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동향' 7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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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는 행정구역개편, 실제로는 지방자치의 퇴보

이명박 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공식 의제로 만든 시기는 2009년 8월이지만 그와 관련된 논의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읍면동’으로 이어지는 지방자치구조를 실제 인구 규모와 생활권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논의를 받아들여 2009년 국회 특위를 만들고, 2010년 10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신설되어 2012년 6월 30일까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로 했지만 시기가 늦춰져 2013년 5월까지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지방분권 강화’에 관한 개편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달리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런 흐름에 냉소적이다. 현실적으로 단체장들은 행정구역이 조정될 경우 자기 지역이 사라지고 선거구가 변할 거라 우려한다. 그래서 1994년에도 시․군 경계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례로 생활권이 괴산군 청천면에 속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부 마을을 괴산군에 편입하려하자 경상북도가 반발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도 행정구역 개편 문제를 추진중이다. 유정복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꿀 예정임)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주민들의 편의, 국가 경쟁력, 지역의 정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합리적 개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서 자치구 의회 폐지론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 http://www.clar.go.kr/ )가 2013년 2월에 발표한 자료집을 보면,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지방분권 강화’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내세웠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단체장과 지방의회 둘 중 하나를 임명제로 바꾸거나 폐지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참고자료] 2012년 4~5월,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가 실시한 38개 시군 통합에 관한 여론조사결과

구분

통합안

자치단체

응답(%)

1

수원-화성-오산

수원

61.7

38.3

오산

67.4

32.6

화성

42.4

57.6

2

안양-군포-의왕

안양

79.9

20.1

군포

59.7

40.3

의왕

40.3

31.5

3

의정부-양주-동두천

의정부

63.1

36.9

양주

51.8

48.2

동두천

71.7

28.3

4

동해-삼척-태백

동해

60.4

39.6

삼척

58.3

41.7

태백

49.5

50.5

5

속초-고성-양양

속초

85.8

14.2

고성

24.2

75.8

양양

34.6

65.4

6

음성-진천

음성

71.5

28.5

진천

36.2

63.8

7

괴산-증평

괴산

88.4

11.6

증평

12.9

87.1

8

논산-계룡

논산

79.5

20.5

계룡

22.3

77.7

9

전주-완주

전주

89.4

10.6

완주

52.2

47.8

10

군산-김제-부안

군산

61.1

38.9

김제

48.7

51.3

부안

51.8

48.2

11

목포-무안-신안

목포

85.7

14.3

무안

47.6

52.4

신안

47.1

52.9

12

구미-칠곡

구미

68.3

31.7

칠곡

63.8

36.2

13

창원-함안

창원

42.6

57.4

함안

75.7

24.3

14

진주-사천

진주

71.1

28.9

사천

35.7

64.3

15

통영-거제-고성

통영

63.3

36.7

거제

24.4

75.6

고성

52.9

47.1


- 당신들의 지방자치..

앞서의 자료집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의 지위 및 기능 재정립’: 도를 광역자치단체로 계속 두되, ‘광역행정의 중심기관으로의 기능 재정립’, ‘국가기능의 도 이양 확대’, ‘도 기능의 시․군 이양으로 행정계층간 기능의 적정 분배’, ‘사무 중복 해소’ 등에 중점을 둔다.

2) ‘읍면동 주민자치 강화’: 풀뿌리 지방자치 강화, 주민의 민주적 참여의식 고취,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주민자치회에 실질적 권한 부여’, ‘인구 등 지역 여건을 고려한 주민자치회 운영의 자율성 보장’, ‘시범실시 및 단계별 추진’에 중점을 둔다.

3) ‘지방분권 강화’: 21개 부처, 5,145개 기관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사무의 지방 이양’,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연계․통합’, ‘자치경찰제 실시’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추진위의 안은 ‘특별시 자치구’의 경우 ‘구청장 직선, 의회 미구성’에 방점을 두고 ‘의회 구성, 구청장 임명’, 현행 유지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즉 구청장 직선제나 지방의회 구성 중 어느 하나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서울시의 구청장 직선제나 구의회 구성 둘 중 하나가 폐지된다.

그리고 광역시 자치구․군 개편안의 경우 시장이 구청장․군수를 임명하고 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방안이 1순위이고, 2순위가 특별시처럼 구청장․군수 직선, 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방안이다. 이건 지방자치제도 부활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주민자치회 모델은 읍․면․동에 주민대표들의 의결기구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존의 동사무소를 통합한다는 방안일 뿐이다. 그리고 자치경찰제도도 예산의 이관과 권한 부여 정도이지 주민들이 경찰의 장을 선출하는 방안이 아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1991년 지방의회 부활 이전으로 시대를 되돌리겠다는 발상이다. 마치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지방자치제도를 유보시킬 때로 되돌아가는 발상이다. 이를 지방자치제도라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방자치에서 지방주권으로

2012년 11월 강원발전연구원의 김승희, 김진기, 김주원 연구원은 “지방자치에서 지역주권으로”라는 정책메모를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은 ‘지방’에서 ‘지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에 종속된 지방이 아니라 지역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지방자치에서 지역주권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의 주권의식 회복을 위한 캠페인, 오․남용되고 있는 용어 바꾸기(예를 들어, 경기도지방공무원을 경기도 공무원으로), ‘지역화’와 ‘지역주권’에 대한 철학 공유, 지역교육을 통한 지역리더 양성과 지역공동체 복원, 법률과 제도의 정비,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설치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강원도는 2013년 1월 28일 자치실현과 지역주권 회복을 위해 ‘지방’이라는 명칭 대신 ‘지역’이라는 명칭을 쓰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2년 11월 17일, 제 7회 지리산문화제 때 열린 지리산포럼에서는 지리산 자락 5개 시 군(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을 묶어 지리산특별자치도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리산과 관련된 각종 개발공약들을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막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특별자치도를 만들어 그와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자는 주장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를 살린다면, 중앙정부가 지방행정체계를 일방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자치체의 특성이 반영되도록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진행방향은 ‘개편’을 표방하지만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아,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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