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을 쓰고 난 뒤, 속해 있는 단체의 블로그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다. 줄여서 표현하면, 내가 하는 얘기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실제 현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절반의 진실이라 생각한다. 지난번 칼럼은 진보정당이 지역이나 지방자치를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글이기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 얘기가 궁금하신 분은 http://blog.grasslog.net/archive/709을 방문해보시길). 그래서 오늘은 좀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지방선거에 대비하는 선거연합 논의가 한창이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선거인지라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그 논의에 집중하다보면 깃발만 꽂으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좀 환기시키는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정책정당으로 활동하려면 정책을 세울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들이 수집되어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에 가면 주로 성명․논평, 활동보고, 운영위, 대의원대회 소식만 올라와 있지 지역에 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내친 김에 민주노동당의 시․도당 홈페이지를 쭉 둘러봤다. 그런데 서울시당, 충남도당에만 약간의 지역자료가 있고 다른 시도당의 경우 자료실이라는 이름이 좀 무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지방정부의 원자료를 올려놓은 수준이지 그 자료를 민주노동당의 관점에서 가공하고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의 각 지역후보들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선거에 임할 생각인가? 물론 민주노동당이 히트시킨 몇 가지 공약들이 있지만 그 공약들을 지역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그 지역의 실정에 맞게 공약들을 다시 가공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려면 그 지역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당 내에서 지역별로 정책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지 제법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연구소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지역정보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만 과거와 달리 기본적인 자료들은 지방정부의 홈페이지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시정백서와 각종 통계자료, 예산서 등을 PDF나 엑셀파일로 다운받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면 민원을 넣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그것을 직접 구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시의 2010년 본예산서를 그냥 쓱 훑어만 봐도 많은 문제점이 눈에 띤다. 일단 사회단체보조금이 14억이나 잡혀 있는데, 대부분이 관변단체의 운영비와 사업비로 지출되고 있다. 1조 1천억원이 넘는 예산에서 수송 및 교통부문 예산이 약 2,772억원으로 25%를 차지한다. 이 액수는 사회복지예산보다 무려 300억원이나 많다. 또한 교육체육과 시예산이 553억원인데 그 중 304억원이 엘리트 체육 및 생활체육 육성에 사용된다. 지역이슈가 별 것 있나, 이런 것들이 바로 이슈이다.


몇 년치 예산서와 시정백서, 도시기본계획, 복지계획 등을 늘어놓고 그 관계를 추적하다보면 지역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들을 주민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이렇게 쓰일 돈이 사실은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보자.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이 내거는 구호들을 추상적으로만 느낄까?


우리가 집권하면 이렇게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려면 참여의지를 자극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판을 깔아야 한다. 지역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혼자 하기 힘들다면 당이 가진 역량을 지역으로 내려 보내라.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사람을 보내 지역의 정보들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라. 거창하게 연구소를 세우려하니 차일피일 미뤄진다.


이제 진보정당에게는 감동을 주는 리더십만이 아니라 수치로 얘기하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늦다.


풀뿌리자치연구호 이음의 출판기념회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요즘 머릿 속을 떠도는 이야기들을 대충 정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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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두 쓴 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나눠 쓴 책에 대해 제가 발제라는 걸 하려니 좀 어색하기도 하네요. 아마도 전체 기획을 한 것과 다른 분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게 떠넘긴 듯한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미 제가 발제를 한다고 다 나갔으니 몇 자 적어라도 가야 할 듯해서 글을 끄적거려 봅니다.

예전에 이음이 냈던 책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가 지방자치제도와 더불어 풀뿌리운동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는 조금 더 정치적인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올 6월의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탓도 있지만 풀뿌리의 실험들이 공동체를 의미있게 바꾸려면 정치영역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것도 있지만 뭘 해도 참 안 바뀔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단지 정치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에게 함께 정치를 하자고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저는 두 가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변화를 거쳐 왔고 민주화 속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냉소적일까?

그와 관련해 저는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 일반에 대해 수동적인 이유는 능동적이려 할 때마다 끊임없이 억눌려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제 관심은 지난 100년 동안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노력이 어떻게 좌절되었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남겼을까라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는 사람들의 저항의지를 제거하기 위해 식민지 시절부터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런 체계가 우리 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교육이겠지요. 새로운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교육이 식민지 교육의 방식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해괴한 논리로 경쟁의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강해질수록 더불어 살려는 의지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은 우리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TV 개그코너의 표현을 빌린다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는 정치의 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정도면 되었지라는 잘못된 자족감(특히 정치엘리트들의!!)도 그런 수동성에 한 몫을 하겠지요.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지나치다면 지금껏 많은 것이 변했다라는 말도 지나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도가 변한 건 맞지만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제도가 열려진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지고 있습니다. 소위 민주정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사회, 경제, 문화적 지표를 따져보면 오히려 우리 사회는 후퇴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의 탓이라고 꼭 집어 얘기하긴 어렵지만 그 탓이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지요.

또한 노력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의 근원은 자기 자신의 힘이 매우 약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바꿔보려 할텐데 내가 약하다고 여기니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약하니 저 더럽고 부패한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사람들의 자신감과 자긍심이 짓밟히고 너덜너덜해져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는 무의미한 제도가 될 뿐 아니라 위험한 제도가 되기도 합니다.

위험한 제도가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냉소가 냉소로만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못 나서면 다른 사람이 나설 때 격려하고 북돋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나서는 사람을 시기하고 경멸하고 왕따를 시키는 거지요. 어느 순간 자기 자신도 이 시스템을 지키는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버린 거지요.

최근 옆 나라 일본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쏟자는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삶이 이 모양이라는 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쿄 히비야 공원에 텐트를 친 젊은이들은 구걸을 받지 않고 일하면서 당당하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조직화에 열심인 유아사 마코토(湯浅誠)는 『빈곤에 맞서다』(검둥소, 2009)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와 ‘어차피 헛일이다’ 사이를 연결하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활동이 사회 전체에 퍼지면 정치도 빈곤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더욱더 관심을 갖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채 돌아보지 않는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싶다. 빈곤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마코토만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하지메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하지메는 일상적인 삶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얘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따분한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아이고,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3년만 다니고 그만둬야지, 그때는 자유롭게 살아가야지”하는 놈치고 진짜 회사를 그만 두고 자유롭게 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안정감 위주로 무리도 안 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면 해방감 있는 세상을 맛볼 수 없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신감과 자긍심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떨까요? 최근 지방선거와 관련된 논의들을 봐도 참으로 한심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소위 야권이 단합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합공천을 하면 최소한 1석이라도 건질 수 있겠지, 연합논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니 일단 모든 지역에서 다 공천을 내놓고 협상을 해야지, 풀뿌리정치와는 그리 상관없는 생각들이 여러 매체들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거 자체를 거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거만을 바라보면 정치라는 영역이 아주 좁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에게 정치가 선거밖에 없습니까? 정당이 있고 시민단체가 있고 여러 가지 자원활동이 있고 시민들과 함께 일을 모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있습니다.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에 실린 많은 사례와 내용들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니 관심을 끊어라가 아니라 선거가 중요한 만큼 우리 일상의 정치화, 페미니스트들이 얘기하듯이 개인적인 것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상 속에서 권력의 작용을 볼 뿐 아니라 그 권력을 변형시키는 사람들의 자발성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가 정치를 그렇게 자꾸 좁게만 해석하고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을 바꾸더라도 그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제가 최근에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두레와 계같은 공동체 조직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걸 저는 18세기 정도로 봅니다. 농업기술도 발달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잉여도 생기고 상업도 활성화되는 거지요. 이런 사회의 발전이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든든하게 하고 공동체 조직은 그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18, 19세기에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던 건 아마도 이런 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저항을 꿈꾸기만 했다면 이제는 함께 저항할 사람들과 조직이 있는 거지요.

더구나 이런 조직들은 ‘회의’라는 걸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따로 정치시간을 빼야 하지만 이런 조직들에서는 일상이 곧 정치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을 겁니다. 즉 정치문화가 형성된 거지요. 그 힘이 폭발한 게 동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믿음과 종교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20세기는 바로 이런 믿음과 자발성, 공동체를 짓밟고 해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고 군사독재가 그러했습니다. 단지 파괴할 뿐 아니라 그것을 왜곡하고 대체하려 했지요. 일종의 ‘가짜 공동체’를 만들어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관변단체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경쟁의 법칙을 강요했습니다. 이런 경쟁 속에서 정치문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정치문화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과정이 없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장의 문화가 사라졌다면 다시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프레이리나 알린스키, 함석헌, 장일순같은 분들이 왜 그토록 교육이라는 걸 강조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서 배움이라는 걸 강조했을까, 저는 그 이유를 바로 이런 점에서 찾고 싶습니다.

공동체가 실체로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상적인 교육의 틀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상을 보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며 단단한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거짓 공동체가 아닌 진짜 공동체가 가능하겠지요. 사람 일에 시간을 쏟지 못한다면 저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풀뿌리정치가 실현되려면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보는 관점,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삶을 바꿔야 풀뿌리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안도 많고 할 일도 많은 시대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때론 격하게 부딪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끌려가는 시대정신이 아니라 내가 끌고가는 시대정신을 만들려면 우리 스스로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수다 떨며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지요. 뭘 바라셨습니까... ^^

얼마전 수원행동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나눴던 내용이다.
선거에 대해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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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객민주주의 넘어서기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학교나 직장, 동네 등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의 모든 곳들이 민주주의와는 거의 상관없는 곳들이다. 경험한 적이 없으니 민주주의는 멀게만 느껴지고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나마 우리가 민주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곳은 선거 뿐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대표를 선택할 수 있고 대표가 헌신적으로 그들의 뜻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근대국가는 대중의 정치를 ‘선거로’ 제한했고 정치를 의회와 행정부의 전유물로 만들어 왔다. 근대는 정치인이 정책을 생산하고 유권자가 그 정책을 구매하는 시장으로 정치를 변질시켜 왔다. 우리는 관객처럼 물끄러미 그네들의 정치판을 바라보기만 한다.

사실 관객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의미는 주인됨을 뜻하는데 관객은 지나가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과 관객이 서로 말을 건내며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힐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관객의 주인됨이 가능할 때나 가능한 얘기이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관객을 배제할 뿐 아니라 배신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드러내지 못할 수 있고(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은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선호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거나 드러낼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 또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이를테면, 대중들은 조중동과 보수화된 언론들이 쏟아내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선전, 조작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선거는 대중이 직접 정치하는 걸 막는 장애물일 뿐이고 언제나 대중을 배반한다. 그래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Jean J. Rousseau)는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 국민조차 선거기간에만 자유로울 뿐 나머지 기간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민주적이라 여기는 비밀투표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원리가 아니라 사실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원리로 변질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을 뽑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대표는 유권자에게 직접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일단 뽑히고 나면 소환되지 않는 이상 대표는 대중을 배신할 수 있다(국민소환제조차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 유권자는 국회의원을 통제하려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처럼 대의 민주주의가 유권자와 대표의 관계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선거라는 형식은 대중이 자신의 주인공을 승인하는 과정으로 변질되기 쉽다.

2010년 지방선거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4대강사업, 세종시 등 중앙정치의 이슈들이 지역의 이슈들을 압도할 것이고, 예전 선거를 보면 지역별로 각종 개발사업이나 녹색성장산업들이 패키지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도 다가온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여전히 풀뿌리보수주의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단일후보를 내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반MB연합후보라는 틀이 얼마나 가벼운가? 이명박을 싫어하면 모두다 내 편일까? 단일후보를 만들면 시민들은 무조건 이를 지지해야 할까? 중앙에서 모여 패키지를 합의를 보는 건 시민을 관객의 자리에 앉혀 놓는 대의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6월의 선거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올 한 해에 정치무대 자체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더 이상 관객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내가 직접 정치무대에 뛰어들면 어떨까? 시민들이 함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새로운 정치실험을 위해 과거의 의미들, 예를 들어, 한일합방 100주년, 4월민중항쟁 50주년, 5월 광주항쟁 30주년같은 사건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2. 선거 때 무얼 할까?


(1)첫 번째 방법, 그냥 투표만 할까?

마치 투표를 하는 게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글쎄올시다. 만일 투표를 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면 내 마음은 편할까? 그 놈이 그 놈같은 선거판에서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스트레스이다.

정말 끌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무효표를 만들면 어떨까? 그냥 무효표만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무효표를 만들려면 자신이 무효표를 찍는 이유를 널리 알리고 선거 대신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외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인터넷에 무효표 사이트를 만들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2)두 번째 방법, 선거운동을 좀 도와줄까?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반MB를 내세운 후보단일화가 한창이다. 지방선거에서 반MB연대가 과연 올바른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명박이 싫으니 다른 정당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싶을 수 있다. 이왕 선거운동을 할 거면 성별, 직업별, 계급별 비례에 맞는 사람을 밀어주자. 그리고 똑같은 후보라면 여성을, 농민이나 노동자계급 출신을 밀어주자. 그래야 배신의 확률이 낮아진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할 생각이라면 미리 선거법을 좀 공부해 두는 게 좋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공무원도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고, 향토예비군 간부,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 새마을,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의 임원 및 대표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들은 “교육 기타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거나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선거권자의 지지도를 조사하거나 이를 발표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소속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법령이 정하는 외의 금품 기타 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중 즉시 공사를 진행하지 아니할 사업의 기공식을 거행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정상적 업무외의 출장을 하는 행위”, “선거기간중 휴가기간에 그 업무와 관련된 기관이나 시설을 방문하는 행위” 등이 금지되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뭘까? 이런 사람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하자. 이런 사람들이 암암리에 선거운동을 하며 토호들의 당선을 도우니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자. 그리고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하거나, 계열화나 하도급 등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조직·기업체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면 신고하자.

또한 후보자와 그 배우자(배우자 대신 후보자가 그의 직계존비속 중에서 신고한 1인을 포함),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활동보조인 및 회계책임자를 제외하면 어깨띠나 옷, 표찰, 수기, 마스코트 등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자. 그리고 “누구든지 숫자ㆍ부호 또는 문자를 조합하여 전화번호ㆍ전자우편주소 등 수신자의 연락처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프로그램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정보를 전송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 있다. 자기 연락처나 메일주소를 밝히지 않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면 신고하자.

선거법이 좋은 건 아니다. 개떡같지만 국민이 아닌 자나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왜 참여하면 안 되는 걸까?


(3)세 번째 방법, 정치계약을 맺자!

선거만 되면 서민후보, 무슨 무슨 후보가 난립한다. 열심히 일하겠다니 기특하지만 그 말을 어찌 믿고 4년 동안 책임을 맡길 수 있으랴. 그러니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와 정확하게 계약을 맺자. 즉 후보자와 ‘정치계약’을 맺자! 그냥 당선을 위해 뛰어주는 게 아니라 ‘정치계약’을 맺자. 당선되고 난 뒤에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면서 민심을 받들었다고 떠들지 못하도록 일본의 ‘대리인운동’처럼 대리인으로 일하게 하자.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것보다 선출되고 난 뒤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 “의회에 보낸 사람을 의회 바깥에서 지원을 해주는 ‘공육(共育, 상호교육을 통한 상호성장) 시스템’”을 강조한다. ‘대리인 운동’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리인만큼 중요한 것이 상호성장이라고 본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든 그 속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것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 제도권 밖의 운동이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고민에 활력을 제공하는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체계가 있어야 정치세력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그리고 후보자들한테만 요구하지 말고 주민들에게도 똑바로 감시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책임서명운동을 하자.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뽑은 책임을 지고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서명운동. 선거감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가 스스로 결의하고 동네일에 참여하겠다는 ‘공정선거운동’을 하자.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위한 서명이나 날인이 아니라면 서명을 받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진보정당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국회에 진출한 자원과 지역을 연결하며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맡겠다는, 즉 아젠다 형성과 정책연관성을 살리고 법률과 조례가 결합하는 중간매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자. 그리고 그 약속을 증명하는 의미로 정당공천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단체가 함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지금 다른 지역에서는 지금 유권자연대, 마포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같은 실험들이 진행중이다. 그런 사례들을 참조해도 좋다.

- 관악유권자연대는 지역정치에서 다룰 정책을 만들고 주민후보를 발굴하고 당선시키는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후보를 공개모집하고 후보검증절차를 거쳐 주민후보를 선정할 예정이고, 주민후보들은 관악유권자연대가 지향하는 가치들, 즉 인권, 복지, 생태, 풀뿌리민주주의, 연대와 협동의 가치에 동의해야 한다. 관악유권자연대는 선거 이후에도 행정과 의정을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cafe.daum.net/2010gwanak)

- ‘마포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약칭 마포풀넷)는 선출절차에 따라 정해진 주민후보에게 전면적인 지원(선거자금, 선거인력, 선거정책)을 해서 후보 개인이 돈을 쓰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주민후보’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은 마포풀넷과 후보자와 주민 사이의 서로 지켜야 할 구체적 약속이 담긴 소정의 ‘협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주민후보의 구체적 성격(무소속 여부 등)은 운영위원회에서 안을 제시하고, 회원 투표로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http://community.microtop10.com/archive/13)


(4) 네 번째 방법, 어차피 낙선할 거라면, 하고 싶은 말 다 하자!

만일 후보자로 선거에 나설 생각인데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그냥 길목 좋은 곳에서 하루 종일 떠들자. 뻔한 얘기 말고 진솔한 삶의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괜히 옆의 측근 말만 듣고 당선될 수 있을 거란 부질없는 희망을 버리자. 혹시 아나? 진솔한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당선될 수 있을지. 아니면 적어도 15/100 이상의 득표를 얻어 기탁금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나.


(5) 다섯 번째 방법, 생활정치보고서를 만들자!

보통은 선거운동을 하며 온 힘을 다 빼고 선거가 끝나면 아노미 상태가 된다.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아무런 평가 없이 그냥 지나가고 4년이 지나면 또 다시 선거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평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가는 꼭 니가 잘 했니, 내가 잘 했니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다. 선거에 임하기 전에 미리 활동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거에서의 목표는 당선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정책, 청소년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목표를 둔다면 당선과 무관하게 그 의제들을 후보자나 당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에 실천하는가를 계속 따져야 한다. 그리고 선거운동도 그런 의제들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순환되도록 해야 하고, 단순히 선거에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를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세부적인 과제를 정하고 그 과제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고 그런 활동이 실제로 그런 과제를 실현하는데 잘 맞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목표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그 목표에 맞춰 세부적인 행동계획을 짜고, 그 행동계획을 실천한 뒤에 각각의 계획들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어느 지역을 가든 선거에 뛰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있지만 선거과정을 기록하고 그것을 평가한 자료들은 보기 어렵다. ‘선수’들은 있는데, ‘매뉴얼’은 없다. ‘생활정치보고서’라는 매뉴얼을 작성하고 선거 때마다 업그레이드한다면 다음 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6) 여섯 번째 방법,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자!

현재의 선거는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이 어떠하건 그것이 표로 연결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다. 당선만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선거는 친구보다 적을 만드는 과정이고 그나마 관계가 있던 사람들마저도 하나씩 그 관계가 분명해지며 정리되는 과정이다. 그러다보니 선거는 승리하든 지든 지역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서로 치유할 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있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은 없나?

어떻게 하면 지역정치를 통해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어찌보면 방법은 간단할 수 있다. 친구가 되려면 만나야 하고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지역주민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는 문제는 무엇일까? 동네를 한바퀴 돌다보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꺼리들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얘깃거리가 많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떤 얘기에 관심을 가질까?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열 받게 만드는 얘기가 아무래도 가장 효과를 거두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에서 사람들이 가장 열 받아 하는 문제는 뭘까? 거기서 시작해 사람들을 만나고 꼬시고 친구가 되면 지역일을 풀어 가는데 좋다.


(7) 일곱 번째 방법, 지금부터 지역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하자!

지역의 미래계획을 짜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이 아니라 바로 주민이어야 한다. 그냥 주민이라고 하면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 누가 사는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우리 마을의 독특한 문화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이며 숨겨진 자원을 찾아야 한다.

10년 뒤의 우리 마을을 생각해 보자. 나는 이 마을에 살고 있을까? 내가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있다면 왜일까? 단지 전세나 월세 때문에?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서? 한국의 수도권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얘기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다보면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한숨이 나올 때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나누며 서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들과 더불어 지역발전계획을 짜야 한다.


(8) 여덟 번째 방법,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뿌옇게 보이던 지역토호들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하는지, 어떤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기록하고 지역토호 지도를 그리자. 적을 알면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활동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를 꼼꼼히 기록하는 스파이가 되자.

소위 진보단체나 정당이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지역토호들이 누굴 만나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거의 모른다. 선거를 통해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자.^^

선거가 끝난 뒤에 이 토호지도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분명히 토호들이 사는 지역에 여러 가지 개발사업들이나 수상한 정책들이 시행될 것이다. 그때 이 토호지도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3. 모두가 행복한 정치는 불가능할까?


(9) 아홉 번째 방법,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자!

그동안 여러 선거를 거쳤는데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행복했을까? 그나마 당선되면 노련한 지역 활동가가 사라지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지역정치인이 생기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지방의회에서 소수파로서 그다지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고 개인적인 야심에 따라 활동영역을 광역, 국회의원 등으로 넓히다보니 정작 자기 기반이 약해진다. 결국 당선된 사람은 지역 내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단체 후보를 당선시킨 단체는 행복했을까? 출마 후 지역단체들의 활동영역과 지역정치인의 활동영역이 괴리되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하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체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도움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가지고, 정치인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소수파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가진다. 결국 당선자와 단체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심지어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단체는 행복했을까?

부패한 정치구조를 개혁할 뿐 아니라 권력을 주민들의 손에 돌려주기 위해 정치권으로 투신하고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인들과 연대하는 것, 분명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치세력화는 더욱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실현된 적이 있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 걸까?


(10) 열 번째 방법, 내가 행복하기 위해 마을이 행복해야 한다!

과거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임파워먼트(개인적 임파워먼트와 조직적 임파워먼트)를 강조했다. 왜 그럴까? 선거에 임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는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정치화되고 정치인들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저런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실현된다고 본다. 정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주민운동에 요구된다.

좋건 나쁘건 여러 가지 주민참여제도들이 우리 사회에 도입되어 있다. 정보공개청구,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발의, 참여예산 등 다양한 방법의 활용해서 정치적 기회구조를 스스로 만들자. 아이 한 명이 자라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과정을 만들어 보자. 행복해지고 싶다면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전라남도 완도군에는 소안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작은 섬이지만 소안도는 일제 시기 경찰과 말도 섞지 말자는 불언동맹(不言同盟)을 조직했고, 1928년에는 약 4천 명의 주민 중 800명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일제 시기 동안 섬 주민들이 감옥에 갇힌 기간을 모두 합치면 300년이 넘을 정도로 저항의 기운이 높았던 곳이다. 주민들은 “슬프도다/ 감옥에 있는 우리 형제들/ 이런 고생 저런 고생 악행 당할 때/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나/ 장래 일을 생각하니 즐거웁도다”라는 ‘옥중가’를 부르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잤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과 만주 등지의 항일조직과 사람과 물자를 주고받으며 수많은 활동가를 배출했던 ‘해방의 땅’이었다. 지금도 작은 섬에 항일운동기념관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자부심은 높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소안도는 해방 이후 제주도 4․3항쟁과 같은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육지에서 분 국민보도연맹의 바람은 소안도에도 상륙해서 주민 700~800세대 중 270여 명의 목숨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 이후에도 경찰들은 소안도를 ‘모스크바’라고 부르며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는 해방 이후 쉬쉬 숨겨야 할 비밀이 되었다.


제주도 4․3항쟁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복원되었지만 이 작은 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왜 이 섬은 빨갱이섬이 되었을까? 이 섬의 주민들은 왜 그토록 극렬하게 저항했을까?



땅을 나누고 학교를 세우다


일제 시기 소안도에는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다. 1905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소유가 분명하지 않은 토지를 몰수해서 동양척식주식회사나 친일파, 일본이주민에게 팔아넘겼다. 당시 소안도에는 왕실에 세를 내던 궁방전이 많았는데, 친일파 이완용의 아들인 이기용이 토지조사 과정에서 이 땅을 가로챘다. 이에 주민들은 소유권을 반환받으려는 소송을 제기했고 무려 13년 동안 소송이 이어진 끝에 1922년 2월 14일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것이 ‘소안도 토지계쟁사건(土地係爭事件)’이다. 소안도 주민들은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때로치면 엄청난 돈인 1만 4백원을 모아 기존의 중화학교를 발전시켜 1923년 5월 16일에 소안사립학교를 세웠다.


당시 일본노래와 일본어를 가르치며 식민지 교육을 실시하던 공립학교의 학생수는 30명에 그쳤지만, 소안사립학교에는 학생들이 넘쳤다. 1920년 중반에는 멀리 제주도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약 1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토지소유권의 확보와 학교설립은 소안도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궁방전의 소유권을 가짐으로써 소안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굴 땅을 얻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 일제의 농장과 지주들이 높은 소작료와 갖은 부역으로 소작민들을 괴롭혔다면, 소안도에서는 땅을 가진 자작농이 늘어났다. 더구나 이 자작농들은 13년 동안의 오랜 소송을 통해 땅을 얻었기 때문에 공동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농민들이었다.


농민만이 아니라 어민들도 섬 지역의 특성상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바다에 경계선을 긋고 각자의 소유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어장은 공동체의 토의와 회의를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촌에서는 마을총회와 어촌계 총회를 통해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이 결정되고 있다. 소안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김양식으로 유명한데, ‘단’이라는 특유의 공동어장을 운영했다. 자연산 톳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고 공동분배하는 조직인 ‘단’은 한 마을 내에 같은 수의 가구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공동성은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한 것 역시 이런 공동체의 분위기를 반영했을 것이다. 공동의 이익을 활용하는데 있어 교육보다 중요한 사업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정무역을 통해 많은 학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소송을 이끌었던 4명의 면민(面民)대표들은 자신들의 송덕비를 대신에 학교를 세우자고 제안했고 주민들은 이에 찬성했다. 1913년에 설립되어 항일사상의 씨를 심던 중화학원을 발전시킨 소안사립학교에는 저항적인 지식인들이 모여들었고, 학생들도 완도의 근처 섬들만이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몰려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미신타파, 조혼폐지, 언어평등, 남녀평등 등을 배운 학생들은 공동체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신간회의 간사였던 송내호,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정남국 등 많은 활동가들이 중화학원이나 소안사립학교를 졸업했다.


소안도가 일찍부터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지리적인 위치 탓도 컸다. 일본의 오사카와 제주도를 잇는 항로가 개발되면서 많은 전라남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지식인들도 새로운 사회의 사상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는 각종 강습회, 토론회 등이 열렸고 소안도는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소안사립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부르던 ‘소년단가’는 그 정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과 학문으로 직업을 삼고/ 정의와 사랑으로 정신을 삼아/ 같이 먹고 같이 살자/ 평화세계는 우리들의 눈앞에 완연하구나.”


그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일본 경찰의 대응에서 읽을 수 있다. 1928년 소안도의 활동가 최평산 외 12명이 구속되었는데, 그 심리 과정에서 일제 경찰은 “약 100명의 회원으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고 서울에 있는 모모 청년회와 모든 단체 등과 연락을 취해 소안도에다 공산주의를 선전하여 그 섬 하나를 완전한 공산주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계획하고 착착 그 운동을 실행하면서 한편 면장배척의 봉화로부터 경관에 대한 불언동맹을 조직 실행하고 또 소안학교를 설립하여 도민에게 공산주의적 교육을 실시하였는바 대정 13년에는 도민 거의 전부인 800여명을 회원으로 하고 그 후에도 남자는 청년회에서 여자는 여성회에서 공산주의의 역사상을 선전 실행하여 소안도 안에서는 경찰과 군의 행정이 잘 시행되지 않을 지경까지 되었던 사건이라는바 실로 근래에 드문 조직적 공산주의 운동”(《조선일보》1928년 10월 18일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에 맞서는 배움의 연대, 생활의 연대


소안도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제가 취한 첫 걸음은 소안사립학교의 문을 닫는 일이었다. 많은 활동가들을 배출하고 섬 주민들의 의식을 자극하는 기관이던 소안사립학교는 눈에 가시같았다. 호시탐탐 학교문을 닫을 기회를 엿보던 일제는 1925년 이 학교를 통제하기 위해 공립학교로 승격시키려 했지만 주민들은 면민대회를 열어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제는 독립군을 양성하고 국경일에도 일본 국기를 달지 않는다는 구실을 들어 1927년에 강제로 학교문을 닫았다. 작은 사립학교 하나를 폐쇄하기 위해 일제는 경찰병력을 소안도에 풀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3인 이상이 모이는 것과 곤봉같은 무기휴대도 금지되었다.


작은 사립학교 하나에 왜 이토록 일제가 많은 신경을 썼을까? 그것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을 넘어 생활을 나누고 공동체의식을 기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한 명이 자라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소안도 자체가 하나의 학교로서 함께 배우고 생활하며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기운을 만들었다. 그런 장이었기에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운동을 이끌었다.


배움과 생활의 공동체가 가진 중요성은 소안사립학교 출신 활동가들이 조직했던 단체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14년에 송내호가 만든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는 완도만이 아니라 전라도, 경상도까지 조직망이 이어진 전국 조직이었다. 의를 지켜 서로 가까이한다는 그 이름부터가 공동체성을 반영하고, 계라는 전통적인 생활조직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수의위친계는 특별함을 지녔다.


1919년 3․1운동이 지난 뒤 1920년 4월에 송내호, 정남국 등은 마을주민 100명을 회원으로 모아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만들었다. 이 배달청년회는 마을자치단위였던 리(里)를 중심으로 노동단체를 조직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1924년에는 소안노동대성회(所安勞動大成會)가 결성되어 공동경작계와 공동어장계를 만들어 공동노동에 힘썼다. 그리고 독서회와 강연회를 열고 생산조합방식으로 협동노동을 실시했다. 노동대성회는 당시의 사회주의노선과 달리 천도교 노선의 조선농민사가 추진하던 공동경작계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렇게 소안도는 전통적인 마을단위의 조직형태를 근대적인 사상과 결합하는 실험장이었다. 계급노선과 공동체노선이 서로 어울렸고 그 속에서 강력한 연대의 힘이 만들어졌다. 완도 주변에서 조직된 ‘필연단’(1925년 창립)와 ‘살자회’(1928년 창립)는 “우리는 역사적 필연성인 진화법칙에 의하여 합리적 신사회의 건설을 기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일치단결로써 민중운동의 충실한 역군이 되자”, “우리는 상호부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함양을 도모함. 우리는 신사회건설의 속성을 도모함”이라는 강령을 결의했다. 아나키즘의 주요 노선인 상호부조가 사회주의 청년단체들의 주요한 강령이 된 것은 이런 어울림과 연대를 반영했다. 그리고 전남 지역과 잦은 교류를 갖던 사상단체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함께 수용했던 서울청년회였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배움과 생활의 공간이 일치했기 때문에 학교 폐쇄에 대한 저항도 거셌다. 심지어 전라남도 사람들이 조선 거주민의 절반을 차지하던 일본 오사카에서는 800명의 일본경찰이 포위한 가운데 4,000명의 사람들이 모여 강제폐교사건을 규탄하며 제국의 심장부에서 최초로 조선총독정치를 비판하는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소안도 사람들도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야학에 보내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공간의 일치를 지켜갔다.


이런 공동체에서 연대는 의식적이고 기계적인 결합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 사회주의자들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누가 회의했다’였다고 한다. 사실 회의는 사회주의자들의 특징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특징이었다. 촌회나 동회, 계 등 여러 공동체 조직에서 회의는 일상화되어 있었고 서로의 삶이 얽혔다. 그 속에서 연대는 자연스러운 힘이었다.



공동체의 연대와 저항의 망


해방 이전 한반도 인구의 83%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생활 속에서 연대했다. 농민들의 혁명역량은 의식적인 사상학습만이 아니라 농촌사회의 전통적인 노동관행과 공동체를 디딤돌 삼아 성장했다. 일본인 대지주에게 저항하고 소작쟁의를 일으키고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마을의 집단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


소안도만이 아니라 전북지역의 농민운동은 ‘촌계(村契)’나 ‘동계(洞契)’같은 전통적인 자치조직들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런 계를 디딤돌 삼아 농민협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했다. 소작민, 자작농만이 아니라 지주들도 이런 조직에 속해 있었고, 마을학교를 세우거나 행사를 치르는데 이바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계나 교육기관에서 제명되거나 쫓겨났다.


농민사회에서 연대는 공동체의 연대를 뜻했고 이는 강력한 저항의 기반이 되었다. 국가나 자본이 침투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 해도 이런 연대의 망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정부가 자치조직을 파괴하고 농협과 수협, 축협을 만든 이유는 이런 연대의 망을 자기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런 공동체의 연대가 계급간의 연대, 전 세계적인 연대라는 더욱더 보편적인 연대로 발전하는 건 당시도 운동의 과제였다. 허나 1923, 24년의 전라남도 무안군의 암태도 소작쟁의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공동체의 연대를 디딤돌 삼아 전국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던 소작민들이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는 불납동맹(不納同盟)을 만들고 목포까지 원정을 나와 시위를 벌이자 전국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대의 틀은 의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확장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연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틀이나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생활, 공동노동을 가능하게 했던 과거의 공동체는 모두 파괴되거나 국가, 자본 내로 흡수되어 버렸다. 지금 농민들은 국가가 관리하는 농협의 틀에, 노동자들은 자본이 관리하는 개별 공장의 틀에 갇혀 버렸다. 소안도도 다르지 않다. 외지의 사람들이 몫 좋은 곳의 땅을 대부분 차지했고, 소안도의 주민들도 대부분 농협이나 수협을 통해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대회의가 꾸려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 연석회의가 꾸려지지만 그 힘은 약하기 그지없다. 관계망이나 공동체가 없으니 일상 속에서 서로 힘을 모으고 연대하는 게 아니라 연대 자체가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바쁜 일상 속에서 따로 연대할 시간과 고민을 내야 하니 힘들고 어렵고, 그러니 잘 안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2009년 9월 민주노총부산본부가 만든 노동자생협은 아직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없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 노동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노동조합과 농민회가 관계를 맺고, 노동조합과 지역주민들이 서로 공유하는 부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장을 통해 교육생협, 의료생협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지역 내에서 생산․소비가 순환되는 경제체제가 구성된다면, 그것은 국가나 자본이 쉽게 끊을 수 없는 강한 연대, 강력한 저항의 망을 만들 수 있다.


먹고 생활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생겨나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며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곳에서는 옆집 김씨 아줌마가 부당하게 해고되고 박씨 아저씨가 전셋집에서 갑자기 쫓겨난다면, 마을 전체가 그 일에 관심을 둘 것이다. 고구마줄기처럼 한 마을이 엮어져 외부의 힘에 맞서려 들 터이니 누가 감히 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려 할까?


새로운 세상을 여는 비밀의 열쇠는 더불어 사는 삶에 숨겨져 있다.



※ 참고한 자료


김준, “해방의 섬에서 빨갱이의 섬으로”, 《오마이뉴스》2005년 8월 17일자.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엮음, 『소안항일운동사료집』(瑞寶印刷株式會社, 1990)

송윤경, “소안도 항일운동사, 전설에서 역사로”, 《뉴스메이커》 737호(2007년 8월 14일자)

정근식․김준 공저, 『해조류 양식 어촌의 구조와 변동』(경인문화사, 2004)

현정길, “노동자생협을 통한 노동운동”, 《녹색평론》 제 110호(2010년 1~2월호)

홍영기, 『1920년대 전북지역 농민운동』(한국학술정보, 2006)



학벌없는 사회가 주관하는 학교밖 청소년 인문학교실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안학교만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청소년들과 인문학이라는 틀로 다양한 주제를 다룰 듯하다.
일회적인 만남이라 그 만남을 통해 서로가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얘기를 나누고 함께 길을 찾다보면 뭔가가 보이지 않을까?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두번째로 책을 냈다.
한국사회에서 왜 풀뿌리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주장했던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의 뒤를 잇는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의 풀뿌리운동이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고민하며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다뤘다.
책의 제목은 최근의 유행을 쫓아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좋은 정치]이다.

처음에 기획을 했을 때와 약간 구조가 바뀌었고, 중간에 필자가 교체되면서 기획의도가 다소 무뎌지기도 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작품이 나왔다.
다가올 6월의 지방선거를 냉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마련되었으면 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는 글      하승우

1부 왜 우리는 풀뿌리인가
1장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과 풀뿌리운동       장이정수·오관영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 하승우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       김현·최경송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       조양호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       정규호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       김현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       하승수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       이호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을 중심으로       김태선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       하승수

결론에 대신하여 ― 사회 흐름을 바꾸는 풀뿌리운동을 만들어가자       하승수 

아래의 내용은 들어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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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에 부활했으니 2010년이면 지방 선거는 스무 살을 맞이한다. 하지만 청년기에 접어든 지방 선거의 모습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부정과 비리, 부패가 난무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모습은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2006년 지방 선거 이후 구속된 자치단체장(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 40명을 넘고, 성매매, 음주 운전, 뇌물, 폭력 등으로 구속된 지방의원도 수백 명을 넘는다.


이렇게 그 성장 과정이 불량하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하나같이 지방자치제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렵게 부활시킨 제도이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오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잘못과 부작용이 많지만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불리는 지방자치제도는 식민지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은 맞지만 싹수가 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경험이 없는 탓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일제 강점기부터 백년 이상 조금만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면 빨갱이로 몰리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면 마치 이기주의자나 님비인 양 매도당하는 사회에서, 언제나 엘리트들이 나를 믿으라며 대중을 이끌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다. 아직 경험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며 타박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풀뿌리운동은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듯이 제도도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며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껏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장하며 자아를 찾으면 제 몫을 다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방법에 모범 답안, 완성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앙 언론에는 나쁜 모습만 비치지만 지역사회에서 소소하게 작은 변화를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기대는 헛되지 않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의 그릇이 그것에 맞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는 점에서 사람은 매우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이미 조금씩 지역사회를 바꾸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사람들이 만드는 길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능동적인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모범답안은 아니더라도 뭔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한 발 앞선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되새기고 그 의미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이 책을 기획한 이유다. 더불어 고민을 나누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1부에 실린 글들은 풀뿌리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가나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마을 사람들을 바꾸다보면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 ‘일상 속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바로 풀뿌리다.


1장인 ‘내가 경험한 대변형 운동, 풀뿌리운동’은 중앙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풀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중앙과 지역을 넘나들며 경험한 느낌에 관해 편지처럼 잔잔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진행된 시민운동에 관한 반성과 더불어 활동가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장 ‘그래, 나는 풀뿌리를 믿는다’는 풀뿌리운동을 지지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기보다는 드러내놓고 편을 든다. 그동안 풀뿌리운동, 풀뿌리민주주의에 관한 관심도 있었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그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풀뿌리운동의 처지에서 그런 비판을 반박하는 글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나서는 직접행동을 지지하는 날것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3장 ‘느리게 걷자 ― 풀뿌리운동의 역동성과 상상력을 위해’는 풀뿌리라는 말조차 틀에 박힌 관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 자신에서 시작하는 풀뿌리운동은 느리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튼다. 어떤 틀에 갇힌 인간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를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을 만들고 만나게 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풀뿌리운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험들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4장 ‘우리는 나보다 현명하다 ― 뉴미디어, 소통, 풀뿌리운동’은 인터넷이 가져온 사회 변화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와 풀뿌리의 관계를 분석한다. 풀뿌리와 더불어 소통이라는 말도 유행하지만 정작 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터넷을 활용하자는 주장을 넘어 운동, 정치, 비전과 세력, 미디어라는 네 가지 지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만날 수 있다.


2부 ‘허울 좋은 분권과 주민참여제도, 어떻게 바꿀까’에서는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도입된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 등 여러 제도들이 풀뿌리라는 도마 위에 오른다. ‘자치’, ‘참여’라는 말은 유행했지만 왜 우리 삶은 변하지 않고 나아지지도 않을까? 제도만 도입되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부는 이 물음에 답한다.


5장 ‘‘스스로’의 시대 ― 풀뿌리의 눈으로 본 분권과 자치’는 한국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온 중앙 집권형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앙으로 집중된 개발 전략은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고 토착 경제를 붕괴시켰다. 자립성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 자율성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분권分權에서 자치自治로, 분산分散에서 자립自立으로 나아가는 전환이 필요하다.


6장 ‘시민이 연출하는 종합 예술, 직접참여제도’는 주민소환제도, 주민발의제도, 주민소송제도, 주민투표제도, 참여예산제도, 주민감사청구제도 등의 시민참여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제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까다로운 제도적 제약과 행정부의 미약한 의지가 주민자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리라 기대한다.

3부 ‘선거를 넘어선 지역정치 판짜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왠지 불순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가까이 하면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그런 느낌이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가로막아왔다. 우리가 하는 일은 봉사이고 복지이지 정치하고는 무관하다, 마을 만들기에 정치색이 끼면 곤란하다, 이런 생각이 정치로 향하는 우리의 관심을 가로막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까?


7장 ‘풀뿌리운동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사례들’은 좋은 삶을 살려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정치는 삶의 문제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좋은 정치가 필요하고, 풀뿌리운동도 좋은 정치를 위해 대의정치, 지역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헛된 공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나라 안팎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8장 ‘네트워킹하고 그라운드 워킹하자’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려면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며, 선한 마음을 자극하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바꿀 힘을 만들어간다. 풍부한 사례와 함께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9장 ‘지역 네트워크 운동의 미래 ― 노원 지역으로 중심으로’는 서울시 노원구라는 구체적인 지역을 통해 네트워크운동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환경·교육·여성 등 다양한 관심을 가진 단체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


10장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을 제안한다’는 지방 선거라는 어려운 과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짚어보게 한다. 관객 민주주의를 벗어나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여러 과제들도 제안한다.


이 글을 쓴 이들은 또 다른 ‘대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왜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기본 방향을 제시할 뿐 구체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글들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운영위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이지만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다. 이음은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 풀뿌리운동 사례를 조사해서 알리고 현장의 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이 사람들이 있어 외롭다 칭얼대지 않고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꿈을 꾸며 걸어갈 수 있다. 함께 걷자.


영국은 참여예산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네요.
아래 사이트를 클릭하시면 각종 정보와 참여예산제 실행방법(tool kit)을 구할 수 있어요.^^

http://www.participatorybudgeting.org.uk/

예산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미리 시범지역을 정하고 거기서 나온 경험들을 정리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걸 보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납니다.
참여예산제도를 기획, 추진하는 Participatory Budgeting Unit이 멘체스터에 있네요(좋겠어요, 오처장님...ㅎㅎ).
우리도 이런 사이트를 하나 운영하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박노해 시인의 '라 광야' 전시회에 가는 걸 조금은 망설였다. 온갖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평화라는 가냘픈 가치를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폭력에 밥숟갈 하나 얹으려 파병을 결심하는 나라에 사는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래서 카메라 셔터에 담긴 순간적인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도 함께 손을 잡고 갈 각시(나는 아내라는 말보다 각시라는 말이 좋다)가 있고, 박노해 시인이 기록한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느린걸음, 2007)이란 책을 읽었기에, 강연으로 맺은 나눔문화 사람들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전시회로 향할 수 있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외지인을 반기는 차라는 샤이와 함께 박노해 시인이 팔레스타인과 터키, 시리아 국경을 넘나들며 찍은 삶을 접하게 된다. 예상대로 마음이 무겁다. 폭력과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앙상한 자연과 파괴된 건물이 남아 있고 그 폐허 속에 사람이 산다. 아무도 살지 못할 것 같은 그곳에 사람들이 짧은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마음 한 켠에서는 내가 그곳에 살지 않기에, 내가 사진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나 역시 그 곳의 주민임을 자각하게 된다. 사진 속의 마을은 저기 먼 나라의 풍경이 아니다. 그곳에 용산이 있고 새만금이 있다. 그 속에 해군기지 때문에 쫓겨날 제주도 강정마을의 주민들이 있고, 생태공원 때문에 밀려날 팔당의 농민들이 있다. 사진 속에는 4대강 사업이 파괴할 생명들이 보인다.

우리는 진정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도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을 든 폭력과 서서히 숨을 죄어오는 개발의 폭력에서 무겁고 가벼움을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은 눈 앞의 진실을 가린다. 하루 아침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평생의 터전에서 쫓겨날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정녕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르게 살고 있다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폐허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희망이 싹튼다. 폐허를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고, 먼 길 찾아온 시인을 반기는 사람들의 ‘환대’가 있다. 메마른 땅이라고 어찌 생명과 반가이 맞이하는 문화가 싹트지 않겠는가? 가톨릭노동자운동을 벌였던 피터 모린의 말처럼 모든 곳에는 하느님의 집과 방이 있고, “아무도 부유해지려고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고,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아직까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구걸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평화를 요구한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시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풍경이 아니라 삶을 담고자 흑백사진을 고집한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아마도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박노해 시인이 평화와 나눔을, 소박한 삶을 선택한 건 그런 만남의 덕이 아닌가 한다. 이제 그 자신이 새로운 만남의 끈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진이 이렇게 쓰이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도 못했다. 저마다 먹고사는 일에 바빠 종종걸음으로 외면하고 지나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레바논을 살립시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중단시킵시다, 정말이지 위축되는 목소리로 외치며, 한 사람의 눈길이라도 더 붙잡아 보려 기를 쓰며 서명을 호소하다 ‘우리의 미약한 행동이 과연 이 거대한 전쟁 앞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력감에 몸서리를 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광경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발휘하는 힘을 보면서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평화는 힘이 세다. 평화는 무력하지만, 평화는 힘이 세다.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이 사진전은 그런 다짐을 확인하는 시인의 마음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 만남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당당히 평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진실이 무겁게 어깨를 누르며 짐 하나를 더 얹는다.

전시회를 다녀온 뒤 새벽에 일어나 잠든 각시의 얼굴을 봤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각시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며 한편으론 두려움이 들었다.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좋은 일일까 생각을 했었다.

이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저 세상에서 나와 함께 짐을 나눠질 새로운 사람이 오는구나, 그 사람을 반가이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구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만들어갈 세계를 고민한다.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소식지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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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풀뿌리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을 바꿔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던 사람들의 바람은 그들의 허무한 죽음만큼 뿌리 깊은 변화를 이루지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도는 시계바퀴처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허무하리만큼 이제껏 이뤄온 민주화의 성과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에게 모든 걸 다 바치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나 혼자, 우리 가족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주위의 아픔과 고통에 자꾸 눈을 감고, 그 마음을 다스리려 자꾸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괜찮다”, “이번 한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내가 혼자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이 무게를 견디며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 위안합니다.

하지만 조세희 선생님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책에서 이런 우리 모두가 난쟁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망루에 오르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팔당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던 농민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농지가 강을 죽인다고 매도당하며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내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어쩌면 이미 늦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죽어버린 땅을 등 뒤에 남기고 소설에서처럼 우리는 달나라를 갈망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풀뿌리라는 말을 되뇌는 건 이런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는 단순히 아래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만들자는 ‘운동의 전략’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뿌리는 우리의 삶이 더욱더 단단히 이 땅에 뿌리를 내려 권력이 우리를 밀어내고 갈아엎으려 해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보자는, 그리고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겠지만 그 가치가 생활로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운동의 가치와 삶이 단단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풀뿌리는 그런 점에서 변화의 시작이면서 그 자체가 변화의 과정입니다.

올해는 여성민우회 생협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여성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이 지난 세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온 변화는 아주 소중합니다. 민우회의 ‘사회주부’는 여성대중을 조직화하고, 대중의 참여 증진을 통해 여성을 세력화하며 대중 속에서 리더십을 발굴하고, 여성대중의 지지를 받는 운동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민우회생협의 조합원선언은 환경, 여성, 지역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여성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민우회와 민우회생협은 가치와 생활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소소한 생활의 변화부터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까지 민우회는 다양한 변화의 물꼬를 터왔습니다.

하지만 개발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며, 이들과 결탁한 토호들과 관변단체들이 여러 사업들을 펼치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문화는 여성들의 지역활동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이나 가사일을 여성에게 떠맡기려 합니다. 이 모든 조건들은 가치가 삶으로 녹아드는 걸 방해합니다.

그래서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서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많이 얽혀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서로가 서로의 역할과 활동방식을 이해하는 단계가 필요한 듯합니다. 다양한 재료를 섞은 음식이 조화로운 맛을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가치와 생활이 잘 버무려져 새로운 삶이 드러나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이 섞이려면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화백회의는 만장일치로 운영됩니다. 드라마에는 마치 그 회의가 정치적인 음모의 장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전체 회의장에서 토론될 수 있었고 차이가 합의로 이어질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더 찢어놓고 경쟁을 시키려는 사회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조차 쉽게 내밀 수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디딤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경험하고 분석하며 내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010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머슴임을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할 겁니다. 그런 장에서도 관계는 만들어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후보자는 상대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보다 내게 표를 찍을 건지 안 찍을 건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내 진심(眞心)보다는 표심(票心)에만 관심을 쏟는 게 바로 선거입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가 자연스레 바뀌리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선거를 뛰어넘는 정치전략이 필요합니다. 표심이 아니라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 필요하고 그런 진심을 자극하고 만나며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꿈을 품어야 합니다. 풀뿌리가 희망이려면 나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이 서로의 관계를 타고 퍼지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과 생명> 겨울호에 기고한 글이다.
'4대강 살리기'도 재난이지만 '행정구역개편'도 또 다른 재난의 계기가 될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공부를 강요(!)한다.
쇠고기, 대운하, 보, 미디어에 이어 이제는 행정까지...
다음에는 또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보통 행정은 그냥 행정구역이나 행정기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자치와 연관지으려 했다.
최근 글을 읽다 발견한 3-1운동과 관련된 재미있는 관점도 함께 소개했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전국적인 저항을 모색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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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체계라는 오래된 지배도구와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

 

하승우(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1894년 부패한 탐관오리에 맞서 일어선 농민들은 나라를 바로잡는 개혁을 실시하기 위해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했다. ‘그물코를 바로잡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집강소는 잘못된 관행과 행정을 바로잡고 농민들의 자치를 지원하는 공간이자, 신분의 차별을 없애고 토지를 나누어 공평하게 경작해야 한다는 이념을 전하는 공간이었다. 비록 외세에 짓밟혀 무너지긴 했지만 동학농민혁명은 전통적인 농민공동체와 정치적인 운동이 결합되어 자치와 자립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 사건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민중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반면에 첨단무기로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할 수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는 자치와 자립의 기반이 식민지 통치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일제는 본격적으로 식민지 전략을 펼치기 전부터 자치공동체를 파괴하려 잦은 지방제도 개혁을 시도했다.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행정체계를 바꾸는 것은 인위적으로 생활공동체의 경계를 나누고 합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가로막으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일제가 행정체계를 강제로 통폐합한지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행정구역 개편이 얘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왜 억압적인 지배권력이 행정체계를 자꾸 바꾸려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제와 군사독재는 왜 행정체계를 바꿨나?

 

어릴 적부터 착실히 국사(國史)를 배워온 우리는 한국을 전형적인 중앙집권형 국가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로 가면 지방양반들만이 아니라 민중들이 공동체를 이뤄 자기 삶의 기반을 다져 왔다. 두레와 같은 공동체 노동이 활성화되고 계와 같은 상호부조가 발달하면서 민중들의 공동체는 자치와 자립의 힘을 강화시켰다(주강현, 2006; 하승우, 2008).

마을마다 모정(茅亭), 농정(農亭), 농청(農廳)같은 공간이 만들어져 마을의 제사나 회의를 준비했고, 이런 전통은 촌회(村會)나 향회(鄕會)와 같은 마을의 정치기구를 만들고 강화시켰다. 보통 양반들이 농촌공동체를 지배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농민공동체가 정부에 대항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철종 때 괴산에서는 수령의 자의적 결가책정에 대하여 반대하는 향회가 29차례나 열렸으며 각처에서 관의 부조리한 조처에 굴종하지 않고 통문을 돌려 향회를 소집, 단합된 여론을 배경으로 수령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읍소(泣訴)’를 감행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감영에 진정하는 ‘의송(議送)’에 나서는 등 향회는 점차 반관적 저항을 위한 모임의 장소가 되었고 드디어 민란의 온상 구실을 하게 되었다.”(김용덕, 1992) 이처럼 마을에서 농민의 자치적인 정치원리가 봉건적인 지배원리를 서서히 극복해가고 있었기에, 이정은 박사는 “19세기 중앙정치가 60년간 세도정치의 부패와 난맥상을 보일 동안 지방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民亂이라는 형태로 중앙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民權의 성장과 面과 洞里를 중심으로 자치적인 農民的 鄕村秩序를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이정은, 2009).

따라서 일본은 이런 자치체계를 무너뜨려야만 자신의 식민지 지배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통감부를 통해 한국정치에 개입하던 1906년 7월, 각의(閣議)에 ‘지방제도개정(地方制度改正)하는 청의서(請議書)’를 제출하고 345개 전국 부군(府郡)을 220개로 대폭 통폐합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청의서는 많은 지역의 반감과 저항을 받았고 당시는 일제가 한국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던 상황이라 이 제안은 축소된 형태로 시행되었다. 그렇지만 이 안으로 1896년 13도 개정 때부터 군수의 역할을 보좌하던 향장(鄕長)과 향청(鄕廳)의 역할이 폐지되고 군주사(君主事)로 대체되어 마을은 군수의 권력에 종속되었다. 이로써 중앙에서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배질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1914년 ‘도(道)의 치관할구역(置管轄區域) 및 부군(府郡)의 명칭위치관할구역(名稱位置管轄區域)’에 관한 총독부령 제 111호를 내려 12부 317군 가운데 전체의 37%인 1부, 121군을 통폐합하고 새로 1부, 24군을 만들어 12부, 220군으로 조정했다. 그 뒤에도 지방행정통폐합은 계속되어 1910년도에 68,819개였던 동리가 1916년도에는 29,383개, 1918년도에 28,277개 동리로 줄어들었고, 이는 자치적인 동리가 행정적인 면으로 흡수되는 것을 뜻했다. 이와 더불어 각 마을의 고유하고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던 마을이름도 ○○동이나 ○○리로 획일화되었다. 또한 부군면을 통합할 때 면장의 97%를 교체하고 일제에 협조적인 사람을 면장으로 임명되었다(이정은, 2009).

당시 일제는 지역의 자치공동체를 파괴하고 그것을 중앙집권적인 식민지 통치구조로 흡수하려 했다. 일제가 추진한 행정체계개편은 중앙의 총독부와 지방의 면단위 통치기구가 수직적인 질서를 이루며 작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처럼 일제하의 행정체계개편은 주민편의나 행정의 합리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지배질서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통합을 목표로 삼는 행정체계개편은 자치질서의 발전보다 그것의 해체를 목표로 삼아 왔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행정체계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바뀐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부나 군사독재 하에서도 행정은 언제나 중앙권력의 이익에 봉사했기 때문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지방자치제도를 유보하고 면단위 행정을 더 확장시켜 군 단위로 전환한 것도 그 점을 증명한다. 그런 과정에서 26개시 85읍 1,407면의 지방자치단체가 26개시 140군으로 개편되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치구역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1994년 말과 1995년 초의 시군통합 역시 43개의 시와 40개의 군을 통합해 41개의 시로 개편했다(이기우, 2009). 그동안 한국의 행정체계개편은 모두 중앙정부의 구상과 결정에 따랐고, 시민들이 이런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자치행정과 주민들이 분리된 것은 공화국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자치의 이념을 담고 있지 않은 우리 헌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자치이념에 적합한 연방주의가 아예 배제되었고, 자치단체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주민자치에 관한 규정은 법률로 위임되었다(제 118조 2항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그런데 일본헌법 제 93조 2항은 ‘지방공공단체의 장, 그 의회의 의원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관리는,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고, 제95조는 ‘하나의 지방공공단체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의 투표에 있어서 그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국회는 이것을 제정할 수 없다’며 주민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주헌법 제 28조 1항도 ‘각 州의 헌법질서는 이 기본법에서 의미하는 공화적·민주적 및 사회적 법치국가의 제원칙에 부합하여야 한다. 州, 군(Kreis) 및 읍(Gemeinde)의 주민은 보통·직접·자유·평등 및 비밀 선거로 선출된 대표기관을 가져야 한다. 읍에서는 대표기관에 대신하는 읍회의를 도입할 수 있다’며 주민자치의 기본근거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하승우, 2005).

모든 법률의 기본이 되는 헌법이 자치의 이념을 담지 않고 있으니, 행정부는 시민을 언제나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 행정은 주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주민 ‘위에’ 일하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전통을 지켜 왔다. 행정체계 역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따라 변하며 주민들의 삶을 침범해 왔다.

 

 

행정체계개편이 지역발전을 위한 방안인가?

 

2009년 행정체계개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논의가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행정구역개편과 관련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참여정부 역시 2006년 전국을 70개의 광역시로 개편하는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전 정부가 논의에 그쳤다면 이명박 정부는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2 광역경제권’ 구상을 발표하며 행정개편의 기본구상을 지방자치보다 경제발전에 맞췄다. 이 구상은 “그동안 개별 광역자치단체별로 시행해 오던 지역전략산업 및 지역개발정책의 중복성 및 비효율성을 방지하고 자원배분 및 사용의 효율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제안되었다(임승빈, 2009).

그리고 2008년 10월 18일 이명박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행정구역개편, 특히 지방의 광역화와 행정계층 축소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국정과제 역시 앞서의 경제권 구상과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인 행정을 개선해서 지역경제발전을 촉진시킨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행정구역개편을 지역발전전략으로,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기업의 유치, 창압, 확장, 보전”으로 접근하는 것은 광역화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토지를 공급하며 도시를 재개발하는데 유용하리라 보기 때문이다(배득종 2008). 또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8․15 경축사에서 “100년전에 마련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며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 8월 26일 행정안전부는 이 구상을 이어받아 ‘시․군․구 자율통합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이 계획이 자율적으로(?) 통합한 기초자치단체에 특별교부세 50억 지원, 추진사업 인센티브 지원, 기반시설 설치 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교부금, 인센티브, 기반시설, 이런 내용은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이다. 부안방폐장이나 경주방폐장에서 그랬듯이 중앙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을 ‘거지’로 여기고 돈으로 유혹하는 이런 한심한 짓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어쨌거나 이런 과정을 밟아왔기에 현재 국회에는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 무려 8개의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간의 통합을 다룬 2개의 법안(노영민․이범래 의원안)을 제외하면 6개의 법률안 중 4개의 법안(권경석․우윤근․박기춘․허태열 의원안)은 시․도를 폐지하거나 국가기관화 시키고 시․군을 통합할 것을 주장하고, 나머지 2개안(이명수․차명진 의원안)은 도와 광역시, 도와 도를 통합해서 더 광역화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중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현재 광역-기초의 2계층제로 되어있는 자치계층을 단일화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학계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완규 교수는 행정구역개편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 250억 원의 행정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①시장․군수 및 시․군 의회 선거비용 절감, ②시․군 의회비 절감(의원 정원 감축, 사무처 경비 감축 등), ③민간지원경비․행사경비 등 절감, ④공공시설 통합 설치․운영을 통한 절감, ⑤청사 매각 또는 재활용을 통한 재원 확충, ⑥주민의 경제적 부담 감소라는 부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박완규, 2008). 그리고 곽상욱 오산자치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광역행정이 ①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전자적 접근성 확대라는 서비스 수요의 광역화, ②지역클러스터, 혁신도시와 같은 행정수요의 광역화, ③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중복, ④행정의 책임성과 민주성의 확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곽상욱, 2009).

하지만 이기우 교수에 따르면, 지방행정구역만 개편하면 모든 지역발전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21세기 국가경영철학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왜냐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했던 지역주의를 없애는 방법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한과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방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지방분권의 강화에 있지 행정구역개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기우 교수는 현재의 방안이 ①소규모 기초자치의 포기, ②소지역주의로 지역공동체의 해체와 지역발전거점의 상실, ③실현가능성의 부족이라는 내용상의 문제점과 함께,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통합추진이라는 방법상의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를 추진하고 주민투표를 배제하는 것은 시기와 절차 모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이기우, 2009).

그리고 하승수 교수는 자치계층 단일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도를 폐지하고 국가지방광역행정청과 같은 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중앙집권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점, ②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사무중복 문제는 사무배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해결가능하다는 점, ③세계적인 지역간 경쟁격화 현상은 오히려 광역지방자치단체를 더욱 광역화하고 강화할 필요성을 높이고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폐지는 대도시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 ④단층제 입법사례는 외국에서도 드물다는 점, ⑤급격한 제도변화는 지역의 정체성, 지역발전의 정신적 에너지를 상실케 할 수 있다는 점, ⑥외국에 비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구규모가 큰 상황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위적인 광역화는 생활자치의 포기가 될 것이라는 점, ⑦기초지방자치단체의 광역화는 새로 만들어질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사무소 소재지 등을 둘러싼 소지역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 등이다(하승수, 2009).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치계층을 단일화시켰을 때의 문제점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증명되었다. 즉 2007년 7월 특별자치도라는 광역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된 제주도의 경험을 보면 그 문제점은 분명해진다. 2002년에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주도 행정개편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2005년 7월 27일 주민투표를 통해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4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폐지되고 1개의 광역자치단체로 통합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높았는데(점진안 찬성률 각각 56.4%, 54.9%) 이를 무시하고 전체투표 결과를 따져 통합을 진행했다. 그리고 행정 효율성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본청과 의회, 행정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전체의 45%를 차지함으로써 행정의 반응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그리고 제주시와 도지사로 권한이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 주민자치구위원회와 같은 주민자치기능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행정개편 때보다 이전의 자치 2계층체제가 더 낫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만으로 효율성이 증가하거나 주민만족도가 높아질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하승수, 2009). 2009년 8월 제주도지사의 독단적인 행정을 문제 삼았던 제주도의 주민소환운동은 행정체계 개편이 가져올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행정체계 개편이 계속 주장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지방의 재정불균형’과 ‘불균등발전’ 때문이다. 행정체계 개편을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는 “규모의 경제효과로 인한 세출 효율화를 통해 재정지출 증가압력을 제어하고 지자체간 재정력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원윤희․심혜정, 2008) 이명박 정부는 정치보다 경제논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행정체계개편 역시 이런 경제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개발주의에 그대로 노출되어 대안적인 발전전략을 모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하승우, 2007). 따라서 학계나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명박 정부는 행정체계 개편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그들만의 개발과 개편,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

 

진정 그런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 현상과 그로 인한 ‘내부식민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지방재정이 빈약한 것이 문제라면 국세 비중을 낮추고 지방세 비중을 높일 일이지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광역화시킨다고 해서 지방재정이 탄탄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행정체계개편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더욱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의 지방을 내부식민지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고, 더 나아가 지방 내에서도 패권주의가 발생하는 부조리를 지적한다(강준만, 2008).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 현상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그 집중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2009년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 현황에 따르면, 서울, 인천, 전북을 제외한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2008년보다 낮아졌고 가장 낮은 지역들은 자립도가 10%를 넘기지도 못했다. 그리고 대전개발연구원의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 자료에 따르면, 1985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이 전체 지역내총생산의 43.3%였는데 2006년에는 전체의 47.7%를 차지해 수도권의 경제집중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지방 내에서 발생하는 지방자치단체들간의 갈등이 수도권-지방의 갈등과 갈수록 비슷해지고, 패권주의가 지방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가령 2004년 기준 경남권 인구의 60.2%가 부산과 울산에 살고, 경북권의 58%가 대구와 포항에 살고, 전남권의 57.2%가 광주와 여수에, 전북권의 49.2%가 전주와 익산에, 충남권의 57.2%가 대전과 천안에, 충북권의 55.7%가 청주와 충주에, 강원도의 50.7%가 춘천․원주․강릉에 산다는 식이다. 이런 집중화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기업과 서울에 본사를 둔 회사들이 대부분의 산업과 경제활동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에서 경제적인 이익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강준만, 2008).

따라서 이런 불평등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행정체계만 광역화한다고 해서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를 볼 때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을 해체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오히려 광역화를 통해 지방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라며 ‘생존논리’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중앙의 기득권 구조와 연결된 개발세력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노리며 단합할 것이다. 이렇게 행정체계개편은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만 이로울 뿐 대다수 주민에게는 많은 부담을 안길 것이다.

또한 광역화를 지향하는 행정체계개편은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사실상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관변단체가 대거 의회로 진출하며 지역의 공식적인 권력으로 승인을 받고, 여전히 지역의 중요한 의사소통과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보다는 ‘풀뿌리보수주의’라는 말이 시민들에게는 더욱더 익숙하다(하승수, 2007).

그리고 지방자치제도의 실시,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도라는 직접민주주의제도의 도입에도 시민들의 참여환경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국의 좋은 참여제도들도 한국으로 오기만 하면 하나같이 시민참여를 가로막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투표처럼 널리 알려진 제도만이 아니라 주민참여예산제도나 옴부즈만같은 제도들이 이미 도입되어 있지만 전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하승우, 2006).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행정체계개편이 지금 당장은 마을 단위의 풀뿌리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풀뿌리운동의 뿌리를 위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편은 풀뿌리운동이 필요로 하는 주체성장의 ‘과정’과 ‘여유’를 없앨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곧바로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등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풀뿌리운동은 주체들이 성장할 ‘과정’과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행정체계개편은 소외된 주민이 자신의 ‘시민됨’을 자각하고 능동적인 정치적 의지를 회복하려면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자신이 사는 세계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배우며 자기 내면에 뿌리내린 본성, 개인으로 고립되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본성을 극복하는 여유를 제거할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과 비용절감만을 목표로 삼는 행정체계개편은 풀뿌리 주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행정체계개편이 은밀한 목표로 삼는 지역개발의 열풍은 풀뿌리운동이 준비해온 대안적인 지역사회발전전략을 파괴할 것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내년 지방선거 때 수많은 개발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개발전략들은 그동안 풀뿌리운동이 의제로 만들어온 주거나 교육, 먹거리와 같은 생활정치의 의제들을, 자신의 삶과 괴리되지 않은 정치를 실현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선진화를 빌미로 삼는 지역간의 경쟁은 각각의 존재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망각시킬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다소 전문적이고 생활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행정체계개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적인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민주주의의 비극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공유지를 박탈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세금을 걷기 위한 관료체계와 내부의 반란을 막기 위한 공권력이 강화되면서 이제 국가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전통적인 공동체나 농민공동체의 정치원리는 낙후되거나 봉건적인 유산으로 매도당하고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듯이 행정체계개편을 마음껏 추진할 것이다. 강력한 반대가 없다면 자기 뜻대로 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부이니, 이런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작가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우리 사회를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는 “죽은 땅”이라 정의했다. 이 죽은 땅을 떠나는 탈출구는 달나라로 떠나거나 입주권을 긁어모으는 사나이를 처리할 앉은뱅이와 곱추의 공모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탈주하거나 맞서거나, 둘 중 하나이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H. Zinn)의 말처럼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다행히 우리 역사는 치열하게 맞서 싸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정은 박사는 1919년 3․1운동의 의미를 자치에서 끌어낸다. 최소한 두 달 이상 잔혹한 식민지 권력에 맞서 온 몸을 던지며 싸웠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무엇을 꿈꿨을까? 3․1운동 당시 한국의 지역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항과 상품경제의 유입, 일제에 대한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일본 식민지 체제의 수립과 일본인들의 유입, 토지조사, 지방행정구역 전면 개편, 폭우처럼 쏟아붓는 각종 세금과 법령, 식민지 관권에 의한 억압과 침탈, 국가 위기가 고조되면서 진행된 천도교와 서양 개신교의 급속한 확장, 민족교육의 억압과 식민지 교육의 보급, 시대 변화에 따른 전통 향촌공동체의 해체 또는 온존 등” 지금 우리처럼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3․1운동은 그런 불안과 공포의 고리를 끊고 자치와 자립의 기반을 다시 바로세우려 했다. 행정체계를 바꿔 공동체의 기반을 허물고 자신의 지배전략을 뼈 속 깊이 심으려던 일제에 맞서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변화의 물꼬를 텄다(이정은, 2009).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3․1운동의 뜻을 이어받은 민중의 저항이라 얘기할 수 있다.

그 저항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점은 분명하다. 그 저항은 죽은 땅을 다시 살리기 위해 기존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짜야 한다. 한 가지 이슈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대안적 전망을 구성하기 위해 지역사회 내의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욕망이 아니라 사랑이, 경쟁이 아니라 보살핌이, 대상화가 아니라 주체화가 그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Jim Ife)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아이프는 지역사회발전이 정치․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라 사회․문화․환경․인격(정신적)의 면을 고루 갖춰야 균형잡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프는 산업을 유치하고 지역산업을 조성하며 관광사업에 매달리는 발전전략을 ‘보수적인’ 전략이라 부르며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은행, 신용조합, 지역통화(LETS) 등을 활용하는 ‘급진적인’ 발전전략을 구체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런 전략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동안 배제되어온 주민들이 그 과정에서 의식을 높이고 스스로를 조직화하며 직접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문화와 지역문화, 참여문화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주민들의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안적인 지역사회발전전략에는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식과 욕구가 향상되어야 한다(아이프, 2005). 결국 목표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정치모델이 아니라 치열한 운동의 과정이다. 저들이 행정체계를 바꿔 이익을 꾀한다면, 이제 우리는 그런 체계를 넘어설 대안을, 국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를 모색해야 한다. 풀뿌리운동과 사회적 경제운동, 생활정치와 협동조합운동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 흐름에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이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자. 그것이 첫 걸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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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의 지역사회와 새로운 변화전략의 필요성」, 『경제와 사회』 통권 75호.

-----(2008),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녹색평론』 통권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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