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의 지방선거로 새로이 구성된 지방정부가 인수위 활동을 끝내고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 선거결과로 드러났듯이 이번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은 만큼, 그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지방자치를 위한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까? 나는 공무원 사회의 인식과 행정체계를 진보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그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어느 자리에서 공무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새로 당선된 시장을 ‘오너’라고 불렀다. 그 공무원은 새로운 오너가 왔으니 그의 생각에 맞게 업무계획을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활동이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벌써 새로운 계획을 짜서 보고할 예정이라 했다. 기존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참여, 소통, 혁신같은 그럴싸한 단어들을 짜깁기한 계획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렇게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강조하는 행정체계에서는 진보적 지방자치의 열매가 영글기 어렵다.


그리고 그 공무원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너라는 말을 들으며 공무원 사회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선거결과와 관련 없이 계속 자리를 지키지만 단체장은 4년마다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자치단체장의 성향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에 맞춰서 계획을 짜는데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사업에 진심(眞心)이 없다.


더구나 진보적 지방자치의 주인공에는 단체장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도 포함되는데, 공무원들은 그 단체장을 선출한 지역주민들의 생각에는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다. 공무원노조도 이런 부분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공무원들은 주민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걸 꺼린다.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은 공적이고 주민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정체계와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진보적 지방자치가 실현되기 어렵다. 그럴싸한 계획을 급히 마련해서 새로움을 강조하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진지하게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새로이 당선된 자치단체장의 첫 단추는 이런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아쉽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자면, 참여예산제도가 아무리 혁신적인 제도라 할지라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그것은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 그리고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더라도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 구상은 실패하기 쉽다. 사실 참여예산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던 브라질의 뽀르뚜알레그리시에서도 공무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예산체계를 친절히 설명하고 인내력을 가지며 주민을 만나고 자신의 권한을 주민과 공유하는 공무원이 있어야만 참여예산제도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주민들만이 아니라 공무원들도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마련되지 않는다. 1년 안에 새로운 성과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4년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시민과 공무원이 함께 어울려 밥 먹고 놀며 즐기는 다양한 장들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이전에 신뢰와 관계가 필요한데, 지방정부는 그런 것을 마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도록 사업의 계획, 집행, 평가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은 사장이 아니다. 사장은 자신의 판단과 능력에 의존하지만 시장은 끊임없이 시민들과 소통하며 판단을 내리고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능력을 펼쳐야 한다. 향후 1년 동안 단체장은 그런 장을 마련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금 당장 성과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야 진보적 지방자치가 성공할 수 있다.

갑자기 떡볶이가 한국의 정치논쟁의 소재로 등장했다. 서민과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탁구를 치며 시민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에 민주당은 떡볶이 먹고 어린애 안아준다고 서민의 어려움이 풀리는가라고 물으며 그 시간에 차라리 기업을 설득하라고 비판했다. 서민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시장이니 서민적인 정치 이미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시장이겠지만, 선거나 중요한 정치적 고비 외엔 정치인들의 코빼기조차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장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자주 군것질거리로 삼는 떡볶이지만 정치인들이 자기 이미지 만들 때 말고 평상시에도 먹을지 의심스러운 것이 떡볶이다.

사실 대통령이 저잣거리로 나서 시민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걸 비판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자신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도 포기하고 서민을 위해 팔 걷고 나서겠다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말이 많고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건 바로 소통의 방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시장을 찾았을 때 상인들이 입을 모아 요구한 건 대형마트의 진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대기업들의 중형 마트까지 등장해 동네 구멍가게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어렵사리 만난 대통령에게 가난한 상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정한 대통령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말은 좋지만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싼 가격에 물건을 들여오는 대형마트와 영세상인들의 공생이 정말 가능할까?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최소한 150개의 가게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웬만한 시장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셈인데, 이 둘의 공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자고로 소통이란 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며 기꺼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상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은 답을 내려 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얘기가 오갈 수 있도록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적 소통은 사회적 약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아픔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려 할 때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지금 한국 정치에는 소통이 없다. 이 대통령의 소통불능을 비판하는 민주당 역시 소통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민주당이 발표한 '뉴민주당 플랜'을 보면 뉴민주당이 아니라 뉴라이트 플랜 같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욕심은 '중도개혁주의'라는 해괴한 방향으로 향했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얘기하지만 경제성장을 해야 분배가 가능하니 경쟁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사전적 기회의 평등을 확대한다는 '기회의 복지'라는 개념은 본심을 드러낸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생활밀착 정당' 역시 소통과는 무관한 그네들의 말잔치이다.

사실 이런 소통불능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옥탑방이라는 말을 모른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의 정몽준 최고위원은 2008년에 버스비가 70원이라고 얘기해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민과 소통하려면 서민의 경험에서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대단한 엘리트 출신인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서민정치가 되려면 서민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한국의 정치구조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한다. 지방선거마저도 정당공천제로 꽁꽁 묶여 있어 평범한 시민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는다. 그러다보니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만 있지 서민의 정치는 한국에 없다.

현재 한국의 소통은 꽉 막혀 있다. 빨리 그 맥을 뚫지 않으면 시장에 나가 악수를 하고 떡볶이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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