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로 ‘돌직구’라고 그러죠. 그냥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1.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 왔나?

 

풀뿌리라는 말이, 마을과 공동체, 협동조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좋은 일이지요. 그동안 노력해온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팽팽하게 긴장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이 우리의 입과 우리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입과 힘을 통해 퍼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과 의지를 담은 말이 그저 그런 사업처럼 논의되고 있다는 현실을 눈감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풀뿌리운동에서도 ‘사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니 실무자가 필요하고, 어느덧 활동과 활동가는 거북한 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되지 어떻게 불리든 무슨 상관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운동은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고, 나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일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이 이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볼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 길을 어떻게 걷고자 하는지 서로 확인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2.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고 있나?

 

요즘 ‘prefigurative’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저는 이 말을 좀 좋아합니다. 이 말을 ‘예시적’, ‘전(前)형성적’,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는 ‘미래를 살아가는’이라고 씁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유토피아가 온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 사회가 지금 실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도 어떤 미래를 살고 있는지 한번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를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마음에 품고 그 사회를 하나씩 실현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사회에 관해서는 얘기하거나 살지 않고 그냥 그것이 있다고 믿기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진행되는 사업을 얘기하며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사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슨 달을 가리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알 수 없고, 달을 보여주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 예언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 그 예언이 실제임을 증명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증명하지 않는 예언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에 관한 문제가 사회에 관한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을 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3. 어떤 경계를 넘어야 할까?

 

풀뿌리운동에 정말 힘이 있을까요? 단지 박근혜 정부가 등장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법률 하나 제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고 사람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운동이 어떤 변화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동의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니 답답합니다.

 

더구나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파국’이라는 상황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체제가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이미 몇 년 전에 선포되었고, 핵발전소와 먹거리 등 일상이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지만 전 세계는 조금씩 들끓고 있습니다.

 

풀뿌리운동은 이런 현실과 무관할까요? 현실은 개판인데 우리는 여전히 힐링의 방식을 택하려는 건 아닌지, 저는 좀 우려가 됩니다. 이제 풀뿌리운동도 본격적으로 자기 경계를 확장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운동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의 운동들과 서로 엮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좀 힘이 나지 않을까요? 우리 일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지냐? 과연 그 우리 일이 과연 다른 일과 무관할까요?

 

곳곳의 공장과 일터에 위험물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착각 아닐까요? 우리 지역에 무엇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가, 이것은 더 이상 남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장기파업과 철탑농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역사회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황이 벌어지면 일시적으로 연대기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사회 변화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요?

 

자치와 자급은 무관할 수 없고 자급의 기반인 농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팔자 좋게 공동체를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농업이 사업과 산업으로 변한 사회에서 자치가 실현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생활정치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제도정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사회의 공공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우리끼리만 잘 사는 공동체는 재벌가의 아름다운 브랜드아파트 CF에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로 성공한 지역의 집값이 뛰거나 재개발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서글픈 상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권은 복지국가 유럽시민들만 누리는 특권일까요?

 

제가 운영위원장이라는 큰 권력을 낼름 사다리타기로 얻었습니다. 사다리타기로 얻은 권력, 양껏 써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작년부터 시작된 사례연구팀에서 어느 정도 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은 비정규직 노동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 인권운동 등 이미 진행 중인 다양한 운동들, 지역사회를 중심에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운동들과 공통의 질문을 놓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진행된 “인권운동가 + 풀뿌리운동가 우리 한번 만나” 자리가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단위를 만들지 않더라도 같이 고민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고민이 잘 나눠지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준비된 운영위원장 하승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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