긴다. 이 힘을 포기한다면 민중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다. 반핵운동은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반핵운동은 다른 사회운동과 달리 ‘보편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반핵운동은 제 1세계와 제3세계의 구분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민중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며 함께 싸울 수 있는 운동이다. 핵의 개발은 인류에게 공멸(共滅)이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핵의 위험은 국경을 넘어 퍼져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핵은 인류를 진정한 운명공동체로 만들었다. 함께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생존할 것인가?


또한 반핵운동은 사회운동과 주민운동이 손을 잡을 기회를 마련한다. 과거 반전(反戰)과 반핵, 양키고홈을 함께 외쳤던 ‘반전반핵가’에서 잘 드러나듯이,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운동은 식민지에서 해방되려는 운동,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운동, 억압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운동, 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다. 즉 반핵운동은 비민주적인 정부와 독점재벌, 토호세력에 맞서는 운동이다. 반핵운동은 주민운동이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인 이슈에 개입하게 만들고,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꿈꾸게 한다.



지옥문 앞에서의 피스몹


30년의 수명을 넘긴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고장 난 시한폭탄이다. 그 폭탄을 해체할 생각은 않고 미래를 논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동차 사고가 무서워 자동차를 타지 않겠냐며 핵발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자동차와 원자력이 어찌 같을까?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에서 사고가 터지는 순간 그 곳은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죽음의 재는 멀리 멀리 퍼진다. 미국의 쓰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겪고 있고 아직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고통이 이어질지 우리의 시야로는 가늠할 수 없다. 이를 자동차와 비교할 수 있을까?


원자력은 ‘근본적인 악’이다.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재앙이다. 저주받은 죽음의 물질을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억압적인 권력보다도 더 무서운 유산이 바로 원자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핵이다.


그러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현재와 싸워야 한다. 이 길고 긴 싸움은 이기기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는 싸움이다. 그래서 희망은 나의 삶에 있다. 라페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본성에 대한 이러한 움츠러든 관점은 지배적인 정치경제 이론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기업광고에 의해서, 숱한 종교 압력에 의해서도 강화되고 있다. 지배적인 정치경제 이론과 기업광고는 우리를 경쟁적으로 자기 것을 축적하는 존재로 환원시키고 있고, 종교는 우리를 더러운 죄인이라고 강조하면서 더 나쁜 역할을 하고 있다.…지구의 생존은 그러므로 우리가 단절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내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선함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풍요로움을 긍정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우리는 지금 현재와 단절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참고한 책


토다 키요시 지음, 김원식 옮김, 『환경학과 평화학』(녹색평론사, 2003)

녹색평론 좌담회,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녹색평론》 2011년 5~6월호.

신동호, “안면도 반핵항쟁”, 《뉴스메이커》 제 684, 685, 686호.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쇼크 독트린』(살림Biz, 2008).

프란시스 무어 라페 지음, 우석영 옮김, 『살아 있는 민주주의』(이후, 2008).


 

회의장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이동놀이차에서 장난감을 꺼내어 흥겹게 뛰어놓고 있고, 어른들은 토론장 여기저기에 모여 앉아 구청이 제안한 내년 예산집행계획과 올 해 예산집행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들은 갑갑한 집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아서 좋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어 좋아한다. 그래서 참여예산제 회의가 열리는 날엔 언제나 축제가 열리는 것처럼 마을 전체가 들썩거린다.


회의장은 아이들이 노는 소리와 어른들의 토론하는 소리로 가득 차고,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주민들의 야유나 함성소리가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회의장을 떠나는 사람들은 없다. 참여예산제 회의장은 예산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 판을 뒤엎는 불이익을 감당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 참여예산제가 도입된 지도 4년, 이제는 제도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더 이상 연말이면 한 해 예산을 소모하기 위해 거리 곳곳의 보도블록을 파헤치는 일이 없어졌다. 무리한 대규모 사업계획을 잡아서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학교, 도서관, 공원 등을 가꾸기 위한 예산이 훨씬 늘어났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한 시설들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예산이 없어서 사업을 할 수 없다며 발뺌하는 공무원들도 줄어들고 있다. 공무원들은 주민들을 ‘지역의 주인’으로 대접하며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주민들 역시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밟으며 공무원과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다. 자기 동네에 필요한 것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무시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그런 갈등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점을, 그리고 때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주민들은 ‘나’의 욕구, ‘타자’의 욕구, 나를 타자로 바라보는 ‘우리’의 욕구가 모여 마을의 욕구를 형성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사람들은 ‘말로만 이웃사촌’에서 벗어나 자기 동네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알게 되었으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뿐 아니라 각자 서로의 동네를 직접 방문하고 교류하면서 지역 전체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참여예산제가 실시된 이후 자연스레 마을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낯설고 차가운 도시에서 정감 어리고 따뜻한 마을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대신해줄 누군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스스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의 진정한 의미가 참여예산제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오늘의 논의안건은 시민노동의 창출과 사회적 기업의 설립에 관한 것이다. 지역 내 청년실업의 해소를 위해 구청이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 내 복지서비스를 담당할 기업은 지난 몇 달 동안 마을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다. 지역 내 여러 단체와 구청의 사회협약으로 세워질 시민기업은 지역 내 고용수요 창출과 그것을 통해 지역예산을 확충하는 선순환을 가져올 획기적인 방안으로 얘기되고 있다. 오늘 내려질 결정은 우리 구를 발전시킬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그 일에 참여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4월 22일에 열린 인권도시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이다.
강현수 교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 은우근 교수의 '인권 거버넌스 실현으로서 인권도시'라는 발표문에 대한 토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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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권리가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분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도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논의에는 공감이 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뭐랄까요, 맛있다는 사탕을 입에 넣었더니 달달하긴 한데 뭔가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 점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편성의 함정: 누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서 ‘하이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빌어 사회공학적인 설계가 자신의 유토피아적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하려 했는지를 비판합니다. 민중을 위한다는 수많은 계획들이 실패한 이유는 민중을 배제한 채 민중을 위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스콧은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지(經驗知)인 메티스를 접목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제인 제이콥스 역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대규모의 계획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엮이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도시가 어떤 종류의 내재적이고 기능적인 질서를 갖는지 알지 못한 채 도시의 겉모습을 계획하거나 어떻게 하면 도시에 마음에 드는 질서정연한 외관을 부여할지 골몰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는 게 제이콥스의 생각인데요.[각주:1]


그렇다면 인권도시, 인권거버넌스의 내용 말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자하는 도시의 특징과 그 속의 질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할텐데, 오늘 발제문들은 그 반대의 느낌을 줍니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내용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 강조되는데, 저는 이런 방식으로 도시가 정말 변할 수 있을지 좀 의문입니다.


그리고 광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는 무엇이지? 광주항쟁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은우근 교수님의 발제문에서도 “80년 5․18당시 민중을 주변으로 몰아낸 힘과 30여년이 지난 오늘 민중을 주변으로 몰아낸 힘은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가 인권도시운동에서 전략적 고민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 조례추진과정에서도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지니는 의미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며, 조례 제정 당시에도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고 적혀있습니다. 광주의 정체성과 인권을 연결시키는 과정에 광주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그 와중에 어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인권은 ‘발명품’으로서의 역할만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계획단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쁜 집을 지어놨으니 들어와서 이쁘게 살아라”는 얘기 역시 사는 사람의 욕구와 권리를 침해합니다. 브라질에서 참여예산제도가 시작된 이유도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며 실제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사람들은 변할 것이다. 잘 만들어진 완성품이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한국에 참여예산조례가 소개된 이후 전국적으로 110개가 넘는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조례는 4, 5개에 그치고 있다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인권도시나 인권조례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도시?: 일상성과 일상의 변화


저는 도시가 변화한다는 건 결국 도시민들의 일상이 변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강현수 교수님의 발제문에서 강조되는 르페브르 역시 그 일상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르페브르는 일상을 ‘혁명 시도가 실패하는 원인이자 결과’라고 했는데요. 단순히 사회체제의 변화만으로는 일상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하고 이렇게 변화되지 않는 일상은 ‘혁명의 방호벽’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 불리는 성공회대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사태해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일상은 참으로 완고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상이 변하지 않는 한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됩니다. 모순적인 양면을 가진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일상을 바꾸려면 대안적인 일상이 필요한데, 현재의 도시공간은 대안적인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가? 공정하고 윤리적인 가치가 생활의 동선으로 구현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할까?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두 개의 도시입니다. 구심과 신도심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발전하고 있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인권도시와 인권거버넌스는 어느 도시를 위한 것일까요? 설령 제도의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신도심을 위한 담론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권리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예를 들어 재산권과 주거권이 충돌할 때, 환경권과 문화권이 충돌할 때, 인권담론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필요합니다.

  1. “뉴욕 이스트할렘East Harlem의 어느 주택단지에는 눈에 확 띄는 직사각형 모양의 잔디밭이 있는데, 이 잔디밭은 단지 주민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단지를 자주 방문하던 어느 사회복지사는 자기 생각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사람들이 이 잔디밭을 자주 입에 올리고, 또 끔찍하게 잔디밭을 싫어하면서 그걸 없애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물으면 으레 “저걸 어디에 써요?”라든가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같은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결국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다 말을 잘하는 어느 주민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지을 때 우리가 뭘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 집을 헐어 버리고는 우리는 여기로 밀어넣고 친구들은 다른 데다 밀어 넣었죠. 여기는 커피 한 잔이나 신문 하나 구할 데도 없고 50센트 빌릴 데도 없어요. 누구 하나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신경도 안 써요. 그런데 높은 사람들이 와서는 잔디밭을 보고 한마디씩 하지요. ‘참 예쁘군요!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리는군요!’라고요.” [본문으로]

대학생협특별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학생협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일상을 비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부딪쳐보는 수밖에...^^;;
헐, 전날에 강의하는 분이 고미숙 선생이시네.
어쩌면 적절한 배합일지도...^^;;

● 사회정치적 배경


- 스페인은 브라질과 달리 발전되고 불평등 지수도 낮은 국가.

- 조직되지 않은 시민 대신 조직된 단체들이 참여를 주도하지만 후견주의 모델로는 보기 어려움.

- 개인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참여모델이 요구되기 시작함.

-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시민들도 대의정치 체계를 불신함.

- 좌파정당은 참여에 우호적이지만 내부의 관료적인 문화와 권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낌.

- 시민참여와 관련된 법규정으로 Reglamentos de Participación Ciudadana(Citizen Participations Regulations), Ley de Modernización Del Gobierno Local(Law of local government modernization, 2003)이 있음. 지방정부 근대화법은 지방의회의 편에서 지방정부의 행정권과 입법권을 강화시켰음. 즉 시장은 직선되지 않고 정당의 추천을 받아 지방의회에서 선출됨.

- 각 자치공동체는 주대통령, 주장관, 주의원, 관료들을 갖는, 연방국가는 아니지만 연방국가와 비슷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분권형 국가로 전환됨.

- 참여예산제도는 시민참여를 증진할 뿐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려는 시도임.

- 브라질과 달리 참여예산제도는 좌파연합의 강령이 아니기에 시장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음.

- 알바세데만이 아니라 코르도바(Cordoba), 푸엔테헤닐(Puente Genil)에서도 참여예산제가 실시중.



● 사례분석


- 코르도바의 경우 2001년부터 참여예산제도가 실시되었고 계속 변화되고 있음. 초기 제도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운영.

preliminary informative district meeting: 시민들의 개인적인 참여

         ↓                              이전 해의 과정 검토

agents workshops: 참여자들이 선출한 agent들이 회의하고 회의를 운영.

         ↓         우선순위를 정할 기준들을 결정. 이후 과정을 운영.

district table: 지역의 단체와 agent들이 마을회의 날짜를 결정.

         ↓

neighborhood assemblies: 시민들이 각 지역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토의

         ↓

district table: 토의된 프로젝트들에 앞서 정한 기준들을 적용

         ↓    지역제안서를 작성

district assemblies: 시민들에게 제안서를 제출하고 필요하다면 수정.

         ↓          이 회의로 agent의 역할은 끝나고 새 대표가 선출.

thematic tables: 제안서의 실현가능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설명.

         ↓

city tables: 대표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우선순위를 정함.

            몇몇 대표들은 제안서를 실행하는 과정에 참여.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그러나 몇몇 연합단체들(associative organizations)은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속 비판을 가함. 결국 2004년에 시의회가 참여예산제도 중지를 선언하고 2005년에 연합단체들과 개인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 이 제도에서 연합단체들이 회의를 조직하고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의제를 제안(planification)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음.

preliminary informative district meetings

       ↓                                ↓

District table                      sectoral planification

       ↓                                ↓

city council informs of technical feasibility

       ↓                                ↓

District assemblies                 thematic assemblies

       ↓                                ┃

district table

       ↓                                ↓

city council informs of technical feasibility

       ↓

city council

 

그러나 여전히 참여율이 떨어지고 여성참여를 고려하지 않아 성차가 드러남. 새 제도는 기성단체들의 영향력만 확대됨.

- 푸엔테 헤닐의 참여예산제도도 2001년도에 시작됨. 시예산의 25%만 다루고 그것도 주제회의만 열림. 2002년도부터 참여예산의 날(PB days)을 선포하고 단체의 대표와 지역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이전 해의 예산을 토의함. 그 뒤 시민들이 시민회의에서 우선순위를 토론함. 그 뒤 시의 공무원(municipal employee)이 기술적인 제안을 하고, 시민회의 대표들, 지역시민참여위원회의 대표들, 지역단체와 사회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논의함. 시위원회(city council)가 프로젝트의 실행을 맡음. 2004년도부터는 전략참여계획(Plan Estategico Participativo(PEP)이 도입되어 시 전체적인 계획들을 다룸.


● 알바세데

- 주민수 16만, 7개의 행정지구로 나눠져 있음.

- 행정지구 내에 시민들의 참여와 의견제시를 지원하는 마을회의(neighborhood councils)가 구성되어 있음.

- 전통적으로 지역정치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온 강력한 시민단체와 마을회의 네트워크가 존재함. 참여예산제도는 이런 단체들에 초점을 맞춤.

- 참여예산제도가 선거 당시 타협안으로 제안됨.

시민제안(10월)

전체총회(11월)

실행위원회(1~3월)

전체총회(6월)

마을회의를 통해

개인자격으로

참여예산안 승인

실행위원회 선출

참여예산안 실행

주제별 위원회

의회에 보낼 최종안 승인

- 두 명의 공무원(municipal employee)이 과정에 대한 기술적인 지원을 전담함.

- 전체총회는 단체와 지역대표들, 400명으로 구성. 명예직이고 보수 없음.

- 실행위원회는 마을회의와 지구대표 25명으로 구성.

- 주제별 위원회에서 시민과 공무원이 특정한 주제를 다룸. 10~15 사이의 주제로 구성되고 모든 시민에게 개방됨.

- 성인 인구 중 4%의 참여.

- 결과: 전체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배치가 고민되어야 함. 마을 네트워크가 사전에 구성되어야 함. 주요 정치행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함.


● 참여예산제도의 필수요소들1)

만일 당신이 참여예산제도를 시작하거나 그것을 분명하게 만들려면 다음의 가정들과 목적들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8개의 권고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 가정들

- 공공재정의 분배는 시민의 생활에 가장 중요하다.

- 시민은 일상생활의 전문가이고 이미 지역적인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 참여는 자발적인 정치행위이다. 모든 사람에게.

- 참여예산제도에는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많은 돈을 절약할 것이다.


○ 목적

- 참여예산제도는 세금활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 참여예산제도는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공동체 내부의 많은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 참여예산제도는 대다수 주민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권고

- 적절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진행과정에 공동체 내의 대표성의 균형을 항상 고려하라.

- 시민들이 진행과정에 참여하면서 관심을 자극받아야 한다. 창의적인 방법과 기법을 이용해서 그들을 자극하라.

- 재정적이고 기술적인 정보를 다루는 행정당국은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복잡한 내용을 줄여라.

- 의제는 미리 잘 정리되어야 한다. 미리 진행과정에 필요한 문건들의 내용을 다듬어라.

- 공동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아라. 이주민, 빈민,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 공동의 프로젝트를 놓고 협력하게 해서 집단적인 혼을 만들어라.

- 소프트 스킬(soft skill, 리더십이나 팀워크 등 대인관계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둬라.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발전시키도록 도와라. 마을회의와 시민, 행정당국간의 편견을 없애라.

- 약간의 단기적인 성과를 만들고 상징적인 활동을 피하라. 참여의 정당성이 그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라.


인간에게 소유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려면 다양한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욕구 외에도 미래의 필요를 대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자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 자원을 누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자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만일 지구라는 세계의 한정된 자원을 골고루 나눈다면 모든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지만 현재의 조건은 그렇지 않다. 어느 한쪽에선 자원이 남아돌고 심지어 썩는데, 다른 쪽에선 빈곤과 궁핍이 판을 친다. 이는 지구의 자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자원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예를 들어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를 보면, 한국에서 집을 가장 많이 가진 30명이 9,923채를 소유하고 있다. 고작 30명이 약 1만 명이 살 수 있는 집을 소유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 오래건만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전세나 월세 등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말해준다.


불사신이 아닌 인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니면 미래가 불안해서, 그도 아니라면 자식들을 위해서? 설령 그 이유가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런 ‘과잉’이 권리로 인정되고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법제도는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소유라는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법제도가 이렇게 개인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보호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소유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소유권의 역사는 지극히 근대적인 발명품이다. 특히 인권을 확립한 1789년의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소유권의 배타성을 확립했다는 점은 혁명의 복잡한 내막을 드러낸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가진 자들의 정원에서 꽃을 피웠다.


법제도가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보호한다면 자치와 자급을 지향하는 직접행동은 그 권리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여러 정치사상가들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내세워 사적 소유권을 보호해 왔기 때문에 직접행동은 소유권이라는 체제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소유와 소유권은 다르다



서구사회에서 자연질서는 인간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고 더구나 특정한 소수의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가난, 헌신을 강조한 성경이나 인(仁)과 의(義), 도(道)를 강조한 동양의 경전 어느 것에도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무제한으로 부를 축적해서 자기 것으로 삼으라고 권하는 얘기는 없다. 그 어떤 사회에도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쿵족의 삶에서도 그 점이 드러난다. 땅에 대한 권리는 공동의 권리이고 그 지역의 주민이 아닌 방문객들도 주인의 허락을 구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 “소유권이 배타적인 특권으로 변질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이는 실제로 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직․간접적으로 핵심 성원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 지역의 자원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기에 “!쿵족은 위계질서가 없고 추장 또는 수장(headman)같은 공인된 권력자도 없다. 집단의 결정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주로 사람들로부터 받는 사적인 존경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배타적인 소유권이 확립되는 것은 근대국가의 출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전의 역사가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론은 구체적인 역사보다 이론적인 논증에 바탕을 뒀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영국의 사상가 홉스(T. Hobbes)나 로크(J. Locke)가 ‘자연상태’라는 반(反)역사적인 가정에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체제의 정당성이 개인의 생명과 그만큼 소중한 사적 소유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자연상태에서의 불안정한 공유를 포기하고 장차 더 모을 개인의 소유를 확실하게 보호받으려면 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비록 홉스는 국익國益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소유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고 봤지만). 그 뒤 이런 논리는 정치법과 시민법을 구분하면서 정치적 자유와 소유권을 구분하고, 설령 국익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국가가 시민법의 지배를 받는 소유권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근대사회에서 ‘발명된’ 배타적인 소유권은 물리적인 힘을 독점하고 경찰과 군대로 자신을 보호하는 근대국가와 더불어 확산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다를까?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고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보상해야 한다는 고대의 법령이 배타적인 소유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대의 법률 하에서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권리가 무조건 보장되지도 않았고 그 권리가 자식들에게 무한정 상속되지도 않았다. 특히 땅이나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보통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개인은 자원을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속대전> 어디에도 배타적인 소유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땅에 대한 권리를 ‘입안(立案)’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그 권리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3년의 기한을 정해놓고 땅의 소유자라도 땅을 경작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넘기거나 실제 경작자에게 땅의 권리를 줬다. 즉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이었고, 지주가 아니더라도 경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권리를 빌려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경국대전>은 임야를 개인이 점유하면 볼기 80대에 처한다고 밝히며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개화기가 되기 전까지는 한반도에 배타적인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구를 추종하던 개화파들은 자본주의 제도와 그 소유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예를 들어, 유길준은 개인의 재산권이 국가의 보호대상이라고 보면서 ‘재산의 권리’가 인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봤다). 그리고 1901년에 설치된 지계아문(地契衙門)은 전국에서 토지조사를 실시해 토지소유권 문서를 발행했고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보호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했다(그러면서 중앙정부가 세금의 징수권을 독점했다). 그리고 경작자의 권리(中畓主權)를 부정하고 소유자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대지주들의 독점적인 소유권을 보장했다.


일본 총독부의 ‘토지조사령’(1912년)과 토지조사사업은 농민들의 점유경작권과 도지권(賭地權), 입회권(入會權)을 부정하고 지주의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확립하면서 실제로 토지를 점유하고 경작해온 농민들을 소작농민으로 만들었다. 배타적인 소유권은 식민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었다.


경작권을 가진 소농(小農)이 소작농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인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 소농들이 함께 일하며 마련해온 공유지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의 삶은 철저히 그 사람이나 가족의 가진 것에만 좌우되었다.



소유에서 공유로



프랑스의 사상가 프루동(P.J. Proudhon)은 “소유란 도둑질이다”라는 주장으로 부르주아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프루동은 서구의 자연법사상 어디에도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보면서 사회를 규율하는 원리인 권리가 사회성을 파괴하는 소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생산하지 않은 것을 무력이나 교활한 짓으로 빼앗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사회성을 파괴하는 자”이고 “그는 강도이다.”


그리고 프루동은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구분하면서 설령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한다 할지라도 생산수단의 소유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생산물에 대한 소유는 배타적이다. 요컨대 물 안에서의 권리jus in re이다. 반면에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공통적이다. 즉 물에 대한 권리jus ad rem이다.” 혼자 일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에서 생산수단은 평등하게 소유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생산활동에 따른 생산물도 공정하게 분배되리라 봤다.


프루동은 이런 자연적인 질서, 자연적인 사회성을 파괴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근대국가라고 봤다. 소유권과 공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프루동이 마련한 대안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상호주의와 인민은행, 연방국가였다. 노동자 각자가 자신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이 모두를 위해 서로 연대해서 일하는 조합(association)을 만드는 것, 그런 조합의 설립을 지원하고 민중들의 상호신용을 실현하는 인민은행,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끔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정치공동체를 운영하는 연방주의, 프루동이 꿈꾼 세상이었다.


19세기의 프루동보다 훨씬 빠른 16세기에 이미 비슷한 주장을 펼친 사람이 한반도에 등장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나오는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 정여립(鄭汝立)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정여립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선 사상을 펼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다.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당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왕의 권리마저 부정했다.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정여립은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외치며 “인민에 해 되는 임금은 죽여도 가하고, 인의가 부족한 지아비는 버려도 된다”고 주장했다. 정여립은 왕위세습이나 충군사상을 부정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했으니 그가 그 시대를 평화로이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여립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동계이다. 반상차별의 세상,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정여립은 사농공상의 직업적 차별이나 반상귀천, 남녀의 신분적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했다. 이율곡의 제자이기도 했던 정여립은 민중이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만드는 계조직에 주목하고 양반,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고루 계원으로 받아들이며 대동계를 호남 일대로 확산시켰다. 대동계는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했고, 1589년에는 전주부윤의 부탁을 받고 대동계가 왜구를 몰아내기도 했을 만큼 대동계의 힘은 강했다. 정여립이 실제로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꿈꾼 대동세상, “재물을 땅에 버리는 낭비를 싫어하지만 결코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반드시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 세상의 꿈은 후세로 이어졌다.


정여립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은 소유를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란을 일으킨 농민들이나 스스로 조직된 의병들은 대지주나 부농에게 곡식이나 금전을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의병들은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나라를 위하여 진력하는 자이다. 고로 너희들은 나라를 위해 우(右) 물건을 빨리 제공하라”고 말하며 재물을 걷었고 협력하지 않는 지주들에게 강제로 재물을 뺏기도 했다. 활빈당같은 산적들도 부자의 돈과 곡식을 빼앗아 빈민에게 두루 나눠주며 낭비를 막고 자원을 나누려 했다.


배타적인 소유권이 확립된 일제 식민지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소유권의 벽을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다. 농민들은 배타적인 소유권을 확립하려는 식민권력에 맞서 소송을 벌이거나 소작쟁의를 일으켰고 때로는 공동경작단을 만들어 지주의 의사를 무시하고 논을 갈거나 모를 심으며 강제경작을 시도했다. 그리고 생산자협동조합, 상호금고 등을 만들어 공생의 기반을 마련하고 공동체의 힘으로 소유의 벽을 넘어서려 했다.


그리고 동학의 한 분파인 보천교는 자급자족의 종교공동체를 지향하면서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는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고 토지의 개인소유를 폐지하려 했다. 기독교계의 손정도는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설립하고 무산농민이 서로 도우면서 “생산의 자본력을 만들어 이상촌을 건설하자는 ‘기독교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리고 YMCA의 농촌협동조합운동, 천도교의 공생조합(共生組合) 등은 공동노동, 공동경작의 흐름을 다시 만들며 농민들이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 했다.


이런 직접행동이 이루어지던 시대에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가 권리였다. 직접행동은 더불어 함께 살 공유를 민중의 권리로 요구했다.



소유권의 대안: 국유에서 공유(共有)와 공유(公有)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대표이념을 독점하면서 배타적인 소유권에 대한 대안도 국유화나 국가를 통한 관리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녕 국유화가 대안일 수 있을까?


고병권은 “공유(公有)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부정”이지만 “공유가 국유를 의미할 때, 즉 국가에 의한 배타적 독점을 의미할 때, 그 독점은 사적인 독점의 형태로 쉽게 전화될 수 있다. 국유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독점성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사적 소유권의 기반이라고 말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새만금간척사업이나 4대강사업처럼 국가권력이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처분하며 자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고병권은 이런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국가에 의한 사적 소유권의 발생이자, 소유권 없는 대중들에 대한 추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유권을 발생시킬 수 있는 힘은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가령 평택 대추리에서 이루어진 대중들의 추방은 소유권 박탈의 형식을 띠었다.” 한국처럼 식민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국가에서 국유는 위험한 논리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가 권력을 잡으면 국가의 성격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러시아혁명은 그런 변화를 일으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증명했다.


더구나 국유화는 민중과 그 공동체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유는 단순히 소유를 나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공유는 그 공유를 관리할 모임을 필요로 하고 그 모임은 구성원들에게 민주주의를 학습하며 세계관을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두레는 공동노동조직이자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다루는 의사결정기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권리를 확장시킬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대한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共有)와 공적인 소유(公有)를 지향해야 한다.


공동의 소유 면에서 노동자의 작업장 소유와 관리, 협동조합과 공유지의 확대, 작업장과 공동체 위원회들의 네트워크같은 민중의 자주관리, 직접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협동노동하고 공동관리하는 일터와 삶터를 확대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식의 공유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 지적소유권이라고 하면 음악이나 영화같은 저작물의 권리만 생각하지만 종자와 유전자,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지적소유권의 대상이다. 최근 초국적자본들이 혈안을 들이는 영역도 바로 이런 지적소유권 부분이다. 왜냐하면 지적소유권들이 결국에는 먹고 사는 문제를, 몸과 생명의 문제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소유 면에서 보면 단순히 민영화에 도전할 뿐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자산을 다시 민중이 관리해야 한다. 2009년 기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공유재산이 약 229조원을 넘어섰고, 중앙정부의 국유재산도 약 337조원에 달한다. 이 재산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낭비되어온, 정확히는 기득권층이 나눠온 이런 재산을 통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를 통해 보호받고 확대될 수 있다.



● 참고한 책


고병권 지음, 『추방과 탈주』(그린비, 2009)

김동노 지음, 『근대와 식민의 서곡』(창비, 2009).

류은숙 지음,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니사: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삼인, 2008)

조경달 지음, 허영란 옮김, 『민중과 유토피아』(역사비평사, 2009)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음, 이용재 옮김, 『소유란 무엇인가』(아카넷, 2003)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모반의 역사』(세종서적, 2001)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하는 [청년정치학교]가 개강을 앞두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홍보와 모집에 들어갈 듯.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내세우며 청년들을 지방의회에 대거 진출시킬 계획이다.
2014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수를 늘리고 이를 정치활동과 연계시키는 구체적인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10년 내에 대학을 하나 만들겠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그 첫 단계이다.
현실과 괴리된 정치학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리며 냉소와 불신을 넘어선 그 무엇인가를 마련해볼 생각이다.
정치학에서 시작해 하나씩 분과를 만들다보면 나중에는 종합대학이 되지 않을까?ㅎㅎ

곧 다시 공지...

한살림서울생협 장기과제 포럼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안이 아니라 밖에서 무언가를 얘기한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한 사람의 삶에 관해 얘기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사람들의 공동활동에 관해 얘기하는 건 더더욱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어려운 짐을 져야 하는 건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때때로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에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는 “관찰자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행위자에게는 숨겨져 있는 신 또는 자연의 이러한 계획을 지각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에는 광경과 관찰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행위자와 모든 개별사건들 그리고 우연하고 일시적인 일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숨겨져 있는 신이나 자연의 계획을 알지는 못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한살림의 활동을 지켜보던 사람으로서 그 어려운 짐을 한번 지려 합니다. 다소 불편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불편함을 드러내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안의 일을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모심과살림연구소>가 2010년에 발표한 ‘한살림조합원 의식조사결과보고서’와 ‘한살림이 만들어가는 지역살림활동’을, 그리고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를 참고했습니다. 제가 새로운 과제를 제시할 능력이 부족하기에 그동안 한살림이 주장해온 과제와 성과들을 되짚어보며 그것들이 지금 현실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 한살림선언과 세계의 변화


한살림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협동운동이 이루어야 할 뜻을 ‘생명사상’이라는 틀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다들 그 틀에 관해 잘 아실 터이니 그 뜻에 관해 제가 구구절절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그 사상과 현실의 틈에 관해 얘기하려 합니다.


한살림선언은 오늘날 산업문명이 직면한 위기를 핵위협과 공포, 자연환경의 파괴, 자원고갈과 인구폭발, 문명병의 만연과 정신분열적 사회현상,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체제에 의한 통제와 지배, 낡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위기에서 찾았습니다. 모든 선언은 “이리 될 것이다” 또는 “이리 할 것이다”라는 기대나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살림선언 역시 그런 기대나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 선언을 실현하는 방향이 아니라 이미 20년 전에 지적된 위기들이 더욱더 심각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위기에 대한 진단은 정확했는데 의지가 약했던 탓일까요? 새만금이나 4대강 외에도 우리가 생활하는 세계 곳곳에서 죽임과 파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런 죽임과 파괴는 바로 이곳 서울에서 결정되어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이 바로 그런 위기의 정점에 있고 그런 위기를 세계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서울을 유지하기 위해 핵발전소나 방폐장이 세워지고 지방의 온갖 자원이 약탈되며 수도권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온갖 문명병이 만연되고 있습니다.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는 더욱 강화되고 지방자치제도의 실시에도 중앙집권화된 관료체제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4대강사업이 대표적인 예겠죠). 낡은 세계는 몰락하고 있는데 새로운 세계로 건너갈 방법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와 ‘현실주의’가 판을 치면서 ‘생명’과 ‘협동’, ‘공생’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낱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살림서울생협의 지역살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삶을 위협하는 위기들에 맞서 지역살림운동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조합원의식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조합원들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60.2%), ‘농업과 농촌을 지키고 살리는 활동’(18.9%), ‘생명의 가치에 맞게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활동’(8.6%), ‘환경 및 생태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활동’(8.3%) 순으로 한살림의 활동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대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유기농먹거리를 찾는 ‘웰빙바람’이나 환경을 지키자는 ‘착한 운동’에서도 이런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그릇의 밥’ 속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고 그 의미를 깨우쳐야 하지만 그것만 강조되고 우리사회의 생활문화가 바뀌다보니 한살림선언의 뜻은 외려 묻히고 있습니다. 산업문명위 위기를 극복하자던 선언의 의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보고서를 보면, 한살림이 그동안 집중해온 ‘안전한 먹을거리나눔’ 활동을 토대로 하여 지역에서 활동영역을 ‘환경’, ‘복지’, ‘문화’, ‘교육’ 등으로 넓혀야 한다고 조합원들은 대답했습니다. 심지어 응답자의 13.7%가 구체적으로 참여의사(적극 참여의사가 5.7%, 물품이나 기부금 등으로 후원의사가 8%)를 밝히고 있으니 이는 축복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런 관심사들이 세대나 소득별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지역살림이라는 큰 틀 내에서 다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부분을 키우다보면 전체가 드러나리라 생각하는데, 최근의 사회상황은 전체를 보지 않으면 부분을 키우기가 어렵거나 그 부분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정부(중앙/지방)나 재벌들이 이런 영역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거나 흡수하려고 하니까요.


따라서 다양한 활동들이 하나로 엮여 산업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지역사회의 단단한 그물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이곳이 위기의 근원이기에 그런 노력이 더욱더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역살림운동이 잘못되고 있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살림운동에서 드러난 힘들이 이런 쪽으로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주는 게 한살림서울생협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님은 인간의 사회조직이 “하나 하나의 개체들이 보다 높은 하나를 드러내는 방법”이라 말했습니다. “각 개체가 다 전체를 가능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의 발전은 개체의 발전을 통해서만 되게 되어 있다. 민족적인 본성은 개인의 자아 속에서만 볼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 말을 따르면 개인의 타락이나 제도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전체의 통일이 깨졌기에 우리의 삶이 위기와 불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시 이 전체의 통일과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각자가 서로의 삶에 의존해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기 품을 내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살림운동이 품을 내어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지역살림운동 속에서 자기선택과 공생 진화, 협동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한살림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겁니다. 일단은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 힘도 필요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라’는 구호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삶터와 일터의 분리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터와 일터의 분리를 극복한다는 것은 공장이나 사무실로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일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역살림살이의 자족성을 갖출 여러 가지 방안이 얘기되고 있지만 그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지 말고 일단 삶터와 일터의 삶이 서로 소통되게 해야 합니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삶터에서 얘기되고, 반대로 삶터의 일들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얘기되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공생진화는 헛된 말일 뿐입니다. 특히 조합원의 약 2/3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생활인으로 살아가기에 이런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조합원이 아닌 사람의 삶,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고 조합원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삶도 얘기되어야 합니다. 환경미화원, 식당종업원, 배달원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들이 그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얘기되어야 합니다. 또 재벌들이 만드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조건에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제품을 쓰고 보험을 들고 주식투자를 하는 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합원들이 고민해야 하고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반대로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그 지역에 위치한 공장과 사무실 노동자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합니다. 지역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공장과 사무실, 공공기관, 자영업 등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한살림서울생협 조합원의 85.4%가 출퇴근 1시간 이내 지역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런 과정은 충분히 마련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바라봐야 합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듯 서로를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더욱 단단하게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예상치 못했던 힘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보면 너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삶터와 일터의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동시에 삶을 산다는 점을 망각하고 분리해서 생각할 뿐입니다. 이렇게 분리된 우리 사회의 살림살이구조, 정치와 경제구조를 바꾸고 합치는 일에 한살림서울생협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Radical Democracy』라는 책에서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라고 주장합니다. 토착공동체를 지키는 힘이, 결국에는 우리가 뿌리는 내리고 사는 세계를 지키는 힘이 국경을 가로지르는 운동 속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아쉬운 점은 기업들은 협동의 힘을 깨닫고 온갖 방법을 마케팅으로 동원하고 있는데 정작 그 힘의 기원인 협동조합들은 거꾸로 기업의 투자논리와 마케팅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의 세계관은 지구적인데 그 전일성을 주목했던 협동운동의 세계관이 지구를 보듬지 못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한살림서울생협이 풀어야 할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저는 로컬푸드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량이 사는, 자급의 능력을 거의 상실해가는 수도권은 10년 뒤에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도시가 망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은 식량, 에너지 면에서 너무나 취약하기 때문에 로컬푸드에 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그런 잠재력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모범을 따르려 말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로컬푸드와 도시텃밭, 베란다텃밭, 마을텃밭 등 지역에서 다양한 관계가 얽히고 설키어 서로의 삶을 살리고 모시면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베네주엘라에서는 정부가 텃밭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이 가꾸게 하고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 가져가게 한다고 합니다.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요?


또 여러 대학에서 ‘청년 생태주의자’ 모임이 만들어지고, 레알텃밭학교도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만행이라는 청년공동체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임에서 생태주의와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수도권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의외로 귀농을 고민하거나 생태적인 삶을 살려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젊은 날의 치기’로 고민을 접지 않고 실제로 그 삶을 꾸준히 살아가려면 여러 디딤돌이 필요합니다. 알아서 헤엄쳐 강을 건너오길 기다리지 말고 절반이라도 건너와 꿈을 꿀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면 어떨까요? 이 역시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품을 내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학교나 대학, 학생회와 협약을 맺고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과정을 만드는데 한살림서울생협의 지역살림운동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2.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밖에서 얘기하길 한살림운동을 ‘중산층운동’이라고 합니다. 조합원 의식조사를 보니 조합원의 월평균 가계소득수준이 454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자기 집을 소유한 비율이 무려 74.7%라고 하니, 그 구성원으로만 보면 중산층이 아니라 중상층의 운동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한살림은 ‘섬’이 되어 간다는 얘기가 근거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재산이 많은 것이 문제는 아니고, 섬이 되는 것 자체도 문제는 아닙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한살림의 정신을 실현하려면 그런 섬을 연결할 수 있는 많은 다리를 놓아야 할 겁니다.


한살림의 지역살림운동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녹색장터와 벼룩시장, 지역아동센터, 방과후 교육공동체,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 등 다양한 가능성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한 살림서울생협의 경우 10세 이하 자녀수와 30대, 40대의 비중이 높으니 이와 여계된 사업들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싹이 나무로 자라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한살림운동이 ‘너무’ 순수하고 착한 운동으로 가는 듯한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 마음이야 한살림운동의 중요한 힘이지만 때로는 그 마음이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순수하거나 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마음이 다른 사람을 대상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모심은 내가 상대를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삶을 돌본다는 의미인데, 일방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런 마음과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로막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과의 거리감을 만든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는 반(反)생명적인 세력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중앙/지방정부와 결탁한 관변단체와 지역언론사, 보수적인 주민자치위원회, 각종 직능단체 등이 각종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은 4대강 사업들이 지방정부의 사업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런 세력들이 있기에 때로는 충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들과 무작정 싸움을 벌이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돌아가신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도둑을 만나면 도둑이 돼서 얘기를 나눠야 해요.

도둑은 절대 샌님 말은 안 들어요.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도둑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말문을 열기 시작한단 이 말이에요.

그때 도둑질을 하려면 없는 사람 것 한두 푼 훔치려 하지 말고 있는 사람 것을 털고 그것도 없는 사람과 나눠 쓰면 좋지 않겠냐고 하면 알아들어요.

부처님은 마흔네 개의 얼굴을 갖고 계시다는 말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거지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한살림운동이 조금 덜 착한 운동이면 좋겠습니다. 소득수준과 생활수준이 높은 만큼 주민들 속에 더 낮게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미 고민들이 지역살림운동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기농 먹을거리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들이 많이 성장을 하듯이 사회와 지역과 더불어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의 미덕도 커졌으면 한다. 녹색장터가 비록 한살림 조합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역의 다른 생협들과 함께 장을 연다면 지역연대활동으로 이어져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우리가 하고 있는 품앗이 활동이 소모임의 차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주려면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공동체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내부 프로그램이나 활동 위주로 가다보니, 대외적인 홍보가 부족했다. 교사 재교육이나 경제 여건 등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많다.”(군포지부)


“한살림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과 연대의 고리를 지속하면서 사회복지분야를 비롯한 지역문제를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에게 널리 알려내어 공감대를 마련하고, 자치단체가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제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서울 동부지부)


그래서 한살림서울생협의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그런 운동을 시도해온 단체와 함께 진행하거나 그런 운동의 앞선 사례들을 꼼꼼하게 분석하면 좋겠습니다. 《민들레》라는 대안교육잡지 제 69호(2010년 5․6월호)를 보면,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인용해 볼까요?


“공부방 활동을 하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겪을 때가 많다. 오죽하면 옛날부터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만큼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는 말일 게다. 초라함과 졸렬함, 어리석음과 야비함, 교활과 탐욕, 게으름과 변명, 무지와 공포, 편견과 선입관 등, 인간의 온갖 밑바닥 감정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 곳이 공부방이다. 때로는 선의나 너그러움을 교묘히 악용하고 자극하여 교사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는 경우도 있다.”


“지금 지역아동센터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는 그거라고 본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이 사회에서, 그것도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 옆에 왜 존재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집단에게도 질문해서 같이 토론해야 한다. 센터로 교육하러 다녀 보면,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게 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으면 쏟을수록 훨씬 더 의존적인 아이들로 자라는 것 같다는 것이다. “또 무슨 도움 없어요?” “이번에는 왜 이렇게 조금밖에 안 줘요?” 우리가 원하는 건 자립적인 아이들인데, 실천하다 보니까 오히려 의존적인 아이가 되더라, 이런 고민이 드는 거다. 우리는 이제 이런 이야길 해야 한다. 당신이 주는 사랑의 내용이 뭐냐?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는 게 뭐냐? 선의로 사랑을 주려고 했는데 그게 독이 될 수도 있다. 대신 해결해 주는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절대 주체적인 인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아이들이 길러지나?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하기 전에 언제나 아이들에게 물어 봐라.”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잘 묻지 않는다.…사실 아이들이 현재와 같은 방식의 공부는 못 해도 된다. 단, 미래사회에 자기주도적으로 살려면 꼭 필요한 능력이 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이다. 아이들이 자기 삶에서 펼쳐지는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줘야 한다.”


한살림의 정신이 반드시 한살림 조직으로 실현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도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자기 이름을 내걸려는 운동은 많지만 다른 운동과 손을 잡고 아래로부터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운동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살림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잡으면 어떨까요?


왜 한살림이 그런 일까지 맡아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살림 자신을 위해서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가장 심하다는 브라질에서는 부자들이 출근할 때 헬기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 바로 옆에 빈민가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총을 든 경비원들이 순찰을 도는 문 밖만 나가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겁니다. 10년 뒤 서울의 모습이 이렇게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용산참사가 이미 그 미래를 예고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홍대 앞 두리반, 왕십리 등이 제 2, 제 3의 용산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간들이 하나씩 바뀌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요? 착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만일 이런 얘기에 동의하신다면 남은 과제는 다른 운동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건 한살림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바꾸려는 여러 운동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서로의 마음을 잘못 읽거나 멋대로 해석하지 않고 진심에 다가설 수 있을까요? 한살림이 가려는 길이 다른 운동의 길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한살림운동이 강조해온 ‘스스로의 변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배타성’을 띠기도 합니다. 자기부정 없이 ‘우리’만 부각되다 보면 공동체들이 ‘우리들만의 공동체’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한살림운동이 일상적인 생활정치 속에 소수자의 시각을 녹여내고 그것이 가진 차이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에서 김도현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노라 그로스Nora E. Groce라는 사회학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 섬인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에서 농인deaf people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섬에서 농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만의 농 문화를 형성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농인들은 지역사회의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 살림운동의 언어가 아이들의 언어, 주부의 언어, 장애인의 언어로도 표현될 수 있으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도시’로, ‘주부들을 위한 정치’에서 ‘주부들의 정치’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도시’에서 ‘장애인의 도시’로의 관점이 변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조합원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이 62.3%나 되는데, 이렇게 어렵고 힘든 활동을 굳이 해야 하는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꼼꼼하게 따져보면, 중산층이고 비교적 젊은 세대인 한살림서울생협의 조합원들에게 왜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할까요? 어쩌면 서울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여유를 없애는 것이고 이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유를 만들려면 혼자만의 노력에서 벗어나 그런 여유를 없애는 사회질서를 바꿔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경쟁질서를 서로 보살피는 공생의 질서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살기 위해 여유를 만들고 서로 손을 잡아야 하겠지요. 여유 없는 조합원들이 다른 것을 포기하고 조합원 활동을 택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한살림서울생협의 구체적인 사업을 통해, 다른 시민사회운동단체들과의 손잡음을 통해 준비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서 서로의 언어를 맞춰가야 합니다.



3.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


최근에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글입니다. 갈러(Zvi Galor)라는 이가 지은 “Demutualization of Cooperatives: Reasons and Perspectives”라는 글입니다. 한글말로 옮기면 “협동조합의 탈협동화: 이유와 전망”이 되겠네요. 갈러는 전 세계의 많은 협동조합들이 더 많은 상부상조와 협동보다 경쟁과 탈협동으로 가고 있는 이유를 분석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동남아시아, 이스라엘 등을 분석한 뒤에 갈러는 특히 소비자협동조합과 전력공급협동조합에서 탈협동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하면서 중요한 원인을 조합원의 참여부족에서 찾습니다. 협동조합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조합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것을 통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서 갈러는 문제점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탈협동화의 결말은 협동조합이 문을 닫거나 협동조합들이 통합되거나 주식회사(조합원소유/주주소유)로 전환되거나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소유권의 분할과 개인회사 취득)이라 얘기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갈러는 협동조합의 탈협동화를 불러온 조합 내부의 원인을 조합원과 협동조합의 관점에서 각각 살핍니다. 조합원의 경우 그 원인은 소유권의 제한, 조합원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음, 조합에 대한 관심 부족과 교육의 부족이고, 협동조합의 경우 원인은 조합원에서 주주로의 변화, 협동조합 정체성의 상실, 살림에서 이윤으로의 가치변화, 자금조달능력 확대의 필요성입니다. 한살림이 해당하는 항목은 없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그리고 갈러는 탈협동화를 불러오는 조합 외부의 원인도 지적합니다. 그 원인은 소유권의 재설정(redefinition), 대안적인 협동조합 해결책의 부족, 협동조합이 낡은 방식이라는 생각, 협동조합과 다른 외부환경, 탈협동화중인 협동조합부문(미국의 농업부문,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의 신용협동조합부문, 캐나다의 생명보험부문, 서유럽의 협동조합은행)입니다.


아쉽게도 갈러는 이런 다양한 현상을 보여줄 뿐 이런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역살림운동이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살림운동은 조합원운동이기도 합니다.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조합원이지만 1년에 조합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49.5%나 되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조합원이지만 매장만 이용할 뿐 조합의 소유권과 운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출고와 조합원 확대에 관한 고민은 많지만 그것이 조합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관한 고민은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갈러는 협동조합의 탈협동화를 안타까워하는데, 앞서 얘기한 러미스는 그것이 결국 그 사회의 비민주화, 보수화를 가져온다고 비판합니다. 우리는 정치와 경제를 떼어놓고 생각하지만 역사상 어느 사회도 그것이 분리되지 않았고 그런 분리를 이용한 자들이 기득권층이라고 러미스는 지적합니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복종에 길들여지는 사람들이 정치영역에서 능동적인 시민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지요. 그리고 기득권층은 일자리와 임금 등을 무기로 시민들의 발을 묶으려 든다는 얘기입니다. 정치민주화에만 매달려온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이토록 취약한 것도 그 때문이고 재벌그룹의 사장이 대통령이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협동운동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살리는 운동입니다. 그러니 한살림의 규모가 커지고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한살림의 관계가 기존의 사회관계를 변화시켜야 협동운동이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한살림이 조합원과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고 한살림이 위치하고 사회의 외부환경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장기적인 과제를 정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힘과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아 힘 센 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둘 수밖에 없고 민초의 삶을 세세하게 돌보지 못합니다. 더구나 국가와 자본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의 힘을 빼려 합니다. 국가/시장/사회의 관계로 본다면 사회의 힘은 여전히 약합니다. 사회가 강해지고 난 뒤에야 국가나 시장이 제대로 민초의 뜻을 받들려 할 겁니다. 그러니 사회의 힘을 길러야 하고 그 힘을 기르는 방법은 바로 민초들의 관계입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관계망이 단단해지지 않으면 모두 모래성일 뿐입니다.


조합원이 한살림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범답안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보고서의 결론에 나와있듯이 조합원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강조하자면,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조합원들에게 줘야 합니다. 정보 없는 관심 없고 권한 없는 참여란 불가능합니다. 본부나 지부가 정보를 만들어서 조합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약간 벗어날 필요도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스스로 구성해서 조합원들끼리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권한이라고 해서 꼭 의사결정과정에서의 표결권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권한은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데, 표결권이 없어 말할 권리만 보장할 수도 있습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나오듯,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됩니다. 한살림이 조합원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줘야 합니다. 서로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리더십에 관한 얘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리더십은 카리스마나 지도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념이 분명하면 누구라도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이념이 사라진 데서 불거지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캄캄한 밤에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시의 환한 불빛에도 우리의 삶이 불안과 공포 속에 헤매는 건 그런 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살림서울생협이 그런 별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지역사회를 살릴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의제, 지역재생,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 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다양한 방법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안적인 지역발전의 모습을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방법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많은 중요성을 가진다.

허나 아무리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이라도 그것이 우리사회의 성격과 맞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1980년대에는 국가의 성격을 놓고 사회구성체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치열함이 없고 더더구나 지역사회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논쟁도 없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한 방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프로젝트만 있지 장기적인 발전전략이나 비전이 없다. 지식인, 활동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단기적인 사례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들여온 방법들도 이런 단기적인 프로그램을 짜는데 이리저리 짜깁기식으로 활용될 뿐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짜려면 우리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관계를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 나는 지난 100년 이상의 흐름을 봐야 지역사회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가령 동학혁명으로 대표되는 민중의 자치·자립에 대한 욕구와 능동적인 정치행위는 두레와 동회, 계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들로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들은 단지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삶까지 두루 헤아리는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런 강력한 뿌리가 있었기에 일제 식민지, 군부독재 시기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합운동과 저항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강했기에 일제 총독부와 해방 이후의 미군정, 군부독재는 그런 자치와 자립의 흐름을 파괴시키고 자기 내부로 흡수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런 지배구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지배구조를 깨고 자치와 자립의 구조를 회복시킬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재원과 사람만 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들만 오가고 있다. ‘모델만 만들면’ 어떤 지역에서든 똑같이 찍어낼 수 있다는 환상이 팽배해 있다.

그리고 그나마 얘기되는 대안적인 지역비전마저도 중앙집권화된 국가전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진보전인 전략, 산업화 노선을 위해 희생을 거듭해온 농민과 농업, 농촌공동체를 회복시킬 진보적인 지역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전략을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고 지역전략마저도 중앙에서 구상된다. ‘우리가 집권하면’이라는 꿈같은 얘기에 다른 모든 걸 보류해온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진보라는 말이 삶터와 일터를 철저히 구분했고 일터의 진보성이 때로는 지역생활의 보수성과 연결된다는 점은 회피되었다. 왜 진보세력은 언제나 지역사회에서 소수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강력한 연대의 관계망을 구성하지 못할까? 일상생활이 어떻게 체제와 촘촘히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지, 일상의 공간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의식을 보수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생산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매달려’ 생활을 방관해온 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에겐 기대고 싶은 희망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진보적인 지역체제는 대체 어떤 것일까? 영국 노동당의 좌파시장 켄 리빙스턴이 이끌던 런던은 한때 대처 정부에 맞서는 양산박이 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뽀르뚜 알레그리라는 도시를 자신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우리 진보정당의 그림은 무엇인가? 의정활동 우수의원을 꼽으면 대부분이 진보정당 의원들인데도 왜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까? 현안에 밀려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전략은 모래성일 뿐이다.

8월 25일부터 열리는 제주인권회의에서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아직 인권에 대해 감이 오지 않지만 그동안의 고민을 좀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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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1. 올바름에서 풀뿌리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외치는 ‘착한 교육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농촌마을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가난한 농민을 만나게 된다.


“박사님, 민중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는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집 구조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형편없는 시설에 대해, 극도로 좁은 공간에 온 가족이 몸을 구겨넣어야 하는 형편에 대해 일러주었다.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마저 마련할 돈이 없다고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에겐 행복할 권리나 희망을 가질 권리가 금지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자, 박사님, 뭐가 다른지 봅시다. 박사님도 댁에 가면 피곤할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박사님은 하시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랴, 글 쓰랴, 독서하랴, 이런 연설을 하랴, 바쁘시겠지요. 그런 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박사님, 지친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한쪽은 자식들이 깨끗이 씻은 몸에 잘 차려입고 굶주리지 않고 잘 먹은 얼굴로 맞이하는데, 다른 한쪽은 더럽고, 굶주리고, 빽빽 울고, 시끄러운 아이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네 민초들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상처받고 상심하고 절망한 채로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식을 때리고, 그것도 ‘도가 지나치게’ 때린다면, 박사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삶이 너무나 힘든 까닭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지만, 이것은 계급적 지식이다.[각주:1]


이런 경험을 통해 프레이리는 ‘착한 교육학자’에서 ‘민중의 교육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그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의 경험은 특히 정치적 교육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습과정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정치적 교육이 진보적이려면 민중 집단이 만들어낸 세계 읽기와 민중의 담론, 민중의 구문, 민중의 의미, 민중의 꿈과 욕구에서 표현되는 세계 읽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각주:2]


나는 인권이 풀뿌리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이런 만남에서 찾고 싶다. 인권이 제아무리 정당하고 올바른 개념과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의 시선과 언어, 꿈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이런 관점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실제 활동에서 녹여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삶을 바꾸려는 풀뿌리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상가 장일순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긍정으로 가는 것 아닌가? 예수가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참된 자기를 얻는데 그 참된 자기라는 게 뭐냐 하면 우주의 본체와 같은 것임을 깨닫는 거라. 그러니까 여기서 ‘신비로운 수동성’이란, 위대한 자기 긍정에 이르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말한다고 봐야겠지.”[각주:3]
나 속의 타자, 우리 속의 타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아니, 타자 속의 나, 그 속의 우리를 보며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장일순 스스로도 이런 글을 남겼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 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밝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을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에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각주:4]


사상가 함석헌 역시 자신을 바꾸고 초월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부정을 못하고 제가 사람인 줄만 알고, 제가 심판자․개혁자․지도자인 의식만 가지고 제가 스스로 죄수요 타락자요 어리석은 자임을 의식 못하는 사람은 혁명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잡는 것 아니라 명(命)을 바로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각주:5]


 풀뿌리의 관점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욕구를 실현할 기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밖과 소통하지만 내부에 깃든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각자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보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혼자 서는 못할 일을 함께 이루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인권은 지식인이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민중의 언어로, 전문가나 활동가의 활동에서 민중의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럴 때 류은숙의 말처럼 “인권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각주:6] 그렇다면 지금의 인권담론은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언어로 거듭나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런 노력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풀뿌리 민중의 정치행위로 이해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학교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세계인권선언이나 사회권규약을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고 설령 배운다 하더라도 실제로 써먹기 어렵다.[각주:7]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있지만,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두발자유를 단속하고 체벌을 가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전문가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일반 대중의 언어로 체화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풀뿌리의 관점은 이런 징검다리를 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인권담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 풀뿌리운동이 결합될 수 있다.



2. 인권과 풀뿌리운동의 확장, 무엇이 마을인가?


반대로 인권의 관점은 기존의 풀뿌리운동이 관심을 가져온 영역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은 그동안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풀뿌리운동의 주요한 의제도 보육이나 청소년, 주부와 연관된 것들로 제한되었다. 물론 풀뿌리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으로 확장되고, 의제가 평화나 주거권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운동의 주된 흐름은 ‘가족’을 중심에 둔다.


예를 들어, <시민의신문>과 <한국청년연합회(KYC)>가 엮은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풀뿌리가 희망이다』(시금치, 2005)는 <광명YMCA>를 비롯한 11곳을 대표적인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그리고 김기현의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이매진, 2007)는 <부천YMCA>의 녹색가게, <광명YMCA>의 등대생협, 부산의 <희망세상>, 안성의 <안성의료생협>, 네 곳을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또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이음, 2008)은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대전여민회>의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북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강원의 원주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 강원도 철암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의 <희망세상> 등 9곳을 풀뿌리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들은 앞서 지적한 바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인식의 격차는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김영현: 아무래도 결혼 중심으로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도 생협 조합원이고 성미산 지키기에 서명도 했지만,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어요.

위성남: 가족 중심의 커뮤니티고, 삼사십 대가 많고, 미혼 커뮤니티는 아주 취약하죠. 미혼이 최근에 늘어나는 추세인데 독자적인 자기 커뮤니티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죠. 기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고민이나 관심사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저같은 기혼이 미혼커뮤니티를 대신 고민해줄 수는 없잖아요? 바라만 보고 있죠. 언제될지 모르지만 본인들이 아쉽고 답답하면 만들겠지 하면서.……

………

권김영현: 기존 커뮤니티에 접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 쉼터나 성소수자 커뮤니티처럼 마을에서 공개되지 않는 커뮤니티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가 지역운동과는 연결되기에는 어려운 조건들이 있는 것 같아요.[각주:8]


한편으로 풀뿌리운동이 강조하는 ‘스스로의 변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배타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풀뿌리운동 또한 철저한 자기부정이라는 성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기부정 없이 ‘우리’만 부각되다 보면 풀뿌리운동이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풀뿌리운동이 일상적인 생활정치 속에 소수자의 시각을 녹여내고 그것이 가진 차이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도현의 글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라 그로스Nora E. Groce라는 사회학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 섬인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에서 농인deaf people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섬에서 농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만의 농 문화를 형성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농인들은 지역사회의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각주:9] 그렇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시점에서 풀뿌리운동은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단지 장애운동만이 아니다. 풀뿌리운동은 아이들의 언어, 주부의 언어, 장애인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가? 풀뿌리운동은 공용어를 찾으며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인권운동이 발전시켜온 감수성과 합리성은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도시’로, ‘주부들을 위한 정치’에서 ‘주부들의 정치’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도시’에서 ‘장애인의 도시’로 우리 운동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풀뿌리운동과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와 인권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짐 아이프(Jim Ife)의 물음은 그 어려움을 잘 드러내 준다. “지역사회개발은 인권의 기본원칙에 역행하여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대원칙은 지역사회개발에 있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에 대한 경계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가 지역사회 활동가에게 인종차별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지역사회 활동가는 지역사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고(이러한 거절이 지역사회 자결 원칙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정당한 거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언제나 이처럼 명쾌할 수만은 없다. 인권은 논쟁적인 개입이므로, 지역사회 활동가는 때로 지역사회와 인권에 관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인권에 관한 논쟁은 그 지역사회 내에서 인권이 어떻게 규정되고, 어떻게 이해되는가, 다른 곳에서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방식의 지역사회개발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각주:10]


풀뿌리운동이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만큼 인권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나 “열 사람의 한걸음”같은 구호보다 그 사이의 실천이, 그 실천을 위한 관심과 행동을 유도할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3. 국가에서 지역사회, 마을로


어떤 면에서 인권의 탄생과 확산은 근대국가체계의 형성․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그러하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도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얘기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체제의 형성과 법질서를 통해 구현되고 국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하는’(당위) 정치적 결사체로 얘기된다. 인권은 사회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계약의 목적으로 선언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자연상태에서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는 국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을까? 이런 가상의 자연상태에 관한 전제가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방해한다. ‘현재의 국가’가 문제일 뿐 정녕 ‘미래의 국가’는 인권을 수호하는 파수꾼이 될 수 있을까? 허나 국가는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관료조직의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자율성을 가진 국가, 착한 국가는 가능할까? 이런 얘기를 길게 하다보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시점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인식틀frame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중심에 둔 사회구성체 논쟁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마을, 자치와 자급이라는 인식틀로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전과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제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복지국가의 모델이 여전히 중요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의 논의만 살펴도 서구의 복지국가 내에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왜곡되었는지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없이 서구의 복지국가가 가능했을까? 복지국가는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났을까?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는 복지국가가 사회의 대안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앞서 간단히 살펴본 네 가지의 정책전략[복지국가 옹호, 뉴라이트, 조합주의, 마르크스주의―인용자] 중 어떤 것을 사용하더라도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장 중심의 사회․경제․정치적 시스템―복지국가는 그 내부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은 한순간도 환경파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사회의 발전된 형태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사회변동의 구조로서 (생태학적 관점에 기초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다른 구조, 다른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각주:11]
심지어 아이프는 복지국가의 장점이라 얘기되는 적절한 최저생계 보장, 사회적 불평등 감소, 공평성이 실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의 기밀성, 사회의 익명성, 관료주의 등이 강화되었을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각주:12]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국가에서 사는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정책과 그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둔다면 복지국가 모델은 여전히 중요하게 보일지 모른다. 대중의 능력을 얕잡아 보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자비로운 시각이야말로 나쁜 국가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고 참아야 하는 딜레마일까? 그렇지만 왜 그런 자신의 가치와 믿음이 우리의 미래이어야 할까? 특히나 식민지의 국가구조와 교육체계, 정신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채 식민성의 굴레에 갇혀 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가 외부적인 기준에 맞춰 자기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국가와 개인의 계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개별자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인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개인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로버트 오언R. Owen은 이를 “우리가 지금 주장하는 원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한결같이 실현되는 자신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인적 행복은 주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늘리고 확장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각주:13] 그리고 이런 식의 관념은 이미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생각이다.[각주:14]


이런 인간관을 받아들인다면 요구하는 권리에서 구성하는 권리로 논의가 확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치와 자급의 마을이 구성된다면 그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힘과 관계도 그만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인간의 욕구와 역량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그 내부의 기준에 따라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인식틀의 전환이 중요하다. 중앙정부, 민족/국민국가에 맞춰진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내가 디디고 있는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와 관련해 최근 인권과 관련된 조례들이 제정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조례들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교육감, 전북교육감 등이 추진중인 학생인권조례보다 앞서, 2004년 1월 목포시는 ‘목포시건축물의 허가 등에 있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의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고 신축되는 병원, 공공시설 등 대형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사전점검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의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서 외국인 주민이 정책이나 공공시설물 이용, 고용과 관련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광주광역시가 2009년 10월에 제정한 ‘광주광역시 인권 증진 및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조례’ 역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도시의 발전비전으로 인권을 내세운 조례이고 2010년 3월 경남도의회가 통과시킨 ‘경상남도 인권증진 조례안’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례들이 지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안산시가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을 기반으로 다문화라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광주광역시의 인권조례가 민주, 인권, 평화를 내세운 도시개발이나 지역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비판은 그 진의(眞意)를 의심케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조례 제정이 시민문화나 아래로부터의 동력 없이 진행되거나 그런 동력을 제도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조례가 다른 조례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가이다. 하나의 조례만으로 지역사회가 혁명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는 조례로 표현되는 제도화와 그 합의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화적인 영역들이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아이린 칸이 지적하는 바는 곱씹어 볼 만하다. “페루는 남미에서 산모와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특히 지방 원주민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산 호세 드 세까의 마을과 오코페카, 후쿠마키리, 상끄와 루페이의 공동체들, 안데스의 아야쿠초에서는 지역 NGO주도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거리와 비용, 부족한 시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그들의 문화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직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시설을 찾아가는 일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와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년 동안 관계가 향상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설을 이용하였고 마을의 전통적인 산파들과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출산환경이나 출산전후 관리가 그 지역문화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 있는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거나, 출산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것, 혹은 태반을 가족에게 돌려주어 직접 묻게 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들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고 그 지역언어로 설명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사망률이나 환자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경우를 통해 우리는 소외문제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가난한 여성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할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배울 수 있다.”[각주:15]


조례는 지역사회의 법이고 법은 시민의 공공성과 여론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조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지역성을 반영할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사회운동의 힘을 제도로 잘 흡수한 참여예산제도가 한국사회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련된 정보와 참여의 부족, 지역과 맞지 않는 기계적인 제도의 도입, 제도의 발전과정에 대한 평가의 부족 때문이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과 풀뿌리가 만나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다.


인권과 풀뿌리의 만남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을 일구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밑거름으로 변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인권과 풀뿌리는 가진 자들의 삶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사람들, 허나 채우기 위해 버릴 줄도 아는 사람들의 삶에서 꽃피기 때문이다.

  1.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38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27쪽. [본문으로]
  3. 장일순․이현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 2003), 108쪽. [본문으로]
  4. 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시골생활, 2010), 26~27쪽. [본문으로]
  5. 함석헌, [들사람 얼](한길사, 2001), 28쪽. “정치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기술과 제도를 내는 것이요, 철학자․도덕가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도리어 지혜를 가르치고 힘을 주는 것이다. 나라는 씨의 나라요 세계는 씨의 세계다.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사실 이날껏 민중이라면 구더기같이 업신여기고 더럽게 안 것이 낡은 윤리와 사상의 특색이었다. 들이 다 그것이다.”(같은 책, 236쪽) [본문으로]
  6.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8쪽. [본문으로]
  7. 김순천, 『대학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2009)을 보라. [본문으로]
  8.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제 41호(2009년 11․12월호). [본문으로]
  9.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47쪽. [본문으로]
  10. 짐 아이프 지음, 류혜정 옮김, 『지역사회개발』(인간과복지, 2005), 150쪽. [본문으로]
  11. 짐 아이프, 앞의 책, 43쪽. [본문으로]
  12. 같은 책, 61쪽 [본문으로]
  13. 로버트 오언 지음, 하승우 옮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지만지, 2009), 27쪽. [본문으로]
  14.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1997)이나 김종철, 『간디의 물레』(녹색평론, 1999)를 보라. [본문으로]
  15.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들리지 않는 진실: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 16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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