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일은 다가오는데 시민들의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다. 왠지 다들 시큰둥하다. 어찌되었건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들 중에서 앞으로 5년 동안 중요한 정책들을 결정할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선거이니 관심이 집중될 만하고 당선가능한 사람의 윤곽도 드러났으니 분위기가 달아오를 만도 한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물론 당선가능한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뭔가 부족한 면을 가져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선거는 그렇지 않았던가? 그동안의 선거도 언제나 최선은 고사하고 차선조차 아닌 차악을 지지하는 수준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최악을 가려내고 차악을 차선으로 포장하려는 관심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는 그런 관심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지하는 후보가 없을 때는(사실 대통령 선거에 당선가능한 후보를 낼만한 조직은 한국에 몇 되지 않으니), 선거연합이나 대안정책을 제안하거나 선거캠프에 들어가는 등 다른 전략들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조차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전략들이 대부분 실패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실현해야 할 중요한 사회의제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냉소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냉소가 상황을 바꾸기는커녕 더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의 선거전략들이 성공하지 못한 건 진보정치의 부족한 실력 탓도 크지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든 구조의 문제이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 이후 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체제를 고수해 왔다.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문화예술을 하든 심지어 조직폭력배를 해도 ‘전국구’가 되어야 성공하는 사회이다. 전국구가 되어야 내 이해관계나 사상을 실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는 타협이나 변질을 피할 수 없기에 전국구가 된다는 건 기존의 구조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했다.

 

실 전국구의 중앙집권형 국가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책임자만 되면 마음껏 나라를 유린할 수 있고, 직접 나서지 않아도 최고책임자만 꼬시면 되니 이권을 나눠먹기에 가장 좋은 체제가 중앙집권형 국가이다. 1987년 이후 여러 체제 논의가 있었지만 중앙집권형 국가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는 논의는 거의 없었다.

 

지금의 체제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던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반(反)민주적인 중앙권력에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하나같이 시민의 주인됨과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하려면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연방주의를 고민해 봄직하다.

 

혁명을 지속시키는 방법

우리 역사에는 혁명에 견줄만한 사건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실제로 사회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주체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혁명을 준비하는 방법이나 그 이후에 대한 사유가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건드리지 못한 탓도 크다. 주로 자신들의 ‘집권’만 생각하고 국가의 성격 자체를 바꿀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차이와 다양성, 민주주의를 주장해도 중앙집권형 국가에서는 그것이 자리잡을 여백이 없다. 제임스 스콧이 《국가처럼 보기》1)에서 지적했듯이 국가는 그 모든 언어와 문화, 삶의 다양한 결들을 통일시키고 표준화시킬 때에만 자신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역의 관행과 문화, 민주주의의 회복은 중앙집권화된 힘을 해체하고 지역 자체의 힘을 강화시킬 때에만 가능하다. 이 회복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와 질적으로 다르다. 연방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연방주의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은 분단이라는 조건 탓이 크다. 1960년 8월에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제안한 이후, 한국사회에서 연방은 금기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방의 의미를 제대로 사유하는 정치사회운동도 없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코리아연방제를 주장했지만 ‘1민족-1국가-2체제-2정부’라는 기존의 식상한 논의들을 벗어나지 못했고 연방제도를 체제로 사유할 뿐 그 의미와 정신을 살리지 못했다.

 

새로운 정치인이나 정당의 등장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의 정치열정을 계속 불태울 방법은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논의를 참조할 만하다. 우리는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건국보다 프랑스 혁명을 더 높이 평가하지만 아렌트는 《혁명론》2)에서 미국 건국의 가치를 더 높이 산다. 두 나라 모두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작과정에서 폭력과 파괴를 경험했지만 미국은 연방이라는 자유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프랑스 혁명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혁명이 자유의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그 이유를 프랑스 혁명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을, 동료의 자유가 아니라 결핍의 충족을, 자유가 아니라 풍요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찾는다. 혁명가들도 ‘동정’과 ‘연민’이라는 정념에 휩싸여 혁명을 지속시킬 제도를 만드는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은 독립으로 자유를 맛본 시민들이 공적 행복을 느끼며 일상적으로 통치에 참여하고 공권력에 대항해 자신의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 했다. 미국헌법은 “새로운 정치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고 내부의 규칙을 규정”하며 “혁명이 실질적으로 종말을 맞은 후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공적 자유에 대한 정념’이나 ‘공적 행복의 추구’가 미래 세대를 위한 자유로운 유희를 수용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보장했다. 즉 미국헌법은 혁명의 목적인 자유가 혁명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이자 실생활에서 쓰고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도록 했다. 미국 헌법의 수정조항들은 건국의 의미를 되살렸고 아렌트는 “미국 헌법의 진정한 권위는 수정되고 확장되는 그 내재적 능력에 있다”고 말했다. 즉 권위는 시민들 속에 있게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풍요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지금 이곳 한국의 선거판은 혁명이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아렌트의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시민이 권력의 주체로서 자유를 누리려면 개혁이든 혁명이든 그 자유를 지속시킬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해야 한다. 혁명이 열어놓은 자유의 공간을 지속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혁명은 지속될 수 없다. 혁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건 자유로운 시민의 몫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무대가 바로 연방국가이다.

 

그동안의 사건은 자유를 지속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정치를 사유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헌법을 개정시켰지만 개헌은 정치인들의 타협으로 이루어졌고, 국민투표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3개월 동안의 논의는 시민들의 말과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헌법은 정치를 자유의 실현으로 사유한 결과물도 아니었고 시민에게 자유의 공간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설치 정도가 논의되었을 뿐 혁명을 지속시킬 제도에 관한 고민은 없었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살 수 있는 권리, 그렇게 살아갈 권리는 지금 우리에게 건국에 버금가는 행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 그렇기에 연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렌트가 연방국가의 장점에 주목했던 최초의 사상가는 아니었다. 아렌트에 앞서 연방에 주목했던 여러 사상가들이 있었고, 초기에 연방주의를 고민했던 인물들은 연방주의를 단순히 국가체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민족주의 열풍이 한창이던 유럽에서 연방주의를 주장했던 사상가 프루동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루동은 《연방의 원리(Du Principe federatif)》라는 책에서 모든 정치질서가 기본적으로 권위(authority)와 자유(liberty)라는 두 가지 원리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신앙과 자유로운 이성을 따르는 이 두 원리는 서로 대립하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자유의 질서 자체가 자유를 가로막기도 하고, 때로는 권위가 자유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프루동은 어떤 순수한 원리를 표방하는 것보다 두 원리를 조절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가능케 하는 체제가 연방주의라고 봤다. 불가능한 순수성을 탐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상호계약으로 연방국가를 세운 시민은 자신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만큼을 국가에서 얻어야 하고, 계약의 구체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가 시민의 자유와 주권, 주도권을 보장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건 시민의 자유와 주권, 주도권은 양도될 수 없고, 시민이 자신의 자유와 주권을 보류하는 건 더 많은 자유와 권위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즉 연방국가는 지배나 통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서로에게 지운 의무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연방정부가 아니다.

 

프루동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혁명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민족주의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프루동의 연방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고려하지 않고 확장을 추구하던 민족국가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연방권력은 지방정부의 수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지방정부는 시민의 권리와 특권을 결코 억누를 수 없다. 연방국가는 국가보다 시민에게, 중앙권력보다 지방정부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준다. 이를 위해 연방국가는 유기적인 분리(organic separation)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리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키고 공공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프루동 사상의 특징은 경제적인 권리가 정치적인 권리를 뒷받침해야만 그 질서가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만일 연방질서가 단지 자본과 상업의 무질서를 보존하는 것이라면, 이 잘못된 아나키의 결과로 사회가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눠진다면, 정치질서는 안정되지 못할 것이다”(아나키즘을 단순히 무정부주의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질서를 개혁한 뒤에 연방정부는 경제를 개혁해야만 하고, 내부와 외부의 자본주의 착취와 금융착취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공공서비스의 독점과 교육특권, 노동분업, 자본의 이해관계, 불공정한 과세 등을 없애고 평등하고 호혜적인 노동질서를, 농업과 산업의 연방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이런 프루동의 관점을 따른다면 미국 연방이 실패한 이유는 그런 부분에서 주의 권한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헌법은 각 주가 화폐를 주조하거나 신용증권을 발행하는 등의 근본적인 경제활동을 주도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미국에서 프루동의 사상을 이어받았던 벤자민 터커는 ‘자유화폐free money와 경제적 자유를 주장했다). 경제영역에서 연방원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연방의 원리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연방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연방주의로 개헌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권력을 쪼갠다고 그 권력의 속성이 자연스레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마이클 테일러가 우려하듯이, 공동체들의 연방이 언제나 다정하고 큰 문제없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작은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연방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적인 갈등과 주변 국가의 공격 또는 대응이라는 공동체 내외부의 조건들을 고려할 때 무조건 낙관할 수는 없다.3)

 

허나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연방주의


연방주의는 단순히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방주의는 다양한 풀뿌리운동들이 자기결정권을 실현하고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홀로 고립된 풀뿌리운동은 연방주의를 통해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하고 다른 풀뿌리운동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방주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이자 요구이기도 하다.

 

연방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들 중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은데, 이들은 연방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꼼뮨들의 꼼뮨을,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을 꿈꿨다. 이들이 꿈꾼 건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들의 꼼뮨이었다. 꼼뮨에서 한 개인의 자아와 자유는 제한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자아와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연방을 통해 ‘국가 안의 국가’를 만들고, 억압적이지 않고 존엄한 노동질서를 만들며, 더불어 살고 함께 누리는 관습과 문화를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대표적으로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4)에서 왜 작은 공동체들이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묻는다.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종교적인 규율을 따르거나 소수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공동체들은 내부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자율적인 삶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꼼뮨은 적절한 규모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것이 꼭 폐쇄적이거나 작은 규모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폐쇄되고 격리된 공동체들은 자급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어렵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자유의 이념은 실제 생활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렇지만 만일 다양한 공동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니 연방이 하나의 대안인 셈이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 개성이 기존의 공동체와 어울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젊은이들은 18세가 되면 공동체를 떠나야만 한다. 다른 세계에 섞이지 않고, 그 세계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젊은이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야 할 것이다.” 이 떠남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떠남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이들이 자유로이 떠나 다른 공동체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역시 연방이 가진 장점이다. 크로포트킨이 연방주의를 궁극적인 대안이라 봤던 건 개별적인 공동체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연방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구상이다. 그리고 크로포트킨은 이런 연방이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본다. 12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도시 공동체들이 일제히 왕정에 맞서 봉기를 했는데, 이 봉기는 수공업 길드와 농촌공동체의 연합이라는 오랜 정신으로 준비되었다.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12세기의 유럽인은 본질상 연방주의자였다”고 과감하게 선언한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12세기의 현상을 어떤 탁월한 개인이나, 어떤 중앙집권적 제도의 공으로 돌리지 말고 친족관계와 농촌공동체와 같이 인류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는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에 농촌의 촌락공동체가 힘을 가졌던 시기이자 자유도시들이 연합을 형성하며 힘을 키웠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자족적인 농촌공동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경계를 초월했던 많은 조합과 길드들이 만든 연합은 연방국가라는 이름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연방이었다. 이들은 무력이나 법이 아니라 서로간의 협약과 공동서약, 우정(amilas)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고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100여 개 이상의 도시가 속했던 독일의 한자동맹을 보면 그 힘이 개별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서로가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연방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고 따로따로 모은 힘보다 더 큰 연합의 힘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품었기에 크로포트킨은 미국과 캐나다의 연방주의 체계를 찬양했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소비에트의 중앙집권화를 반대하며 ‘非국가적 성격의 연방’을 주장했고 연방주의와 지역자치를 요구했다.5)

 

연방주의는 풀뿌리의 힘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1991년에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한국에서도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풀뿌리운동의 성장했다는 얘기를 듣기 어렵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어도 여전히 중앙집권형 국가의 힘이 강하고 지방정부는 자치와 자급과는 거리가 먼 단순집행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풀뿌리운동이 자기 지역에 고립된 탓도 크다. 연방주의는 그런 고립을 깨고 서로 연대해야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기결정권의 강화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지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방주의를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사상가는 구스타프 란다우어이다. 란다우어는 연방주의를 사회혁명이라고 봤다. 생활정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들의 연방을 뜻하는 연방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고 반복적인 문제의 제기와 이에 대한 개선을 포괄하는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재생 혹은 회복, 즉 생활 속에서의 끊임없는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6) 연방주의는 인간이 자기책임성의 원리를 견지하도록 하고 인간본질을 회복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연방주의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란다우어는 아나키즘의 본질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제도가 연방주의라고 봤다. 그는 맑스주의에 맞서면서 분권적이고 반(反)권위주의적인 사상을 발전시켰고 아래로부터 조직된 자율적인 꼬뮨들의 연방으로 국가를 대체하려 했다. 란다우어는 자발적인 협동과 상호부조에 기초를 둔 사회, 농업과 산업을 결합한 농촌 공동체이자 지역공동체에 기초를 둔 평등하게 교환하는 사회를 주장했다. 연방주의는 스스로 결정하면서도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호혜성을 유지하는 삶을 살자는 호소였다.

 

이것은 사회주의에 관한 란다우어의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란다우어에게 사회주의는 갑자기 한꺼번에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는 것이나 갑작스런 종말론적 활동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자라고 있는 무엇, “항상 막 시작하고 항상 움직이는” 무엇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란 어떤 이상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려는 분투이다. 인간의 아름다움, 고귀함, 풍요로움을 위한 분투인 사회주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정신이 아니라 영성을 가지고 자신을 불태우는 자각된 민중의 의지이다. 란다우어는 민중에게 “자본주의 밖으로 나가자”고, “인간이 되기 시작하자”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하나의 영감이자 모델로 기여하는, 현존 질서 내부의 리버테리안 요새 형태로 지금 우리가 대안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란다우어는 국가 속에서 국가를 변화시킬 방법으로 연방주의를 생각했다.7)

 

연방주의는 단순히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른 혼과 몸으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결의가 뭉치고 하나의 운동이 될 때 연방주의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를 실현하는 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연방주의 개헌을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연방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정, 평택, 용산, 밀양, 삼척 등 수많은 지역들이 고립된 지방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으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연합을 구성한다면 연방주의는 이미 정신으로 실현되는 셈이다. 개헌은 그 정신을 지속시키는 틀이지 연방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연방주의에서 가능한 실험


연방주의를 얘기하면 이런 반대들이 제기될 수 있다. 연방주의는 영토가 넓은 국가에서 실시되는 것이지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는 맞지 않다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큰 국가들만 연방주의를 한다는 것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착각이다. 한국보다 큰 나라들도 있지만 작은 나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연방주의 경험을 가진 스위스의 면적은 남한의 절반도 안 되고, 벨기에의 면적은 1/3 정도이다. 면적과 연방주의는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부패를 고려할 때 연방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4대강 사업에만 들어간 돈이 24조원이고 그와 관련된 부패만 모아도 그동안 지방정부들이 쳐온 사고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하물며 연방주의 하에서는 주민들이 능히 지방정부를 소환해서 심판할 수 있고, 굳이 명박산성을 넘지 않아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지방정부의 문제가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 문제를 바로잡을 시민의 권한도 강화되기 때문에, 그리고 부패를 부채질하는 중앙정부이나 재벌의 입김도 약해지기 때문에 외려 지방정부의 부패가 줄어들 수도 있다.

 

또한 한국처럼 수도권으로의 집중도가 높은 곳에서 연방이 실현되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지방이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방국가에서 재정은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른다. 오스트리아와 말레이시아의 지방정부는 연방정부에서 27~30% 정도의 재정을, 미국은 26% 정도를, 오스트리아와 인도는 46% 정도를, 스페인은 73% 정도의 재정을 지원받는다. 즉 연방국가가 된다고 해서 각 지방정부가 자체재정만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건 아니고, 그건 더 큰 자유를 보장하는 연방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그리고 지역발전이 단지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재정의 불균형이 연방주의의 장애물일 수는 없다.

 

이기우는 우리 상식과 달리 이미 연방주의가 많은 나라들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브라질, 인도, 독일,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벨기에, 이란 등 세계적으로 28개의 연방국가가 있고 세계인구의 약 40%가 연방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연방국가라는 이름을 직접 쓰지는 않아도 스페인이나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인도처럼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8)

 

연방국가가 되면 당장 생길 이득도 많다. 일단 연방국가가 되면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 지방에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다. 수도권의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방에 핵발전소를 짓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고, 안보를 위해서라며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해군기지공사를 강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이 살지도 않는 결정권자가 존재할 수 없다.

 

아울러 연방국가가 되면 경찰이나 사법부도 변할 수밖에 없다. 연방국가 하의 자치경찰제도는 경찰청장이나 서장을 선거로 뽑으니 지역주민들의 의견이나 반대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중앙경찰청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인 입법권을 갖게 되면 사법부도 그것을 반영해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연방국가가 되면 그 지역의 정서와 상식을 반영하는 판결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토호들이 지배하고 이미 자급과 자치능력을 상실해버린 지방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조건 성공을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방주의 하에서는 당연히 자치와 자급에서 시민들의 주도권이 강화된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행정을 다시 전유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중앙이 계획하고 지방이 실행하는 형태의 역할분담은 근본적으로 폐지될 것이기에 토호들의 힘도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간의 자발성은 조례나 법률을 통하지 않고 자발적인 사회협약들을 통해 실현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협약들은 법률에 준하는 기능을 맡음으로써 시민들이 자신의 주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연방국가에서는 다양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당장 지역이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중앙통화를 보완할 수 있는 지역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 지역통화는 지역 바깥에서는 쓸모없거나 그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지역경제를 살찌우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통화라고 해서 꼭 새로운 형태를 취할 필요도 없고 상품권과 같은 형태를 유통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프린 암 킴제(Prien am Chiemsee) 지방에서 유통되는 킴가우어(Chiemgauer)라는 지역통화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지역기업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 사무국이 100 킴가우어를 97유로에 시민단체에게 판매하고 단체는 이를 시민에게 100유로에 판매하고 3유로를 단체활동비로 충당한다. 시민은 100킴가우어를 액면 가격대로 쓰고, 지역기업은 100킴가우어를 다른 지역기업에 지불하든지 아니면 5%의 수수료를 내고 95유로로 환전할 수 있다. 킴가우어 사무국은 이 환전에서 2유로를 남겨 사무국 운영비로 쓴다. 3개월마다 화폐가치가 2%씩 떨어지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제때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생태도시로 유명한 브라질 꾸리찌바에서는 폐기물을 분리수거하는 대가로 버스표를 지급하는데 그것이 일종의 지역통화 역할을 한다. 스위스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비르(WIR)라는 대안화폐가 있고 스위스 전체 중소기업의 약 20%가 이를 사용한다. 중소기업들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 내의 중소기업들을 활성화시키고 서로를 연계시킨다. 이런 실험들이 진행되는 곳은 대부분 연방국가이고, 시민들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기본소득과 관련된 새로운 상상들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얼마의 돈을 줄 것이냐가 아니라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찾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줄 것인가이다. 중앙은행의 통화만이 아니라 지역통화가 보완화폐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농촌의 회복이나 로컬푸드의 활성화도 연방체제 하에서 더욱더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자발성의 자연스런 결합이 가능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복지도 가능하다. 일본에서 얘기되는 커뮤니티 옵티멈(community optimum), 즉 상부상조에 의해서 지역사회 복지를 최적 수준으로 만드는 운영시스템도 가능하다. 이것은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침과 재원을 내리는 중앙집권형 국가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다. 당연히 교육도 지역에 기반을 둔 교육체계를 만들 수 있고, 전국이 동일한 지침에 따라 교육을 진행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학벌체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연방주의는 통일에 대비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이상적인 방법이 연방주의이다.

 

지난 10월 19일 문재인 후보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만들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의 진의를 무조건 의심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똑같은 연방이라도 그 의미가 아주 다를 수 있다.

 

연방주의로의 개헌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리고 연방주의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살겠다는 의지와 결의이다.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고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 속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억압적이지 않은 권력 또는 자유로운 권력을 새로이 고안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정치인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대비할 자유로운 정치활동과 자유로운 연대, 그것을 반영하는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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