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의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킹 독트린』이라는 책을 읽었다. 전 세계의 재난 현장을 돌아보고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학자는 위기가 권력을 독점시킨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다. 가난하고 약한 대다수 사람들이 쓰나미나 전쟁같은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소수의 기업과 정치인들은 그런 재난으로 이득을 취하며 더욱더 배를 불리고 있다. 저자는 정치와 경제, 공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권력을 독점하는 이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른다.

이 책은 한국도 사례로 다룬다. 1997년 IMF로 쇼크를 경험한 한국정부는 경제규칙을 바꿔 다국적 기업이 한국을 마음껏 유린하게 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2년 동안 세 배나 늘었고 많은 산업시설과 노동력, 자원이 외국회사로 넘어갔으며 자살률은 두 배나 증가했다. 저자는 이 모든 불행이 우연한 사고보다 의도적인 공격과 약탈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행된 금모으기 운동은 ‘저질게임쇼’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만약 나오미 클라인이 지금 한국을 방문한다면 어떻게 분석할까? IMF를 거치며 위기에 대비하기는커녕 우리 사회는 더욱더 위기에 취약해졌다. 식량자급률이 24%에 지나지 않고 에너지의 97%를 수입해야 하는 사회, 환율과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사회, 좋은 일은커녕 제발 더 나쁜 일만 생기지 않기를 기대하는 게 지금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얘기하듯이 모두가 어렵고 힘드니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 삶이 나아질까?

일단 모두가 고통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LG, SK, 국내 4대그룹의 2008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매출 1위 삼성은 220조원으로 2위 현대차의 110조원을 2배나 앞섰다). 그것도 2007년의 473조원에 비해 약 62조원이 늘어났으니 엄청난 성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매출이 늘어났으니 축하할 일일까?

하지만 4대 기업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결코 한국에 긍정적이지 않다. 경제의 규모와 영향력이 몇몇 재벌들에게 집중되는 건 소수가 지나친 권력을 가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재벌들은 그런 권력을 이용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왔기에 그런 집중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껏 알려진 것만으로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회사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피해를 입힌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LG그룹의 구본호는 주가를 거짓 공시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비리와 부정의 온상인 기업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재벌들은 일자리 창출을 거부하며 금산법이나 방송법 등 더 많은 이윤을 볼 투자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고통분담을 얘기하려 하는가? 고통은 결코 분담되지 않고, 사회의 약자들에게 집중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위기는 일종의 기회인 셈이다.

더구나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민을 쇼크 상태에 몰아넣을 이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권력독점을 막으려는 시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정부나 기업 외엔 그 누구도 경제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는 시민에 대한 경고이니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정부나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민을 철거민으로, 도시게릴라로 내몰아 그 삶을 송두리째 뽑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런 억압에 시민이 지치면 북한과 충돌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며 반전을 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쇼킹 코리아가 너무 싫어 모두가 짐을 싸서 떠나거나 더 이상 순종하는 시민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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