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복귀 소식을 듣고 프레시안에 쓴 글입니다.
불매운동을 벌일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삼성제품 리콜경연대회, 홈플러스 불매운동, [삼성을 생각한다] 독자 퍼포먼스 등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건희를 주저앉히는 즐거운 상상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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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경영 복귀, 반성은 없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회장으로 복귀했다. 2008년 4월 22일 퇴진을 선언한 지 23개월 만에 다시 경영진으로 복귀했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경영 복귀가 아니다. 그것은 이 회장의 퇴진과 더불어 해체되었던 전략기획실이 부활한다는 것도 뜻한다. 삼성 사장단협의회가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를 건의했다고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사장단협의회란 핫바지요 얼굴마담일 뿐이니, 그건 영화 <왝더독>의 제목처럼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얘기다.

23개월이나 쉬었으니 그동안 충분히 반성했을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공식트위터에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23개월 동안 반성한 사람의 기운보다는 와신상담의 기운이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내가 저런 것들에게 밀려서 경영에서 손을 떼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복귀하고 말리라. 그런 기운을 느낀 건 나뿐일까?

'징역 3년형' 받은 범죄자가 당당한 세상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동안 방송들이 토요타의 위기와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열심히 떠든 건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사전포석이었던 것 같다. 이건희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고마운 토요타, 고마운 김연아, 고마운 금메달의 얼굴들이다. 아마도 이런 수순을 염두에 두고 방송사들은 그토록 열심히 토요타와 동계올림픽을 외쳤을 것이다. 이제 경영복귀 선물로 청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만 좀 나눠주면 모두가 '올레'라고 외칠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되고 서글픈 코미디를 다시금 재현한다. 말도 안 되는 재판으로 떼어낼 수 있는 죄를 다 떼어내고도 '징역 3년형'을 받은 범죄자가 아무런 합의도 없이 사면되고 이제는 다시 경영일선으로 돌아온다. 그나마 다른 범죄라면 또 모르겠다. 경영 과정에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세금을 몰래 빼돌린 죄를 지은 사람이 경제 위기와 경영 리더십을 핑계 삼아 복귀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정치 민주화에 정신 팔린 사이, 곳간이 털리고 있었다

▲ <나쁜기업>(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 <삼성을 생각한다>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프레시안
그런 점에서 김상봉 선생의 글은 매우 반가웠다.(☞관련 기사: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초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을 유도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나 한스 바이스의 <나쁜 기업: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를 보면 그들이 나쁘고 끔찍한 일들을 벌이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국가의 민주화에만 정신이 팔려 자기 곳간 털리는 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김상봉 선생은 그들의 만행을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제국에 맞서 소신 있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대학 교수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불매 운동의 한계 : '자본주의 너머'도 보자

그렇지만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자 운동이 가진 힘은 크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자본도 소비자들의 힘이 모이면 자본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지라도 그것을 통제할 힘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회장님의 권력을 박탈해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삼성을 해체하는 작업이 불매 운동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경제와 소비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윤리를 마련하는 것과 불매 운동은 다른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불매 운동은 그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다른 회사의 제품을 대신 구매하는 자본주의 속의 운동이고, 삼성을 해체하고 경제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윤리를 마련하는 일은 자본주의 너머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정의로운 국가, 양립가능한가?

▲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살림Biz 펴냄). <삼성을 생각한다>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런 점이 뒤섞이니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처럼 불매 운동을 '구좌파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생긴다.(☞관련 기사: "삼성 해체가 답인가?",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

그런데 자본주의 속에서 "공정하고 건강한 시장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구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낡고 순진한 상상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강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찾는 건 논리적인 모순이고 자본주의가 발전해온 역사적인 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 지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단 말인가?

이건희 가신들이 불법 일삼을 때, 삼성 직원들은 무엇 했나?

그리고 삼성그룹을 이건희 일가나 그들의 가신 그룹과 구분할 수 있을까? 이건희 일가와 가신 그룹이 각종 탈법과 불법을 일삼을 때,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원, 소속 임직원들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삼성이 그런 길을 걸을 때, 삼성그룹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주 사악한 소수의 사람들과 그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착한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구도가 그대로 삼성에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 피라미드의 가장 위에는 이건희 일가가 있겠지만 그 중간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 일가를 위해' 일을 하고 있고 스스로 그런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23개월의 공백 동안 삼성그룹 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정상적이라면 삼성전자의 노동자들이 부패한 경영자의 복귀를 반대해야 옳은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은 '씨알'이라는 말을 통해 스스로를 부정하며 참된 나로 거듭나는 과정을 강조했다.

"씨알아, 네가 스스로 눈을 감지 않는데 네 눈을 가릴 자가 누구란 말이냐? 네가 스스로 입을 다물지 않는데 누가 네 입을 틀어막는단 말이냐? 네가 참을 참대로 보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 밖에 또 무엇을 아낄 것이 있는 듯해 너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느냐? 그러나 속고 나면 속았구나 하는 것이 민중이요, 속았구나 하면 분하다 분하다 못해 내가 잘못이지 하는 것이 민중이다. 그러나 스스로 속였구나 할 때 속움직임이 있다. 거기서 새 역사의 걸음이 시작된다."

"지금이 삼성 불매 운동의 적기다"

불매 운동은 바로 이런 새 역사를 쓰는 첫걸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불매 운동은 다른 운동들처럼 운동의 목표를 분명하게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삼성그룹 해체라는 목표는 사실 허깨비처럼 잘 잡히지 않는 목표이다.

오히려 삼성에 대한 불매 운동은 그룹의 해체보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가능한 목표이다. 그러니 지금이 딱 좋은 시점이다. 이건희 회장과 그의 가신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 삼성의 해체 또는 삼성의 전환은 또 다른 과제이다.

불매 운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경제를 만들지는 못한다. 삼성에 대한 불매가 그와 비슷한 처지인 다른 재벌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운동이 거둔 성과는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벌가들이 저질러온 범죄들을 보면 하나같이 경영자가 하지 말아야 할 범죄들이기 때문에 삼성만 해체한다고 한국경제가 바뀌지는 않는다.

"삼성이 견제받고, 다른 재벌도 눈치 좀 보게 하자"

한국 경제를 바꾸는 것은 구좌파적 상상력이 아니라 진정한 좌파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아니, 좌우를 넘어선 상상력을 요구한다. 인간이나 생명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간주하는 경제는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 구조로 실현될 수 없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 사회적 경제나 기본소득들을 우리 사회와 접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을 때에만 대안적인 경제의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김상봉 선생의 말처럼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에 길게 보며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과제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은 삼성 제품을 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삼성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얘기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런 논의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삼성이 견제를 받고 다른 재벌들도 덩달아 눈치를 좀 보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실패를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단합하고 독점하며 소비자를 착취하는 재벌들을 우리 손으로 통제해야 한다.

삼성맨 아닌 삼성맨들오만한 삼성, 우리가 키웠다

그동안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이토록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키운 것이다.

삼성은 그 사람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 나서서 삼성을 생각하고 챙기는 이상한 오지랖들(알바인지 모르지만)이 제법 많다. 삼성에게 10원짜리 한 장 받아본 적 없을 것 같고 앞으로도 받을 일이 없는 사람들이 마치 삼성맨처럼 얘기하며 삼성을 옹호한다.

그만큼 우리 삶이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이야기이다. 불안하고 위태로우니 무작정 강자가 잘 되어서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길 기대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런 일은 아주 드물다. 오히려 지금 있는 곳에서 내쫓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복고풍이 유행인 세상이지만 과거가 우리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엉뚱한 사건들이 맞물리며 하나씩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복귀 역시 복고풍의 흐름을 타고 있다. 우리 뒷 세대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삼성그룹의 노동자들이 진정 노동자로 살고 싶다면, 한국의 시민이 시민으로 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불매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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