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고 난 뒤 주민자치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풀뿌리민주주의보다 풀뿌리보수주의라는 말이 신문지상을 더 많이 장식하고 있듯이, 한국의 주민자치는 여전히 혼탁한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축제나 랜드마크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넘쳐나고 건설비리에서부터 인사청탁까지 온갖 부조리들이 넘쳐나다 보니, 관변단체와 각종 이익단체들이 지역의 발전전략을 좌우하다보니, 주민자치를 얘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이다.

그리고 주인공이어야 할 주민들이 정작 자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당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에, 수도권으로 모든 게 집중되어 자체 역량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자치냐는 볼멘 목소리가 한국 주민자치의 현주소이다. 오히려 자치보다는 중앙의 개발전략에 밥 숟갈 하나라도 얹으려는 욕망이 한국의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주민자치는 무관심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뜨거운 갈망에 휘둘리고 있다.

하지만 점점 변화하는 생태계 변화가 증명해주고 있듯이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살아남아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주민자치


이제 더 이상 주민자치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추상적인 개념, 원론적인 이념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되돌이표를 찍고 있다. 왜 주민자치가 중요한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위기와 공포에서 구출해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를 조금 더 근본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아도 정치인들이 알아서 나라를 이끌고 기업인들이 알아서 경제를 발전시키리라 기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의 건강과는 무관하게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고 기업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일감을 외주용역에 맡기는 이 시대에 그런 기대는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더 이상 국가는 우리 삶을 보호하지 못하고 기업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서 우리 삶을 관리해주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더구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식량위기, 에너지위기가 우리 사회를 덮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태계 파괴로 쌀과 밀, 콩, 옥수수같은 곡물수입이 중단되거나 줄어든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전기가 끊기고 교통이 중단되고 슈퍼와 할인마트의 진열대가 텅텅 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식량위기와 에너지위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런 위기가 한 국가를 넘어 지구 전체를 덮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삶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부터라도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닦아나가야 한다. ‘거버넌스(governance)’나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건 이런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사람의 살림살이가 둘로 나뉘지 않듯이 정치와 경제는 삶의 두 단면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주민자치는 여러 가지 선택사항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필수적인 사항 중 하나이다.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며 함께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면서 위기에 대처하고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 미래세대의 행복은 능동적인 주민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삶은 가능하다


보통 우리는 대안을 고민할 때 큰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하다. 작은 마을보다 국가나 세계적인 차원을 고민하지 않으면 왠지 쪼잔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 그런 쪼잔함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그런 쪼잔한 흐름들이 서서히 대안으로 힘을 기르고 있다. 다만 그런 사례들은 중앙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를 뿐이다.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철암과 부산 반송, 대전의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울산, 대전의 참여예산제는 시민들이 예산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안에서는 유채꽃으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햇빛발전소로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전북 진안은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여러 사회적 기업들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대안적인 유통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성과 원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들은 지역공동체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고, 대전한밭레츠는 지역화폐를 활성화시키며 관계의 그물망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얘기해도 이미 많은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이런 실험들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대안을 볼 때 그 규모를 보는데 익숙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정과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도서관, 예산, 발전같은 키워드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야 한다. 각기 다른 사례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된 핵심은 있다. 그건 바로 주민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며 나와 타자의 구분을 넘어서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뭘까?


주민자치의 핵심은 주민들의 ‘욕구’(needs)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냥 참여하세요라고 당위적으로 설득하지 말고 참여를 통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자기지역공동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욕구를 확장시켜 우리의 욕구로 만들어야만 대안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실천지(實踐知), 경험지(經驗知)가 지역발전모델에 반영되어야 한다. 남이 만들어주거나 남을 따라하는 모델은 그 지역의 고유함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주민들이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자문회’이나 ‘공청회’로는 주민들을 모을 수 없다. 참여는 권한을 가질 때에만 활성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권한은 분리된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서로 서로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의 자격, 우리의 자격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소통과 토론, 성장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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