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풀뿌리자치연구소가 모처럼 후원의 밤을 연다.
한국 내에서 풀뿌리운동과 관련해 가장 많은 힘이 축적된 곳이다.
하지만 여느 단체처럼 재정상황은 계속 적자이다.
소장님과 상근연구위원, 단 2분의 인건비조차 매달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원의 밤이 그런 재정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일시적으로 단체의 곳간을 채울 수는 있다.

혹 티켓 구입에 관심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연락 주시길...
 


사회투자지원재단에 계신 장원봉 박사님이 야심차게 준비한 여름맞이 특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석해 보심이...

 

정치적인 면에서 직접행동은 민중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방법이자 목표이다. 직접행동은 자신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공동체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직접행동은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의 건설이 나의 참여 없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져도 새로운 부조리에 맞설 가능성으로 직접행동의 자리가 계속 남겨져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목표이다.


직접행동은 근대사회가 분리시킨 주권과 민중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연결시킨다. 근대국가는 주권을 앞세워 민중을 국민으로 포섭하고 그들의 의지를 선거로 가둬버렸지만, 민중은 직접행동을 통해 자신의 주권을 되찾고 주권자로 거듭날 수 있다.



직접행동과 주권


유럽의 정치이론들이 주권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 왔지만 그 논의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이론들은 식민지가 아닌 서구 중심국가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예가 된 자와 노예일 수밖에 없는 자가 똑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즉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든 ‘식민성’이라는 마음의 특성(心性)을 논하지 않고 권리나 제도, 운동의 차원으로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식민지 민중의 일상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이론을 위한 이론을 추구하는 추상적인 논의들은 그 자체로 타당하고 적절할 수 있지만 적어도 식민지를 경험한 사회의 변화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도움을 줄만한 이론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세련된 이론이 아니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발전된 이론들이다(파농F. Fanon이나 프레이리P. Freire, 라나지뜨 구하R. Guha, 마르코스Marcos 등의 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한 가지 간단한 예만 들어보자. 한국의 도서관들은 자유로이 책을 찾아 읽으며 정보와 지식을 서로 나누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과서나 참고서를 들고 가서 보는 공부방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열람실 좌석표를 뽑으려 새벽잠을 설쳐야 하는 도서관, 뻔질나게 들락거려도 책 한권 찾아보지 않은 도서관, 이런 도서관을 유럽이나 미국의 국가들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왜 우리들은 도서관을 이렇게 인식할까?


도서관운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일제는 지배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양민을 만들기 위해 사회교육을 실시했고 도서관 역시 그런 지배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일제는 한편으로 자생적인 도서관 운동을 억누르면서 다른 한편으론 몇 안 되는 도서관을 (당시의 특권계급인) 소수 학생들의 시험준비공간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의 민중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서관에 놀러간다는 생각, 도서관이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도서관의 개수를 늘리고 사서를 많이 배치하고 책의 수를 늘린다고,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의 의식, 무의식, 일상의 경험 속에 스며든 지배의 논리를 바꾸지 않으면, 식민성을 제거할 충격을 주지 않으면, 삶은 쉽게 우리의 앎을 배반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수동적인 사람들이 직접행동을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스스로 행동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개화기로 불리는 시기에 민중들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재일 역사학자 조경달은 이 시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대한제국기는 개명한 지식인이라면 진지하게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시기였다. 그것은 민民도 사士라는 지평의 개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식인에게 그러한 사상적 작업을 강요할 정도로 민중운동은 고양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전개된 반일의병투쟁에서 고명한 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평민의병장이 여럿 탄생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는 한국 역사상 가장 의적이 많이 활약한 시대이기도 했다. 도적 또한 의적으로서 사의식을 갖는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역사를 장식했던 갑오농민전쟁이나 수많은 민중반란들은 민중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런 정치행동을 통해 민중은 서서히 자신을 주권자로, 변혁의 주체로 인식해 갔다. ‘사발통문沙鉢通文’(주모자의 이름을 사발과 같이 둥근 모양으로 빙 둘러 적은 연판장)을 돌려 민회를 열고 “여기에 응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전(罰錢, 벌금)’을 징수하거나 ‘훼옥(毁屋, 집을 망가뜨리는 것)’을 하는 식으로 참가를 강제”하며 “이른바 공동체 제제의 논리를 행사”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민중은 장이 열리는 날 토론판을 벌이고 산에 봉화를 피우거나 밤에 산에 올라가 수령을 욕하면서 산호(山呼)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19년 3월 5일 일본경찰과 헌병들이 많은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찔러 도로에 피가 흥건하게 고이던 시절, 관원이 탄 수레를 끌던 수레꾼은 이렇게 그 관원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만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나는 비록 미천한 수레꾼이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차라리 개, 돼지를 태울지언정 너와 같은 무리는 태울 수 없다.”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가난한 수레꾼이 관원을 꾸짖을 정도로 사람들의 존엄은 강했다.


이토록 강했던 민중의 꿈과 자부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확한 표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짓뭉겨지고 비틀렸다’이다. 일제 식민권력은 단순히 사람들을 지배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존엄함을 뿌리째 뽑아서 순종적인 인간을 ‘창조하려’ 했다. 당시 한국을 취재하던 미국 기자 페퍼는 ‘한국의 진상(the Truth about Korea)’이란 기사에서 감옥에 갇혔다 풀려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고, 또 좌우를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는데, 품속에 서류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류는 한 조각, 한 장이라도 일본인에게 발각되면 6개월의 징역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일본인이 일컫는 불령(不逞)한 무리가 아니며 또한 지식층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순박한 소상인, 농부, 규중에서 생활하는 가정주부나 어머니들이었다.” 그리고 박은식에 따르면 일제는 ‘부랑자취체령(浮浪者取締令)’을 선포해서 일정한 직업이나 주소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체포했다. 서울과 각 도시에서 약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체포해 3주일 이상 3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고 한다.


단지 정치적으로만 억압을 받은 게 아니다. 식민권력은 민중들의 살림살이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본국민의 이주를 책임지는 전형적인 식민지착취기구로 국유지와 공유지를 약탈할 뿐 아니라 한국 농민의 소작권을 빼앗아 일본농민에게 넘겨줬다. 일제 말기에 일본이민자 수는 100만명에 달했다(이들은 자치기구나 소방대를 조직해서 식민권력의 사조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일제는 땅만이 아니라 살림살이를 통째로 빼앗고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강요했다. 인구조사를 핑계로 개인의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었고 청결검사를 한다며 물건을 뒤지고 사람들을 때렸다. 세금을 체납하면 집안의 솥과 식기 등의 세간을 경찰이 마음대로 뒤져서 팔고 심지어 굴뚝의 개조나 공사에도 개입했다. 일제는 이런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본주의 논리나 근대화의 논리를 내세웠다.


자기 주권 내의 국민이 아니기에 일제는 한반도의 민중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제한하거나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폭력을 조장하고 묵인하며 존엄을 짓밟고 체념과 순종을 끌어내려 했다. 이런 끔찍한 폭력을 경험하며 민중은 살아남기 위해 존엄을 버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근대화의 논리인) 약육강식의 경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각주:1]


해방 이후 군사독재는 이런 식민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시키려 했다. 반공주의는 일제의 사회지배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득권층을 강화시켰다.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그랬듯이 기득권층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도 완전히 훼손되지 않았던 민중의 마지막 존엄을 계속 짓밟았다. 일제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정책이 이름과 내용만 바꾼 채 고스란히 이어졌고 심지어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존엄은 자기 삶의 기반인 살림살이와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것인데, 거의 백여년간의 억압은 이런 존엄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무의식 속으로 스며든 이런 지배의 논리를 찾아내고 존엄의 기반을 회복시켜야 한다. 푸코나 들뢰즈의 분석을 찬양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그런 시사점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존엄을 되찾을 방법이 드러난다면 민중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민중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그런 회복에 관심이 없고 때로는 회복을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한다.



직접행동과 선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성립시킨 것은 선거였다. 성별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성인에게 투표권을 줬다는 점에서 한국의 선거제도는 발전된 듯 보였지만 대표를 뽑는 선거는 근본적으로 민중에게 주권을 돌려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진정 민중의 주권을 다시 회복시키려 했다면 선거가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의 민회를 복원하고 그들의 정치행위를 보장했어야 옳다. 하지만 미군정이나 기득권층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민중의 정치적 힘을 선거라는 장으로 ‘동원’하려고 했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서구의 것이다. 다른 제도들이 그러하듯 서구의 것은 이 땅의 전통과 문화를 뒤떨어진 것으로 해석하며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민중은 기존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는데, 그런 새로운 것에 익숙한 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많은 지식인과 엘리트들은 선거를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민중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무지하고 쓸모없고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조경달에 따르면 한국의 민중은 스스로를 변혁의 주체로 인식했지만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했다. “갑오농민전쟁은 덕망가적 질서관을 전제로 국왕․왕부(王父)환상이 널리 퍼져가는 가운데, 중개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무력적 청원 형식으로 평균주의와 평등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민중반란이었다. 여기에서 민중은 청원자의 역할만을 맡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은 철저한 민본주의를 표방했지만, 민중 자신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투쟁은 있을 수 없었다.” 즉 갑오농민전쟁이나 그 이후의 많은 민중반란들은 새로운 덕망가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민중의 심성, ‘일군만민(一君萬民)’사상을 강화시켰다. 식민지 시기의 농민조합이나 해방 이후의 인민위원회에서도 덕망가의 출현과 그들을 통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경향을 비판하며 민중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려는 운동의 흐름도 있었지만 선거는 이런 흐름을 가로막고 다시금 사이비 덕망가 질서를 확립했다.


이것은 선거의 정치적 중요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선거라는 장 자체가 민중의 정치 에너지를 동원하고 흡수해서 직접행동의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얘기이다. 즉 선거를 통해 민중이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정치학자 러미스(D. Lummis)는 이 점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인민의 복지를 돌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와 다르다. 왕이 진심을 다해 자기 국민들을 돌볼 수 있지만 정부형태는 여전히 군주제일 것이다. 한 정당의 독재가 인민을 섬기는 정책을 채택할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정당독재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온화하거나 공정한 지배자들에게 은총을 받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민중선동가(demagogy)는 인민을 위해 일하거나 인민을 대변하리라 약속하며 대중적인 지지(=권력)를 얻은 사람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주로 비난할 때 사용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았고 특히 민중선동가가 적절한 상황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킨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약속의 대가로 어떤 이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넘겨주는 상황이 아니다.”


선거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선거에 참여하는 걸 거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정치인이 나타날 수 없으니 모든 정치인을 없애자는 얘기도 아니다. 조금 더 민중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고 민중적인 정치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민중의 존엄이나 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얘기이다. 적어도 민중의 존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선거혁명’, ‘선거승리’란 말은 ‘평화를 위한 전쟁’이나 ‘다리없는 경주마’처럼 모순된 말이다.[각주:2]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흐름이 단절이라기보다는 연속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존엄을 회복하지 못하면 민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또 한번 속임수에 넘어간 자신에게 ‘모멸감’과 ‘냉소’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여러 학자들은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촛불의 힘이 선거의 투표행위로 전환되었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선거의 승리인가? 투표율, 득표율, 당선율로 정리되는 부르주아 선거판의 논리를 빼면 무슨 기준으로 승리를 논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국민의 생각이 선거결과로 드러났다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다(이미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다). 그건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결과나 여론을 무시하는 권력의 태도가 이명박 정부 때만 있는 특별한 일인가? 소위 민주정부라 불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의 상식이 얼마나 정책에 반영되었나?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서는 역사가 만들어져야 새로운 역사가 써질 수 있다. 그것은 지난 백 년 동안 민중이 꿔왔던 꿈이자 실현되지 않은 꿈이다. 직접행동은 민중이 뼈 속 깊이 스며든 식민성을 제거하고 존엄을 되찾으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연다. 직접행동이 실패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 성공하지 못한 삶이 잘못된 삶은 아니고 존엄한 자는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할 수 있다.



참고한 책


박영숙,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 2006)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소명출판, 2008)

이연옥, 『한국 공공도서관 운동사』(한국도서관협회, 2002)

조경달 지음, 박맹수 옮김, 『이단의 민중반란』(역사비평사, 2008)

조경달 지음, 허영란 옮김, 『민중과 유토피아: 한국근대민중운동사』(역사비평사, 2009)

조동걸, 『일제하한국농민운동사』(한길사, 1983)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그린비, 2004)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해냄, 2002)

D. Lummis, 『Radical Democracy』(Cornell University Press, 1996)

  1. 파농의 말처럼 “이주민은 원주민을 악의 본질로 생각한다. 원주민 사회는 단지 가치관이 부재한 사회가 아니다.…원주민은 사악한 무의식이며 맹목적인 힘의 도구다…이주민이나 경찰은 언제나 원주민에게 매질을 하고 모욕을 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원주민이 품 속의 칼을 빼는 것은 다른 원주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눈길을 보냈을 경우다. 원주민에게 최후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2. 마르코스와 사빠띠스따는 이렇게 얘기한다. “거듭 말하지만, 무기를 든 것은 저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대안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기를 든 것도 우리 얼굴을 가린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멕시코의 민주적인 변화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면 더 많은 피를 흘리고 더 많은 죽음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성직자라는, 전쟁광이라는 비난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를 비난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세계로, 우리가 흘리는 피의 가치를 폄하하고 존엄 대신 명성을 주는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사이렌과 천사들의 노랫소리에도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사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본문으로]

 

선거의 가장 기본은 투표이다. 주변 사람들이나 부모님들은 누구를 찍어야 한다며 열심히 훈수를 두시지만 딱히 기준이 없어 그 말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해야 할까? 공약집이나 홍보물을 열심히 살펴보면 누가 더 나은지를 가릴 수 있을까?



1단계: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건 뭘까?


물론 선거자료를 열심히 보는 건 중요하다. 아는 만큼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순서가 좀 뒤바뀐 거다. ‘어떤 사람을 찍을 것인가?’보다 훨씬 중요한 건 ‘나는 뭘 원하는가’이다. 선거는 내가 원하는 바를 대신해서 해결할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한테 뭘 해주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선거는 권리를 행사할 자리이지 선물을 받는 자리가 아니다. 시장에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적어서 나가는 사람이 ‘알뜰한 소비자’이듯이, 선거를 맞이해서 자신이 필요한 걸 잘 챙기는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다. 그리고 ‘훌륭한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함께 따지면 된다.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걸 먼저 쭉 늘어놓고 그걸 충실히 잘 따르겠다는 후보자를 찍어야 우리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고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도 있다.


그래야 대표가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의원님, 시장님,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할 게 아니라 “내가 뽑아줬으니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주면 더 좋겠어.”라고 말해야 민주적인 시민이다. 사실 그들이 마을에 해주는 사업들은 그들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해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짬짬이 낸 세금으로 하는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공약을 지키면 잘 했다고 등을 두들겨주면 되지 굳이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투표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 내 이웃과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챙기고 공동의 과제를 찾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뭘 해줄 거냐고 물을 일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그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



2단계: 사람됨 살피기


선거에 관한 정보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거홍보물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웬만한 후보자들이 선거 때마다(아니, 거의 선거 때만)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아니면 직접 선거사무소를 찾아가도 좋다. 혼자가면 썰렁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찾아가면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말고 곧바로 묻고 그 내용을 널리 알려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주인으로서 우리는 머슴에게 계속 고민거리를 던져줘야 한다.


대통령선거는 봉투가 비교적 간소하지만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로 오면 홍보물 봉투가 제법 두툼하다. 출마하는 사람도 많지만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때는 직접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 외에 일정한 비율의 표를 얻으면 의석을 가질 수 있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비례대표는 전체 유효투표의 3% 이상을 얻으면 원내 의석을 가질 수 있다. 2004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13.1%의 지지를 얻어 8명의 비례대표를 국회로 보냈다. 그리고 지방선거의 경우 시․도의원만이 아니라 자치구․시․군의원도 비례대표로 뽑는데, 비례대표는 의원정수의 1/10 비율로 선출되고, 후보자 중 50% 이상을 여성후보로 채우도록 되어 있다. 비례대표투표는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순서대로 당선되니 어떤 사람이 추천되었고 순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투표하는 게 좋다.


비례대표는 평소에 내가 눈 여겨 보던 괜찮은 정당에 찍으면 되고, 직접 투표하는 건 앞서 얘기했듯이 나와 우리의 필요에 맞춰 투표하는 게 좋다.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았다면 그와 비슷한 공약을 내건 후보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만일 내게 딱히 필요한 부분을 못 찾았다면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보통 홍보물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온갖 공약(公約)들로 채워져 있어 후보자들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없다.


그래도 나오는 사람이 나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됨’부터 먼저 확인해 보자.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재산상황(배우자와 직계의 재산 포함), 병역사항, 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납부 및 체납실적,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포함한 전과기록, 직업·학력·경력 등 인적사항이 나와 있다.


먼저 재산과 세금, 경력을 살펴봐야 한다. 돈이 많은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었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재산이 많다면 어떤 일을 해서 재산을 모았고 재산이 적다면 왜 그런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인터넷에서 이름과 직업으로 검색하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더불어서 세금 납부 실적과 직업, 경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직업은 변호사나 기업인인데 세금을 나보다 적게 냈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런 분들은 일단 자기 주머니를 따로 찰 가능성이 높으니 정치인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직업과 경력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자기 회사나 자기 부인, 자식들의 회사, 자기가 속한 단체나 협회에게 이익을 주는 공약을 내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그런 일이 많다). 공약의 주요 내용과 직업, 경력의 내용이 겹친다면 한번 의심해봐야 한다.


다음으로 병역사항. 병역을 면제받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멀쩡한 사람이 면제를 받았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사실 이 조항이 의미를 가지려면 후보자만이 아니라 후보자의 가족 병역사항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아쉽게도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것만 있다. 예전에 국적법을 개정할 때 국내외에서 1,820명이 국적을 포기했는데, 살펴보면 전(前)국방장관, 외무장관, 대학총장의 손자 등이 있었고, 서울시 강남권이 40% 이상을, 그 중 가장 부자라는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단일주소지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했다. 자기 이익 다 챙겨먹는 사람들이 정작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잘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과기록. 생각보다 정치인들 중에 전과자들이 많다. 1987년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정치계로 많이 들어갔지만 그런 경력 외에 사기나 뇌물수수같은 잡범으로 감옥을 다녀온 사람들도 더러 있다. 민주화운동 때문에 전과기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함께 기록하니 상관없고 다른 범죄기록이 있으면 잘 확인하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실수를 더 이상 범하면 안 된다.


그리고 선거에 처음 나온 사람이 아니라 이미 공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사람에 관한 평가를 들어봐야 한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품평이나 사용후기를 보고 그 상품을 평가하듯이, 정치인도 그렇게 평가를 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발행하는 의정활동보고서나 의정활동백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평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쇼핑 할 때는 눈이 뻘겋게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투표할 때는 너무 신경을 안 쓴다. 이제 신경을 좀 써야 머슴들이 기억력 나쁜 국민들이라며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선거 끝나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신경을 좀 쓰자.



3단계: 정책실현가능성 살피기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걸더라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 공약의 숫자나 하겠다는 사업의 규모보다 실현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옛날에는 당선되면 이것저것 다해준다고 뻥을 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매니페스토’(참공약)라고해서 그 공약을 지킬 과정을 밝히게 한다. 2008년도에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선거공약과 함께 각 사업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기한, 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하도록 하고 있으니 뻥을 치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자. 이런 과정을 세세하게 밝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단 뻥쟁이로 봐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http://www.manifesto.or.kr/)에 가면 매니페스토운동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여러 가지 선거정보와 선거자료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매니페스토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일단 그 공약을 한번은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약간은 더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실현가능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공약이 시민들의 욕구를 얼마나 반영했는가이다. 시민들은 당장 필요한 게 복지와 교육인데, 후보자들은 건설이나 재건축 등 엉뚱한 공약을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공약들이 아파트 재개발을 하고 커다란 편의시설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까는 하드웨어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뭘 많이 세운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후보자들은 자기나 가족들이 운영하는 기업에 이득을 가져다줄 공약들을 자기 지역을 위한 것인양 선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냥 선거를 대행해주는 회사에 맡겨서 지역의 욕구와 무관한 사업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니 그 사업이 실제로 필요한 건지, 재정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고 하는 경우에도 그 시설이 얼마만한 규모로 어떤 위치에 세워지는지를 봐야 한다. 주민들이 잘 가지도 않는 곳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편의시설을 세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는 다리품을 파는 만큼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후보자의 정책을 평가할 때도 품을 들이는 것만큼 좋은 사람을 대표로 뽑을 수 있다. 보통 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를 설치하니 그 사무실에 한번 방문해서 주인의 지위를 실험해 봐도 좋다. 직접 찾아갔는데 소 닭 보듯 한다면 주인을 제대로 섬길 준비가 안 된 머슴이니 바로 리스트에서 지우자.


그리고 선거법에 따라 각 후보자들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거리유세나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다. 대통령후보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은 지역의 유선방송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홍보한다. 또한 지정된 공개장소에서 연설하고 대담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싹수가 보이는 인물인지 그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보자.


또한 시민단체들은 보통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간의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곤 한다. 시간이 되면 한번 참석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좀 들어볼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서 말을 잘 하는 후보자보다는 하나의 정책이라도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 후보자에게 귀를 기울이면 좋다.



4단계: 기권하거나 무효표 만들기


요즘 정치는 시장원리를 따라 정당이 정책을 생산하고 유권자가 정책을 선택한다는 논리를 많이 내세운다. 유권자가 직접 정책을 고민하지 않도록 최대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정책을 만들고 뜻을 받들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쇼핑할 때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으면 사지 않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만일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는데도 자꾸 투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는 것도 시민의 몫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도 시민의 선택 중 하나이다. 왜 이 물건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알려야 파는 쪽에서도 고민을 좀 할 게 아닌가? 좋은 상품이 나올 때까지 상품을 사지 않으면서 나쁜 상품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제대로 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삐딱하게 굴자.


워낙 쓸만한 인물이 없는 선거판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표소에 들어갈 때까지 망설이게 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더더욱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한 표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투표할 수도 있지만 한번 떠난 투표용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에는 ‘no bullet, but ballot’, 즉 총알 대신 투표권이라는 말이 있다. 총으로 해결할 일을 투표권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비중있게 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진정 시민이 주권자라고 여긴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이런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자. 기표소에서 기권란을 그리고 그곳에 기표를 하자. 그렇게 기표하면 잘못 찍어서 생긴 무효표와 구분되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면서도 수동적으로 지금의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정치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당선된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 마뜩잖으면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해도 좋다. 찍을 사람이 없는 선거판을 거부한다는 점을 표현하는 건 주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유럽의 경우 실제로 투표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멕시코에서는 무효를 뜻하는 눌로(Nulo)를 찍자는 ‘Voto Nulo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눌로운동은 아무도 찍지 않는 것이 현직 정치인들을 뽑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벌어졌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 이런 행위는 투표용지를 잘못 찍어 무효표를 만든 경우나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경우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하려 한다면 최소한 웹사이트에서라도 그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해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제 투표일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을 찍을지 결심을 한 용인시민은 몇이나 될까?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5년 68.4%, 1998년 52.7%, 2002년 48.9%, 2006년 51.3%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으니 지방선거에만 관심도가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방선거에 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이 지방선거인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더욱더 부족하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건 대부분 중앙정치이고 우리 지역의 소식은 아주 짧게 언급된다. 그러니 지역에 관한 정보를 구하려면 직접 인터넷이나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를 검색해야 한다. 복잡하고 귀찮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중앙정치의 선호도에 따라 후보자를 뽑거나 그냥 투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무심함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옛날에 비해 시청과 구청이 많은 권한을 갖게 되었다. 돈은 중앙정부에서 나올지라도 시청과 구청이 도시계획, 보육과 복지, 교육, 교통 등 우리 일상과 관련된 정책들을 계획하고 집행한다. 순간의 실수가 4년을 좌우할 수 있고, 순간의 선택이 우리 아이,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더군다나 지금 용인시는 공천과정에서부터 심한 잡음이 일었다. 한나라당은 국민공천배심원단이 부적격 판정을 내린 오세동 후보를 시장후보로 공천했고, 민주당은 기준을 세우지 못하다 여론조사에서 밀린 김학규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여기에 인사비리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현재의 용인시장 서정석 후보가 출마했다. 그러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용인시의 밝은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선거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 한번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고 선거를 이용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꿔보자. 선거에 앞서 최소한 이것만은 기억하고 다짐하자.


첫째, 사람과 정책이 비슷비슷해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면, 나와 우리 가족이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자. 선거는 일꾼을 뽑는 장이니 내가 무슨 일을 시킬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후보자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책으로 만들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자. 선거사무소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가 원하는 정책과 미래를 요구하고 후보자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만들자.


둘째, 정책을 따지기 어렵다면 사람됨이라도 꼼꼼히 살펴보자. 선거홍보물에는 후보자의 재산상황, 병역사항, 세금납부실적, 전과기록 등이 나와 있다. 사람됨이라도 괜찮은 사람을 뽑아야 비리나 큰 정책실패를 막을 수 있다.


셋째, 지방자치는 좋은 대표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 전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말고 당선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계속 감시하고 문제가 있으면 주민감사제도나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주민들이 주민발의제도나 주민투표제도를 통해 직접 조례를 제정하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제도 외에도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에서 민원을 넣고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용인시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 한번으로 행복을 바라지 말고 나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끈질기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 겨울 뒤에 봄이 오고 고난 뒤에 행복이 온다.

 

모두들 살기 힘든 세상이라 얘기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는데도 도무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삶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행복을 예감하기 어려울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중요한 원인이 자발성의 부족과 공적 행복에 대한 무지라고 봅니다. 한때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그들 사이에 신뢰와 규범, 연결망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지요. 그런 사회자본이 형성되려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관계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화된 한국사회에서 ‘이웃사촌’은 이미 옛날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요즘처럼 남과 경쟁하느라 바쁜 시절에 누가 남과 관계를 맺으려 할까요? 오히려 관계를 맺으면 맘 편히 경쟁하기 어렵고 내 요구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어려우니 모르고 사는 게 더 좋고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사회처럼 개인주의를 따르는 합리성이 옳다며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실업과 에너지 위기, 식량위기, 온갖 위기들을 헤쳐가려면 혼자 힘으론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국인들도 차츰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젖어왔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볼링을 즐기던 생활에서 벗어나 공동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관계의 가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개인주의를 보지만 정작 미국사회는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자원활동이 시도되며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라고 생각하면 등을 돌리게 됩니다. 자원활동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려면 주어진 역할보다 스스로 계획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즉 자원활동가들의 권한이 커져야 합니다. 자원해서 하는 일이니만큼 반드시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평범한 시민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첫걸음을 떼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꼭 내가 해야 하나?”, “괜히 참여했다가 나만 피곤해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떠돕니다. 그러다보면 조심스런 관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첫걸음을 쉽게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먼저 걸음을 뗀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자원활동을 시작하면 저런 행복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첫걸음을 떼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와, 저거 굉장히 귀찮고 어렵겠구나


시작부터 이런 계획이 성공하긴 어렵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람이 성장하듯이 자원활동도 처음에는 더디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관심도 넓어지고 활동력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실패의 여부가 계획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패보다는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시민들의 역량이 강화되어야만 자원활동의 힘도 강해집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구체적인 정보입니다. 함께 하자고 아무리 권해도 정보가 없으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을이나 공동체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참여자의 눈높이에 맞춰져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마을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진행해서 주민들의 욕구나 공동체의 필요를 밝혀내고 그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참여의 장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정보 없이는 참여가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권한과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만 매달리면 자원활동이 계속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한국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보육, 교육 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높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 점에서 자원봉사센터가 그런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풀뿌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풀뿌리라는 말을 되뇌는 건 다시 떳떳한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풀뿌리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뿌리는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보자는,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입니다.

따라서 자원활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그래서 자원활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자원활동은 변화의 과정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목표여야 합니다.


그런데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내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는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의 독립운동을 분석하면서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을 개인의 생활에만 쓰는데, 아렌트는 혁명과 독립이라는 큰 사건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유에 행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독재자 밑에서 개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없듯이, 참된 행복은 건강하고 올바른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요즘처럼 어지럽고 복잡한 시대에 진정 자유로운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아렌트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원활동은 단순히 남을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자원활동은 나를 위한 활동이고 내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인 관계를 위한 활동입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부족에는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알려주는 말이지만 아이 한 명에 온 마을의 관계가 얽혀있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이렇게 관계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살려면 다른 사람도 더불어 행복해야 하고, 마을에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원활동도 결국에는 나의 행복을 위한 활동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집시다.



이제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사건사고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관련된 '북풍',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라는 '노풍', 4대강'전쟁'(사업이라 부르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크더군요) 등이 시민들이 마음을 흔들고 있지요.

그리고 반MB라는 구도로 짜지는 선거연합이 선거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연합으로 당선되는 건 더 어려운 듯하고, 당선되고 나면 당선자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듯합니다.
유권자연대라는 단체들이 선거 이후에 어떤 역할을 맡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선거도 그다지 흥미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네요(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창림, 서형원, 김혜련, 오관영 등등의 선수들께는 죄송...^^;;).
그래도 흥미로운 기운은 꼬물꼬물 싹트고 있는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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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하변이 만드는 새로운 블로그(www.ivoice.or.kr)도 이런 목소리를 많이 담으시겠죠?^^

저는 요즘 선거 이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 조짐이 좋지 않아서 미리 희망스런 일들을 준비해야 하겠기에...
그런 일들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한양대 연구소도 그만뒀습니다(이거, 왠지 형제가 자퇴분위기인데요...ㅎㅎ).
7월에 아이가 태어나긴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분유값 떨어지면 도와주실 거죠? 아니면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라도 열심히 팔아주셔야 합니다. 책 받으신 분들은 반드시 서평쓰기...ㅎㅎ)

'지식협동조합'의 뒤를 잇는 '대안대학'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꾸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체들의 공간을 공유하고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면 새로운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여기 들리는 분들도 나중에 아이가 크면 걱정이 되시겠죠. 우리 아이가 제2,제3의 김예슬이 되지 말란 법은 없고,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말짱도루묵인 대학교육을 받는 아이러니를 피하려면 많이 도와주셔요.
좋은 아이디어도 주시구요.

다들 선거 때문에 바쁘실테니 선거 이후에 한번씩 찾아뵙지요.
그럼... 

 

지금 중앙대에서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기업도 아닌 대학에서 무슨 구조조정일까? 2010년 3월, 중앙대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기업이 적자를 빌미삼아 노동자들을 해고하듯이 인기 있는 학과들만 남겨두고 돈 안 되는 학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는 속셈이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니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중앙대의 예가 이런 구조조정을 알리는 신호라는 점이다.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다. 한국의 다른 대학들이 중앙대 사례를 내세우며 비슷한 형태의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은 뻔한 일이다. 중앙대 학생들이 교내 공사장과 한강대교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대학이 구조조정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얼마 전 고려대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이 있자 잔잔한 파문이 일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조용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학생들이 이런 현실을 모를 리는 없다. 문제는 대학생들의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대학생들의 몸은 자본과 권력에 너무 익숙하다. 학과수업만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 모두가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은 이미 진부해졌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외식사업부들이 대학공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다. 학교 주변 밥값이나 월세, 전세도 물가와 재개발의 영향을 받아 계속 오르고 기숙사 생활비마저도 민간기업이 위탁운영하면서 점점 오르고 있다. 세콤을 비롯한 보안회사, 용역회사들이 관리하는 대학캠퍼스에는 고민을 털어놓을 선배도, 우정을 나눌 관계도 없다.


더 이상 대학은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아니다. 매캐한 최루탄가스 사이로 담배를 나누는 손길은 고사하고 수업노트를 복사해서 나누는 광경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생들은 명품이나 엣지있는 패션 아이템에 많은 관심을 쏟지만 학생식당이나 생활공간을 누가 관리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가격을 치른 만큼 서비스를 받고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며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경쟁의 규칙이 몸에 익어 있다. 몇 달 전 미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목록에서 대상을 삭제하는 ‘친구삭제(unfriend)’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는데, 미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모든 청년이 대학생일 필요는 없지만 대학생이 청년 인구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몰락을 모른 척 해야 할까?



소비의 중심에서 협동을 외치다!


1997년 대학가 소비의 상징처럼 얘기되는 이화여대에서 조그만 사건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와 그 앞의 거리는 대학가 소비문화를 대표해 왔지만 이화여대에서도 그런 문화를 거부하는 조용한 사건이 벌어졌다.


1996년 이화여대는 학생관을 헐고 신학생문화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당시 학생관 매점을 운영하던 대학생활협동조합(대학생협) 대신에 외부의 사업자에게 매장운영권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대학당국은 생협이 수익금으로 학생운동을 지원한다고 보면서 생협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자 이화여대 생협은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화여대생들에게 서명운동을 받고 노조와 연대하면서 학교의 방침에 저항했다. 그리고 1997년 10월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임시총회를 열었다. 당시 학생운동의 쇠퇴와 IMF로 학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3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임시총회에 참석했고, 이에 기가 눌린 학교는 결국 외주위탁 방침을 철회했다. 어려운 싸움을 거치면서 이화여대 생협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직원, 직원들도 참여하는 생협으로 발전했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대학생협이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과정은 학생운동과 무관하지 않았지만 생협의 특성상 그 활동은 운동보다 생활에 가깝다. 학생운동에는 그 이념과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다가서기 어렵지만 생협은 그렇지 않았다. 생협의 조합원 가입 동기를 보면, ‘매장 언니들이 친절해서’,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가장 필요한 하숙정보를 알려준 곳’이어서, ‘다른 매장보다 싸서’같은 생활상의 이유가 많았다.


생활의 필요 때문에 생협에 가입하지만 조합장과 임원을 선출하고 자발적으로 활동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조합원은 ‘성장’을 경험한다. 조합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도록 하면서 대학생협은 공동구매만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삶의 변화를 유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 상업문화를 배제하는 올바른 대학문화가 논의되었다. 1991년 태평양 노조가 싸울 때에는 매장에서 태평양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고 불매운동을 벌였고 97년 12월부터는 외제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밀살리기운동이 활발하던 때에는 우리밀 이화여대 지부가 만들어져 활동하기도 했고, 책벼룩시장을 통해 대학생들은 스스로 가격을 매기고 판매자, 생산자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이 서로 엮였다.


대학생협과의 싸움이 있은 지 십년, 기어이 이화여대는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를 만들어 외부기업들을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화여대 생협은 물러서지 않고 조합원들이 조리법을 제안하고 그것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기획과 생산, 소비의 과정을 잇는 생활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외부자본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를 조합원의 참여확대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 고민꺼리를 준다).


지금 이화여대만이 아니라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생협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운동은 1985년 학원민주화운동의 일부인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시작되었다. 1987년 서울지역의 학생복지위원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모임을 가졌고, 1988년에 서울지역학생복지위원회연합(서복련)이 결성되었다. 그 해 10월, 최초의 대학생협인 서강대학교소비자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뒤 이화여대, 조선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에서 대학생협이 만들어졌고, ‘한솥밥을 먹는 우리’라는 대학노트 판매, 자판기용 종이컵 공동제작, 커피재료 공동구매, 우리옷 공동구매, 음식물찌꺼기 사료화, 분리수거운동 등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생협연합회 산하의 대학생협특별위원회(
http://www.univcoop.or.kr/)에 따르면, 대학구성원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비영리공익법인인 대학생협은 국공립대학교 9곳, 사립대학교 13곳이다. 각 학교마다 조합원의 수는 다르지만 대략 1천명에서 3천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협은 대학생협설명회, 대학생 생협학교 등의 ‘교육사업’, 비조합원과 조합원들에게 대학생협의 활동을 알리는 ‘홍보사업’, 공동교섭, 공동구매, 공동제작 등 조합원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경제지원사업’, 일본대학생협과의 교류를 비롯한 ‘국제교류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대학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경험을 준다.



상생의 길을 포기한 사립대학들


그러나 이런 대학생협의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한국의 사학재단들은 대학 내의 공간을 기업들에게 파는 ‘장사’에 정신이 팔려 있다. 따지고 보면 자기들이 직접 지은 건물도 아니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모으거나 기업에게 지원을 받은 것인데도 마치 재단 사유물인양 공간을 판매하고 있다.


세종대학교가 대표적이다. 2009년 12월 세종대학교 대학본부는 학교 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고 세종대 생협에 통보했다. 그러자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내단체들이 반대했고 학생들의 반대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이런 반대에 전혀 대응을 않다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서야 공식입장을 밝혔고, 세종대 생협만이 아니라 외부단체와 지역단체들이 잇달아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자 결국 신축학생회관의 입찰만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사건에서 세종대학측이 내세운 입장이다. 대학본부는 생협운영이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수익사업을 하면서도 장학금 등의 학교복지기금을 내지 않기에 공개입찰을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생협의 목적이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학생들의 생활을 돕고 것이고 생협의 활동 자체가 학생들의 복지와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측의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다. 대학측의 얘기를 한번 그대로 옮겨 보자. “생협이 공개경쟁입찰에서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운영의 건실함을 입증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대학본부는 ‘구성원들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생협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9년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는 생협도 어느 정도 경쟁의 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애착심만으로 지켜줄 단계는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종대는 대학을 운영하는 원리가 경쟁이고 캠퍼스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공간이라는 비밀을 스스로 폭로했다.


또 다른 한편의 코미디는 총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서한이다. 세종대 문제가 언론을 타자 총장은 학교발전을 핑계로 다양한 건설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한 뒤에 다음과 같은 얘기를 덧붙였다. “이 모든 노력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의 진실된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몇몇 학생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허위사실들을 유포하여 순수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대학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졸업하고 소위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아갈지 모르지만, 오로지 실력을 쌓고 학업에 매진해 온 학생들의 이미지를 ‘데모나 하는 대학 졸업생’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불순한 학생들이 계속 대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학생들을 선동한다면 결국, 대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등록금 동결 및 50억 원의 추가 장학금 마련의 길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빨갱이 논리가 21세기 대학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대학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국의 대학이 이 모양인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깔끔하게 정리된 건 아니지만 일단 세종대학의 외주방안은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론이 좀 가라앉으면 대학측은 다시 외주방안을 추진하리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경쟁의 장, 이윤의 장으로 변한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청년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청년귀농 프로젝트 ‘율면은 대학’, 20대 데뷔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이 운영하는 ‘마포는 대학’, 몸으로 살고 삶으로 만나는 청년모임인 ‘만행’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험들은 대학이라는 장을 벗어나 있다. 대학 내에서 대학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까? 아무래도 대학 내에서 변화를 꿈꾸려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언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협이 대학의 변화를 뒷받침할 든든한 버팀목이긴 하지만 생협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이 자기 역량을 되찾고 강화시켜야 하는데, 생협이라는 생활의 장이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성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생활을 통해 협동하는 대학생협의 문턱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협은 학생운동만이 아니라 녹색가게나 재활용 등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도 끌어안을 수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생협에 참여하는 이유는 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생협운동의 취지에 공감해서, 생협운동 열심히 하니까 등으로 다양하다. 학생들은 식당모니터링, 식당페스티벌, 생태문화제, 녹색가게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유기농활, 생협학교, 한일조합원 교류같은 교육을 통해 점점 역량을 쌓는다. 수습위원, 학생위원, 학생이사로 성장하면서 생활과 고민의 폭이 넓어진다.


물론 이런 과정이 쉽고 수월하지만은 않다. 대학생들에 비해 다른 구성원들의 인식은 떨어진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생협을 식당과 매점 등을 운영하는 복지기구로 생각하고 협동조합과 소비운동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도 참여율이 떨어지거나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졸업을 하기 때문에 활동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들이 필요하다.



대학을 새로 만들 힘은 어디에 있을까?


위기는 곧 기회라고, 이번 세종대 생협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다른 대학생협만이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 사태를 보며 생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이지만 이런 관계망의 확장은 새로운 연대를 준비할 수 있다.


아무런 일 없이 공허하게 연대를 얘기할 수는 없고 함께 할 일을 찾으면 좋다. 매점이나 식당, 서점만이 아니라 대학생협이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망을 만들면 좋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거문제이다. 대학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하늘에 별따기인데 그나마 들어가도 기업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많아 비싸고 운영이 까다롭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 앞은 온통 원룸이다. 하숙집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월세도 만만치 않다. 보증금과 월세에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혼자 방을 얻어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2010년 1월 연세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이 적은 돈으로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신촌에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짓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의 다른 대학들과 연계해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뉴타운재건축 사업에 열중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함께 모여 살면 조금이라도 돈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돈을 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실험도 가능하다. 한국에도 ‘빈집’이라는 주거공동체가 있지만 대학가 옆에서는 그런 운동이 활발하지 않다.


외국에는 그런 예가 제법 많은 듯하다. 예를 들어 캐나다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주거공동체 Co-op sur Généreux(
http://sites.google.com/site/coopsurgenereux2/en)를 보자. 2003년도에 맥길 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이 주거공동체는 13명이 사는 이층 건물이다. 대형쓰레기통 뒤지기(dumpster diving)를 하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구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거리에서 나누어주는 ‘폭탄이 아니라 음식을(Food not Bombs)’이라는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생활에 대해 토론하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 주거공동체에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까다롭다. 즉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적고 지역공동체와의 연계가 쉽게 이루어지진 않지만 새로운 실험이라 볼 수 있다.


미국에도 여러 개의 주거협동조합들이 있다. 텍사스 대학교의 학생들이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하는 컬리지하우스(
http://www.collegehouses.coop/)와 협동조합간 클럽(http://iccaustin.coop/index/)도 그런 곳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주택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여성 아나키스트 클레이르(Voltairine de Cleyre)의 이름을 본따 1998년에 만들어진 클레이르 공동체(
http://decleyre.org/coop/index)도 있다. 클레이르 공동체는 채식을 하고 마을극장을 운영하며 풀뿌리운동의 싹을 내리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대학생협의 활동이 활발하고 의류, 주거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에게 대학생협에 가입하라고 충고를 할 만큼 대학생협은 대학생활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대학생협이 운영하는 매점, 식당, 서점 등의 사업과 주거공동체를 연계하면 말 그대로 먹고 생활하고 사는 생활 전체가 협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꼭 새로운 집을 지을 필요는 없고 지역의 풀뿌리운동단체들과 연계하면 의외로 좋은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학의 안과 밖에 작은 꼬뮨들이 생겨서 대학을 바꿀 힘을 조금씩 만들지 않을까?


물론 대학생협의 힘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지는 않다. 관심을 두지 않아 보이지 않던 더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생활을 통해 관계망을 넓히면 단단한 연대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대학 내에서 청소용역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고려대의 ‘불철주야(불완전노동 철폐를 주도할꺼야)’와 공공노조 고려대분회의 연대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루는 ’살맛‘이라는 학생모임과 청소용역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부당한 인사조치나 계약해지를 막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도 용역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을 고민하는 학생모임인 ‘신바람’이 만들어졌다. 동덕여대, 성신여대에서도 학생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냈고, 청주대,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도 학교가 사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다양한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이런 이슈들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단 3일 만에 고려대에서는 1만 명의 학생이, 성신여대에서는 6,500명이, 덕성여대에서는 3,500명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했다. 가까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의 문제, 자신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따지고 보면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청소용역 노동자만이 아니다. 주차와 캠퍼스를 관리하는 일도 용역노동자들의 몫이고, 대학교육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시간강사들도 비정규직이다. 교수라는 허울만 좋은 꿈을 포기하고 자신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면 시간강사들은 새로운 관계에 눈을 뜰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관계망들은 교수들의 권위적인 문화도 바꾸고 대학당국의 일방적인 결정도 막을 힘을 만들 수 있다.


아무런 단계 없이 이런 힘이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서로가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 부대끼며 조금씩 다가서야 한다. 서로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적어서 나눠보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그 대가를 화폐로 치르지 말고 지역통화를 사용하면 어떨까. 서로의 열정과 지식, 요령, 공간,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흥겨운 축제를 열면 어떨까.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면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대학도 공동체로 변할 수 있다. 학벌로 얼룩진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배움(大學)의 가능성이 지금 대학의 위기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듯이.



참고자료


박주희․이기춘, “대학생활협동조합의 학생참여에 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 《소비자학연구》제 16권 제 4호(2005).

대학생협특별위원회, 『대학생협 20년사』(발간예정)

대학생협특별위원회 학생연합회의, “2010 대학생협 학생워크샵” 자료집(2010).

이미옥, “짐 아이프의 지역사회개발론에 비추어 본 대학생협”,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기말페이퍼(2009).

사막에 사는 사람, “5월 11일의 콜로키움과 몬트리올의 Co-op sur Genereux”,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http://www.jihaeng.net).

김종진, “연세대 시설관리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 사례”, 청년유니온 카페(http://cafe.daum.net/alabor)

고재열, “‘밥과 장미’ 위한 할머니들의 투쟁”, 《시사IN》 2010년 1월 16일자.

 

선거로 제한된 정치적 상상력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20년을 맞이한다. 자치단체장선거가 1995년에 부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자치제도는 16년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실험을 거쳐 왔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사춘기를 지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갈 단계인데, 아직도 우리의 자치는 너무나 허약하다.


올해의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들처럼 ‘그냥 선거’일 뿐이지 정치의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말로만 ‘자치’를 떠들 뿐 자치의 실제 주인이어야 할 주민들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5+4’라는 선거연합만 논의되고 있지 주민들이 자치의 주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함께 지역의 정책과 비전을 세우며 정치인의 권력독점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은 선거가 중요하고 반MB,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단결하자고 말하지만 전라도로 가면 그 구호는 반민주당으로 바뀐다. 그리고 당비를 내는 민주당 당원의 비율이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8년 동안 집권했지만 자치의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시민단체들이 활용해온 시민후보 전술이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할까? 이런 물음에 충분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집권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활동이 시작되고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선거에 좀 집중해 보자. 200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정당들은 정치개혁을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자고 합의했다. 지구당은 정당의 중요한 기관인데 왜 개혁을 위해 폐지되었을까? 보수정당들은 지구당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공천비리가 자주 불거지자 지구당을 폐지했고,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런 결정에 반발했지만 실정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구당이 폐지되고 시․도당만 유지되면서 각 지역의 당원조직들은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라는 애매한 기구들로 전환되었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정당은 공직자를 선출하고 다양한 지역의 이슈를 전국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고 이슈를 제기하는 지구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구당은 지역의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치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도 맡는다. 따라서 지구당 없는 정당조직을 생각하기 어렵고,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당연히 평당원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지구당을 중심으로 당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보수정당의 지구당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모두 없앤다면 우리 정치에서 남겨놓을 것은 없다. 오히려 지구당이 없다보니 지역의 억울함과 분노가 공식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중앙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중요한 결정들은 중앙에서 내려지고 사업들도 중앙의 이슈를 따른다. 중앙언론에서 보도되는 중앙의 이슈에는 민감하지만 당원들조차도 자기 마을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진보정당들조차 분권화된 정당구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장의 집권전략이 자치를 위한 정당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정당과 친하게 지내보려 해도 좀처럼 거리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당법은 지역정당의 출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현행 정당법은 로컬파티(local party)의 출현을 막고 있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을 창당하려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에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시․도당을 5개 이상 둬야 한다. 그래서 2006년 지방선거 때 시도된 충청북도 옥천의 풀뿌리옥천당은 정당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야 했다. 이런 정당법 하에서는 자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정당을 끼지 않고 시민이 선거에 참여하면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한다. 선거기호에서 뒤로 밀릴 뿐 아니라 선거운동도 나중에 시작해야 한다. 또 선거에 참여하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돈을 혼자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후보자로 등록을 하려면 시도지사의 경우 5천만원, 자치구청장이나 시장선거는 1천만원, 광역의원 선거는 300만원, 기초의원 선거는 2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누구나 선거에 후보자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는 뻥이고 제법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뜻을 품은 사람들을 지원할 후원회가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정치자금법 제 6조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특별․광역시장, 시도지사에게만 정치인 후원회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법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뜻 있는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한다. 왜 아름다움을 가로막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이 선거과정을 혼탁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시민의 정치참여는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되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트위터만이 아니라 UCC나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은 정치적인 생각을 자유로이 나누며 토론하고 나쁜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도 교환해야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민들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홍길동처럼 집을 나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밖에.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 106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인이 집집마다 돈이나 물건을 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과 집집마다 들려서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정책을 알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뽀샵으로 손질한 얼굴 말고 실제 얼굴을 알아야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당당하게 유권자의 요구를 말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기초의원의 경우 그렇게 살갑게 만나야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진정 국민의 머슴이라면 집집마다 돌면서 품을 팔아야 옳으니 무조건 금지할 일이 아니다.


정치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공직선거법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제 60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와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선거운동조차 가로막는 것은 이주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정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어릴 적부터 경험해야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데 지금 법은 그 싹을 자르고 있다(최소한 교육감 선거에서라도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옳다). 풀뿌리의 우군은 이런 사람들인데 참여를 금지당하니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정책을 결정할 사람을 뽑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민중을 위한 정치만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의 정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고 그것의 실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법이 일일이 나서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권리를 막으니 이를 어쩌나.



제도를 넘어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역의 시민들이,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어야 자치는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삶의 기반이 너무 부실하다.


우리는 옛날보다 발전했다고 여기지만 적어도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살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정치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9, 20세기에 이 땅에서 수많은 민란들과 저항들이 나타났던 건 자존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정치문화, 자치와 자급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치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가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문화를 강제로 짓밟았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다.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고, 그 문화를 명령과 복종의 수동적인 문화로 대체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치문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문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죽어버린 법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다. 그런 행동들로 자극을 받고 새롭게 해석되면서 법은 조금씩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꿈이다. 꿈은 완성된 법전이 아니라 몸부림이고 꿈틀거림이다. 조그만 꿈틀거림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다. 중앙의 정치바람보다 자기 마을의 꿈틀거림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처럼 이명박 정부는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이 모든 걸 다 가지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검사가 온갖 접대를 요구하는 건 나쁜 놈들 능력이고, 이건희가 국민들의 정직성을 탓하는 건 강자의 도덕이다.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고통에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 자신을 정당화한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난다. 이 무게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며 자신을 위안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고 있다.


조세희 선생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비밀을 고백했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유기농지가 강을 죽이니까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터전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풀뿌리정치를 말하는 건 다시 떳떳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풀뿌리정치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풀뿌리정치는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텨보자는,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그래서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 풀뿌리정치는 변화의 과정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목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풀뿌리정치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다. 사람들의 자질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처참한 현장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치는 4년, 5년마다 한번 찾아오는 투표로 제한되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산업역군에서 찾고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지 못했다. 회의하자고 하면 빨갱이, 말 많으면 빨갱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얘기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적어도 정신의 면에서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교육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또 다른 식민지를 따르고 있다. 무릎 꿇고 기어서라도 남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민지의 본능이 강해질수록 더불어 살려는 의지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들어설 자리는 줄어든다.


이렇게 억눌려 사니 냉소할 수밖에 없다. 자기 힘이 약하니 강자들에게 지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냉소의 효과는 두 가지인데, 강자에게 맞서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약자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쓰게 만든다. 내가 나서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설 때 격려하고 도와줘야 할 텐데 오히려 그런 사람을 시기하고 왕따를 시킨다.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려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보면 약자들도 체제를 지키는 부속품이 되어버린다.


정신적인 면과 더불어 참여를 가로막는 실제 장벽도 높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가부장적인 지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들이 풀뿌리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정치의 과제는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풀고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두 가지 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을 풀려면 정치의 즐거움을 직접 느껴보고 명예로운 삶을 맛봐야 한다.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자기 몫을 걸어봐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풀뿌리정치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한다.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한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누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뜨거운 감자’이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나 교육감을 당선시키고 괜찮은 지방의원이나 교육의원을 많이 당선시킨다면 풀뿌리정치를 가로막는 장벽들은 무너질 것이다. 괜찮은 후보들이 제법 그럴싸한 지역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는 사람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냉소적인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잘난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이고 친구보다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선거는 나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와 더불어 살 사람을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당선을 목표로 삼는 순간 사소한 차이도 비난의 이유가 되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야만 조금 더 당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니 선거에 들어가면 친구도 적이 되고 득표로 연결되지 않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은 무시된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꾸는 활동이 필요하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니 관심을 끊어라가 아니라 선거가 중요한 만큼 우리 일상의 정치도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정치를 좁게 보면 풀뿌리정치가 살아나기 어렵다. 아무리 권력을 바꾸더라도 그런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한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고, 풀뿌리정치 없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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