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루시드폴이 부른 ‘고등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고등어라는 존재가 주는 감동보다 그 존재를 바라보는 가수의 시선 때문이다. 고등어를 보며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 걸”라고 노래하는 김창완의 시선과는 또 다른 따뜻함과 공감이 가사에 묻어난다.


어쩌면 사회운동, 인권운동도 고등어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쳐 가는 튼튼한 지느러미.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배불리 먹는 삶을 위해 자기를 아끼지 않고 바다를 가르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는 위안을 얻을 것이다.


허나 고등어가 단지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 나름의 삶이 있고 꿈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생을 투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해방이나 변혁이라는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 꿈과 소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설명되지 않는 꿈과 소망에 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현?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움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했다는 환호를 나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믿어서도 아니고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는 말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새로운 것의 등장을 기대하지만 그 새로움이 아무런 기반 없이 출현했다고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이 태어난다. 사상가 아렌트(H. Arendt)가 말한 ‘탄생성(natality)’의 의미처럼,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류 자체(human beings)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이 태어난 인간은 이미 태어난 사람과 세계(world)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전 세계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한 완전한 새로움은 없다. 특히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사회운동이 그런 새로움을 취하기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나는 믿는다.


예전에는 새로움에 들뜨는 분위기를 단지 갈망이라 생각했다. 워낙 현실이 갑갑하니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나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흥분이라 여겼다.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환호는 그 새로운 것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의도로 느껴진다. 특히 지식인들에게서 그런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이라며 이전과 다른 양식을 만들고 그것을 설명하고 주도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욕망이 개입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움에 대한 환호를 언제나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나 희망버스는 분명 기존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운동이다. 하지만 보기 어려웠던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권력과 자본에 맞섰던 수많은 사건들을 찾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방법은 새로워지겠지만 그 뜻과 과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예를 들어 1924년의 암태도 소작쟁의는 최초의 소작쟁의이자 성공적인 쟁의로 불린다. 부조리한 소작료를 거부하는 불납동맹이 결성되고, 지주측이 이를 탄압하고 식민경찰이 간부들을 구속시키자 소작인들은 면민대회를 열고 저항에 나섰다. 이들은 소작인들이 구속된 목표경찰서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몰려갔고 석방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굶어죽겠다고 결의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굶어죽기를 각오한 아사동맹이 4일을 넘기자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변호사들이 변호를 자처했다.


작가 송기숙은 소설 《암태도》에서 당시 소작인들의 고민을 글로 복원했다. “요새 세상에는 싸운다는 것이 그냥 버티는 이렇게 버티는 것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버티면서 또 한쪽으로는 신문으로 세상에다 대고 왜장을 치고, 양수겹장으로 몰아쳐야 해요. 개명한 세상에 산다는 것이 뭡니까? 연락선 놔두고 풍선 타고 다니던 생각만 하면 그만치 세상에서 뒤떨어지는 것이 됩니다.…옛날 동학난리 때도 요새같이 신문만 있었더라면 일이 그렇게 전라도 쪽에서만 일어나다 말지는…….” 기술은 달라졌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건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사람들을 동요시키던 논의꺼리도 변하지 않았다.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은 투쟁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관해 회의를 열며 이렇게 얘기한다. “저자들하고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부애난다고 혹시라도 저 작자들한테 손을 대서는 큰일납니다. 악담은 얼마든지 퍼부어도 좋지만 손을 대서는 절대로 안돼요. 혹시 저쪽에서 먼저 손을 대더라도 그냥 맞아요. 저놈들은 내중에 가서는 이쪽에서 그렇게 손을 대도록 수를 쓸지도 모릅니다. 경찰을 불러들일 언턱거리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애난다고 때리는 것은 저자들 수에 말려드는 것이고, 같이 치고 맞더라도 경찰을 불러들일 구실이 되기는 마찬가지니까 결국 이 쪽이 지는 것입니다. 이 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1924년의 일이니 무려 87년 전이다. 허나 지금의 상황과 얼마나 비슷한가?


암태도 소작쟁의 당시 소작인들이 내세웠던 조건은 잡혀간 소작인들의 석방과 소작료율을 7, 8할에서 4할로 내리는 것이었다. 당시 5, 6할을 하던 소작료를 4할로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납동맹, 아사동맹을 각오했던 암태도민의 저항은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지주측은 소작료율 인하와 함께 2,000원이라는 큰 돈을 소작인들에게 기부해야 했다. 희망버스와 관련해 불가능한 요구라니, 산업계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느니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1919년 3․1운동 때 사람들이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는 불가능한 구호였다. 어쩌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보다 훨씬 더 실현 불가능한 구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그 구호를 외친 수십만 명의 민중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지금처럼 조직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구호에 자신의 불만과 꿈을 걸었다. 구호는 하나였지만 그 속엔 민중들의 다양한 소망과 꿈이 담겨 있었다. 일제 관리의 못된 행동에 대한 불만, 무거운 세금과 부역에 대한 불만, 인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정책에 대한 분노, 강제로 묘목을 심게 하는 것에 대한 분노, 독립된 삶을 살고자 하는 꿈, 공동체와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꿈 등이 그 구호에 뒤섞였다.


그 불가능한 구호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 다양한 꿈들을 담을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운동경력이 화려하고 오래 되었다고 한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들, 아무리 대단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한들, 하나의 구호로 터져 나오는 그 수많은 꿈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수많은 시민의 이름을 팔아도 그는 홀로 있는 자일 뿐이다. 홀로 있는 자는 운동을 하는 자가 아니다.



운동과 정서, 연대



나는 문제를 추상화시키면서 자신들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관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사회를 바꾸는데 어찌 모범답안이나 정답이 있을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는 반갑지만 옳다, 그르다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밥맛이다. 누구나 훈수를 둘 수 있지만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정답이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운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당연히 이념과 조직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인적․물적 자원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단체도 필요하고, 그런 단체가 내세우는 이념도 중요하다. 그런데 관변단체가 폭넓게 퍼져있고 노동조합과 같은 기본조직조차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이념이나 단체의 힘으로만 구성되기 어렵다. 만일 이념이나 조직만이 문제라면 김대호나 김기원이 지적했던 조선산업계의 동향이나 실현가능한 정책이 중요할 수 있다. 허나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식민지 시기 농민운동과 관련된 책을 뒤적이다 재미있는 구절을 봤다. 3․1운동 당시 “주변 마을이 다 하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른바 ‘체면시위’라는 것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체면시위의 규모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체면이라는 것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이다.


지금 우리라고 해서 다를까? 집회 때마다 나부끼는 깃발도 어느 정도는 그런 체면을 상징한다. 그리고 ‘나도 그곳에 있었다’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인증’욕구도 그런 체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체면 차리기’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체면을 세우려 드는 건 아니고 체면이 밥 먹여주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체면을 생각한다면 평화를 깨고 남의 삶터에 침입하는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고, 어른의 멱살을 잡는 용역깡패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체면을 세우려는 용기는 품위있는 사회를 만든다. 단 하루라도 품위있게 살고자 하는 체면이 하루하루의 일상이 될 때 운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한 분노나 공감도 사람들을 움직인다. 한 사람이 129일 동안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외쳤건만 기업과 세상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 목소리를 무시했고 그 사실에 사람들은 분노했다(그 사연을 소개한 故정은임 아나운서의 멘트가 아직도 인터넷을 떠다닌다).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보면 1991년 5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분노했다. 그러니 지금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김진숙의 어깨 위엔 여러 사람들의 짐과 꿈들이 실려 있다.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하는 건, 냉정하게 이성을 차리고 이해관계를 따지자고 얘기하는 건 그 분노의 원인을 인정하지 않는 위선이다. 그 속에는 공감하지 않고 타자의 꿈을 배제하려는 폭력의 싹이 똬리를 틀고 있다. 반면에 공감이나 정서를 담은 합리성은 삶의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그런 합리성에 바탕을 둔 위로의 마음도 사람들을 움직인다. 누군가는 크레인 위에 올라 있어야 희망버스가 출발할 수 있다. 그 누군가가 꼭 나일 필요는 없지만 그 버거운 짐을, 자신의 다른 소망과 꿈을 포기하고 그 짐을 지려는 사람을 위로하고픈 마음. 평생을 투사로 싸워주길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이가 삶을 선택할 수 있고 때론 쉴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홀로 크레인에 올라간 이를 보며 우리가 건네고 싶은 그 많은 말들이 희망버스로 이어졌을 것이다. 먼 발치에서나마 그 얼굴 한번 보고 건강하세요, 꼭 이기세요, 라고 말하고픈 그 맘이, 나도 힘들지만 함께 힘을 내요, 라고 말하고픈 그 공감이 희망버스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또 다른 현장에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이 당신의 승리로 우리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연대의 마음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희망버스의 희망은 하나일 수 없다.


그런데 소위 ‘운동권’은 위로에 인색하다. 고맙다, 수고했다며 손 한번 꼭 쥐어주고 등 한번 두드려주면 될 텐데 그런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 운동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운동을 책임졌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앞서 루시드폴의 ‘고등어’라는 노래를 얘기했는데, 그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위로는 동정이 아니다. 고맙고 수고했다고 얘기하는 게 어찌 동정일까. 동정은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만 위로는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 즉 같이 아파하는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이 우리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퍼진 것이 위로이니 위로는 서로의 마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연결시킨다. 위로는 계속 꿈을 꾸자며 서로를 다독인다. 서로에 대한 위로 없이 연대가 가능할까?



다양한 삶과 꿈이 만나는 장



2008년 촛불집회 때 참여자들이 이랜드나 비정규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운동의 한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같은 논리로 따지면 지금 희망버스를 보며 버스가 고리핵발전소로 가지 않는다, 포이동으로 가지 않는다며 볼멘소리가 나야와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노동이슈가 다른 모든 사안보다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하나의 꿈을 서로에게 강요하는데, 이 꿈이 다른 꿈보다 앞선다며 설득하는데 익숙하다. 힘들 때 서로를 위로하기보다는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데 익숙하다. 조그만 차이도 불편해하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한다. 대화와 토론은 서로의 꿈과 소망을 나누는 게 아니라 내 꿈과 소망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만 들으니 아무리 토론을 많이 해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노동이슈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꿈을 꿀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어찌 노동으로만 정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꿈이 열심히 일만 하는 사회도 아니고. 그러니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꿈이 다양한 사건들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의 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 시기라고 얘기하지 말고 내 앞만이 아니라 다른 운동의 앞도 봐야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이야말로 농민운동과 노동자운동이 만나야 할 때이다. 도시에서 계속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하며 살아라가 아니라 농촌에서 땅을 일구며 살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노동운동의 중요한 이슈는 땅과 종자를 지키는 농민운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빈민이나 노동자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농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의 조건은 농민운동의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자의 일상이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생활공간에서도 이루어지니 노동운동과 주민운동, 풀뿌리운동의 거리도 멀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바라볼 때 조금 더 자세를 낮추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진숙 역시 이렇게 얘기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애 처음 민들레를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글이 마지막 연재이다. 그동안 심심한 글을 참고 읽어준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참고한 글

김진숙,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년)

송기숙, 『암태도』(창작과비평사,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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