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성공회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다.
오늘 성공회대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그동안 나만 불편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성공회대 부총장을 맡고 계신 사회복지학과 이영환 교수가 글을 올렸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학내 피케팅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담은...
http://www.skhu.ac.kr/board/boardread.aspx?idx=13514&curpage=1&bsid=10017

학교측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방적인 피케팅, 참으로 유감입니다'라는 제목이다.
글을 읽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학교의 행정직원이 "원래 학과장을 보조하는 조교에서 출발하였고, 후에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졸업생들이 학과 일을 보좌하면서 여러 가지 업무능력 신장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를 담은 직책"이라는 점을 대학에 20년 이상 있었지만 처음 들었다.
앞으로 학교에 계신 직원분들을 만나면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사회진출을 준비하시라고...
심지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기간을 2년으로 정했다니...
참 놀라운 마음이시다...

또 하나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계약이 만료되어 사회로 진출하게 된 상황(정말 사회로 진출한다고 생각한 걸까)이 "일방적이고 살인적인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점이다.
"학교측에 공식적인 대화제의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 대학을 부도덕한 대학으로 매도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식적인 대화제의 한번 없이 집단행동을 시작할까?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얘기이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점. "교수들의 봉급수준이 항상 바닥권을 헤어나지 못할 만큼 아껴써야만 살림이 가능한 대학입니다.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 대학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성공회대 교수들의 봉급수준이 얼마이길래 바닥권을 헤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교수봉급이 낮은 건 교수들이 학교측에 요구해야 할 얘기이지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들에게 해야 할 얘기는 아닌 듯하다.
살림을 아껴쓴다는 것하고 착취하고는 또 무슨 상관이 있는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신 분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참으로 의아한 일은 이 얘기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분이 수구 꼴통이나 신자유주의의 신봉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외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분이다.
한겨레신문의 사외이사이기도 하고, 구제역 살처분을 비판하는 분이기도 하시며, 한국의 빈곤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구조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등의 빈곤은 불공정한 제도적 편견의 산물이라고 외부에서 주장하는 분이기도 하시다.

이 분 외에도 성공회대에 비정규직 문제를 '외부에서' 비판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들이나 여러 교수들은 외부활동을 많이 할 뿐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편에 서겠다'고 공언했던 사람들이다.
그 많은 교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또 하나 의아한 점이 있다.
성공회대에서 비정규직 문제로 집단행동이 시작되면서 여러 신문사에 보도자료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경향신문에 성공회대 대학원생이 글을 쓴 것 외에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왜일까?
기자들이 너무 바빠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인건 학생들이다.
성공회대 홈페이지 커뮤니티에 가면 학생들이 계속 글을 올리고 있다.
외부에서 다뤄지든 말든 내부에서의 논의는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학교측은 100도씨가 되길 기다리는 걸까?
'인권과 평화의 대학'의 진면목을 보여주길 위해?

미국의 지식인 마셜 버만(Marshall Berman)은 [맑스주의의 향연] (이후, 2001)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많은 지식인들이 각자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일상 생활의 문제와 흐름에서 단절돼 있는 것이 지식인들의 직업적 위기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특별한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다른 어떤 정치운동보다도 민중에 주목하고, 민중을 존중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민중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며, 민중을 뭉치게 해,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게 한다는 사실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우리가 민중의 구체적 삶과 연결지점을 잃어버린다면, 장차 민중의 삶을 한데 묶을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민중이 세계를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처럼 민중들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중이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거나 세계를 변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거리의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한, 그 잘난 [자본론]을 읽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가 버만을 좀 좋아하는 건 그가 '거리의 지식인'이 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성공회대 사건을 보면서 버만의 지적이 아주 명쾌하고 올바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밖으로 아무리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떠들어도 결국은 자신의 일상이 그와 단절되어 있다면, 자신의 생활근거지에서 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욕구에 주목하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똑똑하고 좌파이론에 박식한 사람들일지라도(성공회대 교수들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 커리큘럼을 보면 이론적인 면에서조차도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들은 진보적일 수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말로만 진보를 떠드는 자들을 좀 솎아내거나 그들이 스스로 반성하며 갱생의 길을 걷게 해야 할 듯 싶다.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 이제 좀 지겹지 않은가...

나는 성공회대를 다니지 않는다.
허나 성공회대의 이름을 자주 듣곤 했다.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성공회대의 지식인들을 통해서 그 이름을 자주 들었다.

그러다 올초 성공회대에 관한 새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성공회대에 근무하던 계약직 행정직원이 비정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참 안타깝게도 학교는 이런 입장을 내세웠다고 한다.


마지막 문장이 눈에 띤다.
"건실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직장인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개뿔....

어제 3월 30일엔 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 선언문을 발표했다.
계약기간이 남은 4인 역시 계약기간 종료와 더불어 학교를 떠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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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선언문

   

지난 2월 28일 학내 계약직 행정직원 6인이 계약만료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계약기간이 남은 4인 역시 계약기간의 종료와 함께 학교를 떠나게 될 예정이다. 이에 대하여 학교 측은 효율적인 학사행정업무를 위한 개편과정에서 발생된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비정규직의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모순적인 과정이었으며, 학내 구성원과의 대화를 차단한 채 진행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임이 밝혀졌다.

  이에 대하여 학교는 법적으로 그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가 근거로 삼고 있는 (소위)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해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근로환경을 보호하고 또 그들의 능력을 기꺼이 인정하여 정규직화하기 위함에 있다. 그러나 지금 이곳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에서 비정규직법이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으며 이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일방적인 학사행정 개편과정에서 안정적인 학사행정업무를 받지 못한 학생들, 기존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용된 근로학생들, 업무혼선을 겪은 정규직 직원들 및 교수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다.

  이에 여기 모인 당사자와 참가자들은 학교의 무리한 학사행정개편 및 비정규직 해고를 통한 정규직화에 반대하며, 기존 계약직 행정직원의 정규직화를 통해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출범을 선언한다. 이는 인권과 평화라는 학교의 교육이념이 지금 바로 이곳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시급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의 요구사항을 학교 측에 제출하는 바이다.

  하나, 학교 측은 일방적인 고용승계 회피 및 행정파행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하나, 계약 만료자를 포함한 계약직 행정직원을 전원 정규직화하라!

하나, 직원․학생․교수 등 학교 구성원들에 대한 민주적이고 체계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마련하라!

  우리는 학교 측이 이 요구사항을 성실히 듣고 대화하며,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또한 ‘더불어 사는’ 성공회대의 교육이념을 지키기 위해 학내 구성원과의 연대를 통해 지속적인 공동행동에 나설 것을 선포한다.

 

  2011년 3월 30일

성공회대학교 계약직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일반대학원사회학과, 일반대학원사회복지학과, NGO대학원비정부기구학, NGO대학원정치경제학과, 문화대학원14기, 26대 총학생회, 영어학과, 디지털컨텐츠학과, 다함께, 역사철학회, 애오라지, 아침햇살, 뿌리, 짜이집, 사람세상, 꿈꾸는슬리퍼, 성공회대비정규직문제해결을위한네트워크, 나눔가게, 따뜻한밥한끼캠페인단, 단추카레, MR CREW, 진영종(영어학과 교수), 김혜인(영어학과 교수), 서영표(연구교수), 김성경(연구교수), 김용한(외래강사), 유해정(외래강사), 김동한(외래강사), 김진환(외래강사), 안진걸(외래강사), 김명희(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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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회 때 배포된 선언문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성공회대의 지식인들 때문이다.

그렇게 진보적이고 인권과 평화를 위한다는 성공회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너나 없이 떠드는 성공회대에서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교수, 외래강사 통틀어 '딱' 10명이다.
교수: 영어학과 진영종, 김혜인
연구교수: 서영표, 김성경
외래강사: 김용한, 유해정, 김동한, 김진환, 안진걸, 김명희

밖에서 그렇게 비정규직 문제를 떠들었던 교수들의 이름이, 성공회대를 대표한다는 진보적 교수들 이름이 하나도 없다.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볐다. 설마...
그런데도 없다...

물론 학내 사정이야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잘리고 앞으로 잘려나갈 직원들이 약자임에는 틀림없다.
전후 사정 다 따지더라도 밖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던 지식인들이 침묵한다는 건 참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성공회대에 속한 지식인들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볼 생각이다.
당신은 당신이 떠들어대는 그 내용을 어떻게 살고 있냐고.
그때 당신은 어디 있었냐고.

진보?
살지도 못하면서 떠들지도 마라.

굳바이, 성공회대.
큰 기대도 없었지만 쓰린 가슴 추스리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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