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강의를 나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은 정부에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이 좀 쓰리다. 오죽 했으면 저런 기대를 할까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원을 못 받으면 협동조합을 하지 않을 것 같아 힘이 빠진다. 허공에 헛된 단어들을 뱉으려고 나는 이 자리에 섰던가, 뭐 이런 우울한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답은 해야 하니 협동조합은 정부에게 직접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정부로부터 독립되고 자율적이어야 한다고 답한다. 너무 실망하는 듯 하면 직접지원은 어려우나 공공기관에 납품할 때 우선순위를 얻거나 공간을 지원받을 수는 있다고 답한다. 그럴 거면 왜 협동조합을 하라고 이런 강좌를 여느냐 묻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묻고 싶다. 대체 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강의들이 지역에 넘쳐 날까? 여기에 뭔가 해답이 있다고 믿는 걸까?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져 협동조합을 만드는 건 쉬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설립준비를 해본 사람은 안다. 하나도 안 쉽다. 정관 하나 마음대로 못 하고 표준정관에 맞추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사업 시작도 안 했는데 사업계획서에, 예산서에, 임원 명부, 설립동의자 명부, 창립총회 공고문, 창립총회 의사록 등 귀찮은 일이 한 가득이다. 이런 과정을 지원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행정 입장에서 잔소리를 하지 자기 마음으로 일을 돕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원도 없고 설립할 때도 품이 많이 들고, 그렇게 만들고 나면 협동조합이 알아서 잘 굴러가나?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5명 이상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 본 게 언제였던가? 심지어 사업과 관련된 결정을, 이해관계가 얽힌 결정을 내려야 하니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삶터에서나 일터에서나 그런 현장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필요한데, 조합원의 출자금만으로 자본금을 충당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딜레마이다.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아야 돈이 생길 텐데,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경험도 부족, 자본금도 부족, 지원도 부족, 3부족인 협동조합이 어떤 대안이라는 건가?

그런데도 올 9월까지 설립신고가 된 협동조합이 2,600여개를 넘는다. 10개월 동안 이 숫자가 만들어졌으니 하루 평균 9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협동조합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조직하려는 걸까?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공동구매나 공동판매, 일자리이다(서울시를 기준으로 보면 문구나 식료품을 공동구매하거나 판매하겠다는 협동조합이 가장 많고, 강사 양성이나 창업교육 등 교육 및 서비스업, 출판․영상․통신 등 정보서비스업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공동구매나 공동판매가 협동조합의 전유물도 아니고 이미 온/오프라인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그리고 다른 전문기관들이 협동조합의 교육이나 서비스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없는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이미 있는 시장에서 영리기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는 건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협동조합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려우니 협동조합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협동조합의 힘을 깨달으며 활동을 시작하면 좋겠다.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을 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런 필요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야 협동조합의 힘이 생길 수 있다. 강좌를 듣는 게 아니라 강좌를 듣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몇몇이 모여 뚝딱 설립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필요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만나야 한다.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관계를 다져야 협동의 힘이 살아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어려운데 새로운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왜 잘 안 풀리고 어려울까 생각해보면 그 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 일이 어려운 건 내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일지도 모른다. 옆의 사람을 믿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협동이다.

피에르 신부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감옥에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피에르 신부는 그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차피 죽을 것 죽기 전에 집 한 채만 짓자고 말했다. 피에르 신부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더라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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